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다 갈라진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17
김기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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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곱추>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을 했다 한다. 몇 번을 변명했다시피 내게 80년대 말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낮엔 열심히 일하고 밤엔 죽자고 술 퍼마시던 시기라 시 따위를 읽을 겨를 같은 건 애초에 없던 시기다. 그러니 시인의 이름이 낯설 수밖에. 근데 어떻게 이 시집을 사게 됐느냐고? 별 거 없다. 시집 뒤편에 달려 있는 <해설>을 오생근 씨가 썼다는 이유로 고민 없이 골랐다. 그러나 지금 독후감을 쓰기 위해, 천생 평론가인 오 씨의 시집 해설 읽기는 미루어 두었다. 그의 해설을 읽는다면 김기택의 시에 관한 온전한 감상은 (그것이 비록 남루할지언정) 절대 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평론가의 글은 자주 독자의 머릿속에 돌에 새겨놓은 관념으로 작용한다.
 시집을 열면 나오는 첫 번째 시가 <우주인 2>이다.


 우주인 2


 몸무게 없는 몸으로 그는 검푸른 창공에 홀로 떠있습니다. 깊디깊은 허공에 익사하여 온통 부력만 남은 무중력 하늘에 둥둥 떠다니고 있습니다. 벌어진 입과 귓구멍 콧구멍에 무한을 가득 채운 채 끝없이 투명한 공기에 매장되어 있습니다. 막힘없이 펼쳐진 하늘에게 목 졸리고 숨구멍 막히고 팔다리 결박되어 우주 쓰레기들과 함께 떠돌고 있습니다. 놀란 입을 벌리고 눈을 허옇게 뒤집고 있는 공포는 아직도 우주선에서 조난당하고 있는 중입니다. 영혼과 천연 방부제가 배합된 우주 공기는 오래 묵은 미라를 칭칭 감아 하늘 높이 별처럼 띄워놓고 있습니다.



 시집을 발간한 시점이 2012년. 난 이 시를 읽으며 송구하면서도 섬뜩하게도 김민정의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에 든 시 <곡우>, 이날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는 24절기 중 여섯 번째 절기인 곡우穀雨와, 2014년 곡우를 즈음해 사고가 난 세월호 사건을 애도하기 위한 哭의 비, 곡우哭雨를 중의한 시 <곡우>가 떠올랐으며, 다시 강조하건데 송구하면서도 섬뜩하게도 세월호 안에 갇힌 채 익사한 넋들을 떠올리고 말았다. 제목이 <외계인>이고 외계인이 익사한 공간이 검푸른 창공, 그것도 “투명한 공기에 매장된 창공”일 뿐, 사실 우주의 투명한 공간들과 물속, ‘매장된 곳’과 ‘세월호 내부’는 적어도 비슷하거나 같은 개념이니 이 시를 읽고 이리 생각한 독자는 분명히 나 한 명은 아닐 듯하다. 그렇다. 시가 섬뜩하다. 시를 읽으면서 왜 이런 자유로운 연상 작용이 가능한가 하면, 시인이 익사체 또는 익사체로 보이는 대상을 상당히 객관화 하여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읽어온 시들 가운데 죽음을 주제, 적어도 소재로 한 것들이 어디 한두 편이었나. 그것들 가운데 이 시만큼 노골적인 죽음의 상태를 내놓고 묘사한 것을 나는 기억할 수 없다. 물론 시를 읽어온 내력이 일천하기는 하지만.
 두 장을 더 넘기면 <넥타이>란 제목의 시가 또 하나 나온다.



