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이 생긴다면 아빠부터 없애볼까 상상초과
청예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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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귀여운 친구의 이름은 클레입니다.


클레는 그저 세상이 불타는 걸 보고 싶어 하는 친구죠.


클레가 딱히 세상에 불만을 품은 건 아닙니다. 단지 물고기를 폭파시키는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할 뿐.


따라서 클레는 오늘도 폭탄을 바리바리 싸 들고 눈에 보이는 몬스터들을 죄다 폭☆발★시켜버리고 다닙니다.


심지어 촉법소년이라서 아무도 클레를 말릴 수 없다고 하네요.







이 무섭게 생긴 아저씨의 이름은 조커입니다.


3년 전, 날강두의 노쇼 이후로 공식적으로 '메시 지지'를 선언한 이 아저씨는 세상에 불만이 많습니다.


때문에 세상을 불태울 기름값을 벌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마피아들의 삥을 뜯고 다니시죠.


다만 배트맨을 너무너무 좋아하는데, 정작 배트맨은 원더우먼이랑 썸을 타고 있으니 상심이 큽니다.


오죽했으면 배트맨이 놀아주지 않는다고 배 두 대를 훔쳐서 고담 시 시민들과 한강 유람을 떠나는 기행을 벌였겠어요.







이 인자한 미소를 지니신 할아버지의 이름은 잼 아저씨입니다.


밀가루 반죽만으로 호빵맨, 식빵맨, 카레빵맨 등의 무시무시한 전투병기를 제작할 수 있는 할아버지죠.


잼 아저씨 또한 세상에 불만이 매우매우 많습니다.


처음에는 세상의 모든 세균맨들을 남김없이 소각하는 걸 꿈꿨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죠.


이제 잼 아저씨는 뼛속까지 썩어 빠진 세상을 통째로 불태우려고 합니다.






그리고 한 명 더.


세상에 불만이 아주아주 많은 친구가 있습니다.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빠.


아빠에게 맞기만 하는 엄마.


매일같이 학교에서 얼굴을 맞대야 하는 일진 무리들.


2만 원짜리 카디건도 고심과 흥정 끝에 구입해야 하는 지갑사정.






우스꽝스러운 2만 원짜리 카디건 하나에 그럭저럭 잘 샀다며 만족해야 하는 내가 싫었다.


원래 사람이란 한번 마음에 들지 않는 걸 발견하면 어떻게든 더 싫어하고자 용을 쓰는 법입니다.


그런데 주인공 '나'는 굳이 이런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세상이 먼저 자길 싫어하도록 판을 깔아주네요?


적어도 내 삶은 아무리 노력해봤자 행복과 등가교환 되지 않았다.

행복과 불행에는 사이클이 없었다.


허나 아쉽게도 '나'에게는 클레의 통통 폭탄도, 조커의 캠프파이어용 돈다발도, 잼 아저씨의 전쟁병기 제작 능력도 없습니다.


세상이 제발 나 좀 싫어해달라고 온갖 불행을 가하는데 고등학생 2학년짜리가 뭘 할 수 있겠어요?







물론 이런 초등학생들이 존재하는 세계관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습니다만...






애석하게도 이런 세상에서 '나'가 믿고 의지할 대상이라고는 조향사를 꿈꾸는 베프 시우뿐.


아이돌에 환장하는 시우는 머릿속이 꽃밭이지만 정작 그 향기가 '나'에게까지 전달되진 않습니다.


오히려 시우와의 시간이 즐거울수록, 비참해지죠.


내가 시우처럼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한 적이 언제였던가.


원래 인생이란 공평보다는 불공평에 더 가까운 법입니다.


쟤가 주식을 사면 우상향인데 내가 주식을 사면 우하향.


쟤가 산 코인은 떡상하는데 내가 산 코인은 떡락.






하지만 이러한 불공평은 언제까지나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입니다.


주식 사라, 코인 사라, 누가 칼 들고 협박한 거 아니잖아요?


전적으로 내가 선택한 불공평이란 말이죠.







안 그래요?


안 그래 카카오게임즈야?






하지만 '나'가 마주하는 불공평은 결코 '선택'이 아닙니다.


즐거운 상상이 가득한 하루를 보내더라도 우리 집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런 가족을 선택한 적이 없습니다.


이런 아버지도, 이런 어머니도 선택한 적이 없죠.


아니.


이런 세상에 태어나는 것조차 '나'의 선택과는 무관했습니다.






선택하지 않은 가정.


선택하지 않은 부모.


선택하지 않은 존재.


선택하지 않은 불공평과 불행.






따라서 '나'는 이러한 세상에 불만이 많습니다.


아주아주아주아주 많습니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괜히 태어나서, 지지리도 고생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런 '나'에게, 초능력이 주어집니다.


"내가 주는 모든 능력은 그 능력을 받을 아이들이 가진 불행에서 비롯된다."


