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 - 사육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1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승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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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가 2014년 스스로 선정한 대표 단편 스물세 편을 골라 <오에 겐자부로 자선단편>이란 책을 내, 이것을 현대문학사가 한글로 번역 출판한 책.
 겐자부로는 자신의 작업을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각 8편, 11편, 4편을 담았다. 본문만 710 페이지에 이르는 두꺼운 책인데, 이 가운데 오직 하나, 초기작 18쪽 분량의 <돌연한 벙어리> 한 편만 3인칭 시점으로 썼을 뿐, 나머지 스물두 편은 전부 일인칭 소설이다. 3인칭 소설도 그의 고향 시코쿠 산골을 무대로 패전 후 갑자기 들이닥친 미군병사 몇 명과 위압적인 통역관을 바라보는 소년의 시각이다. 그나마 그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읽어온 독자들은 겐자부로의 아버지가 작가가 소년시절에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비록 죽음의 방법은 다를지언정 ‘소년’의 아버지의 죽음이 스토리의 전환점이 되는 바, 거의 일인칭 소설 비슷하게 읽힐 것이다.
 일련의 작품 가운데 신선하게 읽은 것은 초기, 그러니까 등장인물이 도쿄대학 불문과에 진학하여 도쿄대 의과대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겪었던 일화를 다룬 작품들이었다. 그 외의 단편들을 둘러싸고 있는 배경은 이미 작가의 다른 장편소설을 통해서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이라 그리 신선하지는 않았다. 오에 겐자부로의 번역본을 다 읽어본 건 아니지만, 내가 읽은 겐자부로 안에서 이야기하자면 그의 작품은 크게, ① 아버지의 죽음, ② 고향 시코쿠 근방에 있었던 민란民亂, 그리고 ③ 뇌 헤르메스로 태어난 줄 알았지만 수술을 통해 생명을 구한 지적장애인 아들 히카리와 관련한 삶의 고단함 정도로 거칠게 셋으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직접 고른 평생의 단편 작업 스물세 편에는 ①과 ②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아무리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라도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아무래도 실제 삶의 곁에 늘 있어서 쉴 새 없이 자신에게 간섭해 온 지적장애 아들에 관한 것이 가장 컸으리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큰아들 히카리 또는 이요(히카리의 애칭)가 등장하는 작품이 전체 710쪽 가운데 482쪽, 편수로 23편 중에서 16편에 이른다는 점. 그의 초기 장편 <개인적인 체험>에서 뇌 헤르메스가 거의 틀림없다고 착각한 ‘나’가 방황하며 옛 연인에게 의지해 위스키와 수면제 두 알을 상습적으로 먹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바로 옛 연인, 연인이 아니더라도 전에 접촉을 해본 적이 있는 그 여자가 단편집에서도 몇 번 등장하는데, 놀랍게도 반은 한국인의 피가 흐르며 독일에 살면서 일본에 대학을 다니러 체류하는 설정이다. 초기작으로 분류한 것들 가운데 마지막 작품인 <공중 괴물 아구이>에서 시작해 마지막까지 모든 작품이 다 주제로 다루지는 않았더라도 지적장애를 갖고 태어나, 사춘기를 거쳐, 청년기, 장년기까지 온 아들이 매우 중요한 기재로 작용한다. 중기 작품 가운데 두 단편으로 구성한 <조용한 생활>의 경우만 유일하게 작가의 딸이자 히카리의 여동생 시각의 일인칭 소설인데, 그것도 포함하여 전편에 걸쳐 작가에게 또는 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 히카리의 남은 생을 책임지는가 하는 두려움인 듯 보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과한 사소설 경향이, 그래서 좀 질린다는 뜻.
