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입술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20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책세상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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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누엘 푸익은 여태 <거미여인의 키스>와 <천사의 음부> 이렇게 두 권을 읽었을 뿐이다. <천사의 음부>는 읽은 때가 꽤 되는지 독후감 써 놓은 것이 없다. 그 책이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드는데도. 어쨌든 내 경우에, 푸익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다른 이의 작품을 읽을 때보다 더욱 집중해줄 것을 요구한다.
 이 책 <조그만 입술>은 가상의 아르헨티나 소도시 코로넬 바예호스에서 출판한 월간지 <우리 이웃>의 1947년 4월호에 실린 ‘후안 카를로스 에체파레’의 부고 기사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애 둘 달린 유부녀 ‘넬리다’, 애칭 ‘네네’가 읽고, 옛 시절 자기가 사랑했던 남자의 죽음을 가족과 함께 애도하기 위해 고인 후안 카를로스의 어머니 레오노르 살디바르 데 에체파레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여튼 스페인, 라틴 아메리카 소설들 읽을 때는 이 길고 긴, 그리고 동양인의 눈으로는 서로 비슷하기까지 한 이름 기억하는 것이 문제다. 러시아 소설도 그런 면이 있지만 그거야 이름, 부칭, 성, 이렇게 세 번만 기억하면 되는데, 라틴 계열 작품에서 이름 쓸 때 띄어쓰기 열 번 하는 것도 봤으니 절로 고개를 흔들 수밖에.
 하여간, 두 아이의 엄마로 사는 여자가 첫사랑이었던 남자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해서, 자신에 대하여 극히 좋지 않은 감정을 지니고 있는 집안의 안주인에게,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자면, 아들 후안 카를로스가 분별없는 자기와의 데이트를 하느라 감기에 걸렸고, 폐렴으로 번졌으며, 결핵으로까지 발전해 드디어 숟가락 놨다고 굳세게 오해하고 있는 고인의 어머니에게, 새삼스레 자기 일생에 유일하게 사랑했던 남자가 지금 남편이자 두 아들의 아버지가 아니라 당신의 잘 생긴 아들 후안 카를로스였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옳기는 한 것인가, 아니면 적어도 서양인 사고방식에 입각해서 생각하면 이게 미풍양속인가, 나는 모르겠다. 인간은 누구나 살면서 몇 번의 교통사고를 낸다. 자동차가 굴러다니며 부딪거나 뒤집어지거나, 다리를 건너다 난간 너머로 다이빙을 한다는 뜻이 아니고, 인간관계, 즉 인간의 소통에서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사고가 생긴다는 뜻. 물론 내 개똥철학이다. 두 아이의 엄마로 죽은 이의 엄마한테 편지를 써서 소설을 시작하게 만든 넬리다가 예전에 후안 카를로스와 서로 애가 타게 사랑을 하면서도, 처녀도 아니었던 주제에(시대가 1930년대임을 감안해서 읽어주시라) 한 번 허락했으면 됐을 것을, 후안으로 하여금 갈증에 몸이 타게 만들어 자신과 헤어진 후에 다른 과부를 찾아 날이 밝을 때까지 정염의 불을 끄게 하는 바람에 귀한 집 외동아들한테 겨울바람을 자정부터 새벽까지 맞아 감기, 폐렴, 폐결핵까지 진행시키게 만든 것이 후안과의 첫 번째 교통사고라 하면, 십여 년이 흐른 후 후안이 결국 결핵으로 인해 숨이 넘어갔다는 부고를 읽고 편지, 글을 써서 고인의 어머니한테 과거의 사랑과 현재의 못생기고 역겹고 추한 남편에 관해 조잘거리기 시작한 것이 두 번째 교통사고다. 그까짓 편지 때문에? 그렇다. 넬리다는 Littera Scripta Manet의 뜻을 새겼어야 한다. 글로 쓴 건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언제 어느 상황에서, 어떤 방법으로도 증거자료로 제출될 수 있는 지울 수 없는 자국임을, 넬리다는 깜박 했던 것.
 넬리다, 네네가 편지를 씀으로 해서, 소설은 급전직하 1930년대로 넘어간다. 같은 장소의 10여 년 전에는 세 명의 발랄한 아가씨가 등장하니 넬리다와, 후안 카를로스의 누나인 셀리나, 셀리나의 친구 마벨. 서양에서는 봄이 시작할 때쯤에 장대를 높이 세우고 주위를 돌며 춤을 추는 봄의 축제를 하는 관습이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도 봄을 시작하는 9월에 봄의 여왕을 선출했던 모양인데, 대개 클럽에 소속된 괜찮은 집안의 영양들 가운데 뽑았던 거 같다. 그래 좋은 집안으로 불리고 당연히 클럽에 가입한 셀리나와 마벨 가운데 한 명, 꼭 집어서 얘기하자면 마벨이 당연히 봄의 여왕 왕관을 쓸 줄 알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셀리나와 마벨의 소개로 가입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넬리다가 감히 여왕으로 선출된 거였다. 마벨은 교사 자격증이 있는 매력적인 아가씨고, 네네는 잡화점의 계산원 신분에 불과하거늘. 이리하여 마벨과 셀리나는 자연스럽게 네네를 따돌리기 시작했고, 후안은 네네와 연애를 하면서, 줄 듯 말 듯, 애간장만 태우다 덜커덕 폐병에 걸려버려 짝사랑하던 마벨은 물론이고 서로 사랑하던 네네마저도 아버지가 절대 결혼 불가를 외침으로써, 중개인을 만나 결혼을 해 거처를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옮겨버린다. 이러니 이 세 아가씨 사이가 온전할 수 있겠어?
 이런 와중에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과 지역에 별의 별 사건이 다 터지고, 그것이 배경처럼 깔리면서 작품은 더 복잡하게 얽히는데, 내용은 별개로 하고, 소설의 시점, 발언하는 주체가 수시로 바뀌면서, 이젠 읽는 일에 집중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즈음이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절명의, 그러나 언젠가 한 시절엔 복음처럼 외우고 있지 않으면 엄청나게 얻어터지던 경구, 졸면 죽는다, 잠깐의 해이함도 허락하지 않는 독서를 피할 수 없게 된다.
 300쪽을 조금 넘는 적절한, 약간 짧은 듯한 느낌이 드는 장편소설로, 거창하지 않지만 재미있고 생각할 만한 작품이다. 출판사 책세상의 세계문학 시리즈는 가격이 착하다는 큰 장점이 있다. 그러니 여러 생각할 필요 없이 냉큼 사 읽어보시는 것이 좋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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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1-22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때 푸익에 빠져서 그의 책을 읽던 시절 생각
이 나네요.