꿈에서 만난 신비로운 백호신으로부터 초능력을 부여받은 '나'


'나'가 지닌 능력은, 바로 상대에게 원하는 만큼의 고통을 주는 것.


'체헤버리라지.'


'아주 조금만 더 아팠으면!'


'견딜 순 있지만, 살짝 거슬릴 만큼만 아파보길.'


'딱 1초 동안만 쿡 찌르는 고통.'


초능력을 사용하는 데 그 어떤 조건도 한계도 없습니다.


'변신!' 같은 부끄러운 명령어도 필요하지 않죠.


그저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면 됩니다.


상대가 느낄 고통을.






마냥 세상에게 당하기만 했던 '나'에게


마침내 세상에 반격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긴 것입니다.






아빠도,


일진 무리도,


이제부턴 당한 만큼 되갚아줄 차례죠.


'나'를 아프게 했던 만큼 아프게 해줘야 할 차례죠.


어쩌면 지금껏 '나'가 당하고 아팠던 것보다 더!







하지만 '나'가 받은 초능력에는 복수보다 더 중요한 조건이 하나 붙어 있습니다.


능력을 주는 이유는 네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기 위해서다.

네가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면 능력도 자연히 소멸한다.


행복을 느끼면 초능력이 소멸한다는 것.


다시 말해 초능력을 계속 사용하려면 행복해져선 안 된다는 것.


즉, 초능력이 있는 한 '나'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






공자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복수를 하려면 두 개의 무덤을 파라."


복수를 당하는 쪽의 무덤 하나.


그리고 복수를 행하는 쪽의 무덤 하나.


복수는 양쪽 모두를 파멸시킬 테니, 따라서 두 개의 무덤을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나'는 초능력을 앞세워 자신에게 불행을 안겨준 이들에게 똑같이 불행을 안겨주려고 합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똑같이 상처를 주려고 하죠.






그러나 '나'에게 초능력이 계속 존재하는 한,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아빠를 없애버리고 일진 무리를 모두 쫓아버리면, 그것이 곧 행복일까요?


'나'에게 불행을 안겨준 세상을 뒤엎어버리거나 불태워버리면, '나'는 그 세상에서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행복을 느낀다고 한들,


초능력으로 거머쥔 행복은 초능력이 사라진 다음에도 고스란히 유지될까요?





<초능력이 생긴다면 아빠부터 없애볼까>는 독자에게 함부로 조언을 건네는 소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죠.






초능력으로 인해 벌어지는 온갖 소동을 따라가다보면, 독자는 '나'와 함께 자연스레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합니다.






바로 꿋꿋함이죠.






세상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 작정하고 덤벼든다면


오히려 꿋꿋하게 버텨내며 세상의 뜻대로 휘둘려주지 않는 것.


꿋꿋하게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며 나만의 행복을 하나씩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이자 최선의 반항이며


우리가 거머쥘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이라는 것이


<초능력이 생긴다면 아빠부터 없애볼까>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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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니 시티 상상초과
임선경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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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샤워를 하다가 거울을 들여다본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제가 너무 잘생겨서요?


아뇨, 거울 속에 웬 올챙이 한 마리가 있었기 때문이죠.







두둑한 뱃살을 보아하니 이놈은 황소개구리가 분명하구나.


그동안 배민 포인트 차곡차곡 쌓아놨던 게 다 여기로 왔어.


여태껏 열심히도 처먹으며 살았네?


역시, 난 헛살았던 게 아니야.





괜스레 흐뭇해지는 하루였습니다.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인 식욕에 너무나도 충실했던 나.


참으로 인간답게 살아온 나 자신에 대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달까요?







...압니다.


살 빼야죠...






하지만 다이어트가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겠습니다.


살 빼고 싶다고 해서 살이 쭉쭉 빠진다면 세상에는 말라깽이들만 가득하게?


다이어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단.


다시 말해 먹는 것.


인간의 3대 욕구를 제한하는 다이어트는 평생 금욕하는 종교인의 과업만큼이나 고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잠시 다이어트 관련 명언들을 살펴보고 갈까요?






먹어봤자 다 아는 맛이다


뮤지컬 배우 옥주현


아니, 그 맛이 맛있다는 걸 아니까 꼬박꼬박 챙겨 먹는 거잖아요.


세 끼 다 먹으면 살쪄요


- 배우 김사랑


원래 사람은 세끼 다 먹고 사는 동물인데요?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


-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


소크라테스한테 마라탕과 로제떡볶이와 교X허니콤보를 맛보여주면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






그렇습니다.


제 다이어트는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망해버린 겁니다.


올챙이에서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기 위해선 호랑이 몫의 쑥까지 씹어 삼켜야 하건만.


제 안의 황소개구리가 끊임없이 제게 쑥 대신 용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배달 용기를.






그런 의미에서 책 한 권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임선경 작가님의 <스키니 시티>입니다.






