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프 민음사 모던 클래식 69
다니엘 켈만 지음, 임정희 옮김 / 민음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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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생 독일 본 태생의 여성작가 율리 체를 읽고, 나는 최근에 “평행 우주”라는 현대물리학 용어를 이용해 특정 상황에 대해 과연 어느 것이 진실인지, 진실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지, 라는 의문에 관해 독후감을 썼다. 오늘 1975년 생 독일 뮌헨 태생 남성작가 다니엘 켈만의 <에프F>를 읽고서도 비슷한 얘기를 하게 될 것 같다.
 특정 사건이나 행위, 결과물을 놓고 이를 생산하고, 원인이 되고, 주체가 되는 인물이 확실하고, 정말로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 켈만은 <에프>를 쓰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 <에프>의 주된 관점은 의심, 혼돈, 역할의 전이 등으로 나타난다. 이를 위해 아버지 ‘아르투어’와 그의 첫째 아들인 가톨릭 사제 마틴, 마틴의 배다른 쌍둥이 형제 이반과 에릭을 등장시킨다. 만일 일란성 쌍둥이 형제 이반과 에릭을 캐스팅하지 않았다면 작가는 훨씬 더 많은 분량의 글을 보태야 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는지는 역시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그렇다. 지금 이후 독후감을 아무리 많이 써내려간다 해도 이 다중적인 의미와 열린 결말과 얽힌 관계를 갖는 매력적인 작품 <에프>를 어떤 작품이라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그저 직접 읽어보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혼남이자 거의 아마추어 수준의 작가인 아르투어 씨는 하루 날을 잡아 두 번째 아내가 낳은 일란성 쌍둥이 아들 이반과 에릭을 데리고 첫째 아내가 낳은 아들 마틴을 만나러 가는 것으로 작품은 시작한다. 원래 아버지와 아들 사이라는 것이 나이를 불문하고 별로 살갑지 않아 어디를 갈까, 잠시 궁리하다가 최면술사의 공연을 보러가기로 한다. 최면술사 린데만 역시 다른 최면술 공연과 다름없이 관객 중에 몇 명을 무대에 올려 최면을 거는 시범을 보이는데,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우리의 주인공 부자들을 불러낸다. 자긴 최면에 걸리기엔 너무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아르투어 씨는 최면을 시도하는 린데만에게 계속적으로 자신은 최면에 걸릴 수 없는 인간이라 말하지만 최면술사는 아르투어에게 자신과 자신의 일인 창작을 위해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현실에서 도망치는 것이 어떤가, 라고 최면을 건다. 결코 최면에 걸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아르투어 씨는 그길로 첫째 아내 집 앞에 아들 셋을 내려놓고, 부부 공동 계좌에서 전 재산을 인출해 한동안 돌아오지 않을 테니 기다리지 말라는 전보를 보내고는 떠나버렸다. 이후 세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아버지를 다시 본 일은 결코 생기지 않는다.
 책의 1부는 이렇다. 2부는 가톨릭 사제가 된 큰아들 마틴의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된다. 작은 비밀 하나 알려드릴까? 내 주위에 가톨릭 신부도 있고, 가톨릭 환자 수준의 신자들도 무척 많고, 사제나 수녀의 아버지들도 몇 있다. 그 사람들에게 들었는데, 사제들이 가장 번민하는 것이 (그들의)하느님이 정말 존재하는지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 서품 받기 바로 전에 신앙을 포기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하는데, 이게 진실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렇게 들었다는 말씀이니 오해는 마시라. 마틴 역시 천주의 존재에 대하여 심각하게 의문을 갖는 사제로 등장한다. 천주의 존재를 의심하는데 어찌 기적과 용서와 죄의 사함을 인정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틴은 습관적으로 미사를 집전하고, 고해를 받으며 보속을 주문한다. 어느 날 “버블 티는 내가 좋아하는 차가 아니야.”라는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입은 청년이 자기가 한 남자를 살해했다고 고해한다. 버터플라이, 나비 모양으로 날개를 휙 접어 날을 펼치는 잘 드는 칼로 푹, 쑤셔 죽여 버렸단다. 이걸 어떻게 하지? 경찰에 연락을 해야 하나? 고해 신부로서 비밀을 준수하며 그의 죄를 사해주어야 하나? 마틴은 그냥 손쉽게 죄를 면해주지만 세속의 형법 상 무죄판결을 아님을 밝혀야 한다. 고해를 마치자 이복동생 에릭의 비서에게 전화가 와서 그를 만나러 가 점심을 먹고, 몇 십 년 만에 유명 소설가가 된 아버지가 찾아와 만나고 하루를 보낸다.
