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클레지오 지음, 홍상희 옮김 / 책세상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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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태까지 읽은 르 클레지오가 네 권. <조서>, <황금물고기>, <사막>, 단편집 《열병》. 이번에 읽은 <섬>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여태 내가 알던 르 클레지오에 비교할 수밖에 없는데, 굳이 한 마디로 하자면 이렇다. 대박.
 처녀작 <조서>는 제쳐놓자. 읽어본지도 오래됐고, 어쨌든 내 기억 속에 남은 것이라고는 해변의 빈집에 숨어들어 사는 청년의 허망한 초상 정도. <황금물고기>도 읽고 난 다음에 흥분을 했었다. 이 책을 읽고 르 클레지오의 팬이 되기로 결심을 했을 정도였으니. <사막>은 어쩐지 <황금....>과 유사하다는 느낌이 들어 감도가 좀 떨어진 느낌이 들었었고.
 큰 의미에서 <섬>, 원래 제목이 <La Quarantaine>. 불어사전을 열어 검색해보니 “검역”, 즉 ‘전염병이 돌고 있는 지역으로부터 오는 사람·선박·화물 따위를 검역당국이 일정기간 격리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해놓았다. 책의 주된 흐름은 아닐지언정 작가는 조연助演격인 자크 아르샹보가 어린 시절 파리의 한 카페에서 술에 잔뜩 취한 무례한 랭보를 만났적이 있으며, 1891년 부모가 죽자 아내 수잔, 친동생 레옹과 함께 그들의 선조들이 살던 모리스 섬, 즉 모리셔스로 향하던 중 첫 번째 기항지인 소말리아 아덴에서 다리 화농으로 죽어가는 랭보를 의사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만난다고 설정을 해두었다. 랭보. 움베르토 에코 선생이 말하기를, 진짜 시인은 스무 살 때까지 쓴 낙서를 찢어버리고 상아장사를 하기 위하여 아프리카로 떠나는 법이라 했다. 그러니 에코 역시 랭보를 ‘진짜 시인’으로 꼽았다는 것. 나 역시 그리하여 드디어 내 돈으로 처음 외국 번역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샀다가, 결국 와다닥 읽고 나서 휙, 던져버렸다는 거 아닌가. 아, 번역시는, 그게 비록 위대한 불문학자 김현이 번역의 업을 맡았다 해도, 읽는 게 아니다. 근데 왜 뜬금없이 랭보? 다시 에코의 말로 돌아가서, 스무 살 때까지 쓴 낙서, 앞으로도 낙서 비슷하게 끼적이기만 해도 프랑스 국가대표 시인이란 이름으로 확실한 자리를 유지할 수 있으나 그까짓 것 싹 무시하고 자유를 찾아 검은 대륙으로 떠나 상아와 무기 장사로 남은 삶을 소비한 시인. 이처럼 이 책 <섬>에서도 귀족 또는 유력가문의 후광을 등에 업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음에도 자유와 사랑을 찾아 세상이라는 정글로 떠나는 인물 ‘레옹’을 주인공으로 삼아 전적으로는 아닐지언정 상징적으로 랭보와 유사한 길을 걷게 하기 때문이리라.
 그리하여 이 책은 사랑 이야기다. 그것도 아주 독한 사랑. 모든 것을 버리고 죽음마저 불사하며, 그러나 불꽃 같이 활활 타는 대신 마치 운명의 실에 이미 꿰어진 채 세상에 나온 연인들 간의 자연을 닮은 필연적 사랑.
 1891년. 자크와 그의 아내 수잔, 자크의 동생 레옹이 모리셔스 섬을 향해 아바 호를 타고 항해를 하다가 폭풍우가 치던 5월 27일, 몇몇 유럽인들과 함께 모리셔스 섬 못미처 플레이트 섬에 긴급 상륙을 한다. 인도에서 출발한 다수의 이민자들도 함께. 사실은 배 안에서 콜레라 혹은 천연두로 보이는 전염병이 발생해 큰 섬인 모리셔스를 방어하기 위해 전염병 환자 및 환자가 될 확률이 많은 정상인들을 작은 플레이트 섬에 격리시키기 위한 하선이었던 것. 섬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역시 격리 수용되었다가 그곳에 아예 정착해버린 인도인과 극소수의 유럽인이 살고 있었다. 이 가운데 복잡한 내력을 가진 여인이 한 명 있다. 세포이 전쟁 때 죽은 유모의 품에서 발견된 영국 아이가 현명한 인도 여인 ‘지리발라’에 의하여 구출된 후 그녀의 딸로 삼아 이름을 ‘아난타’라고 했다. 지리발라는 아난타를 데리고 인도를 탈출해 모리셔스 섬으로 이민선에 올랐으나 배에 역병이 도져 역시 플레이트 섬에 격리되었고, 여기서 살아남아 섬에서 살다가 생을 마치고 힌두교 식으로 화장을 했다. 아난타는 다시 인도에 갔다가 딸 하나를 낳았고, 어머니 지리발라의 혼이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플레이트 섬으로, 이곳에서 죽기 위해 딸 수르야바티와 함께 온 터.
 몇 달 동안 모리셔스 섬에서는 이들의 생존을 위한 최소량의 식량만 건네줄 뿐 이들이 다른 땅에서 가져온 죽을병이 물러날 때까지 결코 구원해줄 생각이 없다. 그래 플레이트 섬은 죽음의 땅. 그것도 사방이 바다로 막혀있어 이들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병에 걸려 죽거나, 굶주려 죽거나, 아니면 병을 이기고 살아남아 모리셔스 섬에 도착해 사탕수수 농장의 노예가 되는 일. 물론 유럽에서 온 백인들과 절대 플레이트 섬에서 떠날 생각이 없는 인도 이민은 예외로 한다. 절박한 상황이 오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 가슴 속에 비밀로 간직해온 진실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야만이 드러나고 이기심이 백일하에 튀어나오고 숨겨왔던 지배욕구 마저 솟구친다. 이리하여 인간의 인간에 의한 정글 상태가 되었을 때, 그래도 한 편의 애틋한 사랑의 꽃이 핀다. 레옹과 수르야바티. 이들의 사랑은 불붙지 않는다. 조금씩, 조금씩 서로 다가서다 사랑만이 자신들의 운명인 것을 알아내고, 드디어 섬에서 해방시킬 구원의 배가 도착함과 동시에, 여태 수르야바티의 도움으로 삶을 이어나가고 병을 이긴 백인들조차 레옹과 수르야바티의 이별을 당연시 했을지라도, 레옹은 백인들과의 모든 관계를 끊는 편을 택한다.
 정말 오랜만에 소설의 내용을 거의 다 말했다. 이 책은 스토리가 중요하지 않은 듯해서 그랬다. 르 클레지오가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사람들의 생존을 위해 삶에 도착하는 광경,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랑하게 되는 연인들의 모습을 얼마나 뭉근하게 그리고 있는지, 이게 바로 진짜 소설가의 솜씨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작가의 부계가 정말로 18세기에 모리셔스 섬에서 살다가 영국으로 왔다고 한다. 사생활을 거의 노출하지 않는 르 클레지오가 자신의 정체성을 작품을 통해 조금씩 알린다고 역자 해설에 씌어 있기는 하지만, 독자는 그런 거 신경 쓸 필요 없다. 어차피 르 클레지오 자신이 영국인도 아니고 프랑스인도 아니다. 영국인이기도 하고 프랑스인이기도 하지만 이미 세계인cosmopolitan으로 사는 사람이니 그냥 작품의 재미만 느껴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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