피자 그림 때문에 펼쳐보았다고는 죽어도 말 못함;;





저는 이 책을 고작 15페이지가량 읽었음에도 정신없이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제가 꿈꾸던 천국이 텍스트로 구현되어 있었거든요.






그들이 지나는 거리 한편에서는 도넛 시식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시내에 외출을 나오면 그런 행사를 몇 번이고 만나게 됐다. 한 블록에서만 시식행사 서너 개가 한꺼번에 경쟁적으로 펼쳐지기도 했다.

매일매일 신제품이 쏟아졌다. 어제의 신제품이 오늘 다른 신제품에 밀려났다.

시식행사만 자주 열리는 것이 아니었다. '도넛 데이', '슈거 데이', '오븐 데이' 등 음식 이름과 조리법 이름이 붙은 날들이 거의 격주로 하나씩 있었고 그날에는 시티 어디를 가든 그날의 주인공인 음식들이 넘쳐났다.


<스키니 시티>의 배경이 되는 '파인 시티'는 이런 곳입니다.


어째서인지 파인 시티의 주민들은 상대방에게 더 많은 음식을 먹이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죠.


가게들도, 노점들도, 기업들도, 한 입이라도 더 먹이고자 치열한 경쟁을 벌입니다.






만인이 만인에 대한 투쟁을 벌이는 곳이 아닌,


만인이 만인을 먹이기 위해 투쟁을 벌이는 곳.


부먹도 찍먹도 아닌 오로지 '처먹'만이 존재하는 곳.


명절날 할머니도, 해병대 악기바리도, 한 수 접고 물러나는 곳.






그러니까 파인 시티에 살게 된다면 언제 어디서든, 어떤 이유로든,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겁니다.






제 생일은 7월 25일.


따라서 저는 생일에 7리소스에 2빠이 버무린 5리고기를 먹게 되겠군요.


지금 이 리뷰를 쓰고 있는 시간 10시 8분 52초.


파인 시티에서는 당장 10무김치와 8도비빔면,52소박이를 먹을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인생은 B와 D사이의 C라고 하던가요.


그렇습니다.


파인 시티에서 인생이란 Breakfast와 Dinner 사이의 Chicken인 겁니다.







이런 인생이라면, 나쁘지 않습니다.


인생을 지금보다 더욱 열심히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 목표가 하나 생겼습니다.


꼬박꼬박 월급을 모아서 파인 시티행 급행버스를 타는 것.






그런데 이 소설.


'화이트 레스큐'가 등장하면서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앞쪽에 그들이 있었다. 화이트 레스큐.

화이트 레스큐의 원래 이름은 '신체계측 경찰 구조대'다.

그들을 일반들과 구분 짓는 것은 오점 하나 없는 몸매였다.






파인 시티의 화이트 레스큐.


그들이 맡은 업무는 단 하나.


지나가는 행인들을 불시에 검문하여 '신체계측'을 실시하는 것.






이들은 길거리에서 시민들의 신체를 측정합니다.


키와 몸무게, 근육량, 체지방량, 각 부위별 지방량, 피하지방까지.


그러니까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한 개인을 발가벗기는 셈이죠.


치수라는 객관성을 무기로 삼아, 가장 수치스럽게.






만약 신체계측을 통과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느냐.






신체계측 경찰이 '레스큐'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사람들을 비만이라는 질병의 위험에서 지키고 구해주기 때문이다.

아슬아슬 위험한 상태에서 구조된 남자는 캠프에 입소해 치료를 받을 것이다. 치료가 끝나면 새 인생을 얻을 것이다.






잡혀갑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죠?


끊임없이 식욕을 자극하고 부추기는 도시에서 '비만'을 단속한다니요.


더군다나 비만인 사람을 잡아다가 '캠프'에 집어넣는다고?


오히려 그 반대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바로 이 모순에, 파인 시티의 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시티의 모든 사람들은 계급이 정해져 있었다. 최고가 S, 그 다음은 A부터 D까지 계급이 정해졌다.

공식적으로 계급은 18세 생일이 지난 아이들을 대상으로 시민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결정되었다. 그러나 계급 결정 전에도 A계급은 A계급처럼, D계급은 D계급처럼 보였다.

외모라는 것은 눈으로 똑똑히 보이는 것이니 아무도 계급을 속일 수 없었다.






계급에 따라 삶의 형태와 수준이 달라지는 도시.


아니.


계급에 따라 차별받고, 그 차별이 정당화되는 도시.


그곳이 바로 파인 시티입니다.






이러한 계급을 결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외모'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름다움'이죠.


객관화되고 보편화되고 단위화된 아름다움.


만인이 만인에 대해 '더 아름다워지고자' 투쟁하는 곳이 바로 파인 시티인 겁니다.






그렇다면 내가 남들보다 더 아름다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하여 남들보다 더 높은 계급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노력?


아쉽게도 노오오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저 또한 어머니 뱃속에서 열심히 세포분열을 하며 노력했지만, 그 결과물은 매우 유감스러웠으니까요.