 이 책을 읽어보실 분은, 방금 얘기했듯 조금 질리는 면이 있긴 하지만 오에 겐자부로를 알기 위한 좋은 기획이란 점에 적극 동의하는데, 이 책은 맬컴 라우리의 소설과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먼저 읽은 다음에 손에 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다행히 라우리의 <화산 아래서>를 읽었고, 불행히 블레이크의 시는 단 한 수도 읊어본 적 없어서 그나마 50점은 됐다. 중기 작품들엔 이 두 작가를 자주 인용하는 바람에 내 경우엔 블레이크 시만 나오면 멀미가 나는 증세를 멈추지 못했다.
 책에 좋은 말들이 많이 나온다. 아시다시피 오에 겐자부로는 평생 반핵운동과 반독재 주장을 펼친 일본의 대표 양심적 지식인이어서, 비록 그가 직접적으로 반핵, 반독재를 주제로 한 작품을 썼는지 안 썼는지는 몰라도 작품 속에는 분명하게 그의 생각을 밝히길 주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런 표현을 보자.
 “‘광기’ 없이는 위대한 사업은 이룰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광기’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업은 반드시 황폐함과 희생을 동반합니다. 진실로 위대한 사업은 인간이란 ‘광기’에 사로잡히기 쉬운 존재임을 남보다 깊이 자각한 인간적인 사람에 의해 성실하고 집요하며 착실하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류의 불행한 역사는 모두 이 ‘광기’에 의하여 저질러졌지 않은가. 20세기의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도,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도, 제3제국에서 자행된 폭압과 전제정권도, 소비에트와 주변국의 절대 권력도.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아무리 위대한 작가라 할지라도 나날이 늙어 허약해지는 가장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게 인간의 진짜 모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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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낯섦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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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덟 번째 읽은 오르한 파묵의 장편소설. 표지부터 본문까지만 635쪽. 그런데 주목할 것은 민음사답지 않게 한 페이지 당 37자, 28행의 촘촘한, 즉 경제적인 편집을 단행해서 우리가 흔히 읽는 30자 전후, 23행의 책들과 비교해 진도가 무지하게 안 나가는 것처럼 느낀다. 난 이런 책 무지 좋아한다. 글씨가 빽빽하게 차 있는 거.
 1970년대 초반까지도 내가 살던 서울 성북구의 어느 골목에선 날씨가 쌀쌀한 긴 겨울밤이면 “메밀묵 사려어어어어, 찹쌀 떠억!”하는 호객소리가 자주 들리곤 했다. 이 외침은 사실 악보로 표시해놓아야 진짜 맛을 알 텐데, ‘메밀묵’은 4분 음표로 미솔솔, ‘사려어어어어’는 잇단음표로 4분 음표 솔솔(사려)로 시작해서 절묘한 카덴차가 잇단음표로 (높은 솔 너머까지) 한 마디쯤 이어지고 다시 낮게 ‘찹쌀’ 4분 음표 미파, ‘떡’ 낮은 솔 한 마디 정도로 짧지만 굉장한 코다로 마감했다. 고 기억한다. 어린 나는 당연히 단 찹쌀떡을 하나 먹었으면 했으나, 할머니는 노상 술을 좋아하시던 이주사를 위해 메밀묵만 한두 모 사서 김치 송송 썰어 넣고 맛있게 양념해 술상을 보셨던 건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생각만 했는데도 불구하고 옛 입맛이 떠올라 입에 침이 다 고인다. 