 1부에서는 부자가 서로 떨어져 살게 되고, 2부에선 위에서 설명한대로 큰아들 마틴이, 4부에선 유능한 자산관리사가 된 에릭, 5부에선 원래 화가가 되려고 했으나 자신만의 예술을 발견하는데 실패해 큐레이터로 직업을 바꾼 이반이 등장한다. 3부는 이 부자들의 선조가 어떤 내력으로 자신들의 DNA 디옥시리보 핵산을 후대로 이어갔는지 가계가 잠깐 소개된다.
 그래 문제는 1부(아버지 아르투어와 최면술사 린데만), 2부(마틴), 4부(에릭), 5부(이반)이 서로 얽히고설킨 사건과 관계와 소통불능이 F적으로, 라틴말로 Fatum, 운명적인 연결고리로 엮여 난장판을 이루게 된다. 이들 가족 간의 이런 불행, 적어도 행복하지 않은 상태의 상관관계와 원인은 등장인물들이 결코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가운데 오직 한 명, 독자만 마치 구름 위의 신들처럼 알게 되는 것도 재미있다. 물론 세 아들보다 인생을 많이 살아 약간 도가 튼 아버지 아르투어는 눈치 정도를 채고 있는 것 같지만. 이런 운명의 난장판, 그 속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당신과 나를 비롯한 모든 인류일지니, 나는 이 책 <에프>를 참 재미있게 읽었으며, 작가 다니엘 켈만의 다른 작품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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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 한계 시간 민음사 모던 클래식 68
율리 체 지음, 남정애 옮김 / 민음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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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리 체의 전작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을 읽고 이거 참 난감한 작가가 또 한 명 등장했다 싶었다. 이번에 <잠수 한계 시간>을 고를 때는 거의 고민을 하지 않은 채 선뜻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는데 그건 우습게도 <형사 실프……>를 읽으며 난감했던 기억을 그동안의 시간이 풍화시켰기 때문이었다. 1974년 본에서 태어난 범띠 체 여사님께선 일찍이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소설도 쓰기 시작했으며 UN에 근무하며 세계평화에 이바지하기도 하고, 법학박사답게 법조인으로도 활약하면서, 놀랍게도 주어진 시간에 비하면 무시무시한 양의 소설, 아동문학, 에세이, 평론집들을 출간해내는 바쁜 일생을 지내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팔자도 참. 뭐 하러 그리 바쁘게 살아. 그저 먹고 살 만하면 좀 편하게 지내지. <잠수 한계 시간>의 주인공 스벤 피들러처럼 저 멀리 지구의 가장 끝에 위치한 카나리아 제도 한 구석에다 보기 좋은 집을 한 채 지어놓고 유유자적 여유 있는 중년, 노년을 지내는 것도 째지게 멋있지 않나? 하긴 주인공 피들러는 성姓, 가문으로 봐도 깽깽이나 켜며fiddler 한 평생 지내기 딱 좋은 집안이기도 하다. 내가 독일의 대학 입학 절차와 징병제도에 대해 잘 모르지만, 스벤 피들러는 입학자격 시험에 높은 점수로 합격하고 곧바로 진학을 하는 대신 일단 공병대 잠수병으로 입대를 하고, 군 복무를 1년 더 연장을 한 연후에 비로소 대학에 진학해 5년 동안 법학을 공부하고 대단히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필기시험까지 마쳤다. 이어 구술시험을 보는데 두 명의 수험생이 네 명의 시험관에게 면접을 당하는 모양이고, 구술시험까지를 마치면 곧바로 해당지역 사법 관련 공무원이 되는 것같이 설명한 걸로 봐서 로스쿨 비슷한 것 같다. 