거미여인은 영화가 소설보다 나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조그만 입술>도 중고서점에 있기에 냉큼 사서
읽기는 시작했는데 결국 못 다 읽은 기억이...

찾아서 다시 읽어야지 싶습니다.

Falstaff 2019-11-22 09:14   좋아요 1 | URL
ㅎㅎ 본문에 쓴 것처럼, 이 책 읽다가, 졸면 죽습니다.
거미여인 영화는 못 봐서요. 한 번 뒤져야겠네요.
 
아스카와 늑대
이보 안드리치 지음, 김지향 옮김 / 연극과인간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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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연극과 인간”은 주로 희곡을 출간하는 회사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우리나라 독자들이 잘 찾지 않지만 정말 좋은 작가, 라고 내가 생각하는 보스니아 사람 이보 안드리치의 단편소설집을 냈다. 2016년에 그해에 내가 가장 감명 깊게 공감하며 읽은 책으로 안드리치가 쓴 <드리나 강의 다리>를 꼽은 적이 있다. 2017년에는 아달베르트 슈티프터의 <늦여름>, 작년엔 김태정의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그러고 보니 벌써 11월 중순, 올해도 이제 슬슬 정리를 해야겠다, 라고 썼는데, 왜 이야기가 난데없이 삼천포 시로 빠졌을까. 그래, <드리나 강의 다리>. 이 책을 번역한 이가 한국외대 대학원에서 세르비아-크로아티아 어를 가르치고 있는 수석연구원이라고 하는 김지향. <아스카와 늑대>에서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 빨간 인주 묻힌 인지가 붙어 있고, 거기에 예쁘장한 한자어로 ‘金志香印’이라 박혀있다. 내가 비록 이이가 번역한 <드리나 강의 다리>를 2016년에 읽은 최고의 한 권으로 뽑은 적이 있지만, 안드리치의 다른 책 <저주받은 안뜰> 독후감에서는 번역한 한국어 문장의 질에 관해 아주 모질게 독설을 펼친 바 있어, 사실 이이의 또 다른 작품인 <아스카와 늑대>를 읽은 감상을 쓰기가 좀 캥기기는 한다.
 《아스카와 늑대》는 작가가 쓴 서문 격인 <어떻게 내가 문학의 세계에 들어가게 됐을까>를 제외하면 단편소설 일곱 편을 묶은 단편집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 우리가 단편소설의 나라에 살고 있지만 이보 안드리치의 단편들 역시 매력적이다. 특히 첫 두 작품 <파노라마>와 <서커스>를 매우 좋게 읽었다. 두 작품의 구조는 비슷하다. <파노라마>에서는 어렸던 시절의 기억으로 남은 시장통 마당에 자그마한 가두 상점을 빌려 오스트리아 사람이 파노라마, 굳이 우리말로 하자면 대형 만화경쯤으로 생각할 수 있는 구경거리를 열었고 소년 시절에 이국의 정경들을 보며 무한대, 소년 특유의 무한정의 상상력을 펼쳤던 것을 기억하며, 어느 새 순식간에 이제 나이 들어 당시의 감정을 회상하는 작품이고, <서커스> 역시 어린 시절 시장 공터에 서커스단이 와 천막을 치고 공연을 했는데 워낙 어려서 부모가 자신을 데려가줄지 아닐지, 아닐 것이 분명해 울음을 터뜨리기 바로 직전에 함께 가기로 결정을 했으며, 난생처음 서커스, 기묘하고 긴박하고 긴장되는 공연에 자지러지다가 또한 갑자기 수십 년이 흘러 당시 서커스단의 단장을 만나는 시간의 전이가 벌어진다. 글쎄, 요즘 젊은 분들이 파노라마와 서커스 구경, 그것도 옛 시절의 (파노라마는 분명 보지도 못했을 것이고) 서커스를 봤을지 확실하지 않아 이 이야기에 공감할지 아닐지는 모르겠으나, 노년의 작가가 소년시절을 떠올려 상상해가며 차분하게 쓴 단편소설들이 참 마음에 들었다. 물론 다른 다섯 편의 단편들도 다른 외국 소설가들의 단편들에 비해 더 친근하게 느꼈지만 그것들에 비해 <파노라마>와 <서커스>에 훨씬 공감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가격도 착해서 10% 할인 가격이 6,650원이다. 단편 한 작품에 천 원 미만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표현이기는 하나 요새 유행하는 가격대비 성능비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거 같다.