 넥타이



 목이 힘껏
 천장에 매달아 놓은 넥타이를 잡아당긴다
 공중에 들린 발바닥이 날개처럼 세차게 파닥거린다


 목뼈가 으스러지도록 넥타이가 목을 껴안는다
 목이 제 안에 깊숙이 넥타이를 잡아당인다
 넥타이에 괄약근이 생긴다


 발버둥치는 몸무게가 넥타이로 그네를 탄다
 다리가 차낸 허공이 빙빙 돈다


 몸무게가 발버둥을 남김없이 삼키는 동안
 막힌 숨을 구역질하는 입에서 긴 혀가 빠져나온다


 벌어진 입이 붉은 넥타이를 게운다
 수십 년 동안 목에 맸던 모든 넥타이를 꾸역꾸역 게운다
 게워도 게워도 넥타이는 그치지 않는다


 바닥과 발끝 사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줄어들지 않는 한 뼘의 허공이
 사람을 맨 넥타이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다



 실감나시지? 넥타이로 목을 매단 사람이 죽어가는 몇 분을 그대로 그려놓았다. 시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진심으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상당히 잘 쓴 시 아닌가 싶다. 마지막 연, “바닥과 발끝 사이 / 아무리 발버둥쳐도 줄어들지 않는 한 뼘의 허공”, 이 절망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생과 사의 간극을 어떻게 더 절묘하고 극명하게 묘사할 수 있겠는가. 지금 시집의 앞날개를 보니까, “시인은 다양한 죽음의 사건을 인간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본다.”라고 써놓았다. 이 독후감을 쓴 다음 곧바로 읽을 오생근 씨의 해설에 나온 문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적확한 설명이다. 조금도 애도나 안타까움이나 동정의 묘사도 포함하지 않은 죽음 날 것의 상태에 관한 묘사. 그런데 어쩔 수 없다. 읽기가 힘들다. 이런 시들은 위에서 얘기했듯이, 절묘한 묘사를 든 시라 할지라도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물론 모든 시가 다 이렇지는 않다. 예를 들어, “우산들은 어떻게 공기 속에서 비 냄새를 찾아내 / 첫 빗방울이 떨어지자마자 활짝 펴지는 것일까. / 눈물은 어떻게 슬픔이 지나가는 복잡한 길을 다 읽어두었다가 / 슬픔이 터지는 순간 정확하게 흘러내리는 것일까. / 저 많은 꽃들은 어디에 숨어 있다가 / 봄과 나뭇가지에 마련된 자리에 찾아와 한꺼번에 터지는 것일까. / 비가 그치면 저 많은 우산들은 / 어떻게 제 이름이 새겨져 있는 자리를 찾아 일시에 증발해버리는 것일까.”(<우산을 잃어버리다> 부분)라고 삶과 자연의 연관을 잃어버린 우산을 통해 노래하기도 한다. 그래도 내 경우엔 죽음의 임팩트가 과했다. 좋은 시집이기는 하지만 내게 맞지 않는 것을 남에게 추천할 수는 없는 것. 아쉽지만 이 시집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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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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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야 이 책이 2013년 공쿠르 상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놀랐다. 근데 조금 덜 놀랐다. 2016년 공쿠르 상을 받은 레일라 슬리마니의 <달콤한 노래>를 통해 벌써 크게 한 번 놀랐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을 받은 순서로 보면 <오르부아르>로 먼저 놀랐어야 하지만 내가 책을 읽은 순서로는 그랬다.
 난 공쿠르 상을 받은 작품은 좀 멀리하는 경향이 있었다. 글쎄 그동안 읽었던 수상작 가운데 유독 나하고 맞지 않는 작품들이 많아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더러 공쿠르 상의 특징을 말해보라면, ① 보통의 독자들은 해독 불가능할 정도로 난해해, 전문적이고 고급한 문학수업을 수료한 자들만이 서로 공감하기 위한, 공감할 수 있는 작품에 한정하고, ② 전문가들로 하여금 딱 하루 동안 책을 읽고, 해석하고, 논평할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을 넘어서는 작품은 수상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③ 세상에서 제일 잘난 척하면서도 상금은 가장 쪼잔하게 주는 문학상이었다. 딱 1년 전에 <달콤한 노래>를 읽음으로 해서 이런 선입관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오르부아르>로 드디어 선입관이 쪼개지기 시작했다. <오르부아르>를 몇 마디로 정의하자면, 쉽게 이해되고, 재미있으며, 불길한 숫자라고 칭하는 666쪽에 달할 만큼 공쿠르 상 수상작치고 길기까지 하다. 책은 출판사 열린책들의 특징인 작은 판형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쪽 당 25행을 배열해 글씨가 촘촘하게 박혀있어 분량은 만만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재미있는지 이틀이면 책 다 읽고 나처럼 독후감도 쓴다. 당연히 밤마다 쐬주 한 병씩 이틀 밤에 두 병을 마셔대면서도. 어떻게 이틀 밤이냐고? 월요일 오후에 책 읽기 시작하면, 월요일 밤에 제철 방어회 곁들여 일품 진로 한 병, 화요일 밤에 두부 안주해서 미르25 한 병, 수요일 오전 일찌감치 책 읽기 마치고 독후감까지 쓰면 이틀 맞잖아.