당시 성북구라는 동네는, 물론 아닌 곳도 있었지만 주로 농촌붕괴로 인한 도시화 대열에 휩쓸린 사람들이 많이 살아 불법 주택이 판을 치는 가난한 동네로 치부되고는 했었다. 그럴 만한 것이 당시 ‘국민학교’ 한 학급에 약 80명을 때려 넣고도 오전, 오후반으로 나누어 가르쳤으니 전봇대마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표어가 나붙은 것도 이해는 간다. 둘째 아들 부부였던 이주사와 정여사는 긴 대가족 생활에서 60년대 말에 독립해 나오며 상대적으로 집값이 싼 성북구로 이사를 했다. 왜 이렇게 서론이 긴가 하면, 이 책의 주인공 메블루트가 중앙 아나톨리아 지역의 시골에서 열두 살 청운의 꿈을 안고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로 옮겨오는 시기가 1969년이라 시기도 비슷하고 도시화 현상도 비슷하기 때문이며, 메블루트의 평생에 걸쳐 자기 말에 의하면 운명의 날이 올 때까지 먹고 살기로 결정한 직업이 추운 시기의 밤에, 기장을 발효시켜 걸쭉하고 좋은 향기가 나며 짙은 노란색에 약간의 알코올기가 있는 전통 음료인 ‘보자’ 행상이었으며, 어둔 밤에 보자 장수가 지나간다는 걸 알리기 위해 “보오자아아”하고 청승스런 목소리로 외치고 다녔다고 하기 때문이다. 어째 좀 그럴듯하지?
 예전 터키엔 일반 백성들은 성姓이 없었다. 파묵의 책에 보면 자주 나온다. 케말 파샤가 등장한 다음에 가족들은 무조건 성을 정해야 한다고 법령을 내려서 이제 하나 만들어보려는 형제가 있었다. 형이 먼저, ‘악타쉬’ 즉 ‘흰돌’로 정했다. 그럼 아우도 당연히 악타쉬가 되어야 하는 것이었지만, 아우가 성격은 착한데 이상하게 고집을 부려 자기는 ‘카라타쉬’ 즉 ‘검은 돌’로 해야겠다고 우겨서 결국 형제가 다른 성을 갖게 된다. 이 형제들은 1963년에 아나톨리아에서 이스탄불로 옮겨와 요구르트 장수를 했는데, 형인 하산은 가솔들을 다 이끌고 이주했고, 동생 무스타파는 자신만 와서 번 돈의 일부를 고향에 보내다가 겨우 아들 메블루트 한 명만 이스탄불로 불렀다.
 또 한 가족이 있다. 남자 이름이 좀 길다. 보이누에으리 압두르라흐만 에펜디. 여기서 ‘에펜디’는 나이든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로 굳이 우리말로 하면 ‘어른’ 정도랄까. 압두르라흐만은 1933년 생. 아내 페브지예와의 사이에 딸 셋을 두고 살다가 드디어 마지막에 아들을 하나 낳았으나, 출산 중에 아내와 아들이 동시에 죽고 만다. 이이는 젊어서 이스탄불에 가 요구르트 행상을 하다가 행상지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어깨와 목뼈에 이상이 생기는 바람에 다시 시골로 내려간 인물로, 다행이 아내가 남긴 딸 셋이 전부 빼어난 인물을 가진지라 딸을 결혼시키면서 두둑하게 대가를 받아 남은 생을 좀 편하게 지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었다. 딸의 이름이 순서대로 웨디하, 라이하, 사미하. 이 가운데 막내 사미하야말로 절세의 미인이라 압두르라흐만이 내심 기대하는 바가 컸다.
 같은 이슬람을 믿어도, 같은 페르시아 권임에도, 전에 독후감을 쓴 파리누쉬 사니이, <나의 몫>을 보면 이란에서는 주로 사촌 간에 혼인을 했던 반면 터키에서는 한 집안의 형제와 다른 한 집안 자매들이 얽히고설킨 혼인관계를 갖기도 하나보다. 저 위에 흑돌 백돌 집안에 사촌 형제가 나이 순서대로 코르쿠트, 쉴레이만, (주인공)메블루트가 있었다. 코르쿠트가 일단 딸만 셋 있는 압두르라흐만 씨의 장녀 웨디하한테 홀딱 반해 적지 않은 보상을 주고 결혼을 한 다음에, 둘째 쉴레이만은 막내 사미하한테 눈독을 들이고, 사촌동생 메블루트는 둘째 라이하를 잊지 못해 무려 삼 년 동안 줄기차게 수백 통의 연애편지를 보낸 끝에, 어느 날 밤, 쉴레이만의 도움을 받아 드디어 시골에서 라이하와 야반도주하는데 성공해 이스탄불에 도착한다. 이스탄불에서 있었던 두 집안의 장남, 장녀인 코르쿠트와 웨디하의 결혼식 때 반짝반짝 빛나는 눈길로 (당시 기준으론 아주 맹랑하게도 여자가 감히 남자인) 메블루트를 바라보던 아름다운 아가씨의 눈에 홀딱 반해, 실제로 본 건 그때 딱 한 번, 그중에서도 눈 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가 끓는 청년시대와 군인시절 통틀어 수백 통의 연애편지를, 편지 교본이나 문장 작법 등을 감안해 애간장을 녹이는 표현으로 라이하에게 보낸 바 있으니, 편지를 받은 라이하 역시 사랑을 꼭 말로 해야 해, 라며 메블루트를 향한 무한정의 사랑을 키워왔던 것. 