브레이크 다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원제 - The Breakdown, 2017년

  작가 - B.A. 패리스







  * 어쩌면 중요한 힌트를 주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



  ‘캐시’는 폭풍우가 몰려오자,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숲길로 차를 몬다. 숲 중간쯤에 차 한 대가 멈춰서있는 걸 발견하고 잠시 멈췄지만, 어쩐지 불길한 느낌에 그냥 집으로 와버린다. 다음날, 그녀는 숲에 세워진 차 안에서 자신 또래의 여자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듣는다. 그리고 그 피해자가 얼마 전에 알게 된 ‘제인’이라는 사실에, 캐시는 절망한다. 그런데 그 이후, 그녀 주위에서 이상한 일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남편 ‘매튜’가 출근한 이후에만 걸려오는 전화라든지, 자신이 주문하지 않은 물건이 배달되거나, 기억에 없는 친구들과의 약속 등등. 게다가 누군가 집에 침입했던 것 같지만, 아무런 증거가 없다. 캐시는 혹시 자신의 어머니처럼 조기 치매가 발병한 것은 아닐까 불안해하는데…….



  살아가다보면,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떤 것은 잘 골랐다고 자화자찬을 할 때도 있고, 또 어떨 때는 내가 왜 그랬을 까라며 밤에 이불을 펑펑 찰 때도 있다. 이 책의 주인공 캐시 역시 선택을 해야 했다. 폭풍우 치는 밤, 지나가는 차는 한 대도 없는 깜깜한 밤, 으슥한 숲길에 조용히 서 있는 차,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잠시 멈춰봤지만 상대방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문득 전에 들었던 범죄 얘기가 떠오른다. 캐시는 결정한다. 그냥 지나가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는 자신의 선택이 가져온 비극에 엄청난 죄책감을 느낀다. 만약 자신이 차에서 내려 살펴봤다면, 하다못해 집에 와서 경찰에 연락이라도 했다면, 제인은 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며 그녀는 자책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후 심해져가는 건망증과 맞물려 그녀를 서서히 망가뜨린다. 분명히 누군가 집에 들어왔지만, 사람들은 믿어주지 않는다. 두 눈으로 직접 봤지만, 다른 사람이 왔을 때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다. 자신은 약속을 한 적도 없고 주문한 적도 없지만, 상대방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결국 캐시는 자신을 믿을 수 없을 지경에 처한다. 소설은 그녀가 무너져가는 과정을 차분히, 그러면서 자세히 보여주었다. 거의 후반까지, 그녀가 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를 구원한 것은, 다른 사람의 선의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어떻게 보면, 사건 해결이 너무 우연에 기댄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었다. 논리적으로 추론을 거듭해 범인의 계획에 있는 빈틈을 찾아내는 것이 아닌, 여기서는 타인의 우연한 도움으로 사건의 진상을 알 수 있게 된다. 이건 제인의 사건과 대비를 이룬다. 물론 캐시가 그날 밤 차에서 내려 다가갔다고 해서, 제인이 죽지 않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어쩌면 캐시마저 살해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캐시는 선의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작 자신은 제인에게 그런 도움을 주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건 뭐랄까, 캐시에게 죄책감을 더 갖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 사건이 다 해결된 뒤에도, 캐시의 남은 삶에는 제인의 그림자가 어른거릴 것 같다.



  책 뒤표지에 보면, ‘가스라이팅Gaslighting 심리 스릴러’라고 적혀 있다. 이 문구를 적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스라이팅이 대개 이루어지는 관계를 생각해보면, 캐시를 위협하는 범인의 정체가 너무 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폴라 호킨스’의 소설 ‘걸 온 더 트레인 The Girl on the Train, 2015’가 떠올랐다. 두 작품 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비슷했다. 그건 어쩌면 요즘에는 가스라이팅이라는 감정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일까? 그건 타인의 감정을 착취해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결국 세상은 약한 사람들이 서로를 도우면서 살아가야하는 모양이다. 비록 모두가 다 그런 도움을 받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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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야 하는 밤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원제 - AchtNacht, 2017

