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어머니의 이름은 ‘에바’이고 아들의 이름은 ‘케빈’이다. 케빈은 에바가 낳은 첫아이였는데 줄곧 울며 보채서 에바를 힘들게 한다.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아 그녀는 점점 지쳐 간다. 케빈은 대소변을 가릴 수 있는 나이가 됐음에도 기저귀를 떼지 않고 기저귀에 일부러 대변을 싸서 에바를 화나게 만든다. 


케빈은 커 가면서도 에바를 괴롭히기 위해 태어난 아이처럼 행동한다. 에바가 꾸며 놓은 방의 벽에 물감을 뿌리는가 하면, 여동생의 애완동물을 몰래 죽이기도 하고, 여동생의 한쪽 눈을 다치게 만들기도 한다. 케빈이 그러는 이유를 에바도 알 수가 없고 관객도 알 수가 없다. 케빈이 활쏘기를 좋아하고 아버지와는 잘 지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마침내 끔찍한 사건이 터지고 만다. 케빈이 열여섯 살의 생일을 사흘 앞둔 어느 날 학교에서 여러 명의 학생이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살인범이 바로 케빈이다. 에바는 범행 현장에서 체포되는 케빈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집에 온 에바는 딸과 남편이 화살에 맞은 채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큰 충격을 받는다. 물론 케빈이 활을 쏘아 죽인 것이다. 케빈은 왜 아버지와 여동생을 죽이고 학생들을 죽였을까? 가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죽일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에바의 아들이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에바를 괴롭힌다. 그녀 집의 외관에 붉은색 페인트를 뿌리고, 길에서 만난 그녀에게 뺨을 때리기도 한다. 아들이 교도소에 있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인데 살인자의 어머니로 살아야 하는 것 또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에바가 케빈이 있는 교도소로 면회를 가서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에바가 케빈에게 묻는다. “왜 그랬어?” 이에 대해 케빈이 대답한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라고. 에바는 아무 말 없이 케빈을 꼭 안아 준다. 케빈은 에바 앞에서 처음으로 고분고분하다. 에바가 교도소에서 걸어 나오며 영화는 끝난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궁금한 게 많았다.  그중 몇 가지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케빈처럼 악인이 되는 것이 타고난 기질이나 성격 등의 선천적 요인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부모의 양육 방식 등의 후천적 요인에 의한 것인지 궁금하다. 이 문제를 위해서는 맹자의 성선설, 순자의 성악설, 고자의 성무성악설 중 무엇이 옳은지 따져 보는 것이 필요하겠다. 둘째, 모성애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인지 후천적으로 생기는 것인지 궁금하다. 내 생각엔 후천적인 것 같다. 셋째, 어머니로서 아이를 키울 준비가 되지 않은 에바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지, 에바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못된 짓을 하는 케빈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물론 둘 다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다넷째, 살인자의 부모는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 마땅한 일인지 궁금하다. 만약 비난을 받아 마땅한 일로 보는 경우 부모가 잘못 키워서 자식이 살인자가 되었으니 부모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겠다. 내 의견을 말하자면 이 영화에서 부모가 아이를 잘못 키워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다섯째, 에바가 교도소를 나오면서 마음이 어떠했을지 궁금하다. 에바가 마음이 가벼워졌을까 아니면 더 무거워졌을까.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영화라는 점에서 <케빈에 대하여>는 다른 영화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케빈이 살인자가 된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어 여러 각도로 검토하게 되는 <케빈에 대하여>를 아직 보지 못한 분들에게 강추한다.



..............................

넷플릭스에서 시청함.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4-10-06 21: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년 전에 본 영화입니다.
보고 마음이 참 무거웠죠. 케빈이 좀 섬뜩했습니다.
엄마도 뭐 그런 아이를 낳고 싶어서 낳겠습니까?
아이들 중엔 그렇게 심각하게 제어가 안 되는 아이가 있는 것 같아요.
성악설, 성선설 말씀하셔서 그런데 어떤 면에선 악에 사로잡힌 영혼 같다는
생각도 해 보는데 영화는 그건 피해가더군요. 의도적인 것 같긴한데
정확한 의도는 잘 모르겠더군요. 그렇게 영적인 문제로 풀고 싶지 않은 건지
그렇게 되면 오컬트 영화가 될 것 같아 경계를 한 건지.
그 보다는 역시 영화는 에바에게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긴하죠?
아무리 아들이라도 남편과 딸을 죽인 존재를 끌어 안아주기란 쉽지 않을텐데 영화라 가능했을까 싶기도하고.
자의든 타의든 한 집안에 범법자 하나만 나와도 가정이 초토화되는 건 말할 것도 없을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24-10-07 11:08   좋아요 2 | URL
스텔라 님도 보셨군요. 섬뜩해서 못 보겠다는 사람도 있긴 하더라고요.
미운 짓만 골라 하는 애가 있기는 한데 케빈은 많이 심하죠. 사이코패스를 운운하기도 하는데 그걸 알려면 성인이 되어야 한대요. 성인만이 검사할 수 있다네요. 케빈은 미성년자. 어머니인 에바의 잘못된 양육 방식을 언급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런 것 못 느꼈어요. 누구나 부족한 엄마이고 경험 없는 초보 엄마이니 그것이 큰 변수라고는 보지 않아요. 설령 영화감독이 그게 이유다, 라고 할지라도 저는 동의하지 않겠어요.ㅋ 제가 놓친 점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청해 볼 만한 영화였어요. 많이 추워졌습니다. 감기 들지 마시고 가을 날씨에 잘 적응하시길... 댓글, 감사합니다.^^

yamoo 2024-10-07 17: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케빈에 대하여...아직 못봤는데, 인상적으로 보신 듯합니다. 이런 멋진 감상문을 남기신걸 보면요.^^