여기에 이미 흰돌 집안의 며느리가 된 장녀 웨디하가 가운데서 바람을 잡아 어느 달 없는 비 오는 밤, 쉴레이만의 닷지 트럭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기어이 라이하를 데려오는 데 성공한 것. 이것도 약탈혼의 한 방법이지만 등장인물들이 비교적 순한 회교도들이라 결국 장인과 사위는 금방 화해를 하는데, 문제는, 그것도 아주 큰 문제는, 애초 웨디하의 결혼식 때 자기가 반한 아가씨가 라이하가 아닌 사미하였던 것. 사미하의 이름을 라이하라고 잘못 알아 죽자사자 라이하에게만 달달한 연애편지를 썼던 건데, 그건 애초 쉴레이만이 사미아한테 눈독을 들여 메블루트에게 라이하라고 틀린 이름을 일러주어서 였던 거디었던 거디었다.
 그래 이 책에선 크게 두 가지를 다루고 있다. (중요도 순서가 아닌) 첫 번째가 세 아들과 세 딸 사이의 얽히고설킨 연애관계이며 두 번째가 개발도상 국가 특유의 도시 집중화에 따라 이스탄불에 유입된 도시빈민들이 몇 십 년에 걸쳐 도시에 적응을 하면서도 옛 기억을 잊지 않는 모습. 오르한 파묵의 소설(그래봐야 이번이 여덟 번째 책이니 그리 신빙성이 있는 얘기는 아니지만) 가운데 시골에서 유입된 도시빈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첫 또는 유일한 이야기 아닌가 싶다. 파묵 스스로가 이스탄불 부르주아 대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 이 책을 쓰는 것이 그리 쉬운 작업은 아니었을 터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도시빈민의 가난과 이에 따르는 어려움의 묘사가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일을 하다 곤경에 처하면 손쉽게 사촌이나 친구의 도움을 받아 다음의 곤경이 닥칠 때까지 그냥저냥 살 수 있게 하는 장치가 과하게 낙관적이다. 책의 뒷날개와 뒤표지에는 무수한 찬사가 씌어 있지만 두 가족의 형제 자매간 사랑 이야기에 비하여 험난하고 때론 잔혹했을 도시빈민의 정착 기록은 실감이 안 난다. 왜 갑자기, 혹은 난데없이 시선을 자기 체험의 경험이 없는 도시빈민으로 돌렸을까. 오히려 작가의 부르주아 성향 때문에 무수하게 실패를 하면서도 여기저기 도움을 받아 순탄하게 이스탄불의 중산층으로 상승하는 마음씨 착하고, 모진 말 못하고, 동안을 가진 우리의 주인공 메블루트를 결국 빈민층에서 구제해주지 않을 수 없었던 거 아니었을까. 파묵 스스로가 도시빈민들에 대한 직접적 이해가 부족한 건 사실일 터이니.
 이상하다. 파묵의 소설을 읽으면 참 잘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드물지 않게 만족하지 못하고 뭔가 께름칙한 뒷맛이 남는 작품들이 있다. 그러면서도 쇼핑 중에 이이의 이름을 단 책이 눈에 띄면 또 선택해서 읽은 다음에 가끔 만족하고 자주 후회하는 거. 정말 이상하지? 나하고 궁합이 좀 덜 맞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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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9-24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묵의 작품은 사람으로 치면 그렇더라고요. 착하고 반듯하고 똑똑한 거 같고, 잘생기고(또는 예쁜데) 전혀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사람. ㅋㅋㅋㅋㅋㅋ 근데 그런 이유 때문에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아예 안 들을 수는 없는..... 그래서 듣긴 듣지만 왠지 그 말이 오래 기억에 남지는 않는 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책도 전 읽을 때는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는데 벌써 기억 희미///// 책도 바로 팔았더라고요. 하하하.

