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세이노의 가르침>



1. 무엇의 귀신이 되어라


결국 몸값의 핵심은 무슨 일을 어느 정도로 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당신의 몸값이 비싸지도 않고 부자도 아니라면 제일 먼저 투자하여야 할 대상은 부동산도 아니고 주식도 아니다. 어떤 회사가 연구개발비나 교육비를 많이 투자하면 좋은 회사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회사가 언제나 성공한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투자를 하여 당신을 비싸게 만들어라. 그래야 몸값이 올라간다.(169쪽)


자영업자 역시 보다 많은 손님이 찾아오도록 몸값을 비싸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투자이다. 시설에 투자하거나 인테리어를 새로 하는 것이 투자가 아니라 고객을 어떻게 섬기고 서비스를 어떻게 하여야 고객을 만족시키는지를 머리를 싸매고 연구하여야 하며 직원들의 생산성과 태도를 어떻게 하여야 증대시키고 변화시키는지를 공부하여야 한다.(170쪽)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학교를 더 다니라는 말이 아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이론이다. 현실에서 필요한 것은 이론이 아니라 적용이다. 이러한 적용 능력은 결코 학벌이나 학위와 비례하지 않는다. 몸값은 이론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실무적으로 잘 알아야 올라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귀신이 되어야 하고 그다음은 지금 당장은 필요 없는 다른 일들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관리할 능력이 생긴다. 그 어떤 투자 재테크보다도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170쪽)


몸이 피곤하다고? 월급이 적어서 공부할 마음이 안 생긴다고? 해 보았자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노력이란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면서 하기 싫어하는 것을 더 많이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노력이란 싫어하는 것을 더 열심히 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더 열심히 하는 것은 노력이 아니라 취미 생활일 뿐이다. 노력하라. 기회는 모두에게 제공되지만, 그 보상은 당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차등적으로 이뤄짐을 명심하라.(170쪽) 


⇨ 글을 잘 쓰기 위해서도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공부가 필요하면 해야 한다. 글을 쓰고 싶을 때만 습작을 하는 것은 노력이 아니라 취미 생활이다. 글을 쓰기 싫을 때에도 열심히 하는 것이 노력이다. 매일 밥을 먹듯 습관처럼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쓰는 데 귀신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글쓰기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어떤 책을 읽든 글쓰기에 적용해 읽는 버릇이 생겼다. 





2. 당신 고객들과 상의해라


사람들은 영업을 하면서 구매자의 비위를 맞추는 것을 비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자기 얘기는 하지 않고 구매자의 얘기만 들으려 한다. 천만에. 당신은 구매자에게 형제자매가 되어야 한다. 당신 자신에 대한 얘기는 쏙 감추고 그게 될 법한 얘기냐?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구매자들(대부분이 그랬다)이 취미가 무엇이건 가족관계가 무엇이건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청첩장이나 부고를 받아도 안 갔었다. 눈도장 찍으러 간다는 게 솔직히 좀 치사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246쪽)


그 대신 나는 그들에게 내가 가진 고민, 문제 등등을 얘기하고 상담을 구했다. 놀라운 사실은 그들 중 상당수는 내게 밥까지 사 주었다. 애인하고 문제가 있는가? 친구들과 상의하지 말고 당신 고객들과 상의해라. 부모님하고 갈등이 있는가? 그것도 고객들에게 물어봐라. 직장 내에서 문제가 있는가? 그것도 고객들에게 물어봐라.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온갖 좋은 말들을 모아서 DM으로 발송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마라. 쓰레기통으로 다 들어가 버리니까. 그 대신 네 얘길 해라. 그게 너를 파는 방법이다.(246쪽)


⇨ 혹자는 고객 관리 차원에서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참석하여 눈도장을 찍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세이노는 청첩장이나 부고를 받아도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 대신 고객에게 자기 이야기를 한단다. 자기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고객에게 신뢰감과 친근감을 줄 수 있는 이점이 있겠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체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우월감을 느끼는 것을 좋아하므로, 구매자가 우월감을 느끼며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겠다.


돈을 벌기 위해서도 인간 심리에 대해 잘 알아야 하네. 베이컨이 말한 대로 아는 것은 힘이네.



....................

이 책의 전자책의 가격은 0원이다. 무료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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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8-30 20: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 전자책은 0원이던가요?
캬~! 세이노라는 분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매일 밥을 먹듯 써야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아요.ㅠ
저는 이번 여름 너무 더워 밤에 글을 쓰는데 그나마 몸에 붙었으면 좋겠어요.ㅎㅎ

페크pek0501 2023-08-31 21:27   좋아요 3 | URL
아, 모르셨습니까? 저는 0원인 걸 뒤늦게 알고 노트북에 옮겨 놓았죠. 그런데 이북은 읽게 되지 않더군요. 종이책이 좋더군요. 저는 매일 아침을 먹고 나면 책상 앞에 앉는 건 습관이 된 것 같습니다.
귀뚜라미 소리가 우랑차게 들리는 밤입니다.(우리 아파트 뒤가 숲이라서...그런 듯) 좋은 밤 보내십시오.^^

yamoo 2023-08-31 17: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세이노의 가르침이 모두 좋은 건 아니라는 걸 이 인용문들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노력이란 싫어하는 것을 더 열심히 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더 열심히 하는 것은 노력이 아니라 취미 생활일 뿐이다. 노력하라. 기회는 모두에게 제공되지만, 그 보상은 당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차등적으로 이뤄짐을 명심하라.(170쪽)

싫어하는 걸 안하는 게 가장 좋다고 봅니다.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노력해서 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해서 대가가 된 사람들 많이 봤습니다. 이리고 세이노의 주장에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것이 좋아하는 걸 열심히 하는 것이 왜 노력이 아니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네요. 손흥민이나 류현진은 자기가 잘하는 걸 열심히 노력해서 일류선수가 된 케이스입니다. 이 사람은 뭔가 해야하는 당위성을 전제로 노력을 정의하는 듯합니다. 한 대목이지만 이는 아주 중요한 지점이네요. 세이노 책 갖다 버려야 겠습니다..^^;;

페크pek0501 2023-08-31 21:25   좋아요 2 | URL
우하하하~~~
야무 님과 제가 거의 같은 생각을 하는 편이었는데 이번엔 님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겠는데요.ㅋㅋ
손흥민이나 류현진이 매일 연습을 하는 기간이 있었다면 그러는 동안 단 하루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없었을까요? 저는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러나 연습을 강행했을 거라고 봅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새벽에 일어나 몇 시간 동안 일정하게 글을 쓰는 걸로 유명합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단 하루도 쓰고 싶지 않은 날이 없었을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어떤 날은 몸살기가 있어 하루종일 침대에 뒹굴고 싶은 날도 있겠죠. 그래도 썼다는 거죠. 쓰고 쉬었다는 거죠. 그게 중요하죠.

좋아하는 걸 열심히 하는 건 즐기는 거죠. 그래서 노력, 으로 볼 수 없다는 저자의 말에 저는 동의합니다.
싫어하는 걸 안하는 게 가장 좋다면, 저는 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 살았을 겁니다. 저는 학창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참고 운동을 했죠. 그래서 이제는 즐기는 경지에 가게 되었죠.
좋아하는 일을 해서 성공한 이들도 분명히 싫증이 나는 날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을 뛰어넘었겠죠.

