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침대에 앉아 티브이를 보다가 침대 옆에 있는 책상 위로 손을 뻗어 책을 하나 집어 들었다. 펼치니까 이런 글이 있다.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이네.

 

 

....................

“ (…) 어떤 여자가 맞은편에서 오는데 마치 세상에 저 혼자인 것처럼 왼쪽도 오른쪽도 안 보고 그대로 전진하는 거야. 둘이 부딪쳐. 자, 이제 진실의 순간이야. 상대방한테 욕을 퍼부을 사람이 누구고, 미안하다고 할 사람이 누굴까? 전형적인 상황이야. 사실 둘 다 서로에게 부딪힌 사람이면서 동시에 서로 부딪친 사람이지. 그런데 즉각, 자발적으로, 자기가 부딪쳤다고, 그러니까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런가 하면 또 즉각, 자발적으로 자기가 상대에게 부딪힌 거라고, 그러니까 자기는 잘못한 게 없다면서 대뜸 상대방을 비난하고 응징하려드는 사람들도 있지. 이런 경우 너라면 사과할 것 같아 아니면 비난할 것 같아?”


“나라면 분명 사과하겠지.”


“아이고, 이 친구야, 너도 사과쟁이 부대에 속한다는 거네. 사과로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그래, 그렇지.”


“그런데 착각이야. 사과를 하는 건 자기 잘못이라고 밝히는 거라고. 그리고 자기 잘못이라고 밝힌다는 건 상대방이 너한테 계속 욕을 퍼붓고 네가 죽을 때까지 만천하에 너를 고발하라고 부추기는 거야. 이게 바로 먼저 사과하는 것의 치명적인 결과야.”


“맞아. 사과하지 말아야 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괜히,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57~58쪽.

....................

 

 

 

사과를 하는 건 자기가 잘못한 것이라고 밝히는 것이고, 자기가 잘못한 것이라고 밝힌다는 건 상대방이 자기한테 욕을 퍼붓게 만드는 것이란다.

 

 

이 글을 읽으니 말에 담긴 속뜻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상대의 말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히 알아챌 수 있는 어떤 뜻이 담긴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예를 들어 본다. 오랜만에 만난 두 남자. 이런 대화가 오간다.

 

 

A : 오랜만이야. 언제 만나 소주나 한잔 하지.
B:너는 아직도 소주냐? (웃으며) 우리 나이가 몇인데...

 

 

B가 별 뜻 없이 한 말처럼 말했지만 A는 기분이 상한다. 그 말에서 속뜻이 저절로 헤아려졌기 때문이다. “너는 아직도 소주냐? 우리 나이가 몇인데... 이젠 몸을 생각해서 양주 같은 고급 술을 마셔야지.”라는 말로 A는 들었다. 그것은 B가 소주를 먹는 사람들을 자기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구분하고 자기는 그런 부류보다 경제적 수준이 높음을 나타낸 것 같았다. 그리고 소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 같았다. 그 말 한마디로 B가 평소 소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 말 한마디로 그가 사람들의 등급을 매기는 사람으로 보였다.

 

 

다른 예.

 

 

“당신이 좋아지면 어떡하죠? 그러니 그만 만나는 게 좋겠어요.”

 

 

이 말엔 상대가 좋아지고 있다는 속뜻이 담겨 있다. 상대가 좋아지지 않고 있다면 이런 말을 할 생각을 못한다. 생각이 나지도 않는다.

 

 

“앞으로 당신이 싫어지면 어떡하죠?”

 

 

이 말엔 상대가 싫어지고 있다는 속뜻이 담겨 있다. 상대가 싫어지지 않고 있다면 이런 말을 할 생각을 못한다. 생각이 나지도 않는다.

 

 

“이 글은 좋네요.”

 

 

이 말은 이 글만 좋고 그동안 써 온 글은 좋지 않다는 뜻.

 

 

“이 글도 좋네요.”

 

 

이 말은 이 글도 좋고 그동안 써 온 글도 좋다는 뜻.

 

 

내가 어느 댓글에서 “오늘 비가 와서 참 좋아요.”라고 쓴 적이 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실언을 한 것 같았다. 이 말은 내가 비 피해로 인해 생기는 수재민에 대한 걱정을 조금도 하지 않는다는 것과,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것을 나타낸 듯싶어서다. 그래서 비가 와서 좋다는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다.

 

 

아, 어려운 말말말!

 

 

이런 것 저런 것 따지면 말을 하기도 글을 쓰기도 어렵다는 걸 느낀다.

 

 

 

 

 

 

 


(후기)......................................

 

- 우연히 책을 펼쳐 밀란 쿤데라의 글을 본 오늘, 그 글로 인해 글 하나 올리네.
- 난 사과쟁이가 아닌 사람보다 사과쟁이인 사람을 좋아하고, 또 나도 사과쟁이로 살고 싶네.
- 매일 새벽 1시 넘어 자고 아침 5시 50분에 일어나야 하는 생활로 잠이 부족하네.
- 몸은 잠을 자고 싶다는데 몸이 바라는 대로 하지 않고 정신이 이끄는 대로 글을 썼네. 졸음을 깨기 위해 커피를 마셨네.
- 난 눈 오는 풍경보다 비 오는 풍경이 더 좋네. 앞의 글에서 비가 와서 좋다는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다고 해 놓고... 그래도 이 말을 해야겠네. ‘오늘 비 한번 참 품격 있게 와서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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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9-03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 ; 비교적 사회문화적인 것에 의해 결정되겠지요. 영어 잘 못하는 한국인이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That's too bad.' 대신 'I am sorry.'라고 하였다가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법판결을 받은 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영어 선생님의 말씀, 사실 여부는 모르겠고.) 비슷한 경우로 의료 분쟁의 경우 의사의 사과는 100%, 의사 책임으로 인정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도의적 사과까지 하지 못했죠. (지금은 조금 바뀌었지만.)

서양보다 동양, 우리나라에서 암시적인 언어를 많이 쓰니, 공감능력이 없는 남자는 여자들에게 핀잔을 받게 마련입니다.

페크pek0501 2014-09-04 13:42   좋아요 0 | URL
좋은 예를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이런 걸 알았더라면 좀 영양가 있는 글이 되는 건데 하는 생각... 이 듭니다. ㅋ

그래서 자동차가 충돌하는 사고가 나면 서로 큰 소리부터 치고 보는 겁니다. 목소리가 작으면 자신의 잘못으로 사고가 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니까요. 그러니 매너 좋은 운전자가 되긴 틀린 거죠. 이런 문화권에선...

공감 능력이 없는 남자... 남자가 여자에 비해 센스가 부족한 건 사실 같아요.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4-09-03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말조심하지 않으면 큰 다툼이 일어나는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명절!

페크pek0501 2014-09-04 13:43   좋아요 0 | URL
촌철살인이에요. 하하~~
저도 조심해야 돼요. 시댁에서 3일간...

마립간 2014-09-04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피소드 한 가지가 더 생각나는군요. 미국의 한국동포 직장맘이었는데, 직장일을 끝나고 돌아와보니, 아이가 사고로 죽어있었습니다. 직장일을 하느라고 아이를 돌보지 못한 죄책감에 ; '내가 아이를 죽였어'라고 혼잣말을 하였는데, 이 혼잣말이 나중에 재판에서 살인의 유죄 증거가 되었죠. (아이를 혼자 놔두는 것은 아동학대죄이지만, 살인죄는 아닌데.) 한국 동포들이 한국인의 언어습관과 함께 탄원서를 보냈지만 인정되지 않았죠.

페크pek0501 2014-09-04 13:46   좋아요 0 | URL
안타까운 일이군요. 언어습관이 인생을 망칠 수도 있군요.
저도 얼마나 실수를 많이 하는지, 말을 하고 나서 '아, 그건 실언이었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글은 수정하면 되지만 한번 뱉은 말은 수정하기 어려우니
신중해야 하는데... 어렵습니다.
어제는 비가 오더니 오늘은 맑음이에요. 좋은 하루 되세요.^^

다크아이즈 2014-09-04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기 보니까 생각나요. 몸을 이기고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는 그 내공이 부럽습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언제나 정신이 아닌 몸으로 글을 쓴다는 걸 느꼈어요.
꼭 써야 할 글이 있어서 붙들고 있으면 정신이 몸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 필히 횡설수설하게 되더라구요. 그럴 땐 미련없이 관두고 쓰러져야 합니다. 몸이 글을 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허약하기 그지 없는 제 정신력을 탓하곤 하지요.

말도 조심, 몸 언어도 조심... (나쁜) 말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지 않는 게 아니며,(좋은) 말 한다고 다 칭찬하는 게 아님을 공기 중에 흐르는 분위기로 알 수 있지요. 그럴수록 몸과 말을 조심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추석 잘 보내시어요.^^*

페크pek0501 2014-09-04 13:52   좋아요 0 | URL
1. 몸과 마음은 하나다, 이런 말이 책에 많이 나오는데 저는 그 둘이 각각 따로 놀 때가 많다는 걸 느낍니다. 팜 님도 그러시군요...
가령 오늘 같은 날, 몸은 사우나를 하고 싶은데 마음은 귀찮아서 사우나하러 가지 않거든요. 어떤 날은 몸은 잠을 자고 싶은데 그래서 졸리운데 마음은 할일이 많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졸음을 깨거든요. 어떤 때는 몸이 이기고 어떤 때는 마음이 이깁니다.

맑은 하늘이 아름다운 날에 기분이 맑은 하루가 되시길...

