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즈 엔드 E. M. 포스터 전집 7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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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사진이 하필이면 안소니 홉킨스. 이이가 사람 고기, 사람의 안심쯤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미디엄-레어 스테이크로 구워 식도락을 즐기는, 심지어 뇌는 육회로 섭취하기도 하는 한니발 박사이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충실하기가 영국의 국가대표 급인 집사steward이기도 해서, 책 표지만 보고 생각하기를 ‘하워즈 엔드’라 이름 붙은 저택의 집사와 주인 간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이게 그동안 이 책을 읽지 않은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는 <전망 좋은 방>을 읽고 단번에 포스터의 팬이 되기로 결심을 했다가 바로 다음에 고른 <인도로 가는 길>이 너무 절망적이어서 포스터에 관한 기대를 접었기 때문이었고, 사소하지만 세 번째는 E.M 포스터의 대표작, 심지어 세계 100대 문학작품으로 <인도로 가는 길>만 거론을 할뿐 <하워즈 엔드>에 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것.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건, ① <인도로 가는 길>에 대한 내 기대가 워낙 컸던 반면에, ② 우리나라에 두 종의 번역본이 있는데 내가 읽은 건 기대 수준에 정말 미치지 못하는 우리말 문장으로 일관한 우스운 책이었던 데다가, ③ <하워즈 엔드>에서도 포스터의 시각이 변함없이 이어지지만 그의 식민주의적 관점이 극도로 불쾌했었다는 점이다.
 <하워즈 엔드> 역시 시대적 배경은 유럽에서는 벨 에포크 시기를 맞아 최전성기의 문화, 문명, 과학의 발달을 즐기는 한편, 아프리카에서는 영국의 제국주의가 극도의 지랄발광을 했던 보어전쟁 발발 바로 전 시기인 19세기 말에 시작해 약 5년 동안을 그리고 있다. 작품이 시작되자마자 두 주인공 가문 슐레겔 가의 둘째 딸 헬렌과 윌콕스 가의 둘째 아들 폴이 서로 사랑을 고백하고 생애 첫 키스를 나누고, 키스를 얻어내기 위해 청혼을 하고 승낙까지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폴이 나이지리아로 떠나는 일정을 앞에 둔 잠깐의 격동이었음이 밝혀져 청혼 문제가 저절로 흐지부지되어버린다. 부계가 학자이며 반제국주의적 성향을 띄어 이민을 온 독일인인 슐레겔 가문과 달리 색슨 족이기는 하지만 켈트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는 윌콕스 가의 사람들은 영국의 젊은이라면 당연히 국가를 위하여 세계경영에 참여해야 한다고 내놓고 말한다. 작품의 말미엔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폴이 말하기를 자신이 아프리카에 퍼뜨려놓고 온 씨앗들을 다 모으면 넓은 마당쯤은 꽉 채우고도 남는다고 마치 농담마냥 푸념하기도 한다. E.M 포스터가 비록 1949년 영국 왕실이 그간의 공로를 인정해 작위를 수여하겠다는 걸 거절할 정도로 개명한, 그래서 좀 ‘덜 재수 없는’ 영국인이라고 해도 그의 식민주의적 세계관에 질려버린 걸 어떻게 하겠느냔 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워즈 엔드>를 읽은 이유는 이 작품이 영국인이 뽑은 가장 위대한 영국소설 스물다섯 편에 들어간다고 해서였다. 며칠 있다가 포스터의 다른 작품을 하나 더 읽을 예정인데 거기서는 그의 식민주의나 유색인 차별 같은 것이 없거나, 적어도 보이지 않기를 기대한다.
 말이 나왔으니까 먼저 조국인 독일 또는 프러시아를 등지고 영국으로 이민을 온 슐레겔 씨를 보면, 천생 학자로 본인이 비록 보불전쟁에 참여하여 독일이 승리를 거두는데 기여를 했음에도 조국이 매년 군비를 확장하고 늦게나마 식민지 개척에 뛰어드는데다가 독일인들 특유의 아리안 족 우월주의에 기반을 둔 전체주의적 애국심에 질려 자유로이 학문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영국으로 건너와 국적을 영국으로 바꾼 다음에 에밀리라는 참한 아가씨를 만나 2녀 1남을 둔 것까지는 좋았으나, 슐레겔 여사는 막내아들 티비를 낳다가 그만 짧은 생을 마감해버리고, 5년 후 자신까지 덜컥 숟가락 놓는 바람에 열여덟 살의 큰딸 마거릿, 열 살의 둘째 딸 헬렌, 다섯 살의 막내아들 티비, 이렇게 셋만 남는다. 그래 마거릿은 이모인 먼트 부인이 내민 도움의 손길을 고맙게 받아들여 몇 년을 함께 살다가 작품이 시작될 때는 마거릿, 헬렌, 티비의 나이가 각각 29세, 21세, 16세인 상태이다. 프롤로그 격인 마지막 장을 빼면 이후 4년 동안 슐레겔 가와 윌콕스 가가 각기 둘째 딸과 둘째 아들의 첫 키스로 시작해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히고설킨 이야기가 바로 <하워즈 엔드>다.
 그러나 윌콕스 가에서 독자가 주목해야 하는 사람은 엉뚱하게도 젊은이가 아니라 바로 나이 많은 윌콕스 부부. 책이 시작되기 얼마 전에 마거릿과 헬렌이 독일 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헨리와 루스 윌콕스 부부를 만나 인연의 끈을 잇기 시작했고, 부부는 친절하게도 영국에 돌아가면 자신들의 집 하워즈 엔드에 한 번 방문해주기를 청해 진짜로 방문하려 날짜를 잡았지만 며칠 전부터 막둥이 피비가 꽃가루 알레르기, 책에서는 ‘건초열’에 걸려 앓아눕는 바람에 헬렌 혼자 놀러갔다가 위에서 말한 사달을 벌이고 만다. 젊은 청년 폴은 키스 한 번 하기 위해 청혼 비슷하게 했고, 헬렌은 그걸 수긍한 다음 두 팔로 폴의 목을 감고 생각보다 보들보들한 남자의 입술을 자기 입술로 느끼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후 둘은 극도의 혼란에 빠져버린 채 다음날 아침밥을 먹으러 식탁에 앉게 된다. 근데 둘이 누구한테도 이야기하지도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음에도 현명한 루스 윌콕스, 그러니까 윌콕스 여사는, 어떻게 알았는지, 다 그런 거야, 없는 걸로 해, 하고 단 칼에 정리를 해버리고 만다. 이 정도로 신기가 있는 현명하고 조신하고 친절한 여인. 반면에 헨리 윌콕스 씨는 전형적인 영국인답게 ‘재미있다’는 말 자체를 싫어하는 인간으로 ‘재미’를 낭비된 노력과 병적인 상태 비슷한 것과 같은 의미로 보고 오직 일, 돈, 발전, 계획, 실행 등에만 관심을 쏟는 인물이다.
 그런데 키스 사건이 있고 그것 때문에 서먹서먹해진 2년 후, 런던의 위컴 플레이스에 살고 있는 슐레겔 가 바로 옆의 맨션아파트 한 채를 구입해 윌콕스 사람들이 런던에 일이 있을 때마다 머물기로 해서 두 집안의 인연이 이어지고 윌콕스 여사는 기꺼이 이들을 방문하고 초청도 하고 해서 좋은 관계를 계속한다. 하지만 독자들은 금방 눈치 챈다. 루스 윌콕스 여사가 중대한 병에 걸려 있음을. 그러나 조금 있으면 깜짝 놀란다. 예상하지도 못한 속도로 루스 여사가 임종의 침상에서 숨을 거두어. 윌콕스 씨가 루스 여사의 유언을 자식들에게 다 일러준 조금 후에 런던의 병원 수간호사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하는데, 루스 여사가 직접 친필로, 그러나 서명도 없이 쉽게 지워지는 연필로 메모 수준의 편지를 써서 가족들에게 보내니, 뭐라 적혀 있느냐 하면, “하워즈 엔드는 마거릿 슐레겔 양에게 주고 싶어요.”
 자,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겠나. 줘? 말아? 나 같으면 어떻게 하겠냐고? 당연히 파바박 구겨 버린다. 담배를 5년 전에 끊었기 때문에. 아직 담배를 피웠으면 그 자리에서 라이터 댕겨버리고 만다. 이게 정상 아냐? 글쎄 몇 번 만나지 않은 “아무러치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1 아가씨한테 건물 값은 다음으로 하더라도 땅값만 수억에 이를 그 집을 준다고? 미쳤어?
 그러나, 문학작품, 소설을 포함한 모든 공연예술 속에서 무당, 마법사, 마녀, 죽어가는 자의 예언은 언제나 이루어진다는 것이 <소설작법> 2장 1절에 나오지 않는가. 이 책에서도 그게 어떤 식이라도 벌어질 것이란 건 알겠는데, 그거야 내가 알려드릴 수 없지. 재미있는 책이니 직접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사 읽으시든지, 아니면 냅다 도서관으로 뛰어가셔서 확인하시라.