야무 님은 지금 그림에 빠져 지내시지만 분명히 그리기 싫을 때가 올 거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할 때가 온다고 봅니다.
야무 님의 의견에 제가 반론을 썼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야무 님의 의견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닙니다. 관점의 차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이 책을 싫어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욕을 하듯이 거친 표현도 있어 심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리뷰도 봤습니다. 호불호가 명확한 책 같습니다. 따라서 야무 님이 책을 버리겠다는 것을 지지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님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yamoo 2023-09-01 10:04   좋아요 2 | URL
페크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세이노의 말 자체가 모호함 감이 있네요..

세이노의 말 뉘앙스를 봤을 때 저는 좋아하는 일에 대해 싫증이 나지만 그걸 극복하고 노력한다는 의미로는 안보여요..^^;;

좋아하는 일과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일...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슬럼프가 와도 극복이 됩니다. 왜냐면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대부분의 대가들은 슬럼프를 느낄필요도 없이 너무 즐겁게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내 성향화 정 반대로 해야하는 일이 직업이라면(대붑분이 여기에 해당하겠죠) 이는 매우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왜냐면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거니까요. 돈을 벌기 위해서. 세이노는 후자를 염두해 둔 것인데...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하는 것이 왜 노력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노력의 정의가 필요한 지점이네요. 저는 노력을 자신이 무언가를 하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 방향이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플러스 요인이 되서 대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는거구요. 반대면 그 가능성은 작아지겠죠.

글쓰기도 마찬가지로 보여요.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슬펌프가 와서 그걸 극복하는 건 제가 생각하기에 즐기는 방식의 차이인거 같습니다. 슬럼프가 와도 글쓰기를 좋아하고 매진하는 사람은 즐길 수 있으니까요.

아마도 노력의 정의 여부에서 페크님과 제 견해가 갈리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걸 열심히 하는 것이 노력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을 거 같고 즐긴다는 건 따라오는 감정적 부산물인듯합니다.

저도 페크님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다른 견해를 보는 건 언제나 생각을 깨어있게 해 좋습니다!ㅎㅎ

페크pek0501 2023-09-01 15:42   좋아요 1 | URL
저 역시 야무 님 덕분에 사고 확장의 경험을 한 듯해서 좋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서곡 2023-09-01 1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9월첫날 잘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행복하세요~

페크pek0501 2023-09-01 15:45   좋아요 1 | URL
호호~~ 오늘이 9월인 겁니까? 어쩐지 밤에 귀뚜라미 소리가 요란하더라고요.
아침부터 발레, 하고 와서 점심 먹고 엉망인 부엌 정리 하고 이제 좀 쉬려 합니다.
우리에겐 빈둥거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고맙습니다. 서곡 님도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모나리자 2023-09-02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마무리 해야 하는데.. 많이 읽으셨군요~
자꾸만 읽을 책이 눈에 띄어서 관심목록에 추가하다 보니 이 책이 뒷전으로 밀렸어요.ㅎ
가물가물 해지기 전에 마쳐야겠어요.
평온한 주말 보내세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3-09-03 16:12   좋아요 0 | URL
모나리자 님이 더 많이 읽으셨어요.ㅋㅋ
저도 읽고 있는 책이 있다 보니 세이노 책이 뒷전으로 밀렸다가 읽었죠.
모나리자 님도 좋은 휴일을 보내십시오. 고맙습니다.^^

얄라알라 2023-09-05 0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국이 여름 꽃 아니었나? 갸우뚱 하면서, 아름다운 사진에 시선을 뺴았겼습니다 ㅎ

페크pek0501 2023-09-07 09:47   좋아요 1 | URL
여름 꽃이겠지요. 저 사진을 찍을 때가 올해 7월 아니면 8월이에요. 참 예쁘죠?
4주가 너무 빨리 돌아와요. 칼럼 마감이 일주일 남아 마음이 바쁘답니다.
지금도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데 한낮의 더위는 가실 줄을 모르네요. 잘 지내세요. 댓글 고맙습니다.^^

얄라알라 2023-09-12 15:54   좋아요 1 | URL
마감 있는 삶을 살아보고 싶습니다. 프로페셔널의 압박감! 멋지세요!

페크pek0501 2023-09-15 13:50   좋아요 1 | URL
얄라알라 님이 마감 있는 삶, 이라고 하시니 그럴 듯하네요.
그런데 제가 마감을 즐기는 경지에 가 있는 프로페셔널이어야 말이죠.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네요.ㅋㅋ
응원으로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희선 2023-09-12 0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월이 오고 구월도 삼분의 일이 넘게 갔습니다 낮엔 좀 덥지만 아침과 밤엔 시원한 바람이 불기도 하네요 이번주가 지나면 가을 날씨가 오겠지요 자신이 잘 하고 싶은 건 공부하고 애써야 잘 하겠지요 뭐든 애쓰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건 없겠습니다

페크 님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페크pek0501 2023-09-15 13:52   좋아요 1 | URL
9월 중순입니다. 시간이 어찌나 빨리 가는지 모르겠어요. 곧 가을일 테고 곧 겨울일 것 같습니다.
애써야 얻을 수 있는 것 맞아요. 아무리 재능을 타고났어도 노력이 없다면 그 재능은 쓸모없지요.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서니데이 2023-09-13 1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노력하는 것을 많이 강조하는 책도 많았는데, 요즘엔 노력하지 말라는 책도 있어서, 조금 다르긴 하지만, 본질적인 부분은 같을지도 모르겠어요. 하기 싫은 일들은 잘 되지 않고, 잘 하기도 어렵더라구요.
서재 배경이미지가 달라졌는데, 밝고 좋은 느낌이 들어요.
페크님 오늘은 비가 와서 조금 차가운 날씨입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3-09-15 13:56   좋아요 1 | URL
노력하라는 자기개발서 책도 있고, 그냥 있는 그대로를 즐기며 느긋하게 살아라, 하는 메시지를 주는 책도 있지요. 본인이 선택할 일인 것 같아요. 본인이 마음 끌리는 대로 살아야겠지요.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저는 건강을 생각해서 적당히 노력하고 적당히 즐기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미셸 드 몽테뉴, <에세 1>


21장 상상의 힘에 관하여(189~206쪽)에서 발췌.



