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비극 -상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35
디어도어 드라이저 지음, 김병철 옮김 / 범우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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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어도어 드라이저Theodore Dreiser. 작가 본인이 인디애나 주의 공업도시, 그것도 살벌한 공업도시라는 테레 호트에서 금슬 좋은 독일계 이민 1세 아버지와 체코에서 농사짓다 온 이민 1세 어머니 사이의 열세 아이 가운데 열두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시어도어가 네 살 때 모직공장의 감독으로 있던 아버지가 독립을 해서 스스로 공장을 세워 드라이저 사장이란 직함을 달고 다니다가 2년 만에 공장이 홀랑 타버리고 와중에 아버지마저 심한 화상을 입어 거의 폐인이 되었다고 한다. 화재보험을 들지 않아 거렁뱅이가 된 드라이저 가문의 열세 명이나 되는 아이들 가운데 시어도어의 형과 누이들 다수가 자연스럽게 교도소의 단골손님이 되거나 창녀가 되었다고 역자가 쓴 작품론에 설명이 되어있다. 심지어 창녀가 된 누이 중 한 명이 나중에 프랭크 노리스가 작품의 선정성에 대한 위험부담을 온전히 감당해가며 출판해준 작가의 초기 대표작 <시스터 캐리>의 모델이 되었다고 하니, 드라이저야말로 진짜 미국식 자연주의 또는 사실주의 작가의 대표라고 할 수 있겠다. 미국문학 전체에서 이야기하자면 또 영국, 즉 모국어를 영어로 사용한 이민자가 아닌 첫 번째 유명 소설작가라는 의의도 있다고 하는데, 이딴 건 뭐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나는 <시스터 캐리>를 1982년에 학원사에서 나온 책으로 읽어 하도 오래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는 한데, 그로부터 10년 후인 1992년, 직장생활 중에 우연히 만난 까마득한 영문과 선배가 졸업논문으로 <시스터 캐리>의 작품론을 썼다고 해서 책 이야기하며 술 한 잔 했던 기억이 있다. 자네가 어찌 <시스터 캐리>를 알아? 예, 그렇게 됐습니다. 재미있는 책이잖아요. 그래, (발음기호 [θ]를 유난히 강조하며) 씨어도어 드라이저의 사실주의 문학이.... 운운, 뭐 그랬다는 얘기다.
 <시스터 캐리>도 그렇고 <미국의 비극>도 그렇고, 이야기는 빈민 출신의 청춘 하나가 상류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아득바득 비정상적으로 기어오르는 내용인데, 이제 <미국의 비극>을 읽어보니,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이 책이 <시스터 캐리>보다 더 재미있을 거 같다. 그러나 문제는 2019년 9월 현재 독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범우사에서 낸 김병철 번역 말고는 없으며, 1989년에 초판을 내고, 1999년에 맞춤법이 대규모로 바뀌는 바람에 중판을 찍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 과거 금속활자 본을 다시 컴퓨터 본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범우사의 다른 역서가 그렇듯이 대량으로 에러를 발생시켰다는 점이 하나요, 역자 김병철 선생이 1921년생으로 생존하신다면 올해 연치가 99세에 달해 과연 역자 본인이 중판 과정에 관여를 했겠는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존댓말이 나올 때, “… 이었습니다.”로 써야할 부분에서 컴퓨터 조판을 했던 담당자가 피곤했는지 어땠는지 “… 이었읍니다.”로 여전히 예전 맞춤법을 따르고 있는 걸 발견할 수도 있다. 실제로 서울, 경기 일부지역에서는 20세기 후반까지 발음을 [이얻음니다]로 하는 나이 든 사람들이 있었지만 맞춤법이 개정된 이후로 싹 사라져버렸다는 건 여담이다. 문자가 그리 무서운 법이다. 문자는 언어를 지배한다. 진짜다.
 20세기 말의 범우사 세계문학 시리즈는 당시 비교할 전집이 별로 없을 만큼 대단한 성가를 누렸다. 옛시절 범우사의 책 구경을 한 번 해 볼까?

 

 

 <율리시즈>가 금속활자 시대의 독수리 발톱 범우사, 위에 가로로 얹힌 레마르크가 요새 범우사다.


 당시 회사의 문장이 독수리가 발톱을 내밀며 먹이를 나꿔채는 듯한 모양이고 지금은 좀 추상적인 도안으로 되어 있다. 하여간 위에서 말한 컴퓨터 조판 시대로 넘어가면서, 흠 이렇게 얘기했다가 고소당하는 거 아닌지 몰라, 망했다. 오래된 번역, 형편없는 교정, 교열. 이 책도 이런 평가에서 멀지 않다. 그러나 내 경우에 국한해 말하자면, 교정 교열을 참을 수만 있으면 오래된 번역이 나쁘지는 않다. 요새 역자들이 줄곧 사용하곤 하는 희한한 조어造語들과 비교해 예스럽고 ‘정확한 단어’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음사 책에 대해서는 이 정도면 됐고, 이제야 독후감의 본문으로 들어간다.
