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5
미셸 투르니에 지음, 이원복 옮김 / 민음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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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 나오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구입했다.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기대하고 있었고,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만족스럽다. 이런 책을 위하여 우리는 기꺼이 ‘명작’이란 호칭을 부여하고는 한다.
  그러나 독후감을 쓰기는 쉽지 않을 터. 서술이 방대하고 소설 안의 여러 에피소드들이 각기 긴밀하게 연결, 변화하여 선으로든지 악으로든지 특별한 행위로 전위, 확장되기 때문에 책을 정확하게 이해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하기는 뭐, 어떤 책이든지 독자는 정확하게 읽을 수도 없고 그렇게 읽을 필요도 없기는 하지만.
  책의 주인공 ‘아벨 티포주’는 보베 시에 있는 생크리스토프 중학교에서 가장 왜소한 체격과 비사교적 성격 때문에 학교에서 제일 약한 아이들마저 지배하고 모욕할 수 있는 놀림감 신세의 소년시절을 보냈으나 약 20년이 지난 지금, 1938년부터 39년에는 당시 기준으로 무척 큰 키인 191cm에 110kg의 건장한 체격과 엄청난 힘을 가진, 파리 포르트데테른 광장에 있는 자동차 정비공장의 사장이다. 그러나 거의 서진書鎭만큼 두꺼운 안경을 써야 사물의 식별이 가능한 급성 근시와, 성기왜소증을 피할 수 없는 팔자이기도 하다.
  티포주가 스무 살 때, 키는 지금과 같은 191cm이었지만 몸무게는 68kg밖에 나가지 않아 지독한 근시와 더불어 징집대상으로 할 것인가를 군의관들이 오래 토의한 끝에 결국 사격을 할 필요가 없는 통신대로 배치를 시킨 적이 있을 정도였다. 군복무 후에 갑자기 엄청난 식욕을 감당할 수 없어 하루에 2kg의 날고기와 5 리터의 우유를 들이키기 시작해 지금의 덩치와 완력과 근육을 갖게 되었는데, 자신이 고기, 신선한 피와 살을 좋아하는 식인귀 스타일이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됐을까?
  첫 번째 장 “아벨 티포주의 불길한 기록”은 1938년 초부터 39년 9월 3일까지 티포주가 왼 손으로 쓴 일기로, 위에서 말한 현재 시점과 20년 전 보베의 생크리스토프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을 교차하여 묘사하고 있다. 남자 기숙 중학교. 16세까지 다니고 이후 대입자격시험의 합격률을 올리기 위해 시험에 떨어질 것이 뻔한 학생들은 시험 전에 퇴학시키는 걸로 악명이 높은 이 학교 학창 시절의 아벨. 여성들은 모를 것 같다. 소년들만 모인 기숙학교라는 정글, 그것도 도망할 곳이 없는 폐쇄공간으로 이루어진 야만의 큐빅 공간.