1. 정지용, <향수> 중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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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4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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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특별히 제인 오스틴은, 진짜, 더 이상 읽지 않으려 했다. 오스틴을 많이 읽은 건 아니다. <오만과 편견>으로 오스틴한테 폭 빠졌다가 <노생거 수도원>에서 대폭 실망했는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서 가장 두껍다는 <에마> 광고에 또 홀랑 넘어가 작품 속 젊은 아이의 대책 없는 오지랖에 질려 더 이상 제인 오스틴은 읽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던 거다. 그러니까, 기껏해야 남녀 사이 혼인을 전제로 한 밀고 당기는 신경전이 나와 극적으로 맞지 않는 거다. 이건 완전 개인 취향의 문제일 뿐, 내가 오스틴의 명성도 모르면서 함부로 깎아내리는 것도 아니고, 당신 역시 오스틴을 읽지 말라고 권유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무리 제인 오스틴이 범세계적인 찬사와 갈채와 감동의 후광을 뒤집어쓰고 있다고 하더라도 소비자인 내가 나하고 맞지 않는다, 라고 결론을 내면 그걸로 끝이라는 이야기. 그런데 또 오스틴을 읽었다. 유사 이래 영국에서 쓰인 가장 위대한 소설 스물다섯 편 가운데 오스틴의 마지막 작품 <설득>이 들어 있어서. 그래 오스틴에 대한 여태까지의 내 생각이 어땠는지는 다음으로 하고, 일단 ‘위대하다’니까 나 역시 <설득>을 읽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작심했다. 이제 진짜 오스틴은 더 안 읽겠다. 그러다 또 읽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읽으면 읽는 거지 뭐. 어차피 남아일언 풍선껌인 걸.
 이게 오스틴의 마지막 작품이란다. <설득>을 탈고하고 이듬해 마흔두 살의 아까운 나이로 천국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 세상을 떴다. 마지막 작품이니 이제까지 이이가 주특기로 사용했던 젠트리 계급의 연애 이야기에서는 단연 최고의 품질을 자랑할 수 있겠다. 19세기 초의 영국에도 결혼의 첫째 조건은 여자와 남자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리라. 그런데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과연 상대가 나하고 맞는 짝이어야 한다는 거. 제인 오스틴 본인이 대표 젠트리 그룹의 일원인 교구 목사의 딸로 태어나긴 했으나 목사 아빠가 거느린 교구도 코딱지만 한데 8남매 가운데 일곱 번째로 태어나 집안의 부를 머리수로 나누면 거의 별 볼일 없어서 스무 살 때 연애도 거의 성사가 되는 듯싶다가 마지막 순간에 파투가 났고, 스물일곱 살 때, 당시 스물일곱이면 결혼을 하거나 당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로 옥스퍼드 나온 못생긴 말더듬이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였지만 그것 역시 마지막에 깨져버렸던 바, 두 번 다 상대의 요구조건을 자기 집안이 충족시키지 못한 결과, 즉 서로 맞지 않는 짝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쓰라린 경험이 있는 제인 오스틴인지라, 내가 읽은 모두 네 편의 작품에서 공통적인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 주인공 남녀가 고통을 당하고, 번민하고, 서로 밀고 당기는 이유 역시 속으로는 서로를 사랑하거나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지만 상호 요구조건을 서로가 맞춰주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설득>에서는 열아홉 살 앤 엘리엇과 프레더릭 웬트워스 총각이 서로 눈이 맞아 프레더릭 총각이 청혼을 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 대신에 앤 처녀가 의지하고 살던 레이디 러셀의 설득,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일개 해군 장교에게 어떻게 준남작 영양의 일생을 의탁할 수 있겠느냐는, 일견 그럴 듯하고 안정적 선택을 선호하는 연장자의 입장을 이기지 못해 청혼을 거절했으니, 첫 번째가 여자는 준남작의 영양인데 남자가 일개 교구 목사의 동생, 젠트리도 말단 젠트리 계급이란 거, 둘째가 그럼 남자가 돈이라도 왕창 있어야 하거늘 현재 사정으로 보면 가까운 시일 내에 전쟁이 터지고 거기서 큰 공훈을 세우기 전까지 그리 큰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진실’, 계급과 돈이라는 두 가지 요구조건을 아무것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청혼을 거절당하고 열 받은 프레데릭 총각은 2년 후 몇 천 파운드의 돈과 대위 계급장을 달고 앤 처녀가 사는 켈린치 부근에 들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이 정도 가지고는 준남작과 그녀의 후원자의 요구엔 여전히 족탈불급이겠다, 라고 지레짐작해 다시 바다로 나가 전투하고, 승리하기를 몇 번, 다시 6년 이상이 더 흘러, 그러니까 모두 합해 8년여가 지나 이제 앤 처녀가 스물일곱 살의 늙은 처녀가 되었을 때 수만 파운드의 재력을 가진 웬트워스 대령이란 명함을 파고 다시 켈린치에 도착하면서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 작품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거다.
 웬트워스 대령이 켈린치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필요한 것이 있었으니, 그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앤의 집, 켈린치 저택을 방문하게 만드는 일. 제인 오스틴에게 참 다행스럽게도 원래의 저택 주인인 1760년생으로 현재 54세의 만년을 즐기고 사는 준남작 월터 엘리엇 경은 아내가 죽고 무려 13년간 별로 탐탁치도 않은 레이디 러셀의 조언을 듣고 살면서 오직 하나, 용모와 지위에 대한 허영심만 붙들고 사는 바람에 근동에 월터 경보다 더 잘 차려입고, 잘 관리한 얼굴을 소지한 남자가 없을 정도의 사치를 부리느라 기둥뿌리 뽑히는지 모르는 처지였다. 그러다 경제적 위기가 닥쳐오자 영지와 저택을 크로프트 제독에게 임대하고 자신은 두 딸과 함께 온천 요양지 바스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근데 크로프트 제독의 아내 소피가 프레더릭 웬트워스 대령의 누님이었던 것이고, 앤은 때마침 시집 간 동생 메리가 아파 당분간 동생 간병차 사돈댁에 머물게 됐으니 어떻게 더 자연스러운 만남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지.
 태생이 젠트리인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 소설 <설득>에서 보면 준남작 이상의 귀족 구성원 중에서 주인공 앤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귀족은 말 그대로 허영과 사치와 불평과 욕구불만과 비교와 아첨 아니면 무시라는 형태로 드러나는 사교와 치레의 엉망진창으로 그려놓았다. 반면에 해군 제독과 대령들, 지주와 교구 목사 같은 젠트리들은 적어도 기본적인 인간미에 충만한 사람들, 비록 간혹 경박하긴 해도 곧바로 자신의 오류를 알아채 다시 방향을 잡는 인간들로 설정했다.
 제인 오스틴 소설은 결혼이란 최종 목표를 위해 서로 눈치보고 재고 밀고 당기는 소위 밀당의 경지를 보여준다고 했는데, 이 ‘밀당’이란 것이 말이 그렇지 사실 오스틴만큼 재미있고 다양하고 설득력 있게 그린 작가는 별로 없다. 대단한 실력이란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데, 왜 사람들이 제인 오스틴과 그의 작품에 열광하느냐 하면, 무엇보다 먼저 내가 아마추어 독자임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고 이야기하는 바,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심리소설’의 테두리 안에서 만들기 때문이다. 모든 훌륭한 작품이 다 심리소설은 아니지만, 잘 쓴 심리소설은 언제나 훌륭한 작품이란 평을 듣는 건 이유가 있다. 독자가 책 속에서 마치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발견한 것처럼 읽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어가며, 마음 속 또는 혼잣말로 그래, 맞아, 맞아 라고 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등장인물의 심리상태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를 확률이 대단히 높다는 뜻.
 이 작품 <설득> 역시 마찬가지다. 훌륭한 소설임은 인정한다. 다만 내 취향이 아닐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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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1-07 1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드로도 재밌게 본 기억이 나네요 :>

