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한 집 동서문화사 월드북 231
찰스 디킨스 지음, 정태륭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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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스 디킨스 하면 꽤나 익숙한 느낌이 들지만 사실 그의 작품을 그리 많이 읽지는 않았다. <위대한 유산>, <두 도시 이야기>, <데이비드 코퍼필드> 이렇게 세 작품을 읽었고 마지막 디킨스로 <올리버 트위스트>를 선택해 이젠 디킨스 졸업장을 받으려 했는데, 엉뚱하게도 <황폐한 집>이 가장 위대한 영국소설 스물다섯 편 안에 포함된 걸 알고 이 책을 읽게 된 것. 이 책은 본문이 11쪽에서 시작해 985쪽에서 끝난다. 모두 975쪽. 한 페이지에 30줄, 한 줄에 40자로 쪽 당 200자 원고지 여섯 매, 그러니까 책 전체의 분량은 최대 원고지 5,850매 분량이다. 대략 우리나라 작가들이 요즘 발표하고 있는 장편소설 세 권 반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작품은 전지적 작가시점과 날개 없는 천사 에스더 서머슨 양의 수기가 교차로 편집되어 있다. 이런 작품은 목차 바로 앞이나 뒤에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나서 시작하면 좋을 텐데, 디킨스는 그런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 애초에 눈치를 챈 나는 일찌감치 메모장과 볼펜을 준비하고 메모를 해가면서 읽기 시작했고, 잔글씨 메모가 꽉 찬 두 장에 이르렀다. 겨우 네 번째 읽는 디킨스라 그의 작품 성향이나 서술의 특징 같은 걸 운운할 수준은 되지 못한다. 곧바로 작품 속으로 들어가기로 하자.
 디킨스가 영국 법원에 유감이 좀 있었던 모양이다. 본문에 들어 겨우 한 장을 넘기자마자 “법정은 돈 많고 힘 있는 사람이 정의로운 사람의 기력을 완전히 빨아먹을 수 있도록 편의를 돕고 있다.”라고 선언을 해 놓고 무려 40년 동안 끝나지 않은 유산 상속에 관한 재판 “잔다이스 대 잔다이스 사건”을 이야기한다. 이 사건 자체가 진짜 영국에서 있었던 법정다툼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얘기도 있는 바, 수십 년을 끈 재판으로 상속인은 재판비용으로 파산해버리고 정작 돈을 번 사람은 변호사뿐이었다는 눈물이 앞을 가리는 실제 상황이었다나. 하여간 그런데 소송 당사자 중 한 명인 잔다이스 씨로 말하자면 영국산 ‘부처님 가운데 토막’으로, 소송 당사자와 특별한 관계이면서 고아가 된 에이더 클레어 양과 이보다 한 살 많은 열아홉 살의 리처드 카스톤 군을 친절한 마음으로 후원하고 있는 사람이다. 출생이 귀족은 아니었지만 조상님 가운데 한 분이 갑자기 돈벼락을 맞는 바람에 부르주아의 반열에 올랐으나 변덕스런 증조부가 이상야릇한 유언장으로 인해 소송을 시작해 끝도 없는 혼란의 와중을 맞았으면서도 어려움 속에서 자신이 받은 재산을 지켜낸 인물이기도 하다. 이이가 또 한 명의 불쌍한 고아로 하여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후원했는데 사촌 간인 에이더 양과 리처드 군을 자신의 집에서 직접 보육하기로 하면서 때마침 학교를 졸업한 고아소녀 에스더 서머슨 양을 이들의 말벗으로 채용해 돈독한 우정을 쌓게 만들고, 에스더 양으로 하여금 수기를 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다.
 한 자매를 소개해야겠다. 데들독 부인과 그의 언니 에스더 양.
