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베토벤 : 현악 사중주 전곡집 [8CD]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작곡, 부다페스트 사중주단 (Budapes / SONY CLASSICAL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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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8~61년 스튜디오 녹음.
  오랜 동안 베토벤의 후기 현악사중주를 들어봐야 하겠다는 일종의 부채감을 갖고 살던 적이 있다. 후기 사중주 음반은 과르넬리 사중주단, 부다페스트 사중주단의 40년대 녹음, 바릴리 사중주단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전설적인 이 음반, 모두 여덟 장의 CD에 베토벤의 전곡을 담아 할인가 30,500원에 발매한다는 소식을 이제야 듣고, 생각 하고 말고가 없이 단박에 사서 들었다. 물론 그동안 이 녹음을 구입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가격이 마음 약한 사람 심장마비 걸릴 수준이어서 이왕 40년대 녹음이 있는 바에 조금 기다려보자고 했다가 오늘날까지 왔던 것이다. 그간 음반 구입을 많이 망설여 왔었나보다. 2010년에 염가반으로 최초 발매를 한 것을 10년만에야 알았으니.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이어폰을 꼽고 드보르자크의 피아노 오중주를 선택하려다 손가락을 잘못 움직여 베토벤의 14번 현악사중주를 들으며 출근을 하고 있었다. 이 때 들었던 음원이 바릴리 사중주단의 녹음. 당시까지 듣기는 가끔 들었지만 남들이 좋다 하니까 그냥 좋은 곡인가 싶었던 것이 갑자기, 고막의 진동을 통해 가슴을 콱 찌르듯이 절절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가 막 50세가 된 추운 날 아침이었다.
  나는, 다른 글도 잘 쓰지 못하지만, 음악을 듣고 느낀 감정을 글로 쓰는 일을 제일 힘들어 한다. 음악 공부를 조금 했으면 약간의 전문용어를 섞어서 어떤 이유 때문에 지금 듣고 있는 음악이 마음에 와 닿는지 훨씬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내게 그런 기회는 한 번도 없었다. 문학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나은 것이 대학 2학년 시절까지 교양국어 같은 걸 통해 글을 읽는 방법 정도는 깨우칠 수 있었잖은가. 더군다나 음악이라는 장르는 문학이나 회화, 조각, 무용 등 다른 예술과 달리 자연이나 삶을 모방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정서에 호소할 수 있어 현악사중주를 들으며 청자가 느끼는 감정, 감동, 흥분 같은 것을 구체적인 단어로 묘사하는 일이 진짜 어려울 수밖에 없는 거 같다.
  이렇게 음악을 묘사하는 단어, 특히 형용사의 부족은 숱한 필자들로 하여금 공허한 수사로 음악을 표현하려는 시도를 그치지 않고 하게 만들었다. 단어의 부족 현상에 열을 받은 한 시인이 스스로 두껍고 겁나게 비싼 화려 장정의 책을 낸 바 있으나 허망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나는 지금 부다페스트 사중주단이 1958년부터 61년까지 컬럼비아 레코드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여덟 장의 CD를 듣고 감상을 쓰려는 순간의 난감함을 고백하려고 한다. 그것도 다른 작품도 아니고 쉰 살에 접어들고서야 비로소 듣기를 허락한 베토벤의 (특히 후기) 사중주에 관해. 음악이란 무엇일까. 악보를 읽는 것만이 진정하게 작곡가와 소통하는 길이다. 우리가 음악이라 생각하고 듣는 것은 작곡가와 청자 사이에 연주자라는 매개가 끼어들어 작곡가가 오선지에 그린 악보를 그들이 해석한 결과물을 듣는 일이다. 그것도 또 녹음을 듣는다면 소리를 재생하는 기계가 한 번 더 개입을 한 것. 내 귀로 여태까지 들어본 모든 기계는 특별히 현악기의 음색을 완벽 ‘비슷하게’ 들려주지 못했다.
  거기다가 여태까지 가장 훌륭한 녹음이라고 단정하고 지내던 바릴리 사중주단의 베토벤 현악사중주와 극명하게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 연주하는 부다페스트 사중주단의 연주를 듣고, 독후감이 아닌 소감을 쓰려하니 여태까지 A4 용지 한 장 분량 동안 변죽을 울리고도 시작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음악을 들은 소감을 쓰는 일이 어렵고, 그것도 가장 유명한 연주단의 두 연주를 비교할 수밖에 없는 난감한 벽이 앞을 가리고 있기도 하다.
  그러지 말고, 이렇게 얘기해보자. 부다페스트 사중주단의 58~61년 연주에 비하면 바릴리 사중주단의 연주가 더 말랑말랑하다. 평온하다. 침잠한다. 느리다. 사색적이다. 단색이다. 소박하다. 은은하다. 천상의 기분이다. 곡을 내게 헌정한 느낌이다. 더 1 바이올린 위주라서 비올라와 첼로의 반주역할이 크다. 내가 듣기로는.
  주로 12번부터 16번 사중주와 <대푸가>를 후기 작품으로 구분하고 요즘 내가 제일 자주 듣는 곡들이다. 이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15번 3악장을 연달아 들어보면 이런 의견에 동의하실 줄 믿는다. 물론 호오를 분명하게 이야기해보라고 강요하면 그동안 귀에 익어서 그런 줄은 모르겠으나, 내 취향으로는 바릴리 사중주단의 연주가 더 편하다고 말하겠지만, 확실한 건 부다페스트의 이 음반도 바릴리에게 최고의 자리를 양보할 마음이 조금도 없을 거란 정도로만 이야기하자.
  언제나 음악을 문자로 말하는 건 어렵고 어렵다.

