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 상자 중국전통희곡총서 5
라오서 지음, 오수경 옮김 / 연극과인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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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읽은 <생사장>처럼 원작인 소설을 희곡으로 만들어 공연한 작품이다. 라오서(老舍)의 원작 <낙타 샹즈>를 중원눙(鍾文農)이 희곡으로 각색을 해 1998년에 현대 경극으로 공연했다고 한다. 만주족인 라오서는 어려서 아버지가 전쟁에 나가 전사하는 바람에 좋은 머리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중도 작파할 수밖에 없었는데, 나중에 시험을 봐 북경사범을 마치고, 놀라지 마시라, 당년 19세에 소학교 교장, 23세에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다음 중학교 교사 생활을 하다가, 25세부터 5년간 영국의 런던대학에서 강사로 체류하고 30세에 귀국해 대학에서 교수로 지내며 창작에 힘을 쏟는다. 그래 그의 작품 <마씨 부자>의 무대가 영국이구나, 이제야 알았네.
 그러나 중국 현대사는 라오서처럼 머리 좋은 인텔리겐치아 계급에게 마음이나마 편하게 지내며 창작에 몰두할 엄두를 주지 않아서 그간 중국 현대소설에서 숱하게 보아온 문화혁명 당시 거지같은 홍위병의 깡패 짓을 견뎌내지 못하고 1966년, 그의 나이 67세 때 북경 태평호에 빠져 스스로 늙은 생명을 거두게 된다. 다이허우잉의 일련의 작품에 등장하는 늙은 지식인의 모습과 겹쳐 떠오르는 건 나 한 명이 아닐 듯하다.
 나는 이 경극을 위한 희곡의 원작인 <낙타 샹즈>는 읽어보지 못했다. 그저 희곡을 읽으면서 원작도 중국 근대사의 비극을 참 절절하게 써 놓았겠거니 하고 짐작만 할 수 있었을 뿐. 다분히 자연주의적, 혹은 사실주의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데, 놀라운 건, 이런 현대적 서사도 경극, 베이징 오페라로 공연을 할 수 있고, 실제로도 했다는 사실이었다.
 만일 ‘경극京劇’을 영어로 번역한대로 ‘베이징 오페라’라고 그대로 믿는다면, 이 희곡은 한 현대 경극을 위한 대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중원눙이 각색한 이 책 <낙타 상자>는 대본이라는 얘긴데, 그건 또 악보가 빠졌다는 의미다. 경극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는 비록 이 대본이 1920~30년대 중국의 도시빈민을 실감나게 그렸을지언정 음악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전달력, 자연을 모방하지 않은 언어외적connotation인 정서의 전달을 어떻게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수밖에. 암만해도 조만간 경극을 한 번 봐야겠다. 진짜로 보면 정말 좋다고 하는데 여태 너무 게을렀다.
 ‘상자’라는 이름의 잘 생기고 건장하고 부지런한 사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시기는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베이징을 함락하고 북경 대신 ‘북평北平’이란 이름을 붙인 시기니까 1920년대로 보아야겠다. 북평, 즉 베이펑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한 후 다시 베이징으로 이름이 바뀐다. 상자의 직업은 인력거꾼. 동료 인력거꾼으로 이강, 딸보(키 작은 뚱보), (빼빼마른)갈비 등이 있다. 이중에서 알코올 중독 증세가 심한 늙은 이강의 딸 복자와 서로 사랑하지만 이강이 술도 좀 더 퍼마시고, 새 인력거를 살 요량으로 나이 많은 백군의 소대장이자 밀정에게 그만 딸을 팔아버린다. 상자는 3년간 진짜 개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닌 끝에 새 인력거를 사게 되지만, 나중에 복자를 첩이자 하녀도 둘 예정인 백군 소대장 손가 놈에게 징발을 당하고 다시 적수공권으로 떨어진다. 이때 너덧 살 더 먹은 인력거 운송회사의 딸 호뉴가 상자에게 술을 잔뜩 먹여 덜컥 임신을 하게 되고, 둘은 신분차이 때문에 결사반대하는 호뉴의 아버지와 인연을 끊은 채 둘이서 호젓하고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려고 했는데, 사는 게 마음대로 되면 그게 인생이야? 호뉴는 아들을 낳았지만 출산 후 곧바로 아들과 함께 죽고 만다. 때를 맞춰 백군 소대장 손가 놈은 북쪽으로 쫓겨 가면서 복자를 내쳐 둘은 다시 만나게 되는데, 더 이상은 안 알려줌.
 여기까지만 이야기해도 라오서의 소설도, 중원눙의 희곡도 재미있을 것이란 생각이 드실 듯하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중국판 자연주의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테고.
 그런데 이걸 경극으로 공연을 한다? 일반적으로 경극이라고 하면 화려한 분장과 기예, 창과 대사 등으로 되어 있는 바, 중국판 삼팔따라지들의 인생살이를 공연하면서 어떻게 화려한 분장을 하며 무술을 포함한 기예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책의 앞부분엔 공연장면을 몇 컷 소개하고 있는 바, 배우들의 화장 같은 건 볼 수 없다. 그럼 대체로 대사와 창으로, 서양식으로 하자면 징슈필 적인 공연이었을 거 같다. 지금 확실한 건, 내가 눈 감고 코끼리를 만지고 있다는 사실. 뭐 궁금해서 그런 거다, 궁금해서.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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