Falstaff 2020-01-07 19:52   좋아요 0 | URL
아..... ‘영드‘요!
저는 ‘영드로‘가 뭔지 한참을 생각했지 뭡니까. ㅋㅎㅎㅎ

CREBBP 2020-01-08 14: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같은 과 맞네요. 제인 오스틴을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손이 언듯 가지 않는 이유가요. ㅋ

Falstaff 2020-01-08 15:26   좋아요 0 | URL
앗! 그러십니까. ㅎㅎㅎ 더욱 반갑습니다.
 
황폐한 집 동서문화사 월드북 231
찰스 디킨스 지음, 정태륭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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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스 디킨스 하면 꽤나 익숙한 느낌이 들지만 사실 그의 작품을 그리 많이 읽지는 않았다. <위대한 유산>, <두 도시 이야기>, <데이비드 코퍼필드> 이렇게 세 작품을 읽었고 마지막 디킨스로 <올리버 트위스트>를 선택해 이젠 디킨스 졸업장을 받으려 했는데, 엉뚱하게도 <황폐한 집>이 가장 위대한 영국소설 스물다섯 편 안에 포함된 걸 알고 이 책을 읽게 된 것. 이 책은 본문이 11쪽에서 시작해 985쪽에서 끝난다. 모두 975쪽. 한 페이지에 30줄, 한 줄에 40자로 쪽 당 200자 원고지 여섯 매, 그러니까 책 전체의 분량은 최대 원고지 5,850매 분량이다. 대략 우리나라 작가들이 요즘 발표하고 있는 장편소설 세 권 반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작품은 전지적 작가시점과 날개 없는 천사 에스더 서머슨 양의 수기가 교차로 편집되어 있다. 이런 작품은 목차 바로 앞이나 뒤에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나서 시작하면 좋을 텐데, 디킨스는 그런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 애초에 눈치를 챈 나는 일찌감치 메모장과 볼펜을 준비하고 메모를 해가면서 읽기 시작했고, 잔글씨 메모가 꽉 찬 두 장에 이르렀다. 겨우 네 번째 읽는 디킨스라 그의 작품 성향이나 서술의 특징 같은 걸 운운할 수준은 되지 못한다. 곧바로 작품 속으로 들어가기로 하자.
 디킨스가 영국 법원에 유감이 좀 있었던 모양이다. 본문에 들어 겨우 한 장을 넘기자마자 “법정은 돈 많고 힘 있는 사람이 정의로운 사람의 기력을 완전히 빨아먹을 수 있도록 편의를 돕고 있다.”라고 선언을 해 놓고 무려 40년 동안 끝나지 않은 유산 상속에 관한 재판 “잔다이스 대 잔다이스 사건”을 이야기한다. 이 사건 자체가 진짜 영국에서 있었던 법정다툼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얘기도 있는 바, 수십 년을 끈 재판으로 상속인은 재판비용으로 파산해버리고 정작 돈을 번 사람은 변호사뿐이었다는 눈물이 앞을 가리는 실제 상황이었다나. 하여간 그런데 소송 당사자 중 한 명인 잔다이스 씨로 말하자면 영국산 ‘부처님 가운데 토막’으로, 소송 당사자와 특별한 관계이면서 고아가 된 에이더 클레어 양과 이보다 한 살 많은 열아홉 살의 리처드 카스톤 군을 친절한 마음으로 후원하고 있는 사람이다. 출생이 귀족은 아니었지만 조상님 가운데 한 분이 갑자기 돈벼락을 맞는 바람에 부르주아의 반열에 올랐으나 변덕스런 증조부가 이상야릇한 유언장으로 인해 소송을 시작해 끝도 없는 혼란의 와중을 맞았으면서도 어려움 속에서 자신이 받은 재산을 지켜낸 인물이기도 하다. 이이가 또 한 명의 불쌍한 고아로 하여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후원했는데 사촌 간인 에이더 양과 리처드 군을 자신의 집에서 직접 보육하기로 하면서 때마침 학교를 졸업한 고아소녀 에스더 서머슨 양을 이들의 말벗으로 채용해 돈독한 우정을 쌓게 만들고, 에스더 양으로 하여금 수기를 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다.
 한 자매를 소개해야겠다. 데들독 부인과 그의 언니 에스더 양.
 데들록 부인은 당시 잉글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를 다 뒤져봐도 이이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는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을 정도의 미녀였다. 근데 미인박명이라는 진실이 영국에서도 통하는 모양이다. 이 여인이 한 남자에 빠져 죽자사자 연애를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하필이면 상대가 앞으로 20년 이상을 지속할 유산 상속에 관한 재판 “잔다이스 대 잔다이스” 소송의 당사자로 한 방 제대로 터지면 하늘에서 금화, 은화가 쏟아지겠지만 자신이 죽기 전엔 결코 결판이 나지 않을 송사에 미쳐버려 부인의 배 속에 여자 아이 하나만 만들어놓고 폐인이 되어 홀연히 사라져버리고, 20년 후에 법원 근처 알코올 중독자이자 고물상 사장인 크룩 씨의 허름한 하숙집에서 야매 대서인으로 푼돈을 받아 살다가 어느 날 약물과다복용으로 숨을 거두고 만다. 근처에 사는 젊은 의사 엘런 우드코트 씨조차 이 사건이 자살인지 사고사인지 판명을 하지 못하게 애매모호한 상태로. 19세기 초 당시는 어쨌든 배에 아이가 들어서면 좋든 싫든 낳는 방법 외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어엿한 법적 처녀의 신분으로 어여쁜 딸을 낳긴 했지만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 거라. 그래 죽은 줄 알고 피 빨래가 쌓인 보퉁이에 올려다 놓고 부인은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신념하에 새로이 몸을 추슬러 결혼에 이르렀으니, 자신보다 스무 살 연상의 준남작이자 링컨셔 지역의 최고 부자인 데들록 경의 아내로 간택이 되어 이후 경의 무한한 존경과 숭배 속에서 나날이 거만의 극치를 부리는 팔자를 즐기게 된다. 맞다. 영국에서도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였다. 이 미모의 준남작 부인의 생애는 이 정도면 이해가 되시지?
 그럼 부인의 언니, 한 많은 에스더 양을 보기로 하자. 에스더 양은 마음씨 하나는 선하지만 풍모나 기상이나 행위나 특별히 언어 구사에 있어서는 천하의 영웅인 로렌스 보이손 씨와 심각한 연애를 벌이고 있었다. 여기서 심각한 연애라고 함은 19세기 초 영국의 양식있는 계급의 남녀 수준에서 심각하다는 뜻이지 21세기 젊은이들의 연애라고 생각하면 수원 밑에 병점 찍고, 오산이다. 에스더 양은 하나밖에 없는 동생의 사생아 출산을 돕고, 숨이 끊어진 조카를 살펴보던 중에, 에그머니, 이 아이의 심장이 약하게나마 박동을 멈추지 않고 있는 거라 차마 멀쩡하게 살아있는 아이를 죽게 내버려둘 수도 없고, 벌써 출산의 자리를 박차고 돈 많고 나이 많은 남자를 향해 떠난 동생에게 엣다 네 딸 받아라, 하고 던져줄 수도 없어서 할 수 없이 자신이 직접 키우기로 작정을 해야 했던 터. 그러나 약혼자 보이손 씨에게마저 가문의 명예와 동생의 명예가 달려 있어 동생이 낳은 사생아를 키워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우지 못해 고백도 할 수 없는 처지여서, 말 그대로 피눈물을 흩뿌리며 보이손 씨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진짜 처녀가 엄마를 대신해 사생아를 키워야 하는 팔자로 떨어진다. 동생이 준남작의 부인으로 자리를 잡고 온갖 거만을 떨며 사는 것이 너무도 미워 꼴 보기 싫어도 차마 얘기도 할 수 없었으니 얼마나 조카딸이 미웠을까. 사실 화통하고 건전하기 짝이 없는 보이손 씨 성격으로 보면 사실을 고백하기만 했다 하면 그까짓 것쯤 얼마든지 좋은 마음으로 덮은 채,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 때까지 행복하게 20년 해로(에스더 양의 명이 그것밖에 안 됐다)를 할 수 있었건만, 화통한 보이손 씨의 입나팔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던 건가 어쨌던 건가 하여튼 온갖 저주를 퍼부으면서도 조카딸을 성년이 되도록 키워주고, 보이손 씨 역시 평생을 독신으로 살게 하니, 죄를 받아 남은 생으로 20년 밖에 허여 받지 못했던 것일까.
 그렇다고 이기적인 동생 데들록 양도 명이 긴 편은 못된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줄거리가 바로 이들 자매가 얽혀있는 실타래를 푸는 일. 그것까지는 독후감에서 줄거리입네, 설명할 수는 없으니 정 궁금하시면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작품 스물다섯 편 안에 든 <황폐한 집>을 직접 읽어보시면 될 터.
 그럼 제목이 어떻게 <황폐한 집 Bleak House>가 되었을까. 여기서 ‘황폐한’을 그저 형용사로 보면 바람직하지 못하다. ‘황폐한 집’을 통째로 고유명사로 보면 딱 맞는다. 작품 속에서 황폐한 집은 적어도 사촌 남매와 에스더 양이 도착한 후에는 언제나 친절하고 정의롭고 화기애애하고 영국식 습기와 안개와 애매모호가 없는 따뜻한 애정의 집이기 때문이다. 황폐한 집은 세인트 올번스 근처에 위치한 저택으로 앤 여왕 재위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원래 저택의 이름은 “봉우리의 저택”이었으나 말썽꾼 톰 잔다이스 증조부가 소송을 시작해 가문에 큰 혼란을 맞으면서 저택의 이름도 ‘황폐한 집’으로 바뀌었단다. 원래 있던 세인트 올번스의 황폐한 집 말고 책의 끝머리에 또 한 채의 ‘황폐한 집’이 지어지는데 이 두 채의 황폐한 집의 공통점은 사랑과 자애와 친절과 우정과 삶의 소소한 즐거움이 넘쳐나 근본적으로 황폐한bleak이란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미리 알려드려도 괜찮을 듯싶다.
 여태까지 쓴 독후감은 내가 책을 읽으며 메모장에 써놓은 것의 20 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욕심을 내 나머지 80 퍼센트를 다 이야기한다면, 지금이 이른 아침이지만 내일 새벽이 훤하게 밝아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책의 줄거리보다 디킨스가 당시 런던과 법정과 귀족계급을 묘사해놓은 문장이 훨씬 좋았다. 내가 읽은 어떤 영국 작가보다 런던의 유명한 ‘안개’에 대해 실감나게 표현해 놓았으며, 법원과 귀족에 대한 비아냥 또는 풍자의 문장 역시 대단히 매혹적이었다. 내용? 그건, 19세기 초에 쓴 책을 21세기 초의 독자가 읽으면서 그 정도는 한 눈에 훤히 보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출생의 비밀과 독자를 현혹하기 위한 장치 같은 것 역시 지금 시각으로는 무지하게 구식이라 특별히 눈에 띄는 것도 없지만, 썩어도 준치, 그래도 찰스 디킨스다, 어떻게 그리도 뻔한 스토리로 사람을 ‘읽는 재미’의 골짜기로 빠뜨려버릴 수 있을까.
 근데 이 책에 등장하는 몇 몇 인물은, 평생 화장실 한 번 안 가고 천상의 넥타만 마시면서 사는 거 같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 있으면 한 명만 구경하고 나서 죽고 싶다고 조건을 걸면 아마 나는 불멸의 삶을 살 수 있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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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20-01-06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황폐한 집>에 대해 정말 맛깔나게 리뷰해 주셨군요. 저도 디킨스 최고의 작품은 <황폐한 집>이라고 생각하는 1인입니다. 그토록 많은 인물들을 어쩌면 그렇게도 꼭꼭 숨겨놓았다가 안개가 걷히듯이 차츰차츰 그 비밀들을 하나하나씩 풀어내고 드러내는지, 정말로 경이로울 지경이더군요.^^