더러 공포에 질려 사형 집행인이 손댈 겨를도 없이 최후를 맞는 이들도 있다. 사실은 사면장을 읽어 주기 위해 묶인 몸을 풀어 준 것인데 오로지 상상만으로 지레 사형대 위에서 뻣뻣하게 굳어 죽은 사람도 있다. 우리는 상상력이 흔드는 대로 땀을 뻘뻘 흘리기도 하고 덜덜 떨기도 하며, 얼굴이 창백해지기도 하고 붉어지기도 한다.(190쪽)


⇨ 죽음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공포에 질려 죽은 사람이 있다니이는 상상의 힘이 세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우리도 모르게 떠오른 얼굴 표정 때문에 숨기고 있던 생각이 훤히 드러나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속마음을 들킨 일이 얼마나 여러 번인가? 그것들은 각기 저 나름의 정념을 가지고 있어, 이 정념이 우리 허락 없이도 그 기관들을 때로는 깨우고 때로는 잠재우는 것이다.(197~198쪽)



한 여인은 빵을 먹다가 핀을 삼켰다고 생각하자 목에 견딜 수 없는 통증을 느끼는 듯 괴로워하며 소리를 질렀다. 목에 핀이 걸려 있는 것이 느껴진다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보기에는 부어오르지 않고 달라진 곳도 없었다. 어떤 총명한 사람이 목으로 넘어가던 빵 조각에 잠깐 찔린 것인데 혼자만의 상상으로 그리 생각하는 것일 뿐이라고 판단하고, 여인에게 목 안의 것을 토하게 한 뒤 그 토사물 속에 구부러진 핀을 하나 슬쩍 던져두었다. 핀을 토했다고 생각한 여인은 금세 통증이 사라졌다.(201쪽)


⇨ ‘플라시보 효과’라는 게 있다. 플라세보를 썼을 때 환자가 진짜 약으로 믿어 좋은 반응이 나타나는 일을 말한다. 


‘플라세보’는 실제로는 생리 작용이 없는 물질로 만든 약으로, 환자를 일시적으로 안심시키기 위해 투여하기도 한다. 



내가 아는 이야기로, 자기 집에서 사람들에게 식사 대접을 한 어떤 귀족이 그로부터 사나흘 뒤 장난삼아 떠들기를, (음식 안에 그런 것이 전혀 없었는데도) 자기가 대접한 것이 고양이 고기로 만든 파이였다고 했다. 식사를 같이 했던 한 처녀가 이 이야기를 듣고 너무 끔찍한 생각이 든 나머지 심한 위경련과 고열에 시달렸는데 그녀를 살려 낼 수가 없었다.(201쪽)


⇨ 이런 일은 얼마든지 믿을 수 있는 이야기다. 상상력의 힘은 신비롭다.  

 


매사냥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느 매사냥꾼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는 하늘에서 맴돌고 있는 솔개를 꼼짝 않고 바라봄으로써 오직 시선의 힘만으로 새가 아래로 내려오게 할 수 있다며 내기를 걸었다는 것이다. 사람들 말에 따르면, 과연 그렇게 해내더라고 했다. 내가 인용하는 이야기들의 진위는 그것을 전하는 사람들의 성실성에 맡겨 둔다.(203쪽)



얼마 전 우리 집에서 사람들이 목격할 일인데, 고양이 한 마리가 나무 위에 앉은 새를 훔쳐보다 둘이서 한동안 시선을 고정한 채 서로를 빤히 바라보고 있더니, 자기 상상에 취해 버렸는지 아니면 고양이가 지닌 어떤 끌어당기는 힘에 이끌린 것인지, 새가 마치 죽은 듯 고양이 발 앞에 툭 떨어져 내렸다.(203쪽)


⇨ 고양이가 새를 잡아먹기 위해 그런 모양이다. 이 이야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에서도 읽은 적이 있다. 또 나의 친정어머니가 목격한 일도 있다. 고양이가 전깃줄에 앉은 새를 쳐다보니 새가 도망가지 못하고 꼼짝하지 않은 채 앉아 있더라는 것이다. 새가 가엾어 어머니가 고양이를 물러가게 하니 그제서야 새가 날아가더라는 것이다. 아마도 고양이가 새를 노려보니 공포를 느낀 새가 몸이 얼어붙은 게 아닐까 싶다. 사람이 혼자 있는 집에 날카로운 칼을 든 강도가 들어오면 겁에 질려 사람의 몸이 얼어붙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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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8-26 17: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마 그 고양이는 블루투스나 무선 기능을 활용한 건 아닐까요.
아니면 와이파이라거나 모바일 데이터로 문자나 sns로 의사전달을 했을지도요.^^
페크님, 날씨가 많이 더운 주말이예요.
시원하고 좋은 8월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3-08-26 22:21   좋아요 2 | URL
ㅋㅋ글쎄 모르겠어요. 확실한 건 고양이가 새를 노려보면 새가 기절하는지 굴러 떨어져 고양이의 먹잇감이 된다는 사실이에요. 그냥 날아가면 될 것인데 말이죠. 참 신기하죠?
오늘 저녁에 나갔는데 확실히 덜 더워요. 밤마다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고요. 머지않아 가을이 올 듯합니다.
서니데이 님, 남은 8월 잘 지내세요.^^


stella.K 2023-08-27 19: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떤 사람이 냉동차에 갇혔다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그 차는 냉동 스위치는 켜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은 이제 얼어 죽을 거라고 지레겁을 먹었다고 하는데
인간의 상상이 놀랍다 싶더군요.
그걸 좀 더 긍정적인데 사용하면 좋을텐데 인간은 부정적인데
익숙하게 반응한다고 하더군요.

서재 지붕에 걸친 그림 좋네요. 사진 맞죠? ㅋ

페크pek0501 2023-08-28 11:56   좋아요 2 | URL
냉동차 이야기, 그럴 듯하네요. 밤에 숲에서 흰 고무봉지가 날아가는 걸 보고 소복 입은 귀신이 날아가는 줄 알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경우도 있어요. 봉지 하나에도 큰 두려움을 느끼는 게 인간인 거죠.
대체로 인간은 기쁨은 잠시, 불만은 오래 품잖아요.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끌리는 모양이에요.
사진은 남이섬에 가족이 놀러갔을 때 찍은 사진인데 제가 노트북에서 편집(수정)을 했어요.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고 그림처럼 보이려고 부옇게 보이게 만들었어요. 두 나무가 주인공이고 저수지 물은 배경이에요. 수영장 사진이 이젠 추워 보일 것 같아서 바꿨어요, 새벽엔 이불을 끌어당길 만큼 서늘해졌어요. 굿 데이~~^^

모나리자 2023-09-02 11: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엄청난 두께의 책이 세권이나 되는 시리즈군요!
블로그에서 많이 보았는데 많이 읽으셨네요. 고양이와 새 이야기를 보니 동물이나 사람이나 두려움이나 기쁨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기하네요.

시원해져서 너무 좋아요. 살 맛 나네요.ㅎㅎ
9월에도 글쓰기 화이팅이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3-09-03 16:10   좋아요 1 | URL
세 권 다 구매했어요. 두꺼운 벽돌 책의 든든함을 좋아합니다.ㅋㅋ
다른 책 두 권 정도 완독하면서 세이노와 에세를 조금씩 읽을 계획이에요.
저도 고양이와 새 이야기를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서 처음 보고 신기했어요. 그 고양이만 특출해서 그런 줄 알았더니 몽테뉴의 책에도 그 얘기가 있네요.
오늘 아버지 납골당에 다녀왔는데 한여름 같았어요. 그래도 집에 오면 견딜 만한 더위이니 여름이 다 간 듯합니다. 모나리자 님도 글쓰기 파이팅, 입니다.^^
 




'자네가 말하는 그 착한 일들을 실천하는 이유도, 알고 보면 쾌락 때문이야.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에게 이롭기 때문이지. (중략) 자네가 거지에게 동냥을 하면 그건 자네 자신의 쾌락을 위한 거야. 내가 위스키 소다를 또 한 잔 마시는 게 나 자신의 쾌락을 위한 것이나 같아'.- 서머싯 몸, '인간의 굴레에서' 중



소설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다가 이 글을 만났다. 주인공 필립에게 시인 크론쇼가 한 말이다. 필립이 쾌락이라는 표현에 반감을 나타내자 크론쇼는 '행복'이라 하지 않고 '쾌락'이란 말을 사용하겠다며 그 이유는 쾌락이 사람의 목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쾌락을 최고선으로 여겼던 철학자 에피쿠로스를 상기시킨다.