작가 율리 체는 구술시험까지 당당하게 합격해 사법부 법조인으로도 활약하지만, 공부 잘 한 우리의 주인공 스벤 피들러에게는 심술궂은 면접관 브룬스베르크 박사가 무엇을 물어보는가 하면, “피들러 씨, 당신은 아는 게 많으니까 몽테스키외라는 이름도 분명히 알 겁니다. 그렇다면 그 철자를 말해보세요.” 삼권분립 정신으로 미국의 건립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정치철학자인 줄은 잘 알지만 그의 이름자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을 필요는 없었을 터. 버벅거리는 스벤에게, 교수는 다음 질문을 한다. “좋아요 피들러 씨, 그렇다면 국법학의 성스러운 아버지의 성姓 말고 이름을 빨리 말해보세요.” 난 국법학의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다. 스벤은 법학을 전공했으니까 ‘볼테르’인 건 아는데, 이 글을 읽는 분 가운데 볼테르의 이름을 아시는 분 몇 명이나 될까? 스벤도 몰랐다.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프리드리히”라고 대답을 해버렸다. 대답을 하고 나니 번쩍 머리에 떠오르는 각성, 그건 볼테르의 이름이 아니라 질문을 한 브룬스베르크 교수의 이름이었다. 두 가지 질문을 완벽하게 말아먹은 스벤은 당연히 탈락할 줄 알고 있었으나 의외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한다. “당신은 좋은 법률가입니다, 피들러 씨.”라는 격려와 함께. 자신의 앞날과 성공을 위해 마치 전쟁터 같은 시험을 치룬 후 스벤은 다시는 독일과 아무 관계도 맺고 싶지 않다고 결정을 하고, 그리하여 자신보다 나이가 열 살 어린 열여섯 살의 소녀 ‘안톄’와 함께 아프리카 북서쪽 카나리아 제도의 북섬에 자리를 잡고 독일, 미국 관광객들에게 잠수교습을 하며 보낸 세월이 14년, 이제 마흔 번째 생일을 앞둔 시점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그 해 11월, 아주 부유한 독일인 커플이 스벤에게 잠수를 배우기 위해 섬에 도착하니, 남자는 휴양지에 어울리지 않는 노타이에 맞춤 양복 차림의 마흔두 살의 테오도르 하스트 씨, 여자는 독일 여배우이며 드라마 “위아래”의 주인공으로 이름을 떨친 욜란테 아우구스타 조피 폰 데어 팔렌. 욜라는 아직 젊음과 탄력 넘치는 체격과 미모를 겸비하고 있었으며, 나중에 알게 되지만 미리 알아도 손해될 이유가 없어 소개를 하니 다리 사이를 깨끗하게 면도하고 다니는 것이 습관인 여자이고, 테오는 유명 단편소설을 몇 편 발표한 후 말로만 대작을 쓰는 중 또는 구상하고 있는 중임을 주장하면서 사실은 욜라의 예금통장에 고인 현금 빼먹는 재미에 취미를 붙인 거 같은 인물로, 욜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건 그녀의 돈과, 욜라가 아닌 다른 모든 여성 앞에선 심각한 발기부전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렇게 보인다. 욜라의 성姓 ‘폰 데어 팔렌’에서 볼 수 있듯이 출신부터가 쇠똥을 뒤집어쓴 채 엄마 배속에서 나올 때부터 말 그대로 주둥이에 은수저를 물고 있던 터라 한때 히틀러가 소유하고 있었지만 정작 한 번도 키 작은 미치광이를 태워본 적 없는 세계에서 가장 사치스런 요트를 가지고 있는 집안에서 자란 덕택에 고급 요트에 대한 지식과 작은 배의 운전에 관한 모든 것에 박식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부자 아버지는 꼭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건강한 몸을 지니고 마냥 놀 수만은 없어서 이제 영화제작계의 큰 손으로 활약을 하고 있단다. 하여간 욜라의 배에 관한 지식은 책 후반부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나타나게 된다.
