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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두 권 : 우리 부부는 책 취향이 달라 따로따로 책을 구입할 때가 많다. 그래서 이 부분에선 알뜰하지 못하다. 나는 문학, 철학, 심리학의 분야의 책을 좋아하는 반면, 남편은 문학, 추리, 역사의 분야의 책을 좋아한다. 간혹 공통적으로 관심 있는 책을 한 쪽이 사면 같이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 두 권의 책이 이에 해당한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은퇴한 연쇄살인범이 점점 사라져가는 기억과 사투를 벌이며 딸을 구하기 위한 마지막 살인을 계획한다.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는 잠언들, 돌발적인 유머와 위트, 마지막 결말의 반전까지, 정교하고 치밀하게 설계된 이번 소설에서 김영하는 삶과 죽음, 시간과 악에 대한 깊은 통찰을 풀어놓는다. - (알라딘, 책소개)에서.

 

 

 

 

 

내가 뽑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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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오면서 남에게 험한 욕을 한 일이 없다.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욕도 안 하니 자꾸 예수 믿느냐고 묻는다. 인간을 틀 몇 개로 재단하면서 평생을 사는 바보들이 있다. 편리하기는 하겠지만 좀 위험하다. 자신들의 그 앙상한 틀에 들어가지 않는 나 같은 인간은 가늠조차 못 할 테니까. - 김영하 저, <살인자의 기억법>, 51쪽.

....................

 

 

 

 

 

수도권 인근 도시인 화양시. 인구 29만의 이 도시에서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발발한다. 최초의 발병자는 개 번식사업을 하던 중년 남자. 신종플루에 걸렸던 이 남자는 병에 걸린 개에 물린 이후로 눈이 빨갛게 붓고 폐를 비롯한 온몸에서 피를 흘리는 증상을 보인다. 이 남자를 구하기 위해 출동한 119구조대원들을 중심으로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하고 삽시간에 응급실 의사와 간호사들까지 눈이 빨갛게 변하며 며칠 만에 돌연사 한다. 응급실의 간호사 수진과 소방대원 기준은 점차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하는데… - (알라딘, 책소개)에서.

 

 

 

 

내가 뽑은 글.

 

....................

“심심한데 김 기자 목표나 들어봅시다. 뭐요. 스타 기자가 되는 거? 국장이 되는 거?”

그녀는 룸미러에 비친 순경을 봤다. 순경은 앞 차창을 내다보고 있었다.

“살아남는 거요.”

재미있어 하는 기색이 박주환의 눈을 스쳤다.

“그런 것도 목표 축에 드나?”

‘살아남기’는 윤주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목표였다. 그 외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다. (…)

"누구한텐 당연한 일이 누구한텐 목표가 되기도 해요.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깨달은 건데, 난 후자로 태어났더라고요." - 정유정 저, <28>, 448쪽~449쪽.

....................

 

 

남편이 구입한 책 두 권이다. 동네 서점에서 샀다고 한다. 남편은 읽고 나서 내게 주었다. 남편은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일이 없어서 이제 내 책이 되었다. 이 두 권의 책은 나도 읽고 싶어 했던 것이라서 좋았다.

 

 

나 : “왜 동네 서점에서 사고 그래? 내가 알라딘 적립금 있다고 했잖아.”

남편 : “사려고 마음먹고 산 게 아니라 그냥 서점에서 책 구경하다가 산 거야.”

 

 

남편은 인터넷 서점보다 동네 서점을 이용할 때가 많은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인터넷으로 신청하고 언제 받을지 모를 책을 기다리는 것보다 동네 서점까지 조금만 걸으면 바로 책을 사서 가질 수 있는 게 편해서다. ‘알뜰하지 못함’은 남편의 단점인데, 이것을 좋게 봐 주면 ‘쪼잔하지 않음’이란 장점이 된다. (이것이 장점이 되는 이유는 내게 알뜰하게 살라고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2. 글감 : 책을 읽다가 글감을 얻는 경우가 있다. ‘책 읽기’는 내게 무언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책을 많이 읽어서 글감을 얻는 게 좋겠다. 또 누군가의 서재에서 댓글을 쓰다가 글감을 얻는 경우도 있다. ‘댓글 쓰기’는 내게 무언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댓글을 많이 써서 글감을 얻는 게 좋겠다. 남을 위해서도 댓글을 많이 쓰는 게 좋겠지. (내가 쓴 댓글 또는 답글을 그대로 페이퍼에 넣어 글을 올린 적이 있다.)

 

 

 

 

 

 

3. 읽기와 쓰기 : 책을 읽는 것과 글을 쓰는 것 중 내가 어느 것을 더 좋아하는지 생각해 봤다. 잘 몰라서 여러 번 생각해 봤다. 글 쓰는 걸 취미로 가진 사람들 대부분이 책 읽기보다 글쓰기를 더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는 글쓰기보다 책 읽기를 조금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만약 둘 중 한 가지만을 선택하라면 책 읽기를 선택할 듯하다.

 

 

하지만 만약 내가 글 쓰는 취미가 없는 사람이라면 책 읽기를 지금처럼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책 읽기가 재밌는 건 글쓰기에 대한 관심 때문일 터. 글 잘 쓰는 사람들은 무엇에 대해 어떻게 쓰나, 하는 게 궁금해서 책을 읽게 되는 것이다. 책 읽기와 글쓰기는 이렇게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니 책을 읽기 위해서도 글을 써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엉뚱한 결론인가.

 

 

 

 

 

 

4. 인용문이 많은 책 : 나는 인용문이 많은 책을 좋아한다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책은 이상하게 인용문이 많다. 책을 구입할 땐 인용문을 보고 구입하진 않는다. 오히려 책을 읽다가 인용문이 많아 놀라게 되는 경우가 많다. 명저에 특히 인용문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 중엔 인용문이 있는 글에 대해 하류로 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내 생각엔 인용을 하든 하지 않든 글의 완성도가 중요할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책이 인용문이 많은 책이다.

 

 

임어당, <생활의 발견>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5.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 : 지난 추석 연휴가 끝나자 기분 좋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명절이 지나서 속 시원했다. 이렇게 속 시원하려면 명절 음식 만들 때 꾀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이런 속 시원함을 느낄 수 없고 찜찜하기 때문이다. 이건 경험에서 터득한 것이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찜찜하고 만족감을 느낄 수 없다. 예를 들면 최선을 다하지 않고 급하게 써서 서재에 올린 글은 꼭 후회를 하게 된다. 더 검토해서 올릴 걸 그랬네, 하면서 말이다. 특히 글의 제목을 잘못 쓴 경우엔 낭패다. (아마 제목을 고치면 새로운 글로 등록이 되어서 이전의 글에 달린 댓글도 없어질 듯.)

