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안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42
에리히 케스트너 지음, 전혜린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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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2년에 출간한 작품이니 케스트너가 쓴 시기는 30년대 초반의 독일로 보면 무난하겠다. 당시 서서히 살아나고 있던 독일 경제는 1929년 검은 목요일이라 불리는 대공황으로 난데없이 불벼락을 맞아 무수한 기업들이 도산하고 실업률이 천정을 찌를 때였다. 소위 뮌헨 봉기를 기점으로 국가사회주의의 기틀을 확립하고 정권을 잡으려 했던 히틀러는 봉기의 실패로 6개월간의 옥중생활을 마감하고 권토중래를 꿈꾸어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대공황을 기회로 드디어 나치즘을 기치로 내걸고 생물학적으로 우월한 게르만 민족이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극단의 전체주의를 웅변하던 시기였다.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은 하지 않았지만 나치즘의 이상과 괴리가 있는 예술형태, 초기엔 다다이즘을 위시한 미술에서 시작해 나중엔 문학과 음악에 이르기까지 번진 일련의 예술의 표현방식을 통틀어 퇴폐예술로 규정하고 엄정하게 타도해가기 바로 전에, 에리히 케스트너는 <파비안>을 쓰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히틀러가 본격적으로 수상과 대통령 자리를 독식하면서 독일의 전권을 틀어쥐게 되었을 때, 무수한 화가, 작곡가와 더불어 케스트너의 작품들 역시 ‘금서’의 목록에 오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서도 베를린의 한 행사장에서 무수한 책들을 불사르는 장면이 나오는 것을 기억하실 터. 이때 불타는 책들 속에 케스트너의 <파비안>도 섞여 있었던 것이 분명하리라.
 이 정도면 책의 성격을 이해하실 수 있을 듯하다. 시기는 대공황, 기업들의 도산, 최고의 실업률로 인해 박사학위 소지자가 신문사 광고부에서 일하다 해고당하고, 율사 출신의 미녀가 프로모터에게 몸을 바쳐 여배우로 변신해야 했던 시절. 여기서 박사학위 소지자가 책의 주인공 파비안이며, 율사 출신의 미녀는 파비안에게 100마르크를 빌고 곁을 떠나는 그의 애인이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시절이 있었다. 아마 이 사진 기억하실 터. 한국전쟁이 끝난 부산의 1953년, 사진작가 임응식은 길가에 섰는 한 구직자의 모습을 담았다.

 

 

 

 책에서 묘사하는 독일은 아직까지 국가사회주의가 완전히 집권하지는 못했으나 나치와 히틀러가 권세를 가진 집단으로 등장해 있던 시기로, 서서히 유럽의 죽음이 예고되고 공황에서 시작한 불운의 그림자가 사회 전체를 무겁게 내리누르던 시기다. 마치 자본주의의 말로를 보는 것 같은 시대의 쇠퇴는 공산주의자들로 하여금 혁명의 시기를 저울질하게 만들고, 하필이면 지역이 베를린이라 그들은 필연적으로 사소한 일로도 건마다 나치당원들과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주인공 파비안과 그의 가장 친한 (부자)친구 슈테판 라부데는 정치에는 그리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는, 일종의 정치적 상식주의자로서 기본적으로 염세적 세계관을 가진 인물들이다.
 책의 앞부분에서는 우리나라 60년대 작가들이 사용하고는 하던 냉소적, 풍자적 대화와 행위가 눈에 띄면서 특유의 우울한 분위기로 시작하는데, 기본적으로 매우 도덕적인 이들의 이야기는 불행으로 끝낼 수밖에 없다. 패전 후 패배의식 속에 대공황까지 겹친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일반 시민들은 누구나 빠짐없이 자본주의적 급전직하에 당면할 수밖에 없었으며, 하루의 먹을거리를 위하여 절도를 하거나 구걸을 하거나 심지어 강도, 밀수행위까지 서슴지 않았으니 실상을 위해서는 명작, 되블린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을 일독하시면 훨씬 이해가 빠르리라. 그러나 이 책의 작가 케스트너는 소설가 말고도 아름다운 동화작가로 세계적으로 이름이 난 인물이라고 하니 어찌 되블린과 분위기가 비슷할 수 있을까. 케스트너의 <파비안>은 참 쓸쓸하다.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애인은 힘 센 놈에게 몸을 팔러 가고, 이제 베를린이란 거대도시에 자신의 고개를 뉠 수 있는 곳은 한 군데도 발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그가 선택하는 것은, 이제 하나 남은 유일한 선택지는 고향. 더 이상의 스토리는 발설할 수 없다.
 참 괜찮은 소설이다.
 단 하나 아쉬운 것은 역자가 전혜린이라는 사실. 전혜린이 누군가. 40여 년 전, 그이의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얼마나 시린 가슴으로 읽었는지. 그이의 번역이 나쁘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전혜린이 세상을 접은 때가 1965년. 벌써 54년 하고도 아홉 달이 지났다. 번역은 1964년에 했다고 쳐도, 사후 7년, 번역 후 8년이 지난 시점에 초판본이 나오고 사후 34년이 지난 후에 중판을 낸다. 그리고 또 20년이 흘렀다. 그걸 아직도 읽고 있다. 그동안 맞춤법도 바뀌고 단어 자체도 바뀌고, 무엇보다 표현의 방식이 바뀌었는데, 아직도 막힘없이 읽히기는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전혜린의 문장이 아니라 출판사 편집부의 문장이란 뜻. 그리하여 별점 하나 깠다. 지금쯤 새로운 역자가 새롭게 번역한 책이 책방의 서가에 꽂힐 때가 됐다. 그럴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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