 1차 세계대전은 1914년 한여름에 시작해 1918년 빼빼로 날, 11월 11일에 끝나는데, 소설을 시작하는 1918년 11월 2일에는 프랑스 군도 그렇고 독일 군도 그렇고 휴전 내지 종전에 관한 협정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훤히 알고 있었는데, 프랑스와 독일은 이미 기존의 국경이 있었던 바라, 한국전쟁처럼 종전 시점의 전선에서 새로이 경계를 정한다는 전제 때문에 휴전 직전에 작렬했던 고지 전투는 아군이나 적군이나, 장군이나 이등병이나, 나나 너나 생각지도 못했던 터, 병사들은 그저 참호 안에 엎어져 연인이나 아내에게 편지를 쓰고, 담배내기 카드놀이를 하고, 둘러앉아 웃통을 벗고 이를 잡고, 우리의 주인공 에두아르 페리쿠르처럼 병사들의 모습을 수첩에 크로키에 담는 등 편하게 시간만 죽이고 있었던가보다. 여기에 등장하는 악마적 미남 인간 하나가 있었으니 끝날 때까지 단 한 구석의 미덕을 보여주지 못하는 불쌍한 악당 앙리 도네프라델 중위. 거덜이 난 귀족 가문의 후손으로 장교로 참전하여 적어도 대위 타이틀을 따고 제대를 해서 좋은 직장을 거쳐 왕창 돈을 벌고, 그 돈으로 가문의 성chateau을 원래 모습으로 완벽하게 보수하는 일을 자기 인생의 일차 목표로 하고 있는 인물이다. 근데 별 공훈도 없이 전쟁이 끝나려 하니 애가 타지 않을 수 없는 일. 까짓 병사들의 목숨이야 내 알 바 아니니까 얼른 국지적인 전투라도 하나 터지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던 터, 기어이 일을 벌여, 늙은 병사 하나와 젊은 병사 하나, 이렇게 두 명을 한 조로 평화롭게 보이는 112 고지 위의 적진을 수색하라고 지시한다. 명령을 받은 두 병사는 낮은 포복으로 엉금엉금 철조망을 걷어내며 기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세 발의 총성이 빵, 빵, 빵, 하고 들리더니 늙은이 하나와 젊은이 하나가 시간차 거의 없이 불귀의 객이 되어 버리고, 지금 평화조약을 맺으려고 하는데 자기편 병사를 쏘아죽인 ‘독일놈들’에게 분노가 솟구친 정의의 프랑스 군인들 모두는 수류탄을 주머니에 넣고 소총을 집어든 채 112 고지를 향해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돌진해나가 기어이 고지를 탈환하고 만다.
 이렇게 젊고 야망에 차고 잘 생긴 젊은 장교 한 명의 수작질 때문에 666쪽에 달하는 장편 소설이 한 편 탄생해 세계적 명성을 즐기고 있는 공쿠르 상을 받아내기에 이른다. 어수룩하고 도무지 자기주장을 내세울 줄 모르는 한 선량한 전직 회계원 출신의 병사 알베르도 줄레줄레 돌격하는 병사들의 뒤를 좇아 뛰다가, 하필이면 재수 없이 수색 나갔다 오라는 명령을 받고 총알받이가 된 전우의 시체 옆을 지나다 그들의 상처를 발견하는데, 에그머니, 이들의 총상이 등에서 가슴 쪽으로 뚫린 거였다. 즉 독일군의 총알에 죽은 게 아니고 프랑스군이 쏜 총알에 맞아 허무하게 죽었다는 뜻. 알베르가 놀라 주위를 돌아보는 순간 누군가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건장한 앙리 도네프라델 중위는 그대로 돌진해 알베르를 약 2미터 깊이의 미끈미끈한 진흙구덩이로 빠뜨려 버린다. 이후 하필이면 독일군 폭탄이 터져 흙더미가 알베르의 몸 위로 40센티미터 가량 덮여 그는 서서히 죽음을 맞게 되고. 이와 거의 동시에 우리의 주인공 에두아르 페리쿠르는 불쌍한 알베르가 빠진  진흙 구덩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유탄, 그러니까 조준사격이 아니라 그냥 흘러가던 총탄에 오른쪽 다리를 맞아 철퍼덕 쓰러져버린다. 그러나 주인공다운 휴머니즘에 입각해 자신도 다리가 아파 넋이 나갈 정도이면서도 아픈 몸을 이끌고 기어, 기어가 거의 죽어가는 알베르를 흙더미 속에서 꺼내주고 이미 숨을 멈춘 그의 몸 위로 함께 쓰러지면서 건장한 에두아르의 몸무게와 중력의 작용으로 알베르의 갈비뼈 몇 대가 부러지며 심장을 꾹 눌러주는,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심폐소생술을 한 꼴로, 놀랍게도 이미 죽은 알베르는 갑자기 기침을 콜록콜록 하며 죽은 자들 가운데 삼분 만에 다시 살아나고야 만다. 바로 이 순간, 또 한 방의 포탄이 멀지 않은 곳에 떨어지며 큼지막한 파편이 팽글팽글 팽글로스 선생이 왈츠를 추듯 회전하며 맹렬한 속도로 날아와 프랑스 최고의 벼락부자 집안에서 언제나 최고급으로 살던 반항아이면서 예술적 기질이 뛰어나며 놀라울 정도로 머리가 좋은 우리의 주인공 에두아르 페리쿠르의 턱 부분을 강타해, 아래 턱 모두와 혀 전체를 육신에서 성공적으로 제거해버린다.