 

부다페스트 사중주단, 베토벤 현악사중주 15번 3악장



  * 이렇게 전곡 녹음을 구입하면 좋은 것이, 여간해 듣지 않는 숨겨진 곡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 베토벤의 현악사중주는 초기 작품 가운데 몇 몇 곡 속에 정말로 “숨겨진” 낭만성이 놀랄 만하다.


  * 음악이란 것이 신기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왜 이 연주가 좋은지 이야기하기는 무척 곤란하지만, 한 번 진짜(라고 청자가 느낀 연주)를 들은 후에 다른 연주단의 연주를 들으면, 그게 주관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단번에 ‘에이, 이건 아니다.’ 하는 감정이 확 든다는 거. 그래서 보편적으로 특정 작품에 관해 소위 ‘명반’이 탄생하는 것일 게다.

 

위에서 얘기한 바릴리 현악사중주단의 베토벤 현악사중주 전곡집.

나는 전곡이 아니라 개별 CD들로 후기 곡들과 일부 중기곡만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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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2-27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이 앨범 저도 몇 년 동안 보관함에 담아두기만 했는데, 그렇단 말이지요? 올해는 꼭 사야겠습니다. ㅎㅎ (사실 알라딘에서 1년에 한 번 수입 앨범 할인전 할 때 이 앨범은 2만원대에도 살 수 있습니다. 쿨럭;;)

Falstaff 2020-02-27 14:21   좋아요 1 | URL
옙. 이건 정말 물건입니다!
근데... 2만원대... 아, 차라리 듣지 못했으면 좋았을 것을.... ㅋㅋㅋㅋ

oren 2020-02-27 1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음악은 거의 매일 듣고 살지만, 막상 그 음악을 언어로 표현할라치면 언제나 막막하기만 하더군요. 그런데, 그토록 표현하기 힘든 음악도 어떤 이들은 어찌 그리 잘도 표현하던지, 그런 사람들을 보기만 하면 부러워 죽겠더군요.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 가운데 14번은 <마지막 사중주>를 본 이후 언제 들어도 가슴을 흔드는 곡이 되었더랬지요. 보름쯤 전에도 어떤 이가 스마트폰으로 그 음악을 듣고 있길래, 참 좋은 음악 들으시네요. 베토벤의 어쩌구 저쩌구 했더니, 눈을 휘둥그레 뜨고 좋아하더군요.^^

https://blog.aladin.co.kr/oren/6529278

Falstaff 2020-02-27 20:07   좋아요 1 | URL
14번 사중주는 무려 7악장을 한 번의 쉼도 없이 연주해야 하는 난곡이라고 합니다. 듣기엔 후기 작품 가운데서는 말랑말랑하니 좋습니다만 연주자들은 죽어나가는 곡이라고 하더군요. 저도 얘기하신 영화를 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그렇네요. ^^
아직까지 아쉽게도 전 음악을 잘 표현한 글을 읽어보지 못했답니다. 비극입니다. ㅠ

oren 2020-02-27 20:28   좋아요 1 | URL
니체만 하더라도 그 어떤 음악평론가 못잖게 숱한 음악가들과 그들의 음악작품에 대해 예리한 글들을 많이 남겼던 듯합니다. 바그너를 비롯,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 슈만, 쇼팽, 리스트, 드뷔시, 비제, 롯시니 등등의 음악을 어쩌면 그토록 예리하게 파고드는지 저는 정말 감탄을 거듭했더랬습니다.
* * *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한 폭의 그림으로 바꾸어보라. 수백만의 사람들이 두려움에 가득 차 먼지 속에 가라앉을 때 상상력을 가지고 물러서지 말라. 그러면 사람들은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노예는 자유민이다. 이제 곤궁, 자의 혹은 ˝파렴치한 유행˝이 인간들 사이에 심어놓은 완고하고 적대적인 모든 구분들이 부서진다. 이제, 세계의 조화라는 복음에서 각자는 자신의 이웃과 결합되고, 화해하고, 융해되어 있음을 느낄 뿐만 아니라, 마치 마야의 베일이 갈가리 찢어져 신비로운 ‘근원적 일자(一者)‘ 앞에서 조각조각 펄럭이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이웃과 하나가 됨을 느낄 것이다. 인간은 노래하고 춤추면서 보다 높은 공동체의 일원임을 표현한다. 그는 걷는 법과 말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춤추며 허공으로 날아오르려 한다. 그가 마법에 걸려 있음이 그의 몸짓에 나타난다. 이제 짐승이 말을 하고 대지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것처럼, 그로부터 초자연적인 것이 울려 퍼진다. 그는 스스로를 신으로 느끼며, 마치 꿈속에서 신들이 소요하는 것을 본 것처럼 그 자신도 황홀해지고 고양되어 돌아다닌다. 인간은 더 이상 예술가가 아니다. 그는 예술 작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근원적 일자의 최고의 환희를 위하여 전체 자연의 예술적 힘은 여기 도취의 소나기 아래서 스스로 나타난다.

