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필즈 1
마틴 에이미스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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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부터 3일간 출판사 열린책들과 웅진[뿔>에서 발간했으나 절판된 장편소설 세 편을 올린다. 이 책들은 적어도 내가 읽은 바로 얘기하자면, 대단한 성가를 누릴 만한 참신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출판사를 잘못 만나 광고에 실패했든지, 출판의 방향을 달리해(웅진은 요새 어린이 책과 비문학 도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 하여간 제대로 명을 누리지 못하고 한국의 독자로 하여금 이젠 찾아보기 힘들게 된 것들이다. 오늘은 첫순서로 마틴 에이미스가 쓴 문제작 <런던 필즈>. 일찌기 서구적 유머로 유럽인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든, 그러나 극동 아시아 독자에겐 웃음의 코드를 제대로 전해주지 못한 <럭키 짐>을 쓴 킹슬리 에이미스의 친아들인 마틴이, 이번엔 세계 누구라도 참 흥미롭고 재미나고 가끔가다 웃음을 참지 못하게 만드는 작품을 썼다. 난 런던엔 가보지 못해 잘 모르지만 거기 가면 런던 필즈라고 하는 공원이 있는 모양이다. 제목은 그 공원에서 따왔으나 소설의 무대는 그냥 런던의 거의 전지역을 망라하며 진행한다. 굳이 제목에 집중할 필요는 없을 듯.

 책은 한 관찰자, 즉 소설을 쓰는 에이미스의 분신이랄 수 있는 '샘 영'이란 이름의 미국 소설가. 근데 이 인간은 소설가이기는 하지만 자기의 뇌로 하여금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딱 자기가 런던에 체류하려는 기간에 벌어지는 두 남자와 한 여자가 벌이는 엽기 살인사건을 그대로 취재하여 소설을 쓰려고 하는 삼류인간이다. 이 인간 앞에 런던의 젊은 난봉꾼이자 양아치이자 제대로 되지도 못하는 잡사기꾼이자 임균성 요도염에 걸려 이에 항의하는 아내를 무조건 패버림으로 해서 자기로부터의 전염을 부인하는 파렴치한 남편이자, 어여쁜 젖먹이 딸아이의 엉덩이를 담배불로 세군데 지져버리는 비정의 호로새끼이자 기타등등을 다 합쳐 개 썅노무새끼인 키스 탤런트란 살인 예정자가 등장한다. '키스'라고 하니깐 두 사람이 입술 맞대고 쭙쭙쩝쩝대는 그 키스가 생각나시겠지만 그거 말고 재즈와 바흐의 연주에 일가견이 있는 키스 쟈렛의 그 키스Keith를 말하는 것인데, 그가 앞으로 죽이기로 예정되어 있는 인간은, 키스가 세상의 파렴치한임을 감안하면 무쇠팔 무쇠주먹을 가진 남자가 아니라 연약하기 짝이 없거나 적어도 완력으로는 체력 빌빌한 자신이 그나마 해치울 수 있는 상대로서, 여성이란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으며, 그녀는 또한 가히 한 소설의 주인공이란 타이틀에 걸맞을 정도로 재색을 겸비한 뛰어난 미모와 어려서부터 일찌감치 정조관념 따위는 개한테 던져준 이른바 개방적 또는 여혐자들의 개삐딱한 의미에서 이른바 진보적 여성의 최첨단에 우뚝 선 미모의 니컬라 식스. 우리가 흔히 범하곤 하는 잘못 가운데 가장 큰 거 하나가, 주로 소설에 등장하는 경국지색 미모의 주인공은 마음씨가 비단이거나 아니면 운명의 장난으로 말미암아 비련의 수렁텅이에 빠지겠거니 하지만 니컬라 식스는 가히 20세기 말인 1989년에 등장한 히로인답게 무참하게 한 남성 가이 클린치를, 그것도 태어날 때부터 은수저 입에 물고 빨아대며 나온 귀족출신에다가 제대로 된 집구석의 제대로 된 부자님 도련님이 대개 그렇듯이 인간 하나 진국이라 반듯하기 그지없어서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답답하기 짝이없단 평을 듣는 무골호인 하나를 치명적으로 유혹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 두루두루 여러방면으로 되돌릴 수 없는 수렁으로 푹 빠뜨려버리고 만다. 작가 마틴 에이미스 혹은 화자 샘 영이 말하기를 천하의 잡놈 개썅노무새끼 키스 탤런트를 살인자, 미모의 팜파탈 니컬라 식스를 피살자, 순진한 멍청이 가이 클린치를 조연이라 칭하며 이 세명이 대책없게 벌이는 좌충우돌을 정말 재미나게 그리고 있다.