 

 

 

 

 

 

6. 큰일 날 뻔했다 : 남편은 회사 일로 바쁘고 애들은 공부로 바쁘다. 남편은 일터로, 애들은 배움터로 가고 난 뒤에 나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에 내게 취미가 없었다면 무엇을 하고 지냈을까.

 

 

집에서 혼자서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는 것은 취미 덕분이다. 책 읽고 글 쓰는 취미가 없었다면 이 가을이란 계절에 우울할 뻔했다. 큰일 날 뻔했다. (뻥 아님. 요즘 이걸 깊이 느끼고 있음.)

 

 

나처럼 책 읽고 글 쓰는 취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시간이 모자라서 삶이 지루할 수 없다는 것을. 고독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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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3-09-27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활 반경에 동네 서점이 없어 오프라인 서점을 이용하기가 곤란하지만, 동네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는 행위는, 그것에 얻는 느낌은 제가 등산을 하는 느낌과 비슷한 것 같아요. 체험을 준다는 면에서요. (도서관을 방황하는 것으로 대리 만족하지만요.)

페크pek0501 2013-09-27 14:45   좋아요 0 | URL
발 빠르신 첫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ㅋ

사실 저도 동네 서점에서 책을 살 때가 있는데 - 90프로는 알라딘을 이용하고
10프로는 동네 서점을 이용해요. - 그 이유는 서점에서 책을 실컷 보고 사지도 않고
그냥 나오기도 미안하기도 하고, 또 책을 사기도 해야 서점이 문 닫는 일이
없을 것 같아서예요. 인터넷 서점을 많이 이용하긴 하지만 직접 책을 보고 만질 수
있는 오프라인 서점이 사라지는 건 싫잖아요. ^^



oren 2013-09-27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을 지키고, 거기에 덧붙여 '자기 고유의 뒷방'까지 가지고 있다면 무얼 더 부러워 할 필요가 있을까 싶네요. 그리고 책을 읽다가 가끔씩 '이런 문장'이다 싶은 대목을 만나서 내 글을 조금이라도 더 장식할 수 있겠다 싶은 기분이 든다면 그 또한 얼마나 기쁜 일일까 싶고요.

* * *

뒷방을 가지고

할 수만 있다면 아내·아이·재물 그리고 무엇보다도 건강을 가져야 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 행복이 거기에 매여 있게까지 집착해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에게 남이 침범하지 않는 아주 자기 고유의 것인 뒷방을 가지고, 그 속에 진실한 자유와 은둔처를 마련해 둘 일이다. 여기서 우리 자신과의 일상의 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사사로워서, 외부와의 어떠한 관련이나 교섭도 그 곳에는 미치지 못하게 할 일이다.

아내도 어린애도, 재산도, 다른 사람도, 하인도 없는 듯 그곳에서 혼자 생각하며 웃고 지내며, 그런 것들을 잃는 경우에 부딪혀도 그런 것들 없이 살더라도 아무런 별다름이 없게 할 일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들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 그것은 자기를 동무삼을 수 있다. 마음은 공격할 거리, 방어할 거리, 줄 거리와 받을 거리를 가졌다. 이러한 고독함 속에서 할 일 없이 괴롭다고 오그라들까 두려워 말자.


이런 문장

어느 날, 나는 이런 문장에 부딪혔습니다. 나는 프랑스어의 핏기 없고, 살이 붙지 않고, 속 비고, 의미 없는 글을 흥미 없이 읽어 가자니, 그것은 확실히 프랑스어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권태를 느끼며 읽어 가다가 갑자기 고매하고 풍부하며 기개가 하늘에 솟는 한 문장에 부딪쳤습니다. 만일 그 내리막이 순하고 오르막이 좀 길게 보였다면, 그것은 변명될 수 있었을 겁니다. 여기 와서는 절벽이 낭떠러지로 깎아지른 듯 첫번 여섯 글귀로 나는 내 몸이 다른 세상으로 날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거기서 나는 전에 읽은 것이 너무나 얕고 깊은 구렁텅이임을 깨닫고, 다시는 그리로 내려갈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만일 내가 이런 풍부한 약탈품을 가지고 내 글 한 장만 장식했다면, 다른 장들이 얼마나 졸렬한 것인지 너무 잘 밝혀졌을 것입니다.

- 몽테뉴,『몽테뉴 수상록』中에서

페크pek0501 2013-09-28 12:43   좋아요 0 | URL
역시 긴 댓글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자기만의 뒷방 - 자기만의 공간과 자기만의 시간- 을 가질 수 있고 건강하다면
행복할 것 같아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책을 읽다가 가끔씩 '이런 문장'이다 싶은 대목을 만나서 내 글을 조금이라도 더 장식할 수 있겠다 싶은 기분이 든다면 그 또한 얼마나 기쁜 일일까 싶고요."
- 이런 맛에 제가 책을 읽습니다. ㅋㅋ


yamoo 2013-09-27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 건강상 일을 쉬고 계신가 바요? 건강 얼른 회복하시길!

1. 그래도 부부가 공유하고 있는 문학이 있는 게 어딘데요. 가장 스펙트럼이 넓은 분야 잖아요^^ 역사와 철학의 접점인 역사철학 분야도 있구요~ 책 사실 때 복합 분야를 구매하시면 좋을 듯해요. 추리문학은 두 분다 좋아하실 듯~ㅎ

3. 읽기와 쓰기 중에서 저두 읽기를 좋아합니다. 단, 쓰는 건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려서 좀 거시기 해요. 써 놓고도 계속 고쳐야 해서요. 전 글을 너무 못쓰는 거 같아요..ㅜㅜ

4. 저는 인용문이 거의 없는 책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비트게슈타인이나 지멜의 책을 좋아하는 거 같아욤. 특히 게오르그 짐멜의 주저인 <돈의 철학>은 6500페이지가 넘는데, 단 하나의 각주가 없는 놀라운 책이더군요!
아, 근데 에리히 프롬은 학부 4학년때까지 전집을 거의 다 읽은 듯해요. 한 때 제가 가장 좋아했던 사상가였슴돠~^^

페크pek0501 2013-09-28 12:47   좋아요 0 | URL
6. 예, 맞아요. 곧 다시 일하게 된답니다.

1. 복합 분야의 구매, 좋은 말씀이네요. 추리문학은 저도 좋아하는데, 한번 읽기 시작하면 중독이 되기 때문에 자제하고 있어요. 그것보다 제게 공부가 되는 책을 읽으려고요.

3. 저도 글을 쓰고 나면 고칠 게 많아서 그 작업이 고단하고 스트레스가 생겨 글쓰기보다 책 읽기를 더 좋아하게 되나 봐요. 읽는 건 스트레스가 없잖아요.