  이 학교에 파리에서 전학생이 온다. 펠스네르. 튼튼한 체력과 우직한 성격을 가져, 학급의 특별한 서열로 단번에 올라간 건 당연하다. 당시에 문신이 유행했단다. 그래 아벨이 펠스네르에게 제의하기를 허벅지 안쪽 부드러운 살에 “이 생명을 당신에게 A toi pour la vie"라고 새겨주겠다고 해놓고 ”A T pour la vie"를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내 생명을 A T에게” A T는 당연히 ‘아벨 티포주.’ 이후 아벨의 고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러던 어느 날, 놀이 도중에 페스네르가 무릎에 깊은 상처를 입고 피를 많이 흘리는 상태가 됐고, 페스네르는 티포주를 지목해서 흐르는 피를 혀로 핥으라고 명령을 해 진흙이 묻은 종아리부터 혀를 내밀다가 결국 벌어진 발간 속살에서 흐르는 피를 핥기 위해 입술을 상처부위에 밀착시켰고, 조금 후 기절해버리고 만다. 왜 기절했을까. 아벨 자신도 몰랐다. 책을 500페이지 가까이 읽어야 아벨 티포주가 까무러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책에서 벌이지는 많은 사건들이 특유의 연관성과 확장과 변위를 거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처음부터 꼼꼼하게 읽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아벨 티포주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역시 같은 학교 동급생으로 학교 수위의 외동아들. 괴물 같고, 천재적이고, 환상적인 상상력에 비만증에 걸린 엄청난 뚱보로 거의 무제한 적 완력과 힘을 가진 인물인 네스토르. 학생은 물론이고 교사들까지 네스토르가 뿜어내는 아우라에 이의제기를 하기가 쉽지 않은 압도하는 분위기. 네스토르가 아벨 티포주에게 접근해 ‘나의 아벨’이란 뜻인 ‘마벨’이라고 호칭하기 시작하면서 학교 내 아벨의 위상은 높아지고 아무도 아벨을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나 네스토르의 진가는 기호와 기호해석에 있다. 나중에야 기호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이 절대적 독재 권력자의 중대 관심사인 것을 아벨이 알게 되기는 하지만. 네스토르로 인하여 아벨은 왼손 손 글씨를 익히게 되고 문제의 “불길한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된다. 아벨의 거대한 덩치와 완력과 급성근시와 성기왜소증도 네스토르로부터 전위된 것으로 인식하게 되고. 당연히 네스토르와의 연결끈도 책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생크리스토프. 크리스토프라는 성인은 강을 건네주는 사람이었는데 하루는 이이 앞에 예수라는 어린이가 나타나 자신이 예수이며 무동을 태우고 강을 건너달라고 했단다. 그래 크리스토프는 예수라고 주장하는 어린이를 어깨에 올리고 강을 가로지르기 시작하는데 어린이의 무게가 갈수록 마치 태산을 짊어진 것 같았다고 한다. 죽을힘을 다해 강은 건네주니 예수가 하는 말이 지팡이를 땅에 꽂아 내일 꽃이 피면 내가 예수임을 알 것이다, 했고, 다음날 정말 땅에 꽂아놓은 지팡이에서 꽃이 피어 있어 어제의 어린아이가 예수임을 알았다는 성인聖人 우화.
  아벨 티포주는 생긴 것이야 누백 년 동안 이탄층의 옷을 입고 이탄층에서 살며 아이를 망토에 숨겨 유괴하는 마왕의 모습일지언정, 약한 아이를 품에 안아 보살피면서 황홀감을 맛보는 종류의 인간이다. 물론 성격이 좀 이상한 측면이 없지는 않다. 그리하여 진짜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으나 누명을 뒤집어써서 중죄재판소에서 넘겨져 20년 이상의 노동교화형을 틀림없이 받을 찰라, 2차 세계대전을 앞둔 프랑스는 전국에 동원령을 내리고 1차 소집 대상인 아벨 티포주는 형벌 대신 입대하게 된다.
  이어서 소설은 본격적인 무대로 옮아가니 1939년부터 종전까지. 프랑스 군에 입대해 곧바로 포로가 되어 독일 북부, 예전의 동프로이센 지역의 수용소에 수감, 자연스럽게 독일과 독일군에 흡수되어 포로 신분으로 로민텐하이데 자연보호구역에서 일하다가 이후 열 살 이상의 소년병을 양성하는 군사교육기관인 나폴라에서 거대한 말을 타고 주변지역의 아이들을 수집하는 일을 하기까지 실로 다양한 사건과 인물들이 등장한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자. 애초부터 제대로 스토리를 소개하기가 어려운 복잡다단한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으며, 이야기의 큰 줄거리보다는 세부적으로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이 훨씬 더 놀라운 작품이다.
  책의 광고문구에 “<양철북>과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전쟁소설”이라고 씌어있어 틀림없이 과장일 것이라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광고문구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유럽인의 시각에서 쓴 2차 세계대전 소설 가운데 이만한 작품을 읽어본 적이 별로 없다. 처음에 말한 것처럼 이 책은 분명 명작. 거기다가 재미도 있다. 이 독후감을 보신 분들은 다음번에 읽을 책 목록에 올려보심이 어떤지 제안한다.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내가 돈 도로 돌려드린다. 물론 농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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