Falstaff 2019-09-24 10:10   좋아요 0 | URL
잠자냥 님 표현이 아주 딱입니다.
책 고르다가 이이의 작품이 눈에 띄면, 안 고르면 안 될 거 같은 느낌이 매번 들어요. ㅎㅎㅎㅎ

2019-09-24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4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숨통 민음사 모던 클래식 51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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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두 편을 실린 단편집. 장편 <아메리카나>와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를 읽고 이이의 단편은 어땠을까 싶어서 일단 사두었지만, 읽기까지 기다리다가 그만 이 책이 단편집이란 걸 깜빡 잊어버려 첫 번째 실린 작품과 두 번째 단편 사이에 이어지는 스토리가 없어서 대략 난감했다. 웃기다. 별 일이 다 생긴다.
 아디치에의 이력을 보면 1977년 뱀띠 여성으로 나이지리아 의약대를 다니다 열아홉 살(네이버 해외저자사전에선 열여덟 살) 때 미국으로 유학, 필라델피아의 드렉셀 대학에서 언론정보학을 수학하고, 이스턴 코네티컷 주립대에선 언론정보학과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존스홉킨스 대학과 예일에서 각각 문예창작과 아프리카 학으로 석사를 받았단다. 아, 이건 저번 독후감에도 쓴 거 같다. 어쨌거나 이 정도면 그녀의 조국 나이지리아에서는 거의 최상급의 조건 또는 환경, 계급 속에서 잘 교육받은 재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아무리 나이지리아 상류사회라도 열아홉 살 때, 즉 1996년 가을, 신자유주의의 기수인 아메리카 땅에서 어찌 나름대로 고생하지 않았겠느냐만, 그래도 이 책의 <전율>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치네두’만큼이야 했겠는가. 현재는 프린스턴에서 문학을 가르치며 미국과 나이지리아를 왔다 갔다 하며 지낸다고 한다. 직장이 미국이니까 암만해도 미국에 거주하는 시간이 더 길 거 같기는 하다.
 내가 좋아하는 <아메리카나> 속에서는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이제 나이지리아로 가려는 순간 미용실에 가서 흑인들 특유의 ‘꼰 머리’를 위해 몇 시간을 헌정하는 이야기가 재미있게 나오기도 하는데, 이 책에서도 여러 편의 작품이 미국에서 생활하는 유학생, 이민자, 불법 체류자를 스케치하면서 조금은, 물론 아주 약간이지만 <아메리카나>의 장면과 겹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단편은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의 무대인 비아프라 독립의 배경이 되는 이보족 학살사건을 다루기도 하고(사적인 행위), 비아프라에서 있었던 극심한 굶주림을 짧게 언급하기도(유령) 한다. 장편을 쓰면서 수집했던 방대한 자료를 생각과 달리 작품에 다 담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데, 채택하지 못한 자료를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깝고, 중복해 같은 작품을 쓰긴 또 좀 그렇고, 하면 자료의 단편斷片으로 단편소설短篇小說 몇 개 더 쓰는 건 오히려 좋은 일 아닌가 싶다. 또 나이지리아의 지식인으로서 계속되는 독재 권력에 맞서 민주화 투쟁을 벌이는 학생, 교수들을 담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 거다. 모르긴 몰라도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을 듯한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면 더욱 그러하다. 아무리 무데뽀 독재에 복무하는 나이지리아 경찰들이라도 쉽게 건들지 못했을 터이니.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좋게’ 또는 ‘공명하며’, 라는 의미하고 달리 말 그대로 다만 그저 인상 깊게) 읽은 건 제일 마지막에 실린 <고집 센 역사가>였다. 이 단편은 놀랍게도 나이지리아, 정확하게 얘기해 그 중에서도 남동쪽에 자리한 이보족의 터전에 이제 막 도착해 세력을 넓히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의 개신교/가톨릭 선교사 시절, 그러니까 19세기 말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휙휙 속도감 있게 내달리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이건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20세기 아빠인 치누아 아체베의 영역인데 그 땅에까지 불쑥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편 한 작품에 담으려 몇 대에 걸친 대하 스토리를 과하게 축약해버리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지 않을까. 말 그대로 그런 대하를 장편으로 풀어놓아봤자 저절로 아체베의 앞선 작품들과 비교당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이고, 아체베라는 장벽을 넘어서기엔 너무 많은 품을 팔아야 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선 충분히 이해가 간다.
 무난하게 읽히는 단편들의 모음. 특별한 걸 기대하지는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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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9-23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사둔 책인제 미처 못읽고
있네요.