4. 저는 님처럼 그렇게 전문적이지 못하고요, 책을 읽다 보니 마르크스, 프로이트, 에리히 프롬은 무조건 읽어야 되나 보다, 하고 읽었어요.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들이라서요. 특히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거의 밑줄이 그어져 있을 정도로 흥미로워 열광적으로 읽었어요. 제가 글 쓰면서 인용도 많이 했지요.

상세하게 쓰신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650페이지입니까, 6500페이지입니까?)ㅋ

yamoo 2013-09-28 22:53   좋아요 0 | URL
헛! 오타입니다요^^;; 앞에 6이 없어야 되요..ㅋㅋ 500페이지가 넘는다는 걸 쓴다는 게 앞에 6자를 더 쳤나봐요..ㅎㅎ

페크pek0501 2013-09-29 13:39   좋아요 0 | URL
하하하~~~ 오타 맞군요. 그런데 저는 0(영)을 하나 더 쓰셨는 줄 알았어요.
어쨌든 님이 추가댓글을 쓰셨으니 오인하시는 분들은 없겠죠.ㅋ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수이 2013-09-30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뚱한 결론-이 최고의 결론인 거 같은걸요 페크님 :)

페크pek0501 2013-10-01 12:19   좋아요 0 | URL
앤 님, 잘 지냈나요?
영양가 없는 페이퍼를 읽어 주셨네요.

엉뚱한 결론이라고 했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해 봤을 것 같아요.
책 읽기와 글쓰기의 상관 관계라고 볼 수 있죠. ㅋ



 

 

 

2013년 9월 26일 목요일 (날씨 : 맑고 햇볕이 뜨거웠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여름처럼 더웠다. 오늘은 청명한 가을 하늘을 볼 수 있어 참 좋았다. 그런데 여름이 가니 아쉬운 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차가운 물로 시원하게 샤워하는 즐거움이 없어졌다는 것. 또 하나는 아이스크림을 시원하게 먹는 즐거움이 없어졌다는 것.

 

 

여름에는 무더위를 크게 느껴서는 안 되고 여름에만 가질 수 있는 그 두 가지의 즐거움을 크게 느껴야 한다. 다시 말해 기분 나쁜 것에 집중하지 말고 기분 좋은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한 여름을 보낼 수 있다.

 

 

무엇에 집중하며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여름이 가고 나서 뒤늦게 깨닫는다.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의 요소를 찾아내어 온전히 느끼는 것도 삶의 지혜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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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3-09-27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여름은 덥지만 않으면 딱 살기 좋은 계절인데 말입니다.ㅋㅋ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 비타민D의 활성화를 위해 아침이면 거실에서 일광욕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거실에 앉자마자 햇볕이 사라진 거 있죠?
햇볕이 정말 짧아졌어요. 빨리 내년 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ㅋ

아참, 폰트가 커져서 글 읽기가 좋아요.
역시 9는 이제 못 보겠더군요.ㅠ

페크pek0501 2013-09-27 14:39   좋아요 0 | URL
여름이 얼마나 좋은 계절인지 무더위로 인해 사람들이 지쳐서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요. 옷도 얇아 빨래하기도 좋고 난방비도 들지 않고 푸른 나무들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계절인데 말이에요.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즐거움도 있고요.

저는 글자 크기가 좀 더 커져서 11로 쓰고 싶더군요. 저만 그럴 수 없어서...ㅋ
굴림체로 하면 10으로 해도 커 보여요.
저는 이것도 확대해서 본답니다.
 

 

 

1. 커피를 매일 마시다 보니 이가 노랗게 되는 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커피를 마신 직후에 꼭 물을 마셔서 씻어 내기로 했다. 입 안을 헹구는 것이다. 앞으로 모든 사람들이 이가 노란 사람을 보면 이를 닦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말고 ‘커피광이구나’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창피할 것도, 보기 싫을 것도 없지 않겠는가.

 

 

 

 

 

2. 살아 있는 게 몇 마리를 사서 곤혹스러운 적이 있다. 집에 가져왔는데 게가 죽지 않아서다. 내가 죽여야 하는데 그걸 할 수가 없었다. 한 친구에게 전화했더니 끓는 물에 넣었다가 빼란다. 게에게 미안했지만 친구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 다음엔 칫솔로 여기저기를 닦아야 하는데, 아무리 게가 죽었어도 게가 아플 것 같아서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또 그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어떻게 손질하면 게가 고통 받지 않고 깨끗이 닦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 다시는 게를 사지 않을 거야.’

 

 

 

 

 

3. 나만 좋으면 그만일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죄를 짓고 사는 존재들이라서 조심해서 살아야 할 것 같다. 예를 들면 내가 별 뜻 없이 한 말에 누군가는 상처를 받을 수 있고, 개를 산책시키기 위해 끌고 나와 개똥을 치웠는데 그걸 보고 누군가는 비위가 상할 수 있으며, 자동차를 끌고 나와 공해를 만들어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나만 좋으면 그만이다’라는 생각을 해도 되는 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경우여야 할 것 같다. 그럴 때 ‘누가 뭐라고 하든지 나만 좋으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해도 되는 것이다.

 

 

 

 

 

4.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이고,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인 글을 쓰고 싶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려운 일이다. 주관적인 글이란 필자의 개성이 있는 글을 말하고, 객관적인 글이란 독자의 공감을 얻어내는 글을 말한다. 그러니까 개성이 있으면서도 독자의 공감을 얻어내는 글이 좋은 글이 된다. 나는 글을 쓰고 나서 글에 주관성과 객관성이 있는지 검토할 때가 있는데 한 가지만 있을 때가 많다. 그러니까 부족한 글이 되고 마는 것이다.

 

 

 

 

 

5. 좋은 책이란 ‘문제 제시’와 ‘해결 방안’까지 담은 것이겠지만, 해결 방안은 없더라도 문제 제시만 해도 좋은 책으로 생각한다. 독자들이 잘 모르는 중요한 문제를 제시한 경우에 그렇다. 해결 방안은 독자들이 고민해도 되는 거니까. 또 어떤 이는 그 해결 방안을 연구하여 책으로 내기도 할 것이니까. 그러니까 ‘문제 제시’를 해서 다양한 해결 방안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책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좋다고 여긴다.

 

문학으로 말하면 저자가 세상의 문제를 찾아내어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이다. 독자로 하여금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게 작가의 임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해결 방안을 담을 경우에 그 해결 방안이 최선이 아닐 경우가 많을 것 같다. 저자 한 사람이 모든 걸 알 순 없으니까. 제일 똑똑할 순 없으니까. (그래서 문학에선 해결 방안을 쓰지 않는가 보다.) 