Falstaff 2020-01-06 12:43   좋아요 1 | URL
예. 진짜 이 작품은 메모하지 않고 그냥 읽었다가는 작가가 지금 하는 이야기가 어디서 연결이 되는지 깜깜했을 뻔했습니다.
등장인물 구성이 데이비드 코퍼필드하고 유사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어쨌거나 내용의 복잡 다양은 시대의 이야기꾼 디킨스 아니면 누가 만들 수 있겠습니까. ^^
 

 

 

 올 한 해, 저를 책 읽기의 짜릿한 엑스터시로 끌고 갔던 것들만 골랐습니다. 이름하여 Top 10, 그리고 '한 권의 최고'.

 2019년에는 권수로 209권, 편수로 188편을 읽었습니다. 이 가운데서 ‘예전에 읽은 명작 다시읽기’로 선택한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개선문>, 디어도어 드라이저의 <미국의 비극>은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그래 먼저 40편의 작품을 선택하고 이 가운데 열한 편을 다시 추려서 Top 10과 최고의 한 권을 선정했습니다.

  40편의 목록은 글 마지막에 첨부했습니다. 모두 훌륭한 작품으로 이 가운데서 또 추리는 일이 참 아쉬웠으니, 대표적인 예가 미셸 오스트의 <밤의 노예>, 베시 헤드의 <권력의 문제>, 엔리케 빌라-마따스의 <바틀비와 바틀비들>, 캐서린 앤 포터스의 단편집 <캐서린 앤 포터스>, 유진 오닐의 <느릅나무 아래 욕망>, 천상병의 <천상병 시선>, 레이날도 아레스의 <현란한 세상>, 루쥔의 <여름의 기억>, 루이스 마르틴 산토스의 <침묵의 시간>, 피에르 르메트르의 <오르부아르>를 들 수 있겠습니다.
 이제 소개하겠습니다. 순서는 책 읽은 날짜순입니다.

 

 

 

 

 


1. 치누아 아체베, <사바나의 개미 언덕>

 

 아체베의 아프리카 3부작과 잘 어울리는 그의 마지막 장편소설. 시간이 흘러 드디어 아체베의 땅 아프리카에 그토록 염원하던 독립이 찾아온다. 그리고 백인들의 편의에 의해 직선으로 그어진 국경선. 오직 정치적 독립일 뿐 검은 대륙은 여전히 경제적 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쉴 틈 없이 벌어지는 쿠데타와 독재와 내전과 굶주림과 매판자본에 의한 수탈경제 속에서 궁극적으로 아프리카가 나가야 할 화해의 방안을 모색한 역작. 이들과 비슷한 반半식민 시절을 겪은 한국인들에겐 더욱 가깝게 다가올 작품이니 일독을 해보심이 어떨까.