우리 인간이 착한 일들을 실천하는 이유가 쾌락 때문이고, 그것이 자신에게 이롭기 때문이라는 말에 나는 동의한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던가. 악행은 물론이고 선행조차도 쾌락이라는 이로움 때문에 한다. 쾌락을 즐거움이나 기쁨이나 또는 흐뭇함으로 바꿔 말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지인에게 생일 선물을 주었다면 그것이 즐거워서다.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서다. 구걸하는 거지에게 돈을 주었다면, 그렇게 함으로써 본인의 기분이 좋아져서다. 불우이웃을 위해 기부금을 냈다면, 그렇게 함으로써 본인의 기분이 좋아져서다.



이번엔 자원봉사자들이 홍수로 침수된 지역에서 피해 복구를 도우며 고생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들에겐 어떤 이로움이 있을까? 일례로 흐뭇함이라는 이로움이 있을 수 있다. 자원봉사자들을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을 듯싶다. 하나는 힘들지만 봉사 활동을 하면서 그 자체로 흐뭇함을 느끼는 부류다. 또 하나는 힘들지만 봉사 활동이 끝난 뒤에 흐뭇함을 느끼는 부류다. 마치 집안 청소를 마친 후 흐뭇함을 느끼듯이 말이다. 혹자는 자신이 하고 싶어서 봉사를 하는 것이니,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이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남을 이롭게 했으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남을 이롭게 하는 일에 쾌락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기에 가능한 것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세상사이다. 누구든 앞으로 자신이나 가족이 암 선고를 받거나 교통사고가 나서 하루아침에 불행의 나락에 빠질지 모른다. 그런 힘든 상황을 상상해 보면,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자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위안이 되리라. 만약 그런 자들이 없다면 살벌한 세상에서 살아야 하리라. 우리가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가까운 친구를 만날 때 밥 사주는 일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친구에게조차 선심을 쓸 줄 모른다면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악행을 하든 선행을 하든 자기를 위한 것이니 이기심의 발로인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선심을 쓰는 것도 이기심의 발로다. 선심을 쓰면 따르는 사람이 많아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높은 반면, 선심을 쓸 줄 모르고 인색하면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여 불행하게 살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인간관계에서는 손해 보는 것이 이익으로 돌아오고 이익을 보는 것이 손해로 돌아온다. 그런데 인색하여 자기가 불행하게 살도록 만드는 것이 이기심의 발로라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이익일 테니.



흥미롭게도 긍정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타적 행위는 행복 지수를 높여 준다고 한다. 가령 기부를 비롯해 양보, 배려, 친절, 봉사, 희생 등의 이타적 행위가 남을 이롭게 할 뿐 아니라 자기에게도 이로운 셈이다. 그러므로 이타심을 갖는 게 이롭겠다. 선행을 하는 게 이롭겠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도 될 듯하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남을 해롭게 하지 않고 선행을 베풀려고 노력할 거라고'.





.......................................

경인일보의 오피니언 지면에 실린 글입니다. 

아래의 ‘바로 가기’ 링크를 한 번씩 클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문 ⇨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30817010003431 






(이 글과 관련한 책)
















서머싯 몸, <인간의 굴레에서 1>, 354쪽에서 발췌하여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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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8-18 09: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굴레에서‘에서도 읽어야 하는데,
매번 책이 쌓여 있어요.

고양이라디오 2023-08-18 13:00   좋아요 3 | URL
저도 <인간의 굴레에서> 읽어야 하는데ㅎㅎ

페크pek0501 2023-08-18 14:32   좋아요 2 | URL
서머싯 몸의 광팬으로서 페넬로페 님께 한 권만 추천하라면 인간의 굴레에서1, 입니다.
줄거리도 재밌지만 사색적인 문장이 많아 밑줄을 많이 긋게 하는 소설이에요.
간단히 읽으시려면 인생의 베일, 이 좋습니다.^^

페크pek0501 2023-08-18 14:34   좋아요 1 | URL
고양이라디오 님께도 서머싯 몸의 작품을 추천합니다.
위의 태그 서머싯 몸,을 클릭하시면 제가 올린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저에겐 재독하기 좋은 책이랍니다.

stella.K 2023-08-18 2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은 언니 집 마당인가요? ㅋ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 돕고 사는 건 진리인 것 같습니다.
덕을 쌓으면 자손만대가 복을 받는다는 말도 그렇구요.^^

페크pek0501 2023-08-19 14:24   좋아요 2 | URL
저는 아파트에 살아요.ㅋ 올해 제주도에 갔을 때 묵었던 펜션 뒷마당이에요. 예뻐서 사진으로 남겼어요.
자업자득. 씨 뿌린 대로 거두어요. 이만큼 살아보니 맞는 말 같더라고요.^^

감은빛 2023-08-18 20: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편으로 어떤 선행을 계속 함으로써 그 선한 이미지를 노리는 경우도 있겠지요.
정치인들이 일부러 사진 찍으러 다니는 그런 짓들이 해당되겠죠.
그런 경우에 그걸 선행을 볼 수 있을까?
조금 헷갈리긴 하는데, 남을 도운 것이 맞다면 선행이라 볼 수 있겠지요.

제가 20년 넘게 환경운동을 계속 하는 이유도 제 자신의 쾌락 때문이예요.
저는 다른 일을 할 때보다 이 일을 하는 것이 좋아서 계속 하고 있어요.
중간에 출판사나 학원 등에서 일해봤는데, 돈은 좀 더 잘 벌어도 별로 재미가 없더라구요.
그리고 그쪽 분야는 저 말고도 잘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쪽에서는 제가 나름 좀 잘 하니까 인정을 받기도 쉽구요. ㅎㅎㅎㅎ

페크pek0501 2023-08-19 14:33   좋아요 0 | URL
정치인의 보여 주기식 행보, 볼 때마다 지칩니다. 어쩌면 세월이 흘러도 그렇게 한결같은지..ㅋㅋ
그래도 안 그런 것보단 낫다고 볼 순 있겠지요. 보여 주기 위해 불우이웃을 위한 기부금이나 황창 냈으면 좋겠어요.
환경운동가로서 느끼는 점들이 보통 사람들보다 많은 듯요. 공부도 많이 될 것 같습니다.
문제는 돈, 보다도 의미 찾기, 겠지요. 인간은 종이 접는 것과 같은 단순한 일은 연봉이 많아도 할 수 없다고 하네요. 일단 의욕이 안 생기겠지요. 제가 글을 쓰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여겨서죠. 돈을 바라고 한다면 예전에 했던 논술 강사로 일하는 게 낫지요. 특히 요즘 독서 취미가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독서 또한 글쓰기로 얻은 좋은 즐거움이에요.
인정 받으려는 욕구가 개인이나 세상을 발전하게 만들죠. 그 욕구가 없다면 아마 지금의 세상 모습이 아닐 거예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3-08-18 22: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도로에서 가까운 대문이 있는 집인가요. 마당에 초록빛이 있어서 그런지 집이 참 예쁩니다.
페크님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시원한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3-08-19 14:34   좋아요 2 | URL
맞아요, 그래서 방에서 창문을 열면 차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한적한 마을이라 맘에 들었어요.
서니데이 님도 몸 튼튼, 마음 튼튼, 시원한 주말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희선 2023-08-18 2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를 돕는 일이 자기한테도 좋은 영향을 주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좋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요새 무서운 일이 일어나는 걸 보니... 남한테 나쁘게 하면 그게 자신한테 돌아오기도 할 텐데... 바로 앞만 보지 말고 멀리 보기를 바랍니다 멀리 봐야 하는 것도 있고 바로 앞을 봐야 하는 것도 있지만...