 

 

 

 

 

6.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동화가 좋아진다. 루이스의 말처럼 되는가 보다.

 

“언젠가 나이가 들면 다시 동화를 읽게 될 것이다.”(C. S. 루이스)

 

언제 기회 있으면 동화를 몇 권 소개하는 글을 올려야겠다.

 

 

 

 

 

7. 서재에서 나하고 댓글을 주고받는 이웃 블로거들의 서재에 가 보면 모두 나의 서재보다 방문자 수가 많다. 내가 꼴찌라는 얘기다. 그래서 글을 많이 올려서 분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가 금방 그 생각을 지워 버렸다. ‘꼴찌면 어떠냐. 무조건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생각이 잘못된 거야. 나는 내 속도대로 살면 되는 거야. 뱁새가 황새 따라가자면 가랑이가 찢어지는 법이야.’ 뭐 이런 생각을 했다.

 

‘짧고 굵게’가 아니라 건강을 챙기면서 ‘가늘고 길게’ 살자고 마음먹는다. 건강이 제일이니까.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므로.  

 

 

 

 

 

8. 거실에 있는 화초에 물을 줄 때에 물을 늦게 줘서 미안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남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겠지만 화초가 내 말을 알아듣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실험에서 음악을 들려 준 화초가 그렇지 않은 화초보다 더 잘 자라더라는 결과가 나왔는데, 그 결과를 알고부터 식물도 사람 말을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내가 화초에 물을 주던 중, 물을 흡수한 어떤 화초가 기운이 났는지 오므렸던 잎을 활짝 펼쳐서 그 움직임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잎이 물을 먹고 나서 강한 생명력을 보여 준 것만 같았다. 이럴 때 식물이 무섭다고 느껴지기도 하는데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니얼 샤모비츠 저, <식물은 알고 있다>

 

 

이 책을 찜해 놓았는데 아직 구입하지 못했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은 나처럼 식물에게 말을 건네게 될 것 같다.

 

 

 

 

 

 

 

 

 

9. 개츠비가 파티를 자주 연 까닭은 자신이 사랑했던, 보고 싶은 데이지가 파티에 참석할 거라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이것에 공감할 수 있다면 이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짝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이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절실한 사랑을 공감하지 못한다면 이 책은 재미없는 책이 될 것이다. 중요한 건 공감이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저, <위대한 개츠비>

 

 

 

 

 

 

 

 

 

 

10. 이 글에서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이 말이다.

 

“방문자 여러분! 내일부터 시작되는 추석 연휴를 잘 보내세요. 만약 스트레스가 생기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또는 수다를 떨면서 기분 전환을 하세요.”

 

나도 많이 먹어야겠다. 수다도 많이 떨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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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3-09-17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마지막 10번이 압권이란 생각이 듭니다. 또 그것이 압권이기 위해서
1번부터 9번까지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언니의 글은 주관적이면서
객관적이고, 객관적이면서 주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7번은 뭐 은근히 조장하는 게 있기도 하지요.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건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나의 욕망을 보게 만들고, 또 아닌 것처럼 부정하게 만들고.
그래서 의도적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차단하느라 부산을 떨게 만들지요.
아, 정말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건, 참...정말이지...흐~! 입니다.ㅋㅋ
언니도 추석 잘 지내십시오.^^

페크pek0501 2013-09-17 23:44   좋아요 0 | URL
7번처럼 나는 꼴찌다, 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져요. 느긋해지죠.
조장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지 모르겠다는...ㅋ
블로그... 글을 올리곤 하지만 쉬운 일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비밀이 숨겨 있는 일기장을 공개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고 말이죠.
왜 블로그를 가져서, 사서 고생을 하나 싶을 때도 있어요. ㅋ

애티커스 님도 추석 연휴 잘 보내세요. ^^

oren 2013-09-18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아있는 게' 이야기가 참 재미있네요. 저는 이틀 전에 '봄철에 잡아 얼려놓았던 게'를 먹었답니다. 마침 요맘때가 '전어'가 제철인 때라, 평소에 자주 뵙는 선배분께서 느닷없이 '가을 전어'를 맛보러 강화도로 가자고 하시더라구요. 그 분과는 '강화도 후포항'에 있는 '아산호'라는 단골집을 함께 드나든지 여러 해 되었는데, 그날따라 부부동반으로 여섯명이서 맛본 전어가 그리 구수할 수가 없더군요. '전어회 → 전어구이 → 꽃게탕' 순으로 술을 곁들여 먹었는데, 강화도의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초가을 풍경과 시원한 바닷바람까지 한데 어우러져 더욱 좋았다 싶고, 지금 되짚어보니 '게의 아픔'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ㅎㅎ

* * *

식인 풍습과 동물 해방

우리에게 식인 풍습은 아주 불쾌한 것이어서 오랫동안 인류학자들 조차도 그것이 선사 시대에 일반적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쉽게, 어떻게 사람들이 그렇게 끔찍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운동가들도 육식을 하는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 육식을 하는 사람들은 무수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 뿐 아니라 그렇게 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소를 마취도 시키지 않은 채 거세시키거나 낙인을 찍고, 낚싯바늘로 물고기의 입을 꿰뚫어 잡아 올린 다음 보트 바닥에 내동댕이쳐 헐떡거리게 하고, 바다 가재를 산 채로 삶는다. 내 요점은 채식주의를 도덕적으로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폭력과 잔인성에 대한 사고 방식을 조명해 보자는 것이다. 역사학과 민족지학에서는 마치 우리가 바다 가재를 취급하듯이 사람들이 타인을 취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행동에 대한 우리의 몰이해는 우리의 행동에 대한 동물 권리 운동가들의 몰이해와 비교될 수 있다. 『확대되는 원』의 저자 피터 싱어가 『동물 해방』의 저자인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 스티븐 핑커, 『빈 서판』 중에서

페크pek0501 2013-09-21 10:44   좋아요 0 | URL
오렌 님, 추석 연휴를 잘 보내셨나요?
저는 지금 추석 연휴가 끝나서 속시원하답니다. 이렇게 속시원하려면 명절 음식 만들 때 꾀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답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이런 속시원함을 느낄 수 없고 찜찜하거든요. 이건 경험에서 터득한 것임.ㅋㅋ

이렇게 일상으로 돌아오면 행복해요. 히히~~
좋은 글 옮겨 주신 것 감사해요.
그거 모르시죠? 님이 옮겨 주신 글 중에서 꼭 기억하고 싶은 글은 제가 복사해 둔다는 것... 책이 있으면 찾아보고 표시를 해 둔다는 것... 어떤 것은 여러 번 읽는다는 것...

