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열전 동서문화사 월드북 177
김영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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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세다 대학 중문과를 수학하고 홍익대, 충남대 교수를 역임했다고 하는 김영수가 역해를 했다. 역해譯解. 번역하여 쉽게 풀이함. 독자는 이런 종류의 책을 읽으면 적어도 역자가 어떤 책을 번역했는지 원본 텍스트는 알아야 한다. 나는 김영수가 역해했다고 하고, 동서문화사가 저작권법 부칙 4조에 의하여 적법하게 자신들의 저작권을 주장하는 이 책을 읽었는데도 이게 김영수가 여러 책을 읽고 춘추전국시대의 영웅들에 관하여 정리를 한 것인지, 어느 한 텍스트를 말 그대로 번역해서 쉽게 풀이한 책인지, 모르겠다. 실제로 <죽서기년>, <사기열전>, <춘추좌씨전>에서 각 등장인물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비교하며 이들의 차이점을 통해 출생이나 가문 등을 추리한 내용이 여러 번 나오기도 하는데, 이런 사서들의 비교를 자칫하면 역해자인 김영수가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역해자를 폄훼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지만, 와세다 대학의 역사과가 아닌 중문과를, 졸업도 아니고 수료한 정도의 가방끈으로 미루어 생각하면, 일본어 실력이 출중한 역해자가 중국인이 쓴 중국어 책 대신, 일본인이 쓴 일본 책을 번역했을 수 있다고 오해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왜 원본을 밝히지 않았는지 안타깝다. (난 도대체 어떤 책을 읽은 거야?) 말 그대로 열전. 사마천에서 시작한 기전체 역사서의 열전. 열전의 공통점은 재미있다는 거. 춘추전국시대에 맹활약을 했던 마흔여섯 명의 영웅들이 자신의 천재를 발휘한 요약집summary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옛날 주나라에서는 하늘을 나는 용의 침을 궤에 넣어 보관해 (은나라도 아니고 하나라 시절부터 수백 년 간)전해오고 있었는데 어느 날 판도라의 상자처럼 궤가 열리더니 배리배리한 냄새가 나는 용의 침이 오물오물거리다가 용과 같은 종류의 파충류, 즉 검정 도마뱀 비슷한 조그마한 운동체로 변해 쪼르르 달려가서 한 열 살 먹었을까 하는 궁녀의 치마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거였다. 그때부터 아직 초경도 하지 않은 어린 소녀가 난데없이 임신의 기미가 보이기를 무려 사십 년. 그러다 기어이 어느 날 진통 끝에 경국지색, 한 번 보기만 해도 온몸이 뻣뻣해질 정도의 계집아이를 생산했다. 기원전 790년경에도 이미 하늘의 용으로부터 수태고지를 받고 동정녀의 몸을 통해 세상에 나온 인간이 있었다는 말씀. 하여간 이제 다 늙어 아이 엄마가 된 예전의 궁녀는 살기 힘들어 그랬는지, 다 늙은 여자가 아이를 낳았다는 게 쪽팔려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이 아이를 내다 버렸고, 그걸 포褒나라 사람이 거두어 키우다가, 죽은 다음에 유왕幽王이라고 불릴 주나라 임금에게 갖다 바쳐 대가로 받은 돈으로 팔자를 고쳤다고 하는데, 그 돈으로 정말 팔자를 고쳤는지 자식들 간의 유산 싸움으로 다 거덜이 났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이리하여 유왕의 애첩이 된 포나라 여인 포사가 너무, 진짜로 너무 아름다운지라 바라만 보고 있어도 해 저무는지 몰랐던 유왕이 참으로 통탄할만했던 일은, 이 아이가 도대체 웃지를 않는다는 거. 궁정광대를 불러도, 음유시인을 초빙해 와도 결코 웃는 법이 없던 용의 딸이 어느 날 하루 유왕하고 같이 앉아 있었는데 심부름을 하던 한 궁녀가 지나가면서 자기의 비단 치마가 의자 모서리에 걸려 찍, 찢어졌고, 이 비단 찢는 소리를 들은 포사가 그만, 배시시, 웃었으며, 경국지색의 포사가 배시시 웃는 것을 보고 유왕은 너무 좋아 속옷에 찔끔, 미량의 전립선액을 사정해버렸다는 거 아닌가. 이때 나온 말이 “자지러지다.” 뭐 아니면 말고. 이때부터 유왕은 시도 때도 없이 비단을 대령시켜 포사가 보는 앞에서 찌직, 그 비싼 옷감을 찢어대고 이때마다 포사가 배시시 웃는 걸 보고, 그때마다 또 찌직, 미량의 사정을 해대는 바람에, 주나라 왕실의 비단이 나마나지를 않았는데, 당시엔 비단이 돈과 유사한 거래의 수단으로 포사의 배시시한 웃음 때문에 국고가 거덜이 나고 있던 거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북쪽의 오랑캐가 침략해온다는 봉화가 울려 각 제후국에서 군마를 이끌고 도성으로 몰려오는 일이 벌어졌다. 