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와 과부 중국전통희곡총서 4
왕런제 지음, 김우석 옮김 / 연극과인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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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중국전통희곡총서를 읽고 있는데 네 번째 책이 왕런제의 <선비와 과부 董生與李氏>다. 해설을 보면 극작가 왕런제가 푸젠성 취안저우 출신이며 그곳이 비록 (상대적으로)작은 도시이기는 하지만 중국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예술적으로 뛰어나고 미적 감화력이 충만한 이원희梨園戱라는 지방 극종이 있다고 하며, 작중 각주를 통해 혼인 장면을 들어 무대가 이원희가 있는 취안저우의 풍습을 사용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니 이 작품도 예전 이름으로 하면 회계에서 남해까지(쉽게 얘기하자면 상하이 아래서 홍콩까지)를 중심으로 하는 천극川劇, 월극越劇, 곤극崑劇 등 남송 시절 남희南戱의 전통을 이은 창작 희곡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정도까지면 아마추어 독자, 관객 입장에서는 충분하리라 믿는다. 우리가 흔히 베이징 오페라라고 하는 경극京劇만 있는 것이 아니고 중국에선 경극 등 예전 금나라, 원나라 시절의 곡曲에 더불어 남송의 남희南戱 역시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었다는 정도.
 극작가 왕런제가 1942년 생. 1942년 생이면, 불행한 중국의 현대사 속에서 낳고 자라고 인생의 황금시대라고 불리는 청년기까지 모두 바친 중국판 따라지 세대인데 놀랍게도 전통 희곡을 계승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판소리 네 마당 말고 후대의 극작가가 있어서 계속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다. 지난번 <반금련>을 쓴 웨이밍룬도 마찬가지로 중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존경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실제로 공연도 하고 심지어 세계 각지로 활발하게 소개, 공연을 계속하기도 하니 정말 부럽다.
 <선비와 과부>는 원래 제목을 보자면 <동 선생과 (과부)이씨> 정도로 할 수 있는데, 내용 면에서는 정말로 팔구백 년 전 남송 시절에 공연했던 작품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좋은 의미에서 촌스럽고, 재미있다. 무대는 타이완을 마주보는 취안저우 지역. 중국에서 썩 높지는 않은 관직으로 원외員外라고 있었나보다. 이 관직을 하고 있던 팽씨 성을 가진 인물이 있어 팽원외彭員外라고 불렀다. 이이가 나이가 들어 귀밑머리 푼 조강지처가 숟가락을 놓자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새장가를 들었는데 상대가 젊디젊은 이씨 부인이었다. 팽 선생 본인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기를, 그건 두 여인과의 사이에 아무 씨도 퍼뜨리지 못했다는 것. 자손만 없는 것도 아니고 부모는 벌써 장사를 지냈고, 형제자매도 없어서 세상에 피붙이 하나도 남기지 못하고 팽 선생도 드디어 염라대왕의 명부에 정한 날짜가 도래해버렸다. 그래 드디어 저승에서 사자가 둘이나 도착해 소매를 잡고 올라가자고 조르는 터. 팽 선생 생각하기를, 자기가 저승 가는 건 나이 든 필멸의 존재라 당연하지만 새파란 이씨 혼자 두고 명을 다하면 틀림없이 이씨가 개가할 것이라는 걱정이 대단한 거다. 그래 다 죽어가는 팽 선생의 머리에 떠오른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 하나 있었으니 그 인간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자, 동네 서당의 훈장이자, 천명, 대인, 성인의 말씀을 경외하는 것도 모자라 여인마저도 경외(공경하여 두려워)하여 사외四畏라고 칭하는 동 선생, 이름하여 동사외董四畏였다.
 그래 저승사자에게 은 백 냥을 뇌물로 주고 십 분의 시간을 벌어 동사외를 불러 당부하기를, 생전에 자네가 내게 빈 은 열 냥, 이자까지 합해서 스무 냥을 없는 것으로 하고, 대신 자기가 죽으면 과부 신세를 면치 못할 이씨가 외간남자와 연애를 하는지 잘 감시하고, 만일 그럴 경우 꼭 둘 사이를 파투를 내야하며, 조사 결과를 매달 한 번씩 자기 묘에 와서 보고를 해달라고 한 다음에야 영혼이 몸을 떠난다. 그리하여 드디어 우리의 동 훈장이 이씨가 나설 때마다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하는데, 아이고,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여기까지 쓰고, 양해해주시라, 오늘이 한가위 날이다. 따뜻하게 데운 백화수복 700cc 마시고 와서 좀 알딸딸....)


 공통의 현상이 벌어지는데, 그게 무엇인가 하면, 견물생심見物生心. 눈으로 보면 마음이 생긴다는 뜻. 노총각 동 훈장은 자기도 모르는 새 이씨 부인에 대해 은근한 집착이 생기고, 이씨 부인 역시 동 훈장의 글 읽는 소리만 듣고도 예전 진로소주 CF 가사처럼 ‘온 몸이 짜르르르....’의 경지에 다가서니 어찌 인간의 힘으로 교통사고를 막으리오. 근데 이게 사대부 동씨 집안에선 가비얍게 볼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고, 이미 구천의 귀신이 됐다한들 어찌 한 순간이라도 매끈매끈하고 포동포동한 이씨의 살결을 잊을 수 있을까, 팽 원외 두 양반들의 뜻에 어긋나기는 하지만, 어떻게 하나, 그놈의 육체가 원하는 걸. 그렇지? 아시지?
 어떻게 되는지는 중국의 전통희곡을 읽어보신 분은 충분히 짐작하실 수 있을 터, 굳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다들 이해하실 듯. “안 알려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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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19-10-01 15: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자람 소리꾼이 브레히트 희곡을 판소리로 개작한 ‘억척가’, ‘사천가’, 김애란 소설 ‘노크하지 않는 집’을 판소리로 만든 ‘여보세요’가 있어 참고하십사 말씀드립니다.
http://m.hankookilbo.com/News/ReadAMP/201108171146250395?did=GS
http://m.kyeongin.com/view.php?key=20171106010001536#rs

Falstaff 2019-10-01 15:03   좋아요 1 | URL
아, 그렇습니까.
참 반가운 소식입니다.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자주 공연해주기 바랍니다.
 