고맙습니다. 행복한 가을 보내세요. ^^

세실 2013-09-22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페크님 왠지 저랑 친구같은 느낌? 아 공감 백개 누르고 싶다^^
추석 연휴 잘 보내고 있답니다. ㅎㅎ
저도 커피를 매일 마시면서 같은 고민하고 있어요. 이를 닦을 수 없을땐 입에 물 한가득 넣고서는 헹구는 느낌으로 우물우물한뒤 꿀꺽합니다.
살아있는 게는 아직도 요리를 못해요. 꽃게탕을 좋아하면서도......
위대한 개츠비. 누군가를 절실히 사랑해본 느낌! 제가 할게요. 느낌 아니까~~~~~
남은 연휴도 행복하시길요^^

페크pek0501 2013-09-22 11:34   좋아요 0 | URL
공감 백 개... 어머 호호호~~~
살아 있는 게를 손질하지 못하는 것, 저랑 똑같다니...
반가워요, 느낌 아니까~~~~~

추석 연휴도 오늘로 끝이네요. 저는 오늘 친정에 간답니다.
역시 엄마가 해 주는 음식을 먹는 게 명절엔 최고예요.
우리, 친정이 있는 것에 감사합시다. 요즘 느끼는 것이랍니다.

yamoo 2013-09-25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커피를 너무나 좋아라 해서 하루에 2-3잔을 마십니다. 무조건 하루에 아메리카토 한 잔은 마셔줘야 직성이 풀리지요. 그래서 커피머신도 들여 놨다는^^;;
이가 누렇게 되서, 전 항상 치솔을 갖고 다녀요. 먹고 바로 이를 닦아서 그나마 전 나아요^^ 언젠가 치과에 갔더니, 의사선생이 밥먹구 5분 내로 무조건 이를 닦아야 한다고 엄포를 놓아 그리 한답니다.

전 서재방문자 수 신경을 안쓴지 넘 오래되서요. 네이버에서 블로그질 할 때도 신경을 안썼습니다~ㅎ 근데, 페크님 은근히 서재 많이 신경쓰시는 듯해요^^

개츠비 소설을 아직 못봐서 함 봐야지...하고 있었는데, 영화 나온 게 있어 봤는데, 디게 재미없는거에요..중간까지 봤다가 그만뒀다는...그래서 소설 읽을 엄두가 안나요~

페크pek0501 2013-09-25 14:24   좋아요 0 | URL
밥 먹고 5분 내로 이를 닦으시다니... 바른생활 하는 분이시군요.

"근데, 페크님 은근히 서재 많이 신경쓰시는 듯해요^^"
- 예 은근히 많이 신경 씁니다. 저는 저의 일에 대해선 관심 집중하고 삽니다.
제가 제일 관심 있는 건 '나'라서요, '나의 일'에 관심 많아요.
관심만 많고 열심히 하지 않는 게 문제지만요.(몸을 아낍니다.ㅋㅋ)

개츠비 영화는 참 재밌게 봤어요. 책으로 먼저 읽어서인지 흥미로웠죠.
남자들에겐 그리 흥미 있는 영화, 흥미 있는 소설책은 아니죠.
티브이 드라마가 남자보단 여자에게 더 인기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일 듯해요.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나도 이 글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로.

 

 

 

1.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 최근 나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경험을 했다. 아버지의 입원, 병원에서의 생활, 고통, 불안, 장례식 등.

 

 

지난 8월, 배에 통증이 있어서 여러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입원한 지 12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CT 검사, 조직 검사, PET(페트) 검사를 한 결과 병명이 ‘폐암 말기’라는 건 알았지만 그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아버지는 주무시다가 호흡을 멈추는 것으로 죽음을 표시하셨다. 그렇게 고통 없이 편히 가셨다. 연세가 많아서 예상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도 가족이 죽는다는 건 어이없는 일이기도 하고 허무한 일이기도 했다. 더욱이 형제가 없는 나는 부모님에게 마음을 많이 두며 살았기에 무척 쓸쓸하게 느껴졌다. 어머니도 그럴 것이다.

 

 

 

 

 

2. 호상일까 : 병원에선 아버지의 몸 상태가 좋지 않고 연세가 86세라서 항암 치료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을 절망에 빠지게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병으로 며칠만 고생하셨고 주무시다가 편히 돌아가셨으므로 문상객들은 호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식의 입장에선 호상일 리 없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3. 고통스러웠다 : 2주일 가까이 병원에 계시는 동안 아버지의 목구멍에서는 가래가 끓어올랐다. 어떤 날은 한 시간에 한 번씩 가래를 뽑아내야 할 정도로 심했다. 아버지는 가래를 뽑는 일을 가장 고통스러워하시는 것 같았다. 간호사가 가래를 뽑기 위해 침대에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다가오면 아버지는 싫다는 뜻으로 손을 저으셨다. 어떤 날은 간호사가 가래를 뽑고 있는 도중에 눈물을 흘리셨다.

 

 

이를 보고 간호사가 말했다.

 

 

“아버님이 많이 힘드신가 봐요. 눈물까지 흘리시는 걸 보니 더 이상 가래를 뽑지 못하겠어요.”

 

 

이 말을 듣고 나도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힘드시면 눈물이 다 나오실까 싶어 아버지가 가여웠다.

 

 

환자를 간호한다는 것은 예상한 대로 쉽지 않았다. 몸은 당연히 힘들었고 그보다 더 힘든 것은 마음이었다. 특히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아버지가 아파서 고통스러워하는 며칠 동안 나 역시 고통스러웠는데, 가족의 고통을 본다는 것이 가장 불행한 일이라고 여겼다.

 

 

 

 

 

4. 지옥 같았다 : 아버지가 병원에 계시는 동안 어머니와 나는 병원으로 출퇴근을 하다시피 했다. 아침에 가서 저녁 8시가 되어서야 병원 문을 나서는 생활을 했다. 간병인은 저녁 8시에 와서 그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있기로 했다.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간병인이 나에게 전화를 하기로 했다. 아버지를 간병인에게 맡기고 병원 문을 나설 땐, 마치 아버지를 버리고 가는 것 같아 죄책감을 느꼈다. 집에 가서는 밥을 먹어도 맛있지 않았고, 샤워를 해도 상쾌하지 않았으며, 텔레비전을 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저 병원에 누워 있는 아버지 생각뿐이었다. 공포와 불안이 나를 괴롭혔다. 병원으로부터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화가 올 것만 같아 한순간도 마음이 편하지 않고 조마조마하였다. 이 조마조마함이 나를 지옥 속에 있게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이런 생활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두려워했다.