이들이 가득 몰려왔다가 봉화 지키는 병사들 몇이 라면 끓여먹다가 불이 옮겨 붙은 실화失火사건에 불과한 것을 알고는 김이 새서 한숨을 푹 쉬는 장면을 누각에서 내려다보던 포사가 이번엔 단순호치丹脣皓齒, 즉 붉은 입술과 진주같은 흰 이를 드러내며 크게 웃었으며, 어느 때보다 활짝 웃는 포사가 또 얼마나 어여쁜지 이번에 유왕은 그냥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래 포사의 활짝 핀 웃음꽃을 위해 시시때때로 거짓 봉화를 올리기를 몇 차례. 이제 제후국에선 봉화가 아무리 올라도 그저 콧방귀만 픽, 뀌고는 말게 되고, 바로 이때를 도모해 진짜 북방 오랑캐가 쳐들어와 기원전 771년에 유왕을 붙잡아 몸에서 힘줄을 빼버리고 죽을 때까지 남문에 걸어두었으며(이 사형 문화가 서쪽으로 넘어가 십자가 형刑이 됐다지 아마?), 포사는 믿거나 말거나, 백여우로 변신해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여태까지 쓴 건 이 책에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구라도 아니고, <사기>를 포함한 여러 책에서 나온 걸 참고로 내가 각색한 어지간한 진실이다.) 이건 몇 백 년에 걸친 전설이다. 사실은 유왕이 왕세자를 폐하고 포사가 낳은 아들을 새로이 세자로 봉하려 하는데다가, 주위를 아첨에 능숙한 신하로 채우는 동시에 국정에 관심을 쏟지 않아 불만을 품은 제후국 몇몇이 떼로 몰려와 나라를 뒤엎어버렸다는 것이 <춘추전국열전>의 기반이다. 그리하여 나라가 멸망했으나 그대로 둘 수 없어 뜻있는 자들이 낙읍으로 수도를 옮겨 다시 주나라를 세워, 이 전 시대를 서주, 이때부터를 동주로 나누었으며, 동주시대부터는 말로만 봉건 주나라시절이지 진나라에 의하여 멸망할 때까지는 그저 대륙의 바지사장 구실에 그칠 뿐이었다. 주나라의 바지사장 시절. 이때를 사학자들은 춘추시대의 시작으로 본다. 춘추시대가 열림으로 해서 이제 대륙은 수십 개의 작은 나라로 분할이 된 상태. 이 가운데 가장 힘이 센 몇을 고르라면, 당연히 두 개의 진나라. 하나는 결국에 중국을 통일하는 진秦나라요, 다른 하나는 위魏, 조趙, 한韓, 이렇게 세 개의 작은 나라로 쪼개질 운명의 진晉나라, 장왕莊王 시절에 전국의 패권을 지배했던 초楚나라 정도이며, 진晉이 위, 초, 한. 세 개의 나라로 찢어져 물론 아주 작은 몇 개의 나라를 제외하고 연燕, 조趙, 제齊, 초楚, 위魏, 한韓, 진秦, 이렇게 일곱 나라가 합종과 연횡으로 이합집산을 하던 때를 전국시대로 구분한다.
 이 시절이 역설적으로 중국 문화가 탄생하고 가장 활발하게 발전한 시기였다는 건 다들 아는 상식이고, 그에 못지않게 재미있는 일화와 사자성어가 숱하게 쏟아지던 때라서 꼭 역사책을 읽는다는 생각이 아니더라도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책을 보는 기분으로 읽어도 참 괜찮은데, 여기에 더불어 진짜 실존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인지라 실감나는 교훈까지 얻을 수 있다. 다만 조금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춘추시대는 그렇다 치고, 적어도 전국시대 일곱 나라 연燕, 조趙, 제齊, 초楚, 위魏, 한韓, 진秦이 당시에 어떤 지역에 있었는지는 알고 읽는 것이 좋다. 일곱 나라를 저런 순서로 쓴 건 전국의 합종연횡과 관련한 이유가 있어서이며, 나도 이 순서로 외우고 있다. 여기다 춘추시대 진晉나라가 조, 위, 한 이렇게 세 나라였다는 걸 알고 읽으면, 가장 잘 팔리는 사마천, 민음사에서 나온 김원중 역의 <사기 세가>의 오류까지 쉽게 발견할 수도 있으니 그냥 참고나 하시라는 뜻에서.
 나는 언제나 전국시대 조나라의 젊은 인상여와 노장 염파 사이의 알력과 화해에 이은 문경지교刎頸之交, 목숨을 걸고 지켜나가는 우정에 대단히 감동을 받는다. 국가에 충성? 나는 그건 모르겠고, 두 훌륭한 인격이 만드는 아름다운 그림 때문에. 어떤 영웅들인지는 직접 확인하시라. 근데 이 책을 읽느니, 사기열전이 더 낫지 않을까? 그건 적어도 누가 쓴 어떤 책을 번역했는지는 아니까 말이지. 그냥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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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9-11-12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사 이야기 참 오랜만입니다. 동주 열국지 제일 처음에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쑥대 전통과 뽕나무 화살 이야기로, 그 파란만장 백화만발 춘추전국 열국의 이야기의 시초가 바로 경국지색 포사아닙니까ㅎㅎㅎㅎ