 작품의 줄거리는 여기까지. 정확하게 전체 스토리의 2 퍼센트를 소개했다. 나머지 98 퍼센트는 직접 읽고 그 재미에 빠져보시라고.
 100년 전에 있었던 비극적인 전쟁과 후유증에 관해 쓰고 읽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건너뛰자. 이 소설에 관해 거창하게 반전문학이니 시대 비평적이니 하는 단어를 쓰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다 읽고 내가 느낀 감상은 ‘정말 잘 쓴 대중문학’이라는 것. 당연히 잘 생긴 악당, 그것도 태생적이고 돌이킬 수 없고 회개조차 하지 못하는 절대 악당인 앙리 도네프라델이 등장하고, 나머지 인물들은 극한 부자에 최고 권력자까지 이르는 줄을 가지고 있거나, 일신상의 영달, 아니면 적어도 보신을 위해 복지부동하는 공직자들이며, 유일하게 정의로운 인물 조제프 메를랭은 늙고 냄새나고 더럽고 우울하고 늘 틀니가 덜거덕거리며 다른 이들에게 불쾌감만 주는 퇴물 하급, 하급 중의 하급 공무원이다.
 역자 임호경은 그가 번역한 작품들이 하도 잘 팔려 ‘개이득’을 봤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하는데, 그에게 ‘개이득’을 주는, 즉 겁나게 많이 팔리는 책답게 리얼한 묘사와 긴급한 상황설명, 최고와 최하 계급의 극적 보색대비 등을 기막히게 배열해놓았다. 길지만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게 만드는 것도 이게 보통 솜씨 갖고 되는 일이 아닐 터. 나는 소위 베스트셀러라고 소문이 난 책들은 웬만큼 시간을 흘려보내 소문이 거의 꺼질 때쯤 읽는 습관이 있는데, <오르부아르>는 말 그대로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오를 만한 작품이라고 인정한다. 공쿠르 상을 받고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다고 해서 물론 명작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하나 확실한 건, 겁나게 재미있는 책이고, 세상의 모든 소설 가운데 재미만큼 독자에게 매력적인 포인트는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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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 민음사 모던 클래식 69
다니엘 켈만 지음, 임정희 옮김 / 민음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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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생 독일 본 태생의 여성작가 율리 체를 읽고, 나는 최근에 “평행 우주”라는 현대물리학 용어를 이용해 특정 상황에 대해 과연 어느 것이 진실인지, 진실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지, 라는 의문에 관해 독후감을 썼다. 오늘 1975년 생 독일 뮌헨 태생 남성작가 다니엘 켈만의 <에프F>를 읽고서도 비슷한 얘기를 하게 될 것 같다.
 특정 사건이나 행위, 결과물을 놓고 이를 생산하고, 원인이 되고, 주체가 되는 인물이 확실하고, 정말로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 켈만은 <에프>를 쓰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 <에프>의 주된 관점은 의심, 혼돈, 역할의 전이 등으로 나타난다. 이를 위해 아버지 ‘아르투어’와 그의 첫째 아들인 가톨릭 사제 마틴, 마틴의 배다른 쌍둥이 형제 이반과 에릭을 등장시킨다. 만일 일란성 쌍둥이 형제 이반과 에릭을 캐스팅하지 않았다면 작가는 훨씬 더 많은 분량의 글을 보태야 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는지는 역시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그렇다. 지금 이후 독후감을 아무리 많이 써내려간다 해도 이 다중적인 의미와 열린 결말과 얽힌 관계를 갖는 매력적인 작품 <에프>를 어떤 작품이라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그저 직접 읽어보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혼남이자 거의 아마추어 수준의 작가인 아르투어 씨는 하루 날을 잡아 두 번째 아내가 낳은 일란성 쌍둥이 아들 이반과 에릭을 데리고 첫째 아내가 낳은 아들 마틴을 만나러 가는 것으로 작품은 시작한다. 원래 아버지와 아들 사이라는 것이 나이를 불문하고 별로 살갑지 않아 어디를 갈까, 잠시 궁리하다가 최면술사의 공연을 보러가기로 한다. 최면술사 린데만 역시 다른 최면술 공연과 다름없이 관객 중에 몇 명을 무대에 올려 최면을 거는 시범을 보이는데,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우리의 주인공 부자들을 불러낸다. 자긴 최면에 걸리기엔 너무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아르투어 씨는 최면을 시도하는 린데만에게 계속적으로 자신은 최면에 걸릴 수 없는 인간이라 말하지만 최면술사는 아르투어에게 자신과 자신의 일인 창작을 위해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현실에서 도망치는 것이 어떤가, 라고 최면을 건다. 결코 최면에 걸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아르투어 씨는 그길로 첫째 아내 집 앞에 아들 셋을 내려놓고, 부부 공동 계좌에서 전 재산을 인출해 한동안 돌아오지 않을 테니 기다리지 말라는 전보를 보내고는 떠나버렸다. 이후 세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아버지를 다시 본 일은 결코 생기지 않는다.