- 니체,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1장

Falstaff 2020-02-28 09:05   좋아요 1 | URL
니체 역시 음악을 이야기한 것이라기 보다, 음악을 매개로 자신의 철학을 설파했습지요. 그냥 니체의 문장과 특유의 철학적 논의, 단문을 엮어서 자신만의 서사를 만드는 일 같아서요.
저는 한 번도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디오니소스를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기독교의 신을 추앙한 환희의 송가를 디오니소스와 연결시켜 들을 수 있는 철학자, 신학자는 망치를 내려쳐 신을 살해해버린 니체 말고는 없을 겁니다.
니체가 평한 바그너도 그렇고 비제도 그렇고, 그는 음악을 자신의 철학을 위한 한 제재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만 제가 잘 알지 못해서요. 니체도, 음악도.

* 민음사 역사서의 교정 교열에 관한 건, 맞춤법 이야기가 아니고요,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교정을 봐서 사실 내용이 엉망이 된 일을 이야기했던 겁니다. 주로 나라 이름 때문에요. 秦과 晉, 衛와 魏 이런 것들이요. ^^;;

oren 2020-02-28 12:34   좋아요 1 | URL
니체가 음악을 메타포로 철학을 설파했다는 말씀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니체는 단순히 자신의 철학을 위한 재료로서 음악을 이야기했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를 지니고 있었고, 직접 작곡까지 할 정도로 ‘음악예술‘에 대해 깊은 조예를 지녔던 인물로 보입니다. 저는 언젠가 우연히 ‘니체가 작곡한 음악‘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유럽에서는 니체의 음악작품을 연주하는 음악회가 심심찮게 열린다고도 하더군요.

혹시나 해서, 조금 전에 ‘니체와 음악‘에 관련된 책은 나온 게 없나 살펴봤더니, 그럴 듯한 책이 한 권 나와있네요. 알라딘 책 소개에 나와 있는 내용 일부를 덧붙입니다.^^

* * *

니체가 크게 은혜를 입은 중요한 ‘스승’ 쇼펜하우어가 그랬듯이, 니체도 음악적 메타포를 자주 동원한다. 건반, 끈의 진동, 불협화음, 화성, 선율의 메타포…… 이 메타포는 그의 말을 꾸며주고 설명하는 역할에 머물지 않는다. 음악은 생(生)의 메타포다. 태초의 인간과 문명이라는 화성(和聲)의 마그마, “심히 불안을 자아내는 근음(根音)”에서 떠오르고 차츰 분명해지는 선율에서 “자유로이 제멋대로” 나아가며 의욕과 “인간의 완전한 의식의 욕망”을 우리가 알아본다면, 음악은 생이 마땅히 취해야 할 모습의 메타포다. 그 음악이 정점에 도달할 때, 인류가 때때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서야 보게 되는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 “강력한 개인성”은 음악을 이루는 모든 구성 요소의 “지속화음” 없이 존재하지 못한다. ……

따라서 우리는 니체가 자기 글을 악곡과 동일시하여 『도덕의 계보학』을 3악장짜리 소나타라고 말할 때, 특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일종의 교향곡이라고 말하면서 이 책 첫 권을 베토벤 교향곡 9번 의 첫 악구에 비유할 때, 이를 단순한 음악 애호가의 꾸밈이나 겉멋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아마도 나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음악에만 해당할 것이다”라고 쓸 것이다. 니체는 확실히 “들음(聽)의 재생”을 전제한다. 그러나 니체는 늘 깨어 있는 귀로 읽어야 하고, 이건 꼭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읽기는 무엇보다 듣기이기 때문이다.