 책, 모두 두 권, 본문만 980여 쪽에다가 요새 책답지 않은 정음사 편집으로 글자가 빽빽하게 차 있어 다른 출판사가 책을 내면 적어도 세 권정도 분량으로, 하루 종일 읽는다 해도 엿새 정도 걸리는데, 첫 장을 넘기면 미주리 주 캔자스시티 도심을 걷는 빈곤층 가족이 등장한다. 뭐 하러? 버스킹. 정말이냐고? 그렇다. 가족들이 자리를 잡고 풍금을 선두로 악기를 배치한 다음, 당시가 1910년대니까 스피커 시설은 없지만 대중들을 앞에 놓고, 물론 이들의 예술을 감상하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추고 집중하는 행인들은 별로 없지만, 노래를 시작한다.
 “사랑의 주 하나님,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니
 말씀으로 우리에게 영원천국 알게 하소서“
 꼭 이 노래는 아니지만 하여간 개신교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가를 우렁차지, 않게, 노래한다. 가족을 이끄는 아버지는 애초 품성이 사람살이에 관해서 거의 관심이 없으며 매사에 무기력한 남자로 오직 불쌍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복된 말씀을 전하는 데만 관심을 두어, 어느 정도냐 하면 아버지가 죽을 때 자기 재산을 첫째와 둘째 아들에게만 나누어주고 이이의 인생 자체에 실망해 셋째 아들이자 이 가족의 가장한테는 단 천 달러만 남겼을 정도였다. 버스킹을 해서 몇 푼 되지 않는 돈을 얻어 생활을 하는데, 주책없이 아이는 자꾸 생기지, 이거 뭐 생활이 되겠느냐는 말이지. 노래나 잘 하면 또 모를까. 그리하여 맏아들이자 작품의 주인공 크라이드 그리피스는 애초에 부모의 승인 없이, 그러나 아무런 지탄도 없이 열서너 살 때 학교를 때려치우고 미국식 잡화점인 드럭스토어의 점원으로 들어갔다가 용기를 내서, 그러나 벌벌 떨면서 캔자스시티의 가장 화려한 그린 데이비스 호텔의 보이에 지원해, 영광스럽게도 입사하게 된다. 동시에 집안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리는 구성원으로 승격하고. 주급이 있고, 주급보다 훨씬 많은 팁으로 크라이드는 전엔 상상도 못했던 깔끔한 옷과 매력적인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니 열다섯 살도 안 돼 총각딱지도 돈 주고 떼고, 줄 듯 말 듯 하지만 결코 허락하지는 않는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 방탕한 호텐스 브리그스와 연애에 돌입할 수도 있게 된다. 이때 나이가 열다섯. 여태껏 내가 한 번도 여자였던 적이 없어서 여자는 모르겠고, 남자 나이 열다섯이면, 애다, 애. 그래 죽을 때까지 후회할 짓을 골라 하니, 자기가 번 돈을 가족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고 싶어 하지 않아 비싼 옷과 맛난 음식을 사 입고 먹으면서도 크라이드의 호주머니에선 가족이 꼭 필요해 최소한으로 요구하는 금액의 돈은 나오지 않는다.
 사람이란 것이, 모르는 게 약일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크라이드 그리피스 역시 뱃가죽이 등가죽과 만나 서로 안녕, 하고 인사하던 시절엔 몰랐었는데 그린 데이비스 호텔의 검정 대리석으로 도배가 된 화려의 극치에 달하는 궁전 같은 곳에서 너무도 쉽게 돈이 생기게 되고, 무엇보다 상류사회의 편리함, 멋있음, 화려함에 눈을 떠, 자신도 언젠가는 저들처럼 금화를 태산같이 쌓아놓고 살리라는 헛된 희망을 품게 된다. <시스터 캐리>와 비슷한 구도지? 그렇다.