Falstaff 2019-11-12 20:15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전 동주열국지는 읽어보지 못했습니다만 그 책도 재미있겠네요.
 
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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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에 <오르부아르>로 공쿠르 상을 받은 르메트르의 장편. 세간에 ‘인상적인 스릴러’ 소설로 이름이 높은 작품으로 <오르부아르>와 마찬가지로 임호경이 번역을 맡았다. 임호경은 이번엔 ‘옮긴이의 말’에서 많이 팔리는 책을 번역해 돈을 많이 벌게 된 ‘개이득’같은 개발랄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재미있는 스릴러라는데 동의한다.
 작품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는 <오르부아르>와 같다. 처음에 한 순간 사건이 벌어지고, 이로 인해 관련된 사람들이 해당 사건에 매몰되어 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 르메트르가 기본적으로 스릴러 작가라 일단 살인사건을 저지른 후에 사건을 차근차근 해결해나가는 ‘과학수사대’ 같은 수사/형사 드라마의 정형화된 플롯을 사용했다는 건 자연스럽게 봐야 하리라.
 1991년에 열두 살이니 1979년생. 프랑스 어느 곳인지는 모르겠는데, 셍틸레르 변두리에 ‘보발’이라는 소도시에 열두 살 먹은 주인공 앙투안 쿠르탱이 홀어머니 슬하에서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홀어머니라니까 아버지는 천국의 즐거움을 거부하지 못한 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나, 소위 진짜 생물학적, 디옥시리보 핵산을 전해준 아버지는 실내 교향악단으로 유명한 독일의 슈투트가르트에서 새장가 들어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중이란다. 앙투안이 직접 슈투트가르트로 가서 친아버지를 본 적도 딱 한 번 있는데, 둘은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서로가 서로를 소 닭 보듯 했고, 이후로는 편지 한 장 없이, 달마다 혹은 분기마다 따박따박 교육비와 생활비를 보내주고, 서양 최대 명절인 크리스마스에는 빠짐없이 꼭 유행 지난 선물 꾸러미를 소포로 받는 한 해의 사이클을 돌리고 있었단다. 때는 드디어 프랑스 시골마을에도 플레이 스테이션 게임이 들어와 사내아이들을 운동장과 광활한 숲 속의 망아지 상태에서 집구석 소파 위의 도시광부로 만들기 시작할 때였음에, 우리의 앙투안은 어머니 쿠르탱 부인이 적극적으로 반대를 하는 바람에 동네 아이들과 함께 소파 위의 도시광부 그룹에 진입하지 못한 채 홀로 생퇴스타슈 숲에서 삼 미터 높이의 나뭇가지 사이에 아지트 비슷한 자신만의 집을 지으며, 즉 빌빌대며 놀 수밖에 없었다. 이때 바로 옆집 데스메트 씨 집의 막내아들 여덟 살 먹은 레미가 나무 위의 집으로 향하는 일종의 엘리베이터까지 만든 앙투안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더니 언제나 졸랑졸랑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데스메트 씨의 집엔 오디세우스의 프랑스어 표기인 윌리스란 이름의 잡종 개를 키웠는데 이 개가 외톨이 주인공 앙투안의 소년시절에 가장 가까웠던 친구인 것을 정작 데스메트 씨는 몰랐었다. 그래 사달이 벌어진다.
 어느 날, 피아트 또는 시트로앵이 과속으로 달리다가 윌리스의 정면과 충돌했고, 윌리스는 불행하게도 현장에서 즉사하는 행운을 누리지 못하고 전신 골절을 입은 상태로 고통에 휩싸인 채 데스메트 씨 마당에 누워 신음하고 있었다. 이를 내려다보던 데스메트 씨는 집으로 들어가 엽총을 가지고 나와 윌리스의 복부에다 한 방을 발사해 나름대로 안락사를 시키고,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 입구를 끈으로 막은 채, 그냥 쓰레기더미 옆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거친 성격의 데스메트 씨 입장에선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처리였지만 그때부터 어린 앙투안의 눈에는 쉬지 않고 눈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으며, 심사가 극도로 비틀린 소년 앙투안은 숲으로 들어가 자기가 짓고 있던 나무 위의 아지트를 몽땅 부숴버리고 말았다. 이때 졸랑졸랑 우상 앙투안 앞으로 달려오던 레미. 앙투안은 엉뚱하게 레미에게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너희 아빠가 왜 그랬어? 엉, 도대체 왜 그런 거냐고?” 그리고는 분노에 휩싸여 벌떡 일어나 원시적인 엘리베이터를 지지하던 작대기를 집어 들고 새파랗게 질려버린 레미의 관자놀이를 향해, 전력을 다해 휘둘러버렸다. 딱 한 번. 작대기가 어린 레미의 관자놀이에 닿자마자 ‘빡!’하는 충돌음이 약 10 데시벨 정도로 발생했고, 레미는 눈을 뜬 채 그대로 넘어졌으며, 긴 말 하지 않고, 죽었다.
 이후 상당한 부분은, 글쎄 내가 읽기로는 작가의 관점에서 본 어린 앙투안의 고뇌가 오래 이어진다. 나름대로 레미의 시신을 성공적으로 숨긴 앙투안은 자신이 체포되어 적어도 20년 정도 감옥에 가야한다는 공포에 휩싸여 197쪽까지, 책의 거의 삼분의 이 분량을 고뇌해야 하는 단계로 접어든다.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떠오르는 작품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라스콜리니코프가 저절로 떠오르는데, 포르피리가 없는 라스콜리니코프. 거기다가 이제 겨우 열두 살 먹은 살인범이라니.
 2부는 다시 12년이 흘러 앙투안이 스물네 살 먹은 인턴 과정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는 시점. 어느 새 청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과거 자신의 순간적 잘못에 대한 죄의식에 싸여 우울한 젊은이로 성장하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가능하지만 결코 아이는 만들지 않겠다는 필생의 신념을 세운다는 건 독자라면 저절로 이해가 간다. 자신의 고향 보발 시에 다시는 걸음을 하지 않는 것을 필생의 목표로 삼았으나 아직도 어머니 쿠르탱 여사가 고향에 살고 있으니 일 년에 몇 번을 다녀가지 않을 수 없을 터. 12년 전에 자신을 살인범으로 만든 최초의 원인은 피아트 혹은 시트로앵에 의하여 저질러진 교통사고였듯이, 이제 세월이 흘러 외과의가 되기 바로 전 단계에 접어든 앙투안 앞에 또 한 번의 교통사고가 준비되어 있으니, 기대하시라, 개봉 박두.
 역시 잘 쓴 대중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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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1-11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떡밥의 유혹이란...