 

 

 

 

 

5. 죽음을 목도하며 생각했다 : 아버지가 임종하실 때 옆에 내가 있었다. 아버지가 호흡을 멈췄다. 고통스런 시간 끝에 구세주처럼 찾아오는 게 죽음이었다. 장엄하지도 심각하지도 않고 싱겁게 느껴지는 게 죽음이었다.

 

 

나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면서도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이게 죽음이란 말인가!, 한 인간의 생애가 이렇게 싱겁게 끝난다는 말인가!’

 

 

그리고 생각했다.

 

 

‘싱거워도 이 순간은 오래 기억될 슬픈 시간이겠지.’

 

 

 

 

 

6.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 아버지는 국가유공자라서 현재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안 납골당에 안장해 있다. 놀랍고 영광스러웠다. 국립묘지(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어 사후 60년간 국가에서 관리해 주고 무료라니. 아버지에게서 아주 좋은 선물을 받은 듯했다. 우리를 이렇게 기쁘게 하고 떠나시다니….

 

 

우리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국립묘지가 있어서, 아버지가 가까이 계신다고 생각하니 위안이 된다. 그리고 감사하다.

 

 

 

 

 

7. 친구들이 고마웠다 : 이번 경험을 통해서 결혼식은 가지 못하더라도 장례식은 꼭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문상객이 들어올 때마다 내가 감동했기 때문이다. 슬픈 일을 겪으면 그런가 보다. 와 주신 모든 사람들이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특히 내 친구들은 더욱.

 

 

부산에서 온 홍림.

대전에서 온 옥경.

분당에서 온 도경.

분당에서 온 인숙.

두 번이나 온 서울의 문숙.

두 번이나 온 서울의 순화.

그 밖에도 멀리서 전화로 마음을 전해 온 친구들.

(장례식장은 서울이었다.)

 

 

 

 

 

8. 남편이 고마웠다 : 아버지가 입원해 계신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병원에 와 준 남편이 고마웠다. 그리고 내가 병원에 가 있느라 집에 없는 동안 남편이 나 대신 주부로서 해야 할 일을 해 준 것은 나를 든든하게 했다.

 

 

주부 습진이 생겼다는 남편에게 대학생인 큰딸은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아빠 귀여워 죽겠어.”

“나,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라고.

 

 

어머니도 남편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내가 사위를 잘 얻은 것 같아.”라고.

 

 

 

 

 

9. 시댁 식구들이 고마웠다 : 아버지가 병원에 계셨을 때 대구에서 형님들(남편의 누나들) 두 분이 병문안을 오셨다. 그런데 이틀 뒤 장례식장에도 또 오셨다. 그것도 이번엔 고모부님들(누나들의 남편들)과 부부 동반으로 오신 것이다. 더운 날 대구에서 서울로 어려운 걸음을 하신 분들이라 매우 고마웠다. 서울에 사는 시동생 내외도 병원과 장례식장으로 두 번이나 와 줘서 고마웠다.

 

 

 

 

 

10. 재밌는 아버지였다 : 내가 몇 살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어릴 적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한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퇴근해 집에 들어오시면 나를 찾았다. 거실로 들어서며, “우리 딸 어딨어?”, 하신다. 내 방에 있던 내가 거실에 나가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면 “어, 우리 맏딸.”하고는 내 얼굴에 당신의 얼굴을 비비신다. 아버지의 까칠한 수염 때문에 따가워서 “그만 해.”하고 내 방에 들어가면 이번엔, “우리 막내딸은 어딨어?”, 하신다. 그러면 나는 또 거실로 나가 막내딸인 척해야 했다. 딸이 나 하나밖에 없으니 나는 맏딸과 막내딸이 되어야 했다.

 

 

 

 

 

11.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들 :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3년 동안 나는 친정에 일주일에 두세 번씩 드나들었다. 친정에서 가까운 데로 우리 집이 이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 우리 셋은 모여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가 많았고 얘기를 하며 웃음꽃을 피운 적도 많았다. 화투를 치기도 했다. 아버지가 고스톱을 워낙 좋아하셔서 어머니와 내가 인심을 쓰듯 쳐 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셋이 쌓아올린 추억의 탑은 높았다.

 

 

토요일에 학교에서 논술 수업을 하고 와서 일요일에 친정에 가면 아버지는 꼭 물으신다. “어제 학교는 잘 갔다 왔니?”라고.

 

 

 

 

 

12. 또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고 싶다 : 참 좋은 아버지였다. 나를 혼낸 적이 한 번도 없는 맘 좋은 아버지였다. 아버지에게 딸이란 가족이자, 친구이자, 애인이었던 것 같다. 딸에게 아버지 역시 가족이자, 친구이자, 애인이었던 것 같다. 다시 태어난다면 또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고 싶다.

 

 

 

 

 

13. 앞으로 할 일 : 앞으로 나에겐 어머니를 위로하며 살아야 할 일이 남아 있다. 그리고 어머니와 나는 씩씩하게 태연하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울지 않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아버지가 편히 잠들 것이다.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담담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겪는 일이므로.

 

 

그러나 한동안 슬프리라.

 

 

 

 

 

 

 

.......................................

<후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란 그저 양치기가 영광스러운 손길을 기다리며 왕 앞에 설 때의 떨림에 불과합니다.

양치기는 왕의 은총을 입게 되었으니 떨리는 와중에도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허니 떨리는 감각에 더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요.

 

 

죽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저 바람 속에 벌거벗고 서 있는 것이자, 태양 아래 몸을 녹이는 것일 뿐.

숨이 멈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저 끊임없이 흐르는 물결에서 벗어나 숨이 자유로워지는 것이자, 날아오르고 부풀어 올라 아무런 장애물 없이 신을 찾아가는 것일 뿐.

 

 

- 칼릴 지브란 저, <예언자>, 90쪽~91쪽.

 

 

 

 

이번 일을 겪으면서 죽음이라는 게 이런 것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죽음을 최후에 남겨 놓고 있는 게 우리의 삶이라면 좋겠다고, 그리하여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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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9-10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ek님, 아버님을 보내드렸군요. 읽어내려가다 보니 저도 마음이 숙연해지네요. 제 아버지도 낼모레면 여든이신데...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의 몫을 다 해야겠지요. 마음이 많이 허전하실 어머니와 서로 의지가 되어주실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마음이 허한 가운데서도 고마운 분의 마음을 헤아리시는군요.

페크pek0501 2013-09-12 12:5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님의 아버님 연세가 그러시군요.
맞아요. 어머니라도 계셔서 서로 의지하며 산답니다. 어머니까지 안 계시는 날엔 저에게 친정이 없다는 건데, 친정 없이도 살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서재 이웃의 따뜻한 정이 느껴집니다.