 몰론 내가 오늘 비교적 상세하게 책의 이것저것을 소개하는 건 이 책이 절판 상태라서 따로 읽어보실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이겠으나 사실 이 정도의 양념으로 책 읽는 재미를 넘겨짚기란 일곱명의 봉사가 코끼리를 더듬어 어떤 동물인지 분간하려는데 하필이면 그 큰 부랄 하나를 콱 쥔 거하고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 등장인물 소개만 읽고 그저그런 소설이려니 생각하다간 부랄을 잡혀 난리를 치는 코끼리 코에 한 방 얻어맞을 수 있듯이 책이 주는 진짜 재미를 전혀 알지 못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해선 솔직히 말씀드려서, 좀 건전한 대중소설인줄 알았다. 나란 인간이 원래부터 대중적인 것도 좋아하고 특히 허리 아래쪽으로 대중소설적 묘사 나오면 좋아 죽어넘어가지만 그것도 아니면서도 대중소설이라 분류할 수밖에 없겠다 싶었을 즈음부터, 그게 1권의 한 150쪽 쯤이었는데, 그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걸, 1권 150쪽 가량에서 확실하게 알아차렸다. 뭐랄까, 내가 문학적 소양이 아직도 부족해서 정확하게 뭐라 콕 집어 얘기하기 쉽지 않지만, 위에서 얘기한 등장인물들의 개차반 생활과 삶의 조건들을 난삽하게 그리는 와중에도 바로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그들을 향한 블랙 유머 그리고 그 유머 속의 애잔한 동정 같은 것들이 숨어 있었던 거다. 물론 이 이야기는 전혀 믿을 필요는 없지만 내 감상이 그렇다면 적어도 나한텐 그런 거니까. 이런 나홀로 감상 같은 거 한 두 번 지껄인 것이 아니라서 비록 내 감상이 어림도 없고 유치하기 짝이 없더라도 이젠 쪽팔리지도 않다. 그러니 감안하시기 바람. 근데 말씀이지, 더 솔직히 말해서, 혹 이 책이 절판이라 적어도 당분간 다시 나올 확률이 별로 없으니까 내 감상을 쓰는데 더 용감한 거 아냐? 에이 몰라, 감안해서 읽으시면 되지 뭘 그려.

 분명하게 말씀드립자면, 이 책, 좋다. 요샌 비록 중고책이라도 이름만 중고책이지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그런 중고책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까 한 번 큰 맘 먹고 찾아 읽을 만하다. 마틴의 아버지 킹슬리가 쓴 <럭키 짐>이 어디어디 추천 세계 75대 영문소설이란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지만, 내가 읽기론 이 <런던 필즈>가 훨씬 더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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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버린 지도 (반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1
아베 고보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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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를 읽어보고, 사실 제목이 '모래의 여자'가 뭐야 모래의 여자가. 별 기대하지 않고 읽었는데 왠걸 거참 새삼스럽고 참신하지만 좀 오래된 고랑내도 나는 거 같고,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뭘까 싶다가 혹시 카프카? 했는데 출판사 책소개에 '일본의 카프카' 운운해서 어깨 후까시 좀 돋았던 바로 그 작가, <모래의 여자>를 다 읽는 순간 곧바로 아베 코보 검색해서 시판중인 유일한 책을 샀으니 바로 오늘 소개하는 <불타버린 지도> 되시겠다.