 


 

* 표지가 귀엽게 생겼다고 동화 읽는 기분으로 골랐다가는 골로 가는 책. 주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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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11-21 1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작가를 또 알게 되었습니다. 19년 폴스타프님의 결산 기대하고 있습니다.🤗

Falstaff 2019-11-21 12:36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아직 40일 남았으니 좀 더 읽고 생각해봐야지요.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베스트셀러 미니북 20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이상훈 옮김 / 소담출판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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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스코프의 단편집 《왼손잡이》를 읽고 이이가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의 원작을 썼다는 걸 알았다. 물론 레스코프가 아니더라도 작품의 원작이라면 냉큼 사 읽었겠지만 정작 눈에 띄지 않다가 소담출판사의 옛 버전, 새 책 같은 헌 책을 발견해 얼른 읽었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과 <쌈닭> 두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문고판 포켓북.
 오페라 좋아하는 사람들은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이 워낙 쇼킹해서 CD나 영상물을 듣거나 봤다하면 딱 한 번으로도 스토리를 잊기 힘들 것이라 믿는다. 내 경우엔 CD와 DVD, (유령장면과 경찰서 장면을 생략한)영화 버전 VHS 필름을 갖고 있는데, 아이고 남우세스럽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대담하게 연출한 영화 버전이 제일 좋았다. 이 오페라에 관해서는 줄리언 반스가 쓴 <시대의 소음>에 잘 언급이 되어 있다. 작곡해놓고 쇼스타코비치가 얼마나 큰 공포 속에서 움츠러든 채 살았는지, 비밀경찰이 정치범을 주로 새벽에 체포해간다는 걸 아는 작곡가가 잠옷 바람으로 연행되는 것이 싫어 밤마다 옷을 다 입고 잤다는 일화도 소개하고 있다. 그 만큼 작품 자체가 소비에트 시절엔 쇼킹했다는 건데, 정작 원작을 발표한 때가 1865년, 1934년에 발표해 열광적인 찬사를 받은 오페라에 난데없이 벼락이 떨어진 것이 우습기도 하다. 평론가들은 ① 작품의 인기가 위대한 스탈린을 능가해서, ② 스탈린이 보기에 작품이 불량해서 그랬다고 주장한다. 참나, 스탈린 새끼가 알기는 쥐뿔을 알았겠는가 말이지.
 책에서는 므첸스크 출신의 여자 두 명이 각기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은 당연히 카테리나 리보브나. 시골출신 아가씨로 망아지 같이 자유롭게 살다가 근처 큰 상인, 므첸스크에서 큰 상인이라 하더라도 러시아 상인 전체 계급으로 보면 최하인 3등급 규모의 상인에 불과하지만 하여간 지역의 큰 상인의 홀아비 장남 지노비 보리스이치 이즈마일로프의 두 번째 아내로 들어가 6년차가 되던 해에 제분소를 둘러싼 둑이 무너지면서 사건이 터진다. 자유롭게 자란 카챠 입장에서 결혼을 해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잘 입으면 만사가 장땡인줄 알았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하는 것 없이 날마다 느지막하게 일어나 아침 먹고 낮잠 자고, 점심 먹고 또 자고, 글도 모르니 책을 읽을 수도 없고, 안다 해도 책도 없는 시골, 바람소리와 새소리, 일꾼들 일하는 소리 말고는 적막밖에 없는 곳에서 어떻게 살겠느냐고. 아이라도 있으면 애 키우는 재미로 세상 일 잊으며 산다지만 전처 몸에서도 아이 구경을 못했던 남편 지노비의 씨 주머니엔 쭉정이밖에 없을뿐더러 이젠 어느새 나이 오십이 넘어, 아 미치겠다, 별을 따려 해도 하늘을 봐야 따지!
 쇼스타코비치 버전에서는 제방 공사 감독하러 간 남편 때문에 젊은 며느리가 밤이면 밤마다 독수공방하는 것이 안 되어 자기라도 빈 방에 들어 며느리를 달래줄까, 흑심을 품기도 했던 시아버지 보리스 치모페이치 이스마일로프, 원작에서는 벌써 아흔 살이 넘은 완전 늙은이로 등장해 그딴 흑심 같은 건 품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쇼스타코비치가 너무 하긴 너무 했다. 아무리 사내가 짚단 한 단 들 힘만 있으면 그거 할 생각한다고 해도 아흔 살 넘어 가당키나 하겠어? 그리고 문제의 일꾼 세르게이도 딱 그 시점에 맞춰 보리스가 채용한 것이 아니라 벌써 일을 하고 있었으며, 시녀 아크시나는 초장에 누구의 씨인지도 모르는 사생아 한 명을 낳고 시작한다. 이런 사소한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인 내용은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와 거의 같으므로 이하 생략.
 다른 한 명의 므첸스크 여인은 이름을 돔나 플라토노브나. 이름이 돔나이며, 나이는 사십대 중반 가량. 한 번 결혼했지만 남편이 갑자기 숟가락 놓는 바람에 대처인 페테르부르크에 터를 잡고 방물장수 겸, 중매쟁이 겸, 뚜쟁이 즉 포주 까지 기회가 닿는 대로 악착같이 돈을 벌려 하지만, 페테르부르크가 어디 만만한 도신가, 돈을 좀 모았다 싶으면 사기 당해 쫄딱 망하고, 모았다 싶으면 또 망해버리기를 여러 차례. 그리하여 이젠 살아있는 부처, 또는 도사의 경지에 오른 여인이다.

