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6 세트 - 전5권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송병선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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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다섯 권, 5부, 본문 1,680쪽의 장편소설. 간 질환으로 세상을 뜬 후 볼라뇨의 유작으로 2003년에 발표했고, 2008년 영어 판이 나오자마자 미국, 영국의 권위 있는 거의 모든 매체가 2008년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했다고 했단다. 작품은 본질적으로 인간에 의하여 발생하는 대량 살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솔직한 심정은 왜 이 책에 그리 찬란한 평가를 헌정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작품은 두 번의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과 북부 멕시코 국경지역인 산타테레사에서 벌어진 200건의 연쇄 여성 살해사건을 연결시키고 있다. 볼라뇨는 양차 세계대전의 여파를 멕시코의 공업도시이자 불법 월경을 도모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멕시코-미국 국경도시로 끌고 오기 위하여 1차 세계대전에서 다리 하나를 잃은 할아버지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삼촌을 둔 독일계 미국인 클라우스 하스를 등장시킨다.
 1부 <비평가들에 관하여>로 시작하는데 제목대로 네 명의 비평가들, 프랑스인 장클로드 펠티에, 스페인 사람 마누엘 에스피노사, 이탈리아 사람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피에로 모리니, 이렇게 세 명은 남자고, 영국인 리즈 노턴 혼자 여자다. 남자 세 명과 여자 한 명. 이들의 공통점은 독일 작가(로 여겨지지만 과연 실체 인물인지, 살았는지 이미 죽었는지도 판명되지 않은 인물) 베노 폰 아르킴볼디를 높이 평가하여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독일문학 세미나에 거의 빠짐없이 참가한다는 것. 말 그대로 1부는 장편소설의 도입부로만 작용한다. 그런데도 세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비행기를 타고 런던과 파리, 마드리드, 간혹 베니스를 넘나들며 적극적인 삼각관계를 만들기도 하고, 아예 프랑스-스페인-영국이 삼국동맹을 맺어 셋이 한 침대에서 화끈한 밤을 보내기도 해서 딱 1부만 읽는다 해도 한 권의 완성된 작품을 읽은 듯하다. 볼라뇨니까. 적어도 상상력 하나는 지구 대표선수라서. 일찍이 볼라뇨의 상상력에 관해서 그의 전작 <아메리카의 나치문학>에서 혀를 내두른 적이 있다. 남북 아메리카 문단에서 친 나치, 적어도 친 파쇼적 문학행위를 한 백과사전적 나열이 전부 볼라뇨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허구라는 걸 알아차린 건 거의 반 분량을 읽은 후였다. 그래 이 책도 1부를 읽어가며, 결국 이 작품은 수수께끼의 인물 베노 폰 아르킴볼디를 찾는 여행이 될 것임을 짐작하면서 무대가 어디까지 펼쳐질까, 그의 태가 묻힌 라틴 아메리카는 적어도 한 번은 나올 것이 분명하지만 벌써 유럽 각지까지 펼쳐놓은 판에 책의 분량을 감안하면 실로 방대하리라, 가늠할 수 있었다.
 베노 폰 아르킴볼디. ‘베노 아르킴볼디’까지 하면 틀림없이 이탈리아 남자다. 근데 난데없이 독일, 프러시아 귀족 가문의 성姓 앞에 붙는 관사 ‘폰’은 또 뭔가. 유럽인은 이 이름을 보면 이탈리아 출신의 16세기 보헤미아 궁정화가였던 실존인물 주제페(또는 요세프, 요세푸스) 아르침볼도(또는 아르침볼디, 아르침볼두스)를 떠올릴 수 있단다.
 아주 오래 전, 한쪽 눈이 안 보이는 아가씨를 사랑하는 프러시아 청년이 있었다. 그러나 불운한 시대를 골라 태어나 청년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라는 황제의 명령을 받고 용감하게 싸웠는지 어땠는지는 잘 몰라도 다리 하나를 잃고 귀향을 했는데, 집에 오자마자 그길로 외눈 아가씨한테 청혼을 해 가정을 이루었으며 1920년에 아들 한스, 1930년에 딸 로테, 우애 깊은 남매를 낳았다. 아들 한스 역시 불운한 1920년 생. 키가 무척 크고 관심사라고는 바다 속 해초뿐인 소년은 일찌감치 학문에 뜻이 없어 열세 살 때 학교를 때려치워버렸다. 열세 살이면 1933년. 우연히 히틀러가 독일을 장악한 해가 된다. 