 주인공이 사설 탐정. 하여간 무슨 이유가 됐건 간에, 돈 팍팍 꿔서 갚지 않고 냅다 도망간 사기꾼, 보스의 아내를 자빠뜨린 거 까지는 좋았는데 현장을 걸려버린 잘 생긴 스물 한살 짜리 조폭 쫄병, 아빠한테 양복 사달라고 조르고 조르다가 허락 안 받고 아빠 양복 줄여입고는 아빠한테 맞아 죽을까봐 겁이 덜컥 난 철부지 하이틴 소년, 하도 졸라서 딱 한 번 했는데 그만 덜컥 애가 들어서 부모한테 얘기 안 하고 미혼모 보호시설로 도망친 스물 네살 아가씨, 사업 잘 하다가 난데없이 납품하던 대기업 발행 어음이 부도 어음이라 야밤 도주해버린 중소기업 사장님, 이렇게 한도 없고 끝도 없는데, 이번에 의뢰받은 실종 사건은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날라버린 한 유부남 좀 찾아달라고 아내가 조폭 중간 약간 아래 보스 비슷한 동생을 시켜 계약서에 서명을 한 건이다.

 근데 이 남자, 무슨 속셈으로 잘 살다가 도망친 거야? 약간의 알콜의존증이 있어서 맥주를 입에 달고 사는 마누라가 그렇게 비싼 맥주를 장복해도 살이 통통하게 오르거나 하다못해 B컵 젖가슴도 갖지 못해 열받아 새로 사귄 님따라, 이제야 진정한 사랑을 찾았네 염병을 떨기 위해 도망간 것도 아닌 거 같고, 직장에서 열라 여어어어어어어얼쒸미 일해 봤자 알아주는 사람 조또 없어 내 능력 갖고 여기 아니면 뭐 먹고 살 데 없냐, 한 바탕 난리를 부리다가, 여기 아니면 먹고 살 데 없는 걸 그제야 눈치채고 갑자기 허망, 허탈, 자포자기에 빠져 불과 1 킬로미터 앞에 놓여있는 태평양에 빠져죽기 위해 기어간 것도 아닌 거 같고. 하다못해 마누라 몰래 빠찡코에 빠져 조폭이 뒷배 봐주는 고리대금 업자한테 돌려 쓴 약간의 돈이 이자에 이자가 붙어 대신 간의 2/3, 신장 한 개, 각막 한 개 뭐 이렇게 대충 떼주다가(김혜수, 김고은 나오는 영화 <차이나타운> 참조) 기어코 죽음에 이르러 발목에 시멘트 덩어리 달고 태평양에 던져진 거 같지도 않고, 도대체 왜 자족하면서 잘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느냐고.