 

돔나 플로토노브나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부칭이 플라토노브나. 즉 철학자 플라톤의 따님이다. 맞지? 제아무리 플라톤의 따님이라도 청상과부로 한 생을 살려니 고생이 오죽이야 하겠나. 물론 처녀 시절부터도 므첸스크에선 나름대로 껌 좀 씹은 전력이 있었으나, 자기 한 몸 먹고 살기 위해 페테르부르크로 거처를 옮긴 후에 본격적인 ‘쌈닭’이 돼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이 쌈닭 여사가 하는 짓을 잘 보면, 비록 자기는 시골 촌년 출신의 가난뱅이라도 계급을 불문하고 세상의 불쌍한 것들을 나름대로 보살펴주려 하고, 어린 것들을 사랑하는 무뚝뚝한 친절을 자기 입장으로 보면 활수하게 베푸는 것처럼 보인다. 돔나 플라토노브나의 철학은 상대가 누가 됐던 간에, ‘일단 살고 보자.’로 귀착된다. 사는 것, 생존하기 위해 기꺼이 돈 많고 늙은 장군에게 자기 몸을 팔 수도 있다는 것이 여사님의 생존철학. 이 쉬운 밥벌이에 눈이 멀어 기어이 구렁텅이로 빠져 헤쳐 나오지 못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일단 살고 보자는데 뭐, 어떻게 더 당연한 말이 있을 수 있나. 단편 소설을 더 자세하게 소개하는 짓은 정말 싸가지 없는 일. 이쯤에서 오늘 독후감은 끄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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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11-19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서평가 이현우씨 책 <아주 사적인 독서>에 보봐리 부인 소개하면서 러시아 사실주의 소설인 이 작품도 같이 언급해서 알게 되었어요. 꼭 읽어봐야지 했는데 이렇게 폴스타프님 글 읽으니 꼭! 읽어야겠네요. 무서운 여자같은데ㅋ 그림은 귀엽네요 ㅎ

Falstaff 2019-11-19 20:19   좋아요 1 | URL
이현우 씨는 아마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을 이야기한 거 같네요. 그럼요. 러시아의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좋은 단편입니다. 줄리언 반스에 의하면(시대의 소음), 스탈린이 자기보다 인기가 더 많은 오페라로 작곡한 쇼스타코비치한테 열을 받았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당시엔 대단했을 거 같습니다.
ㅎㅎㅎ 그림은 같이 커플링된 <쌈닭>의 주인공이고요.

coolcat329 2019-11-19 2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맞아요.^^ 그림은 <쌈닭>이군요.🤤
 