아디치에의 다른 책을 주말에 도서관
에서 빌려 왔는데 과연 읽을 수 있을
지 모르겠네요.

중고서점에서 도통 찾을 수가 없더라
구요. 이걸 사러 부산까지 가야 하나
핫하

전 무슨 비자 받은 이야기를 다룬 단
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말쌈 대로 장편을 위한 워밍업 정도로
보면 될 듯 싶네요.

Falstaff 2019-09-23 09:55   좋아요 1 | URL
맞아요. 비자 받으려고 미국 대사관 앞에서 줄 서있다가 에잇 쌍, 하고 포기하는 아줌마 이야기도 나오고, 재미있었습니다. ㅋㅋㅋ
 
만약 내가 진짜라면 연극과인간 중국현대희곡총서 11
사예신 지음, 장희재 옮김 / 연극과인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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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나라에나 다 있지만 유독 중국에서 ‘사회활동’을 하는데 가장 크게 영향을 준다는 것으로 ‘꽌시’라는 게 있다고 들었다. 꽌시가 뭔고 하니 한자어로 ‘관계關係’를 의미하는 바, 굳이 우리말로 하자면 ‘줄’ 또는 ‘배경’, 소위 ‘백그라운드back ground'와 비슷하다. 뭐 우리나라도 크게 다른 바 없어서 요새 밝혀진 것 가운데 꽌시가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놀랄만한 성과 하나를 대자면, 딱 두 주 연구에 참여한 고2 학생이 권위 있는 논문의 제1 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일 같은 거. 이 독후감을 쓰고 있는 시간이 2019년 9월 1일. 2019년 늦여름을 달구고 초가을마저 노랗게 물들일 거 같은 화제의 인물이 형조판서에 올랐는지, 미역국을 자셨는지 결판이 안 났지만, 그이의 따님도 부모 가운데 누군가의 ’꽌시‘가 없었다면 고등학생이 2주 만에 논문의 제1저자가 되는, 십육 세에 다른 곳도 아니고 서울법대에 입학한 당대의 수재 아빠를 닮아 천재성을 발휘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 중국에서 하찮은 장사를 하던 내 형이 말하기를, 중국에서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하다못해 자기처럼 정말 사소한 사업의 경우에도 이 꽌시가 없으면 참 힘이 든다고 했을 정도니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다.
 이 드라마 <만약 내가 진짜라면>은 한 젊은 사기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중앙의 높은 간부의 자제를 사칭하는 주인공에 접근해 꽌시를 만들려는 지방 공무원들의 구태를 희화화하고 있다. 첫 장면은 고골의 연극 <검찰관>을 관람하기 위해 빼곡하게 들어찬 극장 무대에서 단장이 등장해 연극을 시작해야 하지만 VIP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 공연을 잠시 미루게 된 것을 양해해달라고 다중의 관객에게 요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 VIP가 입장하고 바로 뒤를 이어 VVIP가 등장해 드디어 막이 오르는 순간 수 명의 공안이 객석에 들어와 문제의 VVIP이자 드라마의 주인공이자 문화혁명의 잔재인 하방 중인 지식청년이자, 한 여자를 임신시킨 리샤오장을 사기혐의로 체포해버린다. 먼저 결론을 내리고 이에 대한 과정을 보여주는 연극.
 책 뒤의 해설을 보면 작품 자체가 고골의 <감찰관>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해설을 보지 않더라도 페테르부르크에서 도착한 흘레스타코프를 감찰관으로 오해한 지역 유지들이 만드는 블랙코미디가 <감찰관>. 마치 뭔가 있는 듯 거들먹거리는 리샤오장을 중앙 권력자의 막내아들로 자기들 마음대로 단정하고 이를 굳이 부인하지 않은 채 그들이 베푸는 호의를 즐기는 청년이 흘레스타코프를 빼박았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감찰관>에 큰 빚을 지고 있는 건 확실하다. 이에 대한 예우로 사예신이 선택한 건 작품 속에서 절찬리에 공연하고 있는 연극 작품을 고골의 <감찰관>으로 정했을 것이다. 그래 리샤오장은 ‘장샤오리’라는 가명으로 기꺼이 사기꾼이 되기로 결심을 해 본격적인 사기행각에 나서는데, 이건 모두 임신한 애인 저우밍화와 결혼을 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저우밍화의 아버지가 아직도 지방 농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식청년에게 딸을 줄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어서. 어느 정도인가 하면 중국에서도 뇌물용으로 쓰거나, 북한 국무위원장의 중국방문 기념 만찬용으로나 쓰이는 최고급 마오타이 술 선물도 다시 돌려주어버렸으니 노인네 고집이 대단하긴 대단하다.