 자, 어느날 이 남자처럼 자신의 일상에서 갑자기 사라지고 싶으신 분, 거수. 내가 가장 효과적으로 일상이란 동심원에서 탈출하는 법을 가르쳐드리는 바, 감사한 마음으로 귀 기울여주시면, 일찌기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발견한대로 당신의 삶을 한 번 미분하시라. 그리하여 미분한 함수 f'(x) = 0 이 되는 점에서 두 번 생각하지 말고 그냥 튀어나가면 가장 멀리 탈출하는 효과를 즐기실 수 있다. 그게 삶에서 뭐냐고? 흐이그, 알면 내가 먼저 튀어나갔지 여태 가만히 있었겠는가.
 왜 헛소리만 계속 하느냐 하면, 말 그대로 어느날 문득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삶에서 아무 대책없이 그냥 한 번 사라지고 싶었던 적이 한 번도 없으셨던 분, 혹시 계셔? 만일 당신이 그러하다면 정말 행운아이던지 백치일 확률이 아주 높던지 지금의 상태에서 벗어나면 오늘 낼 하는 부모 세상 하직하는 날 거액의 상속을 받지 못하던지 하여간 이 비슷한 환경일 것이다. 그러니 사실 아베 코보는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그냥 보통 인간들이 마음 속에서 숱하게 저질러보는 일탈을 실제생활에서 진짜로 일어났다고 전제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이 실종된, 아니 자발적으로 실종한 사람을 찾는 의미 기타등등에 대하여 묘사해놓았다. 그냥 이런 것들만 있으면 좋은 책까지는 안 될 텐데, 그를 찾는 사람들과 실종자, 심인자 의 주변 사람들에게서 벌어지는 또다른 사건들, 하여간 일본의 겨울, 소도시에서 볼 수 있는 스산한 풍경을 잘 그려놨다. 아베 코보의 또다른 작품을 검색해봤는데 아직 신간은 없고 전부 품절도서라 올 하반기까지 기다려봤다가 중고책이라도 한 권 더 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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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 펭귄클래식 109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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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적 작가 조르주 페렉의 짧은 장편소설 <사물들>. 나는 이 책을 인터넷 책방에서 발견한 순간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이 기괴한 유태인의 책을 무조건 샀다. 3년전 <인생 사용법>을 매우 재미나게 읽고 반드시 페렉의 다른 소설도 찾아 읽겠다고 마음 먹었던 적이 있는데 그새 깜박 잊고 살았다.

 프랑스 사람들은 페렉과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도라 브루더>를 쓴 파트리크 모디아노를 같은 부류로 치는 모양이다. 난 도무지 모디아노한텐 정이 가지 않는다. 이 전형적인 60년대식 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페렉하고 견줄 수 있는 작가? 혹시 김승옥 아녀? 만일 1960년대의 대한민국이 프랑스와 비슷한 경제, 문화적 수준에 있었으면 김승옥은 적어도 페렉과 견줄 수 있는, 어쩌면 능가할 수 있는 작품을 쏟아냈을지도 모른다. <사물들>이 세상에 나온 것과 거의 비슷한 1965년 6월에 김승옥은 서울에서 <서울, 1964년 겨울>을 발표하는데 사실 <사물들>하고 <서울...>이 비슷한 건 하나도 없지만 난 <사물들>을 읽으면서 줄곧 동 시절을 살아가는 세계의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도시적 감수성이 별로 다르지 않구나, 문득문득 떠올리고는 했다.

 책을 들추면 처음에 헌사 "드니 부파르에게"가 나오고 또 한 장을 넘기면 멕시코까지 날아가 활화산 지대 아래 터를 잡고 살면서 인생을 알콜중독으로 마감시킨 작가 맬컴 라우리의 글을 써놓았다.

 "문명이 우리에게 제공한 혜택은 셀 수 없고, 과학의 발명과 발견이 가져온 생산력으로 얻게 된 온갖 풍요로움은 비할 데 없다. 더 행복하고, 더 자유롭고, 더 완벽하고자 인간이 만든 경이로운 창작품들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수정처럼 맑게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새로운 삶이라는 샘은 고통스럽고 비루한 노동에 시달리며 이를 좇는 사람들의 목마른 입술에는 여전히 아득히 멀다."

 페렉의 기념비적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에 대해 예의가 아닐지 몰라도, 책을 다 읽은 다음 다시 앞으로 돌아와 서문을 대신해 적어놓은 라우리의 윗글을 읽어보면 이 한 단락의 문단이 <사물들>을 극적으로 요약해놓은 것으로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세상은 무지하게 풍요롭지만 인간은 조금이라도 더 편하고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에 등장하는 20대 초반의 커플 제롬과 실비 역시 그들의 행복을 위해 여러 모색을 하고 모색한 바를 실행한다. 현대인의 행복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돈이다. 혹은 돈이라고 '수긍할 수 있는 착각'을 저지른다. 근데 그것을 위해 아득바득하는 건 좀 이상하게도 자신의 행복을 가장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일. 맞지?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나? 여기서 제롬과 실비의 절망지대가 펼쳐진다. 그걸 뭐라고 부르냐 하면, 인생이라고 하는 거다. 현대인의.