 책의 1부는 이렇다. 2부는 가톨릭 사제가 된 큰아들 마틴의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된다. 작은 비밀 하나 알려드릴까? 내 주위에 가톨릭 신부도 있고, 가톨릭 환자 수준의 신자들도 무척 많고, 사제나 수녀의 아버지들도 몇 있다. 그 사람들에게 들었는데, 사제들이 가장 번민하는 것이 (그들의)하느님이 정말 존재하는지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 서품 받기 바로 전에 신앙을 포기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하는데, 이게 진실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렇게 들었다는 말씀이니 오해는 마시라. 마틴 역시 천주의 존재에 대하여 심각하게 의문을 갖는 사제로 등장한다. 천주의 존재를 의심하는데 어찌 기적과 용서와 죄의 사함을 인정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틴은 습관적으로 미사를 집전하고, 고해를 받으며 보속을 주문한다. 어느 날 “버블 티는 내가 좋아하는 차가 아니야.”라는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입은 청년이 자기가 한 남자를 살해했다고 고해한다. 버터플라이, 나비 모양으로 날개를 휙 접어 날을 펼치는 잘 드는 칼로 푹, 쑤셔 죽여 버렸단다. 이걸 어떻게 하지? 경찰에 연락을 해야 하나? 고해 신부로서 비밀을 준수하며 그의 죄를 사해주어야 하나? 마틴은 그냥 손쉽게 죄를 면해주지만 세속의 형법 상 무죄판결을 아님을 밝혀야 한다. 고해를 마치자 이복동생 에릭의 비서에게 전화가 와서 그를 만나러 가 점심을 먹고, 몇 십 년 만에 유명 소설가가 된 아버지가 찾아와 만나고 하루를 보낸다.
 1부에서는 부자가 서로 떨어져 살게 되고, 2부에선 위에서 설명한대로 큰아들 마틴이, 4부에선 유능한 자산관리사가 된 에릭, 5부에선 원래 화가가 되려고 했으나 자신만의 예술을 발견하는데 실패해 큐레이터로 직업을 바꾼 이반이 등장한다. 3부는 이 부자들의 선조가 어떤 내력으로 자신들의 DNA 디옥시리보 핵산을 후대로 이어갔는지 가계가 잠깐 소개된다.
 그래 문제는 1부(아버지 아르투어와 최면술사 린데만), 2부(마틴), 4부(에릭), 5부(이반)이 서로 얽히고설킨 사건과 관계와 소통불능이 F적으로, 라틴말로 Fatum, 운명적인 연결고리로 엮여 난장판을 이루게 된다. 이들 가족 간의 이런 불행, 적어도 행복하지 않은 상태의 상관관계와 원인은 등장인물들이 결코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가운데 오직 한 명, 독자만 마치 구름 위의 신들처럼 알게 되는 것도 재미있다. 물론 세 아들보다 인생을 많이 살아 약간 도가 튼 아버지 아르투어는 눈치 정도를 채고 있는 것 같지만. 이런 운명의 난장판, 그 속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당신과 나를 비롯한 모든 인류일지니, 나는 이 책 <에프>를 참 재미있게 읽었으며, 작가 다니엘 켈만의 다른 작품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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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 한계 시간 민음사 모던 클래식 68
율리 체 지음, 남정애 옮김 / 민음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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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리 체의 전작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을 읽고 이거 참 난감한 작가가 또 한 명 등장했다 싶었다. 이번에 <잠수 한계 시간>을 고를 때는 거의 고민을 하지 않은 채 선뜻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는데 그건 우습게도 <형사 실프……>를 읽으며 난감했던 기억을 그동안의 시간이 풍화시켰기 때문이었다. 1974년 본에서 태어난 범띠 체 여사님께선 일찍이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소설도 쓰기 시작했으며 UN에 근무하며 세계평화에 이바지하기도 하고, 법학박사답게 법조인으로도 활약하면서, 놀랍게도 주어진 시간에 비하면 무시무시한 양의 소설, 아동문학, 에세이, 평론집들을 출간해내는 바쁜 일생을 지내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팔자도 참. 뭐 하러 그리 바쁘게 살아. 