그렇다면 여기서 더 아름다워질 수 없는 내가,


남들보다 더 아름다워지는 방법이란?


간단합니다.






남들을 덜 아름답게,


나보다 못생기게 만들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파인 시티의 모든 이들은 틈만 나면 상대방에게 음식을 먹이려고 드는 겁니다.


상대방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임으로써 상대방의 추락을 기원하며.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온갖 정성을 다해, 당신의 몰락을 바라며 한 끼 음식을 준비하는 누군가를.


당신을 짓밟고 올라서기 위해 땀 흘리며 따뜻한 음식을 요리하는 누군가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만인을 끌어내리기 위한 투쟁.


파인 시티란 그런 곳입니다.







그러니 장담합니다.


전 파인 시티에서 1초 만에 캠프로 끌려갈 자신 있습니다.


저보다 빨리 끌려가실 분 계신가요?


자신 있으면 덤벼보십쇼





물론 <스키니 시티>는 청소년 소설인 만큼 필요 이상의 냉혹함을 보여주진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눈이 찌푸려질 만큼 잔인함을 담아내지도 않았죠.






작고 여린 주인공이 불합리한 세계에 맞서 더 크고 강한 존재로 거듭나는 것.


외모라는 껍데기를 깨트리며 존재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


그 쉽지 않은 여정을 흡입력 있는 템포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래요.


결국 외면보다는 내면이 중요하단 소리죠.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아뇨.


우리는 이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습니다.






날씬한 허리와 매끄러운 피부보다 내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들어줄 무언가


그 무언가를 우리가 이미 알았다면, 찾았다면,


<스키니 시티>라는 이야기는 결코 탄생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따라서 <스키니 시티>는 '그 무언가'를 좀 더 빨리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청소년 소설이자,


아직까지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어른들을 위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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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산요수
김지서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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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정의 스릴 넘치는 위기를 이토록 몰입해서 침 삼키며 봐도 되는 걸까?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걸작, <안나 카레리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그리고 여기, 독보적인 불행함을 지닌 가족이 있습니다.

바로 김지서 작가님의 <요산요수>에 등장하는 박 씨네 가족이죠.


“돈도 못 벌어, 밤일도 못해, 산도 못 타.”는 남편 재수 씨.

산악회에서 “어린 창석이”와 놀아나는 아내 희선 씨.

종일 퍼질러 자다가 “어미 얼굴에 대고 방귀를 뿡” 뀌는 것이 일과인 아들 준희.

“운명의 소산” 혹은 “단순 피임의 실패” 정도로 여겨지는 딸 정희.


이들에게 가족이란 원수요, 짐덩어리요,

차라리 물건이었다면 하루빨리 당근마켓에 팔아치우는 게 나을 애물단지에 불과하죠.

헐값에라도 사갈 사람이 있다면 말이에요.


이렇듯 소생 가능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박 씨네 가족.

언제나 인자한 미소와 함께 쪽집게 같은 솔루션을 제시하는 오은영 박사님도,

이들 가족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그래요.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으니 차라리 이혼이 차선책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서로를 위해서라도 멀리 떼어놓는 게 나을 이 가족이,

“남한산성”을 중심으로 한데 모이기 시작합니다.


남편 재수 씨는 산악회 여성 회원들과 “멈출 줄 모르는 한 마리 야생마”가 되어보기 위해.

아내 희선 씨는 산악회에서 만난 불륜남과 “21년 만의 섹스”를 즐기기 위해.

아들 준희 씨는 호스트바에서 만난 “자기 딸 옷을 몰래 입고 나온” 여자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

딸 정희 씨는 자신을 “꽃뱀”으로 의심하는 남친과 “가성비” 좋은 모텔에 가기 위해.


...환장하겠네요, 정말.



과연 박 씨네 일가족의 운명은, 어떤 파국을 맞이할까요?






그전에 잠깐!

<요산요수>가 어떤 소설인지, 그 세 가지 매력 포인트를 한번 짚고 넘어가야겠죠?






1.

이 작가, 바이브가 대단하다!



불륜과 바람질을 들키는 때는 바로 당사자가 배우자한테 죄책감을 느낄 때이다.


20대의 남성이 50대 중년 여성의 심리를 속속들이 꿰뚫어볼 수 있을까요?

혹은 50대의 남성이 20대 여성의 삶을 세세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요?

그들을 옆에 앉혀놓은 채 그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받아적는다고 해도 쉽지 않을 텐데요?


하지만 이토록 어려운 일을, 김지서 작가님은 해냅니다.


직접 50대 여성이 되어 인생의 환멸 끝에 불륜을 저지른 것처럼,

직접 20대 남성이 되어 대책없는 일탈을 감행해본 것처럼,

그야말로 “짬”이 있어야 느낄 수 있는 “바이브”를 김지서 작가님은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낸 것이죠.


인생의 쓴 맛과 쓰라린 맛을 골라 모아놓은 듯한,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소설.

