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즈 엔드 E. M. 포스터 전집 7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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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사진이 하필이면 안소니 홉킨스. 이이가 사람 고기, 사람의 안심쯤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미디엄-레어 스테이크로 구워 식도락을 즐기는, 심지어 뇌는 육회로 섭취하기도 하는 한니발 박사이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충실하기가 영국의 국가대표 급인 집사steward이기도 해서, 책 표지만 보고 생각하기를 ‘하워즈 엔드’라 이름 붙은 저택의 집사와 주인 간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이게 그동안 이 책을 읽지 않은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는 <전망 좋은 방>을 읽고 단번에 포스터의 팬이 되기로 결심을 했다가 바로 다음에 고른 <인도로 가는 길>이 너무 절망적이어서 포스터에 관한 기대를 접었기 때문이었고, 사소하지만 세 번째는 E.M 포스터의 대표작, 심지어 세계 100대 문학작품으로 <인도로 가는 길>만 거론을 할뿐 <하워즈 엔드>에 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것.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건, ① <인도로 가는 길>에 대한 내 기대가 워낙 컸던 반면에, ② 우리나라에 두 종의 번역본이 있는데 내가 읽은 건 기대 수준에 정말 미치지 못하는 우리말 문장으로 일관한 우스운 책이었던 데다가, ③ <하워즈 엔드>에서도 포스터의 시각이 변함없이 이어지지만 그의 식민주의적 관점이 극도로 불쾌했었다는 점이다.
 <하워즈 엔드> 역시 시대적 배경은 유럽에서는 벨 에포크 시기를 맞아 최전성기의 문화, 문명, 과학의 발달을 즐기는 한편, 아프리카에서는 영국의 제국주의가 극도의 지랄발광을 했던 보어전쟁 발발 바로 전 시기인 19세기 말에 시작해 약 5년 동안을 그리고 있다. 작품이 시작되자마자 두 주인공 가문 슐레겔 가의 둘째 딸 헬렌과 윌콕스 가의 둘째 아들 폴이 서로 사랑을 고백하고 생애 첫 키스를 나누고, 키스를 얻어내기 위해 청혼을 하고 승낙까지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폴이 나이지리아로 떠나는 일정을 앞에 둔 잠깐의 격동이었음이 밝혀져 청혼 문제가 저절로 흐지부지되어버린다. 부계가 학자이며 반제국주의적 성향을 띄어 이민을 온 독일인인 슐레겔 가문과 달리 색슨 족이기는 하지만 켈트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는 윌콕스 가의 사람들은 영국의 젊은이라면 당연히 국가를 위하여 세계경영에 참여해야 한다고 내놓고 말한다. 작품의 말미엔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폴이 말하기를 자신이 아프리카에 퍼뜨려놓고 온 씨앗들을 다 모으면 넓은 마당쯤은 꽉 채우고도 남는다고 마치 농담마냥 푸념하기도 한다. E.M 포스터가 비록 1949년 영국 왕실이 그간의 공로를 인정해 작위를 수여하겠다는 걸 거절할 정도로 개명한, 그래서 좀 ‘덜 재수 없는’ 영국인이라고 해도 그의 식민주의적 세계관에 질려버린 걸 어떻게 하겠느냔 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워즈 엔드>를 읽은 이유는 이 작품이 영국인이 뽑은 가장 위대한 영국소설 스물다섯 편에 들어간다고 해서였다. 며칠 있다가 포스터의 다른 작품을 하나 더 읽을 예정인데 거기서는 그의 식민주의나 유색인 차별 같은 것이 없거나, 적어도 보이지 않기를 기대한다.
 말이 나왔으니까 먼저 조국인 독일 또는 프러시아를 등지고 영국으로 이민을 온 슐레겔 씨를 보면, 천생 학자로 본인이 비록 보불전쟁에 참여하여 독일이 승리를 거두는데 기여를 했음에도 조국이 매년 군비를 확장하고 늦게나마 식민지 개척에 뛰어드는데다가 독일인들 특유의 아리안 족 우월주의에 기반을 둔 전체주의적 애국심에 질려 자유로이 학문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영국으로 건너와 국적을 영국으로 바꾼 다음에 에밀리라는 참한 아가씨를 만나 2녀 1남을 둔 것까지는 좋았으나, 슐레겔 여사는 막내아들 티비를 낳다가 그만 짧은 생을 마감해버리고, 5년 후 자신까지 덜컥 숟가락 놓는 바람에 열여덟 살의 큰딸 마거릿, 열 살의 둘째 딸 헬렌, 다섯 살의 막내아들 티비, 이렇게 셋만 남는다. 그래 마거릿은 이모인 먼트 부인이 내민 도움의 손길을 고맙게 받아들여 몇 년을 함께 살다가 작품이 시작될 때는 마거릿, 헬렌, 티비의 나이가 각각 29세, 21세, 16세인 상태이다. 프롤로그 격인 마지막 장을 빼면 이후 4년 동안 슐레겔 가와 윌콕스 가가 각기 둘째 딸과 둘째 아들의 첫 키스로 시작해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히고설킨 이야기가 바로 <하워즈 엔드>다.