 근데, 나도 꼰대라서 이렇게 책을 따져보고 헤쳐보고 있지만 꼭 이렇게 읽어야하는 법은 없어서 그냥 젊은 커플들이 사는 걸 따라가면서 동의도 하고 부정도 하고 그냥 같이 묻어가보는 것도 이 책을 즐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리라.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도 사실 그걸 찢어발겨 분석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큰 숙제를 하는 것처럼 읽는 거 보다 포장마차에 같이 앉아서 국수가락 입에 물고 쐬주잔 기울이며 두 남자가 하는 얘기를 그냥 들어보는 게 더 즐겁듯이. 안 그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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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1-26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사용법>을 다 읽으셨다니! 존경합니다! ㅎㅎ 전 사두고 가끔 목침으로...이용 ㅋㅋㅋㅋ 조르주 페렉 정말 재미난 작가예요. 펭귄에서 나온 <W 또는 유년의 기억>도 저는 참 좋았습니다. <임금 인상을 요청하기 위해 과장에게 접근하는 기술과 방법>을 읽다가는 눈물나게 웃다가 울다가; ㅋㅋ

암튼 저도 모디아노 책을 읽고 감흥을 느낀 적이 없어서 페렉과 같이 견주는 것은 좀 아니라고 봅니다!

Falstaff 2017-01-26 12:47   좋아요 1 | URL
ㅎㅎㅎ 맞아요, 거기 사람들 정서론 어떨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저한텐 모디아노, 영 아니었습니다. 앞으로도 읽을 생각 없고요.
<인생 사용법>은 목침하기엔 하드커버 색깔이 너무 밝아서 그냥 다 읽어버렸습니다. ㅋㅋㅋ 아주 흥미롭게 읽었는데 ^^;;
<W 또는....>은 올해 6월 경 읽을 거 같습니다. 책장에 대기 서열로 꼽혀 있지요. <임금인상...>도 꼭 기억하겠습니다. 이렇게 책 소개 주고 받는 맛에 서재 하는 거 같아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공부도 열심히 하시고, 무엇보다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지기 바랍니다!!
 
순교자 (반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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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교자: 순교한 사람

 순교 : <종교> 모든 압박과 박해를 물리치고 자기가 믿는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일. 넓은 뜻으로는 주의나 사상을 위하여 죽는 경우에도 쓴다.


 위 낱말 뜻은 네이버 사전에 나오는 그대로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두 시간 가량 차를 타고 달리면 해미읍성이라고 나오는데 예전에 거기서 천주교 믿는 사람 오지게 쳐죽였다고 한다. 얼마나 많이 죽였는가 하면 하나하나 불러서 목 잘라 죽이기 시간 없고 귀찮으니까 디딤돌, 거 있잖은가 높은 마루에 오르기 전에 길쭉하고 네모난 돌 하나 놓아 신발도 벗고 좀 쉽게 오르라고 놓는 거, 아 이거!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저 디딤돌을 아주 길게 만들어서 야소귀신 믿는 서학쟁이 또는 천주학쟁이들한테 "고문 받느라 피곤들 할 테니 전부 저거 베고 누워 있어라"라고 한 다음, 천장 높이에서 대들보 처럼 생긴 통나무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위 그림에서 가로로 굵은 통나무 두 개 보이시지? 바로 대들본데 이런 나무를 천장높이에서 디딤돌 베고 일렬로 누운 서학쟁이 대갈통 위로 자유낙하 시켜 한 방에 보냈다는 거다. 그럼 동시에 뿌자작, 해골 부서지는 소리가 동헌마당에 울리고 죽음에 이른 디딤돌 사방 1 평방미터 가량에는.... 꼭 얘기해야 돼?