- <니체와 음악> 중에서


* 민음사 역사서의 교정 교열에 관한 말씀이 그런 뜻이었군요. 좋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낙천주의자의 딸 - 유도라 웰티의 소설
유도라 웰티 지음, 왕은철 옮김 / 토파즈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현대문학사의 세계문학단편선을 읽고 웰티의 글이 마음에 들어 이미 품절을 넘어 절판 상태에 접어든 이 책을 헌책방에서 사 읽었다. 읽고 나서 생각하니 그렇게 하길 잘했다. 마음이 흡족하다. 웰티가 <낙천주의자의 딸>을 써서 퓰리처상을 받은 것이 1973년, 64세. 이이의 본령은 단편소설에 있다고 책을 번역한 왕은철이 역자해설에서 말한 바, 길지 않은 장편인 이 책도 모두 네 부部로 나누어 각기 한 장면에 초점을 맞추는 형식을 취했다. 독자는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내용이 서로 연결되는 연작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 작품의 매력은 소설의 형식에 있지 않고 주인공 로렐 핸드를 둘러싼 가족, 남편, 어머니, 아버지의 죽음과 사람이 살아가며 겪어야 하는 일들에 대해 침착하고 쓸쓸한 시각으로 그려낸 것에 있다.
  세상에 누가 있어서 낳고, 자라고, (외)조부모를 떠나보내고, 부모를 여의고, 배우자를 먼저 보내는 일을 겪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니 웰티가 묘사한 주인공 로렐의 한 살이는 결코 특별하지도 않고, 우울하지도 않고, 불행하지도 않고, 심지어 소설적이지도 않다. 아니, 아니. 먼저 작품의 스토리를 대강이나마 훑어보는 게 좋겠다.
  1부의 중요한 등장인물은 은퇴한 판사이자 전 시장, 71세의 메켈바 씨. 키가 크고 몸이 무거운 판사는 한 마흔 살 정도겠지만 더 젊어 보이기도 하는 아내 페이와 함께 집이 있는 미시시피 주 마운트 세일러스에서 기차를 타고 뉴올리언스의 안과전문의 코트랜드 씨를 방문한다. 한쪽 눈에 중요한 문제가 있으며 다른 쪽 눈은 당시만 해도 특별한 치료/수술법이 없었던 백내장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무남독녀 외동딸이자 과부인 로렐 핸드 역시 밤비행기를 타고 시카고에서 도착한 터. 안과의 코트랜드 씨는 고향이 판사와 같은 마운트 세일러스이며 그의 누나가 아직 고향에서 학교 교사를 하는데, 상처한 판사의 전처이자 로렐의 친어머니인 베키가 시집와서 제일 먼저 사귄 친구였던 터. 의과대학을 다니던 코트랜드는 학업 중 대공황기를 맞아 학교를 때려치우려 궁리를 할 곤고했던 시절, 판사를 지내던 메켈바 씨가 그깟 공무원 봉급이 몇 푼이나 되겠느냐만 코트랜드 씨로 하여금 결정적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있게 경제적으로 도와준 은인이기도 하다. 이런 코트랜드가 진료를 해보니 당장 망막수술을 해야 하고, 성공리에 수술을 한다는 전제로 약간의 시력을 가질 수 있다고 진단을 내린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나고 환자는 꼼짝 말고 몇 주를 견뎌야 하는 인내의 시간이 왔을 때, 뉴올리언스 시내는 화려한 축제를 시작하고 철없는 아내 페이는 절대 요양을 취해야 하는 남편에게 바가지 득득 긁으며 자신을 위해 몸을 움직여보라고 패악질을 부린다. 물론 페이는 늙은 남편이 누워 있기 시작했을 때부터 더 이상 살기를 희망하지 않았다는 걸 눈치 채지 못했겠지만 하필이면 환자의 팔을 끌어당기며 포악을 쓰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과부가 되어버린다.
  2부 부터는 간단하게 넘어가자. 2부는 제일 많은 분량으로 되어 있다. 시신을 마운트 세일러스에 있는 집으로 옮겨와 성대하게 장례식을 치룬다. 다른 가족이 없다고 자신보다 나이가 더 많은 의붓딸 로렐에게 한 말과 달리 이웃 불럭 소령이 수술을 받기 바로 전에 판사가 가르쳐준 대로 페이의 어머니, 오빠, 조카 등을 불러 이들도 장례식에 참석을 하고, 페이는 점잖은 동네 예절을 깡그리 무시한 채 말 그대로 교양 없이 나오는 대로 지껄이고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다. 페이의 가족이 장례식이 끝나 집으로 돌아가자 페이는 그들과 함께 그곳으로 가서 로렐이 집을 떠나는 날에 돌아와 더 이상 서로 얼굴을 마주치지 않게 일정을 잡는다.
  3부는 집에 남은 로렐이 눈에 이상이 있어 앞을 못 보게 된 채 세상을 마감한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며 어머니와 외갓집, 아버지와의 관계를 추억한다.
  4부는 휴가 중에 결혼하고 다시 해군에 복귀하자마자 가미카제 특공기의 공격을 받아 시신도 찾지 못한 남편을 기억하고 사람 사는 일에 대해 조금 생각하다가 집을 떠난다.
  내가 이렇게 일일이 작품의 스토리를 설명하는 건, 스토리를 이야기해봤자 진짜로 책을 읽을 분의 감상에 거의 방해를 주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고 그런 이야기. 그러나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읽은 심사관들이, 다른 심사관도 아니고 미국 내에서는 방귀 깨나 뀐다는 퓰리처 상 심사관들이 <낙천주의자의 딸>에게 선뜻 상을 안긴 것에는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웰티는 작품을 통해 각자의 주변에 있는 것들과 모든 ‘나’의 관계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것을 권하고 있다. 가까운 사람, 예를 들어 부모-자식, 부부, 친척, 친구, 이웃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배려해줄 뿐만 아니라 가끔은 자신도 알게 혹은 모르게 상처를 주는 존재들이란 것. 자신의 호의가 남에게는 무례로 보일 수도 있고, 분명히 나는 비아냥거렸는데 그걸 칭찬으로 접수해 고마움을 표시할 수도 있는 것이 인생, 그 중에서도 사람들의 관계이다. 그리하여 유도라 웰티가 이 잔잔하고 깔끔한 소설 <낙천주의자의 딸>에서 자그마한 목소리로 선언하는 것은 “우리가 서로 만나고 삶을 계속하는 것에는 사랑만이 아니라 미움도 함께 있음”을 기억하라는 말이다.
  이 책의 미덕은 아버지의 죽음이란 흔한 주제에서 흔하게 보듯이 그리움, 슬픔, 우울, 후회 같은 싸구려 감상에 조금도 빠지지 않았다는 데 있지 않을까. 알수록 매력적인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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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0-02-25 0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도라 웰티, 몰랐던 작가의 좋은 작품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움으로도 삷은 계속된다. 아니 계속 한다 삶을. 주변에 있는 모든 대상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는 문장에 바로 중고 구매했어요. 단편집도 같이 ^^

Falstaff 2020-02-25 09:23   좋아요 0 | URL
ㅎㅎㅎ 언제나처럼 책임은 지지 않습니다. ^^;;
저도 단편집 읽고 곧바로 헌책방 뒤진 거랍니다.