 소설은 비싼 비용을 지불할 고객 두 명이 섬에 나타나 앞으로 두 주일을 보내면서 사달이 나는 이야기다. 일단 짐작은 하시겠지? 젊은 미녀와 그녀의 나이든 연인. 그들 사이에 나타난 건장하고 진중한 남자. 언뜻 보면 테오는 욜라에게 거의 상습적으로 폭력을 구사해 언젠가는 자기가 테오에게 맞아 죽는 건 아닌가 하는 공포감이 욜라에게 스며있는 것처럼 보이고, 이런 상태에서 욜라는 잠수 선생인 스벤을 발견한 순간부터 그를 유혹하기로 결심을 한 것처럼 보이며, 심지어 테오가 보는 앞에서도 망설임 없이 스쿠버 강사와 키스를 나누는데 테오 역시 그것에 심각한 반응으로 보이지 않는 이상한 커플. 이 정도 읽고, 나는 율리 체가 쓴 전작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간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적어도 관념적 표현으로 ‘평행 우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은 90 퍼센트 이상이 주인공 스벤의 일인칭 관점에 의거해 쓰였고, 10% 미만이 욜라의 일기로 구성되어 있다. 앞부분에서는 두 명의 기록자가 거의 비슷한 사실에 관해 서술하고 있지만 내용이 진전됨에 따라 극적으로 다른 시각으로 변하고 만다. 즉 한 사건, 죽음에 이를 수도 있었던 폭행사건을 관찰하는데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서술하고 있는 걸 보면서 독자는 어쩔 수 없이 미궁에 빠져들고 만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다.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는 치명적 상해를 당하고, 스벤과 욜라 둘 중의 하나는 완전한 거짓말쟁이란 사실.
 누가 거짓을 기록했을까? 나도 모르겠다. 책을 다 읽고서도. 작가가 애초에 이런 결말을 정해놓고 쓴 것 같은 평행 우주의 혼돈. 읽어보시라. 내가 여태 쓴 것보다 79배 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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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고달파 1
모옌 지음, 이욱연 옮김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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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 말리는 모옌 씨. 여전히 무대는 시골 벽지다. 청 말부터 중화민국 시절까지 지역에서 나름대로 선한 이름을 날렸던 대지주 서문뇨 씨가 주인공이다. 이름 이상하시지? 서문뇨. <수호지>의 호색한 서문경과 같이 성이 ‘서문西門’이요, 이름이 ‘료鬧’다. 그래서 ‘서문료’인데 자음접변 순행동화에 의거해 ‘서문뇨’라고 쓴다. 저 ‘료鬧’자가 시끄러울 료. 중화민국 시절까지 지주 신분을 유지했다하면, 아무리 ‘나름대로 선한’ 지주라도 중화인민공화국에 접어들어 어떻게 됐을까? 맞습니다. 사회분위기라는 것이 있어 많은 농민출신의 인민들이 그를 불쌍하게 여겼을지언정 당연히 악덕지주로 몰려 총살을 당하고 만다. 그것도 다행이다. 한 방에 갈 수 있으니. 이 서문뇨는 그것이 억울해서, 살아생전 자기 집을 둘러싼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생기지 않게 활수한 은혜를 베풀었건만 집안을 거덜내는 것도 모자라 바로 자신의 도움을 받았던 그 사람들에 의하여 총살형에 처해진 것이 너무 억울해, 이 양반이 염라대왕 전에 머리를 조아리기는커녕 난 죄 없다, 억울하다 바락바락 기어오르고 산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지옥의 고문까지 당하면서도 기어이 억울해, 억울해 악을 쓰는 바람에, 아 그 자식 되게 시끄럽네(鬧), 성가신 일을 참지 못한 염라대왕께서, 그래 너를 다시 세상에 보내줄게, 하고 콧바람을 한 번 휭 불어, 다시 세상에 태어나긴 했지만 정신차려보니 장대한 물건을 달고 수놈 나귀로 나왔다는 거 아닌가. 다시 윤회의 사슬을 타게 된 서문 선생은 레테의 강변에서 망각의 즙을 제조하고 있던 꼬부랑 할멈 몰래 망각의 묘약을 땅바닥에 슬쩍 흘려버려 전생의 기억을 모두 간직한 채 다시 자기가 죽었던 저택의 나귀로, 그것도 1950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지 일 년이 채 못 된 시절에 다시 태어났으니 어찌 좋은 팔자를 기대하리오.