마태우스 2014-09-16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간 소홀해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글구 저는 "이 글은 좋네!"라는 말이 "이 글도 좋네"보다 좋아요. 그 글만 유독 잘썼다는 말 같아서요. 막상 들으면 다를 수도 있겠지만요. 그나저나 넌 아직도 소주냐,는 사람이 있다면 저도 같이 안놀 거에요. 소주가 얼마나 좋은 술인데

페크pek0501 2014-09-17 10:28   좋아요 0 | URL
저도 님의 서재에 소홀해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저도 잘하겠습니다.
이 글은 좋네, 라는 말이 좋으시다니 님의 겸손을 발견하게 되는 대목이군요.

ㅋㅋㅋ 말씀은 그렇게 하시면서 혹시 양주만 마시는 교수님이 아니신지... 호호~~

마태우스 2014-09-17 11:37   좋아요 0 | URL
아니어용 사람은 이름 따라 간다고 저 정말 소주 좋아해요

페크pek0501 2014-09-21 21:05   좋아요 0 | URL
아, 성함이... 알고 있음...
몰라 뵈서 죄송합니다. ㅋ
 

 

 

1. 폰의 노예가 되지 않기를 : '스마트폰 소외족'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스마트폰과의 만남은 편리함과의 만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외출하려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는데 날씨가 흐려 비가 올 것 같다고 느꼈을 때, 컴퓨터를 켜기 위해 도로 집으로 갈 필요 없이 바로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확인하고 우산을 갖고 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에 스마트폰이 편리하겠다. 나는 이와 같은 편리함을 취하고 싶을 뿐, 스마트폰을 컴퓨터 대용으로 쓰길 바라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메시지 주고받는 것, 지하철 노선 보는 것, 음악 듣는 것, 사진 찍는 것, 메모하는 것 등을 하겠지만 알라디너의 글을 읽는다든지 신문을 읽는다든지 할 때처럼 긴 글을 읽을 때엔 컴퓨터의 큰 화면으로 볼 생각이다. 무엇보다 폰으로 인해 눈의 건강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다. 스마트폰을 많이 보면 눈물이 말라 노안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30대 젊은 층의 노안 인구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폰의 노예가 되지 않음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정했다.

 

 

‘폰과 노는 시간’보다 ‘책과 노는 시간’이 훨씬 많을 것.

 

 

 

 

 

 

 

2. 미묘한 심리 (1) : ‘내가 바보 같은 행동을 했어.’라고 내가 스스로 말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너는 바보 같은 행동을 했어.’라고 말하면 그건 기분이 상한다. ‘그 일에 자존심이 상했어.’라고 내가 스스로 말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그 일에 자존심이 상했겠다.’라고 말하면 그건 자존심이 상한다. 왜 그럴까? 나는 이런 인간의 심리가 재밌다. 이런 심리를 볼 수 있는 소설이 좋다. 그래서 소설을 즐겨 읽는다.

 

 

 

 

 

 

 

3. 미묘한 심리 (2) : 결혼하기 전, 지금의 남편이 나를 일방적으로 따라다녔다. 남편이 나를 짝사랑을 한 것이다. 어찌어찌하여 둘이 연애를 하게 되었고 결혼 얘기가 오가게 되었는데, 그때만 해도 나는 갈등하고 있었다. 이 남자와 결혼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어머니 될 분이 나를 신붓감으로 반대한다는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충격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나를 반대한다는 소리를 듣자, 갑자기 결혼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솟구치는 걸 느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가질 수 없을 때 더 갖고 싶은 것과 같은 심리가 작용했던 것 같다.

 

 

이름 없는 것에서 하늘과 땅이 생겼다.
이름 붙여진 것은 각자 그 성질에 따라 만물을 길러내는 어머니이다.
실로 욕망을 영원히 벗어난 자만이 비밀스러운 본질을 볼 수 있다.
욕망을 벗어나지 못한 자는 결과만을 본다.  
노자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59쪽. 

 

 

욕망은 비밀스러운 본질을 보지 못하고 결과만을 보게 만든다는 것에 공감한다. 나의 경우 시어머니가 반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결혼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서, 다른 건 따질 것 없이 오로지 결혼해야 한다는 결과만을 중시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남편과 결혼한 걸 후회한다는 것은 아님. ㅋ 내 친구가 말했듯이, 딱 나 같은 사람과 결혼했다고 본다.) 

 

  

(그런데 시어머니의 반대가 완강하진 않았다. 워낙 선량한 분이다. (지방에 사는) 우리 시어머니가 나를 반대한 이유를 나중에 들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서울 여자’라서 싫고 ‘잡지사 기자’라서 싫었단다. 드센 여자인 줄 알고... 나, 하나도 드세지 않은데...)

 

 

티브이 드라마에서도 흔희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 아들이 결혼하고 싶어 하는 신붓감을 데리고 왔을 때, 그 신붓감이 맘에 들지 않는 어머니는 오로지 두 사람을 떼어 놓을 궁리만 한다. 떼어 놓고 싶은 욕망으로 ‘떼어 놓음’의 결과만을 볼 뿐, 자신의 아들이 그 일로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를 보지 못한다. 그래서 아들이 행복하길 가장 바라는 어머니가 결과적으론 아들을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장본인이 되고 만다.

 

 

기억해 두기로 한다. ’욕망을 벗어나지 못한 자는 결과만을 본다.’

 

 

 

 

 

 

 

 

 

 

 

 

 

 

 

 

 

 

 

 

  

 

4. 사랑과 겸손의 관계 : 한 번쯤 사랑의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한 번쯤 실연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어긋나는 게 인생이다, 가 되겠다. 그러니 실연당했다고 해서 창피할 일이 아닌 것 같다. 나이를 먹고 보니 그렇게 생각된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서로 좋아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 결혼하게 되는 것이겠지. 그래서 다행인 것이다. 만약 이성을 만나게 될 때 서로 좋아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면 도대체 누구랑 결혼해야 된단 말인가. 서로 좋아하는 일이 드물게 일어나는 건 절묘한, 신의 한 수.

 

 

여러분은 아시는가?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상대를 잃게 될까 봐 조심하게 된다는 것을.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상대를 잃게 될까 봐 화를 내지 않게 된다는 것을. 다시 말해, 사랑을 하게 되면 저절로 겸손하게 된다는 것을.

 

 

그런데 평상시에 겸손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는 요즘 ‘겸손’에 대해 관심이 많다. 생활에서도 글을 쓸 때도 겸손하고 싶어서다. 겸손이란 무엇일까?

 

 

겸손함이란 우리의 재능과 미덕을 숨기거나 스스로를 실제보다 더 나쁘고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데 있지 않고, 우리 속에 부족한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알고, 신께서 우리가 가진 것을 우리에게 무상으로 주셨으며, 그분께서 주신 모든 재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거기에 대해 스스로를 높이지 않는 데 있다.
라코르데르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279쪽.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잘 아는 것, 이게 중요하겠다.

 

 

이런 속담이 생각난다.

 

 

아랍 속담 :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다고 자처하는 자는 화병으로 죽을 위험이 있다.”
- 미셸 투르니에 저, <외면일기>, 34쪽.

 

 

 

 

 

 

 

 

 

 

 

 

 

 

 

 

 

 

 

 

 

 

 

5. 반해 버린 책 : 그저께 책을 읽다가 보니 새벽 2시가 넘었다. 아, 잠을 자야지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책을 덮었다. 바로<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이란 책이다.  연암 박지원의 글을 감상할 수 있고 그의 글 쓰는 방법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세계 그 이상을 생각하지 못한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만을 전부라 여기는 것이다. 서로 다른 갈등과 대립이 생겼을 때, 각자가 자기 입장만이 옳다고 우기면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다. 연암의 우언寓言을 들어 보자.

 

까마귀는 뭇 새가 검다고 믿고
백로는 다른 새 희지 않다 의심하네.
흑과 백이 각자 자기가 옳다 하면
하늘도 응당 그 판결 싫어하리.
「발승암기문」
- 박수밀 저,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53쪽.

 

 

까마귀는 뭇 새가 검다고 믿고 백로는 다른 새가 희지 않다고 의심한다는 구절, 짧지만 깊은 의미가 숨어 있는 글로 보인다. 연암의 글이다.

 

 

역시 연암이 쓴 다음의 글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이다. 어느 글의 첫머리라고 한다.

 

 

자무子務와 자혜子惠가 나가 놀다가 소경이 비단옷을 입은 것을 보았다. 자혜가 “후유” 하고 한숨지으며 말했다. “쯧쯧! 자기에게 있으면서도 보지를 못하는구나.” 자무가 말했다.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사람과 비교하면 누가 나을까?“ 마침내 함께 청허聽虛선생에게 가서 물어보았다. 하지만 선생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나는 모르겠네, 나는 몰라.“  
「낭환집 서문」
- 박수밀 저,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112쪽.

 

 

이 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특히 연암은 대체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논쟁을 걸면서 글을 시작한다. 이는 곧 연암의 글은 정보나 지식을 제공하는 데 있지 않고, 논쟁을 촉발하거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독자의 반성을 유도하거나 독자에게 흥미를 주려는 데 목적이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처음에 과감하고 분명한 논지를 제기하라는 것이 연암이 말하는 서두의 글쓰기 요령이다.
- 박수밀 저,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113~114쪽. 


 
이 책을 보느라 밤잠을 적게 잤는데 내가 왜 이렇게 책에 집중하며 살까, 생각해 보니 책을 친구 삼아 살게 된 게 습관이 되어서인 것 같다. 책과 친구가 되면 외롭지 않아 좋다. 나의 이런 생각을 일깨워 주는 글을 만났다. 형암 이덕무의 글이다.