당장 달려 나가 사야 하나요.
궁금하네요 증맬루.

Falstaff 2019-11-11 14:06   좋아요 0 | URL
ㅎㅎㅎ
헌책방에 한 번 들러보시는 것도 좋은 선택일 듯합니다.
 
갈라진다 갈라진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17
김기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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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곱추>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을 했다 한다. 몇 번을 변명했다시피 내게 80년대 말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낮엔 열심히 일하고 밤엔 죽자고 술 퍼마시던 시기라 시 따위를 읽을 겨를 같은 건 애초에 없던 시기다. 그러니 시인의 이름이 낯설 수밖에. 근데 어떻게 이 시집을 사게 됐느냐고? 별 거 없다. 시집 뒤편에 달려 있는 <해설>을 오생근 씨가 썼다는 이유로 고민 없이 골랐다. 그러나 지금 독후감을 쓰기 위해, 천생 평론가인 오 씨의 시집 해설 읽기는 미루어 두었다. 그의 해설을 읽는다면 김기택의 시에 관한 온전한 감상은 (그것이 비록 남루할지언정) 절대 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평론가의 글은 자주 독자의 머릿속에 돌에 새겨놓은 관념으로 작용한다.
 시집을 열면 나오는 첫 번째 시가 <우주인 2>이다.


 우주인 2


 몸무게 없는 몸으로 그는 검푸른 창공에 홀로 떠있습니다. 깊디깊은 허공에 익사하여 온통 부력만 남은 무중력 하늘에 둥둥 떠다니고 있습니다. 벌어진 입과 귓구멍 콧구멍에 무한을 가득 채운 채 끝없이 투명한 공기에 매장되어 있습니다. 막힘없이 펼쳐진 하늘에게 목 졸리고 숨구멍 막히고 팔다리 결박되어 우주 쓰레기들과 함께 떠돌고 있습니다. 놀란 입을 벌리고 눈을 허옇게 뒤집고 있는 공포는 아직도 우주선에서 조난당하고 있는 중입니다. 영혼과 천연 방부제가 배합된 우주 공기는 오래 묵은 미라를 칭칭 감아 하늘 높이 별처럼 띄워놓고 있습니다.