 일찍이 서문뇨 선생에게 정실부인 백씨가 있었으나 슬하에 아이가 생기지 않아 백씨가 거의 강권을 해 자신이 친정에서 몸종으로 데리고 온 영춘을 침대에 밀어 넣어 두 번째 부인으로 삼아 딸 아들 쌍둥이를 낳으니 큰 아이가 아들로 이름이 금룡金龍이요, 두 번째가 딸이어서 보배로운 봉황 보봉寶鳳이니 더 이상 좋을 수 없었단다. 근데 선생이 젊은 영춘을 한 번 품었는데 다시 나이 든 백씨의 금침에 들겠는가. 거기까지면 그래도 좀 나은데, 젊은 살을 한 번 맛을 본 선생은 또다시 젊은 여인네 추향이를 첩으로 들인 바 있었다. 왜 이런 지난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일개 가축에 불과한 나귀로 태어났으니 나귀의 주인이 있을 거 아닌가. 바로 그 주인이 누군가 하면 한 겨울에 동네 사당에 갓난 아이 하나가 빽빽 울고 있는 걸 서문 선생이 안고 들어와 먹여주고 재워주고 나름대로 정성껏 키워 장성시킨 집안의 머슴 남검藍臉. 남藍은 쪽 빛깔 남자요, 검臉은 뺨 검자라, 푸른 뺨이란 이름으로 얼굴의 반 정도를 푸른 점이 덮고 있어서 이름을 그리 지은 것이다. 서문 선생이 동네 농민들한테 총 맞아 죽고 나귀가 되어 환생을 해보니, 이 남검이란 놈이 글쎄 자신의 어여쁜 둘째 마누라 영춘을 아내로 맞아 말 그대로 봄을 맞는(迎春) 중인 거였다. 아내와 쌍둥이 남매까지 남검이 거두어 자식 이름도 서문금룡, 서문보봉에서 남금룡, 남보봉으로 바꾸었으니 속이 편할 이치가 없다. 그래 나귀로 태어나 이제 ‘서문나귀’로 불리는 서문뇨 선생의 두 번째 생은 날 때부터 시끄럽기 이를 바가 없으니, 이 책을 읽는 행위가 바로 서문뇨 선생의 시끄럽기 짝이 없는 몇 번의 환생, 순서로 하면 나귀, 소, 돼지, 개, 원숭이라, 사람이었던 시절까지 합해 여섯 번의 윤회를 감상하는 일이 된다.
 세계적인 수다꾼인 모옌의 책 <인생은 고달파>가 재미없기도 쉽지 않은 이유는, 1950년이면 5년 전에 한반도의 북쪽에서 그랬듯이 차근차근 지주, 자본가들을 숙청하기 시작했을 때이고, 당연히 토지개혁을 단행해 지주를 제외하고 농사만 지으면 일인당 1무 6촌의 땅을 ‘잠깐’ 불하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집단 농장 형태로 전환하다가, 드디어 1966년을 맞아 문화혁명을 시작하면 앞으로 10년이 지나 마오 주석이 숟가락 놓을 때까지 홍위병이란 광풍이 한 바탕 휘몰아치고, 이어서 개방의 바람을 맞아 지난 시절에 딱 금 그어놓은 줄 알았던 자본주의가 다시 대륙을 점령해버리는 등 조금도 쉴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뭐 모옌의 다른 작품들도 중국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멀리는 일본군 침입 시절부터 시작해 현대 중국까지의 변화무쌍한 시절과 사람들의 변신을 그려온 바와 같이 이런 종류의 입담엔 도가 텄으나, 이 책에선 놀랍게도 모옌 선생이 직접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소년, 청년, 중년의 모습으로 직접 입을 털고 있기도 하다.