 

 

친구가 없다고 탄식할 것 없이 책과 함께 노닐면 된다. 책이 없으면 구름과 놀이 내 친구고, 구름과 놀이 없으면 하늘을 나는 갈매기에 내 마음을 의탁하면 된다. 나는 갈매기가 없으면 남쪽 마을의 홰나무를 바라보며 친구 삼아도 되고 잎 사이의 귀뚜라미도 구경하며 즐길 수 있다. 무릇 내가 사랑해도 그 시기하거나 의심하지 않는 것은 모두 나의 좋은 친구다.  
「선귤당농소」
- 박수밀 저,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72쪽.

 

 

아, 이 글도 좋다. 시기하는 친구나 의심하는 친구는 ‘친구 명단’에서 빼야 하는 거구나.

 

 

다음의 글 역시 형암 이덕무의 글이다.

 

 

개구리 소리는 마치 멍청한 원님 앞에 사나운 백성들이 몰려와 소송을 제기하는 것 같고, 매미 소리는 공부를 엄격하게 시키는 서당에서 시험 일이 닥쳐 글을 소리 내어 외는 것 같으며, 닭 울음소리는 올곧은 한 선비가 자기 임무로 여기고 바른말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번번이 잠자코 응하지 않으면, 발끈해서 낯빛을 붉히고 손을 치켜들고 노려보는데, 눈썹은 개 자 모양으로 찡그리고 손가락은 마른 마디 같아, 굳세고 삐죽삐죽한 모습이 문득 대나무 모양이었다.  
「죽오기」竹塢記
- 박수밀 저,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74~75쪽.

 

 

개구리 소리, 매미 소리, 닭 울음소리에 대한 표현이 재밌다. 탁월하다. 

 

 

탁월한 글이 담긴 책을 탁월한 선택으로 구입했더니 밤잠을 덜 자게 만들어 그 다음날 몸 컨디션을 나쁘게 만들었네. 행복한 불평을 해 본다.

 

 

 

 

 

 

 

6. 깊게 파기 : 한 쪽으로 깊게 파기의 글이 좋기 때문에 자전적 소설이 호평을 받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작가들이 자전적 소설로 유명한 문학상을 타는 걸 많이 봤다. 자전적 소설이란 무엇인가? ‘자기가 경험해서 잘 아는 것’을 쓴 소설이 아닌가.

 

 

그러니까 이런 결론이 가능하다.

 

 

‘잘 아는 것에 대해서 써라.’

 

 

‘남보다 자신이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써라. 상상력은 한계가 있으니까.’

 

 

나는 자주 ‘내가 무엇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없네. 언젠가 하나 잡히겠지...

 

 

 

 

 

 

 

7. 여름이 아직 가지 않았다는 증거 : 9월이 오려고 한다. 9월이 늦게 왔으면 좋겠다. 9월이 오면 금방 가을이 될 것 같아서다. 며칠 전, 세 시 넘어 은행 일을 볼 게 있어서 집을 나섰다. 은행 일을 보고 나서 바로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아파트 단지 부근을 돌며 산책을 했다. 날씨가 좋았기 때문이다. 해 질 무렵의 날씨를 좋아하는데 그날은 흐려서 낮인데도 마치 해 질 무렵처럼 느껴졌던 것. 걸으니 더웠다. 길을 지나다 어느 편의점 유리창에 아이스커피가 천 원부터, 라고 씌어 있는 걸 보았다. 갑자기 아메리카노 아이스커피가 마시고 싶어 편의점에 들어갔다. ‘아메리카노 아이스커피’가 커피액에 얼음을 넣은 종이컵까지 포함하여 천 원밖에 하지 않는 건 의외였다. 그동안 비싼 줄 알고 안 사 먹었잖아. 나, 이렇게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이네. 길에서 마시자니 교양 없어 보이는 나이인 것 같아 집에 와서 마시니 구수하고 달콤한 아이스커피의 맛에 행복하다. 천 원이 주는 행복에 취한 시간이었다. 여름이 아직 가지 않았다는 증거다. 아이스커피가 맛있다는 것은. 

 

 

 

 

 


 

8. 위로가 되는 말 : 남에게 추천할 만큼 좋게 읽은 책이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책 내용을 잊게 된다. 그래서 누가 그 책의 내용을 말하라면 말 못하겠다.

 

 

그래서 내가 요즘 생각한 것은 '책은 읽어서 뭐하나?‘이다.

 

 

그런데 내가 글을 쓰면서 인용했던 글은 잊지 않게 된다. 인용한 글 대부분이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다. 그래서 기억하기 위해서 이것도 옮겨 놓는다.

 

 

‘실패는 단지 더 현명하게 시작할 기회일 뿐이다.’(마거릿 대처)

 

 

어느 책에서 읽은 것이다. 이렇게 인용하고 나면 이 말도 내 머릿속에 저장되겠지. 살면서 실패를 피할 수 없는 우리에게 힘을 주는 좋은 말이다.

 

 

기억해 두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쓴다.

 

 

‘실패는 단지 더 현명하게 시작할 기회일 뿐이다.’ 

 

 

내가 요즘 실패한 일이 하나 있는데 앞으로 더 현명하게 시작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믿어야지. 믿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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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4-08-30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망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결과만 본다.’
‘실패는 단지 더 현명하게 시작할 기회일 뿐이다.’
를 수첩에 적고,
미묘한 심리(1),(2)에 완전 공감하며,
동네 한바퀴를 돌면 벼가 익어가는 냄새가 진동하여 드디어 가을이구나 하고, 이미 여름과 작별한 제가, 아직 여름을 보내지 않은 님께 짧은 엽서 한장 띄우는 마음으로 댓글 남깁니다.

참 좋아요. 페크님의 글을 읽는 시간이요.

페크pek0501 2014-08-31 12:22   좋아요 0 | URL
늘 제 글을 응원해 주시는 메리포핀스님께 맑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을 선사합니다.
잘 받으세요... ㅋ

"이미 여름과 작별한 제가, 아직 여름을 보내지 않은 님께 짧은 엽서 한장 띄우는 마음으로 댓글 남깁니다. "- 이 댓글, 참 좋군요... 저도 수첩에 적어야 할 것 같은데요...

stella.K 2014-08-30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좋은 결혼을 하셨군요.ㅋ
여름의 끝을 부여잡는 요맘 때가 좀 애틋하긴 하죠.
어제 비가 와서 오늘은 선선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여름이란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걸 보면...^^

페크pek0501 2014-08-31 12:24   좋아요 0 | URL
반가운 님아...
가장 좋은 결혼은 아니고... 평범해염...ㅋ

이 여름이 가는 건 아쉽지만 그래서 늦여름이 길어지는 건 좋지만
만약 다시 초여름으로 돌아가서 석 달이나 더워야 한다면 그건 싫으네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늦여름.
제가 가장 싫어하는 계절은 초여름. 하하~~

노이에자이트 2014-08-31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인간의 속물근성을 아주 신랄하고 냉정하게 파헤치는 소설을 연속으로 읽어보자고 결심하고, 모파상 모옴 헉슬리 이 세명의 단편 몇 편을 연속으로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페크 님은 헉슬리 단편들을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군요.

페크pek0501 2014-09-01 13:40   좋아요 0 | URL
흐흐~~ 헉슬리의 단편은 읽어 보지 못했어요. 단편을 썼다는 것도 몰랐네요.
논술에서 많이 출제되는 작품이 '멋진 신세계'라서 헉슬리를 알게 되었죠. 논술에선 조지오웰의 '1984년'과 '동물농장'만큼이나 유명한 작품이죠.
모파상의 단편집은 읽었고 제가 어느 페이퍼에서 인용도 했어요.
모옴은 장편만 여러 작품 읽었어요.

헉슬리의 단편이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네요. ^^

단발머리 2014-09-03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아는 것에 대해서 써라.’
‘남보다 자신이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써라. 상상력은 한계가 있으니까.’

나는 자주 ‘내가 무엇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없네. 언젠가 하나 잡히겠지...

이 문장을 그래도 옮겨서 제 방에 가져가고 싶어요. ....
페크님 좋아하시는 늦여름 빨리 지나가는 소리가 막 들려요.
오늘 아침에는 비도 많이 왔구요.
좋아하시는 날씨, 많이 만끽하시기 바래요~~

페크pek0501 2014-09-03 13:18   좋아요 0 | URL
어머낫!
댓글에서 제 글을 복사 붙이기를 하시면 어떡합니까?
그럼 제 기분이 무지 좋잖아요.

제 글, 님의 방으로 가져 가셔도 됩니다. 하하~~

맞아요. 늦여름도 가려하는지 오늘 아침엔 추워서 긴 팔 옷을 입고 싶더라고요.
지금도 이 멋진 늦여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요...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마태우스 2014-09-16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편의점 아이스커피가 맛있다는 걸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맛없을 줄 알고 안먹었다는.
2) 반대라는 말에 욱하셨군요! 전 "시어머니가 반대해서 어이가 없었다 해달라고 졸라도 할까말까인데"라는 글이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반전입니다.
3) 저도 스맛폰 사고나서 님같은 결심을 했지요. 비교적 잘 지켰다고 생각을 합니다만, 아무래도 책보는 시간이 줄긴 했어요. 카메라로만 쓰려고 하는데 그게 늘 잘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페크pek0501 2014-09-17 10:26   좋아요 0 | URL
1) 저도 처음 마셔 봤어요. ㅋ
2) 아, 반전... 신붓감으로 나를 반대하더니, 그게 저에겐 반전이었죠.
3) 책 책 책, 우리 폰보다 책을 더 사랑하자고요... ^^
 

 

이제야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페크가 되었다.

 

나, 참, 느려 터진다 터져.

 

컴퓨터는 친구들 중에서 일찍 사용한 편인데 스마트폰은 느렸다.