 시집을 발간한 시점이 2012년. 난 이 시를 읽으며 송구하면서도 섬뜩하게도 김민정의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에 든 시 <곡우>, 이날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는 24절기 중 여섯 번째 절기인 곡우穀雨와, 2014년 곡우를 즈음해 사고가 난 세월호 사건을 애도하기 위한 哭의 비, 곡우哭雨를 중의한 시 <곡우>가 떠올랐으며, 다시 강조하건데 송구하면서도 섬뜩하게도 세월호 안에 갇힌 채 익사한 넋들을 떠올리고 말았다. 제목이 <외계인>이고 외계인이 익사한 공간이 검푸른 창공, 그것도 “투명한 공기에 매장된 창공”일 뿐, 사실 우주의 투명한 공간들과 물속, ‘매장된 곳’과 ‘세월호 내부’는 적어도 비슷하거나 같은 개념이니 이 시를 읽고 이리 생각한 독자는 분명히 나 한 명은 아닐 듯하다. 그렇다. 시가 섬뜩하다. 시를 읽으면서 왜 이런 자유로운 연상 작용이 가능한가 하면, 시인이 익사체 또는 익사체로 보이는 대상을 상당히 객관화 하여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읽어온 시들 가운데 죽음을 주제, 적어도 소재로 한 것들이 어디 한두 편이었나. 그것들 가운데 이 시만큼 노골적인 죽음의 상태를 내놓고 묘사한 것을 나는 기억할 수 없다. 물론 시를 읽어온 내력이 일천하기는 하지만.
 두 장을 더 넘기면 <넥타이>란 제목의 시가 또 하나 나온다.



 넥타이



 목이 힘껏
 천장에 매달아 놓은 넥타이를 잡아당긴다
 공중에 들린 발바닥이 날개처럼 세차게 파닥거린다


 목뼈가 으스러지도록 넥타이가 목을 껴안는다
 목이 제 안에 깊숙이 넥타이를 잡아당인다
 넥타이에 괄약근이 생긴다


 발버둥치는 몸무게가 넥타이로 그네를 탄다
 다리가 차낸 허공이 빙빙 돈다


 몸무게가 발버둥을 남김없이 삼키는 동안
 막힌 숨을 구역질하는 입에서 긴 혀가 빠져나온다


 벌어진 입이 붉은 넥타이를 게운다
 수십 년 동안 목에 맸던 모든 넥타이를 꾸역꾸역 게운다
 게워도 게워도 넥타이는 그치지 않는다


 바닥과 발끝 사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줄어들지 않는 한 뼘의 허공이
 사람을 맨 넥타이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다