 

 

 


2. V.S. 나이폴, <도착의 수수께끼>

 나이폴을 다시 보게 만든 수작. 인도 이민 출신으로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수도 포트오브프랑스의 가난한 동네 미겔 스트리트에서 탈출에 성공해 런던의 얼스코트의 하숙집을 거쳐 옥스퍼드로, 다시 스톤헨지가 멀지 않은 월든 쇼의 장원 한 귀퉁이에 소설가라는 명함을 가지고 정착한 나이폴. 미겔 스트리트에서 뛰놀던 어린 소년이 이제 나이 들어 웨일스의 농촌을 완상하는 시각이 정겹다. 이이는 살던 곳을 떠나 새 장소에 도착할 때마다 해결해야 하는, 아니면 적어도 풀어야 했던 수수께끼가 있었던 모양이다. 누군들 그러하지 않겠나. 다만 그것이 나중에 추억이란 이름으로 평생 따라다니게 될지 모를 뿐이지.

 

 


3. 리처드 포드, <독립기념일>

 

 40대 이혼남과 가족 이야기. 자잘한 재미에 흠뻑 빠질 미국식 홈드라마. 독립기념일을 맞아 사고를 치고 이제 재판을 앞에 둔 십대 아들과 미국 프로농구 명예의 전당을 둘러볼 계획을 세워, 전처의 현 남편 집에 가서, 전처 앞에서 엄숙하게 무사귀환 할 것임을 맹세하고 아들을 인계받아, 매사에 삐딱한 전형적 중2 아들을 데리고 아무 탈도 없이 장정을 완수해야 한다는 전제 속에 벌써 갖가지 난관이 버티고 있지 않겠는가. 게다가 생업인 부동산 중개 일 때문에 수시로 아빠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7월의 태양은 사정없이 내리쬐는데 아무리 아빠라도 다 큰 아들놈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걱정 마시라. 내일 세상이 망한다 해도 미국 아빠의 자식 사랑은 언제나 해피 엔드로 장식하니까.

 

 


4. 아시아 제바르, <프랑스어의 실종>, <사랑, 판타지아>

 
 제바르의 경우 두 권을 꼽았는데, 한 권으로 봐주시면 좋겠다. 두 권 모두 올해 최고의 한 권을 놓고 각축을 벌일 수 있는 책이니. 하필이면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의 식민지로 떨어져 큰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숱한 세월을 다시 격렬한 독립전쟁을 벌여야 했던 불행한 나라, 알제리. 이들은 프랑스한테 침략 당했을 때도 여자들까지 손톱으로 파서 꺼낸 적의 심장을 한 손으로 쳐들고, 다른 손으로는 적에게 잡혀 죽느니 자기 손에 죽으라고 자신의 어린 아이의 발을 잡고 머리와 몸통을 담벼락을 향해 휘두른 민족. 그러나 한 때는 적의 문자인 프랑스의 언어로 글을 써야 했던 작가, 그리하여 아카데미프랑세즈의 종신회원으로 임명된 작가에게 프랑스어는 헤라클레스를 찢어 죽인 ‘네소스의 셔츠’로 기능하는데, 이것이 어떤 의미일까. 자신은 망신창이가 되어 찢어져 죽는 한이 있어도 결코 벗을 수 없는 천형이라는 뜻이었을까?

 

 


5. 에이브러햄 버기즈, <눈물의 아이들>
 

 우여곡절의 쌍둥이 형제에 관한 이야기. 인도 출신 에티오피아 의사 부부의 양아들로 키워진 이들은 정수리 부근이 탯줄과 비슷한 관으로 연결된 ‘일종의’ 일란성 샴쌍둥이로 애초에 자연분만이 불가능한 상태였으며, 그리하여 어느 일란성 쌍둥이보다 더욱 깊은 상호 유대감을 갖게 된다. 양어머니는 남자 아이들에게 최고의 힌두여신인 시바와 역시 최고의 산부인과 여의사였던 메리언이라는 이름을 주었으며 유난히 총명한 형제, 시바는 스스로의 힘으로, 메리언은 뉴욕으로 유학을 가서 나름대로 의학에 관하여 일가를 이루는데, 운명Fate이란 심술궂은 늙은이는 메리언에게 이른 죽음이란 가혹한 형벌을 가하려 준비를 한다. 놀랄만한 입심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이는 작가의 필력으로 인해 동지 지나고 며칠 되지 않은 긴 밤을 골라 읽기에 맞춤한 책을 만들었으니 독자 제위는 일독을 머뭇거리지 마실 것. 당신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단박에 느낄 수 있을 터이니.

 

 


6. 톰 울프, <허영의 불꽃>

  
 더 이상의 미국 소설은 없다. 센트럴 파크가 눈 아래 내려다보이는 파크 애비뉴. 채권을 거래하는 중개인, 흰 메르세데스 속의 불륜 남녀, 한 밤의 뉴욕 슬럼가, 흑인 공포증, 선거와 투표권 최우선의 민주주의, 살인, 감방, 몰락. 어떻게 더 미국스러울 수 있을까. 소심하고 겁도 많고 그러나 불륜은 저지르고 싶어 하며 돈도 무척 많이 버는 속물 한 마리가 자신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정황상 이유로, 오직 정황만 가지고 증거도 없이 죄를 뒤집어쓰면서 차츰 몰락해가며 점점 마초로 변신하는 이야기. 이렇게 얘기하면 재미없을 거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 <허영의 불꽃>이야말로 지금 시대 최고의 대중문학이며, 21세기에 들어선 오늘 순문학이 대중문학보다 우위일 이유도 더 이상 없으니, 나는 자신 있게 이 책을 올해의 Top 10으로 선정한다. 작가 톰 울프가 저널리스트 출신이라 신문 사회면 수준을 넘어 심지어 미국식 민주주의가 얼마나 엉터리로 변할 수 있는지 심각하게 뒤통수를 후려치기까지 한다.

 

 


7. 제임스 미치너, <소설>

   

 작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 이렇게 소설의 생산과 소비에 관련한 네 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소설의 탄생과 번성에 관해 담론을 펼치는데, 나름대로 스토리가 무척 재미있다. 심지어 진즉에 읽어볼 것을 제목이 너무 직설적이라는 우스운 핑계 때문에 이제야 읽게 된 것을 후회했을 정도. 아마추어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편집자에게 종속되어 있는 작가. 비평가는 스토리보다 이젠 특별한 교육을 받은 전문가들이 선호할 작품들에게 특별한 호감을 표시하고 독자 역시 많은 책을 읽는 과정을 통해 비평가의 주장에 늦게나마 보조를 맞추게 된다는 것이 현대 소설에 대한 미치너의 결론인 거 같다. 즉 소설의 탄생에 편집자가 중요한 영향을 발휘하게 됨에 따라 작가가 생각하는 문학성보다 많이 팔리는 경제성이 더 우위에 있는 반면, 날로 진화하는 소설 양식과 소비 패턴에도 서로 균형을 맞추어야 하는 곡예가 바로 소설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파는 행위다. 각 부분의 아주 재미있는 일화들을 싹 빼고 이야기하면 그렇다는 말씀. 근데 몽땅 들어 낸 그 ‘이야기’들이 당신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을 걸?

 

 


8. 피터 애크로이드, <혹스무어>

 우리나라에서는 읽기 힘든 피어 애크로이드. 그래서 더욱 아쉽다. 색다른 방식으로 글을 쓴 애크로이드. 아마존 독자 평을 보면 완전히 극과 극이다. 극찬이던지 완벽한 악평이던지. 나는 이이의 글 쓰는 방식, 과거에 정말로 있었던 사실을 다시 반복, 결과적으로 왜곡된 형상으로 보여주는 형식이 정말 재미있다. 18세기 초엽, 런던 주변에 일곱 개의 성당을 지으라는 주문을 받은 니콜라스 다이어. 그가 여섯 개의 성당을 지은 건 역사적 사실이지만 애크로이드는 다이어에게 흑마법과 인신공양, 아니면 적어도 이단의 혐의를 뒤집어씌운다. 그리고 약 250년이 지난 런던에서 아주 먼 옛날 인신공양이 일어났던 자리마다 따라다니며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이의 해결을 위해 경찰청에서 파견한 형사의 이름이 혹스무어. 18세기 성당을 지은 다이어 씨의 수석조수 이름 역시 니컬러스 혹스무어. 세상에 역사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애크로이드의 변설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얽히고설키는 난장판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을 수 있을지, 직접 확인하시라.