순오기 2013-09-10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맏딸이자 막내딸이라 사랑도 듬뿍 받으셨네요,^^
노인들은 잠자다 떠나시는 걸 복이라고 여기시던데 아버님도 그렇게 가셨네요.
임종도 지키셨으니 다행이고, 사랑의 추억을 회상하며 어머님과 씩씩하게 지내시리라 믿어요!

페크pek0501 2013-09-12 12:51   좋아요 0 | URL
순오기 님, 고맙습니다. 씩씩하게 살겠습니다. 아작!!!!!!!!!!!!!!!

세실 2013-09-10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페크님! 큰일 겪으셨군요. 토닥토닥!
글 읽는데 눈물이 나네요. 어머니 많이 위로해 주시고, 페크님도 힘내시길요.

페크pek0501 2013-09-12 12:51   좋아요 0 | URL
세실 님의 토닥토닥이 따뜻한 위로가 되네요.
고맙습니다.

2013-09-10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12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3-09-10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호상은 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남아 있는 가족에겐 적지않은 상실감이시겠지만 고인껜 고통이 길지 않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가셨을 테니 호상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국립묘지에 묻히셨다니 더 없는 영광이시겠습니다. 위로 받으십시오.
물론 저도 아버지를 보내드렸지만 슬픔이 잊는데 꽤 시간이 걸리긴 하더군요.
세월이 약이라고 기운 내시기 바랍니다.


저는 언니와 같은 달 오빠를 보냈는데 참 많이 섭섭하더군요.
사람들은 형제를 보낸 것이 부모를 보내드린 것 보다 덜 슬플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별로 위로다운 위로를 안 하더군요. 내가 너무 티를 안 내고 있어서일까요?
그래도 간간히 위로해 주시는 분들 계셔서 감사하긴 하지만 마음이 뒤숭숭 복잡해요.ㅠㅠ



페크pek0501 2013-09-12 12:57   좋아요 0 | URL
애티커스 님 그러셨군요. 오빠라고 해도 슬픈 건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누구든 가족을 잃는다는 건 슬픈 일이에요.
님도 세월이 약이다, 생각하시고 힘 내시길...
많은 분들이 소식을 몰라 위로하지 않았겠지요.
(예, 티를 안 내신 겁니다.) ㅋ

프레이야 2013-09-10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무더위에 큰일 치르셨군요. 그래서 서재를 당분간 쉬겠다하셨던거였어요ㅠ 참으로 사랑이 많으신 화목한 풍경이 그려집니다. 고통없는 좋은곳으로 편히 가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아버지보다 네살 연상이시군요.ㅠ
죽음에 대한, 죽음의 두려움에 대한 글귀에도 자꾸 머물게 되네요.

페크pek0501 2013-09-12 12:58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 님, 님의 아버님 연세가 그러시군요.
죽음이 꽤 두려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답니다.
하지만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덜 힘들어집니다.
고맙습니다.

비연 2013-09-10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이 나요. 부모님의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라고 생각만 하고 잇는데 님의 글을 읽으니 마음에 사무치게 다가오네요.. 아버님, 좋은 곳에서 편안하시리라 믿고, 기원합니다. 남겨지신 어머님, 잘 돌봐드리시구요... 더욱 즐거운 시간 함께 하시길. 덧없는 인생이지만, 함께 한 행복한 시간은 어느 공간엔가 머무는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13-09-12 12:58   좋아요 0 | URL
비연 님. 맞아요.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함께한 행복한 시간이 다 없어지는 건 아니겠지요? 그 시간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푸근해진답니다.
고맙습니다.
자주 뵙겠습니다.

마립간 2013-09-11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인의 명복을 빌며 pek0501님께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잠깐 속내를 비추셔서 혹시나 했습니다. 저도 pek0501님의 아버님처럼 좋은 아버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페크pek0501 2013-09-12 13:06   좋아요 0 | URL
예 마립간 님.
님은 좋은 아버지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위로 고맙습니다.


글샘 2013-09-11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그래도... 편안한 길을 가셨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페크pek0501 2013-09-12 13:06   좋아요 0 | URL
글샘님, 오랜만이군요.
고맙습니다.
나중에 놀러 가겠습니다.


다락방 2013-09-11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맏딸이자 막내딸인 페크님, 댓글 달기 조심스러워 그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고만 적어봅니다.

페크pek0501 2013-09-12 13:07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 그저 댓글 한 줄만이라도 많이 고맙답니다.



2013-09-11 1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12 1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쉽싸리 2013-09-11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일 겪으셨군요. 힘내세요...

페크pek0501 2013-09-12 13:10   좋아요 0 | URL
쉽싸리 님. 고맙습니다. 힘낼게요.

oren 2013-09-11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급작스레 아버님을 떠나보내셨군요. 페크님께 뭐라 위로해 드릴 말씀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세상의 어떤 경우도 호상은 결코 없다고 합니다만, 페크님께서 아버님이 편히 잠드시도록 슬퍼하지 않기로, 담담하기로 했다는 말씀에 이 슬픈 글을 읽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섣부르지만 일말의 안도감을 찾아볼 생각도 들게 합니다. 뒤늦게나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
삶과 죽음은 서로 의지하여 삶이 죽음이 되고 죽음이 삶의 조건이 되어 인간 생애에 양극을 이루며 공존해 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생물학적 정의를 간단히 내려보라.

나는 본디 이 세상에 없었던 존재였다. 저마다 태어난 날짜를 헤아려 보면 생일 이전에 자신은 이 세상에 없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없었던 상태를 죽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태어나면서 비로소 죽음을 앞두게 된다. 따라서 죽음이란 삶을 전제로 존재한다는 명백한 진리가 성립된다. 남녀간의 사랑은 인류의 종족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본능이다. 따라서 인간은 사랑과 쾌락이라는 생식행위의 결과로 태어난 결과물이다. 바로 그 생식행위의 결과 하나의 존재로 매듭이 만들어졌고, 그 매듭은 뒷날 죽음이라는 커다란 환멸에 의해 풀리며 본디 상태로 돌아간다.

삶은 죽음을 통해 본디 상태로 되돌아간다. 위대한 생명이 한낱 죽음의 소멸로 끝나고 말다니 참으로 허망하다는 뜻으로 보면 삶은 별 의미 없고 인간은 참으로 불쌍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불쌍할 이유도 없다.

우리는 본디 없었는데 잠시 존재하다가 다시 없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므로 사실상 잃는 게 없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죽음으로 무엇을 잃는단 말인가.
- 쇼펜하우어

페크pek0501 2013-09-12 13:12   좋아요 0 | URL
오렌님, 잘 뽑으셨네요.
“삶은 죽음을 통해 본디 상태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돌아가셨다는 말을 쓰는 것이겠지요?
늘 고맙습니다.

yamoo 2013-09-15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 만에 서재에 접속하니, 이런 슬픈 일이!!