희선

페크pek0501 2023-08-19 14:52   좋아요 1 | URL
많은 연구 결과가 남을 돕는 사람들이 행복하다는군요. 오히려 자기 이익만을 챙기며 사는 이들은 행복하지 않대요. 멀리 봐야 할 것은 멀리 봐야 하죠. 이것이 참 중요해요. 당장의 이익을 쫓는다는 건 실제로 이익으로 연결되지 않아 바람직하지 않지요. 좋은 주말 보내십시오. 고맙습니다.^^

세실 2023-08-21 0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늘 느끼는 거지만 페크님 글은 생각거리를 줍니다.
책 한 구절로도 이렇게 풍성한 이야기가 되는군요. 좋아요!!
착한 일을 하는 이유가 쾌락과도 연결되는군요. 쾌락은 다소 부정적인 느낌도 있었는데요^^

최근에 본 유튜브에서 자존감 키우는 방법 세가지가 있는데 두가지는,
첫째. 물건을 사고 나올때 ‘감사합니다‘ 인사 꼭 하기.
둘째. 길이나 주변에 휴지 줍기.
셋째는 생각나지 않아요. ㅎㅎ

편안한 한주 되세요!!

2023-08-21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나리자 2023-08-21 2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 못 읽은 책입니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누군가를 도와주고 배려하는 일은 나 자신을 기쁘게 하고 상대방을 기쁘게 하지요.
작은 것이라도 베풀려고 노력하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모아지면 따뜻한 사회가 되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칼럼 쓰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아직 더위가 남아있어요. 건강 잘 챙기시고 남은 8월도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3-08-22 11:46   좋아요 1 | URL
인간의 굴레에서, 는 도서 추천 리스트에 넣을 만하답니다. 두 권을 합해 천 쪽이 넘지만 밑줄 그을 문장이 많아서 지루한 줄 몰랐어요. 모나리자 님도 읽으면 좋아하실 듯합니다.
베푼다는 게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에요. 우선 베풀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갖는 게 중요할 듯.
칼럼 한 편 보낼 때마다 숙제 하나 끝낸 기분이 들어요.ㅋㅋ
저는 아버지 제사가 모레라서 마음이 바쁘네요. 오늘부터 장을 보려 합니다. 한꺼번에 장을 보면 꼭 못 산 것이 있어서 세 번쯤은 장을 봐야 하는 것 같아요. 모나리자 님도 얼마 남지 않은 여름을 즐기시며 보내시길 바랍니다.^^
 















오찬호, <지금 여기, 무탈한가요?>


이 책의 부제처럼 '괜찮아 보이지만 괜찮지 않은 사회 이야기'다. 



영미는 입을 다물었다. 고기를 먹는 자는 동물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황당한 분위기를 깰 자신이 없었다. 결국 억지로 수학여행을 갔다. 눈으로 직접 본 동물들의 모습은 끔찍했다. 돌고래는 일반적인 수영장 크기의 작은 공간을 힘겹게 오가며 조련사의 신호에 맞춰 뛰어올랐고, 사람들은 손뼉 치며 환호를 보냈다. 체험 활동은 잔인했다. 줄을 서서 수심 1미터 정도의 물 안으로 들어갔더니, 그 앞에 돌고래가 배를 보이며 누워 있었다. 사람들이 배를 만져 주자 돌고래는 강아지 울음소리를 냈다. 분명 괴로워하는 소리였는데 조련사는 소통하는 중이라 했다. 수십여 명의 손길을 참아 내는 돌고래에게 작은 물고기가 보상으로 주어졌다. 오로지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들은 자연에서 하지 않는 행동을 해야만 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행사가 ‘인간과 동물이 교감하는 생태 설명회’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코끼리 서커스도 경악스러웠다. 거대한 짐승이 한 발을 반복해서 들며 바나나를 얻어먹었다. 심지어 코로 농구를 했다. 이를 자연스럽게 익히기까지 ‘조련’이라는 이름으로 동물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 가해졌을지 불 보듯 뻔했다. ‘새들의 낙원’이라는 현수막이 걸린 조류 체험장은 어땠을까? 묶여 있는 새들에게 자유 따위는 없었다. 안전을 위한 조치를 했다는데, 어이없는 건 태어날 때부터 이 상태였기 때문에 별문제가 안 된다는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사람들의 구경할 욕심으로 동물이 본성마저 잃고 있으니 안심이라도 해야 할까?(79~80쪽)


동물의 서식지를 지키고 동물을 보호하는 게 인류의 당면 과제라면, 동물을 관람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기는 고정관념을 깨지 않고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동물을 직접 눈으로 관람하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돌고래 배를 만지지 않는다고 해서, 또 코끼리의 재롱을 보지 않는다고 해서 수학여행이 엉망이 되는 것도 아니다. 동물원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지만, 막상 상상해 보면 별문제가 없다. 그저 살아생전 기린을 눈앞에서 못 보고, 사자가 잠만 자는 광경을 직접 확인하지 못하는 정도다. 그런 걸 직접 보는 게 인간의 존엄한 권리는 아니지 않은가.(85쪽)


⇨ 동물이 우리에 갇혀 있는 동물원에 대해서도 우리가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런 동물원을 보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낯설게 보기’가 필요한 이유다.

 

 동물에 대해 알고 싶다면 ‘동물의 왕국’이란 티브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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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8-14 14: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런 책도 좀 때때로 읽어주고요. ㅋ
언니께서 이리 쓰시니 갑자기 동물의 왕국이 보고싶어 지네요. 그거 볼 때마다 대자연의 신비도 놀랍지만 어떻게 매번 이걸 찍을 수 있을까 놀랄 때가 많죠. 저 초등학교 시절에 보기 시작해서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으니. 최근엔 많이 못봤네요.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겠죠?

페크pek0501 2023-08-14 18:38   좋아요 2 | URL
동물의 왕국, 아직도 방송하고 있어요. 카메라를 설치해 놓기 때문에 동물의 비밀을 많이 알 수 있죠.
이 책을 반 이상 읽었는데 흥미로운 책이에요. 우리가 알고는 있으되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짚어 주는 책 같아요. 사회학자들의 책이 대체로 재밌더라고요.^^

미미 2023-08-14 17: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뉴스에서 20살 된 사자가 우리에서 탈출해 사살된 걸 봤어요. 너무 말랐던데... 관리가 안되는 동물원이었나 봐요.