여러분이 지금 당장 <요산요수>를 읽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2.

이 작가, 통찰력이 대단하다!



그렇다면 부부란 어떤 의미인가. 그건 그 사람이랑만 섹스해야 한다는 뜻이다. 영원히.


<요산요수> 속 인물들을 바라보는 김지서 작가님의 시선은 늘상 삐딱합니다.

그 어떤 긍정연민도 찾아볼 수 없죠.

때로는 삶의 민낯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낸 탓에 불쾌함마저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좀처럼 <요산요수>를 내려놓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책에서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며,

이토록 지질한 인물들을 보며 한껏 키득거리게 만드는 힘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요?


그것은 바로 김지서 작가님의 통찰력이 빛나고 있기 때문이죠.


가족이라는 환상, 부부라는 허울, 부모자식이라는 빈 껍데기.

그리고 해부실의 메스처럼 그 너머의 실체를 예리하게 파헤치는 김지서 작가님의 통찰력.


따라서 <요산요수>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삶의 진실들을 잔인할 정도로 익살맞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3.

이 작가, 촌철살인이 대단하다!



그리하여 산은 우리네 인생과도 같다. 뱀이 나오면 지그재그로.


남다른 바이브와 뛰어난 통찰력을 지녔어도 그걸 글로 전달하는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김지서 작가님이 펼쳐보이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문장들은,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질 않죠.

마치 명치에 꽂힌 주먹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진짜 주먹과 차이가 있다면 억 소리 대신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나온다는 거죠.


왜 우리는 불행이 다가오는 걸 빤히 보고도 피하지 않는 걸까요?

왜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피한답시고 차악을 택하고 마는 걸까요?

왜 우리는 매번 욕심에 눈이 멀어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하는 걸까요?


이와 같은 의문 앞에서 김지서 작가는 불필요한 말을 늘어놓지 않습니다.

그저 박 씨네 일가족의 촌극을 보여주며 연이은 촌철살인을 날릴 뿐이죠.


“어쩜 이렇게 세상 남자들은 하나같이 전부 다 남자 같고

세상 여자들은 하나같이 전부 다 여자 같을까?”








오은영 박사님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느껴집니다.


결혼생활에 충실하지 못한 부부나 자식에게 무책임한 부모를 지켜볼 때의 분노.

그리고 내 가족이 저렇게 불행한 가족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롯된 안도감.


하지만 우리는 마냥 안심할 수 있을까요?

그들과 달리, 우리의 가족은 정말 괜찮은 걸까요?


그저 소설 속 대환장 파티를 지켜보며 낄낄거리다가도,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는 “어쩌면 우리 가족도?”라는 의문과 함께 섬찟해지는 소설.



오은영 박사님조차도 해결하지 못할 희대의 가족 블랙 코미디.

김지서 작가님의 <요산요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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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볼브 1 케이스릴러
이종관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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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미스터리 수작”

- 권일용 교수


국내 1호 프로파일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당신이 혹하는 사이> 외 다수 출연




여기, 국내 유일의 범죄수사 전문 잡지의 편집장을 15년간 맡아오신 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CSI’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전부터 ‘과학수사’의 발전을 이끌었던 분이기도 하죠.

이토록 화려한 이력을 지니신 분이 이제는 펜을 들었습니다.




국내 최초의 프로파일러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장마저도 감탄한 그 이름!

소개합니다.

K-스릴러의 걸작 <현장검증>에 이어

차기작 <리볼브>로 또다시 K-스릴러 무대를 뒤집어놓으신

한국 최고의 범죄스릴러 작가, 이종관 작가님입니다!




그렇다면 이종관 작가님의 <리볼브>는 어떤 소설인지,

지금 바로 살펴볼까요?








줄거리


광역수사대 형사 두만. 최근 그에게는 스토커가 생겼습니다. 지척까지 다가와 보란 듯이 흔적을 남겨놓으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 스토커는 베테랑 형사 두만조차도 불안에 휩싸이게 만들죠.


한편 도심에서는 듣도 보다 못한 수법의 살인사건이 연달아 발생합니다. 의도가 있는 살인인지, 아니면 어느 미치광이의 연쇄살인인지,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한 상황.


그런데 사건을 조사하던 두만의 눈앞에, 살인범과 스토커가 동일인이라는 증거가 나타납니다!






어떠신가요?

간단한 줄거리만 읽었는데도 벌써부터 흥미진진하지 않으신가요?

하지만 더 이상의 스포일러는 NO!


그 대신 제가 직접 읽으면서 느꼈던 <리볼브>의 3가지 매력 포인트를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눈앞에 생생히 그려지는 과학수사의 현장!