 

 


9. 르 클레지오, <섬>

 

 원제목은 <검역>. 1891년 자크와 그의 아내 수잔, 동생이자 주인공인 레옹이 인도인들과 배를 타고 모리셔스 섬으로 항해하던 도중 배에서 콜레라와 천연두로 의심되는 환자가 발생해 탑승 승객 전원을 모리셔스 섬 인근, 그러나 수영은커녕 작은 배로는 도저히 건너지 못할 거리에 있는 외딴 플레이트 섬에 내려다놓고 병이 물러날 때까지 간혹 가다가 부족한 양식만 던져놓고 갈 뿐 돌보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거의 완벽하게 야생의 상태가 되어 새로운 질서가 생기며 양심 또는 교양이라는 명분아래 숨어있던 본능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도 10대 후반의 백인 청년은 섬에 죽음을 맞이하러 온 백인 여인의 혼혈 딸과 애틋한 사랑을 시작해 점차 뜨겁게 발전해나가고. 그래, 역시 사랑도 본능이니까. 시간이 흘러 병이 사라지고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자 모든 사람들은 이 둘의 사랑마저 끝날 줄 알았는데, 천만의 말씀을. 르 클레지오가 쓰는 애틋하지만 강렬한 사랑의 이야기. 역시 소설은 연애 소설이 최고다. 아니, 인간사 모든 문제에 사랑이야말로 정답이다.

 

 


10. 살만 루슈디, <광대 살리마르>

 이런 광대한 무대가 있을까. 알자스 지방의 부르주아 출판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세계대전 시절엔 레지스탕스로 활약하고, 드골하고는 궁합이 맞지 않아 이별을 고하고 미국으로 이민 가서 인도 대사, 스파이, 대 테러리즘 대책위원회 의장, 경제학자, 영화 제작자를 두루 걸친 부호 막시밀리안 오퓔스 씨가 글쎄 소설을 시작하자마자 딸의 집 바로 앞에서 건장하고 늙은 유색인 자가용 운전수가 식칼로 목을 그어버려 거의 잘라진 목이 가죽과 힘줄 몇 점에 의해 대롱대롱 매달린 채, 거의 참수를 당하는 쇼킹한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머지않아 밝혀지겠지만 운전수가 바로 살리마르라는 이름으로 저 히말라야의 땅 카슈미르에서 예술인 가족의 일원으로 줄타기 솜씨를 뽐냈던 광대. 모욕을 당하면 죽음으로 이를 갚아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최대의 치욕으로 받아들이는 종족과 현대 유럽인의 법의식이 맞부딪혀 일생일대의 사건이 벌어지는데, 오퓔스 선생의 죽음 하나로 끝나면 말도 안 한다. 여기에 영원히 화해 불가능한 문화적 충돌은 계속되리라는 불행한 예언을 작가 루슈디는 거침없이 선언해버리니 이름하여 <광대 살리마르>라.

 

 

 


2019년 최고의 한 권.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저항의 멜랑콜리>

 정말 이 책을 읽으실 분은 일단 엉덩이가 질겨야 한다. 한 번 책상 앞에 앉으면 몇 시간 자리를 뜨지 않고 책을 꼬나볼 수 있는 독자라면 도전해봄직하다. 한 문장이 근 한 페이지에 이르러 문장 중간에 이르면 주어가 뭔지 벌써 헷갈릴 경우 기꺼이 문장의 처음으로 되돌아와 기껏 읽은 글을 다시 읽을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으면 더욱 좋다.
 살면서 되도 않는 책을 내고, 책 뒷면에 “카프카의 재림”이란 허풍을 떠는 걸 숱하게 보아왔으나, 이 책 <저항의 멜랑콜리>는 여태 허황된 광고라고 여겼던 수사 “카프카의 재림”이 별로 어색하지 않다. 카프카는 특정한 한 사람, 예를 들면 측량 기사나 K, 딱 한 명만 골라 후벼 파는 반면 라슬로는 이 책에서 시골에 있는 수상한 소도시의 그나마 다양한 사람을(어쩌면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만 다를 뿐. 어느 날, 마치 트로이 성문을 열고 들어온 목마처럼 서커스단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래를 보여주겠다고, 하필이면 그 해들어 가장 추운 날을 골라 시내로 들어오면서 거대한 은유의 세계가 펼쳐진다. 라슬로의 은유가 무엇일까. 이걸 이해하기 위해 작품을 발표한 1989년에 대한 세계사적 의미를 찾아볼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 모두 감상자의 몫이다. 2019년 내가 읽은 최고의 한 권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책. 읽어보실 분의 건투를 빈다.

 

 

 

 

2019년 인상깊게 읽은 책 목록

 

도서명출판사/제작사저 자,  번 역 자
소피의 선택민음사윌리엄 스타이런, 한정아
사바나의 개미 언덕민음사치누아 아체베, 이소영
만티사존 파울즈, 김석희
도착의 수수께끼문학과지성사V. S. 나이폴, 최인자
독립기념일문학동네리처드 포드, 박영원
밤의 노예문예출판사미셸 오스트, 이재형
병사 이반 촌킨의 삶과 이상한 모험문학과지성사블라디미르 니콜라예비치 보이노비치, 양장선
일곱 박공의 집민음사너대니얼 호손, 정소영
권력의 문제창비베시 헤드, 정소영
현기증.감정들문학동네W. G. 제발트, 배수아
바틀비와 바틀비들소담출판사엔리께 빌라―마따스, 조구호
프랑스어의 실종을유문화사아시아 제바르, 장진영
눈물의 아이들문학동네에이브러햄 버기즈, 윤정숙
저항의 멜랑콜리알마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구소영
캐서린 앤 포터현대문학캐서린 앤 포터, 김지현
느릅나무 아래 욕망열린책들유진 오닐, 손동호
퍼레이즈 엔드한국문화사포드 매독스 포드, 김일영
천사, 바빌론에 오다책세상프리드리히 뒤렌마트, 황혜인
분례기창비방영웅 지음
천상병 시선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천상병 지음, 박승희 엮음
허영의 불꽃민음사톰 울프, 이은정
심플 스토리민음사잉고 슐체, 노선정
캐스터브리지의 시장문학과지성사토머스 하디, 이윤재 
천사는 침묵했다창비하인리히 뵐, 임홍배
현란한 세상을유문화사레이날도 아레나스, 변선희
사랑, 판타지아책세상아시아 제바르, 김지현
소설열린책들제임스 미치너,윤희기
세피아빛 초상민음사이사벨 아옌데, 조영실
오에 겐자부로현대문학오에 겐자부로, 박승애
여름의 기억연극과인간루쥔, 오수경
멋진 신세계 / 연애대위법동서문화동판올더스 헉슬리, 이경직
침묵의 시간책세상루이스 마르틴 산토스, 박채연
에프민음사다니엘 켈만, 임정희
오르부아르열린책들피에르 르메트르, 임호경
시집보내다문학수첩오탁번
혹스무어솔출판사피터 애크로이드, 홍덕선
책세상르 클레지오, 홍상희
광대 샬리마르문학동네살만 루슈디, 송은주
우아한 연인현대문학에이모 토울스, 김승욱
2666열린책들로베르토 볼라뇨, 송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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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12-31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께 올해도 진짜 많이 배웠습니다. 폴스타프님 아니었으면 존재조차 모르고 스쳐갔을 좋은 책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그저 든든할 뿐입니다.

새해 복 많이많이 받으소서.....

Falstaff 2019-12-31 09:29   좋아요 0 | URL
아이고.... 제가 syo 님의 재기발랄한 글을 통해 얼마나 많이 배우는데요.
그저 좀 무뚝뚝해서 내색을 안 해서 그렇지요.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

slobe00 2019-12-31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렸습니다~ 폴스태프님의 추천 목록 조로록 적어두니 2020년도 든든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Falstaff 2019-12-31 10:34   좋아요 0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slobe님도 언제나 건강하세요!

브롬덴 2019-12-31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Falstaff 2019-12-31 10:35   좋아요 0 | URL
아마추어의 감상을 늘 좋게 읽어주셔서 제가 더 고맙지요.
복 많이 받으세요!