 이 책도? 그렇다. 이 책도 그가 쓴 다른 작품, 예컨대 <붉은 수수밭(혹은 ‘홍까오량 가족’)>, <개구리>, <풀 먹는 가족>처럼 시골 깡촌에서 벌어지는 엽기발랄한 인간들에 의한 난리법석을 그리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역시 다른 작품들처럼 모옌의 <인생은 고달파> 역시 기본적으로 사랑 이야기다. 사랑도 그냥 갑식이, 을숙이가 하는 사랑, 대충 사랑하다 우리 결혼이나 해버릴까, 해서 혼인을 하고, 같이 늙어가거나 한 판 코피 나는 부부싸움 끝에 이혼해버리는 사랑이 아니라, 질기고 드런 사랑, 애초에 팔자 또는 운명에 깊고 깊게 새겨진 빌어먹을 사랑의 이야기다. 내가 알기로, <열세 걸음>이던가 하여튼 모옌이 쓴 다른 작품의 해설에서 읽은 바, 모옌이 윌리엄 포크너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특별히 좋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작품이 <인생은 고달파>, 원래 제목 <생사피로生死疲勞>인 것 같다. 물론 내가 읽은 범위 안에서 말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포크너의 시골 엽기취향과 마르케스의 붐 문학적 요소. 이런 것들이 중국으로 넘어와 대륙의 황사와 태풍을 만나면 딱 이런 모습으로 변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작품. 궁금하시지? 읽어보시면 된다. 만사 시끄러울 료鬧자가 넘실거리는 흥미로운 소설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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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장미 흰 장미 연극과인간 중국현대희곡총서 13
장애령 지음, 오수경 옮김 / 연극과인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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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아이링(張愛玲)이 1944년에 발표한 동명의 단편소설을 티엔친신(田沁鑫)과 저우허양(周鶴洋)이 각색해 연극을 위한 드라마로 만들었다. 장아이링의 원작은 창비에서 출간한 중·단편집 《경성지련傾城之戀》에 실려 있으나 읽어보지 않아 어떤 내용인지 모르겠다. 장아이링은 청 제국의 귀족 집안에서 장군 이홍장의 외증손으로 태어나 우여곡절을 겪다가 1949년 중국혁명이 끝나자 미국으로 망명해 1995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외로운 머리를 뉜 작가로, 유언에 따라 화장을 해 골분을 태평양에 뿌렸다고 들었다. 중국에서는 모국에 머물지 않고 체제를 달리하는 자본주의의 표징인 미국으로 망명한 이유로 친일 작가라는 빨간 줄이 갔다고 하는데, 망명하기를 잘했지, 베이징이나 상하이에 머물렀다면 1960년대에 사람 잡던 문화혁명에 걸려 돌 맞아 죽던지, 조리돌림 끝에 울화병이 돋아 벽에 머리를 박고 스스로 숨을 접었을지도 모른다. 장아이링의 작품과 경향에 대해 사전 지식이 없는 채, 원작을 극도로 왜곡시킨 희곡을 읽는 일은 쉽지 않았다. 더구나 연출이 무한정으로 변형 가능한 현대희곡이라 더욱 그러했다.
 책 뒤에 달린 해설을 보면 원작 <붉은 장미 흰 장미>의 내용이 대략적으로 나온다. 먼저 희곡을 읽고 원작이 어떠했는지를 알게 되면, 단박에 뒤집어진다. 크게 보아 두 쌍의 부부가 출연한다. 근데 원작이 희곡으로 변이하면서, 주인공의 성gender가 바뀐다. 즉 아내가 남편이 되고, 남편이 아내가 된다. 더구나 남편으로 바뀐 원작의 아내 멍옌리(극중 남편)는 아내 퉁전바오가 지역 대표로 있는 투자사의 일개 영업사원이며 인터넷 게임 X크래프트에 거의 중독 상태로 빠져 지낸다. 그러니 남녀 주인공만 바뀐 것이 아니라 시대적 배경도 완전한 현대로 옮겨왔다. 구태여 장아이링의 원작을 강조한 것은 부부 두 쌍의 불륜의 구조와 원작에 장아이링이 써 놓은 문장들을 사용하기 위함일 뿐이라고 해도 크게 이상하진 않을 것 같다.
 공연의 형식도, 나는 연극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그저 짐작에 그치는 수준이지만, 한 번에 많은 등장인물이 무대에 올라, 즉흥적이거나 사전에 계획한 움직임과 더불어 계속해서, 쉬지 않고 각자의 대사를 하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인 것처럼 보인다. 등장인물은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의 대사를 하기 위해 무대 한 구석에 앉아 고뇌에 싸인 표정을 지을 필요 없이 자기 순서가 되면 적절한 몸짓과 표정을 취하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다만 몸짓이란 것이, 한 무대에 많은 등장인물이 있는 관계로 동선이 서로 엇갈리지 않는 한도 안에서의 움직임만 가능할지도 모른다. 또는 다수가 같은 무대에서 공연하는 일종의 스탠딩 코미디로 만들어도 될 것 같기도 하고. 그건 전적으로 연출자 마음대로 하면 될 것이다. 이런 연극적 표현방식은 이번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페터 한트케의 <관객모독>하고 비슷하기도 한 것 같고, 아닌 것도 같고, 하여간 그렇다.