 

 

 

1.
주위 사람들 대부분이 헌 핸드폰에서 새 스마트폰으로 바꿀 때 난 미동도 하지 않았다. 2011년쯤이었을 것이다. 친구들이 거의 스마트폰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나는 어떤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4년째 버티며 헌 핸드폰을 고집하며 살았다. 여기서 압력이란? 나 때문에 불편하다며 웬만하면 스마트폰으로 바꾸라는 친구들의 (공격적인?) 말을 말함이다.

 

 

스마트폰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이제야 스마트폰을 샀다.

 

 

스마트폰에 대한 거부감이란?


 
1) 무작정 유행을 쫓아가는 게 싫었고 : 줏대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게 싫었다.
2) 비용 면에서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싫었고 : 우리 애들의 스마트폰 사용료를 보면 내 핸드폰 사용료의 두 배 가량이 된다. 차라리 그 돈으로 책을 몇 권 더 사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3) 내가 기계치라서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싫었고 : 컴퓨터를 배울 때처럼 스마트폰 사용 방법을 배우는 게 어려울 줄 알았다.
4) 안구건조증이 더 심해질 것 같아서 싫었고 : 그 작은 화면을 보느라 눈이 얼마나 혹사하겠는가 싶었다.
5) 책을 읽는 시간이 줄어들 것 같아 싫었다 :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독서하는 시간이 줄어든 건 확실하다. 그래서 어차피 죽을 때까지 컴퓨터를 사용할 텐데 컴퓨터를 늦게 배울 걸 그랬다고 후회했으므로, 마찬가지로 죽을 때까지 스마트폰을 사용할 텐데 스마트폰을 늦게 배울 걸 그랬다고 후회할 것 같아서 사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스마트폰을 사지 않은 게 이런 거부감 때문만은 아니다. 제일 중요한 이유가 있으니 그것은 이것.

 

 

‘스마트폰에 관심이 없고 그걸 사기도, 사용 방법을 익히는 것도 귀찮았다는 것.’ 

 

 

그 귀찮음을 깨고 이번에 사 버렸다. 여러 이유 때문에 샀는데 그중 첫 번째가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그리고 두 번째가 핸드폰을 꺼낼 적마다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19세기의 물건을 가지고 다니는 것 같아서 창피함. 또 컴맹인 걸로 오해받을 것 같아 창피함.)

 

 

배우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이건 뭐, 쉽잖아. 시시하잖아. 컴퓨터 사용 방법과 비슷해서 스마트폰 사용 방법을 한 시간 만에 다 배웠다.(나한테 필요한 것만을 배웠음을 말함.) 나, 기계치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네. 아직 두뇌가 살아 있네, 살아 있어. ㅋㅋ

 

 

내 스마트폰이 개통되니까 내가 샀다고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친구들과 사촌이 카톡 입성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왔다. 뭐야 이거... 비밀이 없잖아... 내가 익숙해진 다음에 연락하려 했는데... 반가우면서도 당황스러움이여...

 

 

 

 

 

 

2.
스마트폰을 사용하니까 우선 좋은 점은 사람들과 만날 날짜를 정할 때 편하다는 점이다.

 

 

나처럼 학교에 나가는 강사들과의 모임이 있다. 몇 명이서 만나는데 각자 수업 시간표가 달라서 만나려면 날짜 정하기가 쉽지 않다. 카톡 채팅방에선 그게 쉬워졌다.

 

 

“쌤들, 언제 만날까요? 수업이 있는 요일을 말씀해 주세요.”

“전 월수금에 수업 있어요.”

“전 월수목토에 수업 있어요.”

“그러면 화요일에 만날까요?”

 

 

이런 식이다. 그러니 스마트폰이 없는 나 때문에 그들이 그동안 불편했겠다.

 

 

사진을 찍고 나서 (스마트폰이 없는) 내겐 따로 보내야 한다며 투덜대는 친구도 있었다. 내게 첨부파일로 사진을 보내려면 번거롭기도 하고 돈이 들어서다. 아효~ 미안해라...

 

 

다 좋은데 불편한 건 폰을 잡고 문자를 쓰는 게 한 손 하나로 가능했는데 이젠 폰이 커져서 한 손으로만 할 수 없다는 것 정도다. 

 

 

 

 

 

 

3.
(알라디너들 중 아직도 스마트폰으로 바꾸지 않으신 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제가 제일 꼴찌일까요? 그 꼴찌의 자리도 영광스러울 것 같은데 말이죠...) 하하~~

 

 

이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예전에 올렸던 글이 생각나서 퍼 옮긴다.

 

 

에리히 프롬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우리 결정의 대부분은 실제로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우리에게 암시되는 어떤 것이다. 결정을 내린 것이 자기 자신이라고 믿을 수는 있어도, 실제로 인간의 결정 행위는 인간이 두려운 고립감이나 생명, 자유, 안락함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위협에 내몰렸을 때 타인의 기대에 보조를 맞추는 것에 불과하다."(에리히 프롬 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장 보드리야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소비의 사회기능과 조직 구조가 개인적 레벨을 훨씬 넘어서는 무의식적인 사회적 강제가 되어 개인에게 강요된다.”(장 보드리야르 저, <소비의 사회>에서.)

 

 

나 역시 타인의 기대에 보조를 맞춘 것이고 무의식적인 사회적 강제에 굴복한 것이다. 내가 스마트폰을 산 것은.

 

 

그 시대에 이미, 미래에 나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을 예견한 에리히 프롬장 보드리야르가 놀라울 따름이다. 두 분을 존경합니다요!

 

 

이왕 샀으니 즐겁게 폰을 사용하며 살겠다. 그러나 폰의 노예가 되진 않겠다. 불끈!

 

 

폰을 늦게 구입해서 좋은 점은 저렴하다는 점. 스마트폰의 가격도, 월 사용료도 예전에 비해 많이 싸졌다. 그리고 좋은 점을 하나 더 말하라면,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폰을 사용하는 시간에 나는 책을 읽었다는 것.

 

 

....................


내가 읽은 에리히 프롬의 책 세 권.

 

<자유로부터의 도피>
<프로이트와 정신분석>
<사랑의 기술>

 

이 중에서 여러 번 읽고 싶은 책으로 하나만 꼽으라면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꼽겠다. 인상 깊게 읽은 흥미로운 책이다.

 

 

 

 

 

 

 

 

 

 

 

 

 

 

 

 

 

....................

 

 

 

 

 

 

4.
아직도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로 말하면 기계치는 아니다. 우리 친구들 중 컴퓨터를 제일 먼저 배웠고 노트북을 제일 먼저 샀으며 여성 운전자가 별로 없던 시대에 차를 몰고 다녔던 친구다. 그래서인지 그 친구가 헌 핸드폰을 꺼낼 때면 멋있던데, 내가 꺼내면 왜 쪽팔리는지(요런 낱말을 사용함을 이해해 주세요. 가장 적합한 낱말인지라...) 모르겠다. 이 친구는 앞으로도 스마트폰을 사지 않고 버틸 것 같다. 지난번에 물어 보니 그의 생각이 확고했다. “스마트폰이 별로 필요하지도 않고 폰 사러 다니는 것도 귀찮아 안 바꿀거야.” 이랬다.

 

 

이 친구도 귀찮아서 스마트폰을 사지 않고 있다는데, 이 귀찮은 일을 나는 이달 8월에 해냈다. 사용 방법을 익히는 것도 귀찮았는데 이 귀찮은 일을 나는 이달 8월에 해냈다. 스마트폰 사용한 지 열흘이 지났고 지금은 도사처럼 사용한다. 그래서 내가 자랑스럽다. (자랑스러워해도 되려나요?) 저는 별게 다 자랑스럽습니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일을 해낸 페크에게, 카톡 입성을 드디어 해낸 페크에게

 
축하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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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8-20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요!^^ 아직 3G입니다. 무리짓기에 능력도 없으나 의지도 없어 ... 타인 및 소통에 무관심한 마립간입니다. 거부감 이유 1) ~5) 모두 공감하지만, 2만원 정도의 통신비로는 스마트폰이 감당이 안 됩니다.

페크pek0501 2014-08-20 17:20   좋아요 0 | URL
하하하~~~ 제가 님에게 진 겁니까? 제가 꼴찌일 줄 알았는데...
친구들이 저보고 강적이라고 하는데 님은 더 강적이신 건가요?
부디 그 고집? 꺾지 마시길...
제가 몇 달 써 보고 님에게 사는 게 좋은지 어떤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말씀대로 하실지 안 하실지는 님의 자유입니다만...
그저 의견을 드리겠습니당~~


잘잘라 2014-08-20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년째 스마트폰(아이폰4)을 쓰지만 카톡은 언제나 비활성상태인 1인이기에, 축하드리기보다는 「이왕 샀으니 즐겁게 폰을 사용하며 살겠다. 그러나 폰의 노예가 되진 않겠다. 불끈!」에 완전 공감 한 표 찍고 갑니다~~

페크pek0501 2014-08-20 23:02   좋아요 0 | URL
아니 메리포핀스 님! 의외인 걸요.
저처럼 모임이 많지 않은 사람도 채팅 그룹이 네 개여서 카톡 소리가 자주 나는데 말입니다.
으음~~ 그러나 폰의 노예가 되지 않으신 건 잘하신 일인 것 같습니다.
저도 노예가 되지 않겠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처럼 지하철에서 폰을 보고 있지
않겠습니다. 불끈!!! 그럼 뭐하느냐? 사색에 잠겨 있겠습니다. ㅋㅋ

날씨가 좋아서 하루하루 가는 게 아쉬울 지경이에요.
저는 9월이 오는 게 싫어요. 그런데 하루가 성큼성큼 날아가고 있어요.
금방 추워질 것만 같아 이 시간을 잡고 있습니다요... ^^