페크pek0501 2023-08-14 18:41   좋아요 2 | URL
탈출해서 수색하다가 그리 되었지요. 안 됐어요.
관리가 잘 안 되는 동물원이 있어요. 먹이가 부족해 마른 동물을 뉴스에서 보여 주기도 했죠.^^

감은빛 2023-08-14 18: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잔인하죠! 정말로.
인간도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이 지구에 잠시 살다가는 손님임을 깨달아야 할텐데요.
무슨 권리로 동물들을 가두고, 학대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네요.

페크pek0501 2023-08-14 18:43   좋아요 1 | URL
그래서 저는 요즘, 인간은 만물의 영장, 이라는 말이 없어져야 할 것 같단 생각을 했어요.
그런 생각 때문에 인간이 오만해져서 이 세상을 다 지배하려고 하잖아요. 개선해야 할 게 많은 것 같습니다.^^

바람돌이 2023-08-14 2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애들 어릴 때 절대 데려가지 않은 곳이 바로 저 돌고래 쇼장이나 코끼리 쇼장요. 동물학대의 현장이잖아요.

페크pek0501 2023-08-15 23:02   좋아요 1 | URL
오! 그것을 일찍 아셨군요. 저도 그랬어야 했는데...ㅋ
이 책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쉽게 읽히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책입니다.
바람돌이 님, 굿밤 되세요.^^

모나리자 2023-08-16 2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읽은 여행 안내서에선가 태국에서는 코끼리를 타거나 쇼를 하는 이벤트를 없앴다는 얘기를 접한 적 있어요.
스트레스로 죽는 코끼리도 많았다는 것 같은데.. 정말 인간의 욕망을 위해 동물들을 얼마나 괴롭히고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동물들도 행복할 권리가 있는데 말이죠.
편안한 밤 되세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3-08-17 10:22   좋아요 1 | URL
인간의 욕망 때문에 동물이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는 것, 이젠 달라져야 합니다. 동물도 고통을 느낀다고 하잖아요.
동물로 인한 즐거움 말고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얼마나 많습니까. 굳이 동물을 괴롭히면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지요.
여전히 낮엔 덥지만 새벽엔 서늘해서 이불을 덮게 되더라고요. 여름이 서서히 물러갈 것 같습니다. 잘 지내세요.^^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1>



독서가 폭염을 잊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번 여름은 <페스트>, <레 미제라블 1>, <스토너> 등 세 권의 장편 소설을 읽으면서 지냈다. <페스트>는 재독한 것인데 오래전에 읽었던 것이라 내용을 기억하지 못해 마치 처음 읽는 듯했으나,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에 읽어서인지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요즘 리뷰를 쓰고 싶은 소설은 <레 미제라블 1>과 <스토너>다. 오랜만에 리뷰를 쓰고 싶은 소설을 만난 것이 좋았다. 그런데 연재하고 있는 칼럼을 쓰는 일로 진이 빠져서 리뷰를 쓰고 나면 또 진이 빠질 것 같아 리뷰를 쓰지 않고 백자평으로 간략하게 써서 3일 전에 올렸다.(칼럼을 한 편 썼으나 맘에 들지 않아 새로 쓰고 있으니 진이 빠질 수밖에.)


책을 읽고 나면 내용을 잊어버릴 때가 많아 독서하면서 틈틈이 필사해 놓는다. 필사는 창작을 하지 않고 베끼어 쓰기만 하는 단순한 작업이어서 힘들지 않게 할 수 있어 좋다. 


오늘은 <레 미제라블 1>에서 글을 뽑아 필사해 놓은 것을 올리기로 한다.



처음에 팡틴은 하도 부끄러워서 감히 밖에도 못 나갔다.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뒤에서 돌아보며 손가락질을 하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모두들 그녀를 바라보면서도 아무도 인사하는 사람이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쌀쌀하고 신랄한 경멸은 삭풍처럼 그녀의 살을 뚫고 마음을 찔렀다. 

작은 도시들에서 불행한 여인은 모두의 조소와 호기심 아래에 벌거벗겨져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파리에서는 아무도 그대를 모르고, 그렇게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 몸을 가려 주는 옷이 된다. 오! 그녀는 얼마나 파리에 오기를 바라겠는가!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빈궁에 익숙해졌듯이 그녀는 멸시에도 썩 익숙해져야만 했다. 그녀는 점점 그것을 체념해 갔다. 두세 달 후에는 수치심을 떨어 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나다니기 시작했다. “아무러면 어때.”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쳐들고 쓴웃음을 띤 채 왔다 갔다 하면서 스스로 뻔뻔스러워졌다 싶었다.(325~326쪽)


⇨ 인간은 힘든 환경에도 적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다행이다.   



빅튀르니앵 부인은 이따금 창에서 그녀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자기 덕분에 ‘될 대로 된 그 계집’의 궁상을 알아보고는 기뻐했다. 심술꾸러기들은 시커먼 행복을 갖는다.(326쪽)


⇨ 빅튀르니앵 부인은 왜 팡틴이 불행해 보이는 모습을 보고 기뻐했을까? 빅튀르니앵 부인은 추녀이므로 시기와 질투로 미모의 팡틴이 불행한 것이 기쁠 수도 있고, 그저 남의 불행을 보면 자신의 불행이 상쇄되는 것처럼 느껴져 기쁠 수도 있겠다.



과도한 노동은 팡틴에게 피로를 주었고, 평소의 가벼운 밭은기침은 더 심해졌다. 그녀는 가끔 이웃의 마르그리트에게 말했다. “제 손이 이렇게 뜨거워요, 글쎄. 좀 만져 보세요.”

그렇지만 아침에 부러진 헌 빗으로 부드러운 명주실처럼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머리를 빗을 때면 한때의 행복한 교태도 부려 보는 것이었다.(326쪽)


⇨ 밭은기침이 심해졌다는 것은 그녀가 병자가 될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인간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위로가 되는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법이다. 팡틴에게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그것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데훗날 그 머리카락을 잘라 10프랑의 돈을 받고 팔게 된다. 



그는 잠시 미래를 생각했다. 오오, 자수를 하고 자백을 한다! 그는 버려야 할 모든 것을, 다시 취해야 할 모든 것을 생각하고 막심한 절망을 느꼈다. 그래, 이처럼 훌륭하고 깨끗하고 빛나는 생활에도, 이 만인의 존경에도, 명예에도, 자유에도 고별을 해야 한단 말인가! 이제는 들에 산책도 못 가리라. 이제는 5월의 지저귀는 새소리도 듣지 못하리라. 이제는 어린아이들에게 적선도 못 하리라! 이제는 자기를 바라보는 감사와 애정의 정다운 눈길도 느끼지 못하리라! 자기가 지은 이 집도, 이 방도, 이 작은 방도 떠나야 하리라! 이 순간 모든 것이 그에게 아름다워 보였다. 이제는 이 책들도 읽지 못하리라. 이제는 이 아담한 흰 나무 책상에서 글도 쓰지 못하리라! 그가 부리는 유일한 하녀인 그의 늙은 문지기 여자도 이제 아침에 커피를 올려다 주지 않으리라. 아아, 슬프다! 그 대신에 죄수들, 목의 쇠고리, 붉은 옷, 발의 쇠사슬, 피로, 감방, 야외용 침대. 그밖에 가지가지의 지긋지긋한 것들! 이런 나이에, 자기 같은 과거를 지내 온 사람에게! 아직 젊기라도 하면 또 몰라! 그렇지만 늙은 몸이 아무한테나 반말을 듣고, 간수한테 몸수색을 당하고, 간수의 몽둥이찜질을 받고, 양말도 없이 징 박힌 구두를 신고, 족쇄를 검사하는 간수의 쇠망치에 아침저녁으로 다리를 내밀고, 구경꾼들한테는 “저기 저 사람이 몽트뢰유쉬르메르의 시장이었던 그 유명한 장 발장이야.”라는 말을 들으면서 그들의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414~415쪽)