 

 7월부터 9월까지 세 달 동안 읽은 책이 모두 60권, 55종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제 마음에 들어 추천하고 싶은 열다섯 작품을 소개합니다. 언제나와 같이 책을 추천하는 일은 좀 난처합니다. 작가들은 나름대로 진심을 다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겠지만 그것이 독자라는 필터를 거치면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전혀 모르는 일일 겁니다. 저도 독자의 한 명인데, 문제는 제 속의 필터가 과연 공정한 것인지 의문이 들어서 생깁니다. 그러니 사실 감히 ‘추천’이란 말 대신에 제가 읽기에 좋았더라, 라고 하면서 책을 소개한다 해야 정확합니다. 뭐가 어쨌든 간에 서론이 길면 재미없는 법, 곧바로 추천이건 소개건 일단 시작합니다. 순서는 제가 책을 읽은 날짜순입니다.



1. 천상병, <천상병 시선>

 가난이 직업인 시인. 평생 혼자였으나 결코 외롭지 않았던 이. 보살펴주는 아내가 있고, 술값을 찔러주는 동무들이 있고, 동네 아이들이 함부로 할아버지라 불러주니 어찌 외로울 새가 있었을까. 그러나 행성에서 뚝 떨어진 외계인이 아닌 이상 이이에게도 생활이 있고 삶의 곤고함이 있었을 터. 굳이 그것을 에둘러, 그래도 세상 한 평생, 소풍 나와 잘 먹고 잘 살다 가노라 한 번 히쭉 웃는 시어들이 어찌 사람의 마음을 이리 헤집어 놓는지.



2. 톰 울프, <허영의 불꽃>

 

 진짜 미국소설. 또 하나의 <An American Tragedy>. 연 수입 백만 달러 이상 벌어들이는 와스프 출신의 채권전문 엘리트 셔먼 맥코이. 뉴욕에 거주하는 최상류층 백인과, 변두리 지역의 범죄가 만연한 흑인공동체 사이에 공평하게 나누어가진 것은 오직 하나, 흑백과 관계없이, 빈부와 상관없이 다가오는 지방선거에 한 명이 딱 한 표씩의 투표권밖에 행사할 수 없다는 것. 바람 한 번 잘못 피웠다가 자기 잘못 하나 없이 완전한 몰락으로 걸어 들어가는 남자의 미국식 비극. 민주주의는 결코 최선의 정치체제가 아니다.



3. 잉고 슐츠, <심플 스토리>

 

 그간 많이 다루어 식상한 점은 있으나 작가가 잉고 슐체라면, 동서독으로 나뉘어 다른 삶을 살아야 했던 가족 이야기라도 늘 참신하다. 29개의 단편斷片들이 각기 뒤죽박죽 섞여 있다가 나중에 보면 모든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소통을 하는 구조. 그 사이에 시간은 훌쩍 24년이 지나가버리니 이젠 동서와 세대 간 이격 또는 불통 내지는 소통을 이룬다. 이야기가 하도 다양해 책을 읽다가 잠깐 정신 줄 놓으면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하니 매사 불여튼튼, 조심해서 읽어보셔야 마땅할 것.



4.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아디치에가 아체베의 21세기의 딸인 것을 증명한 역작. 나이지리아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었던 비아프라 공화국을 건국부터 역사상 유래가 거의 없던 기근을 거쳐 항복할 때까지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의 시선으로 서술한 기록. 아체베도 비아프라 공화국의 외교관으로 활약한 전력이 있었으나, 나이지리아의 거의 모든 국부를 차지하는 유전지대를 깔고 앉은 이보 족의 나라를 다른 부족들은 애초에 인정할 수 없었을 터. 종족간의 권력투쟁에 멍드느니 가난한 인민들뿐이다.



5.정영문, <어떤 작위의 세계>

 

 소설이 꼭 스토리가 있어야 하고 그럴듯한 반전이 있어야 하며 심금을 울리는 문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아니다. 그저 기회가 생겨 일 년 동안 캘리포니아와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할 기회가 생겨 5년 전에 헤어진 여자친구와, 5년 전에 헤어진 여자친구와 같이 살고 있는 현재 남자친구와 함께 사막지대에서 용설란에 총을 쏘아댄 경험,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서 태평양을 향해 투신하지 못한 일을 건조한 문장으로 써놓아도 소설이 된다. 신랄하게 파헤친 심리상태 하나만 가지고도.



6. 토마스 하디, <캐스터브리지의 시장>

 

 영국의 국가대표 이야기꾼 토마스 하디의 작품이면 일단 재미 하나는 보장한다. 영국 특유의 미풍양속인지 모르나 한 젊은 가장이 술김에 처자식을 5파운드 5실링 받고 낯선 남자에게 팔아넘기고는 술이 깨자 여태 살아온 세월만큼 앞으로 술을 마시지 않을 것을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하고, 진짜 서약대로 성실하게 살아낸 결과 캐스터브리지라는 작은 도시 또는 읍 정도에서 시장/읍장을 지낸다. 이야기가 재미있어지려니까 어느 날 문득 저 먼 과거에 자신이 팔아넘긴 처자식임을 주장하는 모녀가 등장해 우여곡절이 벌어지는데, 하디의 소설은 백 번 이야기를 들어봤자 아무 소용없다. 그냥 읽어봐야 안다.