그저 먹고 살 만하면 좀 편하게 지내지. <잠수 한계 시간>의 주인공 스벤 피들러처럼 저 멀리 지구의 가장 끝에 위치한 카나리아 제도 한 구석에다 보기 좋은 집을 한 채 지어놓고 유유자적 여유 있는 중년, 노년을 지내는 것도 째지게 멋있지 않나? 하긴 주인공 피들러는 성姓, 가문으로 봐도 깽깽이나 켜며fiddler 한 평생 지내기 딱 좋은 집안이기도 하다. 내가 독일의 대학 입학 절차와 징병제도에 대해 잘 모르지만, 스벤 피들러는 입학자격 시험에 높은 점수로 합격하고 곧바로 진학을 하는 대신 일단 공병대 잠수병으로 입대를 하고, 군 복무를 1년 더 연장을 한 연후에 비로소 대학에 진학해 5년 동안 법학을 공부하고 대단히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필기시험까지 마쳤다. 이어 구술시험을 보는데 두 명의 수험생이 네 명의 시험관에게 면접을 당하는 모양이고, 구술시험까지를 마치면 곧바로 해당지역 사법 관련 공무원이 되는 것같이 설명한 걸로 봐서 로스쿨 비슷한 것 같다. 작가 율리 체는 구술시험까지 당당하게 합격해 사법부 법조인으로도 활약하지만, 공부 잘 한 우리의 주인공 스벤 피들러에게는 심술궂은 면접관 브룬스베르크 박사가 무엇을 물어보는가 하면, “피들러 씨, 당신은 아는 게 많으니까 몽테스키외라는 이름도 분명히 알 겁니다. 그렇다면 그 철자를 말해보세요.” 삼권분립 정신으로 미국의 건립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정치철학자인 줄은 잘 알지만 그의 이름자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을 필요는 없었을 터. 버벅거리는 스벤에게, 교수는 다음 질문을 한다. “좋아요 피들러 씨, 그렇다면 국법학의 성스러운 아버지의 성姓 말고 이름을 빨리 말해보세요.” 난 국법학의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다. 스벤은 법학을 전공했으니까 ‘볼테르’인 건 아는데, 이 글을 읽는 분 가운데 볼테르의 이름을 아시는 분 몇 명이나 될까? 스벤도 몰랐다.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프리드리히”라고 대답을 해버렸다. 대답을 하고 나니 번쩍 머리에 떠오르는 각성, 그건 볼테르의 이름이 아니라 질문을 한 브룬스베르크 교수의 이름이었다. 두 가지 질문을 완벽하게 말아먹은 스벤은 당연히 탈락할 줄 알고 있었으나 의외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한다. “당신은 좋은 법률가입니다, 피들러 씨.”라는 격려와 함께. 자신의 앞날과 성공을 위해 마치 전쟁터 같은 시험을 치룬 후 스벤은 다시는 독일과 아무 관계도 맺고 싶지 않다고 결정을 하고, 그리하여 자신보다 나이가 열 살 어린 열여섯 살의 소녀 ‘안톄’와 함께 아프리카 북서쪽 카나리아 제도의 북섬에 자리를 잡고 독일, 미국 관광객들에게 잠수교습을 하며 보낸 세월이 14년, 이제 마흔 번째 생일을 앞둔 시점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그 해 11월, 아주 부유한 독일인 커플이 스벤에게 잠수를 배우기 위해 섬에 도착하니, 남자는 휴양지에 어울리지 않는 노타이에 맞춤 양복 차림의 마흔두 살의 테오도르 하스트 씨, 여자는 독일 여배우이며 드라마 “위아래”의 주인공으로 이름을 떨친 욜란테 아우구스타 조피 폰 데어 팔렌. 욜라는 아직 젊음과 탄력 넘치는 체격과 미모를 겸비하고 있었으며, 나중에 알게 되지만 미리 알아도 손해될 이유가 없어 소개를 하니 다리 사이를 깨끗하게 면도하고 다니는 것이 습관인 여자이고, 테오는 유명 단편소설을 몇 편 발표한 후 말로만 대작을 쓰는 중 또는 구상하고 있는 중임을 주장하면서 사실은 욜라의 예금통장에 고인 현금 빼먹는 재미에 취미를 붙인 거 같은 인물로, 욜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건 그녀의 돈과, 욜라가 아닌 다른 모든 여성 앞에선 심각한 발기부전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렇게 보인다. 욜라의 성姓 ‘폰 데어 팔렌’에서 볼 수 있듯이 출신부터가 쇠똥을 뒤집어쓴 채 엄마 배속에서 나올 때부터 말 그대로 주둥이에 은수저를 물고 있던 터라 한때 히틀러가 소유하고 있었지만 정작 한 번도 키 작은 미치광이를 태워본 적 없는 세계에서 가장 사치스런 요트를 가지고 있는 집안에서 자란 덕택에 고급 요트에 대한 지식과 작은 배의 운전에 관한 모든 것에 박식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부자 아버지는 꼭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건강한 몸을 지니고 마냥 놀 수만은 없어서 이제 영화제작계의 큰 손으로 활약을 하고 있단다. 하여간 욜라의 배에 관한 지식은 책 후반부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나타나게 된다.