잠자냥 2020-02-25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도라 웰티 단편선에서 몇 작품 읽었는데 폴스타프 님 말씀처럼 더 알고 싶어지는 작가더군요. 저는 다행히 검색해 보니 집 근처 도서관에 이 책이 있더라고요. 도서관 다시 문 열면(코로나19 때문에 문 닫았어요 ㅠ_ㅠ) 꼭 빌려서 보겠습니다.

Falstaff 2020-02-25 10:07   좋아요 0 | URL
헉, 도서관도요?
저도 오늘부터 마스크 쓰고 사무실에 앉았을려니 아주 힘드네요.

2020-02-25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0-02-25 10:37   좋아요 0 | URL
네 확진자 동선에 있어서 닫은 건 아니지만 미리 알아서 예방차원에서 2월 내내 닫았는데....지금 사태로 보니 왠지 3월도 쉽사리 열 것 같지는 않네요.

2020-02-25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5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님의 침묵 범우문고 282
한용운 지음 / 범우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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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수 없어요>가 교과서에 실린 것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 때 달달 외우라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국어교사가 새된 목소리의 아주머니가 돼서 두드려 맞지는 않았는데, 시를 배우면서 공즉시색, 색즉시공 어쩌고저쩌고 했던 걸 아주 오랜 세월 잊고 지내다가, 요새 시인들이 쓰는 시의 개인적 절망의 암호화에 적응을 못하기도 했고, 이제는 우리의 고전이 된 예전 시들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기특한 자각도 들고 해서 본격적으로 우리 시를 읽어보기로 결정해 처음으로 고른 시집이 《님의 침묵》이다.
  만해의 시를 교과서에서 배울 때, 그이의 님은 잃어버린 나라일 수도 있고, 부처일 수도 있으며, 진짜로 시인의 애인일 수도 있다는 걸 얼마나 강조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진짜 시집 《님의 침묵》을 열어보니, 시인이 쓴 서문, 만해는 이걸 “군말”이라고 했는바, 엇다 모르겠다, 멋있고 짧은 글이니 그대로 옮겨보기로 하자.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衆生)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치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느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의 알뜰한 구속(拘束)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옛말이 정답다. ‘기루다’가 무슨 뜻일꼬? ‘그리워하다’의 고어다. ‘장미화’? 나이든 가수의 이름이 아니라 그냥 장미꽃. 하여튼, 국어 교사가 만해의 시를 연구해 학생들에게 그리 가르쳐준 것이 아니었다. 만해가 일찍이 시집을 펴내면서 자신의 ‘님’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해 놓은 걸 그냥 전달만 해준 거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놓고 뒷 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시 <님의 침묵>의 부분이다. 대가리 커지고 이 시를 떠올릴 때마다 제일 웃기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던 것이, 왜 첫 키스가 날카로울까, 였다. 도대체 첫 키스를 누구하고 한 거야? 뭐 다들 해보셨지? 순전히 내 경우만 고백하자면, 당시 서로가 그게 첫 키스였던지라 그걸 어떻게 하는지는 유전자적 지식으로 알긴 하지만 둘 다 너무 서툴러서 기억나는 거라고는, 하고보니, 주둥이 부근이 온통 침 범벅이 된 것 밖에 없어서, 아 참, 이런 걸 평생 하고 살아야 하는지 어린 마음에도 마땅하지 않았던 일이다. 그런 이유로 시인이 극강 프로페셔널하고 첫 키스를 한 것이 틀림없다, 아니면 시인과 상대방이 극도의 구강건조증 환자여서 입술과 입술이 맞붙을 때 불꽃이 번쩍, 했을 거라고 나는 선언한다.
  근데, 진짜로 시집 《님의 침묵》을 읽어보면 왜 보통의 우리가 만해 한용운, 하면 <님의 침묵>과 <알 수 없어요>만 알고 있는지 단박에 눈치 챌 수 있다. 시들의 거의 대부분이, 한 98퍼센트 정도가 ‘님’ 또는 ‘당신’에게 바치는 헌사이며, 시에 사용한 시어와 문장들도 비슷한 정조를 갖고 있어서 모두 88편의 시가 그게 그거인 것처럼 읽힌다. 아, 안다, 알아. 그동안 시대가 많이 바뀌어 독자가 발랑 까져서 만해의 구도와 독립을 향한 염원 같은 숭고한 헌사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다는 건. 근데 읽는 인간이 그렇게 느끼면 그걸로 끝이지 뭐. 혹자는 <님의 침묵>이나 <알 수 없어요>보다 <복종>을 더 좋아한다는 사람도 만나볼 수 있기는 하다. 나는 그런 인간의 속뜻을, 자신은 만해의 다른 시도 알고 있다고 폼 잡는 거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시집을 읽으면서 누구나 다 알고 좋아하는 시 두 편 말고 하나를 더 건졌다. <두견새>라는 이름의 시인데, 두견이는 우리말로 접동새를 뜻하며 당시 유식하게 한문으로 하면 불여귀(不如歸)라 했다. 이름 좋다. 또 다른 말로 귀촉도(歸蜀道)라고도 한다. 혹시 항우에 밀려 잔도를 따라 촉나라로 들어가며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리라 한탄하던 유방 일당이 밤새 한 잔 술에 시름을 달랠 때 접동새 울음소리가 들려 이런 이름이 붙은 거 아닐지 몰라? 하여간 그런데, 예전에 자주 접대를 받던 비싼 술집 이름이 취불귀(醉不歸)였더랬다. 발음이 비슷해 자주 간 편인데 뜻도 멋있었다. 취해 돌아가지 못하리. 그렇게 비싼 술집은 내 돈 내고 간 적도 없지만, 남의 돈이라도 진짜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인종이라 좋은 기억은 아니다. 엇, 독후감 쓰다 보니 또 나하고 자매결연 맺은 도시 삼천포로 빠졌다. 어쨌든 마음에 든 시 <두견새>를 소개하며 독후감을 마감한다.