 실감나시지? 넥타이로 목을 매단 사람이 죽어가는 몇 분을 그대로 그려놓았다. 시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진심으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상당히 잘 쓴 시 아닌가 싶다. 마지막 연, “바닥과 발끝 사이 / 아무리 발버둥쳐도 줄어들지 않는 한 뼘의 허공”, 이 절망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생과 사의 간극을 어떻게 더 절묘하고 극명하게 묘사할 수 있겠는가. 지금 시집의 앞날개를 보니까, “시인은 다양한 죽음의 사건을 인간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본다.”라고 써놓았다. 이 독후감을 쓴 다음 곧바로 읽을 오생근 씨의 해설에 나온 문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적확한 설명이다. 조금도 애도나 안타까움이나 동정의 묘사도 포함하지 않은 죽음 날 것의 상태에 관한 묘사. 그런데 어쩔 수 없다. 읽기가 힘들다. 이런 시들은 위에서 얘기했듯이, 절묘한 묘사를 든 시라 할지라도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물론 모든 시가 다 이렇지는 않다. 예를 들어, “우산들은 어떻게 공기 속에서 비 냄새를 찾아내 / 첫 빗방울이 떨어지자마자 활짝 펴지는 것일까. / 눈물은 어떻게 슬픔이 지나가는 복잡한 길을 다 읽어두었다가 / 슬픔이 터지는 순간 정확하게 흘러내리는 것일까. / 저 많은 꽃들은 어디에 숨어 있다가 / 봄과 나뭇가지에 마련된 자리에 찾아와 한꺼번에 터지는 것일까. / 비가 그치면 저 많은 우산들은 / 어떻게 제 이름이 새겨져 있는 자리를 찾아 일시에 증발해버리는 것일까.”(<우산을 잃어버리다> 부분)라고 삶과 자연의 연관을 잃어버린 우산을 통해 노래하기도 한다. 그래도 내 경우엔 죽음의 임팩트가 과했다. 좋은 시집이기는 하지만 내게 맞지 않는 것을 남에게 추천할 수는 없는 것. 아쉽지만 이 시집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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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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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야 이 책이 2013년 공쿠르 상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놀랐다. 근데 조금 덜 놀랐다. 2016년 공쿠르 상을 받은 레일라 슬리마니의 <달콤한 노래>를 통해 벌써 크게 한 번 놀랐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을 받은 순서로 보면 <오르부아르>로 먼저 놀랐어야 하지만 내가 책을 읽은 순서로는 그랬다.
 난 공쿠르 상을 받은 작품은 좀 멀리하는 경향이 있었다. 글쎄 그동안 읽었던 수상작 가운데 유독 나하고 맞지 않는 작품들이 많아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더러 공쿠르 상의 특징을 말해보라면, ① 보통의 독자들은 해독 불가능할 정도로 난해해, 전문적이고 고급한 문학수업을 수료한 자들만이 서로 공감하기 위한, 공감할 수 있는 작품에 한정하고, ② 전문가들로 하여금 딱 하루 동안 책을 읽고, 해석하고, 논평할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을 넘어서는 작품은 수상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③ 세상에서 제일 잘난 척하면서도 상금은 가장 쪼잔하게 주는 문학상이었다. 딱 1년 전에 <달콤한 노래>를 읽음으로 해서 이런 선입관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오르부아르>로 드디어 선입관이 쪼개지기 시작했다. <오르부아르>를 몇 마디로 정의하자면, 쉽게 이해되고, 재미있으며, 불길한 숫자라고 칭하는 666쪽에 달할 만큼 공쿠르 상 수상작치고 길기까지 하다. 책은 출판사 열린책들의 특징인 작은 판형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쪽 당 25행을 배열해 글씨가 촘촘하게 박혀있어 분량은 만만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재미있는지 이틀이면 책 다 읽고 나처럼 독후감도 쓴다. 당연히 밤마다 쐬주 한 병씩 이틀 밤에 두 병을 마셔대면서도. 어떻게 이틀 밤이냐고? 월요일 오후에 책 읽기 시작하면, 월요일 밤에 제철 방어회 곁들여 일품 진로 한 병, 화요일 밤에 두부 안주해서 미르25 한 병, 수요일 오전 일찌감치 책 읽기 마치고 독후감까지 쓰면 이틀 맞잖아.
 1차 세계대전은 1914년 한여름에 시작해 1918년 빼빼로 날, 11월 11일에 끝나는데, 소설을 시작하는 1918년 11월 2일에는 프랑스 군도 그렇고 독일 군도 그렇고 휴전 내지 종전에 관한 협정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훤히 알고 있었는데, 프랑스와 독일은 이미 기존의 국경이 있었던 바라, 한국전쟁처럼 종전 시점의 전선에서 새로이 경계를 정한다는 전제 때문에 휴전 직전에 작렬했던 고지 전투는 아군이나 적군이나, 장군이나 이등병이나, 나나 너나 생각지도 못했던 터, 병사들은 그저 참호 안에 엎어져 연인이나 아내에게 편지를 쓰고, 담배내기 카드놀이를 하고, 둘러앉아 웃통을 벗고 이를 잡고, 우리의 주인공 에두아르 페리쿠르처럼 병사들의 모습을 수첩에 크로키에 담는 등 편하게 시간만 죽이고 있었던가보다. 여기에 등장하는 악마적 미남 인간 하나가 있었으니 끝날 때까지 단 한 구석의 미덕을 보여주지 못하는 불쌍한 악당 앙리 도네프라델 중위. 거덜이 난 귀족 가문의 후손으로 장교로 참전하여 적어도 대위 타이틀을 따고 제대를 해서 좋은 직장을 거쳐 왕창 돈을 벌고, 그 돈으로 가문의 성chateau을 원래 모습으로 완벽하게 보수하는 일을 자기 인생의 일차 목표로 하고 있는 인물이다. 근데 별 공훈도 없이 전쟁이 끝나려 하니 애가 타지 않을 수 없는 일. 까짓 병사들의 목숨이야 내 알 바 아니니까 얼른 국지적인 전투라도 하나 터지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던 터, 기어이 일을 벌여, 늙은 병사 하나와 젊은 병사 하나, 이렇게 두 명을 한 조로 평화롭게 보이는 112 고지 위의 적진을 수색하라고 지시한다. 명령을 받은 두 병사는 낮은 포복으로 엉금엉금 철조망을 걷어내며 기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세 발의 총성이 빵, 빵, 빵, 하고 들리더니 늙은이 하나와 젊은이 하나가 시간차 거의 없이 불귀의 객이 되어 버리고, 지금 평화조약을 맺으려고 하는데 자기편 병사를 쏘아죽인 ‘독일놈들’에게 분노가 솟구친 정의의 프랑스 군인들 모두는 수류탄을 주머니에 넣고 소총을 집어든 채 112 고지를 향해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돌진해나가 기어이 고지를 탈환하고 만다.