 소설은 비싼 비용을 지불할 고객 두 명이 섬에 나타나 앞으로 두 주일을 보내면서 사달이 나는 이야기다. 일단 짐작은 하시겠지? 젊은 미녀와 그녀의 나이든 연인. 그들 사이에 나타난 건장하고 진중한 남자. 언뜻 보면 테오는 욜라에게 거의 상습적으로 폭력을 구사해 언젠가는 자기가 테오에게 맞아 죽는 건 아닌가 하는 공포감이 욜라에게 스며있는 것처럼 보이고, 이런 상태에서 욜라는 잠수 선생인 스벤을 발견한 순간부터 그를 유혹하기로 결심을 한 것처럼 보이며, 심지어 테오가 보는 앞에서도 망설임 없이 스쿠버 강사와 키스를 나누는데 테오 역시 그것에 심각한 반응으로 보이지 않는 이상한 커플. 이 정도 읽고, 나는 율리 체가 쓴 전작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간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적어도 관념적 표현으로 ‘평행 우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은 90 퍼센트 이상이 주인공 스벤의 일인칭 관점에 의거해 쓰였고, 10% 미만이 욜라의 일기로 구성되어 있다. 앞부분에서는 두 명의 기록자가 거의 비슷한 사실에 관해 서술하고 있지만 내용이 진전됨에 따라 극적으로 다른 시각으로 변하고 만다. 즉 한 사건, 죽음에 이를 수도 있었던 폭행사건을 관찰하는데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서술하고 있는 걸 보면서 독자는 어쩔 수 없이 미궁에 빠져들고 만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다.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는 치명적 상해를 당하고, 스벤과 욜라 둘 중의 하나는 완전한 거짓말쟁이란 사실.
 누가 거짓을 기록했을까? 나도 모르겠다. 책을 다 읽고서도. 작가가 애초에 이런 결말을 정해놓고 쓴 것 같은 평행 우주의 혼돈. 읽어보시라. 내가 여태 쓴 것보다 79배 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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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고달파 1
모옌 지음, 이욱연 옮김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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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 말리는 모옌 씨. 여전히 무대는 시골 벽지다. 청 말부터 중화민국 시절까지 지역에서 나름대로 선한 이름을 날렸던 대지주 서문뇨 씨가 주인공이다. 이름 이상하시지? 서문뇨. <수호지>의 호색한 서문경과 같이 성이 ‘서문西門’이요, 이름이 ‘료鬧’다. 그래서 ‘서문료’인데 자음접변 순행동화에 의거해 ‘서문뇨’라고 쓴다. 저 ‘료鬧’자가 시끄러울 료. 중화민국 시절까지 지주 신분을 유지했다하면, 아무리 ‘나름대로 선한’ 지주라도 중화인민공화국에 접어들어 어떻게 됐을까? 맞습니다. 사회분위기라는 것이 있어 많은 농민출신의 인민들이 그를 불쌍하게 여겼을지언정 당연히 악덕지주로 몰려 총살을 당하고 만다. 그것도 다행이다. 한 방에 갈 수 있으니. 이 서문뇨는 그것이 억울해서, 살아생전 자기 집을 둘러싼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생기지 않게 활수한 은혜를 베풀었건만 집안을 거덜내는 것도 모자라 바로 자신의 도움을 받았던 그 사람들에 의하여 총살형에 처해진 것이 너무 억울해, 이 양반이 염라대왕 전에 머리를 조아리기는커녕 난 죄 없다, 억울하다 바락바락 기어오르고 산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지옥의 고문까지 당하면서도 기어이 억울해, 억울해 악을 쓰는 바람에, 아 그 자식 되게 시끄럽네(鬧), 성가신 일을 참지 못한 염라대왕께서, 그래 너를 다시 세상에 보내줄게, 하고 콧바람을 한 번 휭 불어, 다시 세상에 태어나긴 했지만 정신차려보니 장대한 물건을 달고 수놈 나귀로 나왔다는 거 아닌가. 다시 윤회의 사슬을 타게 된 서문 선생은 레테의 강변에서 망각의 즙을 제조하고 있던 꼬부랑 할멈 몰래 망각의 묘약을 땅바닥에 슬쩍 흘려버려 전생의 기억을 모두 간직한 채 다시 자기가 죽었던 저택의 나귀로, 그것도 1950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지 일 년이 채 못 된 시절에 다시 태어났으니 어찌 좋은 팔자를 기대하리오.