7. 하인리히 뵐, <천사는 침묵했다>

 

 작가 스스로 독일 병정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패전을 경험한 인물. 그의 작품은 전후 완전히 폐허가 된 독일, 특히 자신의 고향인 쾰른 지역을 무대로 할 일도, 먹을거리도, 집도 없는 황폐한 도시, 퀭한 눈의 도시인들을 그려낸다. 생명 종種은 환경이 열악해질수록 자신의 유전자를 많이 남기고 싶어 하는 법이라 번식의 방식으로 사랑을 갈구하기도 한다. 독일인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트라우마가 전후 폐허 시기라 뵐의 사후에 출간을 했다 하는데, 이 책이 더 와 닿는 것은 쓸쓸한 문장들이 서로 얽혀, 말 그대로 심금을 울리기 때문이다.



8. 레이날도 아레나스, <현란한 세상>

 

 세르바도 테레사 데 미에르라는 멕시코의 18세기 수사의 일생에 관한 소설. 멕시코의 수호성인인 과달루페 성녀 이야기가 말짱 거짓말임을 주장하다 멕시코,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 미국, 쿠바 등 세상의 온갖 구석에 있는 감옥 구경은 다 해본 풍운아. 작가의 의도는 세상에 정확한 역사라는 것이 어디 있는가 하는 의문을 데 미에르 수사를 내세워 과장, 풍자, 그로테스크 등 온갖 재미난 장치를 섞어 장난스럽게 써놓은 것. 이런 건 피카레스크 소설이라고 하기에도 좀 그런데, 그까짓 장르 구분이야 해 뭐하나, 재미있으면 장땡이지.



9. 아시아 제바르, <사랑, 판타지아>

 

 1830년 프랑스의 알제 침공으로 시작해 1962년 독립을 이룰 때까지 130여 년간 대 프랑스 해방투쟁을 기록한 책. 알제리는 부족 대표 대여섯 명이 모든 국권을 이양한다는 문서에 서명을 함으로서 유럽의 작위를 얻는 대신 나라를 통째로 들어 바치지 않았다. 한 도시, 한 도시 처절하게 함락당해 마지막 한 성城이 무너질 때까지 여자들조차 손톱으로 침략자의 심장을 후벼 파 꺼내들며 투쟁했으며, 극강의 전력을 가진 세계대전 승전국을 상대로 보잘 것 없이 무장한 채 무수한 사상자를 낸 전투를 통해 해방이란 열매를 따 냈던 것. 이런 알제리의 근대사가 얼마나 부러웠던지. 그러면서도 작가 제바르는 바로 그 적의 언어로 문학을 해야 하는 진퇴유곡의 상황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까.



10. 제임스 미치너, <소설>

 

 미치너가 84세 때 쓴 작품. 작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의 입장에서 각 일인칭 시점으로 한 편의 소설이 탄생해 그것을 평가하고 읽는 행위 또는 의미에 관해 썼는데, 기본적으로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소설을 생산하고 평가하고 읽는 방식의 변화 또는 진화에 관한 숙고라고 읽을 수 있으리라. 이리 써 놓으면 딱딱한 설명조 같지만, 천만의 말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이 자신들의 입장에서 타당한 방식으로, 그러나 당연히 모두 조금씩의 오류를 포함하면서 소설을 쓰고, 평가하고 읽는 행위가 이리도 다양할 줄이야. 정말 재미있다.



11. 이사벨 아옌데, <세피아 빛 초상>

 

 아옌데의 삼부작 가운데 시기적으로는 가장 마지막에 쓴 작품이지만, 내용으로 보면 두 번째에 해당하는 이야기. 라틴 아메리카의 대표적 이야기꾼이 전작 <운명의 딸>의 후일담을 풀어 놓았다. 무대는 샌프란시스코의 대저택과 차이나타운. 전작에서 호감을 갖지 않을 수 없는 현명한 중국인 차오 티안의 손녀 아우로라, 중국식 이름으로 리밍黎明이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실로 파란만장한 이주민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어차피 아옌데를 읽으려면 그녀의 삼부작을 모두 읽어야 마땅하니 <운명의 딸>, <세피아 빛 초상>, <영혼의 집>을 사 읽는데 인색하지 마시라.



12. 프랜크 노리스, <맥티규>

 

 이런 말이 가능하다면 미국 판 에밀 졸라가 프랭크 노리스다. 겨우 32세에 복막염으로 짧은 생을 마감해서 아쉬운 바 작지 않다. 미국 특유의 빈부, 흑백, 지역 갈등 문제의 사실주의적 탐구는 노리스로부터 새로운 장을 맞을 뻔했다. 소위 야매 치과의사로 중산층 정도의 삶을 살기 시작한 거구의 맥티그 앞에 아름다운 아가씨와 결혼하는 행운과, 그것도 모자라 거액의 복권에 당첨되는데, 그러면 행복할 거 같지? 행운 뒤에 폭주하는 한 인간의 야성이 돌출되고, 비열한이 끔찍한 질투를 시작하여 끝내 커다란 비극을 향해 질주하는 모습이라니. 노리스의 명이 짧았던 것이 아쉬울 지경. 다만, 하루 빨리 새로운 번역본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13. 이디스 워튼, <이선 프롬>

 

 다시는 이디스 워튼을 읽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가, 미국 문학사상 높이 평가받아야 할 네 명 가운데 하나로 꼽는 바람에 딱 한 권만 더 읽겠다고 작정해 골랐다가, 심봤다. 엄마의 오랜 병구완 끝에 집에 오게 된 먼 친척, 일곱 살 많은 지나 누나와, 어머니가 죽자마자 결혼한 후엔 덜커덕 이번엔 아내 지나가 병에 걸려, 그녀의 병구완을 위해 아내 쪽의 또 다른 사고무친의 친척, 젊은 아가씨 매티가 오게 되는데, 이런 구조에 벌써 심각한, 그러나 누구 하나 내놓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관계의 얽힘을 포함하고 있는 건 말 안 해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리 간단하게 끝나지 않으니 결국 마지막 페이지, 에필로그까지 읽어야 이 작품을 상찬하는 이유가 드러나니, 그걸 가르쳐드릴 수는 없지, 암.