  작가 - 제바스티안 피체크





  방금 밴드에서 퇴출당한 ‘벤’은 전부인인 ‘제니퍼’의 전화를 받는다. 이주일 전 자살시도를 한 딸 ‘율레’에 관한 얘기였다. 그녀는 율레가 자살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았노라 말했다. 경찰에 가져갈 정도는 아니지만, 부모에게는 믿음을 주기에 확실한 그런 증거. 벤은 딸이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를 기억한다. ‘아빠가 위험에 빠진 것 같아.’ 그런데 그날 밤부터 모든 사람들이 그를 쫓기 시작한다. ‘8N8’이라는 사이트에서 사냥 게임을 시작했는데, 벤이 사냥감으로 뽑힌 것이다. 그를 잡으면 받을 수 있는 상금은 무려 천만 유료! 처음에는 다들 가짜뉴스라거나 낚시라고 여겼지만, 어마어마한 상금과 게임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일당이 개입하면서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그를 뒤쫓는다. 거기에 과거에 그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은 그를 처단해야 한다는 광기에 휩싸인다. 물론 그 범죄는 누명이었지만, 이미 선동된 사람들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벤은 사냥감으로 같이 지목된 ‘아레추’와 함께 생명을 건 도주를 감행하는데…….



  작가의 이름이 어딘지 모르게 낯익다. 그렇다. ‘제바스티안 피체크’. 바로 ‘눈알수집가 Der Augensammler, 2010’와 ‘눈알사냥꾼 Der Augenjager, 2011’ 그리고 ‘차단 Abgeschnitten, 2012’의 작가로, 책제목만으로 엄마의 이상한 시선을 받게 만든 그 사람이다. 글자를 읽는 것만으로 떠오르는 끔찍한 장면 연출로 한동안 속이 울렁거리게 만든 그 사람이다. 사실 그 때문에 한동안 이 작가의 책을 멀리하기도 했다. 읽고 나면 그 참혹함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말처럼, 몇 년 지났으니 괜찮을 것이라는 자신감 때문에 과감히 책을 집어 들었다.


이야기는 마치 내가 벤과 아레추의 도주에 동반한 것처럼,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어느 한 구석에 주저앉아 숨 돌릴 틈도 주지 않는다. 이미 온라인과 방송을 통해 신상이 탈탈 털렸기에, 나는 상대를 모르지만 상대는 나를 안다는 사실에서 오는 공포는 엄청 났다.



  책은 온라인과 대중 심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간혹 온라인에 올라와있는 글을 진실이라 믿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이 믿는 사이트에 있는 글만이 진실이라 믿으며, 그것을 아니라 말하는 사람들에게 반박하며 공격하거나 아예 상대하지 않는다. 자기들끼리 뭉쳐서 모든 것을 배척하기도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의 의견에 쉽게 선동되어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사람도 만날 수 있다. 첫 댓글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감동적인 얘기에 우스운 댓글이 처음 달리면 뒤를 이어 웃긴 댓글이 달리고, 첫 댓글이 비판적인 내용이면 다음 댓글들도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뜻이다. 예전에 이에 관한 무슨 실험이 있었던 것 같다. 모두가 다 ‘아니요’라고 할 때, 맞는다는 걸 확실히 알지만 다른 사람을 따라서 ‘아니요’라고 말하는 그런 실험이었던 것 같다. 다수를 따라가는 것은, 오프라인이건 온라인이건 똑같은 모양이다. 이런 경우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세기 어려울 정도이다.



  여기서도 그런 사람들이 등장한다. 남들이 욕하니 같이 욕하고, 남들이 죽이라 하니 같이 죽이라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 사람들은 다수였지만, 정작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소수였다. 그 한두 명의 사람들이 의도한대로 사람들은 움직였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다. 문득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댓글 부대’가 떠올랐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너무도 높아서, 기본적인 교육 수준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쉽게 선동되고, 남의 말을 쉽게 믿는 걸까? 물론 온라인에 올라오는 모든 글을 개인이 일일이 검증할 수는 없다. 그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100% 진실이라 믿는 건 문제가 있지 않을까? 언제부터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걸 그만뒀는지 모르겠다.