실혈사, 요골동맥 절단, 액흔, 낙하혈흔, 비산혈흔 등등... 우리에겐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전문용어의 향연은, 이종관 작가님의 무시무시한 필력 속에서 직접 사건을 마주한 듯한 현장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마치 형사들 중 한 명이 되어, 현장을 직접 둘러보며 다른 형사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분석을 진행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만큼 소설 속 장면이 더욱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건 덤이겠죠? 저는 <리볼브>를 읽는 동안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뒷목이 서~늘하더라고요!




2.

쫓는 자와 쫓는 자, 그리고 쫓는 자!



형사는 범인을 쫓고, 범인은 희생자를 쫓습니다. 다른 스릴러 작품들은 대개 이런 구조로 사건이 진행되기 마련이죠. 하지만 <리볼브>는 아닙니다. 쫓는 자가 쫓기는 자가 되고, 쫓기는 자 또한 누군가를 쫓습니다. 때문에 이들 ‘쫓는 자’만이 가쁘게 달려 나가는 이 소설은 독자가 앞으로의 전개를 쉽사리 예측하도록 틈을 내어주지 않죠. 아무래도 지금 읽고 있는 장면의 그 사람이 범인 같다고요? 정말 그럴까요? 빨리 다음 장을 확인해보세요! 뒤통수가 얼얼하실 거예요!




3.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반전!



<리볼브>의 이야기는 마치 사건 현장에 널브러진 증거들 같습니다. 어떤 증거는 사소한 물건으로, 어떤 증거는 하찮은 쓰레기로, 어떤 증거는 별 의미 없는 소품 정도로 느껴지곤 하죠. 과연 이들 사이에 연관점이라는 게 있긴 한 걸까요? 하지만 이러한 증거들을 한데 모아 유심히 들여다본다면, 굳게 잠긴 자물쇠가 찰칵, 열리듯 예상치도 못한 진실이 드러나기 마련이죠. <리볼브>가 그렇습니다. 의문만 불러일으키는 인물의 행동들, 한낱 부연설명에 불과한 문장들, 이들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낸 반전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이니까요!








이상으로, <리볼브>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15년 가까이 온갖 범죄현장을 목격하고 취재하신 작가님의 작품이라고 하니,

어떤 재미를 지닌 작품일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펼쳐본 책이었는데요.


소설의 디테일에 한 번!

작가님의 필력에 두 번!

뜻밖의 반전에 세 번!

놀라움과 경악으로 가득했던 소설이었습니다.


따라서 “나 스릴러 좀 봤다” 하시는 분들이라면,

혹은 ‘K-스릴러의 정수’를 느껴보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저는 이 작품, <리볼브>를 강력 추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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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다
정세진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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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는 원고 없이 오직 작가의 상상력만 믿고 후속 소설집 계약까지 마쳤다. "




도대체 얼마나 뛰어난 이야기꾼이기에?

얼마나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줬기에?

고즈넉이엔티는 정세진 작가님의 '상상력'만 믿고 작품 계약까지 마치게 된 걸까요??




그래서 제가 직접 읽어보고 그 후기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주제도, 내용도, 분위기도 각기 다른 일곱 편의 이야기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술술 읽히더라고요!

마지막 이야기까지 읽었을 때는 “왜 다음편 없어요!” “더 써주세요 작가님!”이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정세진 작가님이 들려주는 일곱 이야기들의 매력을 소개해볼까요?




(직접 읽어보실 분들을 위해 스포일러는 최대한 자제했습니다.)








1.

나는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다



“ 딱 1억 원짜리 비밀이면 됩니다. ”


납치된 아이.

부모와의 협상에 나선 인질범.

인질범의 요구는 지극히 단순했습니다.


1억만 주세요. 그럼 아이는 무사히 가정으로 돌려 보내드립니다.”


전형적인 인질범의 요구.

아이의 부모는 정원 딸린 저택에 기거할 만큼의 부자였으니, 1억 정도는 쉽사리 내줄 수 있는 돈이겠지요.

어쩌면 재력을 앞세워 감히 내 아이를 납치한 불한당들에게 지독한 복수를 감행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이 인질범, 1억에 이어 전혀 예상치도 못한 것을 요구합니다.


다름 아닌 두 부부의 비밀.

자신을 신고하기는커녕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만큼 은밀한 비밀을요.


과연 이들 부부가 감추고 있는 비밀이란 무엇일까요?


* * * * *


1억 원짜리 비밀이라. 단순히 돈의 액수만 본다면 사업상의 비밀이라든지, 정말로 1억 원을 숨겨놓은 금고의 위치라든지, 그런 비밀 밖에 떠오르지 않는데요. 그러나 무덤까지 가져가야 하는 비밀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값어치는 1억이 아니라 몇 억을 줘도 모자르겠죠? 이를 이용하여 완전범죄를 계획하고 부부를 압박하는 인질범의 심리전이 무척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간단한 아이디어로 이렇게 긴장감 넘치는 작품을 써내다니, 정세진 작가님은 '천재 이야기꾼'이 맞나 봐요.






2.