14. 루쥔 작, 왕레이 정리, <여름의 기억>

 

 중국의 대표적인 현대 희곡이라고 하고 싶은데, 내가 워낙 아는 것이 짧아서 그게 좀 그렇다. 광저우에 돈 벌러 농장을 떠난 남편은 거기서 돈은 왕창 벌지만 젊고 예쁜 아가씨와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는 바람에 이혼을 하고 싶다. 그러나 아내는 요령부득, 절대로 도장 못 찍어준다니 머리를 굴리기를, 젊은 사내를 농장 일꾼으로 들여서 아내와 관계를 맺는 순간 들이닥쳐 이혼을 강요하려는 꾀는 낸다. 세상 일이 자기 마음대로 돼? 그럼 그게 인생살이야? 설마 현대 연극, 희곡을 이런 내용으로만 이해하려는 건 아니겠지. 극 중 최대 전환점이 되는 검정말의 출산 장면과 이에 이어지는 인간들의 맺음이라니.



15. 디어도어 드라이저, <미국의 비극>

 

 미국이라는 나라의 비극이 아니라, 빈부와 계급의 차이가 인간의 차이로 대변되던 1910년대  미주리, 일리노어, 뉴욕 주에서 벌어진 미국 식 비극. 가난한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났으나 최고급 호텔의 보이로 취직하면서 자신도 고급 호텔을 드나드는 상류계급에 진입하겠다는 청운의 꿈을 꾸는, 몽상적이고 생각이 깊지 않고, 참을성 없고, 이기적인 잘 생긴 미남 청년이 커다란 부자가 된 큰아버지의 초대로 공장의 작은 부서장이 되면서 사건은 벌어진다. 독일인의 후예답게 시어도어 드라이저는 마치 벽돌 탑을 올리듯 단단한 구조를 만들어 장황한 설명에 현대의 독자를 질리게 만들었을 수도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비극>은 명작이다. 내용은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영화 <젊은이의 양지>를 참조하시면 될 듯. 이 작품 역시 새롭게 번역한 책이 어서 나왔으면 하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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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09-30 1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 한 권 읽은 건 없지만 저의 빈약한 독서에 큰 동기부여가 되네요. 이디스 워튼을 읽는다면 <이선 프롬>을 꼭 기억하겠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19-09-30 12:40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주변에 대학에서 영어 선생하는 분들이 꽤 있는데, 공통점이 워튼을 상찬하더라고요. 전 <이선 프롬> 말고는 도무지 아니던데요. 아마 뭔가 있는 작가인 모양입니다. ^^;;

설해목 2019-09-30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놔~~~ 읽은 게 단 한권도 없어 혼자 퇴근길에 좌절했습니다. ㅜㅜ
그래도 한 권은 겹칠 줄 알았는데...
우선 추천해주신 책은 모두 장바구니로 고고 ^^

Falstaff 2019-09-30 22:04   좋아요 1 | URL
에휴, 설해목 님은 워낙 책을 다양하게 읽으시잖아요.
저야말로 잡독 itself 인 것을요. ^^;;
<맥티규>가 인상깊었는데요, 번역이 참 좋지 않아요.
아, 번역이 아니라 번역한 우리 말의 품질이 안 좋습니다.
다른 출판사가 다시 번역할 때까지 <미국의 비극>과 더불어 좀 기다리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slobe00 2019-09-30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치너, 아옌데, 워튼 빼고는 전부 안 읽은 책들이라 주섬주섬 담아봅니다~~~~잉고 슐체부터 읽어보고 싶네요^^
도서관 가서 책 고를 때 폴스타프 님의 추천 페이퍼 많이 참고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저는 워튼은 거의 다 재미있었고 하디가 살짝 지루했는데
캐스터브리지의 시장은 땡기네요~~^^

Falstaff 2019-09-30 22:05   좋아요 1 | URL
저도 워튼은 무지 안 좋아했어요. 근데 미치너 <소설> 속에서 아주 상찬을 하더라고요. 그래 뭔가 있겠지 싶어서 딱 한 권만 더 읽고 이 이상은 안 속는다, 셈치고 읽었더니 <이선 프롬>은 괜찮더라고요. ㅋㅋㅋㅋ
 