 이렇게 젊고 야망에 차고 잘 생긴 젊은 장교 한 명의 수작질 때문에 666쪽에 달하는 장편 소설이 한 편 탄생해 세계적 명성을 즐기고 있는 공쿠르 상을 받아내기에 이른다. 어수룩하고 도무지 자기주장을 내세울 줄 모르는 한 선량한 전직 회계원 출신의 병사 알베르도 줄레줄레 돌격하는 병사들의 뒤를 좇아 뛰다가, 하필이면 재수 없이 수색 나갔다 오라는 명령을 받고 총알받이가 된 전우의 시체 옆을 지나다 그들의 상처를 발견하는데, 에그머니, 이들의 총상이 등에서 가슴 쪽으로 뚫린 거였다. 즉 독일군의 총알에 죽은 게 아니고 프랑스군이 쏜 총알에 맞아 허무하게 죽었다는 뜻. 알베르가 놀라 주위를 돌아보는 순간 누군가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건장한 앙리 도네프라델 중위는 그대로 돌진해 알베르를 약 2미터 깊이의 미끈미끈한 진흙구덩이로 빠뜨려 버린다. 이후 하필이면 독일군 폭탄이 터져 흙더미가 알베르의 몸 위로 40센티미터 가량 덮여 그는 서서히 죽음을 맞게 되고. 이와 거의 동시에 우리의 주인공 에두아르 페리쿠르는 불쌍한 알베르가 빠진  진흙 구덩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유탄, 그러니까 조준사격이 아니라 그냥 흘러가던 총탄에 오른쪽 다리를 맞아 철퍼덕 쓰러져버린다. 그러나 주인공다운 휴머니즘에 입각해 자신도 다리가 아파 넋이 나갈 정도이면서도 아픈 몸을 이끌고 기어, 기어가 거의 죽어가는 알베르를 흙더미 속에서 꺼내주고 이미 숨을 멈춘 그의 몸 위로 함께 쓰러지면서 건장한 에두아르의 몸무게와 중력의 작용으로 알베르의 갈비뼈 몇 대가 부러지며 심장을 꾹 눌러주는,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심폐소생술을 한 꼴로, 놀랍게도 이미 죽은 알베르는 갑자기 기침을 콜록콜록 하며 죽은 자들 가운데 삼분 만에 다시 살아나고야 만다. 바로 이 순간, 또 한 방의 포탄이 멀지 않은 곳에 떨어지며 큼지막한 파편이 팽글팽글 팽글로스 선생이 왈츠를 추듯 회전하며 맹렬한 속도로 날아와 프랑스 최고의 벼락부자 집안에서 언제나 최고급으로 살던 반항아이면서 예술적 기질이 뛰어나며 놀라울 정도로 머리가 좋은 우리의 주인공 에두아르 페리쿠르의 턱 부분을 강타해, 아래 턱 모두와 혀 전체를 육신에서 성공적으로 제거해버린다.
 작품의 줄거리는 여기까지. 정확하게 전체 스토리의 2 퍼센트를 소개했다. 나머지 98 퍼센트는 직접 읽고 그 재미에 빠져보시라고.
 100년 전에 있었던 비극적인 전쟁과 후유증에 관해 쓰고 읽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건너뛰자. 이 소설에 관해 거창하게 반전문학이니 시대 비평적이니 하는 단어를 쓰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다 읽고 내가 느낀 감상은 ‘정말 잘 쓴 대중문학’이라는 것. 당연히 잘 생긴 악당, 그것도 태생적이고 돌이킬 수 없고 회개조차 하지 못하는 절대 악당인 앙리 도네프라델이 등장하고, 나머지 인물들은 극한 부자에 최고 권력자까지 이르는 줄을 가지고 있거나, 일신상의 영달, 아니면 적어도 보신을 위해 복지부동하는 공직자들이며, 유일하게 정의로운 인물 조제프 메를랭은 늙고 냄새나고 더럽고 우울하고 늘 틀니가 덜거덕거리며 다른 이들에게 불쾌감만 주는 퇴물 하급, 하급 중의 하급 공무원이다.
 역자 임호경은 그가 번역한 작품들이 하도 잘 팔려 ‘개이득’을 봤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하는데, 그에게 ‘개이득’을 주는, 즉 겁나게 많이 팔리는 책답게 리얼한 묘사와 긴급한 상황설명, 최고와 최하 계급의 극적 보색대비 등을 기막히게 배열해놓았다. 길지만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게 만드는 것도 이게 보통 솜씨 갖고 되는 일이 아닐 터. 나는 소위 베스트셀러라고 소문이 난 책들은 웬만큼 시간을 흘려보내 소문이 거의 꺼질 때쯤 읽는 습관이 있는데, <오르부아르>는 말 그대로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오를 만한 작품이라고 인정한다. 공쿠르 상을 받고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다고 해서 물론 명작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하나 확실한 건, 겁나게 재미있는 책이고, 세상의 모든 소설 가운데 재미만큼 독자에게 매력적인 포인트는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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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 민음사 모던 클래식 69
다니엘 켈만 지음, 임정희 옮김 / 민음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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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생 독일 본 태생의 여성작가 율리 체를 읽고, 나는 최근에 “평행 우주”라는 현대물리학 용어를 이용해 특정 상황에 대해 과연 어느 것이 진실인지, 진실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지, 라는 의문에 관해 독후감을 썼다. 오늘 1975년 생 독일 뮌헨 태생 남성작가 다니엘 켈만의 <에프F>를 읽고서도 비슷한 얘기를 하게 될 것 같다.