 당시가 흥선대원군 통치시절이었는데, 그 때 죽음을 당한 충청남도 서산 당진, 그 사람들 발음으로 하자면 스산, 당진의 보.통.사.람.들 중에 아쉽게도 순교 성인의 반열에 오른 순교자는 없었던지 아주 극소수이던지, 많았지만 내가 알고 있지 않아 모르던지 하여간 셋 가운데 하나다. 충청도 사람들 순하다고? 천만의 말씀. 깡다구가 어떤 깡다군데. 일찌기 바다를 통해 불교,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있지도 않은 자신들의 신을 지키기 위해 자기 한 목숨 우습게 불태웠으며, 또한 그 동네 출신 항일 운동가들, 다른 데하고 달리 죽음이 이들을 보내기 바로 전까지 악착같이 싸워 기어이 그분들 집구석을 거덜을 내고 말아 후손들 깡통차게 만든 거, 그리고 지금 내 독후감이 내 주특기, 삼천포로 빠지게 만드는 거, 이거 잘 아셔야 한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미리미리 평양의 주요 목사들 열 네명을 구금하고 있던 북조선 노동당 정권은 이미 모진 고문으로 너덜너덜해진 이들 가운데 열 두명을 총살에 처하고 두 명은 그냥 풀어줬다. 젊은 목사는 고문과 총살집행과 독후감엔 차마 쓰지 못할 사정, 그거 말해버리면 소설 절반의 내용을 다 풀어놔야하기 때문에 절대 말 못할 사정으로 두뇌 속의 화학작용이 오작동을 해버려 풀어줬고, 또 한 명의 늙은 목사, 이 소설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데 그는 어찌어찌해서 풀어줬다. 그러니까 종교라는 이름의 아편을 인민들에게 무상으로, 아니다 주일마다 헌금은 꼬박꼬박 챙겨가니까 종교란 아편을 판 마약 상인의 숙청을 단행한 것이다. 참 사람들의 잔혹성이라니. 죽이려면 그냥 죽이지 왜 고문까지 하는지. 원래 사람은 선한데 살아가며 나쁜 물이 들어 이렇게 변했다고? 놀고 있다. 인간은 원래부터 악하게 태어나는 거다. 1970년대 초반 일제 만화영화 '요괴인간'은 빨리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외쳤지만 난 얼른 요괴인간이 되고 싶은 걸.