포스트잇 2019-12-31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독서범주에서 벗어나 있던 책들인데, 덕분에 읽어보고 싶네요.

Falstaff 2019-12-31 10:3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이 리스트에 있는 책 골라 읽으시고, ㅎㅎㅎ 결과는 제가 책임지지 않습니다. ^^;;

비연 2019-12-31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2019년에는 권수로 209권, 편수로 188편을 읽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좌절.
책의 면면도 다 훌륭하신. 몇 권 보관함에 숑숑 넣었습니다. 멋지십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내년에 알라딘에서 더 자주 뵈어요^^

Falstaff 2019-12-31 11:0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다 재밌게 읽어주시는 서재친구님들 덕분이지요. ^^

잠자냥 2019-12-31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한권의 책이 <저항의 멜랑콜리>이군요! 내년에 꼭 읽어보겠습니다.
새해에도 좋은 책 소개 계속 기대할게요. 복많이 받으세요~

Falstaff 2019-12-31 11:09   좋아요 0 | URL
크러스너호르커이가 매년 큰 상을 받을 후보로 지목되곤 한다는데, 읽어보니까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잠자냥 님도 복 많이 받으세요!!!

coolcat329 2020-01-02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스타님 리뷰 읽고 사둔 책이 몇 권 있습니다. 늘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올해도 잘 읽겠습니다^^복 많이 받으세요

Falstaff 2020-01-02 21:26   좋아요 0 | URL
엇..... 무슨 책일까... 궁금하다기 보다, 제가 완전 아마추어, 잘해봤자 딜레탕트 수준이라 겁부터 덜컥 나네요. 재미 없으면 어쩌나 싶어서요. ^^;;
올 한해 쿨켓님과 저한테 좋은 일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coolcat329 2020-01-02 21: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단 위에 탑10 중 프랑스어의 실종, 소설이 있구요. 그 외 기억나는 대로 써볼게요.🤭 레마르크 작품,토니 모리슨의 재즈,빌러비드, 메릴린 로빈슨 하우스키핑, 트레버 여름의 끝 등 입니다! 절대 실망 안 할 작품들이죠?

프레이야 2020-01-03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이리 많이 읽으셨네요 폴스타프님 올해에도 즐거운 독서하시고 복도 많이 받으세요 ^^

Falstaff 2020-01-03 20:39   좋아요 0 | URL
하하하.... 고맙습니다.
프레이야 님도 건강하시고 나중에 말고 올 초에 로또 대박 한 번 나셔서 올해엔 세계일주 한 번 하세요!!!! ^^

프레이야 2020-01-03 20:54   좋아요 0 | URL
ㅎㅎㅎ 늘 유쾌한 폴스타프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페이퍼 둘러보고 읽고 댓글은 여기에만 대표로 남겼네요. 우리나라 좋은나라 일주도 다 못했는데요 뭘 ㅎㅎ 아무튼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 어디로든 튀겠지만요.