미들마치 - 완역본
조지 엘리엇 지음, 이가형 옮김 / 주영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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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조지 엘리엇. 역자 이가형. 이이로 말할 거 같으면 1921년 목포 출신으로 일본 동경제국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당대’의 인재라고 해도 마땅할 것이다. 이후 목포고등학교, 전남대, 중앙대, 국민대 교수를 거친 후 2001년에 천국의 기쁨을 찾아갔다. 책 <미들마치>는 1990년 금성출판사에서 두 권짜리로 나온 것을 저작권자인 유족들의 허락 하에 주영사가 2019년 출판했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 완역본이 출간되기를 말 그대로 ‘목이 빠지게’ 기다렸기 때문에 완역본이 나왔다는 얘기를 들은 바로 그 순간, 생각을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냉큼 사서 읽게 되었다. 역자가 고인이 된 후 18년이 흘렀고, 번역을 해 출간을 한 것은 벌써 30년 가까이 지나, 이번이 사실상 첫 중판일 텐데, 그간의 세월을 벌충하느라 출판사 주영사 편집부에서 각고의 노력을 보태 옛 표현이나 단어 같은 것을 요즘 방식으로 바꾸었으리라고 쉽게 짐작이 간다.
 그런데, 가격이 58,000원. 10% 할인가가 52,200원.
 나처럼 조지 엘리엇에 환장을 한 독자가 아니면 선뜻 접근할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겠다. 나도 떨리는 손가락으로 구매 버튼을 클릭했음을 고백한다. 좋다. 그럴 수 있다. 이거 한 권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조지 엘리엇의 작품 가운데뿐만 아니라 영국이 유사 이래 생산해낸 최고의 '소설'작품으로 선정된 <미들마치>를 읽고 싶으면 비싸더라도 5만원이 넘는 돈을 내고, 싫으면 안 읽으면 된다. 하지만 확실한 건, 52,200원을 주고 산 독자, 더 일반적으로 이야기해서 상품의 구매자는 당.연.히, 가격에 어울리는 품질을 기대한다. 책이 아무리 1,416쪽에 이르고 무게가 돼지고기 세 근 반이 넘는 2,124그램에 달해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읽으려면 손모가지 결딴날 정도의 두께, 즉 하드웨어를 자랑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나도 출퇴근 시간에 차량 안에서 읽으려다가 하루 만에 포기했다. 손모가지는 두 번째고 팔뚝 근육이 뭉쳐 며칠 동안 불편하게 지내야 했으니. 어쨌건, 품질, 내가 말하는 품질은 책의 두께와 무게와 장정과 디자인과 글자체와 글자 크기 및 자간, 행간 간격 같은 것이 아니라 정확한, 물론 가격에 합당할 만큼의 정확한 문장으로 만들어진 우리말 <미들마치>다. 이번에 새로 완역한 것이 아니라 무려 30년 전에 번역한 작품을 ‘재벌구이’ 해 52,200원 받고 팔아먹기 위해서라면 주영사 사장과 편집부장과 편집부 직원들은 더 세밀한 작업을 했어야 한다. 특히 동음이의어로 읽을까 걱정스러워 한글 뒤에 괄호를 치고 한문으로 보충 설명을 하는 작업은 쉽게 하면 안 된다. 굳이 괄호 속 한문으로 보충하지 않아도 흐름 상 뜻을 충분이 알 수 있는 경우에, 바로 그 한문 보충, 잘못 쓴 한자 때문에 오히려 뜻을 잘못 알아들어 쓸데없이 사전을 찾아봐야 하는 등 진도가 막히는 일도 있고, 아예 음가가 다른 한자를 괄호 속에 넣어 읽는 사람을 실소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원소주기율표 원자번호 15번인 인(P:燐)의 한자어가 燒냐? 燒 는 불탈 ‘소’자다. 내가 다른 한자는 몰라도 천국에 이르는 액체 ‘소주’ 할 때의 소자가 이 燒자인 건 확실하게 안다. 적절하지 않은 교정, 교열도 다른 출판사의 (비싸지만 이 책과 비교해)상대적으로 저렴한 책보다 나은 점이 없다. 1,416쪽. 본문은 1,413쪽에서 끝난다. 책 뒤에 흔한 역자 해설도 없고(역자가 죽었으니 당연한 건가?) 작품론 같은 것도 달려있지 않다. 52,200원짜리, 30년 전 번역의 ‘재벌구이’가 말이지.
 슬프다. 우리나라의 잘난 척하는 그 많은 출판사들 가운데 <미들마치>를 30년 동안 다시 완역해보겠다는 회사가 어찌 한 군데도 없었을까. 어떻게 독자로 하여금 몇 년을 목을 늘이며 기다리다 이런 책을 읽게 만들었을까.

 