그런데 그는 아무리 해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의 명상 밑바닥에 있는 그 고통스러운 딜레마에 줄곧 빠져드는 것이었다. 천국에 머물면서 악마가 될 것인가! 지옥에 돌아가서 천사가 될 것인가!(415쪽)


⇨ 장 발장은 ‘샹마티외’라는 사람이 자신과 닮아 장 발장이라고 오해를 받아 억울한 누명을 쓴 일로 괴로워한다. 자기가 장 발장이라고 자수를 해야 샹마티외가 장 발장이 아님이 밝혀진다. 그러나 장 발장이 자수를 하면 그동안 마들렌 시장으로서 누렸던 모든 행복을 포기하고 과거의 감옥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 


샹마티외는 이웃 과수원의 사과나무에서 익은 사과가 달린 가지 하나를 꺾어서 가져간 것이 문제가 되어 법정에 서게 되었는데, 사실은 사과가 달린 가지 하나가 꺾여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집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샹마티외는 죄지은 것이 없다. 


전과자인 장 발장은 출옥한 후 ‘프티제르베’라는 소년의 40수짜리 은전을 가진 적이 있는데, 그 죗값을 자신이 치르든지 아니면 샹마티외가 치러야 한다. 만약 장 발장이라는 오해가 풀리지 않으면 샹마티외는 전과자에다가 사과가 달린 가지를 훔친 죄뿐만 아니라 40수짜리 은전을 훔친 죄도 뒤집어쓰게 되어 중범자로 감옥에 갇히게 된다. 


“천국에 머물면서 악마가 될 것인가! 지옥에 돌아가서 천사가 될 것인가!” 다시 말해 자수하지 않고 마들렌 시장으로서 지금의 행복한 삶을 사는 악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죄수로 돌아가 감옥 생활을 하는 선인이 될 것인가,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를 놓고 장 발장은 고민에 빠졌다. 본인만 침묵한다면 마들렌 시장이 장 발장이라고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 그는 아라스로 가고 있었는가?

그는 스코플레르의 이륜마차를 예약하면서 이미 생각했던 것을 지금도 마음속에서 되풀이하고 있었다. 즉 결과가 어찌 될지라도, 사건을 내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건 조금도 나쁠 것이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신중한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아야 한다. 잘 지켜보고 잘 살펴보지 않고서는 아무런 결정도 할 수 없다. 멀리서는 모든 것을 과장해서 생각한다. 요컨대 그 샹마티외라는 위인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본다면 나 대신 그자를 형무소로 보내도 내 양심이 아마 훨씬 덜 아플 것이다. (424쪽)


⇨ 장 발장이 샹마티외에 대한 재판이 열리는 재판소에 가려고 하면서 자기 합리화의 심리에 빠진 듯하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배심원님 여러분, 피고를 석방해 주십시오. 재판장님, 저를 포박해 주십시오. 당신이 찾고 있는 사람은 저 사람이 아니라 저입니다. 제가 장 발장입니다.”(485쪽)



이 불행한 사나이는 미소를 띠고 방청객들과 판사들 쪽으로 돌아섰는데, 그 미소를 본 사람들은 지금도 그걸 생각하면 애처로운 생각을 금하지 못한다. 그것은 승리의 미소인 동시에 절망의 미소였다.(488쪽)



“저는 더 이상 법정을 교란하고 싶지 않습니다.” 장 발장은 말을 이었다. “체포하지 않으니 저는 가겠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 용무가 있습니다. 차장 검사님은 제가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계시니, 언제고 원할 때 저를 체포하게 하실 수 있겠지요.”

그는 나가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목소리 하나 나오지 않았고, 그를 막기 위한 팔 하나 뻗쳐 나오지 않았다. 모두들 비켜섰다. 그 순간에 군중으로 하여금 한 사람 앞에서 물러나게 하고 길을 비켜 주게 하는 뭔지 알 수 없는 성스러운 것이 있었다. 그는 유유히 군중 사이를 걸어 나아갔다. 누가 문을 열었는지는 모르나, 그가 거기에 이르렀을 때 틀림없이 문은 열려 있었다.(489~490쪽)


⇨ 장 발장 덕분에 죄가 없는 샹마티외는 석방된다. 장 발장은 팡틴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체포되는 것을 미루고 법정을 떠난다. 팡틴에게 그녀의 딸 코제트를 데려다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위독한 상태에 있는 팡틴은 어린 딸 코제트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팡틴이 돈을 버느라 두 모녀는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말도 하지 않고 숨도 쉬지 않았다. 그녀는 침대 위에서 상반신을 절반쯤 일으키고 있었는데, 야윈 어깨는 내의 밖으로 드러나 있었고, 조금 전까지도 빛나던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방 저쪽 끝, 자기 앞에 있는 무슨 무서운 것을 응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은 두려움으로 휘둥그레져 있었다. 

“아니! 무슨 일이오, 팡틴?” 마들렌 씨는 외쳤다. 

그녀는 대답은 하지 않고, 보고 있는 듯한 어떤 대상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한 손으로는 그의 팔을 만지면서 다른 손으로는 뒤를 보라는 손짓을 했다. 

그는 몸을 돌렸고 자베르를 보았다.(501쪽) 


⇨ 병자인 팡틴이 자베르가 온 것을 발견하고 두려움에 떤다. 팡틴은 자베르가 자신 때문에 온 걸로 아는데 사실은 장 발장을 체포하러 온 것이다.



마들렌의 시선과 자베르의 시선이 마주쳤을 때, 자베르는 꼼짝 하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다가오지도 않았으나, 무시무시해졌다. 어떠한 인간의 감정도 기쁨처럼 무시무시해질 수는 없다.

그것은 지옥에 떨어진 자를 막 찾아낸 악마의 얼굴이었다. 

드디어 장 발장을 잡았다는 확신이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외모에 나타나게 했다.(505쪽)      




....................

흥미진진할 뿐 아니라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다.

<레 미제라블 2>를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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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23-08-06 1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더운 여름을 잊기에는 명작이 최고이군요. 디테일한 심리묘사!
책은 읽지 않았지만 뮤지컬이 아른거립니다.
앤 해서웨이의 팡틴^^

페크pek0501 2023-08-06 13:53   좋아요 0 | URL
아, 세실 님. 오늘 일욜이라 쉬는 날이겠군요.
정말 명작이 최고예요. 그래서 여름이면 더 독서에 몰두하게 되는 것 같아요.
디테일한 심리묘사와 인간의 선악 문제와 갈등, 인간의 속마음 등 배울 게 많아요.
저도 넷플릭스에서 뮤지컬 봤는데 많은 내용이 생략되어 그야말로 띄엄 띄엄 만든 뮤지컬이라 원작에 못 미치는 것 같았어요. 음악은 좋았어요. 볼 만해요.