 캔자스시티에서 같은 호텔 보이들과 방탕하게 놀러 다니다 크게 사고를 치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맨몸으로 야반도주를 하게 되고(여기까지가 1부), 가명을 써가며 온갖 곳에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 거의 3년을 보내고 시카고에 도착하게 된 크라이드. 여기서 우연히 만난 그린 데이비스의 보이 출신 친구를 통해 그린 데이비스 호텔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격조 높은 유니언 클럽의 보이로 취직을 하는데, 때를 맞춰 뉴욕 주에서 양복에 다는 컬러 공장을 크게 하는 큰아버지 사뮤엘 그리피스 씨를 만나 자신이 씨의 조카임을 알려, 뉴욕 주 올버니와 유티카 중간쯤에 있다는 인구 2만 5천 가량의 작은 도시 리커거스로 옮긴다. 그런데 문제는 크라이드의 성姓. 시카고나 캔자스시티에서는 ‘그리피스’ 집안이 개뿔도 아니었지만 리커거스에서는 ‘그리피스’라는 이유로, 그것도 사뮤엘 그리피스 씨의 조카라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최상류층부터 최하층까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게 된다. 게다가 원래 말끔하게 생긴 외모에다가, 배운 건 없지만 최고급 그린 데이비스 호텔과, 격조 높은 유니언 클럽에서 몸에 익힌 예절, 말씨, 몸가짐으로 누구에게도 호감을 주는데, 그가 리커거스에 도착했을 때 나이가 약관 스물. 불행하게도 테스토스테론이 극도로 많이 분비될 시점이다. 이때 그의 눈에 들어온 매력적인 아가씨, 자기보다 세 살 더 많은 로버타가 눈에 들어와 싫다고, 안 된다고 하는 걸 기어이 자빠뜨리는 데 성공한다. 그래 둘이 서로 죽기 살기로 사랑하는 상태로 접어들지만 이미 상류층의 단맛을 알아버린 크라이드는 일개 여공인 로버타와 결혼에까지 이를 생각은 애초에 해 본 적도 없다.
 딱 이때 크라이드 앞에 등장하는 최상류층, 리커거스 뿐만 아니라 뉴욕 주 전체를 통해서도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 손드라 핀츠레이. 처음엔 손드라의 친구 오빠이자 크라이드의 사촌 형인 길버트를 약 올리기 위해 크라이드와 친하게 지냈지만 시간에 가며 점점 더 사랑하게 된 손드라를, 크라이드는 점점 더 자신과 맺어질 수 있는 상대로 여기게 되면서 비극의 서막이 열리게 된다.
 어디서 본 거 같지? 그렇다. 몽고메리 크리프트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각각 크라이드와 손드라로 분한 영화 <젊은이의 양지>. 여기서 ‘양지’라고 하는 건 우리나라 한우의 앞가슴에서 아랫배까지의 부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쨍하고 해 뜬 부분을 뜻하는 것인데 영화에서는 ‘크라이드’와 ‘손드라’ 대신 ‘조지’와 ‘안젤라’라는 이름으로 연출했다.
 그러니 더 이상의 스토리는 굳이 내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무방할 듯.
 재미있다. 그러나 이 독일인의 후예 시어도어 드라이저는 다른 건 몰라도 구도 하나는 확실하게 잡고 있어서, 예를 들면, 이런 장면이 진짜 나온다는 얘기가 아니라, 크라이드가 워터스 씨 댁의 잘 생긴 그레이하운드를 잡아 고기는 토끼 고기라고 속여 코엔 씨네 푸줏간에 팔아먹고, 가죽은 외투를 만들어 입고 다니는 장면이 나온다면, 미리 특정한 사유를 만들어 놓고 그 때문에 개를 잡았다고 설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치밀하게 이야기를 만드는지라, 이야기가 종종 장황하게 펼쳐져 엉덩이 근육이 발달하지 않은 독자는 나가떨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읽는 행위를 소위 ‘취미’로 하고 있다고 자부하면 꼭 한 번은 읽어야 할 명작임은 분명하다.
 요즘 세계문학전집을 찍고 있는 출판사가 꽤 된다. 그 가운데 이 책을 다시 번역할 회사는 없을까. <시스터 캐리>를 낸 문학동네는 <미국의 비극>의 번역 계획이 없다고 하고, 민음사는 하도 답변이 없어서, 내가,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겠다, 라고 얘기했을 정도이며, 창비와 문학과지성사는 독자의 질문에 대답해 주기엔 너무 우아한 출판사라 거들떠듣지도 않는다. 어느 출판사가 됐든 이 책은 적어도 30년에 한 번씩은 다시 번역을 해야 하는 작품 군에 들어야 한다. 적어도 그렇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제목, An American Tragedy를 ‘미국의 비극’이라 번역하는 건 넌센스 아닐까 싶다. 관사 ‘An’은 왜 번역 안 하나. 그러면 ‘한 미국식 비극’ 정도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차라리 그게 더 좋은 제목일 거 같은데, 왜 그런고 하니,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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