아일린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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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오테사 모시페그는 도대체 어떤 여자일까. 특이한 이름이고 성姓이라 위키피디아 검색을 해보았더니 크로아티아 출신 어머니와, 이란 태생의 유대인 아버지 사이에서 출생했단다. 설마 이름만 특별해서 영어로 된 위키피디아까지 검색을 해 침침한 눈을 부비면서 읽어봤을까. 이이의 첫 장편소설이라는 <아일린>을 읽으면서 내내 문장을 참 ‘감각적’으로 쓴다는 생각을 멈추지 못했다. 소설은 2010년대의 어느 날, 1964년에 스물네 살이었던 70대 노파가 저 먼 먼 옛날, 극동의 작은 나라의 수도 서울에서는 포장마차에서 낯선 두 남자가 우연히 만나 술잔을 기울이던 그해 겨울의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을 골라 자신이 낳고 24년 동안 자란 뉴잉글랜드의 X빌을 떠난 한 주일 동안을 회상한다.
 겨울만 되면 살벌하게 추웠던 소도시. 겨울동안 눈이 내려 일 미터 가까이 쌓이고 모든 집 앞마당에 견고하게 다져진 눈 위에 다시 또 눈이 쏟아지던 X빌. 아일린의 집에는 현관 처마에 두꺼운 고드름이 달려 있었는데 그것을 올려다볼 때마다 깨진 고드름이 자기 가슴을 뚫고 들어가거나, 총알처럼 어깨의 두꺼운 연골을 저미거나, 뇌를 조각조각 가르는 상상을 하며 살았다. 중증 알코올 중독증에 시달리는 아버지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죽을 확률이 높고, 계속 마시면 확실하게 죽을 것이란 판정을 받았으며, 이미 알코올성 치매증상이 심각한 수준에까지 이른 것을 독자는 눈치 챌 수 있다. 아일린의 유일한 동거인인 아버지는 하루에 약 1.5 리터의 진gin을 섭취하지 않아 혈중 알코올 농도가 정상인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지면 대단히 조급해지고 격하게 화를 내며 아일린이 자신의 무릎을 붙들고 잘못했노라 사정할 때까지 딸을 비난하곤 한다. 엄마가 죽음의 침상에서 지르는 비명소리를 피해 삼층 지붕 밑 다락방으로 거처를 옮긴 후 그대로 거기서 지내고 있는 아일린.
 흠집투성이 닷지 트럭을 몰고 다니지만 배기관 고장으로 창문을 올리고 십 분 이상 운전하면 당장 일산화탄소 중독증상으로 두통과 졸음을 피하지 못해 12월 말의 혹한일지라도, 방금 감은 머리카락이 아직 제대로 마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얼굴을 베 버릴 것 같은 바람을 맞으며 직장인 소년 교도소로 출퇴근을 해야 한다. 거의 청소를 하지 않는 집은 설거지 하지 않은 그릇과 술병, 먼지는 물론이고 온갖 오물과 담뱃재로 뒤덮여 있고, 처마에 두껍고 무거운 고드름이 달린 X빌의 유일한 집인 것도 모자라, 겨울이라 목욕을 거의 하지 않는 아일린은 스스로의 몸에서 풍길지도 모르는 냄새에 모든 감각이 곤두서 있으며, 심지어 닷지 트럭의 조수석 사물함에는 죽은 쥐도 한 마리 빳빳하게 얼어붙어 있다.
 직장인 소년교도소에서 아무도 아일린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지만 교도관 랜디의 잘생긴 얼굴과 두둑한 사타구니를 바라보는데 재미를 들렸고, 어느덧 자신이 랜디를 사랑하고 있다고 단정해 랜디의 집 주위에 닷지 트럭을 세워두고 불 켜진, 혹은 불 꺼진 랜디의 창문을 바라보는 일에 열중하기도 한다. 그러나 랜디 역시 적어도 책에서는 아일린에게 말 한 마디 붙이지 않고, 아일린은 직장에서 온화한 탄력의 분위기를 유지한 채 얼굴을 이완한 표정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는데, 그 모습을 아일린은 자신의 데스마스크라고 단정한다. 마치 공공도서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링컨, 베토벤, 아이작 뉴턴 경 같은 인물의 사후 얼굴을 본뜬 석고상처럼.
 이렇게 집에서, 지역사회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루저loser로 살아가는 조그만 체구에 깡마른 아일린에게는 아무것도 중요한 것이 없다. 그에게 걱정은 쓸모없고, 이유를 묻는 것은 부질없으며, 도우려는 시도는 자살행위라는 분명한 자각이 생긴 것도 자연스럽고, 지긋지긋한 집구석에서, 곧 죽을 것이 뻔한 아버지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음울한 분위기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직장인 소년교도소에서, 지독하게 추운 X빌에서 탈출해 거대도시 뉴욕의 삶을 꿈꾸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때는 1964년. 미국이라도 스물네 살의 미혼이면 노처녀였으며, 거기다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게 여전히 숫처녀 상태를 유지하는, 아버지 말마따나 먼지 같은 여자 아일린.
 크리스마스가 든 월요일에 소년교도소에는 하버드를 나온 교육전문가 리베카 세인트존이 새로 발령받아 들어오고, 아일린은 갑자기 생리가 터져 1960년대 미국 교도소의 화장실에서 쓰던 갈색의 거친 화장지를 둘둘 말아 퇴근해 집에 돌아갈 때까지 임시대응을 한다. 그러나 누가 알았을까. 하버드를 졸업한 재원 리베카가 자신에게 접근해 난생 처음 누구로부터 ‘친구’라는 호칭을 받게 될지. 리베카가 만들어준 기회를 잡아 꿈에도 그리던 X빌에서의 탈출을 성공하게 될지.
 여기서부터 내 발언은 조심스럽다. 리베카가 등장하면서 사건은 급반전하여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닫게 되는데 그게 불만이다. 작가 오테사 모시페그의 문장이 담고 있는 감각적 섬세함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소설이 될 수 있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굳이 작품을 위에서 말한 ‘특별한 사건’에 연루시켜야 하며, 그것도 ‘극적’ 상황을 만들어야 했을까. 한 단락을 읽을 때마다 의미심장한 문장들에 감동을 하며 조용히 파동 없는, 그게 좀 섭섭하면 잔잔한 소란 속에서 작품 읽기를 마감했으면 어땠을까가 궁금하다. 충분히 감동하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수 있는 소설을, 물론 전적으로 아마추어 독자의 의견이지만, 할리우드 영화로 만들어버리고 만 것이 참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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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9-27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봄에 읽다만 책이네요...

아마 교도소에 리베카가 등장하는
장면까지 읽었던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띄우는 작가처럼 보이는
데, 일단 다 읽어봐야지 싶습니다.

첨언으로 미국 영화산업에서는 좀
갠춘하다 싶은 이야기들은 모조리
영화로 만들어 버리는 경향이 보이
네요.

Falstaff 2019-09-27 09:57   좋아요 1 | URL
ㅎㅎㅎ
마지막 갈등과 절정 부분이 마치 할리우드 영화 비슷하다는 취지였습니다.
에휴, 제가 글이 짧아서... 죄송합니다. ㅜㅜ

잠자냥 2019-09-27 10: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는 그렇게 쌓아올린 이야기들이 그 사건으로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싶어서 놀라웠는데, 폴스타프 님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어요. 암튼 아일린이라는 인물은 물론 그 척박한 환경, 심리 묘사 등은 절대 안 잊힐 것 같습니다. ㅎㅎ

Falstaff 2019-09-27 11:26   좋아요 1 | URL
책이야 뭐, 사서 읽는 독자 마음이지요. ㅋㅋㅋ
이 책은 정말 첫 장부터 시작해서 어찌 그리 섬세하고 시니컬하게, 툭툭 던지듯이 마음을 헤치는지 깜짝 놀라게 되더라고요. 문장 자체에 깊이 빠져 오히려 내용의 격렬함에 반감이 들었던 거 같습니다. ^^

coolcat329 2019-09-27 1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마지막 절정에서 어떤 느낌이셨는지 이해갑니다. 저도 영화같은 설정에 살짝 뜬금없다 생각이 들었거든요. 워낙 아일린이란 인물이 독특하고 강렬한데, 그런 인물의 심리묘사가 너무 뛰어나 희석이 되더라구요.