세실 2014-08-21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울로 코엘류는 친구와 대화중에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을 좀비라고 했는데 제가 바로 좀비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 들여다보는 중독......자!
현명하신 페크님은 절제를 잘 하실듯요^^

스마트폰의 장점은 알라딘 글을 어디서나 읽을수 있고, 사진이 잘 찍히며, 미드도 볼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아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페크pek0501 2014-08-22 16:14   좋아요 0 | URL
세실 님은 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실 듯요. 장점을 잘 활용하실 듯요.
바쁘시니까 짬짬이 폰 사용을 하시면 오히려 시간 절약도 되실 것 같아요.
매일 출퇴근하는 님 앞에서 바쁘다고 하면 말이 안 되는 건데 바빠 죽겠어요.
파마를 해야 하는데 그것도 못하고 있네요.
글도 급히 써서 올리고 있어요. 준비된 글쓰기는 언제나 되려나요?
다음에 올리는 글도 급히 써서 올리게 될 것 같은 예감...ㅋ

또 나가 봐야 한답니다. 님의 축하에 감사드립니다. 반가웠어요. 또 봐요^^

다크아이즈 2014-08-23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맛폰의 세계로 오심을 축하드립니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그 덕에 더 빠지고 더 사랑하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페크님 글 읽자니 타자의 욕망이 곧 나의 욕망이란 말이 생각나네요.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인간의 단면이겠지요.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덥지 않다는 그 이유만으로 무조건 반기겠습니다.
새 글이 올라올 때 됐는데, ㅋ

페크pek0501 2014-08-23 13:21   좋아요 0 | URL
님의 출현을 보니 반갑습니다. 님의 글 두 편을 읽고 왔습니다.
여전히 글 좋으시고...

폰... 저는 폰의 편리한 점은 인정하겠지만 빠지진 않을 것 같아요.
알라디너의 글을 폰으로 보면 눈알이 아플 것 같다는... 이런 건 컴의 큰 화면으로 느긋하게 보고 싶어요.
저는 폰과 노는 시간보다 책과 노는 시간이 더 많은 사람이고 싶어요...
그래야 님을 따라갈 수 있을 것 같다는...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4-08-26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모두 스마트폰 이야기로군요.저는 주체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자유로부터의 도피....저는 지인들에게 경제사와 계급론 공부할 때의 좋은 참고서로 추천합니다.서양 경제사에서는 종교개혁을 아주 중요시하죠.경제라는 물적 토대와 종교라는 정신적 영역이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가 하는 사회과학의 핵심을 연구할 때 가장 좋은 케이스 스터디니까요.

페크pek0501 2014-08-27 19:55   좋아요 0 | URL
저도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참 흥미롭게 읽었어요. 추천할 책으로 손색 없는 듯해요. 그런데 몇 개의 문장만 뇌리에 있을 뿐 (읽은 지 오래 돼서) 그 한 권의 책에 무슨 내용이 담겨 있었던 건지 말하라면 못해요. ㅋㅋ

그래서 제가 요즘 생각한 것, 다음과 같습니다.

'책은 읽어서 뭐하나? '

2014-09-16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17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4-09-17 11:39   좋아요 0 | URL
네 전화 번호가 두개예요 뜨기전에도두개를 갖고 있었으니 지금은 세개쯤 쓰는게 맞는데 하하하
 

 

1. 창문을 닫기 시작했다 : 어젯밤에 큰애가 거실 소파에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추워. 창문 닫을래.”

 

 

이런 말을 한여름에 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남들은 무더위로 힘들어 하고 있는데 춥다니. 하지만 지금은 한여름이 아니고 늦여름이니 우리 모두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무더위를 견뎌 냈으니 우리 모두 힘든 시간을 끝낸 자의 흐뭇한 미소를 지어도 좋으리라.

 

 

그렇게 간다. 여름은 물러날 것 같지 않은 기세로 사람들을 뜨겁게 달구다가 한순간에 가듯 그렇게 맥없이 간다. 이젠 아침저녁으로 서늘함을 실은 바람이 넘실대는 시간에 와 있다. 새벽엔 이불을 자꾸 위로 끌어올려 덮게 만드는 시간에 와 있다. 여전히 낮엔 더위가 머물고 있지만 강도가 한층 약해진 더위다.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더위다.

 

 

 

 

 

2. ‘아, 그래서 그런 일이 생긴 거구나.’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 내가 걷는 운동을 시작한 건 소화불량 때문이었다. 위 내시경 검사를 하고 나서 의사가 한 말은 “몸을 많이 흔들어 주세요.”였다. 그래서 걷기 시작했는데 매일 한 시간씩 걸어서인지 소화가 잘 됐다. 걸어서 좋은 점이 하나 더 있다. 걷는 동안 마음이 개운해진다는 것. 이것을 의사는 “걸으면 머릿속의 스트레스가 빠져 나갑니다.”라고 표현했다. 이젠 몸 건강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걷기’가 필요하다는 걸 안다. 결과적으로 소화불량이 생긴 건 잘된 일이었다. 나를 운동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런 일이 생긴 거구나, 하고 생각할 만하다. 만약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았다면 매일 한 시간씩 걷는 습관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니.

 

 

또 하나.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신 날이 다행히도 금요일이었다. 그래서 직장에 다니는 사촌들이 모두 장례식장에 와서 일요일 국립묘지에 안장될 때까지 함께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금요일에 돌아가셨구나, 하고 생각할 만하다. 금토일의 2박 3일이라서 가능했으니.

 

 

이런 느낌은 나만의 느낌일까? 세상에는 우리를 지배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 어떤 법칙이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시나리오가 미리 짜여 있는 것 같은 느낌. 나는 종종 이런 느낌에 사로잡히곤 한다.

 

 

 

 

 

3. 주문한 책을 어제 받았다 :  알라딘에 적립금과 상품권이 2만원 넘게 있어서 돈을 조금만 보태어 책 두 권을 구입하였다. <영원의 철학>과 <무의미의 축제>이다.

 

 

쭉 훑어보니 이런 글이 눈에 들어온다. 

 

 

그대의 영리함을 팔아서 당혹감을 사들여라.
영리함은 의견일 뿐이지만, 당혹감은 통찰이다. - 잘랄루딘 루미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244쪽.

 

 

영리함을 나타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당혹감을 나타내는 것은 현명한 일이라는 말 같네. 

 

 

진정으로 영리한 사람은 자신이 영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는 게 많아질수록 모르는 게 많다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잘 짓는 개를 훌륭한 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을 잘한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장자>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366쪽.

 

 

말을 잘한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니. 하하~ 웃음이 나오네. 예전에 내가 글쓰기 강사를 뽑는 어느 면접시험에서 최고 점수를 받은 적이 있다. 내가 말을 잘해서 강의를 잘할 것처럼 보였다는 후문이다. 심사위원들이 나의 말빨에 속은 거다. 내가 알기론 말을 잘하는 것과 실제로 똑똑한 것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말을 잘하는 사람을 오히려 조심해야 한다. 사기꾼들이 말을 잘한다.

 

 

또 어느 면접시험에선 내가 최하 점수를 받았는데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원래 합격된 이유는 말해 줘도 불합격된 이유는 말해 주지 않는 거다.)

 

 

면접시험에 대한 얘기는 다 옛날 얘기다. 지금은 말빨이 죽었다.

 

 

 

 

 

 

 

 

 

 

 

 

 

 

 

 

 

 

 

“다르델로, 오래전부터 말해 주고 싶은 게 하나 있었어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죠. (…)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바로 당신 입으로, 완벽한, 그리고 전혀 쓸모없는 공연…… 이유도 모른 채 까르르 웃는 아이들…… 아름답지 않나요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들이마셔 봐요, 다르델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무의미를 들이마셔 봐요, 그것은 지혜의 열쇠이고, 좋은 기분의 열쇠이며…….”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146~147쪽.

 

 

내가 이런 글을 좋아해서 옮겨 봤다. 작가 이름을 보지 않고 글의 내용만 봐도 밀란 쿤데라의 글 같다. 그다운 글이다. 이런 글은 ‘도대체 뭘 말하려고 이렇게 쓴 거야?’라는 궁금증이 생겨서 좋고, 읽다 보면 작가의 생각 세계로 저절로 들어서게 만들어서 좋다.

 

 

내 생각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은(죽음마저도) 무의미하고 반대로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의미가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인간의 마음이 아름답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한 것처럼 양면성이 있다는 것이다.

 

 

 

 

 

4. 대충 생각하며 살려고 노력하기 : 깊이 생각하며 살면 세상살이가 고달플 것 같아서 대충 생각하며 살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뉴스에서는 전쟁, 살육, 기아, 전염병들의 사태. 계속 마음 편하게 살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이기주의와 무신경의 딱딱한 껍질! 아주 보잘것없는 자비나 인간적 유대도 마치 심장 위에 떨어진 벼락처럼 우리를 죽게 만들지 모른다.

- 미셸 투르니에 저, <외면일기>, 291쪽.
 


자비나 인간적 유대가 벼락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도 삶의 요령인 것 같다. 이 책을 정독하면서 글 쓰는 방법만 배우는 게 아니라 사고하는 방법까지 배운다.

 

 

 

 

 

5. 밝게 살려고 노력하기 : 크게 그리고 경쾌하게 목소리를 내면 밝게 사는 사람처럼 보이고 밝게 사는 사람처럼 보이면 실제로 밝게 사는 사람이 된다. (이 점을 믿지 못하시는 분은 한번 해 보시라.)

 

 

앙트완 블롱뎅 : "나는 나 자신의 문턱에서 사는 데 길이 들었다. 왜냐하면 안으로 들어가 보면 너무 어둡기 때문이다."