 “그녀는 그를 향해, 과연 당신은 나에게 적합할 만큼 가치가 있는지 어떤지 스스로 가슴에 대고 물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당돌한 지시를 하는 게 아니라, 나야말로 커소번 씨의 아내가 될 자격이 있는 것일까 하고 불안스레 스스로 가슴에 묻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소설의 주인공 도로시아 브룩, ‘그’는 도로시아와 앞으로 6주가 지나면 결혼하게 될 16세 연상의 약혼자이자, 국교회 신부이자, 거대한 자산을 유증 받은 부르주아, 신화학神話學에 관한 방대한 저술을 준비 중인 학자인 에드워드 커소번이다. 작품의 시간적 무대는 1829년이며,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글을 쓰는 시기는 40년 후이니까 1869년경. 19세기 초반, 아직 빅토리아 시대가 시작하기도 전이라, 여성의 큰 의무는 남자에게 복종하여 나서지 않고, 가정에서 안온한 삶을 유지할 수 있게 관리하는 일에 국한했다. 따라서 결혼을 앞두고도 위에 인용한 것처럼 여자가 남자에게 ‘당신이 내게 적합한가요?’라고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저 ‘내가 저이의 아내가 될 자격이 있을까?’하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 예의바르고, 종교적이고, 명예를 존중하고, 양심적이고, 이런 것을 다 합하여 (여성으로서) 시대의 정의에 충실한 도로시아 브룩 양의 태도였다.
 위의 인용문을 읽을 때까지는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했던 여류 소설가들과 별로 다른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지나갔는데, 여자는 남자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말이 몇 번 더 나오니까,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어라, 혹시 이거 반어법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엘리엇 자신이 남자 이름인 ‘조지’라는 필명을 사용하며 당시 여성 작가들의 의식수준을 조롱한 것이 떠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고 많은 이름 가운데 여자 이름으로 ‘조지’가 뭐니, ‘조지’가?) 그러면서 이 책, 아니, 조지 엘리엇의 작품들, 그래봐야 읽어본 것이라고는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과 <다니엘 데론다> 말고는 없지만 하여간, 그 속에 초기 페미니즘, 페미니즘이랄 것까지는 없어도 젠더 차이에 관한 우열에 대해 상당할 정도의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처럼 읽혔다.
 이 책은 도로시아와 커소번 커플 외에도, 점점 쇠락해가는 기업가의 딸 로저먼드와 새로운 의술로 무장한 의사 리드게이트, 로저먼드의 남동생이자 낭비벽이 심한 프레드와 가난한 집안의 장녀 메리, 도로시아의 여동생 실리아와 미들마치의 유일한 준귀족 제임스 체텀 경, 이렇게 네 커플과 이들이 터를 잡고 사는 미들마치 시 주변의 조연들이 만들어간다. 주요 조연으로 괴팍한 성격으로 오늘 내일을 기다리며 죽음의 침상 위에서도 심술을 그치지 않는 큰 영지와 저택과 막대한 현금의 소유자 피터 페더스톤, 신실하지만 생계를 위해서 자그마한 카드 판에서 안면몰수하고 돈을 따내 생활에 보태는 따뜻한 마음씨의 페어브라더 신부, 부유한 은행가이자 작품의 큰 변곡점을 마련하는 불운한 과거의 소유자 벌스트로드 씨, 그리고 처음엔 초라했으나 나중엔 창대해지는 레이디슬로 씨가 등장해 도로시아의 가슴에 불을 지핀다.
 거의 모든 작품 속에서는, 특히 그것이 19세기 것이라면, 결혼과 동시에 ‘이들은 여생을 함께 행복하게 살았대요.’로 끝나겠지만, 조지 엘리엇은 이 의견에 관해 얄짤없이 냉소를 보낸다. 스스로 유부남과 사실혼 관계를 수십 년간 이어와서 그런지 몰라도 <미들마치>는 초장에 주인공인 도로시아가 두 명의 훌륭한 남편감으로부터 청혼을 받고 그중 하나를 골라 결혼해버리게 만들고, 조금 있다가 미들마치 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가운데 한 명인 로저먼드와 유능한 의사 리드게이트도 충동적인 결혼에 골인 시킨 다음, 조지 엘리엇은 음흉한 미소를 입가에 띈 채 수백 페이지에 걸쳐 결혼이란 것이 얼마나 지독한 고통과 속박과 투쟁인지 리얼하게 묘사하기에 이른다. 엘리엇이 여성이라고 해서 이런 묘사들이 여성 위주로 되어 있지는 않다. 악당 역은 항상 타인의 존경을 받는 훌륭한 학자이자 신부인 커소번 씨와 미모에 관한 한 이견이 있을 수 없는 로저먼드, 이들의 이면에 감추어진 위선과 악의와 증오(커소번), 허위와 허례와 철없음(로저먼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상대 배우자들의 심적 갈등이 점차 악화되는 것까지. 조지 엘리엇의 소설 속에서 삶은 삶 그대로다. 사랑은? 사랑도 삶이다. 사랑을 위해서는 무엇인가 하나 이상을 반대급부로 희생시켜야 하는 것. 만일 지금이 19세기였다면 나는 <미들마치>를 지금보다는 훨씬 더 열광하면서 읽었을 것이 분명하다.
 워낙 긴 작품이고, 번역문이 30년 넘은 오래된 문장이라 읽어나가는데 속도가 붙지 않는다. 이틀 읽어 400 페이지 좀 넘어 어떤 생각이 드는지 아시나? 아하, 아직도 천 페이지가 남았네. 힘들여 800 페이지 까지 읽고는? 아직도 600 페이지 남았어. 원래 내가 두꺼운 책을 좋아하지만, 이 책은 해도 너무했다. 꼬박 엿새 걸렸다. 근데 스토리가 재미있어 번역문에 익숙하게 되는 시점부터는 훌훌 잘 넘어가기는 한다. 읽어보시든지 마시든지 알아서 하시라. 10% 할인 가격이 52,200원임을 감안하셔서.

 

(표지의 붉은 부분은, 놀랍게도, 아니 아니, 일반적이지 않게도 광고용 '띠지'가 아니라 표지가 원래 그렇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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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1-1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책값은 많이 들어간 종이 때문인지
어쩐지 ㅇㅇㅇ 비싸네요.

그리고 번역은 새로 하지 않고 예전에
번역을 우리다니... 한국 출판계의 고질
적인 병폐라고 생각합니다.

후덜덜한 분량 때문에 도전할 생각조차
못하겠네요.

Falstaff 2019-11-18 12:06   좋아요 0 | URL
하긴 조지 엘리엇의 다른 번역물인 <다니엘 데론다>는 무려 네 권으로 분리해놓아서 10% 할인가가 84,000원에 달하기도 합니다만, 그건 새 번역이기라도 하지요.

slobe00 2019-11-19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벽돌책 좋아하지만 이 책은 절대로 누워서는 못 볼 두께였어요. 뚜벅이가 도서관에서 빌리기도 힘든 거대사이즈라 장바구니 담아뒀는데.. 에공 언젠가 새로운 번역 완역본이 나오기는 할까요?
서양 독서에세이류에 엄청 자주 등장해서 오랫동안 궁금했던 책인데(이 책과 픽윅 페이퍼스요..) 뭔가 참 아쉽기 그지없네요..