 그러나 윌콕스 가에서 독자가 주목해야 하는 사람은 엉뚱하게도 젊은이가 아니라 바로 나이 많은 윌콕스 부부. 책이 시작되기 얼마 전에 마거릿과 헬렌이 독일 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헨리와 루스 윌콕스 부부를 만나 인연의 끈을 잇기 시작했고, 부부는 친절하게도 영국에 돌아가면 자신들의 집 하워즈 엔드에 한 번 방문해주기를 청해 진짜로 방문하려 날짜를 잡았지만 며칠 전부터 막둥이 피비가 꽃가루 알레르기, 책에서는 ‘건초열’에 걸려 앓아눕는 바람에 헬렌 혼자 놀러갔다가 위에서 말한 사달을 벌이고 만다. 젊은 청년 폴은 키스 한 번 하기 위해 청혼 비슷하게 했고, 헬렌은 그걸 수긍한 다음 두 팔로 폴의 목을 감고 생각보다 보들보들한 남자의 입술을 자기 입술로 느끼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후 둘은 극도의 혼란에 빠져버린 채 다음날 아침밥을 먹으러 식탁에 앉게 된다. 근데 둘이 누구한테도 이야기하지도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음에도 현명한 루스 윌콕스, 그러니까 윌콕스 여사는, 어떻게 알았는지, 다 그런 거야, 없는 걸로 해, 하고 단 칼에 정리를 해버리고 만다. 이 정도로 신기가 있는 현명하고 조신하고 친절한 여인. 반면에 헨리 윌콕스 씨는 전형적인 영국인답게 ‘재미있다’는 말 자체를 싫어하는 인간으로 ‘재미’를 낭비된 노력과 병적인 상태 비슷한 것과 같은 의미로 보고 오직 일, 돈, 발전, 계획, 실행 등에만 관심을 쏟는 인물이다.
 그런데 키스 사건이 있고 그것 때문에 서먹서먹해진 2년 후, 런던의 위컴 플레이스에 살고 있는 슐레겔 가 바로 옆의 맨션아파트 한 채를 구입해 윌콕스 사람들이 런던에 일이 있을 때마다 머물기로 해서 두 집안의 인연이 이어지고 윌콕스 여사는 기꺼이 이들을 방문하고 초청도 하고 해서 좋은 관계를 계속한다. 하지만 독자들은 금방 눈치 챈다. 루스 윌콕스 여사가 중대한 병에 걸려 있음을. 그러나 조금 있으면 깜짝 놀란다. 예상하지도 못한 속도로 루스 여사가 임종의 침상에서 숨을 거두어. 윌콕스 씨가 루스 여사의 유언을 자식들에게 다 일러준 조금 후에 런던의 병원 수간호사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하는데, 루스 여사가 직접 친필로, 그러나 서명도 없이 쉽게 지워지는 연필로 메모 수준의 편지를 써서 가족들에게 보내니, 뭐라 적혀 있느냐 하면, “하워즈 엔드는 마거릿 슐레겔 양에게 주고 싶어요.”
 자,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겠나. 줘? 말아? 나 같으면 어떻게 하겠냐고? 당연히 파바박 구겨 버린다. 담배를 5년 전에 끊었기 때문에. 아직 담배를 피웠으면 그 자리에서 라이터 댕겨버리고 만다. 이게 정상 아냐? 글쎄 몇 번 만나지 않은 “아무러치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1 아가씨한테 건물 값은 다음으로 하더라도 땅값만 수억에 이를 그 집을 준다고? 미쳤어?
 그러나, 문학작품, 소설을 포함한 모든 공연예술 속에서 무당, 마법사, 마녀, 죽어가는 자의 예언은 언제나 이루어진다는 것이 <소설작법> 2장 1절에 나오지 않는가. 이 책에서도 그게 어떤 식이라도 벌어질 것이란 건 알겠는데, 그거야 내가 알려드릴 수 없지. 재미있는 책이니 직접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사 읽으시든지, 아니면 냅다 도서관으로 뛰어가셔서 확인하시라.


1. 정지용, <향수> 중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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