칼럼 연재 끝나면 그때 리뷰 쓰기 위해 필사해 놓았어요. 안 그러면 내용을 잊어버려요. 이제 내 두뇌를 밎을 수 없는 나이에 이르렀다는 슬픈 이야기...ㅋㅋ

꼬마요정 2023-08-06 18: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 미제라블> 너무 좋아요!! 팡틴도 장발장도 다들 너무 안 됐어요ㅠㅠ 읽으면서 참 많이 울었는데 또 생각나네요.
뮤지컬 영화는 원작에 한참 못 미치는데, 이상하게 끝까지 보게 되더라구요. 신기했어요.
나중에 페크 님 리뷰 쓰시면 또 얼마나 좋은 글이 나올까 기대 됩니다^^

페크pek0501 2023-08-07 15:38   좋아요 2 | URL
팡틴도 장 발장도 상황이 나빠 불행해진 사람들이죠. 꼬마요정 님은 울기까지 하셨군요. 저도 슬프게 느꼈답니다.
뮤지컬은 음악이 좋아서 빠져들게 하더군요.
리뷰를 잘 쓰면 얼마나 좋겠어요... 리뷰 쓰기가 부담스러우니 안 쓰게 되네요. 맘 편히 쓰는 페이퍼가 좋아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독서괭 2023-08-06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레미제라블 다른 판본으로 1권 읽고 생각보다 재밌는데?? 했으나 번역이 별로여서 더 못 읽었네요 ㅠㅠ
칼럼 다 썼다가 다시 쓰시다니 정말 힘드시겠습니다;; 맘에 쏙 드는 걸로 다시 쓰실 수 있을 거예요^^

페크pek0501 2023-08-07 15:39   좋아요 1 | URL
맞아요, 명작 치고 재밌어요. 민음사 번역은 괜찮은 것 같아요.
일필휘지까지는 안 바라고 무난히 썼으면 좋겠는데 쉽지 않네요.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새파랑 2023-08-06 2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미제라블 이 그렇게 좋다고 하던데

장발장의 기억 때문인지 구매욕이 안생기더라구요. 왠지 읽어본거 같은 기분? ㅋ 문장들이 다 좋습니다~!!

페크pek0501 2023-08-07 15:42   좋아요 1 | URL
우리가 동화책으로 많이 접해서인지 저도 안 읽게 되더라고요. 내용은 다 대충 알잖아요. 그런데 원작을 읽고 싶더라고요. 다섯 권인 게 부담스럽지만 1권부터 시작해 봤어요. 5권 다 읽으면 뿌듯한 독서가 될 듯합니다.
저는 새파랑 님처럼 빨리 읽지는 못합니다만 꾸준히 읽어 보려 합니다. 굿 데이~~

stella.K 2023-08-06 21: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필사가 좋다고 하더군요.
특히 육필로 쓰는 게 좋다나요?
그래서 얼마 전부터 저도 필사를 하려고 했는데 또 어느 틈엔가
안하게 되더라구요.ㅠ
더위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계셨군요.
저도 이렇게 더운 날엔 주민센터 도서관에서 책 읽고 오면 좋을텐데
하다가 요즘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린다고 해서 포기했어요.
자주 졸기도 하고. 최근 1, 2년전부터 잠은 일찍 깨는데 대신 낮에 피곤해서
졸게 되더군요. ㅋ
레미제라블이 그렇게 좋은가요?
저는 영화로 보고, <애사>라는 번안소설로 읽다가 말았네요.ㅠ


페크pek0501 2023-08-07 15:46   좋아요 2 | URL
저도 필사 좋다는 말 많이 들었는데 안 하게 되잖아요. 해 보기 시작하니 시간도 많이 안 들고 할 만하더라고요.
내용 기억이 더 잘 되고요. 육필로 쓰는 게 더 좋겠지만 저는 그냥 노트북으로 써서 모아 둡니다. 이것도 좋다고 해요. 저도 코로나 때문에 외출은 꺼려지더군요. 마트와 친정과 운동하러 다니는 게 다 예요.
졸음도 건강에 좋다고 해요. 레 미제라블은 역사 철학 문학 심리학... 다 아우르는 소설 같습니다.
다섯 권 다 읽게 되면 추천할지 말지 말씀 드릴게요. 저도 도중 하차할지 몰라서요. 하하~~
굿 데이~~

모나리자 2023-08-08 1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칼럼을 쓰는 일이 공적인 글쓰기라 신경이 많이 쓰일 거예요. 사이를 두고 다시 읽어보시면서 수정을 하면 매끄럽고 만족스러운 글로 다시 태어날 겁니다. 페크님, 화이팅~!!
인용해 주신 문장들을 읽어보니 장편이지만 몰입해서 읽을 만한 작품 같아요. 영화로운 생활을 누리면서 그것을 포기하자니
정말 고민으로 들끓을 것 같습니다. 보편적인 인간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것 같아 깊은 공감을 할 수 있겠고요.
좋은 문학작품은 시대를 막론하고 독자를 부르는 것 같아요.
무더위 잘 이겨내고 계시겠지요. 오늘도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3-08-09 13:23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제 이미지도, 신문의 이미지도 생각해야 해서 형편없는 글을 보낼 수 없으니 칼럼이 신경 많이 쓰입니다.
파이팅, 고맙습니다.
딜레마에 빠진 장 발장입니다. 저도 공감하며 읽었어요.
시대를 막론하고 공유하는 데 문제가 없어 꾸준히 읽히는 고전인가 봅니다. 사람 사는 일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아 신기하기도 하고요.
모나리자 님도 무더위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내일은 말복입니다. 더위가 조금씩 사라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감은빛 2023-08-14 1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름 휴가를 집에서 책을 읽으며 보내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가,
아, 우리 집엔 에어컨이 없어서 책에 집중하기 쉽지 않겠구나 라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물론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지인들의 집들을 순례하는 것도 가능한데,
그러면 또 그 지인들과 노느라 책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 같네요.
레미제라블을 조금 읽다가 멈추고, 다시 한참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다가 멈춘 것이 몇 번째인지 모르겠네요.
읽고 싶은 책들이 집에 쌓여 있지만, 언제나 저는 이런 저런 핑계로 손을 못 대고 있네요.

페크pek0501 2023-08-14 19:04   좋아요 0 | URL
저는 선풍기만 있으면 대충 견딥니다.ㅋㅋ 여름엔 카페에서 책 보거나 공부하는 게 좋아요.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거든요.
레 미제라블2를 읽으실 땐 앞부분을 건너뛰고 91쪽부터 읽으셔도 됩니다.(민음사 책) 장 발장이 나오겠지 하면서 읽어나가는데 나오지 않고 워털루 전쟁에 대한 이야기만 길게 나옵니다. 논문 수준으로 길어요. 빅토르 위고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뭐 하나 잡으면 길게 쓰는 것.
1권에선 안 그랬어요. 이야기가 재밌어서 시간만 여유롭다면 금방 읽으실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