- 미셸 투르니에 저, <외면일기>, 249쪽.

 

 

마음 안이 어두울수록 밝은 모습으로 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6. 인간은 합리화의 명수다 : 연인에 대한 질투로 폭력을 휘두르거나 살인을 저지르고도 이런 말로 합리화하는 게 인간이다. “사랑해서 그랬어요. 내게 죄가 있다면 사랑한 죄밖에 없어요.”

 

 

462쪽에는 “살인하지 말라”고 쓰여 있고 463쪽에는 그 주석 : 사형은 ‘지극히 심한 경우에’ 정당하다는 것. 스탈린, 히틀러 그리고 폴 포트가 이 대목을 읽었더라면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자기들은 오직 그런 경우에 한하여 사형을 선고했다고 굳게 믿고 있을 테니 말이다.

- 미셸 투르니에 저, <외면일기>, 253쪽.

 

 

사형이 정당하다면 도대체 정당하지 않은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아마 자기 자신에 관해서라면 어떤 나쁜 일도 정당화하는 게 가능하리라. 그게 인간이리라.

 

 

 

 

 

 

 

 

 

 

 

 

 

 

 

 

 

 

 

 

 

7. 문장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 책을 읽을 땐 문장의 내용을 읽으면서 문장의 형식에도 주목한다. 글 잘 쓰는 작가들의 문장을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첫 장부터 주목하게 만든 소설이 있다.
 


옛 애인의 결혼식 날, 사람들은 뭘 할까?

혼자서 훌쩍 여행을 떠나버릴 수도 있겠지. 남태평양의 해변가에 누워 칵테일 주스를 한 모금 마시면서 까짓것 쿨하게 행복을 빌어주는 거다. 아니면 돌멩이가 잔뜩 든 배낭을 메고 북한산에 오르거나 걸어서 잠수교를 횡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산하는 길 위에 돌멩이를 하나씩 버리다가 혹은 찰랑이는 강물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려도 좋겠다.

- 정이현 저, <달콤한 나의 도시>, 9쪽.

 

 

나는 종결 어미를 통일해 쓰는 버릇이 있고 또 그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위의 글에서 밑줄을 친 부분을 보면 ‘있겠지 - 거다 - 것이다 - 좋겠다’로 되어 있다. 작가는 일부러 종결 어미를 통일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쓰면 어떤 점이 좋은지를 생각하면서 문장의 형식에 주목했다.

 

 

하나 더 소개.

 

 

우리는 서먹하게 서로를 비껴 지났다. 전에 서너 번 얼굴을 스친 적은 있지만 말을 나눠본 적은 없다. 저쪽에서 굳이 먼저 인사하지 않는 경우에, 거기 맞춰주자는 것이 나의 원칙이었다. 어쩌면 저 여자 역시 그런 사고방식의 소유자일지도 모른다.
우선 클렌징 폼의 거품을 많이 내어 빡빡 세수를 하고, 녹차 향 바디클렌저로 샤워를 했다.

- 정이현 저, <달콤한 나의 도시>, 36~37쪽.

 

 

내가 썼다면 아마 (집에 들어왔다. 욕실로 들어가서 우선 클렌징 폼의 거품을 많이 내어 빡빡 세수를 하고, 녹차 향 바디클렌저로 샤워를 했다.)라고 썼을 것이다. ‘집에 들어왔다. 욕실로 들어가서’는 필요 없으니 빼도 된다는 걸 배운다. 되도록 간결하게 쓰기.

 

 

글쓰기란 알고 보면 문장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좋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 낱말을 선택하고 배치하면서 즐기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도 비슷하다. 문장의 낱말 선택과 배치를 어떻게 했는지를 감상하면서 즐기는 것이다. 이것을 즐길 줄 안다면 그 어떤 책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단, 잘 쓴 책이어야 한다.

 

 

 

 

 

 

 

 

 

 

 

 

 

 

 

 

 

 

 

 

 

8. 여름이란 군식구 같은 것 : 어머니가 젊은 주부일 때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는데 겨울 방학이 되면 제천에 사는 (나의) 고모가 애들 셋을 데리고 온다고 한다. 고모가 자기 친정에 놀러 오는 것인데 겨울 방학이 끝날 때까지 묵는다고 한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친정에서 겨울을 나기 위함이란다. 먹을게 귀하던 시절이란다. 어머니는 갑자기 군식구가 네 명이나 생기니 처음엔 귀찮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적응이 되어 귀찮은지도 모르고 산단다. 그런데 고모가 친정에 온 지 두 달쯤 되어 그만 집에 가야겠다고 하면 섭섭해서 붙잡게 된단다. 네 식구가 빠져나가고 나면 집이 텅 빈 것처럼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단다. 그래서 어머니는 허전한 마음으로 군식구를 떠나보낸 후유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여름이란 군식구 같은 것.

 

 

낮에만 더울 뿐,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고 밤엔 가을처럼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요즘이다. 여름은 떠났고 다만 그 일부가 남아 있다.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서인 듯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땐 여름이 군식구처럼 싫더니 막상 여름이 떠나려고 하니까 붙잡고 싶을 만큼 섭섭하다. 여름이 떠나고 나면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후유증에 시달릴 것 같다.

 

 

군식구처럼 올 땐 싫고 갈 땐 섭섭한 것. 그것은 여름.

 

 

 

 

 

9. 여름이여 안녕 : 내가 제일 좋아하는 늦여름이 되었다. 8월 중순쯤부터 9월 중순쯤까지의 날씨를 좋아한다. 더위를 식혀 주는 서늘한 공기를 자주 만날 수 있어서 좋아한다. 

 

 

조금 전, 창밖의 풍경을 보니 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다. 그 풍경이 아름다워 한참 봤다. 여름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이 시간, 여름이 떠나는 게 아쉬워서 여름으로 시작해서 여름으로 끝나는 페이퍼를 썼다.

 

 

여름이여 안녕... 내년에 만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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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4-08-14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같은 경우에는 종결어미를 일부러 통일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변화를 주기지요.
리드미컬하게... 잘 안 될 때도 있지만 의식하고 쓰곤 하지요.
이렇게 가을이 성큼 오나 싶으니 왠지 섭섭하기도 하고 싱숭생숭하네요^^
내년에 또 다른 여름이 찾아오겠지요.

페크pek0501 2014-08-15 11:05   좋아요 0 | URL
활동이 뜸하시기에 섭섭했는데 이렇게 방문해 주시니 반가워요.
종결어미, 저는 통일을 좋아하는 편인데 님 따라서 변화를 주어 써 보겠습니다.

이젠 이불을 덮고 자면서 가을이 다가오고 있는 걸 느껴요.
무더위와의 작별이 좋지만은 않네요. 더워서 싫었는데...
이젠 시간을 붙잡고 싶은 나이에 와 있나 봐요. 하루하루 가는 게 아쉽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

2014-08-14 1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15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4-08-15 0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여요~ 말 잘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쓴다고 하던데요.^^
군식구 같은 여름~ 비유가 쏙 들어오네요.**

페크pek0501 2014-08-15 11:1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말 잘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쓴다고, 저도 제 글에 쓴 적이 있습니다요.
같은 언어 영역이니까요...
그런데 정말 머리에 든 게 많은 사람은 말수가 적고 말도 어눌하게 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유창하게 말을 잘하는 사람은 가짜, 같아요. 하하하~~~

군식구 같은 여름,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도, 가장 싫어하는 계절도 여름이라서요, 그렇게 써 봤습니다. 군식구가 떠난다고 하면 저도 붙잡고 싶을 것 같아요. 섭섭해서 말이죠.
또 뵙겠습니다. ~~

마녀고양이 2014-08-15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낮으로 시원해져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7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정말 신경이 날카로왔거든요..

저도 헉슬리의 영원의 철학을 사서... 음... 펼쳐보지도 않고 쌓아놨어요. ㅠㅠㅠㅠㅠ

쿤데라의 글은 정말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걸까, 하면서 고요하게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봐야 하는 작가인지라, 손이 안 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인용구의 무의미를 들여마셔봐요, 라는 문장, 참 좋네요. 쿤데라의 글은 저런 주옥같은 글 때문에 계속 읽어나가야 하는데, 제가 성미가 좀 급해요.

아아, 가을이 오네요, 곧 겨울도 오겠죠. 한 해가 후딱 지나가고 있어요. ^^

페크pek0501 2014-08-15 11:21   좋아요 0 | URL
마고 님! 이젠 서재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시는 건가요?
제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 아시죠? 방가방가~~~

날카로운 신경이라... 저도 그래서 무신경의 딱딱한 껍질을 갖고 싶었다니까요. 투르니에가 표현한 대로요.

저도 읽지도 않고 쌓아 놓은 책이 얼마나 많은지... 제 책상 밑에 가득합니다. 읽어야만 책장에 꽂으려고 모셔 두고 있죠. ㅋㅋ 그래도 사고 싶은 책은 또 얼마나 많은지...ㅋㅋ 알라디너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서도 '모든 건 무의미해'라고 생각하려면 용기도 필요하고 단단한 각오도 필요하겠죠. 그런 경지에 있으면 웬만한 것엔 흔들림 없는 마음이 되겠죠. 죽음 앞에서도 벌벌 떨지 않을 수 있으면, 초월할 수 있으면 사는 게 무척 편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도 무의미의 공기를 마실 줄 아는 경지에 가 있고 싶군요. 되려나?

또 봅시다. ^^

노이에자이트 2014-08-15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견강부회 아전인수...핑계없는 무덤이 없죠. 인간의 합리화, 내가 하면 해명이고 남이 하면 변명이고...