  두견새는 실컷 운다.
  울다가 못 다 울면
  피를 흘려 운다.


  이별한 한(恨)이야 너뿐이랴마는
  울려야 울지도 못하는 나는
  두견새 못 된 한을 또다시 어찌하리.


  야속한 두견새는
  돌아갈 곳도 없는 나를 보고도
  ‘불여귀 불여귀(不如歸不如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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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02-24 15: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님의 침묵> 소리내어 읽기를 쑥스러워했던 때가 있었네요 ^^
두견새라는 시를 오랜만에 여기서 다시 만나요. 누구에겐가 적어서 보여주고 싶은데 그 누구가 없어 안타까웠던 때가 있었고요.

Falstaff 2020-02-24 16:05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근데 교과서에선 <님의 침묵>을 소개만 했지 나오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워낙 오래 전이라 가물가물 합니다만.
<두견새>는 처음 읽어보는 건데요, 이거 필이 팍 꽂히더라고요. 문학소녀셨군요. 저도 요즘 시 읽다가 이런 시 읽으니 갑자기 눈 앞이 환~해지는 것이, ^^;;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5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송병선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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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들어서 읽기도 전에 바짝 쫄아 구입을 망설였던 책이 세 권 있었다. 헤르만 브로흐의 <현혹>, 막스 프리슈의 <슈틸러>, 그리고 이 책. 사실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브로흐를 제일 겁냈었고 비오이 카사레스는 약간 머뭇거린 정도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아, 비오이 카사레스를 읽기 위해 닷새가 필요했다. 464쪽에 불과한 책을. 이 책을 읽기 위해 독자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경구는, 그까짓 책 한 권을 읽기 위해 다짐까지 해야 하는 말이 있다는 것도 우습긴 하지만, 보통의 남자들이라면 군역을 치루면서 수도 없이 들은, “졸면 죽는다.”는 거. 비오이 카사레스를 제대로 읽으려면 중단편에 불과한 분량이긴 하지만 각 편을 시작하는 문장에서 끝마치는 문장까지 잠깐이라도 다른 생각을 했다하면 얄짤없이 첫 페이지로 다시 돌아와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그가 쓴 <모렐의 발명>을 읽고 탈옥한 사형수가 도망친 외딴 섬에 모렐이란 이름의 테니스 선생이 발명한 영상의 비밀, 헛갈리는 진짜 라틴 아메리카의 아몰랑 주의 소설의 진수를, 이해했다는 말은 하지 말자, 경험한 후로 다시는 함부로 비오이 카사레스를 읽으려 덤비지 말자고 각오한 것이 떠올랐다. 이 중단편집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에 실린 작품들은 등장인물의 단언을 빌어 시간도 변한다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개떡으로 알고, 빛의 속도 역시 부정한다. 이게 말로 하기는 간단해도 시간과 빛의 속도를 부정한다는 건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틀을 해체하겠다는 의미이며, 따라서 이미 죽은 사람들도 어떠한 형태를 갖추었더라도 자연스럽게 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쉽게 얘기해 시공간 파괴 작업. 위에서 언급한 <모렐의 발명>에서 영상 속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나’의 영혼 또는 실체로서의 몸까지 영상에 흡수되듯이 이 책에서도 비슷한 차원의 것들이 모든 작품 속에 등장한다.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영혼의 문제. 예를 들어 편지를 날라주는 비둘기, 전서구의 뇌를 열어 방연석이 첨가된 무선통신 장치를 해놓으면 비둘기가 훨씬 더 효율적인 집배원 역할을 하지 않을까, 라고 개념을 잡은 한 소년은 자기네 집에서 기르는 비둘기에다 대고 닥치는 대로 뇌수술을 감행한다. 단편 <열망>의 주인공인 이 소년은 동네에서 제일 예쁘지만 사납고 공격적인 아가씨하고 결혼한 후에는 니켈로 만든 두 개의 기둥이 있고 높이가 20cm 쯤의 틀을 만들어 짐승의 영혼을 보관하는 장치를 만들어내고 만다. 한 틀에 한 영혼. 제일 먼저 틀로 초대하는 영혼은 자신이 기르던 늙은 개 마르코니. 자, 육신에서 영혼을 빼 틀에 저장해놓았으니 몸뚱이는 어떻게 될까? 어떻기는 어때, 즉시 부패하기 시작하는 거지. 그래 개는 마당을 파고 묻을 수밖에. 이 상태에서 영혼을 보관해놓았으니 늙긴 했지만 그래도 십여 년을 함께 정을 붙이고 산 마르코니는 영생의 단계에 들어간 것일까?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어여쁜 아내 밀레나가 시어머니와 시누이 연합군에 맞서 하고 한 날 베르됭 전투를 벌이는 바람에 틀을 하나 더 만들어 이번엔 자신의 영혼을 담아버리는 단계에 이르니, 영상에 영혼을 담은 <모렐의 발명>과 비슷하다.
  모든 작품이 이렇게 엽기발랄하다. <위대한 세라핌>에서는 알바레스라고 하는 주인공이 병이 들어 휴직을 하고 산타클라라 인근 해변에 요양 목적으로 방문해 바다를 바라보는 환상의 장면이 ① 거대한 썩은 고기(생선)로 가득 찬 원형 모양의 수평선, ② 호텔 화단의 시든 꽃, ③ 몇 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진 고래와 크고 작은 고기들의 시체, ④ 이것을 먹기 위해 육지에서 날아든 까마귀, ⑤ 호텔에 돌아오자 라디오에서 크게 들리는 모차르트의 레퀴엠, ⑥ 유렵의 모든 해변에서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니스에서 온 전보 등으로 이어진다. “이 이야기는 무자비하게 햇볕이 내리쬐던 어느 날 아침 산타클라라 해변의 낮은 벼랑 옆에서 상상한 것에서 출발한다. 나는 바닷물이 빠지면서 바다 밑바닥에 무지갯빛 물방울이 맺힌 동안 커다란 고래 무리가 해변에서 죽어있는 것을 상상했다.”라는 작가 노트에서 보듯이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자신의 뇌 속에 방연석이 첨가된 무선통신 장치가 삽입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누가 무선통신 장치를 작가의 뇌에 심었는가 하는 점인데, 나는 정답을 안다. 세상의 썩은 바닷물과 유황냄새가 나는 민물로 가득 차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비오이 카사레스의 뇌에 무선통신기 시술을 한 자는, 루시퍼였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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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2-21 0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이 책 장바구니에만 담아두고 있었는데 사게 되면 각오하고 정신 차리고 읽겠습니다!!