 데들록 부인은 당시 잉글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를 다 뒤져봐도 이이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는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을 정도의 미녀였다. 근데 미인박명이라는 진실이 영국에서도 통하는 모양이다. 이 여인이 한 남자에 빠져 죽자사자 연애를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하필이면 상대가 앞으로 20년 이상을 지속할 유산 상속에 관한 재판 “잔다이스 대 잔다이스” 소송의 당사자로 한 방 제대로 터지면 하늘에서 금화, 은화가 쏟아지겠지만 자신이 죽기 전엔 결코 결판이 나지 않을 송사에 미쳐버려 부인의 배 속에 여자 아이 하나만 만들어놓고 폐인이 되어 홀연히 사라져버리고, 20년 후에 법원 근처 알코올 중독자이자 고물상 사장인 크룩 씨의 허름한 하숙집에서 야매 대서인으로 푼돈을 받아 살다가 어느 날 약물과다복용으로 숨을 거두고 만다. 근처에 사는 젊은 의사 엘런 우드코트 씨조차 이 사건이 자살인지 사고사인지 판명을 하지 못하게 애매모호한 상태로. 19세기 초 당시는 어쨌든 배에 아이가 들어서면 좋든 싫든 낳는 방법 외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어엿한 법적 처녀의 신분으로 어여쁜 딸을 낳긴 했지만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 거라. 그래 죽은 줄 알고 피 빨래가 쌓인 보퉁이에 올려다 놓고 부인은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신념하에 새로이 몸을 추슬러 결혼에 이르렀으니, 자신보다 스무 살 연상의 준남작이자 링컨셔 지역의 최고 부자인 데들록 경의 아내로 간택이 되어 이후 경의 무한한 존경과 숭배 속에서 나날이 거만의 극치를 부리는 팔자를 즐기게 된다. 맞다. 영국에서도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였다. 이 미모의 준남작 부인의 생애는 이 정도면 이해가 되시지?
 그럼 부인의 언니, 한 많은 에스더 양을 보기로 하자. 에스더 양은 마음씨 하나는 선하지만 풍모나 기상이나 행위나 특별히 언어 구사에 있어서는 천하의 영웅인 로렌스 보이손 씨와 심각한 연애를 벌이고 있었다. 여기서 심각한 연애라고 함은 19세기 초 영국의 양식있는 계급의 남녀 수준에서 심각하다는 뜻이지 21세기 젊은이들의 연애라고 생각하면 수원 밑에 병점 찍고, 오산이다. 에스더 양은 하나밖에 없는 동생의 사생아 출산을 돕고, 숨이 끊어진 조카를 살펴보던 중에, 에그머니, 이 아이의 심장이 약하게나마 박동을 멈추지 않고 있는 거라 차마 멀쩡하게 살아있는 아이를 죽게 내버려둘 수도 없고, 벌써 출산의 자리를 박차고 돈 많고 나이 많은 남자를 향해 떠난 동생에게 엣다 네 딸 받아라, 하고 던져줄 수도 없어서 할 수 없이 자신이 직접 키우기로 작정을 해야 했던 터. 그러나 약혼자 보이손 씨에게마저 가문의 명예와 동생의 명예가 달려 있어 동생이 낳은 사생아를 키워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우지 못해 고백도 할 수 없는 처지여서, 말 그대로 피눈물을 흩뿌리며 보이손 씨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진짜 처녀가 엄마를 대신해 사생아를 키워야 하는 팔자로 떨어진다. 동생이 준남작의 부인으로 자리를 잡고 온갖 거만을 떨며 사는 것이 너무도 미워 꼴 보기 싫어도 차마 얘기도 할 수 없었으니 얼마나 조카딸이 미웠을까. 사실 화통하고 건전하기 짝이 없는 보이손 씨 성격으로 보면 사실을 고백하기만 했다 하면 그까짓 것쯤 얼마든지 좋은 마음으로 덮은 채,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 때까지 행복하게 20년 해로(에스더 양의 명이 그것밖에 안 됐다)를 할 수 있었건만, 화통한 보이손 씨의 입나팔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던 건가 어쨌던 건가 하여튼 온갖 저주를 퍼부으면서도 조카딸을 성년이 되도록 키워주고, 보이손 씨 역시 평생을 독신으로 살게 하니, 죄를 받아 남은 생으로 20년 밖에 허여 받지 못했던 것일까.