 주인공은 퉁전바오-멍옌리 커플의 아내 퉁전바오. 사람에겐 누구나 이쪽과 저쪽의 성격이 존재하는 법. 이건 좌뇌와 우뇌가 합쳐서 뇌 하나를 구성하는 것과 비슷하리라. 퉁전바오는 투자회사 로이터로이스의 화북지역 대표인데 한심한 남편 멍옌리를 사실상 부양 비슷하게 하며 부부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가, 날이 갈수록 ‘성격차이’ 또는 ‘능력차이’, ‘관심사 차이’ 등의 이유로 불만족스러운 단계로 접어든다. 퉁전바오의 한 달 출장 동안 회사에서 정리해고 당한 철없는 남편 멍옌리는 불륜으로 접어들지는 않지만(애초에 그럴 의도도 없었고) 인터넷 게임을 위해 젊은 여자를 한 명 집에 들이는 것을 보고 잔뜩 열을 받아 별거를 선언하고는 ‘홧김에 서방질’을 시도하려다 좌뇌와 우뇌, 혹은 나와 또 다른 나의 갈등을 시작하는데, 이때 또 다른 나의 역할을 하기 위해 ‘전바오을(乙)’ 역할을 하는 배우를 한 명 등장시킨다. 홧김에 서방질의 대상은 미국유학 중에 친해져 회사에 같이 투자한 ‘왕제루이’로 어려서부터 친구인 왕스홍의 남편이다.
 얘기한대로 1940년대 단편소설을 2010년대 연극으로 공연하기 위해 젠더와 시대적 환경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희곡은 단막극을 위한 작품이지만, 티엔친신은 한 무대에, 내 수준으로는 복잡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많은 등장인물이 여러 장면, 아니 가지가지 대사를 동시에 쏟아냄으로서 읽으면서 산만한 느낌이 들었다. 그건 내가 현대 연극에 아는 것이 없고 경험도 부족해서 그런 것이고, 다른 면으로 보면 이런 드라마를 읽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라 할 것이다. 전에 <워 아이 xxx>처럼 슈프레히코어 희곡을 읽을 때 느꼈던 충격보다는 덜하다. 비슷한 희곡을 한 편 더 읽을 기회가 생기면 훨씬 더 친숙해질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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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핑 뉴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9
애니 프루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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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덩치만 컸지 어수룩한 사내. 캐나다의 황량한 뉴펀들랜드 섬에서 폭풍과 바람과 더불어 살다가 뉴욕까지 흘러들어온 가족의 둘째 아들.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마초적인 훈육과 조금은 야비한 성격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형에게 숱한 비아냥거림과 무시와 냉대를 받으며 스스로 실패자의 길을 가는 젊은이로 성장한 코일. 빨래방에서 우연히 만난 흑인 청년 파트리지의 주선으로 영세한 지역신문사에 들어가 임시직 기자 활동을 할 때까지 앞으로 계속해서 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될지는 스스로도 몰랐다. 숱한 직장을 거치며 뉴욕의 뒷거리를 배회하는 우울한 청춘이었던 그가 비록 대학을 중퇴하여 웬만큼 글줄이나 쓸 줄은 알았지만 그동안 별다른 독서도 없었고, 글을 쓸 일도 없어 처음 쓴 기사 첫 꼭지부터 머리도 좋고 운도 좋은 청년이자 이제는 상관이기도 한 파트리지의 냉정한 수정용 ‘붉은 펜의 학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다 한 모임에서 아담한 체구에 예쁜 용모를 지녔으나 이미 걸레처럼 너덜너덜한 아가씨 페틀을 만나 무턱대고 결혼을 하고, 딸 버니와 선샤인을 차례로 낳는다. 그럼에도 아내 페틀은 여전히 향락을 좇아 다른 남자들과 연애행각에 날 새는지도 모르다가, 결국 두 딸을 낯선 남자의 차에 태우고 몸을 실으면서 “이혼 서류는 우편으로 보내줄게.”라고 선언하고 떠나버린다. 어린 두 딸을 변태한테 팔아넘기고 그 돈을 움켜쥔 채 꿈의 땅 플로리다로 폭주하다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언덕 아래로 구르는 와중에 목뼈가 부러져 죽고 만다. 아내가 죽기 바로 전에는 절대 죽지 않을 거 같던 간암에 걸린 아버지가 치료의 가망이 없어 보이자 바르비투르산 염, 즉 수면제를 다량 복용해 자살을 해버렸는데, 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초대한 유일한 친척인 고모가 뉴욕에 도착한 때는 이미 코일이 아이 둘 달린 홀아비 신세가 돼버렸을 때였다. 실내 천갈이를 직업으로 하고 있는 고모가 조카에게 와보니, “냉담한 눈과 요염한 포즈만 봐도 하이힐 신은 잡년임을 알 수 있는” 페틀이 그래도 생명보험에 가입을 해놓아 코일과 딸에게 많지는 않지만 상당한 액수의 보험금을 남겨놓았던 거였다.