Falstaff 2019-11-19 09:00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 배낭 매고 가세요. ^^;;
제가 알던 유명 역자가 우리나라 유수의 출판사에 이 책의 번역을 제안했답니다. 근데 거절당했다네요. 시장성이 없다고 보는 모양입니다. 제가 읽기로는 심지어 제인 오스틴보다 좋고, 브론테 자매들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시야를 펼치는 책이고 작가인데, 암만해도 길이 때문에 출판을 망설이는 모양입니다.

coolcat329 2019-11-19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제목만 들어봤는데 정말 엄청난 양의 책이네요. 저도 영국인지 미국인지 어떤 서평가가 이 작품 호평하는 글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제대로 된 새 번역이 나오면 좋겠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19-11-19 20:18   좋아요 1 | URL
당분간은 번역 출판이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
이런 책은 역시 도서관 이용이 아주 딱입니다.
엘리엇의 다른 역작 <다니엘 데론다> 역시 도서관 이용을 추천합니다. ^^

slobe00 2019-11-23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신 애덤 비드를 샀어요. 언젠가는 좋은 번역으로 미들마치 읽고프네요~

Falstaff 2019-11-24 10:40   좋아요 0 | URL
아, 그 책 사셨군요. 현대문화하고 나남 가운데 어느 책인지 궁금합니다.
미리보기를 하면 두 역자의 우리말 표현 방식이 재미있게 달라서 말입니다.
서평 기다리겠습니다. ^^
 
시집보내다
오탁번 지음 / 문학수첩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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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절 문학의 천재를 자랑하던 청년이 이제 노인이 됐다. 재학 중 동화를 써서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로 중앙일보 신춘문예, 졸업한 다음 해에 대한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함으로써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당대 고려대 문과대학의 자랑이었다고 한다. 이이가 모교 국어교육과 교수를 할 때, 시험 바로 전 강의시간에, 시험문제에 (어느 시에 구절이 있다고 들었는데 잊었다.) 은사시나무 잎을 첨부하시오, 라는 것을 낼 테니 가로수로 천지에 널려있는 은사시나무 잎 한 장하고 셀로판테이프를 가지고 오라고 지시를 했단다. 그리고 정말로 시험문제로 냈단다. 딱 두 문제 가운데 하나. 나머지 하나는, 오늘 아침 등굣길의 한 장면을 세밀 묘사하시오, 라던가 아니던가. 문과대가 아니라 사범대 시험문제로. 이이가 1978년부터 장장 30년 동안 모교 교수를 해자시고 은퇴해 몽땅 빠져버린 이 대신에 달그락거리는 틀니를 낀 채로 고향인 충청북도 제천시 소재 천등산 박달재 인근 초등학교 폐교를 하나 사 이름을 ‘원서헌’이라 짓고 촌스럽게 오탁번 문학관 비슷하게 만들었단다. 이이의 수업을 듣기 위해 다른 과 학생들은 물론이고 다른 학교 학생들까지 청강생이 넘쳐흘렀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횡행하기도 했으며, 특히 여학생들한테 인기가 무지 좋았다. 이건 사실이다.
 젊었을 때 이이의 시를 읽어봤다. 무수하게 널린 시 가운데 그냥 한 무더기를 이룬 정도의 감흥. 역시 신춘문예 당선의 영광은 달에서 내려온 (사람크기의)거대한 몸집의 토끼 아홉 마리가 지하의 회의실에서, 토의를 거치는 대신 제비뽑기로 결정한다는 김희선의 선언(단편 <18인의 노인들>을 참조하시라)이 맞는 것도 같다, 는 정도의 감흥. 그 후로 이이의 시는 젖혀두고 소설, 주로 단편소설을 읽었는데 소설집 <새와 십자가>, <저녁연기>는 그의 시(물론 그가 쓴 시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하겠지만)와 달리 간결하고 차분하며 정갈한 감정이 참 좋았다. 그 후 단편집 <겨울의 꿈을 날줄 모른다>를 읽었고 벌써 삼십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정말 세월 빠르다. 하여간 오탁번의 시집 《시집보내다》는 별로 기대하지 않고, 그저 옛 추억의 자국을 떠올리며 선택해 읽었다. 그리고 대박.
 나이를 들어 이제 “맘대로 해도 / 법을 안 어기는 / 뉘엿뉘엿 어스름”이 되면 그동안 시간의 마모 속에서 많은 노 시인들은 주변의 작은 것을 돌보며 젊은 시절엔 차마 알아채지 못한 자질구레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 같다. 오탁번도 마찬가지다. 시집의 처음을 여는 시로 <비백飛白>을 택해 그는,


 간밤에 잣눈 내리고
 아침 수은주가 영하 25도까지 내려갔다
 만년필 촉의 비유를 쓴
 젊은 날의 내가
 나 같지 않다


 맘대로 해도
 법을 안 어기는
 뉘엿뉘엿 어스름에
 지팡이 그림자만
 산 넘어간다


 이냥저냥
 희끗희끗
 비백체飛白体로 몸을 떠는 소나무가
 춥다     (부분)


 고 노래한다. 정확한 뜻을 모르고 읽어도 독자는 시인의 마음과 눈 내리는 날의 정경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잣눈”이 뭐야? “한 자 깊이가 될 정도로 많이 쌓인 눈”이란 뜻으로 한자어로 척설尺雪이라고 한단다. 그럼 비백체는? 한문의 서체다. 서체라는 건 아는데, 어떤 글씨가 비백체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네이버 이미지 검색을 해 글씨 하나를 건졌다. 소나무가 어떻게 몸을 떠는지 글씨를 보고 한 번 상상해보자.

 

 

 이런 시인의 작품들을 감상할 때,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즉시 사전을 찾아보는 것도 시를 읽는 자잘한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이런 시도 재미있다.