인터뷰



이유야 어쨌든 지금 내 앞에 마주 앉은 이 남자는 이제껏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여기, 혜성처럼 불현듯 나타나 별처럼 그 누구도 닿지 못할 경지에 이른 존재가 있습니다.


강인욱 대표.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투자 시장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증권가의 '예언자'

오늘날 강 대표는 거대한 폭풍처럼 경이롭다 못해 경외적인 존재가 되었죠.


그런데 신처럼 군림하던 강 대표가, 어느 날 갑자기 인터뷰를 요청합니다.

그것도 경제지 전문기자가 아닌 연예부 1년차 풋내기 기자를 지명하면서.


왜 하필 그를 지목한 걸까요?

그런 의문이 제대로 해소되기도 전에, 강 대표는 더욱 더 믿지 못할 이야기를 꺼냅니다.


“난 과거를 볼 수 있어.”


* * * * *


아마 웹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강 대표의 비밀을 쉽게 예측하실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 작품의 '진짜' 이야기는 강 대표의 비밀이 드러난 다음에 시작되죠. 만약 여러분이 늙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라면 어떨 것 같나요? 같은 인생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해서 살아가며 모든 걸 꿰뚫어 보고 예측하는 경지에 이른다면요? 모두가 한 번쯤은 꿈꿔보는 삶. 그럼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상상해볼까요? 나를 제외한 모두가 늙어가는 삶. 어제와 똑같은 내일이 평생 반복되는 삶. 여러분은 이런 삶도 꿈꿔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3.

어쩌면 운이 좋아 우연처럼



나는 온종일 쏟아지는 행운을 거부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주인공은 행운의 여신으로부터 총애를 받는 존재입니다.

문제는 그 여신이 상당히 쪼잔하다는 점이죠.

때문에 주인공은 한 번의 행운과 한 번의 불행을 번갈아 겪는, 말 그대로 불운한 삶을 살게 됩니다.


행운이 찾아오는 횟수가 빈번해질수록 불운이 발생하는 일 또한 잦아지는 상황.

그래서인지 주인공은 매사에 신경질적이고 쌀쌀맞게 행동합니다.

일부러 행운을 쫓아냄으로써 불운 또한 다가오지 못하게 만드려는 것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에게 ‘행운’이 다가오고 맙니다.


매사에 심술궂고 퉁명스러운 주인공인데도, ‘행운처럼’ 화사하게 웃어주는 그녀.

그녀는 대체 누구일까요?


* * * * *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불행 때문에 늘 불안해하는 주인공이 불쌍하기도 하고, 그 때문에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까칠하게 대하는 주인공이 ‘웃프기도’ 하고, 그럼에도 행운처럼 찾아온 사랑 앞에서 흔들리는 주인공을 보며 흐뭇해지는, 간질간질한 사랑 이야기였어요. 마치 잔잔한 멜로 영화 같은 분위기가 앞의 두 작품과는 상반되면서도 이 작품만의 색깔을 인상적으로 드러내고 있네요. 곡예사처럼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정세진 작가님! 이런 소설 더 써주시면 안 될까요?






4.

도적



자고 일어나면 인생이 달라져 있기를 바란다.


차라리 성공조차 하지 못했더라면 가슴 한쪽이 이토록 쓰라리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한때는 잘나가는 로맨스 소설 작가였기에, 오늘날 ‘나’가 느끼는 패배감은 더욱 쓰라린 것이었죠.


조언이랍시고 늘 곁에서 말로 비수를 꽂는 친구.

‘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스타작가가 되어버린 후배.

‘나’는 정말로 패배자가 되어버린 걸까요?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에 라디오를 듣던 ‘나’는 김광석의 데뷔 38주년 콘서트 소식을 듣습니다.

어?

잠깐만요.

김광석의 데뷔 38주년이라고요?

김광석이 살아 있다니, 거긴 대체 몇 번 지구인 거죠?


이내 ‘나’는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됩니다.

잠들 때마다 ‘나’는 두 평행세계를 오갈 수 있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먼저...


나보다 잘나가서 재수 없는 후배놈부터, 어떻게 해볼까요?


* * * * *


평행세계란 설정은 언제 봐도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이쪽 세계에서는 평범한 회사원인 내가 평행세계에서는 조물주 위의 건물주로서 떵떵거리며 살아갈지도 모르고, 이쪽 세계에서는 매일같이 회사 사람들과 복작거리는 내가 평행세계에서는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서 외롭게 고독을 곱씹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렇다면 두 세계가 서로 연결되었을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래도 너는 잘 살고 있는구나, 하며 평행세계의 나를 보며 흐뭇해 해야 할까요? 아니면... 쟤나 나나 똑같은 '나'인데, 확 뺏어버려?






5.

산 자들의 땅



그저 고향에 남아 살아갈 뿐이었다.


도시는 오래전에 멸망했습니다.

정확히 어떤 원인으로 멸망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단지 ‘종말’이라고 낙서된 ‘원자력발전소’의 광고판을 보고 추측할 뿐이죠.