Falstaff 2020-02-21 09:25   좋아요 0 | URL
에구, 잠자냥님은 내공이 깊으시니 그래도 편하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
 
약속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5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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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편의 추리소설 또는 범죄소설을 실은 작품집. <약속>, <사고> 둘 다 되게 매력적인 범죄소설이다. 뒤렌마트가 쓴 추리소설 또는 범죄소설 전반에 걸친 짧은 고찰은 이 책의 뒤에 실린 작품해설에서 상세하게 나오니 참고하면 되겠다. 작품해설을 참고하란 말씀은 직접 책을 사서 읽어볼 만하다는 뜻이다. 도서관 이용도 좋은 방법이긴 하겠지만 이렇게 특색 있는 추리 또는 범죄소설은 책꽂이의 한 자리를 차지할 권리를 갖는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지난번에 작가가 쓴 추리소설집 《판사와 형리》를 재미있게 읽어서이다. 역시 뒤렌마트, 나는 그의 책을 읽고 실망해본 적이 없다. 20세기 스위스 문학을 넘어 독일어 문화권의 찬란한 두 별, 막스 프리슈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를 연속해 읽는 우연도 재미있다. 비슷한 시기를 살면서 현상을 보는 기본적 시각은 비슷한데도 표현방식이 이다지도 다를 수가 있을까. 열 살 차이가 나지만 살아생전 두 명이 돈독한 관계를 맺었을 거 같다. 성격 다른 사람들이 한 번 친하면 진짜 친해지는 일이 왕왕 있으니.
  두 편의 소설이 다 재미있는데, 독후감은 표제작 <약속>에 대해서만 쓰겠다.
  <약속>은 작가가 쿠어(Chur) 시에서 추리소설의 창작기술에 관한 강연을 하고 우연히 자신의 강연에 참석했던 전직 취리히 주 경찰국장 H 박사와 만나 그의 차를 타고 취리히로 돌아오면서 시작한다. “선생의 강연은 졸렬하기 짝이 없더군요.” 라고 독설을 펼쳤던 박사는 추리소설이 현실을 왜곡한다고 비난한다. 겨울이라 빙판과 눈 녹은 물이 아스팔트에 번갈아 깔리는 바람에 긴장을 멈출 수 없던 이들은 도중에 들른 주유소에서 벤진을 보충하는 동안 맛없는 커피를 한 잔 씩 마신다. 당시엔 휘발유 대신 벤진을 사용했었나보다. 하여간 주유하는 인물이 누구냐 하면, 한때 H 박사의 부하로 경감 직위에 있었으며 추리소설의 화자를 능가하는 천재로 바젤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까지 보유한 ‘마태’라는 이름의 노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이후로 H 박사가 취리히까지 오는 차 안에서, 그리고 취리히에서 따로 ‘나’를 만나 마태 박사가 연루된 마지막 사건을 이야기하는 형식을 취한다.
  마태는 유능하기는 하지만 너무 유능한 것도 세상 사는데 결코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거니와 사물이나 사건에 유난히 집착하는 성격도 있어서 인기가 없는 인물이었다. H 박사가 은퇴를 염두에 두었을 때 당연히 마태가 후보자들 가운데 한 명으로 떠올랐지만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도 없었고 그렇다고 부적격자라고 공격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때  마침 요르단에서 경찰 전문가 한 명을 파견해달라는 요청이 와서 당시 50세인 마태를 추천했으며, 이에 자신도 매우 흡족해 해 기꺼이 수락을 하고 이제 책상을 정리할 시간이 왔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마태의 책상 위에서 전화기가 그를 호출한다. 전화는 그의 오랜 단골 피의자이며 14세 여자 아이를 추행한 전과가 있는 폰 군텐에게서 왔다. 지금 취리히 근교 메겐도르프에 있는 식당 겸 술집 ‘사슴’에 있으며, 자신이 숲에서 성추행 후 죽임을 당한 여자 아이를 발견했다는 내용이다. 마태가 현장에 가보니 그리틀리 모저란 이름의 소녀가 면도칼로 잔인하게 목을 유린당한 채 죽어 있어서 마태를 제외한 경찰들도 고개를 돌릴 지경이었다.