 게다가 꽌시를 만들려는 지방 공무원은 한술 더 떠, 리샤오장에게 접근해 허위서류를 만드는 법, 거짓으로 말을 만드는 법까지 리샤오장에게 훈수를 두는데, 이런 모습이 읽는 독자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었으니, 아직은 (굳이 포퍼의 의견을 따르지 않더라도) 열린사회에 진입하지 못한 20세기 중국에서 이렇게 정부 공무원들을 비난해도 극작가의 만수무강에 지장이 없을까, 라는 의문이 생겼기 때문. 그랬더니, 아니나 달라, 후반부로 접어드니 리샤오장이 자기 아빠라고 거짓말을 해댄 최고 간부 장 위원이 갑자기 베이징에서 현장을 방문해 20년 만에 지역 시의 대표 우 위원장을 만나 리샤오장의 사기행각이 백일하에 밝혀지고 급기야 앞에서처럼 체포된다. 리샤오장은 자기의 거짓 아빠 장 위원을 변호사로 위임한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되고, 그리하여 결론을 내리기를, “기회는 평등할 것이며,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진짜다. 읽어보시라. 비슷한 결론이 나온다.
 작품이 발표된 시기가 1979년 9월. 덩샤오핑이 개방정책을 펼치고 겨우 3년이 지난 시점으로 아직 문화혁명의 잔재가 완전하게 벗겨지지는 않은 정서 위에, 마음속엔 아직도 홍위병의 엄혹 살벌함이 생생했던가. 제1 저자 사예신 외 2명은 또 한 편의 재미있는 블랙코미디가 될 뻔한 작품을 결국 계몽주의적 연극으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어쩌랴, 아직 시기가 무르익지 않은 것을.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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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퇴장 주커먼 시리즈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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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선 주커먼. 필립 로스를 읽으면 어쩔 수 없이 친숙한 이름이 될 수밖에 없는 유대인 작가 영감이다. 네이선 주커먼이 미국 문단에 처음 나타났을 때는 단편소설 한 편 달랑 쓴 청년작가였다는데, 이제 로스와 함께 나이가 들다보니 일흔한 살의 유명 작가 노인네가 돼버리고 말았다. 나름대로 마음 고생 깨나 했지만, 뭐 그게 인생인 걸. 이 책은 어제 독후감을 쓴 존 벨빌의 <바다>와 더불어 책방 보관함에 몇 년 씩이나 장기 보관했던 것으로 이번에 변덕이 도져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이름으로 봐서 전형적인 유대인인 주커먼 선생은 10여 년 전 누군지도 모를 인간(들)에게 살해위협을 지속적으로 받고 견디지 못해 뉴욕에서 약 130 마일 떨어진 아테나 대학 근처의 산골, 사방 반 마일 안쪽으로는 인가 한 채 없는 완벽한 벽촌에 박혀 지낸다.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전립선 암 수술로 인한 요실금증상으로 늘 노인용 기저귀를 착용한 상태로 생활해야 하며 발기부전 증세 역시 남은 생애 동안 완벽하게 주커먼 노인을 지배할 예정이다. 70대에 이른 주커먼 선생의 인식 속에는 암만 생각해봐도 과도하게, 호조의 가능성이 조금도 없는 발기부전 증세 대한 자의식을 갖고 있다. 자의식은 책이 진행해감에 따라 더욱 심화 발전시켜 노인의 머릿속에 젊고 아름다운 등장인물과 엉뚱한 대화를 마련하게 되는데 그게 반복됨에 따라 혹시 늙은 필립 로스가 이젠 글을 좀 쉽게 쓰려고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운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다.
 책을 읽으며 <유령퇴장>을 통해 저자 필립 로스 스스로 언제 죽을지 몰라 죽기 전에 반드시 남겨야 할 작업(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을 수행하지 않았나 싶었다. 그래 독후감을 쓰기 바로 직접, 구글 검색을 해보니 <유령퇴장>이 로스의 마지막 작품은 아니었다. 이런 책은 돈 받고 팔면 안 되지. 오히려 책 찍어 놓고, 문학공부를 하는 후학들이 책을 읽어준다면 대가로 몇 푼 씩 쥐어주어야 할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건데, 이 책은 노 작가가 후학들에게, 자기 죽은 다음에 자기 생애나 작업 등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말아달라고 하는 유언 또는 당부의 글로 읽힌다. 거기다가 대강 스토리를 입히고, 로스 특유의 맛 나는 입담을 섞어 주물럭 짬뽕을 만들어놓은 거다. 로스 특유의 맛 나는 입담이 뭐냐고? 에이, 다 아시면서. 걸쭉하게 야한 이야기들.
 그동안 필립 로스의 책 다섯 권에 대하여 독후감을 썼다. <미국의 목가>, <휴먼 스테인>, <포트노이의 불평>, <죽어가는 짐승>,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한 편도 빠짐없이 재미있다고 했다. 이번에는 아니다.