 우탄치



 애련2리愛蓮2里의 본디이름은 한치다 봉양면 공전리로 넘어가는 큰 고개 자구니재, 대치大峙가 있는 동네이다 한치 윗동네는 윗 한치인데 다들 우탄치라고 한다 우탄치, 우탄치, 혀를 굴리다보면 아득한 몽골 초원으로 쑥 들어서는 것 같다


 자구니재로 넘어가던 옛길이 이젠 우탄치에서 끊겼다 따비밭 감자 농사는 아예 멧돼지 고라니가 반나마 먼저 잡수신다 산속 명당에서 주무시던 조상님들도 멧돼지 등쌀에 한길 쪽으로 나앉아 자손들 성묫길 기다린다


 겨울밤 화투를 치다가 동치미에 국수 말아먹고 바라보는 우탄치의 밤하늘은 캄캄한 몽골의 초원 같다 송아지 낳는 암소의 울음이 꼭 마두금 소리처럼 애처롭다 산 너머 들리는 기적 소리도 우탄치 우탄치 목이 쉰다


 이게 전문인데 잠깐 드는 의문은 도대체 2연은 왜 넣었을까, 하는 점. ‘윗 한치’가 ‘우탄치’가 되고, 다시 아득한 몽골 초원으로 확장이 되다가 2연으로 넘어가면 갑자기 멧돼지 고라니가 거덜을 낸 감자밭과 조상님 산소가 등장한다. 그건 옛길이 끊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3연에 다시 옛 먼먼 시간을 되돌려 밤새 화투를 치고 동치미 국물에 국수를 말아먹더니 다시 마두금 소리가 애처로이 들리는 몽골 벌판의 목소리로 우탄치, 우탄치 기적 소리로 울고 있단다.
 시를 읽다가 눈물이 질금질금 나게 웃는 일은 정말 오랜만의 경험이다. 이정록의 시집 《정말》을 읽은 후 처음이다. 시집의 2부 첫 작품 <시인과 소설가>에 나오는 장면인데, 같이 한 번 읽어보자.



 어느 날 거나하게 취한 김동리가
 서정주를 찾아가서
 시를 한 편 썼다고 했다
 시인은 뱁새눈을 뜨고 쳐다봤다
 ― 어디 한번 보세나
 김동리는 적어오진 않았다면서
 한번 읊어보겠다고 했다
 시인은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


 ―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우는 것을……
 다 읊기도 전에
 시인은 무릎을 탁 쳤다
 ― 기가 막힌다! 절창이네그랴!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운단 말이제?
 소설가가 헛기침을 했다
 ― ‘꽃이 피면’이 아니라, ‘꼬집히면’이라네!
 시인은 마늘쫑처럼 꼬부장하니 웃었다
 ― 꼬집히면 벙어리도 운다고?
   예끼! 이 사람! 소설이나 쓰소
 대추알처럼 취한 소설가가
 상고머리를 갸우뚱했다
 ― 와? 시가 안 됐노?  (부분)



 오탁번이 김동리를 모셨던 바가 각별했던 모양이다. 시집엔 김동리에 관한 일화가 하나 더 있다. 김동리가 상처하고 소설가 서영은과 재혼을 했는데 이를 두고 시중잡배들 사이에 말이 많았다. 나이 차가 많이 나서. 신기하게 나도 이번에 서영은의 작품을 읽으려고 한 권 골라놓은 참이라 읽기 바로 전에 이런 시를 읊게 됐다. 이런 우연이라니. 김동리와 서영은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같이 읽어보자.



 할까?


 뜰에 활짝 핀 목백일홍이
 닭벼슬처럼 빛나는 오후
 낮달보다 더 하얀 화선지에
 귀거래사歸去來辭가 휘날렸다
 혼자서 큰 집 보는 아이처럼
 심심해진 서영은이
 동리의 허리를 안으며 속삭였다
 ― 서방님
 그는 벼루에 붓을 놓았다
 ― 하고 싶나? 할까?
 그 순간 서영은은
 이 세상 하나뿐인
 절세絶世의 시인이 되었다


 웃기지? 서른 살 차이나 나는 부부의 광경을 생각하면 김동리와 서영은이 만드는 귀여운 정경이 떠올라 내 입 꼬리도 잔잔하게 올라간다. 저절로.
 시인이 학교에 다니던 1960년대에 조지훈이 교수로 있었다. 이때 영문과에 다니던 오탁번도 국문과 교실에 들어가 조지훈 강의 깨나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 <지훈유감>이란 시에서 조지훈의 색다른 면모를 소개하기도 한다.


 한 학기에 잘해야
 예닐곱 번 강의실에 들어오는 지훈이
 어느 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 내가 왜 조지훈인지 알아?
 학생들이 암말도 안 하면
 그는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 조지 훈훈해서 조지훈이야!  (부분)


 요새 시인도 시는 이렇게 썼으면 좋겠다. 쉽고 그림이 그려지며, 간결하게. 간결하다는 건 짧다는 뜻이 아니라 시의 길이도 포함해 내용도 간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이제 시가 더 이상 아름다울 필요는 없다. 그래도 이제 아프고, 피를 토하고, 외롭고, 울고, 벽에 막히고, 자해하는 시들을 읽기에, 나는 피곤하다. 오탁번의 시들을 읽어보시라. 세상에는 여전히 작고, 예쁘고, 자붓자붓하고, 되똥거리는 무수한 것들이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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