  산골 풍습이 여전히 남아있는 메겐도르프에서는 시민들이 생각하기를, 희생자를 발견했으며 본인이 14세 어린이 성추행의 전과가 있는 폰 군텐을 범인으로 지목해 죽음에 이를 때까지 린치를 가할 준비를 한 채 경찰차 두 대를 완전히 포위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마태가 주민들을 설득해 무사히 폰 군텐을 취리히 경찰서에 구금을 해두었으나 그가 가장 중요한 용의자인 것은 확실하다. 행상을 하는 폰 군텐의 가방에서는 여러 가지 잡동사니들 속에서 면도칼도 나왔고 상의에 소녀의 피가 묻어 있었으며 해부 결과 피살자의 위에서 아직 소화되지 않은 초콜릿을 발견했다. 그날 폰 군텐 역시 초콜릿을 한 상자씩이나 먹었던 거였으니 이것이 우연일까. 물론 용의자는 범행을 부인한다. 그러나 마태의 자리를 물려받았으며 용의자를 신문하는 방법까지 마태에게서 배운 그의 후임자 헨치가 폰 군텐을 연속해 스무 시간동안 신문을 한 끝에 범행을 자백하게 만든다. 잘 보시라. 자백한 것이 아니라 자백하게 만들었다는 걸. 잠을 안 잔 상태에서 연속으로 스무 시간을 신문했다면 명백한 고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나 달라, 폰 군텐은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한 다음 독방에서 목매달아 자살을 해버리고 만다.
  이것으로 사건 끝? 천만의 말씀. 이제 새로이 시작한다. 일찍이 마태는 피해자인 그리틀리 모저의 어머니한테 자신의 생명을 걸고 살인범을 잡겠다고 약속을 한 바 있다. 어쨌거나 폰 군텐이 자백을 하고 자살을 해버렸으니 약속을 지켰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 드디어 요르단으로 출발하려는데 마태는 공항에서 숱한 아이들이 노래하는 것을 보고는 마음을 바꿔 비행기를 타지 않고 다시 취리히 경찰청사에 나타난다. 요르단에 가지 않겠다는 것. 그러나 H 박사는 이미 인사이동이 끝나 더 이상 취리히 경찰신분이 아니니 도와줄 수 없다고 선을 딱 긋는 것. 박사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었겠지. 마태는 폰 군텐이 자백을 했지만 진범이 아니라는 것, 진짜 범인이 언젠가 다시 나타나 또 꽃 같은 어린아이의 목을 면도칼로 난도질 할 것이라는 생각에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범인은 그라우뷘덴과 취리히 사이에 거주하며 미국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덩치 큰 남자라고 결론을 내리고 그라우뷘덴 주 쿠어 시 근방의 목 좋은 주유소를 인수한다. 언젠가는 범인이 이 주유소에 들를 것이란 믿음으로. 그리고 금발의 딸을 가진, 취리히 경찰청의 만년 용의자였던 헬러를 주유소에 들어와 살게 한다. 이른바 낚시가 시작된 것. 금발의 딸 안네마리에게 메겐도르프에서 죽은 여자아이와 같은 빨간 치마를 입히고 주변에서 놀게 만들어 범인의 눈에 들게 만든다. 그리하여 나중에 이를 알게 된 안네마리의 엄마 헬러가 마태를 향해 이렇게 외친다.
  “Sie sind ein Schwein!"
  우리말로 하면, “넌 개새끼야!” 당신이라도 이렇게 악을 쓰겠지? 나 같아도 그런다. 이 문장을 역자 차경아는 그냥 직역을 해놓았다. “당신은 돼지야.”라고.
  어떻게 될까? 면도칼의 소녀 연쇄살인범이 안네마리라는 이름의 미끼를 물까?
  이 범죄소설을 쓴 다음에 뒤렌마트는 추리/범죄소설을 다시는 쓰지 않았다. 왜 그런지 책을 읽어보시면 저절로 알게 된다.
  독후감에서는 소개를 하지 않았지만 함께 실린 <사고>도 아주 흥미로운 범죄소설이다. 미필적 고의가 아닌 악의적 고의를 갖고 금세기의 가장 탁월한, 경탄과 존경을 받을 만한 심리적 살인을 저지른 한 명의 평균치의 인간을 만나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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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0-02-19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안 살 수가 없네요 ^^두 권 다 사겠습니다!

Falstaff 2020-02-20 09:08   좋아요 0 | URL
ㅋㅋㅋ 책임지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