 일찍이 서문뇨 선생에게 정실부인 백씨가 있었으나 슬하에 아이가 생기지 않아 백씨가 거의 강권을 해 자신이 친정에서 몸종으로 데리고 온 영춘을 침대에 밀어 넣어 두 번째 부인으로 삼아 딸 아들 쌍둥이를 낳으니 큰 아이가 아들로 이름이 금룡金龍이요, 두 번째가 딸이어서 보배로운 봉황 보봉寶鳳이니 더 이상 좋을 수 없었단다. 근데 선생이 젊은 영춘을 한 번 품었는데 다시 나이 든 백씨의 금침에 들겠는가. 거기까지면 그래도 좀 나은데, 젊은 살을 한 번 맛을 본 선생은 또다시 젊은 여인네 추향이를 첩으로 들인 바 있었다. 왜 이런 지난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일개 가축에 불과한 나귀로 태어났으니 나귀의 주인이 있을 거 아닌가. 바로 그 주인이 누군가 하면 한 겨울에 동네 사당에 갓난 아이 하나가 빽빽 울고 있는 걸 서문 선생이 안고 들어와 먹여주고 재워주고 나름대로 정성껏 키워 장성시킨 집안의 머슴 남검藍臉. 남藍은 쪽 빛깔 남자요, 검臉은 뺨 검자라, 푸른 뺨이란 이름으로 얼굴의 반 정도를 푸른 점이 덮고 있어서 이름을 그리 지은 것이다. 서문 선생이 동네 농민들한테 총 맞아 죽고 나귀가 되어 환생을 해보니, 이 남검이란 놈이 글쎄 자신의 어여쁜 둘째 마누라 영춘을 아내로 맞아 말 그대로 봄을 맞는(迎春) 중인 거였다. 아내와 쌍둥이 남매까지 남검이 거두어 자식 이름도 서문금룡, 서문보봉에서 남금룡, 남보봉으로 바꾸었으니 속이 편할 이치가 없다. 그래 나귀로 태어나 이제 ‘서문나귀’로 불리는 서문뇨 선생의 두 번째 생은 날 때부터 시끄럽기 이를 바가 없으니, 이 책을 읽는 행위가 바로 서문뇨 선생의 시끄럽기 짝이 없는 몇 번의 환생, 순서로 하면 나귀, 소, 돼지, 개, 원숭이라, 사람이었던 시절까지 합해 여섯 번의 윤회를 감상하는 일이 된다.
 세계적인 수다꾼인 모옌의 책 <인생은 고달파>가 재미없기도 쉽지 않은 이유는, 1950년이면 5년 전에 한반도의 북쪽에서 그랬듯이 차근차근 지주, 자본가들을 숙청하기 시작했을 때이고, 당연히 토지개혁을 단행해 지주를 제외하고 농사만 지으면 일인당 1무 6촌의 땅을 ‘잠깐’ 불하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집단 농장 형태로 전환하다가, 드디어 1966년을 맞아 문화혁명을 시작하면 앞으로 10년이 지나 마오 주석이 숟가락 놓을 때까지 홍위병이란 광풍이 한 바탕 휘몰아치고, 이어서 개방의 바람을 맞아 지난 시절에 딱 금 그어놓은 줄 알았던 자본주의가 다시 대륙을 점령해버리는 등 조금도 쉴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뭐 모옌의 다른 작품들도 중국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멀리는 일본군 침입 시절부터 시작해 현대 중국까지의 변화무쌍한 시절과 사람들의 변신을 그려온 바와 같이 이런 종류의 입담엔 도가 텄으나, 이 책에선 놀랍게도 모옌 선생이 직접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소년, 청년, 중년의 모습으로 직접 입을 털고 있기도 하다.
 이 책도? 그렇다. 이 책도 그가 쓴 다른 작품, 예컨대 <붉은 수수밭(혹은 ‘홍까오량 가족’)>, <개구리>, <풀 먹는 가족>처럼 시골 깡촌에서 벌어지는 엽기발랄한 인간들에 의한 난리법석을 그리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역시 다른 작품들처럼 모옌의 <인생은 고달파> 역시 기본적으로 사랑 이야기다. 사랑도 그냥 갑식이, 을숙이가 하는 사랑, 대충 사랑하다 우리 결혼이나 해버릴까, 해서 혼인을 하고, 같이 늙어가거나 한 판 코피 나는 부부싸움 끝에 이혼해버리는 사랑이 아니라, 질기고 드런 사랑, 애초에 팔자 또는 운명에 깊고 깊게 새겨진 빌어먹을 사랑의 이야기다. 내가 알기로, <열세 걸음>이던가 하여튼 모옌이 쓴 다른 작품의 해설에서 읽은 바, 모옌이 윌리엄 포크너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특별히 좋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작품이 <인생은 고달파>, 원래 제목 <생사피로生死疲勞>인 것 같다. 물론 내가 읽은 범위 안에서 말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포크너의 시골 엽기취향과 마르케스의 붐 문학적 요소. 이런 것들이 중국으로 넘어와 대륙의 황사와 태풍을 만나면 딱 이런 모습으로 변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작품. 궁금하시지? 읽어보시면 된다. 만사 시끄러울 료鬧자가 넘실거리는 흥미로운 소설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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