 매사추세츠 주 서쪽의 시골 촌마을에 사방 반 마일 안으로는 인가 한 채 없었는데, 어느 날, 전직 변호사이자 아직도 왕성한 생활력을 자랑하는 래리 홀리스 부부가 우연히 그 ‘반 마일’ 떨어진 이웃집으로 이사를 온다. 래리는 인생을 달관하는 경지에 이르러 오직 자신 혼자의 만년을 즐기고 있는 네이선의 삶에 자주 침투해 털이 긴 고양이 한 마리, 털이 짧은 고양이 한 마리를 고양이 용품 일습과 함께 선물하기도 하지만, 하필이면 여태까지 뭐했는지 매사추세츠 시골로 이사 오고 나서 우연히 암에 걸리고 만다. 자신의 부모가 다 암으로 죽었는데 죽는 과정에서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죽기까지 남은 가족들에게는 또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잘 알고 있던 래리는 스스로 딸이 결혼하기 전날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해 자살을 해버리는데, 이 와중에도 반 마일 떨어져 살고 교류를 나눈지 얼마 되지도 않는 이웃 독신남자 늙은이 네이선에게조차 유서를 남겨 촌에 묻혀 혼자 살지 말고 될 수 있으면 다른 사람들과 교통하며 살라고 당부할 정도의 친밀한 관계 또는 오지랖을 자랑하는 남자였다.
 이에 자극을 받은 네이선은 3년 전부터 뉴스나 신문 등의 외부세계와 접촉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전립선 수술 후의 요실금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처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마운트시나이 병원 비뇨기과 돌팔이 의사에게 처치를 받기로 하고 뉴욕으로 와 인터컨티넨탈 호텔에 일주일 간 머문다. 처치에 관한 상담을 하고 병원 아래층에서 기억에 남는 외국인 억양을 쓰는 목소리를 우연히 발견하는데 그 여자를 가장 최근에 본 것이 48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누구인지 알아내 메디슨 에비뉴의 작은 식당에까지 따라간다.
 다음날 오전에 비뇨기과 처치를 받은 다음, 곧바로 요실금 증상이 없어진 듯한 마음으로 유니언 스퀘어 남쪽에 있는 헌책방 스트랜드 서점에 들러 우연히 백 달러도 안 되는 가격에 E.I. 로노프의 여섯 권짜리 단편 전집 초판본을 발견해서 산다. 집에도 한 질 있지만 뉴욕에 있는 동안 그의 작업을 연대별로 훑어보기 위해. 여섯 권을 내일 출발할 예정인 뉴욕에서 훑어본단다. (돈이 썩어난다, 썩어나.)
 다음날 예전 뉴욕 살 때 단골로 들리던 이태리 식당에 가서 밥을 먹다 4달러 50센트를 주고 산 <뉴욕 리뷰 오브 북스>를 들쳐보다가 뉴욕의 아파트와 시골집을 1년간 바꿔 살자고 제안하는 광고를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우연히’라는 단어가 마음에 안 드시나? 좋다 그럼 조금 바꿔보자. 광고를 낸 30대 부부는 공교롭게도 둘 다 작가 또는 작가지망생이라서 네이선을 보자마자 유명작가인 걸 알아보고 그의 작품 역시 데뷔작부터 최신작까지 다 읽은 상태다. 그런데 이들의 친구이자 전기 작가가 한 명 있어서 이름을 리처드 클리먼이라 한다. 클리먼은 지금 공교롭게도 어제 네이선이 헌책 전집을 산 로노프에 관해 전기를 쓰고 있다가 평소 로노프를 동경해마지않았던 네이선이 뉴욕에 도착했다는 걸 작가부부로부터 듣고 호텔에 전화하기에 이른다. 헌책방의 아르바이트 점원 가운데 한 명도 공교롭게도 클리먼의 친구였단다. 게다가 어제 병원에서 발견한 이상한 억양의 자그마한 노파가 놀랍게도 클리먼의 동거녀 에이미였다. 클리먼보다 마흔 살이나 젊은 여인이며 그의 아내 호프로 하여금 혼인관계는 유지하되 집을 나가게 만든 이.
 이런 현상을 우리는 보통 “우연의 힘”이라고 부르고 더 진지한 사람들은 “운명의 힘 La Forza del Destino”라고도 한다. 근데 불행하게도 지금 시대는 21세기.
 <유령탈출>이 2007년도 작품이며 로스는 이후에도 세 권의 책을 더 쓴다. 마지막 작품 <네메시스>까지 다 번역해 팔리고 있긴 한데, 읽지 않을 거 같다. <유령탈출>에서 이제 로스의 기력이 다 했음을 본 듯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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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9-19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모니터링했던 책이네요 :>

그런데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더라는.

그래서 예전에 썼던 리뷰를 봤네요.

그나저나 <미국을 노린 음모>는
언제나 나올 지 그것이 궁금하네요.

Falstaff 2019-09-19 15:25   좋아요 0 | URL
필립 로스가 그런 책도 썼나요?
ㅎㅎㅎ 처음 들어보는 제목입니다.

레삭매냐 2019-09-19 17:01   좋아요 1 | URL
원제는 The Plot Against America
로 2004년에 발표된 대안 역사소설
이라고 하네요.

1940년 나치주의자 찰스 린드버그가
FDR을 꺾고 미국 대통령이 되는 상
황을 그렸다고 하네요.

문둥에서 나올 예정이라는 썰이 도는
데 요원하기만 하네요.

Falstaff 2019-09-20 08:59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재미있겠습니다. 저도 은근히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