  중간 중간 생각하기 위해 멈춰야 할 정도로, 책은 진행이 빨랐다. 영상물을 보는 것도 아닌데, 읽는 내내 숨을 골라야 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눈알 시리즈만큼의 충격은 없었다는 것이다. 뭐 그렇다고 섬뜩한 느낌을 주는 장면이 없었다는 건 아니다. 아마도 ‘제바스티안 피체크’ 일 년치가 넉넉하게 충전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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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천 년을 사는 아이들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 지음, 손화수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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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제 - Bian Shen, 2013

  작가 -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







  다른 아이들이라면 생일이 되면 신나하겠지만, ‘아르투르’는 달랐다. 14세가 되는 생일날 아침, 눈을 뜬 그는 불안에 휩싸였다. 지난 7천 년간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매번 14번째 생일이 되면 그는 죽었고 모든 기억을 갖고 환생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아르투르처럼 환생을 거듭해온 다른 친구는 생일날도 헷갈렸냐고 놀리지만, 그가 계속 죽지 않자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다. 이 세상에는 아르투르처럼 14세가 되면 죽었다 환생하는 존재가 있었고, 그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불안해하는 아르투르에게 ‘수호자’라는 존재가 나타난다. 그는 아르투르에게 사명이 주어졌다고 말하는데…….



  한편 공학도인 ‘너새니얼’은 위성을 통해 지구의 인구수를 측정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우연히 그는 421명에 해당하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 비해 강한 뇌파를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런 그에게 네트워크의 아이들이 접근한다. 자기들이 알고 있는 환생자의 수보다, 너새니얼이 확인한 수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환생자 중의 한 명인 ‘파올로’는 어른이 되지 않고 계속해서 환생만 하는 것이 지겨워졌다. 그는 자신의 삶이 저주받았다고 생각한다. 마침내 그는 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환생의 고리를 끊어내겠다고 결심하는데…….



  예전부터 지금까지, 죽지 않고 오래 오래 사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많았다. 이 책의 주인공인 아르투르를 비롯한 아이들은 환생을 거듭하면서 오랫동안 살아왔다. 전생의 기억이 있기에, 그들은 몇 천년동안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왔다. 어떻게 보면 재미있는 삶일 수도 있다.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습득한 지식과 인맥으로 그들은 엄청난 부를 누리기도 한다. 게다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기에, 그들은 몇 개 국어뿐만 아니라 사라진 고어까지 습득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무한으로 읽을 수 있는데, 2권까지만 볼 수 있다면? 뒷이야기가 궁금하지만, 강제적으로 다른 소설 1권을 읽어야 한다면? 소설 읽는 재미가 사라질 것이다. 이야기에 나오는 아이들도 그랬다. 그들은 오래 살기는 했지만, 그건 십대 초반인 열네 살 때까지 뿐이었다. 그 이후의 삶은 어떠할 지 절대 알 수가 없었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도, 20대의 열정적이면서 불안한 감정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느낄 경험이나 자신의 일에 열정을 바치는 경험도, 그들은 하나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자, 파울로가 왜 그랬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어른이 되고 싶었고, 죽고 싶었다.