Falstaff 2019-09-27 13:55   좋아요 1 | URL
ㅎㅎㅎ 비슷한 생각을 하셨다니 기쁩니다.
정말 매력적인 캘릭터입니다. 좀 과하게 지저분하긴 하지만요. ㅋㅋㅋ
근데 모시페그의 문장들이 참 매혹적이지 않나요. 깜놀이더랍니다.
 
오에 겐자부로 - 사육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1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승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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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가 2014년 스스로 선정한 대표 단편 스물세 편을 골라 <오에 겐자부로 자선단편>이란 책을 내, 이것을 현대문학사가 한글로 번역 출판한 책.
 겐자부로는 자신의 작업을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각 8편, 11편, 4편을 담았다. 본문만 710 페이지에 이르는 두꺼운 책인데, 이 가운데 오직 하나, 초기작 18쪽 분량의 <돌연한 벙어리> 한 편만 3인칭 시점으로 썼을 뿐, 나머지 스물두 편은 전부 일인칭 소설이다. 3인칭 소설도 그의 고향 시코쿠 산골을 무대로 패전 후 갑자기 들이닥친 미군병사 몇 명과 위압적인 통역관을 바라보는 소년의 시각이다. 그나마 그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읽어온 독자들은 겐자부로의 아버지가 작가가 소년시절에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비록 죽음의 방법은 다를지언정 ‘소년’의 아버지의 죽음이 스토리의 전환점이 되는 바, 거의 일인칭 소설 비슷하게 읽힐 것이다.
 일련의 작품 가운데 신선하게 읽은 것은 초기, 그러니까 등장인물이 도쿄대학 불문과에 진학하여 도쿄대 의과대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겪었던 일화를 다룬 작품들이었다. 그 외의 단편들을 둘러싸고 있는 배경은 이미 작가의 다른 장편소설을 통해서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이라 그리 신선하지는 않았다. 오에 겐자부로의 번역본을 다 읽어본 건 아니지만, 내가 읽은 겐자부로 안에서 이야기하자면 그의 작품은 크게, ① 아버지의 죽음, ② 고향 시코쿠 근방에 있었던 민란民亂, 그리고 ③ 뇌 헤르메스로 태어난 줄 알았지만 수술을 통해 생명을 구한 지적장애인 아들 히카리와 관련한 삶의 고단함 정도로 거칠게 셋으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직접 고른 평생의 단편 작업 스물세 편에는 ①과 ②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아무리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라도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아무래도 실제 삶의 곁에 늘 있어서 쉴 새 없이 자신에게 간섭해 온 지적장애 아들에 관한 것이 가장 컸으리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큰아들 히카리 또는 이요(히카리의 애칭)가 등장하는 작품이 전체 710쪽 가운데 482쪽, 편수로 23편 중에서 16편에 이른다는 점. 그의 초기 장편 <개인적인 체험>에서 뇌 헤르메스가 거의 틀림없다고 착각한 ‘나’가 방황하며 옛 연인에게 의지해 위스키와 수면제 두 알을 상습적으로 먹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바로 옛 연인, 연인이 아니더라도 전에 접촉을 해본 적이 있는 그 여자가 단편집에서도 몇 번 등장하는데, 놀랍게도 반은 한국인의 피가 흐르며 독일에 살면서 일본에 대학을 다니러 체류하는 설정이다. 초기작으로 분류한 것들 가운데 마지막 작품인 <공중 괴물 아구이>에서 시작해 마지막까지 모든 작품이 다 주제로 다루지는 않았더라도 지적장애를 갖고 태어나, 사춘기를 거쳐, 청년기, 장년기까지 온 아들이 매우 중요한 기재로 작용한다. 중기 작품 가운데 두 단편으로 구성한 <조용한 생활>의 경우만 유일하게 작가의 딸이자 히카리의 여동생 시각의 일인칭 소설인데, 그것도 포함하여 전편에 걸쳐 작가에게 또는 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 히카리의 남은 생을 책임지는가 하는 두려움인 듯 보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과한 사소설 경향이, 그래서 좀 질린다는 뜻.
 이 책을 읽어보실 분은, 방금 얘기했듯 조금 질리는 면이 있긴 하지만 오에 겐자부로를 알기 위한 좋은 기획이란 점에 적극 동의하는데, 이 책은 맬컴 라우리의 소설과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먼저 읽은 다음에 손에 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다행히 라우리의 <화산 아래서>를 읽었고, 불행히 블레이크의 시는 단 한 수도 읊어본 적 없어서 그나마 50점은 됐다. 중기 작품들엔 이 두 작가를 자주 인용하는 바람에 내 경우엔 블레이크 시만 나오면 멀미가 나는 증세를 멈추지 못했다.
 책에 좋은 말들이 많이 나온다. 아시다시피 오에 겐자부로는 평생 반핵운동과 반독재 주장을 펼친 일본의 대표 양심적 지식인이어서, 비록 그가 직접적으로 반핵, 반독재를 주제로 한 작품을 썼는지 안 썼는지는 몰라도 작품 속에는 분명하게 그의 생각을 밝히길 주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런 표현을 보자.