늦었지만 페크님께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매우 힘드셨을 텐데 담담하게 글을 써주셨네요. 많이 생각나실 거 같다는..
오늘 교회에서 죽음과 구원에 대한 설교를 들었는데...
참 여러가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종교가 있든 없든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오렌님께서 봅아 주신 마지막 쇼펜하워의 말은 어딘지 장자와 매우 비슷해 보입니다. 뭐, 쇼펜하워가 불교에 심취해서 저런 말도 가능했겠지요.

어쨌든 힘내세요!

페크pek0501 2013-09-16 19:17   좋아요 0 | URL
반가운 야무 님.
누구나 겪는 일을 아주 슬프게 쓰면 엄살을 떠는 것으로 보일 것 같아 담담하게, 냉정하게 쓰려고 했지요.
그런데 사실은 마음이 힘들답니다.
제가 뭐든 깊이 느끼는 경향이 있어서 말이죠.
대충 살고 싶은데(얕게 느끼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됩니다. ^^
어쨌든 고맙습니다. 명절, 잘 보내세요.

2013-09-17 0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17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김영하 저,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다음의 글을 읽었다.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오직 딱 한 가지에만 능했는데 아무에게도 자랑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자긍심을 가지고 무덤으로 가는 것일까.

 

- 김영하 저, <살인자의 기억법>, 114쪽.

 

 

 

 

이 글을 읽고 인간의 자긍심에 대해 생각하다가 인간의 열등감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가 인간은 자긍심과 열등감, 이 둘 중의 하나에 치중해서 자신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에 닿았다. 열등감보단 자긍심을 더 갖고 있는 자는 그렇지 않은 자보단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열등감이 하나라도 없는 사람이 있으랴. 겉으로 보기엔 열등감이 없어 보여도 말이다.

 

 

 

그래서 <살인자의 기억법>에 있는 문장을 다음과 같이 변형해 써 봤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열등감을 가지고 무덤으로 가는 것일까.

 

- pek0501 

 

 

 

 

 

 

 

 

 

 

 

 

 

 

 

 

 

 

 

 

 

 

 

 

2.

몇 달 전, 사촌 동생의 딸 돌잔치에 갔다. 장소는 뷔페식당. 뷔페라고 하니 여고 2학년생인 둘째 아이가 맛있는 것 많이 먹겠다며 따라나섰다. 그곳은 자연히 친척들이 많이 모인 자리가 되었다.

 

 

 

아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쁘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아이를 보고 김연아 선수를 닮았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김연아 선수보단 인물이 낫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칭찬은 과장해서 하는 법이니 곧이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더니 아이는 피식 웃었다. 내가 보기엔 우리 아이보다 김연아 선수가 더 예쁜 것 같다. 그러니 과장해서 말하는 게 맞다.

 

 

 

그리고 아이를 보며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와, 완전히 얼굴과 몸매가 소녀시대야.”

 

 

 

이와 비슷한 얘기를 주위에서 많이 듣는 터라, 아이는 좋아하는 티를 내지 않았다. 우리 집에 놀러온 내 친구들이 아이를 보고 모델을 시켜라, 딱 연예인 몸매다, 라고 해도 아이는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런 얘기 많이 듣는다는 표정으로 시큰둥했다. 아이의 키는 170센티미터, 몸은 적당히 말랐고 얼굴은 작다.

 

 

 

아마 아이는 학교에서도 주목을 받는 모양이다. 자기를 보려고 딴 반에서 자기네 교실로 놀러 오는 아이가 있다고도 했고, 아이가 소속해 있는 연극반에 자기를 보려고 들어왔다는 1학년생 후배가 있다고도 했다.

 

 

 

겸손해라, 하고 내가 아이에게 말한 적이 있다. 아이가 조금만이라도 자긍심을 가진 듯한 태도를 친구들한테 보인다면, 참 재수 없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의 속마음을 누가 알까.

 

 

 

나와 함께 치과에 다녀온 어느 날, 아이는 엉엉 울면서 내게 말했다.

 

 

 

“난 왜 이 모양으로 태어났어? 예쁜 데가 하나도 없잖아. 눈엔 쌍꺼풀도 없고 코는 높지도 않고 이빨까지 삐뚤빼뚤해서 교정해야 하잖아.”

 

 

 

그러면서 이 교정을 하는 것만 해도 3년 이상 걸린다는데 보기 싫어서 교정기를 어떻게 끼고 사느냐며 울면서 신경질을 냈다.

 

 

 

나는 어이없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만족할 줄 모르고 욕심이 많다고 아이를 탓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그런 것이니까. 인간이란 원래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아흔아홉 개를 가졌어도 가지지 못한 한 개에 집중하는 존재가 인간이 아니던가. 그래서 아이를 이해했다.

 

 

 

나 역시 친구들이 “넌 참 팔자 좋은 아줌마야.”라고 말할 때, ‘내 머릿속에 꽉 차 있는 많은 걱정거리를 누가 알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상대에게서 자긍심이 느껴진다는 이유로 상대를 미워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사람이리라.

 

- 상대를 겉모습만 보고 맘대로 판단하는 사람.

- 상대를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보는 사람.

- 상대를 상대의 입장에서 보지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만 보는 사람.

 

 

 

물론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또한 그런 것이니까.

 

 

 

 

 

 

....................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선 가진 것을 주목해서 보고, 자신에게선 가지지 못한 것을 주목해서 볼 때가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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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3-09-06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바로 글을 올리셨어요!!!
반가운 마음에...추천 쾅~^^

근데, 김영하 책은 제게서 넘 멀어져만 가네요~ㅜㅜ

페크pek0501 2013-09-07 12:38   좋아요 0 | URL
김영하 책은 남편이 산 것이랍니다. 문장이 간단명료해서 읽기 좋더군요.
추천 꽝~은 저의 행복 지수가 올라가게 하는 말입니다. ㅋㅋ

세실 2013-09-07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의 주목을 받으면 겸손해지기 참 어렵긴 하지요.
엄마가 이리 교육을 하시니 조심하겠군요.
요즘 아이들 치아는 대부분이 삐뚤빼뚤. 우리 아이도 그래요. ㅠㅠ

페크pek0501 2013-09-07 12:43   좋아요 0 | URL
세실 님. 님의 아이도 삐뚤빼뚤 그렇군요. ㅋㅋ
주목을 받아서 거만해질까 봐 걱정했더니 웬 열등감인지...
그런 아이를 보며, 인간은 다 그렇구나, 생각했답니다.


2013-09-07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08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08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10 11: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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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7 23: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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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8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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