  책은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파울로와 이를 막아야 하는 아르투르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어떨 때는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동시에 과학 기술을 적절히 활용했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작가는 예전에는 그냥 마법이라는 단어로 넘어갈 수 있는 현상을, 어떻게든 설명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굳이 과학적으로 풀어줄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과 함께, 약간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책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번갈아 가면서 보여준다. 하나는 현재 아르투르와 너새니얼이 파울로를 찾아 헤매는 과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환생자인 아이들 중의 한 명의 과거 이야기였다. 그 과거가 참으로 서글퍼서, 환생하는 것이 꼭 좋은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르투르와 파울로, 그리고 너새니얼의 삶 중에서 어떤 삶이 좋은 것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었다. 그들 나름 고통이 있었고 기쁨이 있었으며 이루어지길 바라는 꿈이 있었다.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드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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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탐정 이상 3 - 해섬마을의 불놀이야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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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해섬마을의 불놀이야

  작가 - 김재희




  이상과 구보가 함께 해결한 사건 세 번째 묶음집이다. 모두 일곱 개의 이야기가 들어있었고, 이번에도 무척이나 위험한 사건들이 이어진다.



  『통영 해저터널에서 사라지다은 갑자기 사라진 화가에 관한 이야기다. 위작 파문이 있던 유명 화가가 사라지고, 그의 여동생이 사건을 의뢰한다. 이상과 구보는 화가를 찾아 해저 터널로 들어가는데…….



  『해섬마을의 불놀이야』는 외딴 마을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한 집안에서 연이어 일어나는 사망 사건과 이에 걷잡을 수 없이 퍼진 소문 그리고 오래 전에 있었던 비극적인 일이 밝혀진다. 가족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부정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느낌이 들 것 같다. 내가 내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문의 명예를 위해 살아가는 꼭두각시처럼 여겨졌을 지도 모르겠다.



  『문화주택에 사는 그림자 아이』는 가족 간의 불화가 빚은 사건을 보여주고 있다. 갑작스레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 여인과 아이들 때문에 부인이 자신을 떠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해하는 아버지, 그리고 그런 부모에게서 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의 대립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훈육과 사랑의 매, 그리고 체벌의 차이는 무엇이고, 그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후쿠오카의 지옥 온천여행』은 일본에 여행을 갔다가 사건에 휘말린 두 사람을 그리고 있다. 수련을 온 명상 단체와 같은 여관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자살 사건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상은 그 사건이 자살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기이한 의뢰를 하러 온 스님』은 혼자서 움직이지 못하는 주지 스님이 사라진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산 속에 있는 사찰에 도착한 구보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전쟁은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걸 확인시켜준 단편이었다.



  『기적 소리와 함께 깨어난 야생화』는 기차 안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학회에 발표할 한국의 야생화를 갖고 가던 학자와 같은 칸에 앉게 된 두 사람. 그런데 갑자기 기차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희귀 야생화가 사라진다. 과연 누가, 왜 살인을 하고 꽃을 훔쳐갔을까?



  『경성 치과의사들의 비밀 의식』에서는 프리메이슨과 백백교가 등장한다. 이상과 구보가 어릴 때부터, 특히 이상과 특별한 연관이 있는 백백교의 교주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라며, 이에 대비하기 위해 조선을 바꿔야한다고 주장한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알고 있는 나에게 그들의 의도는 괜찮았다. 하지만 의도가 좋아도 과정이나 수단이 옳지 않으면, 그건 좋은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백백교와 이상은 대립하게 되고, 구보는 엄청난 위험에 빠진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구보의 후손이라면 기분이 나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은 그야말로 다재다능하고 천재적인 사람으로 나온다. 그냥 쓱 둘러보기만 하면 사건의 진상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인맥도 곳곳에 닿아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논리적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차갑지만 내 사람에게는 따뜻한 성격으로 표현된다. 그에 비해 구보는 소심하고, 남의 말에 잘 휘둘리고, 글이 안 풀려 징징대고, 겁 많고, 이상이 설명해주기 전까지는 사건의 진상은커녕 무슨 상황인지 파악도 하지 못한다. 이상이 너무 뛰어나서, 상대적으로 너무 미숙해보였다. 이럴 바에는 굳이 구보라는 실제인물이 아니라, 가공의 인물을 창조하는 게 낫지 않았을 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에는 1,2권과 달리 마지막 이야기가 이상이 죽은 후 구보가 회상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패턴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백백교와 두 사람의 인연이 또 어떤 사건을 만들어낼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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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발 살인사건 코니 윌리스 소설집
코니 윌리스 지음, 신해경 옮김 / 아작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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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A Lot Like Christmas, 2017

