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가 오는 일요일 아침은 여유있는 시간을 만들어 줍니다. 비가오니 동네 울력(마을청소)모임은 집에서 내린 커피와 동네 누님이 담근 보리수청, 집에서 구운빵과 제과점빵, 과일을 먹으며 오손도손 브런치 시간을 보냅니다.


지난주 3호집 형님이 “신맛을 줄이고 더 부드러운 발효빵을 만들어 줄수는 없냐”는 제안에 이번 빵은 상업용 이스트를 1% 넣고 저온 대신 상온에서 3시간을 숙성시키고 빵을 구웠습니다. 이스트를 쓰기 위해 책을 찾아서 밑줄을 그어가며 구운빵입니다. 


6호집 민교아빠가 한입을 베어 먹고는 

“빵실력이 퇴보한 것 같아" 라고 평소답게 아주 솔직한 평가를 합니다. ‘퇴보’의 말을 강조 하는 것을 보니, 나의 길을 계속 갔어야 하는데 괜한 짓을 한것 같기는 합니다. 그래도 의기소침하거나 그럴사이는 아니기에 “이스트를 조금 넣었나?.”라며 얼버무리기는 했지만 조금 그렇기는 하더군요.


두덩어리의 빵을 구웠는데 한덩어리만 팔리고, 한덩어리는 남았습니다. 소풍가서 도시락을 나누어 먹는데 친구들이 다른 반찬은 먹고 내 반찬은 먹지 않아서, 내가 다 먹었던 것처럼, 남은 빵 한덩이는 동네 아줌마가 만든 아로니아잼을 발라서 제가 다 먹었습니다. 다음부터는 발효빵만 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의 요구에 맞추는 과정도 그렇고, 변화하는 입맛을 맞추느라 새벽부터 빵을 구워내고, 밤 늦도록 반죽을 하는 이세상의 모든 빵선생님들이 대단하게 여겨집니다. 저야 빵을 취미삼아 하면서 제 입맛에 맞추고 있지만 빵을 생업으로 하는 분들에게, 화이팅을 보내고 싶은 아침입니다.


“형님 이번에 읽는 책은 어떤거죠?”

“<선량한 차별> 이라고 알게 모르게 이루어지는 차별에 대한 책인데 읽으면서 차별의 의미를 다시 알게되었어.“

“12월 책은 어떤거래요?”

“독서모임에서 시집을 몇권 읽고 송념모임에서 시를 나누자고 하네, 이번에는 시를 읽고 있어 “

“그래요! 그럼 제가 시집 한 권 드릴께요. '울라브 하우게'라는 노르웨이의 정원사님이 쓴 글이에요”

“난 너무 관념적인건 익숙지 않은데 혹시 그런거 아냐?”

“걱정 마세요. 너무나 직설적인 직관력에 감동할거에요”


3호 형님댁은 독실한 크리스찬입니다. 지난 10년을 평가하자면 ‘영성이 깊은 다정한 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집에서 남쪽으로 오십보 떨어진 건너집입니다. 3호 형님댁과 우리집 사이에는 4호 형님댁이 있고, 4호 마당을 가로질러 가면 3호 형님댁의 후원이 나옵니다. 3호 후원에서 바라보면 우리집 마당이 굉장히 크게 보입니다. 실제로 우리집 마당처럼 사용하고 있기도 하고요. 울타리가 없는 우리 동네는 경계가 모호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각자가 심은 자작나무, 단풍, 자두, 대추들이 마당의 경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4호 형님댁 마당은 고양이들과 아이들, 어른들이 맥주와 함께 여름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곳이기도 합니다. 더운 여름에는 3호 형님댁 후원에서 마시는 시원한 커피도 제맛입니다.


마당은 지붕 없는 방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로마시대에 지어진 판테온성당의 돔천정이 천상의 세계를 표현했다면, 우리동네 마당은 복잡한 구조물은 없지만 집과 집으로 둘러 쌓이고 산이 품은 넓은 하늘을 둥근천정 삼아 살고 있습니다. 50보만 걸으며 갈 수 있는 거리에는 추억도 많고 이야기도 많습니다. 


3호 형님댁 후원에는 주방으로 이어지는 넓은 유리문이 있습니다. 현관을 놓아 두고, 우리 가족은 주로 이 문을 이용합니다. 최단거리이기 때문에 현관으로 돌아가는 수고를 덜 수가 있고 유리문에서 ‘똑똑’노크를 하면 신을 벗고 들어가지 않아도 간단한 용건을 나눌 수 있어 아주 편리합니다. 


“형님”

“어 이게 뭐에요, 아! 아침에 이야기 한 <어린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제목 좋은데, 잘 읽을께”

시집을 건네주고 발길을 돌려 50보를 걸어 우리집 온실에 도착합니다. 시집을 받아쥔 형님의 모습을 보니 ‘퇴보한 빵’의 기억을 만회한 듯한 기분도 들고, 울라브하우게선생의 시에 느낌이 있을거란 기대감도 생깁니다.   


마을, 커뮤니티, 공동체, 이웃 같은 단어들을 많이 사용했었지만 제 경우에는 몇 년을 살아보고 나서야 단어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느끼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번 가을 열린 감은 새들도 먹고, 우리가족도 먹고 있습니다. 모과 열매 한바구니는 온실에서 모과향을 내어주고, 우리집 깜선생(고양이)은 일요일의 온실에서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당신의 정원을 보여 주세요

우리 만남을 위해 오실 때
경비견을 데려오지 마세요
굳은 주먹도 가져오지 마세요
그리고 나의 호밀들을 밟지 말아 주세요
다만 대낮에
당신의 정원을 보여주세요

<울라브 하우게의 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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