 그렇다고 이기적인 동생 데들록 양도 명이 긴 편은 못된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줄거리가 바로 이들 자매가 얽혀있는 실타래를 푸는 일. 그것까지는 독후감에서 줄거리입네, 설명할 수는 없으니 정 궁금하시면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작품 스물다섯 편 안에 든 <황폐한 집>을 직접 읽어보시면 될 터.
 그럼 제목이 어떻게 <황폐한 집 Bleak House>가 되었을까. 여기서 ‘황폐한’을 그저 형용사로 보면 바람직하지 못하다. ‘황폐한 집’을 통째로 고유명사로 보면 딱 맞는다. 작품 속에서 황폐한 집은 적어도 사촌 남매와 에스더 양이 도착한 후에는 언제나 친절하고 정의롭고 화기애애하고 영국식 습기와 안개와 애매모호가 없는 따뜻한 애정의 집이기 때문이다. 황폐한 집은 세인트 올번스 근처에 위치한 저택으로 앤 여왕 재위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원래 저택의 이름은 “봉우리의 저택”이었으나 말썽꾼 톰 잔다이스 증조부가 소송을 시작해 가문에 큰 혼란을 맞으면서 저택의 이름도 ‘황폐한 집’으로 바뀌었단다. 원래 있던 세인트 올번스의 황폐한 집 말고 책의 끝머리에 또 한 채의 ‘황폐한 집’이 지어지는데 이 두 채의 황폐한 집의 공통점은 사랑과 자애와 친절과 우정과 삶의 소소한 즐거움이 넘쳐나 근본적으로 황폐한bleak이란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미리 알려드려도 괜찮을 듯싶다.
 여태까지 쓴 독후감은 내가 책을 읽으며 메모장에 써놓은 것의 20 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욕심을 내 나머지 80 퍼센트를 다 이야기한다면, 지금이 이른 아침이지만 내일 새벽이 훤하게 밝아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책의 줄거리보다 디킨스가 당시 런던과 법정과 귀족계급을 묘사해놓은 문장이 훨씬 좋았다. 내가 읽은 어떤 영국 작가보다 런던의 유명한 ‘안개’에 대해 실감나게 표현해 놓았으며, 법원과 귀족에 대한 비아냥 또는 풍자의 문장 역시 대단히 매혹적이었다. 내용? 그건, 19세기 초에 쓴 책을 21세기 초의 독자가 읽으면서 그 정도는 한 눈에 훤히 보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출생의 비밀과 독자를 현혹하기 위한 장치 같은 것 역시 지금 시각으로는 무지하게 구식이라 특별히 눈에 띄는 것도 없지만, 썩어도 준치, 그래도 찰스 디킨스다, 어떻게 그리도 뻔한 스토리로 사람을 ‘읽는 재미’의 골짜기로 빠뜨려버릴 수 있을까.
 근데 이 책에 등장하는 몇 몇 인물은, 평생 화장실 한 번 안 가고 천상의 넥타만 마시면서 사는 거 같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 있으면 한 명만 구경하고 나서 죽고 싶다고 조건을 걸면 아마 나는 불멸의 삶을 살 수 있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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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20-01-06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황폐한 집>에 대해 정말 맛깔나게 리뷰해 주셨군요. 저도 디킨스 최고의 작품은 <황폐한 집>이라고 생각하는 1인입니다. 그토록 많은 인물들을 어쩌면 그렇게도 꼭꼭 숨겨놓았다가 안개가 걷히듯이 차츰차츰 그 비밀들을 하나하나씩 풀어내고 드러내는지, 정말로 경이로울 지경이더군요.^^

Falstaff 2020-01-06 12:43   좋아요 1 | URL
예. 진짜 이 작품은 메모하지 않고 그냥 읽었다가는 작가가 지금 하는 이야기가 어디서 연결이 되는지 깜깜했을 뻔했습니다.
등장인물 구성이 데이비드 코퍼필드하고 유사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어쨌거나 내용의 복잡 다양은 시대의 이야기꾼 디킨스 아니면 누가 만들 수 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