  작가 - 코니 윌리스






  코니 윌리스의 작품 중에서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이야기만 모은 단편집이다. 2000년도에 한 번 나왔던 단편집에 신작을 추가하여 이번에 개정판으로 나온 것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첫 출간일 테니, 개정판이건 아니건 상관이 없을 것 같다. 책이 나왔다는 것만으로 고마운 일이니까. 그리고 한 권짜리였던 것을 두 권으로 나누어 출판했으니, 이 시리즈를 제대로 즐기고 싶으면 다른 한 권 『빨간 구두 꺼져! 나는 로켓 무용단이 되고 싶었다고!』를 꼭 읽어봐야겠다. 이번 책에는 모두 여섯 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말하라, 유령』의 주인공은 이혼한 서점 직원이다. 딸의 양육권을 부인에게 빼앗기고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기만 기대하고 있었는데,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연말연시를 맞아 서점 행사로 바쁜데다가 전부인은 어떻게든 딸을 보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그의 앞에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의 세 유령을 연상시키는 사람들이 나타나는데…….



  『고양이 발 살인사건』에는 명탐정과 조수가 등장한다. 둘은 유인원의 지능을 연구하고 향상시키며 더 나아가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연구소에 초대된다. 그런데 연구소의 창업자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음, 어떤 작품이 떠올랐는데, 그걸 말하면 엄청난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서 패스하겠다.



  『절찬 상영중』의 주인공은 친구들과 멀티플렉스 극장으로 영화를 보러 간다. 그런데 그녀가 원하는 영화를 보기가 쉽지 않다. 우연히 만난 전남친에게서 그녀는 멀티플렉스 극장의 음모에 대해 듣게 되는데……. 조만간 벌어질 수도 있는, 돈만 밝히는 기업과 아무런 생각이나 비판도 하지 않는 대중이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말하는 이야기였다.



  『소식지』의 주인공은 어느 날부턴가 주위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사람들이 전과 달리 너무 성실하고 착해진 것이다. 그녀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밝혀내려고 하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착해지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어쩐지 잭 피니의 소설 ‘바디 스내쳐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 1955’의 패러디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방박사들의 여정』에서 주인공인 목사는 설교 중에 계시를 받는다. 바로 예수가 재림했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재림한 예수를 찾아 길을 떠난다. 그리고 그가 만난 것은……. 예수가 재림하면 과연 그걸 알아차릴 사람이 몇이나 될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알던 이들처럼』은 특정한 주인공 한 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동시에 다른 곳에서 겪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갑자기 전 세계적으로 폭설이 내리고, 그 와중에 사람들은 지금까지와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누구에게는 행복한 크리스마스이고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못한 날이 될 것이다. 만약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지면, 나에게는 어떤 크리스마스가 될까?



  몇 십 년 동안 글을 써도 마르지 않는 상상력을 가졌고,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걸 글로 써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스토리텔링이 뛰어난 작가’라거나 ‘훌륭한 이야기꾼’이라고 흔히 말한다. 그런데 왜 이 작가에 대해서는 ‘수다쟁이’라고 표현하는지 모르겠다. ‘수다’는 쓸데없이 말이 많이 하는 걸 뜻하고, ‘수다쟁이’는 그런 사람을 얕잡아 보는 표현이다. 처음에 이 작가에 대한 소개에서 수다쟁이라는 단어를 봤을 때 ‘그런가보다.’라고 넘겼는데, 그녀의 책을 읽을수록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하는 수다로 비유되기에는, 그녀의 이야기들은 너무 좋았다. 주저리주저리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말하고 싶은 내용을 유쾌하게 얘기하고 있는데 왜 수다라는 말로 폄하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따지면 다른 작가들은? 왜 그녀만 그렇게 불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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