 문제는 죽음의 즉각 집행을 앞둔 열두명의 목사들. 그리고 이유 모를 이유로 죽음을 면제받은 한 명의 목사. 열 두명의 순교자와 한 명의 생존자. 이들의 정의를 가리는 일. 기껏 정의를 가렸지만 결국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겨버리는 전형적인 소설의 결말로 치닫는 종교소설. 아, 종교소설이란 거 알았으면 절대 읽지 않았을 걸 책값이 아까워 다 읽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읽으면 감명 깊은 독후감을 쓸 수 있을 거 같다. 근데 난 아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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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스피에르의 죽음
서준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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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준환의 장편소설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을 읽은 건, 언젠가 좀 오래전에 이 책에 대한 신문서평을 읽고 한 번 읽어봐야겠다 마음 먹고 있었던 것이라서. 나름대로 신선했던 것이 한국인이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치 시절 끝무렵을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서술했다는 점인데, 파리에서 오래 거주한 경험이 없는 한국의 작가가 타국의 일정 장소를 무대로 자연스럽게 글을 쓰기란 사실 좀 무리. 아니라고? 정말일 걸? 책을 읽는 내내 독자를 좀 답답하게 만든 건 다름아닌 '공간적 폐쇄성'. 서준환은 파리의 장소들, 예를 들어 팔레 루아얄, 생제르맹, 샹 드 마르스, 에투알, 뤽상부르, 몽파르나스, 생 루이 섬, 마레, 테른, 오페라, 마들렌, 몽소1 등등을 원고지 또는 PC 화면 위에서 산보한 경험적 익숙함은 없었을 터라서 좀 심하게 과장하자면, 이야기의 공간적 제한은 독자로 하여금 감각의 폐색증을 유발할 지경까지 이른다. 이런 현상은 서준환 스스로도 아마 알아챘듯 싶었는데 왜 내가 이렇게 추리하느냐 하면, 작가는 매우 영리하게도 소설을 다분히 희곡 형식을 차용하여 썼기 때문이다. 작가가 스스로 공포정치 와중의 혼란과 음모와 권력을 뒤집기 위하여 여러 집단들이 파리 각처에서 자신들의 이해에 의해 이합집산하는 광경을, 같은 이방인이라도 시간적 공간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두 도시 이야기>를 쓴 찰스 디킨스 만큼 묘사할 수 없음을 일찌감치 알았기 때문에 마치 희곡을 읽는 듯한 느낌이 나도록 쓰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소설은 거의 다 대화 또는 독백, 방백 등으로 이루어진다. 공포정치가 끝나고 파리지역 보안사령관으로 재직중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시내 한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그의 취미인 인형극 관람을 하는데 인형극이 바로 이 책의 제목처럼 로베스피에르가 죽는 장면을 담고 있는 것. 그러니 희곡 형식이라도 연극이 아닌 인형극이고, 또 정확하게 말하자면 희곡을 읽는다기보다, 인형극을 보는 사람이 극의 모든 장면을 글로 써 놓은 것같은 느낌이다. 연극이나 인형극이나를 막론하고 무대극은 어차피 공간적 제한으로 인해 장면이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고 그리하여 서준환은 로베스피에르가 죽음에 이르는 며칠을 각 장소, 실내나 한 골목 등의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연결로 쓸 수 있었다.

 참 좋은 시도, 그리고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걸로 끝. 서준환 스스로가 게오르크 뷔히너의 희곡 <당통의 죽음>을 읽고 이 책을 썼다고 했다는데, 나도 그걸 먼저 읽어볼 것을 그랬다. 어디가 서준환으로 하여금 그리 매력적으로 받아들이게 했는지 모르겠으나, 로베스피에르를 탄핵한 혁명공회의 결정을 만들어낸 복잡다단한 음모와 사건들을 가볍게 처리한 대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궁금증, 과연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것이 진짜 로베스피에르인가, 로베스피에르는 체포 직전에 권총자살하지 않았는가, 하는 단순한, 그리고 그거나 저거나 사실 별 중요하지도 않은 질문의 해소에 그리 관심을 두었는지 참... 오리무중이다.

 물론 프랑스 혁명을 보는 작가의 시각에 관해서는 동의 비슷하게 하지만, 거기다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그동안의 호기심이 없어 그의 진심이 서준환이 말한 것과 같은지, 비슷한지 잘 알지 못한다. 로베스피에르를 문학적으로 다시 조명한 것은 어떤 면에선 바람직하고 마땅히 그래야 하겠다. 이것에 대하여 지리적이니 문화적이니 하고 까탈을 잡는 건 지금시대에 덜 떨어진 일이다. 그러나 이 책의 작가처럼 무대뽀로 작품의 주인공을 정의파, 진실남, 의리의 사나이, 고뇌하는 혁명가, 야심가가 아닌 인민을 향한 애정남으로 전력을 다해 설득하려고 하는 건 동의하지 않음.

 일독을 하시든 마시든 알아서 하시고, 다만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책을 읽으면서 난데없이 공간적 폐쇄 공포 같은 걸 느낄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하시압.

 

 


1. 파리 시내 각 지명은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 (펭귄 클래식 코리아, 2011) 21 쪽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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