2020-01-08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8 0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666 세트 - 전5권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송병선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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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다섯 권, 5부, 본문 1,680쪽의 장편소설. 간 질환으로 세상을 뜬 후 볼라뇨의 유작으로 2003년에 발표했고, 2008년 영어 판이 나오자마자 미국, 영국의 권위 있는 거의 모든 매체가 2008년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했다고 했단다. 작품은 본질적으로 인간에 의하여 발생하는 대량 살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솔직한 심정은 왜 이 책에 그리 찬란한 평가를 헌정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작품은 두 번의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과 북부 멕시코 국경지역인 산타테레사에서 벌어진 200건의 연쇄 여성 살해사건을 연결시키고 있다. 볼라뇨는 양차 세계대전의 여파를 멕시코의 공업도시이자 불법 월경을 도모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멕시코-미국 국경도시로 끌고 오기 위하여 1차 세계대전에서 다리 하나를 잃은 할아버지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삼촌을 둔 독일계 미국인 클라우스 하스를 등장시킨다.
 1부 <비평가들에 관하여>로 시작하는데 제목대로 네 명의 비평가들, 프랑스인 장클로드 펠티에, 스페인 사람 마누엘 에스피노사, 이탈리아 사람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피에로 모리니, 이렇게 세 명은 남자고, 영국인 리즈 노턴 혼자 여자다. 남자 세 명과 여자 한 명. 이들의 공통점은 독일 작가(로 여겨지지만 과연 실체 인물인지, 살았는지 이미 죽었는지도 판명되지 않은 인물) 베노 폰 아르킴볼디를 높이 평가하여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독일문학 세미나에 거의 빠짐없이 참가한다는 것. 말 그대로 1부는 장편소설의 도입부로만 작용한다. 그런데도 세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비행기를 타고 런던과 파리, 마드리드, 간혹 베니스를 넘나들며 적극적인 삼각관계를 만들기도 하고, 아예 프랑스-스페인-영국이 삼국동맹을 맺어 셋이 한 침대에서 화끈한 밤을 보내기도 해서 딱 1부만 읽는다 해도 한 권의 완성된 작품을 읽은 듯하다. 볼라뇨니까. 적어도 상상력 하나는 지구 대표선수라서. 일찍이 볼라뇨의 상상력에 관해서 그의 전작 <아메리카의 나치문학>에서 혀를 내두른 적이 있다. 남북 아메리카 문단에서 친 나치, 적어도 친 파쇼적 문학행위를 한 백과사전적 나열이 전부 볼라뇨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허구라는 걸 알아차린 건 거의 반 분량을 읽은 후였다. 그래 이 책도 1부를 읽어가며, 결국 이 작품은 수수께끼의 인물 베노 폰 아르킴볼디를 찾는 여행이 될 것임을 짐작하면서 무대가 어디까지 펼쳐질까, 그의 태가 묻힌 라틴 아메리카는 적어도 한 번은 나올 것이 분명하지만 벌써 유럽 각지까지 펼쳐놓은 판에 책의 분량을 감안하면 실로 방대하리라, 가늠할 수 있었다.
 베노 폰 아르킴볼디. ‘베노 아르킴볼디’까지 하면 틀림없이 이탈리아 남자다. 근데 난데없이 독일, 프러시아 귀족 가문의 성姓 앞에 붙는 관사 ‘폰’은 또 뭔가. 유럽인은 이 이름을 보면 이탈리아 출신의 16세기 보헤미아 궁정화가였던 실존인물 주제페(또는 요세프, 요세푸스) 아르침볼도(또는 아르침볼디, 아르침볼두스)를 떠올릴 수 있단다.
 아주 오래 전, 한쪽 눈이 안 보이는 아가씨를 사랑하는 프러시아 청년이 있었다. 그러나 불운한 시대를 골라 태어나 청년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라는 황제의 명령을 받고 용감하게 싸웠는지 어땠는지는 잘 몰라도 다리 하나를 잃고 귀향을 했는데, 집에 오자마자 그길로 외눈 아가씨한테 청혼을 해 가정을 이루었으며 1920년에 아들 한스, 1930년에 딸 로테, 우애 깊은 남매를 낳았다. 아들 한스 역시 불운한 1920년 생. 키가 무척 크고 관심사라고는 바다 속 해초뿐인 소년은 일찌감치 학문에 뜻이 없어 열세 살 때 학교를 때려치워버렸다. 열세 살이면 1933년. 우연히 히틀러가 독일을 장악한 해가 된다. 집이 가난해 식구 전부가 근방에 있던 남작 집안의 별장을 관리하는 하인, 하녀 일을 해야 했고, 별장에 자주 머물렀던 남작의 좀도둑 조카 후고 할더와 친분을 쌓게 된다. 후고 할더의 아버지 콘라드 할더는 후고의 외삼촌인 남작으로부터 인연이 끊긴 프랑스 화가로 하필이면 죽은 여자만 그린다고 한다. 독자가 이 대목을 읽을 때는 이미 산타테레사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연쇄살인이 한창 진행 중일 때라 무엇이든지 사건하고 이어 붙일 생각에 골몰해 있을 것이지만, 아쉽게도 이 화가는 아무 상관없다. 전적으로 볼라뇨의 장난기일 뿐. 책 곳곳에 이렇듯 볼라뇨의 가벼운 트랩이 묻혀 있지만 읽는 사람이 발견할 수도 있고 눈치 채지 못할 수도 있을 터. 그러거나 말거나 책을 읽는데 아무 문제도 없으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 되겠다. 하여간 한스가 점점 키 큰 거인으로 자라 어느 새 열아홉 살이 된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란 거창한 학살극을 시작한다.
 한스는 러시아 전선에 배치되고, 전쟁 중 특유의 우울한 분위기로 말미암아 죽음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스는 언제나 가장 앞에서 돌진하지만 그의 모습에서 적들도 공포를 느끼는지 결정적인 죽음을 선물하지 못하고 전쟁터라는 환경에선 중상이라 볼 수 없는 총상을 입어 러시아의 한 농가에 방치, 고립된다. 그곳에서 보낸 시절에 교묘하게 장치한 대피소를 발견하고, 대피소 안에서 농가의 주인집 아들로 보이는 1909년 생 보리스 아브라모비치 안스키라는 남자의 노트 몇 권을 주워 그의 일대기에 큰 관심을 쏟는다. 얼마나 큰 관심이냐 하면, 안스키가 쓴(것처럼 보이는) 소설 3부작 <진정한 새벽>, <진정한 황혼>, <황혼의 떨림>을 거의 외울 정도까지. 그러나 키 크고 힘 센 한스가 전쟁을 치루며 직접 죽인 사람은 딱 한 명이다. 그것도 러시아나 폴란드인이 아니라 독일인. 전쟁 막바지에 미군 포로가 된 한스는 수용소에서 유대인 500명 가운데 근 400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령한 짐머라는 이름의 관리자를 만나, 유대인 학살에 관한 고백을 듣고는 우악스런 힘으로 목을 졸라 죽여버리고 만 것.
 전쟁이 끝나고 수용소에서 도망친 한스는 옛 친구라고 생각하는 후고 할더의 아파트를 찾아 갔으나 후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대신 그곳에서 정신과 몸이 건강하지 않은 아가씨 잉게보르크 바우어를 만나 사랑하게 되고, 소설 <뤼디케>를 완성한 후 ‘베노 폰 아르킴볼디’라는 이름으로 원고를 함부르크의 총명한 유대인 편집인에게 보냄으로써 작가의 반열에 오르는 것.
 그러나 작가가 로베르토 볼라뇨다. 이야기는 내가 여태 쓴 것처럼 직선으로 나가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아르킴볼디의 가계를 멕시코의 변방으로까지 끌고 가야 직성이 풀리는 볼라뇨는 문제의 도시 산타테레사 대학의 철학교수 아말피타노 씨를 2부의 주인공으로 내세워 시인 디에스테가 쓴 기하학 책 <기하학 유언>을 집 뜰 빨랫줄에다 널어놓게 해야 했고, 3부에서 뉴욕의 할렘지역에서 발행하는 작은 잡지사 <검은 새벽>의 문화부 흑인 기자 페이트 씨를 엉뚱하게 산타테레사에서 벌어지는 라이트헤비급 권투시합을 취재해오라고 출장 보내야 했다. 페이트 씨가 잡지사 공금으로 산타테레사에 출장까지 와 원래 목적인 권투시합은 제쳐두고 현지에서 날이면 날마다 몇 년째 벌어지는 여성 연쇄살인에 흥미를 느껴 싱겁게 끝난 권투시합의 기사를 송고하는 대신 연쇄살인의 심층 취재를 요구하면서 드디어 4부 <범죄에 관하여>로 넘어가 1993년 1월에 열세 살 소녀 에스페란사 고메스 살다냐 양의 강간살인을 시작으로 수백 건의 연쇄살인을 무차별적으로 조명한다.
 4부를 읽으면서 독자에 따라 호오가 극명하게 갈릴 것으로 본다. 연쇄살인에 앞서 전통적으로 가톨릭 국가인 멕시코에서 성당의 성물 훼손 사건이 벌어진다. 남자 괴한이 침입해 처음엔 성당에 대량의 오줌을 누는 일이 벌어지고, 이를 막고자 하는 사제를 칼로 찌르기도 하고, 급기야 성당 내에서의 살인사건으로 번진다. 이어 조각해 세워놓은 성인과 성물을 파괴해 난장판을 벌이는데, 지역의 정신병원 원장인 엘비라 캄포스 박사는 이를 성물공포증 환자의 소행이라고, 도움을 요청한 형사 후안 데 디오스 마르티네스 씨에게 판정해주고, 자기보다 열일곱 살이 적은 그를 기꺼이 침대 파트너로 선정한다. 독자의 호오가 갈리는 건, 볼라뇨의 서술이 지극히 기사문 같은 형식을 띄지만, 아무리 건조한 서술이라고 해도 백 건이 넘는 훼손된 시체를 감상하면서 기분이 개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열두어 살부터 서른 살이 넘는 젊은 여성의, 다양한 방법과 행위로 강간당한 후에, 주로 목을 졸라 죽이기는 하지만 역시 다양한 방법과 기구를 써서 살해한 시신을, 검시 보고서 수준으로 무자비하게 써대는 작가의 요란한 필력이 어찌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2666>을 최고의 볼라뇨 소설이라고 한다고 들었는데, ‘유작’이라는 프리미엄 효과도 조금은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위에서 말한 4부의 다양하게 훼손된 시신에 관한 묘사를 좋아하지 않는 부류라서,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아마추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 때문이겠지만 <2666>보다는 <야만스러운 탐정들>을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어쨌든 확실한 건 볼라뇨가 문제적 작가라는 사실. 4부에서 벌어지는 백 건이 넘는 살인사건의 현장을 읽어보시라.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살인 사건의 현장을 나열할 수 있는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앞서 말한 <…… 나치문학>에서 진짜 생존했던 실존인물들인 줄 알았던 착각을 이 책에서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다. 아, 진짜 경이롭다. 그리고 비위엔 맞지 않는다.
 그러나. 양차 세계대전과, 독일과 소비에트에 의하여 발생한 유대인 학살, 여기에 멕시코 북부 국경지역 공업지대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을 연계시키기만 했지, 대량 학살이 왜 발생했는지에 관한 원인규명엔 하나도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하면, 이 책에선 대량 학살이 문제일 텐데, 철학자들은 문제를 “해석”하려만 할 뿐이고 소설가들은 문제들의 연관관계를 “설명”하려 할 뿐이지 결코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왜 같은 문제가 멕시코의 연쇄살인에 이어서 파키스탄과 시리아와 미얀마의 로힝야 족과, 신장 위구르에서 여전히 발생하는지 세상의 모든 철학자들과 정치가, 부르주아들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지만,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임도 역시 알고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천재적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도 이들과 같은 한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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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2-30 0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나오자마자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두 번째 권을 읽고 나서 세 번째 권의 어디
선가 그만 멈춰 서 버렸습니다.

Falstaff님의 리뷰를 읽으니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경자년 프로젝트에 다시 한 번 올려야지 싶
네요.

<야만적인 탐정들>도 세 번째 도전인데 지
난 가을에 시작해서 지지부진하고요.
읽을 책들은 산더미 같고, 시간은 부족하니
참... 그렇네요.

Falstaff 2019-12-30 10:04   좋아요 1 | URL
ㅎㅎㅎ 늘 사는 것이 그렇지요 뭐.
이렇게 긴 작품들은 독한 마음 먹고 시작해야 하잖습니까.

2019-12-30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30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20-01-08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야만스런 탐정들을 너무 잼있게 읽어서 기대를 크게 하고 현재 1권까지 읽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1권만으로도 중간에 끊겼다는 느낌은 안들어서 중단된 상태에서 좀 더 짧은 칠레의 밤을 읽었는데.. 여전히 야만스런... 이 제일 좋네요

Falstaff 2020-01-08 15:29   좋아요 0 | URL
저도 볼라뇨, 하면 무조건 <야만스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