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40분 마을 길을 나서게 됩니다. 차유리에 서리가 내렸을 거라 생각하고 집을 나서는데 반려묘 깜선생이 “야옹”거리며 “이른 시간에 어디를 가냐”고 하는 듯 인사를 나눕니다. 현관을 거치고 온실을 나서서 몇 계단을 지나 스무걸음 정도 걸으면 직접만든 우체통과 장미 정원을 지나 마을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불과 서른보도 되지 않는 짧은 거리이지만 그 사이 일어나는 생각들은 짧지 않습니다. 이제 봄이 오니 새순이 오르기 전에 장미 전정도 해주어야 하고, 앞으로 살짝 기운 우체통도 바로세우고, 옆집 형님네 벽난로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는지, 습관적으로 주변풍경을 둘러보면서 생각들이 일어납니다. 저는 이런 시간들이 나를 깨우는 시간처럼 여겨집니다. 밤사이 따뜻한 기온 덕분인지 봄이 온 것 같이 포근한 아침입니다.


오늘은 인천과 김포, 고양까지 세곳을 하루에  다녀왔습니다. 아침 일찍 시작해서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일정이라는 마음가짐 때문인지 가는 곳 마다 여유있고 충실하게 사람들과 만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할 때도 차분하게 운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첫 목적지인 오류동은 건축용 목재를 납품하는 거래처 사장님댁입니다. 아버님이 소유하고 계신 토지에 집을 짓고 싶어 하신다는 연락을 받은 곳입니다. 전쟁 때 북에서 내려 오신 후 목장을 운영하시며 자식들을 키워낸 아버님은 자재업에 종사하는 둘째 아들(민사장)에게 집을 지을 것이니 준비를 해달하고 요청하신지 1년만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합니다  저와는 큰 인연은 없었고, 주로 현장소장에게 민사장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던터라 제 나름대로 인상착의라던가 성격 등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직접 만나본 민사장님은 소탈하고 평범한 체격에 웃음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팔순이 넘은 아버님은 공고를 졸업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아버님이 손수 그리신 집에 대한 그림들은 그림이라고 하기보다는 잘 정리된 오래된 건축도면 같이 보였습니다. 

“어쩐지 아버님 치수가 정확하고, 앞뒤 연결이 분명하더라고요.”

팔순이 넘는 할머니를 위해 넓직한 다용도실을 두고 집을 지을 자리 인근에서 사업을 하는 둘째 아들(민사장)의 자재창고를 고려해서 차를 두어야 할 곳, 주방이 있어야 할 곳, 거실과 방들이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 꼼꼼하게 기록해 놓은 아버님의 설계도면에는 건축가인 제가 모두 수긍을 할 수 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왼쪽이 아버님의 스케치, 오른쪽이 아버님의 의견을 받아 정리한 기본스케치 입니다. 세상에는 건축가라는 직업이 있지만 제 생각에 우리들 모두가 건축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건축가라는 직업은 집주인의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와 바램을 1:1로 구현하는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마음의 장소를 그리는 사람은 우리들 모두 이기 때문입니다.




건축일을 하면 할 수록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상대의 마음을 신중하게 보듬어 만지는 자세가 과정의 전부라는 것을 살피게 되는데 오늘 그런 시간을 또 한 번 갖게 되었습니다 


“젊은 사장님들 시간 되면 추어탕 먹으러 갑시다. 아침 일찍들 오시느라 고생들 했을텐데 내가 추어탕 사겠수다” 역시나 아버님의 분명한 이유에는 거절할 만한 실오라기 하나 없습니다.  

안그래도 허기가 지던 배를 추어탕 덕분에 따뜻하게 채울 수 있었습니다. 아버님의 마음씀이 우리 모두를 따뜻하게 해주십니다. 


가끔은 건축적인 언어에서 벗어나 편안한 마음으로 지어지는 집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오류동 주택이 그런 집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디자인, 세련, 특별함, 이래야 한다는 기준을 우선하지 않아도 되는 가족을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한 그런 집 말입니다. 


예전 같으면 아버님이 직접 집을 지으셨을만도한데 팔순이 넘으시니 젊은 우리들이 아버님을 대신해서 집을 짓게 됩니다. 


“맞아 나이가 들어서 이젠 손수레 없이는 물건을 나르기가 힘든데 현관 옆에 계단 대신에 경사로가 있으니 편리하겠어요. 주방에서 가까이에 분리수거 할 수 있도록 작은땅도 만들어 놓으니 편리하겠어요. 꼭 필요하지 암 그럼. 현관에서 다용도실을 거쳐 주방으로 들어갈 수 있고 주방에서 다시 거실로 갈 수 있어 막힘이 없는 집이네. 나 같은 늙은이들은 옷방(드레스룸)보다는 옷장이면 충분해요. 쓰던 옷장 가져갈거니 옷방은 없어도 되요”


“어머님 저희들은 아버님이 이야기해주신 대로 정리만 한 것이에요. 아버님 덕분에 쉬이 마무리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그럼 아버지하고 어머니가 이야기 하시던 요구사항들은 모두 다 정리한 것 같아요. 이제 도면 완성하고 공사준비 하면 되겠어요” 둘째 아들 민사장님은 종이 한면에 빼곡히 적어 놓았던 부모님의 바램들을 하나씩 지워가며 이야기 합니다. 


집을 짓는 다는 것은 가족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오류동을 나오면서 현장 소장도 얼굴에 웃음이 가득합니다. 현장소장은 15년 전에 손수 어머니의 집을 지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저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괜히 질투가 나네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님의 집을 지은 분들만 느낄 수 있는 뭔가가 있기는 있는 모양입니다. 실은 그런 것과는 별개로 하더라도, 저도 어머니의 집을 지어드리고 싶어지는 계절입니다. 

 



˝제가 설계할 때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아래 세 가지를 카테고리로 나누어 소개합니다. 1부 장소와의 관계, 2부 사람과의 관계, 3부 시간과의 관계˝ 카토마사키의 <카페의 공간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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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5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6 0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포비 2020-02-16 0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희 아버지도 손재주와 기술이 좋으셔서 옛날 어렸을 때 살던 저희집을 아버지가 거의 직접 지으셨었어요. 재개발로 그 집은 사라졌지만,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가끔 거기서 뛰어놀다 오곤 해요. 그러고보니 결혼하기 전에 아버지와 스트로베일하우스 함께 지어볼까 생각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덕분에 옛날 기억들 줄줄이 소환되고있네요ㅎㅎ

빵굽는건축가 2020-02-16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우리 아버님도 제가 태어나기 전에 집을 직접 지으셨다고 해요. 건축가는 아니셨지만 자기집은 자기가 지을 줄 아는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신 거죠. 저도 건축일을 하면서 저의 본능을 줄줄이 소환시키고 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