페크pek0501 2014-08-16 10:36   좋아요 0 | URL
ㅋㅋ회사에선 내가 쉬면 재충전이고 남이 쉬면 근무 태만, 이겠죠.
남의 일도 자기 자신에게 대입해 생각해 보면 이해하지 못할 게 없는데
그렇게는 하지 않지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얼마나 관대한지 놀라울 일입니다.
인간의 이중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덜 그래야 하겠죠?^^

성에 2014-08-16 0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패크님의 글, 오고 가는 지인들의 글들을 보면 저는
한없이 부끄러워지고 작아집니다.
한참 수준에서 떨어진 내 만용이요.
그래도 감히 이 여름은 행복했어요.
내 맘 속의 꼬물이들을 많이 쏟아 놨거던요.

조금 숨을 고르며 좋은 글들을 더욱 열심히 찾아 읽어야겠어요.
그리고 막간을 이용해서 되지도 않는 그림도 그려볼까 하구요.
모두 내 머시지요 ㅋㅋㅋ

패크님, 여러 이웃 님들,
이 가을 풍성한 수확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14-08-16 10:44   좋아요 0 | URL
이번 댓글이 처음 아니시죠? 그런 것 같아요. ^^ 환영합니다!!!

행복한 글쓰기였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글을 쓰려면 만용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뻔뻔해지기로 했어요.

그림, 좋죠. 저도 그림을 배운 적이 있는데 그건 그것대로 매력이 있더라고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댓글을 쓸 줄 알았다면 글을 좀 잘 쓸 걸, 하는 생각이 지금 머리를 탁 스치네요. 글을 올린 지가 오래되어 급하게 써서 올린 글이랍니다.
준비되어 있는 글쓰기는 언제나 가능할까요?

열심히 쓰시길... 그리고 이웃 서재에도 댓글을 많이 남기세요. 활동을 열심히 하면
응원을 받게 되어 힘이 납니다.
좋은 토요일 되세요. ^^

마태우스 2014-09-16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말빨이 좋으시군요 정말 부럽네요. 저도 그랬으면 좋은데 흑...
2) 저도 의식적으로 같은 표현을 안쓰려고 기를 쓰고 노력해요. 종결어미도 마찬가지에요. 제가 제대로 글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중3 때 헤밍웨이의 영어 소설을 읽어주던 중학교 영어선생이 헤밍웨이의 뛰어난 점이 바로 같은 단어를 연속해서 쓰지 않는 거라고 했어요. 그 말이 평생 뇌리에 남네요.
3) 님의 글은 하나하나가 아름다운 시 같아요. 매번 읽지 못했다는 게 아쉽네요.

페크pek0501 2014-09-17 10:15   좋아요 0 | URL
1) 말빨... 제가 약장사하면 잘할 것 같아요. 킥킥...
TV에서 보니깐 말씀 잘하신던 걸요.
2) 반복적으로 쓰는 않는 게 기본 원칙이라고 알고 있긴 해요. 그런데 이런 문제가 있더라고요. 반복적으로 쓰면 글쓴이의 의도 내지는 계획이 드러나는 반면, 다른 낱말을 쓰면 글쓴이가 실수로 쓴 게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 거요. 그래서 안전하게 통일해 쓰자, 이렇게 될 때가 있더라고요.
3) 무슨 말쌈을요... 시적인 문장을 써 보는 게 아마 평생 이루지 못할 꿈일 듯요.

우리 오랜만이죠? 그런데 TV를 통해 봐서인지 별로 오랜만이 아닌 것 같아요.
최근에 일을 하나 추가했더니 바쁘네요. 님의 서재에도 들러 보지 못했네요. 미안함...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1. 어젯밤 비가 내려서 공기가 깨끗해진 느낌이다. 비가 왔으니 오늘은 어제보다 덜 덥겠지, 하는 생각. 여름을 좋아하긴 하지만 어제 낮처럼 기온이 34도가 넘는 여름은 싫어한다. 30도 이하의 여름을 좋아한다. 그래서 여름 저녁이나 여름밤이 좋다.

 

 

소나기가 그친 아침에 따뜻한 커피가 든 잔을 손에 쥐고 바깥 풍경 - 길이 있고 나무가 있고 하늘이 있는 풍경 - 을 바라볼 수 있다면 즐거운 여름이다.

 

 

푸른 나무들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여름.

매미 울음소리가 낭만적으로 들리는 여름.(아니 매미의 웃음소리였으면 좋겠다.)

한 줄기의 시원한 바람이 환한 미소를 짓게 하는 여름.

 

 

그런 여름을 좋아할 뿐이지 사우나탕처럼 뜨거운 여름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며칠 전, 폐품을 버리러 아파트 마당에 나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세상의 빛깔은 어떤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바람이 분다. 부드럽게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의 감촉이 쾌적하다. 시간을 보니 저녁 7시 2분. 딱 좋은 시간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렇게 저녁을 시원하게 느낄 수 있는 건 낮의 뜨거운 여름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었다. 우리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건 불행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듯이.

 

 

 

 

 

 

2. 여름은 다른 계절에 비해 일이 많아 더 바쁜 것 같다. 덥기 때문에 창문을 열어 놓아 실내 바닥에 먼지가 많으니 청소를 자주 해야 하고, 덥기 때문에 샤워를 자주 해야 한다. 이런 일들로 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여름의 단점.

 

 

 

 

 

 

3. 여름이다 보니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 곧 아버지 제사다. 첫 제사다. 작년 여름에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내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병원에 가 있는 동안 우울하고 힘들었다. 뭘 살 게 있어서 잠깐 밖에 나와 거리의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고 그들을 부러워하며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당신들은 좋겠다. 가족이 병원에 입원해 있지 않아서.’

‘그런데 당신들은 모를 거야.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나도 내가 행복한지 몰랐지. 아버지가 입원하기 전까지.’

 

 

 

 

 

 

4. 살다 보면 속상할 때가 있다. 속상함의 무게를 덜기 위해선 평소 인생을 생각할 때 ‘인생은 즐거운 것’이라고 여기기보다 ‘인생은 서글픈 것’이라고 여기는 게 낫다. 인생은 즐거운 것이라고 여기면 ‘인생은 원래 즐거운 것인데 나는 왜 이래?’ 하는 생각이 들고, 인생은 서글픈 것이라고 여기면 ‘인생은 원래 서글픈 것인데 나라고 해서 예외일 순 없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인생은 서글픈 것이라고 생각하자 서글프지 않게 느껴졌다. 

 

 

 

 

 

 

5. 사람들은 만족감을 멀리 하며 사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럴 것이다. 오랫동안 감옥에 있는 죄수가 밖에 잠깐 나올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면 이런 말을 할지 모른다.

 

 

“거리를 자유롭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이렇게 누군가를 부러워해 보긴 처음이에요.”라고.

 

 

더워서 짜증이 나게 하는 이 햇볕도 눈부신 행복으로 느껴질지도.

 

 

이 생각을 하며 ‘감사하자 그리고 행복하자.’라고 내가 나에게 말했다.

 

 

 

 

 

 

6. <고종석의 문장>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문법학자가 옳다고 하는 대로 사람들이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말을 하면 문법학자가 그 말의 원리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 고종석 저, <고종석의 문장>, 136쪽.

 

 

 

 

 

‘휴대’폰이란 말이 있다. 어느 페이퍼에서 내가 이 말이 틀렸음을 지적한 적이 있다. ‘핸드폰’ 또는 ‘휴대 전화’라고 해야지 영어와 한국어가 합성된 이 말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아, 그런데 이 책을 읽어 보니 ‘휴대폰’도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면 국어사전에 오를 수 있겠구나 싶다.

 

 

 

 

 

 

 

 

 

 

 

 

 

 

 

 

 

 

 

 

 

“붉은색이 제 상징의 정원에 공산주의를 처음 맞아들인 것이 언제인지 나는 모른다.”<자유의 무늬>, 15쪽

 

- 고종석 저, <고종석의 문장>, 133쪽.

 

 

 

 

 

이 문장이 좋아서 한참 들여다봤다.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가... 그런데 저자는 자신이 쓴 이 문장에 문제가 있다고 하며 고쳐 써야 한다고 한다. (<자유의 무늬>는 저자의 다른 책이다.)

 

 

 

 

이건 멋 부리려다 조금 오버한 경우입니다. ‘상징의 정원’이란 표현을 썼는데 그 말 자체는 멋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정원 하면 대뜸 떠오르는 건 꽃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 문장에서는 이념을, 공산주의란 이념을 꽃에 비유한 셈이 돼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이념과 꽃의 매치는 부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제가 다시 쓴다면 ‘제 상징의 방에’ 또는 ‘제 상징의 집에’ 또는 ‘제 상징의 마당에’ 이렇게 쓸 겁니다.

 

- 고종석 저, <고종석의 문장>, 133쪽.

 

 

 

 

 

멋지다. 저자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줄 아는 것도 멋지고 이렇게 좋은 표현을 할 줄 아는 저자의 능력도 멋지다. 요즘 저자에게 반해서 흥미롭게 이 책을 읽고 있다.

 

 

이런 글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노무현 씨가 후보로 뽑히기를 바란다.”<자유의 무늬>, 35쪽

 

앞서 이야기했듯, ‘개인적으로’는 삭제하세요. 필요 없는 말입니다. ‘뽑히기를’에서 ‘를’이 필요할까요? 격조사라 할지라도, 그게 없이도 말이 통하면 삭제하세요. ‘후보로 뽑히기 바란다.’ 좋은 문장은 간결한 문장입니다. 물론 간결함 때문에 명확성이나 섬세함을 잃어서는 안 되겠지만, 좋은 문장의 특징 하나는 간결함입니다.