집이 가난해 식구 전부가 근방에 있던 남작 집안의 별장을 관리하는 하인, 하녀 일을 해야 했고, 별장에 자주 머물렀던 남작의 좀도둑 조카 후고 할더와 친분을 쌓게 된다. 후고 할더의 아버지 콘라드 할더는 후고의 외삼촌인 남작으로부터 인연이 끊긴 프랑스 화가로 하필이면 죽은 여자만 그린다고 한다. 독자가 이 대목을 읽을 때는 이미 산타테레사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연쇄살인이 한창 진행 중일 때라 무엇이든지 사건하고 이어 붙일 생각에 골몰해 있을 것이지만, 아쉽게도 이 화가는 아무 상관없다. 전적으로 볼라뇨의 장난기일 뿐. 책 곳곳에 이렇듯 볼라뇨의 가벼운 트랩이 묻혀 있지만 읽는 사람이 발견할 수도 있고 눈치 채지 못할 수도 있을 터. 그러거나 말거나 책을 읽는데 아무 문제도 없으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 되겠다. 하여간 한스가 점점 키 큰 거인으로 자라 어느 새 열아홉 살이 된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란 거창한 학살극을 시작한다.
 한스는 러시아 전선에 배치되고, 전쟁 중 특유의 우울한 분위기로 말미암아 죽음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스는 언제나 가장 앞에서 돌진하지만 그의 모습에서 적들도 공포를 느끼는지 결정적인 죽음을 선물하지 못하고 전쟁터라는 환경에선 중상이라 볼 수 없는 총상을 입어 러시아의 한 농가에 방치, 고립된다. 그곳에서 보낸 시절에 교묘하게 장치한 대피소를 발견하고, 대피소 안에서 농가의 주인집 아들로 보이는 1909년 생 보리스 아브라모비치 안스키라는 남자의 노트 몇 권을 주워 그의 일대기에 큰 관심을 쏟는다. 얼마나 큰 관심이냐 하면, 안스키가 쓴(것처럼 보이는) 소설 3부작 <진정한 새벽>, <진정한 황혼>, <황혼의 떨림>을 거의 외울 정도까지. 그러나 키 크고 힘 센 한스가 전쟁을 치루며 직접 죽인 사람은 딱 한 명이다. 그것도 러시아나 폴란드인이 아니라 독일인. 전쟁 막바지에 미군 포로가 된 한스는 수용소에서 유대인 500명 가운데 근 400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령한 짐머라는 이름의 관리자를 만나, 유대인 학살에 관한 고백을 듣고는 우악스런 힘으로 목을 졸라 죽여버리고 만 것.
 전쟁이 끝나고 수용소에서 도망친 한스는 옛 친구라고 생각하는 후고 할더의 아파트를 찾아 갔으나 후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대신 그곳에서 정신과 몸이 건강하지 않은 아가씨 잉게보르크 바우어를 만나 사랑하게 되고, 소설 <뤼디케>를 완성한 후 ‘베노 폰 아르킴볼디’라는 이름으로 원고를 함부르크의 총명한 유대인 편집인에게 보냄으로써 작가의 반열에 오르는 것.
 그러나 작가가 로베르토 볼라뇨다. 이야기는 내가 여태 쓴 것처럼 직선으로 나가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아르킴볼디의 가계를 멕시코의 변방으로까지 끌고 가야 직성이 풀리는 볼라뇨는 문제의 도시 산타테레사 대학의 철학교수 아말피타노 씨를 2부의 주인공으로 내세워 시인 디에스테가 쓴 기하학 책 <기하학 유언>을 집 뜰 빨랫줄에다 널어놓게 해야 했고, 3부에서 뉴욕의 할렘지역에서 발행하는 작은 잡지사 <검은 새벽>의 문화부 흑인 기자 페이트 씨를 엉뚱하게 산타테레사에서 벌어지는 라이트헤비급 권투시합을 취재해오라고 출장 보내야 했다. 페이트 씨가 잡지사 공금으로 산타테레사에 출장까지 와 원래 목적인 권투시합은 제쳐두고 현지에서 날이면 날마다 몇 년째 벌어지는 여성 연쇄살인에 흥미를 느껴 싱겁게 끝난 권투시합의 기사를 송고하는 대신 연쇄살인의 심층 취재를 요구하면서 드디어 4부 <범죄에 관하여>로 넘어가 1993년 1월에 열세 살 소녀 에스페란사 고메스 살다냐 양의 강간살인을 시작으로 수백 건의 연쇄살인을 무차별적으로 조명한다.
 4부를 읽으면서 독자에 따라 호오가 극명하게 갈릴 것으로 본다. 연쇄살인에 앞서 전통적으로 가톨릭 국가인 멕시코에서 성당의 성물 훼손 사건이 벌어진다. 남자 괴한이 침입해 처음엔 성당에 대량의 오줌을 누는 일이 벌어지고, 이를 막고자 하는 사제를 칼로 찌르기도 하고, 급기야 성당 내에서의 살인사건으로 번진다. 이어 조각해 세워놓은 성인과 성물을 파괴해 난장판을 벌이는데, 지역의 정신병원 원장인 엘비라 캄포스 박사는 이를 성물공포증 환자의 소행이라고, 도움을 요청한 형사 후안 데 디오스 마르티네스 씨에게 판정해주고, 자기보다 열일곱 살이 적은 그를 기꺼이 침대 파트너로 선정한다. 