 “‘광기’ 없이는 위대한 사업은 이룰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광기’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업은 반드시 황폐함과 희생을 동반합니다. 진실로 위대한 사업은 인간이란 ‘광기’에 사로잡히기 쉬운 존재임을 남보다 깊이 자각한 인간적인 사람에 의해 성실하고 집요하며 착실하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류의 불행한 역사는 모두 이 ‘광기’에 의하여 저질러졌지 않은가. 20세기의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도,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도, 제3제국에서 자행된 폭압과 전제정권도, 소비에트와 주변국의 절대 권력도.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아무리 위대한 작가라 할지라도 나날이 늙어 허약해지는 가장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게 인간의 진짜 모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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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낯섦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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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덟 번째 읽은 오르한 파묵의 장편소설. 표지부터 본문까지만 635쪽. 그런데 주목할 것은 민음사답지 않게 한 페이지 당 37자, 28행의 촘촘한, 즉 경제적인 편집을 단행해서 우리가 흔히 읽는 30자 전후, 23행의 책들과 비교해 진도가 무지하게 안 나가는 것처럼 느낀다. 난 이런 책 무지 좋아한다. 글씨가 빽빽하게 차 있는 거.
 1970년대 초반까지도 내가 살던 서울 성북구의 어느 골목에선 날씨가 쌀쌀한 긴 겨울밤이면 “메밀묵 사려어어어어, 찹쌀 떠억!”하는 호객소리가 자주 들리곤 했다. 이 외침은 사실 악보로 표시해놓아야 진짜 맛을 알 텐데, ‘메밀묵’은 4분 음표로 미솔솔, ‘사려어어어어’는 잇단음표로 4분 음표 솔솔(사려)로 시작해서 절묘한 카덴차가 잇단음표로 (높은 솔 너머까지) 한 마디쯤 이어지고 다시 낮게 ‘찹쌀’ 4분 음표 미파, ‘떡’ 낮은 솔 한 마디 정도로 짧지만 굉장한 코다로 마감했다. 고 기억한다. 어린 나는 당연히 단 찹쌀떡을 하나 먹었으면 했으나, 할머니는 노상 술을 좋아하시던 이주사를 위해 메밀묵만 한두 모 사서 김치 송송 썰어 넣고 맛있게 양념해 술상을 보셨던 건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생각만 했는데도 불구하고 옛 입맛이 떠올라 입에 침이 다 고인다. 당시 성북구라는 동네는, 물론 아닌 곳도 있었지만 주로 농촌붕괴로 인한 도시화 대열에 휩쓸린 사람들이 많이 살아 불법 주택이 판을 치는 가난한 동네로 치부되고는 했었다. 그럴 만한 것이 당시 ‘국민학교’ 한 학급에 약 80명을 때려 넣고도 오전, 오후반으로 나누어 가르쳤으니 전봇대마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표어가 나붙은 것도 이해는 간다. 둘째 아들 부부였던 이주사와 정여사는 긴 대가족 생활에서 60년대 말에 독립해 나오며 상대적으로 집값이 싼 성북구로 이사를 했다. 왜 이렇게 서론이 긴가 하면, 이 책의 주인공 메블루트가 중앙 아나톨리아 지역의 시골에서 열두 살 청운의 꿈을 안고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로 옮겨오는 시기가 1969년이라 시기도 비슷하고 도시화 현상도 비슷하기 때문이며, 메블루트의 평생에 걸쳐 자기 말에 의하면 운명의 날이 올 때까지 먹고 살기로 결정한 직업이 추운 시기의 밤에, 기장을 발효시켜 걸쭉하고 좋은 향기가 나며 짙은 노란색에 약간의 알코올기가 있는 전통 음료인 ‘보자’ 행상이었으며, 어둔 밤에 보자 장수가 지나간다는 걸 알리기 위해 “보오자아아”하고 청승스런 목소리로 외치고 다녔다고 하기 때문이다. 어째 좀 그럴듯하지?
 예전 터키엔 일반 백성들은 성姓이 없었다. 파묵의 책에 보면 자주 나온다. 케말 파샤가 등장한 다음에 가족들은 무조건 성을 정해야 한다고 법령을 내려서 이제 하나 만들어보려는 형제가 있었다. 형이 먼저, ‘악타쉬’ 즉 ‘흰돌’로 정했다. 그럼 아우도 당연히 악타쉬가 되어야 하는 것이었지만, 아우가 성격은 착한데 이상하게 고집을 부려 자기는 ‘카라타쉬’ 즉 ‘검은 돌’로 해야겠다고 우겨서 결국 형제가 다른 성을 갖게 된다. 이 형제들은 1963년에 아나톨리아에서 이스탄불로 옮겨와 요구르트 장수를 했는데, 형인 하산은 가솔들을 다 이끌고 이주했고, 동생 무스타파는 자신만 와서 번 돈의 일부를 고향에 보내다가 겨우 아들 메블루트 한 명만 이스탄불로 불렀다.
 또 한 가족이 있다. 남자 이름이 좀 길다. 보이누에으리 압두르라흐만 에펜디. 여기서 ‘에펜디’는 나이든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로 굳이 우리말로 하면 ‘어른’ 정도랄까. 압두르라흐만은 1933년 생. 아내 페브지예와의 사이에 딸 셋을 두고 살다가 드디어 마지막에 아들을 하나 낳았으나, 출산 중에 아내와 아들이 동시에 죽고 만다. 이이는 젊어서 이스탄불에 가 요구르트 행상을 하다가 행상지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어깨와 목뼈에 이상이 생기는 바람에 다시 시골로 내려간 인물로, 다행이 아내가 남긴 딸 셋이 전부 빼어난 인물을 가진지라 딸을 결혼시키면서 두둑하게 대가를 받아 남은 생을 좀 편하게 지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었다. 딸의 이름이 순서대로 웨디하, 라이하, 사미하. 이 가운데 막내 사미하야말로 절세의 미인이라 압두르라흐만이 내심 기대하는 바가 컸다.