 

- 고종석 저, <고종석의 문장>, 145쪽.

 

 

 

 

 

난 왜 이런 책이 재밌는지 모르겠다. 책을 한 번 잡으면 놓고 싶지 않게 만드는 책이다.

 

 

 

 

 

 

7. 최근 내가 저렴하게 구입한 책이 두 권 있다.

 

 

 

 

 

 

 

<마음> : 나쓰메 소세키 (지은이) | 오유리 (옮긴이) | 문예출판사 | 정가 9,000원 , 판매가 4,500원

 

나는 이 책을 어떤 이벤트(책 3만원 이상 구입시 주는 혜택)로 3,900원에 구입했다.

 

 

 

 

 

 

 

 

 

 

 

 

 

 

 

<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지은이) | 김춘미 (옮긴이) | 민음사 | 정가 8,000원, 판매가 4,800원

 

 

 

 

 

 

내가 관심 갖고 있는 작가라서 가격이 저렴할 때 사 두려는 생각으로 구입했다.

 

 

나쓰메 소세키는 <도련님>이란 소설을 읽고 좋아하게 된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사양>이란 소설을 읽고 좋아하게 된 작가.

 

 

여름이 가기 전에 읽을 수 있으려나. 할 일은 많고 시간은 후딱 간다.

 

 

 

 

 

 

8. 이런 책이 있구나. 신문을 보니 이런 신간이 나왔다. 이나미 저, <행복한 부모가 세상을 바꾼다>. 이 책에 따르면 부모를 이렇게 나눌 수 있다고 하네. 착취형 부모와 매니저형 부모, 도덕주의 부모와 방임주의 부모, 일중독 부모와 게으른 부모.

 

 

 

 

 

 

 

 

 

 

 

 

 

 

 

 

 

 

나는 어디에 속하는지 생각해 보니 방임주의 부모일 것 같다.

 

 

‘방임주의’ 의 뜻 : 돌보거나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태도. 

 

 

내가 이 정도는 아니지만 방임주의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큰애가 한 말 : 엄마는 방임주의자야. 난 엄마가 시켜서 공부한 게 아니라 나 스스로 공부한 거야.

 

 

작은애가 한 말 : 엄마, 나한테 관심 좀 가져 봐.

 

 

하하하~~~.

 

 

이것에 대한 반론.

 

 

남편이 하는 말 : 애들한테 하는 것의 반만이라도 나한테 해 봐.

 

 

남편이 생각하기엔 내가 애들한테 무척 잘해 준다는 말이겠다. 그러니 내가 방임주의 부모는 아닐 것 같네.

 

 

“우리 가족 여러분! 저는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다만 저는 저 자신에게 가장 관심이 많습니다요. 제일 궁금한 건 저의 미래입니다.”

 

 

 

 

 

 

9. 이 책을 사고 싶다.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영원의 철학> : 시대를 초월한 영성의 고전. 동서고금 420여개의 보석 같은 인용문을 통해 ‘영원의 철학’을 다채롭게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1945년 출간 이후 끊임없이 언급되고 재인용되었으며, 21세기에도 그 깊이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 올더스 헉슬리의 방대한 독서량과 탁월한 안목은 27개 주제 속에 배치한 멋진 인용문들을 통해 절묘하게 드러나며, 해설에서 묻어나는 사유와 체험의 깊이는 《멋진 신세계》의 천재 작가로만 알고 있던 독자들에게 새로운 지적 자극과 충격을 안겨준다. 인용문만 따로 골라 읽어도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로 흥미로운 인문학적 보고이자 탁월한 종교·명상서이기도 하다. - (알라딘, 책소개)에서.

 

 

 

 

 

인용문만 따로 골라 읽어도 좋다니. 동서고금 420여개의 인용문이 들어 있다니. 게다가 저자가 <멋진 신세계>의 저자라니.

 

 

이 책을 꼭 구입해서 정독하고 말겠다.

 

 

 

 

 

 

10. 이런 책도 나왔구나. 알랭 드 보통 저, <뉴스의 시대> 그리고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뉴스의 시대> : 정치 뉴스는 왜 그리 재미없게 느껴지고, 경제 뉴스는 왜 그렇게 딱딱하게만 느껴지는지, 왜 우리는 셀러브리티의 연애 소식에 그토록 집착하는지,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격변은 어쩌면 그렇게 ‘남의 일’처럼만 느껴지는지, 끔찍한 재난 뉴스가 역설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꼼꼼하게 따져 묻는다. - (알라딘, 책소개)에서.

 

 

 

 

 

알랭 드 보통의 책은 그만 읽어야 할까, 또 읽어야 할까? 연애와 사랑 그리고 인간에 대해서 내가 많이 배운 작가인데 ‘뉴스’에 대해선 어떤 가르침을 줄까 기대된다.

 

 

밀란 쿤데라의 책은? 이 책은 152쪽의 장편소설이라고 하니 구미가 당기네.

 

 

(여름을 덜 지루하게 보내는 방법 : 시원한 바다에 빠지듯 책에 빠져 살기. 책에 빠져 살다 보면 어느새 가을이 와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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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8-04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의 책이야기는 오늘도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고종석부터 밀란 쿤데라까지....
무의미의 축제는 장바구니에 넣었어요. 뉴스의 시대는 좀 딱딱할듯해요.
저도 가끔 드는 생각인데 나 자신에게 넘 관심이 많은게 아닌가, 에고가 넘 강한거 같기도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적당한 매니저형인듯도 하고 나중엔 착취형으로 바뀔수도 있어요. ㅎㅎ 나의 미래도 궁금합니다^^

청주엔 주룩주룩 비가 내립니다.
이번 한주도 행복하시길요^^

페크pek0501 2014-08-06 09:52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어 미안합니다. 바쁜 일이 있었답니다.

님도 자신에게 관심 많다니 우리는 동지군요.
저는 제가 학교에서 일하게 될 줄 몰랐고 이렇게 블로그에 글 쓰며 살 줄도 몰랐답니다. (제 글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며 살 줄 몰랐어요. )그러니 제가 60세쯤 넘으면 그땐 무엇을 하며 살지 궁금해요.

혹시... 논술 책 - 초등 고학년을 위한 글쓰기 책 - 을 저술해서 그 책을 교재 삼아 문화센터의 강사를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럴 능력이 없으니 가능성은 적지만요.ㅋ)
퇴직한 교사, 교수들도 할 수 있는 게 문화센터 강사예요. 나이 제한이 따로 없거든요. 그래서 학교 경력을 쌓아 둬서 그런 걸 해야겠단 생각이 스쳤어요.

아니면 손자 소녀 봐 주는 재미로 살고 있을까요?

지난 달에 제의를 받아서 어느 논술학원에 나갈 뻔했어요. 토요일만 근무라고 해서요. 아침 아홉시 반부터 밤 아홉시 반까지 중학생 몇 팀을 가르치는 건데 중간에 빈 시간도 있고 보수가 꽤 괜찮더라고요. 만약 나가기로 했다면 제 인생의 지도가 약간 달라질 뻔했어요. 자신이 없어서 거절했지만요...

우리 미래를 잘 대비합시다. (님의 미래는 탄탄대로인 듯하지만요... )

아. 지금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요. 내일은 말복, 입추예요.

마지막 여름 시간을 잘 지내자고요... ^^

노이에자이트 2014-08-11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종석 씨가 말하는 문법학자란 아마 언어민족주의자, 즉 국어순화론자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그런데 고 씨의 말과는 달리 이런 사람들이 앞장서서 효과를 내는 경우도 있죠.벤또가 도시락으로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그런데 이들이 우동을 가락국수로 하자고 아무리 외쳐도 안 되더군요.요즘 제가 주목하고 있는 단어는 닭볶음탕입니다.실제 생활에서나 식당에서는 모두 닭도리탕이라고 하죠.국어순화론자들이 내세우는 닭볶음탕과 대중들이 실생활에서 쓰고 있는 단어 닭도리탕 중 그 어느 쪽이 승리할지 궁금합니다.

대중들이 어떤 경우에 국어순화론자들을 따르는지(예:도시락) 안 따르는지(예:가락국수) 그 기준이 참 애매해요.

페크pek0501 2014-08-13 11:4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노 님은 모르시는 게 없군요.ㅋ
우동은 그냥 우동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가락국수, 네 글자라 길기도 하고 이름을 바꾸면 사용할 때 불편해서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 같아요...
우동이 일본어라서 쓰지 말자는 말도 있었는데, 꼭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요.
호텔 같은 영어는 되고 우동 같은 일본어는 안 된다... 꼭 그래야 할까요?
꼭 그래야 한다고 확신이 서지 않네요.

닭볶음탕과 닭도리탕 중 어느 쪽이 승리할지 저도 궁금해지네요.
저는 닭도리탕에 한 표를 던지겠습니다. 편리함을 중요시하겠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늦여름입니다. 이 늦여름을 잘 보내시길...

2014-08-14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14 1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4-08-13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자이 오사무나 서머싯 몸은 넓게 보아 염세주의자인데, 페크 님께 그런 성향이 있는 편인가요?

페크pek0501 2014-08-14 16:54   좋아요 0 | URL
ㅋㅋ 염세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런 사람들을 보면 동족을 보는 것 같아요.
저는 평소엔 낙천적이다가 불행에 직면하면(예를 들면 어떤 병에 걸렸다거나 하면) 금방 비관적이 되어요. 겁이 많아요. 병이 나으면 다시 원기 회복해요.

통계에 따르면 암에 걸린 사람들 중 3분의 1가량만 우울증에 걸린다고 하던데, 제가 아마 그럴 거예요. 평상시엔 즐거운 인생이랍니다. 랄랄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