독자의 호오가 갈리는 건, 볼라뇨의 서술이 지극히 기사문 같은 형식을 띄지만, 아무리 건조한 서술이라고 해도 백 건이 넘는 훼손된 시체를 감상하면서 기분이 개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열두어 살부터 서른 살이 넘는 젊은 여성의, 다양한 방법과 행위로 강간당한 후에, 주로 목을 졸라 죽이기는 하지만 역시 다양한 방법과 기구를 써서 살해한 시신을, 검시 보고서 수준으로 무자비하게 써대는 작가의 요란한 필력이 어찌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2666>을 최고의 볼라뇨 소설이라고 한다고 들었는데, ‘유작’이라는 프리미엄 효과도 조금은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위에서 말한 4부의 다양하게 훼손된 시신에 관한 묘사를 좋아하지 않는 부류라서,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아마추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 때문이겠지만 <2666>보다는 <야만스러운 탐정들>을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어쨌든 확실한 건 볼라뇨가 문제적 작가라는 사실. 4부에서 벌어지는 백 건이 넘는 살인사건의 현장을 읽어보시라.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살인 사건의 현장을 나열할 수 있는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앞서 말한 <…… 나치문학>에서 진짜 생존했던 실존인물들인 줄 알았던 착각을 이 책에서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다. 아, 진짜 경이롭다. 그리고 비위엔 맞지 않는다.
 그러나. 양차 세계대전과, 독일과 소비에트에 의하여 발생한 유대인 학살, 여기에 멕시코 북부 국경지역 공업지대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을 연계시키기만 했지, 대량 학살이 왜 발생했는지에 관한 원인규명엔 하나도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하면, 이 책에선 대량 학살이 문제일 텐데, 철학자들은 문제를 “해석”하려만 할 뿐이고 소설가들은 문제들의 연관관계를 “설명”하려 할 뿐이지 결코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왜 같은 문제가 멕시코의 연쇄살인에 이어서 파키스탄과 시리아와 미얀마의 로힝야 족과, 신장 위구르에서 여전히 발생하는지 세상의 모든 철학자들과 정치가, 부르주아들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지만,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임도 역시 알고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천재적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도 이들과 같은 한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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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2-30 0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나오자마자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두 번째 권을 읽고 나서 세 번째 권의 어디
선가 그만 멈춰 서 버렸습니다.

Falstaff님의 리뷰를 읽으니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경자년 프로젝트에 다시 한 번 올려야지 싶
네요.

<야만적인 탐정들>도 세 번째 도전인데 지
난 가을에 시작해서 지지부진하고요.
읽을 책들은 산더미 같고, 시간은 부족하니
참... 그렇네요.

Falstaff 2019-12-30 10:04   좋아요 1 | URL
ㅎㅎㅎ 늘 사는 것이 그렇지요 뭐.
이렇게 긴 작품들은 독한 마음 먹고 시작해야 하잖습니까.

2019-12-30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30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20-01-08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야만스런 탐정들을 너무 잼있게 읽어서 기대를 크게 하고 현재 1권까지 읽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1권만으로도 중간에 끊겼다는 느낌은 안들어서 중단된 상태에서 좀 더 짧은 칠레의 밤을 읽었는데.. 여전히 야만스런... 이 제일 좋네요

Falstaff 2020-01-08 15:29   좋아요 0 | URL
저도 볼라뇨, 하면 무조건 <야만스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