 같은 이슬람을 믿어도, 같은 페르시아 권임에도, 전에 독후감을 쓴 파리누쉬 사니이, <나의 몫>을 보면 이란에서는 주로 사촌 간에 혼인을 했던 반면 터키에서는 한 집안의 형제와 다른 한 집안 자매들이 얽히고설킨 혼인관계를 갖기도 하나보다. 저 위에 흑돌 백돌 집안에 사촌 형제가 나이 순서대로 코르쿠트, 쉴레이만, (주인공)메블루트가 있었다. 코르쿠트가 일단 딸만 셋 있는 압두르라흐만 씨의 장녀 웨디하한테 홀딱 반해 적지 않은 보상을 주고 결혼을 한 다음에, 둘째 쉴레이만은 막내 사미하한테 눈독을 들이고, 사촌동생 메블루트는 둘째 라이하를 잊지 못해 무려 삼 년 동안 줄기차게 수백 통의 연애편지를 보낸 끝에, 어느 날 밤, 쉴레이만의 도움을 받아 드디어 시골에서 라이하와 야반도주하는데 성공해 이스탄불에 도착한다. 이스탄불에서 있었던 두 집안의 장남, 장녀인 코르쿠트와 웨디하의 결혼식 때 반짝반짝 빛나는 눈길로 (당시 기준으론 아주 맹랑하게도 여자가 감히 남자인) 메블루트를 바라보던 아름다운 아가씨의 눈에 홀딱 반해, 실제로 본 건 그때 딱 한 번, 그중에서도 눈 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가 끓는 청년시대와 군인시절 통틀어 수백 통의 연애편지를, 편지 교본이나 문장 작법 등을 감안해 애간장을 녹이는 표현으로 라이하에게 보낸 바 있으니, 편지를 받은 라이하 역시 사랑을 꼭 말로 해야 해, 라며 메블루트를 향한 무한정의 사랑을 키워왔던 것. 여기에 이미 흰돌 집안의 며느리가 된 장녀 웨디하가 가운데서 바람을 잡아 어느 달 없는 비 오는 밤, 쉴레이만의 닷지 트럭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기어이 라이하를 데려오는 데 성공한 것. 이것도 약탈혼의 한 방법이지만 등장인물들이 비교적 순한 회교도들이라 결국 장인과 사위는 금방 화해를 하는데, 문제는, 그것도 아주 큰 문제는, 애초 웨디하의 결혼식 때 자기가 반한 아가씨가 라이하가 아닌 사미하였던 것. 사미하의 이름을 라이하라고 잘못 알아 죽자사자 라이하에게만 달달한 연애편지를 썼던 건데, 그건 애초 쉴레이만이 사미아한테 눈독을 들여 메블루트에게 라이하라고 틀린 이름을 일러주어서 였던 거디었던 거디었다.
 그래 이 책에선 크게 두 가지를 다루고 있다. (중요도 순서가 아닌) 첫 번째가 세 아들과 세 딸 사이의 얽히고설킨 연애관계이며 두 번째가 개발도상 국가 특유의 도시 집중화에 따라 이스탄불에 유입된 도시빈민들이 몇 십 년에 걸쳐 도시에 적응을 하면서도 옛 기억을 잊지 않는 모습. 오르한 파묵의 소설(그래봐야 이번이 여덟 번째 책이니 그리 신빙성이 있는 얘기는 아니지만) 가운데 시골에서 유입된 도시빈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첫 또는 유일한 이야기 아닌가 싶다. 파묵 스스로가 이스탄불 부르주아 대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 이 책을 쓰는 것이 그리 쉬운 작업은 아니었을 터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도시빈민의 가난과 이에 따르는 어려움의 묘사가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일을 하다 곤경에 처하면 손쉽게 사촌이나 친구의 도움을 받아 다음의 곤경이 닥칠 때까지 그냥저냥 살 수 있게 하는 장치가 과하게 낙관적이다. 책의 뒷날개와 뒤표지에는 무수한 찬사가 씌어 있지만 두 가족의 형제 자매간 사랑 이야기에 비하여 험난하고 때론 잔혹했을 도시빈민의 정착 기록은 실감이 안 난다. 왜 갑자기, 혹은 난데없이 시선을 자기 체험의 경험이 없는 도시빈민으로 돌렸을까. 오히려 작가의 부르주아 성향 때문에 무수하게 실패를 하면서도 여기저기 도움을 받아 순탄하게 이스탄불의 중산층으로 상승하는 마음씨 착하고, 모진 말 못하고, 동안을 가진 우리의 주인공 메블루트를 결국 빈민층에서 구제해주지 않을 수 없었던 거 아니었을까. 파묵 스스로가 도시빈민들에 대한 직접적 이해가 부족한 건 사실일 터이니.
 이상하다. 파묵의 소설을 읽으면 참 잘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드물지 않게 만족하지 못하고 뭔가 께름칙한 뒷맛이 남는 작품들이 있다. 그러면서도 쇼핑 중에 이이의 이름을 단 책이 눈에 띄면 또 선택해서 읽은 다음에 가끔 만족하고 자주 후회하는 거. 정말 이상하지? 나하고 궁합이 좀 덜 맞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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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9-24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묵의 작품은 사람으로 치면 그렇더라고요. 착하고 반듯하고 똑똑한 거 같고, 잘생기고(또는 예쁜데) 전혀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사람. ㅋㅋㅋㅋㅋㅋ 근데 그런 이유 때문에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아예 안 들을 수는 없는..... 그래서 듣긴 듣지만 왠지 그 말이 오래 기억에 남지는 않는 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책도 전 읽을 때는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는데 벌써 기억 희미///// 책도 바로 팔았더라고요. 하하하.

Falstaff 2019-09-24 10:10   좋아요 0 | URL
잠자냥 님 표현이 아주 딱입니다.
책 고르다가 이이의 작품이 눈에 띄면, 안 고르면 안 될 거 같은 느낌이 매번 들어요. ㅎㅎㅎㅎ

2019-09-24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4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