 특정 사건이나 행위, 결과물을 놓고 이를 생산하고, 원인이 되고, 주체가 되는 인물이 확실하고, 정말로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 켈만은 <에프>를 쓰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 <에프>의 주된 관점은 의심, 혼돈, 역할의 전이 등으로 나타난다. 이를 위해 아버지 ‘아르투어’와 그의 첫째 아들인 가톨릭 사제 마틴, 마틴의 배다른 쌍둥이 형제 이반과 에릭을 등장시킨다. 만일 일란성 쌍둥이 형제 이반과 에릭을 캐스팅하지 않았다면 작가는 훨씬 더 많은 분량의 글을 보태야 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는지는 역시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그렇다. 지금 이후 독후감을 아무리 많이 써내려간다 해도 이 다중적인 의미와 열린 결말과 얽힌 관계를 갖는 매력적인 작품 <에프>를 어떤 작품이라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그저 직접 읽어보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혼남이자 거의 아마추어 수준의 작가인 아르투어 씨는 하루 날을 잡아 두 번째 아내가 낳은 일란성 쌍둥이 아들 이반과 에릭을 데리고 첫째 아내가 낳은 아들 마틴을 만나러 가는 것으로 작품은 시작한다. 원래 아버지와 아들 사이라는 것이 나이를 불문하고 별로 살갑지 않아 어디를 갈까, 잠시 궁리하다가 최면술사의 공연을 보러가기로 한다. 최면술사 린데만 역시 다른 최면술 공연과 다름없이 관객 중에 몇 명을 무대에 올려 최면을 거는 시범을 보이는데,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우리의 주인공 부자들을 불러낸다. 자긴 최면에 걸리기엔 너무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아르투어 씨는 최면을 시도하는 린데만에게 계속적으로 자신은 최면에 걸릴 수 없는 인간이라 말하지만 최면술사는 아르투어에게 자신과 자신의 일인 창작을 위해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현실에서 도망치는 것이 어떤가, 라고 최면을 건다. 결코 최면에 걸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아르투어 씨는 그길로 첫째 아내 집 앞에 아들 셋을 내려놓고, 부부 공동 계좌에서 전 재산을 인출해 한동안 돌아오지 않을 테니 기다리지 말라는 전보를 보내고는 떠나버렸다. 이후 세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아버지를 다시 본 일은 결코 생기지 않는다.
 책의 1부는 이렇다. 2부는 가톨릭 사제가 된 큰아들 마틴의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된다. 작은 비밀 하나 알려드릴까? 내 주위에 가톨릭 신부도 있고, 가톨릭 환자 수준의 신자들도 무척 많고, 사제나 수녀의 아버지들도 몇 있다. 그 사람들에게 들었는데, 사제들이 가장 번민하는 것이 (그들의)하느님이 정말 존재하는지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 서품 받기 바로 전에 신앙을 포기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하는데, 이게 진실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렇게 들었다는 말씀이니 오해는 마시라. 마틴 역시 천주의 존재에 대하여 심각하게 의문을 갖는 사제로 등장한다. 천주의 존재를 의심하는데 어찌 기적과 용서와 죄의 사함을 인정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틴은 습관적으로 미사를 집전하고, 고해를 받으며 보속을 주문한다. 어느 날 “버블 티는 내가 좋아하는 차가 아니야.”라는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입은 청년이 자기가 한 남자를 살해했다고 고해한다. 버터플라이, 나비 모양으로 날개를 휙 접어 날을 펼치는 잘 드는 칼로 푹, 쑤셔 죽여 버렸단다. 이걸 어떻게 하지? 경찰에 연락을 해야 하나? 고해 신부로서 비밀을 준수하며 그의 죄를 사해주어야 하나? 마틴은 그냥 손쉽게 죄를 면해주지만 세속의 형법 상 무죄판결을 아님을 밝혀야 한다. 고해를 마치자 이복동생 에릭의 비서에게 전화가 와서 그를 만나러 가 점심을 먹고, 몇 십 년 만에 유명 소설가가 된 아버지가 찾아와 만나고 하루를 보낸다.
 1부에서는 부자가 서로 떨어져 살게 되고, 2부에선 위에서 설명한대로 큰아들 마틴이, 4부에선 유능한 자산관리사가 된 에릭, 5부에선 원래 화가가 되려고 했으나 자신만의 예술을 발견하는데 실패해 큐레이터로 직업을 바꾼 이반이 등장한다. 3부는 이 부자들의 선조가 어떤 내력으로 자신들의 DNA 디옥시리보 핵산을 후대로 이어갔는지 가계가 잠깐 소개된다.
 그래 문제는 1부(아버지 아르투어와 최면술사 린데만), 2부(마틴), 4부(에릭), 5부(이반)이 서로 얽히고설킨 사건과 관계와 소통불능이 F적으로, 라틴말로 Fatum, 운명적인 연결고리로 엮여 난장판을 이루게 된다. 이들 가족 간의 이런 불행, 적어도 행복하지 않은 상태의 상관관계와 원인은 등장인물들이 결코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가운데 오직 한 명, 독자만 마치 구름 위의 신들처럼 알게 되는 것도 재미있다. 물론 세 아들보다 인생을 많이 살아 약간 도가 튼 아버지 아르투어는 눈치 정도를 채고 있는 것 같지만. 이런 운명의 난장판, 그 속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당신과 나를 비롯한 모든 인류일지니, 나는 이 책 <에프>를 참 재미있게 읽었으며, 작가 다니엘 켈만의 다른 작품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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