하지만 도시 따위야 멸망하든 말든, ‘산 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도시 안팎을 오가며 살아가고,

누군가는 손가락 하나 까딱거리지 못하는 몸으로 죽지 못해 살아가고,

누군가는 방사능보다도 더 무서운 돈 때문에 허덕이며 살아가죠.


그렇다면 이들의 삶에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아무런 의미도 없다면, 이들은 왜 이토록 꾸역꾸역 삶을 살아가는 걸까요?


* * * * *


흑백영화처럼 고즈넉하게 펼쳐지는 멸망의 풍경. 이러한 종말론적인 분위기 아래 진행되는 한 가정의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인 작품이었어요. 동생이 아버지를 먹여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도시를 드나드는 동안, 누나는 ‘코인’ 때문에 생긴 빚을 갚고자 ‘아트페어’에 아버지의 그림을 출품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죠.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는 이들 모두에게 각자의 사정과 삶이 있는 상황. 그 어떤 것도 판단할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바꿔나갈 수 없기에, 그저 끝을 향해 흘러가는 삶이야말로 진짜 종말이 아닐까요?






6.

나를 버릴지라도



“ 엄마가 저를 찾을 수 있게 전해주세요. 엄마, 아빠 꼭 만나게 해주세요. ”


어느 날, 소녀는 납치되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괴한들에게 납치된 소녀는 외딴 섬으로 팔려나가죠.

그곳에서 소녀는 노예처럼 혹사당하며, 이곳에서 평생 ‘아들 낳고 손주 낳고’ 살아갈 위험에 처합니다.

소녀에게 과연 구원의 손길은 찾아올까요?


한편, 전직 프로복서였던 사내는 수상쩍은 회사에 채용됩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로부터 하청을 받고 일한다는 정체불명의 회사.

사장은 두루뭉술한 말만 늘어놓더니, 대뜸 사내와 함께 외딴 섬으로 향합니다.

도대체 사내는 무슨 회사에 입사한 걸까요?


* * * * *


솔직히, 다소 읽기 괴로웠던 소설이었습니다. 납치당한 아이들이 겪는 절망과 폭력이 여과없이 묘사되고 있다 보니 그야말로 물 없이 고구마를 삼킨 듯 속이 턱턱 막히더라고요. 중반까지도 이러한 ‘고구마’가 해결되지 않으니 답답함에 책장을 넘기는 손길만 절로 빨라졌죠. 하지만 이 또한 정세진 작가님이 의도한 것이었을까요? 후반에서 묵직하게 치고 들어오는 ‘사이다’에 저도 모르게 키득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네요. 어떤 사이다였냐고요? 아무래도 성경의 한 구절을 인용해야겠네요.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7.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가지만 나의 시간은 멈췄다



나는 지금 심금을 울리는 애달픈 감정을 이곳 법정에 살포해야 한다.


‘나’는 여섯 살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육신은 여섯 살에 성장이 멈춰버렸죠.

때문에 ‘나’는 평생을 여섯 살로 살아가야 합니다.

정신은 열여덟 살 소년이라고 한들, 타인의 눈에는 여전히 여섯 살 꼬맹이에 불과했으니까요.


하지만 영악한 ‘나’는 이러한 신체적 특징을 제대로 활용해보고자 머리를 굴립니다.

변신 공룡 로봇을 갖고 노는 법을 배우고,

옷을 함부로 벗어 사방팔방에 던져놓는 법을 배우고,

똥 얘기만 들어도 자지러지게 웃는 법을 배우죠.

심지어 혀짧은 소리를 위해 치과에서 앞니 두 개를 뽑아버립니다.


‘나’의 목적은 단 하나.

바로 보육원을 벗어나 제대로 된 가족에게 입양되는 것!


과연 '나'의 입양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 * * * *


누군가를 속인다는 것은 비상한 머리뿐만 아니라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특히 거짓말의 크기가 커질수록, 또 그 내용이 황당할수록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겠지요. 이 작품의 주인공 또한 그렇습니다. 여섯 살처럼 말하기 위해 생이빨을 뽑는 과감함이라니! 그런 용기라면 비록 여섯 살에 갇혀버린 몸일지라도 뭔들 못하겠어요. 그런데 이야기가 결말로 도달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용기를 발휘해야 하는 상황이 찾아오고야 맙니다. 낯선 사람을 속이는 건 그럭저럭 쉬웠나요? 그럼 소중한 사람들을 속이는 것도 그만큼 쉬울까요?








정세진 작가의 기념비적인 데뷔작, <나는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다>!

토끼든 비둘기든 마음대로 튀어나오는 마술사의 모자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리뷰를 쓰는 것조차 마냥 즐거웠으니까요.


이토록 대단한 소설을 혼자 읽어서는 안 되겠죠?

부디, 제 리뷰가 정세진 작가님의 매력을 이곳저곳으로 퍼트리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럼 여러분 모두 즐거운 독서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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