 이때 고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평생 혼인하지도 않고, 그래서 자식 하나 없는 고모가 뉴욕이란 정글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자의 삶을 사는 덩치만 큰 자기 핏줄, 혈육에게 조상의 땅 뉴펀들랜드 섬으로 돌아가자고 제의한 것은 왜일까. 고모는 폭풍과 바람과 빙산과 물범과 대구의 땅, 남자는 언젠가는 얼음이 자박자박한 바다에 빠져 죽고, 여자는 언젠가는 과부가 되고야 마는 거대한 바위섬보다 뉴욕의 자본주의가 더 황량하고 살벌한 곳이라고 생각했을까? 적어도 조카 코일에게는?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제 40년이 넘어 고모는 자신의 비극적인 과거가 아직도 살아있고, 불과 열두 살 때 물범 사냥을 하다가 바다에 빠져죽은 의붓아버지의 손자인 코일의 가족을 솔가하여 기어코 뉴펀들랜드 섬으로 떠나고야 만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야 본문이 펼쳐진다. 뉴펀들랜드. 젊은이에게 두 가지의 기회만 주어지는 땅. ① 토론토나 밴쿠버, 또는 뉴욕으로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거나 화재가 난 잿더미 속의 칼날 같은 성격으로 바뀐 뒤에야 돌아오는 기회와, ② 조상 대대로 거의 빠짐없이 그랬듯이 언젠가 셔벗 같은 바닷물 속에 거꾸로 박히거나, 배와 함께 빠져 죽음을 맞이하는 기회. 어쨌거나 세상 어디라도 사람은 살아가는 법. 우리의 코일과 고모와 두 딸, 버니와 선샤인 역시 험한 환경 속에 처박혀도 그곳의 투박하지만 정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뉴욕과 죽은 아내이자 엄마인 페틀을 서서히 극복해 나간다. 이런 과정이 바로 소설의 본문이자 결론이라 할 수 있을 듯.
 500 쪽에 약간 모자라는 장편이지만 재미있어 빠르게 읽힌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 애니 프루의 간결한 문장이 마치 기사문 같아 정확한 뜻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도 큰 이유겠지만, 독자도 결국은 어떤 결말로 끝낼지 중간쯤 벌써 환하게 눈치 채게 만드는 스토리의 전개도 읽는 재미에 빠지게 만든다. 독자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짐작하는 결론을 향해 어떤 식으로 한 발 한 발 이야기가 전개되는지 확인하는 걸 좋아하는 습성이 있는 집단이다. 애니 프루는 이런 독자들의 일반 취향에 딱 떨어지는 작품을 만들었다. 주인공에게 어렵고 난처한 초반부를 제공하고 나서 한 계기를 만들어 환경을 바꾸게 만들고 선량한 주변인들의 도움과 숨겨왔던 성실함으로 그가 속한 커뮤니티에서 성공적으로 소소하게 행복한 삶을 다시 만드는 일. 전형적인 미국 영화를 보는 듯 일종의 틀에 맞춰 가공한 작품을 읽은 느낌. 그렇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느낌이 난다. 세상의 어느 땅에도 안식이란 원래부터 없다는 진리에 대해, 애니 프루는 한 번쯤 부당하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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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0-29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 버전으로 읽었던 책이네요.

영화도 있는데 영화에서 사람들이
집을 질질 끌고 가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Falstaff 2019-10-29 13:23   좋아요 0 | URL
옙. 전 이번에 문둥이가 새로 번역을 한 줄 알았습니다. 순진하기는 참... ㅋㅋ
저도 독후감 쓰고난 다음에, 2001년에 케빈 스테이시, 줄리안 무어 등의 호화 캐스팅으로 만들었다고 어느 분께서 귀띔해주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