페크pek0501 2024-10-08 12:22   좋아요 1 | URL
십몇 년전에 만들어진 영화라는데 인상적인 영화였어요. 아이가 어머니를 화나게 만들려고 작정하고 노력하는 걸로 보였거든요. 대부분의 엄마들이 경험 부족으로 서툴게 자식을 키우기 마련이나 모든 아이들이 나쁜 아이로 성장하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어쩔 수 없는 아이, 가 있다로 해석되더라고요.^^

카스피 2024-10-07 21: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는 선천적인 것이라서 부모의 사랑이나 교유과는 크게 관계가 없지 않을까 싶어요.사실 일반인들의 그들의 사고를 이해한ㄷ는 것은 무리란 생각이 듭니다.

페크pek0501 2024-10-08 12:26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을 보면 전혀 반성하지 않을 뿐더러 자신의 잘못을 모르더라고요. 범죄를 저질렀으면 죄값을 치르는 게 맞지만 정신 이상자일 땐 보통 사람과 똑같이 죄값을 치러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새로 산 책에 대해 언급하지 않아 그렇지 나는 책을 꾸준히 사는 편이다. 1년에 수백 권의 책을 사는 이들이 많으니 그들의 책 구매에 비하면 비교할 게 못 되지만, 1년에 수십 권의 책을 구매해 온 것이 30년이 넘었으니 그동안 책값으로 쓴 돈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월평균 서너 권가량 사는 것 같다. '알라딘'이 제공하는 기록을 보니 알라딘에서 구매한 책이 866권이었다. 이밖에 오프라인 서점에서 산 책들도 적지 않다.



내가 언급한 적이 없는 책들이다.  



사진 속의 책들은 내가 이곳에서 언급하지 않은 책들만 모아 쌓은 것이다. 이중 한 권만 완독을 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심판」이라는 책이다. 「심판」은 주인공이 죽은 뒤에 천국에 도착하여 그의 삶을 심판받는 내용의 희곡이다. 천국의 법정에서 주인공은 피고인이 되고 검사, 변호사, 판사 등이 설전을 벌인다.


베르트랑은 검사.

아나톨은 피고.

카롤린은 변호사.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심판」에서 한 토막을 뽑아 소개한다.



베르트랑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 그걸 여기서는 아주 좋지 않게 보죠!  


아나톨 그때는 소심했거든요.


베르트랑 그건 변명이 될 수 없어요. 두 사람은 완벽히 조화로운 커플을 이루었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죠!


카롤린 내 의뢰인은 인간이에요. 천국에서야 모든 정보를 다 가지고 있으니 훈계가 쉽죠.


베르트랑 어떤 일이 어려워서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거예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심판」, 132~133쪽.


천국에서는 실패할까 봐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을 ‘큰 죄’라고 한다. 작가의 생각을 알 수 있어 흥미로운 대목이다. 






..............................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글을 올리려 했는데 

추석 연휴로 인해 글을 쓸 여유가 없어

짧게나마 이 글로 대신합니다.






댓글(26)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4-09-19 17: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추석연휴 잘 보내셨나요.
인터넷 서점에서 매년 구매액을 확인하면 누적금액이 너무 많아서 보는데 용기가 필요해요. 전보다 책 가격도 많이 올라서 이제는 꼭 읽을 책만 사야 할 지도 모르겠어요.
오늘도 많이 덥습니다.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4-09-19 17:28   좋아요 2 | URL
잘 보냈지요. 추석 음식을 만들며 음식 냄새를 실컷 맡았고... 어제로 추석 일정을 다 마쳤어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명절이 지나고 나니 속~ 시원~ 합니다.
서니데이 님도 책 많이 사셨죠? 저도 책을 많이 사서 이게 웬 사치인가 싶다가도 명품백을 샀다 치자, 그럽니다. 수백만 원대부터 천만 원이 넘는 명품백도 있으니 말이죠. 큰 금액으로 한 번의 사치를 부리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30년에 걸쳐 나누어 썼으니 소박한 거죠.ㅋㅋ 내일부터 비 오고 기온이 낮아진대요. 서니데이 님도 시원한 하루를 보내세요.^^

바람돌이 2024-09-19 2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추석 잘 보내셨네요. 쌓아놓은 책탑이 아름답습니다.
저는 추석연휴에 아무데도 안가고 집에서 저렇게 책탑쌓아놓고 한권씩 뽀개기 이런거 하고싶습니다. ㅎㅎ

페크pek0501 2024-09-20 13:28   좋아요 2 | URL
저도 서재 님들이 책탑 사진을 올리면 어떤 책인지 관심을 갖고 꼭 보게 됩니다. 책이 참 잘생겼다 느끼면서.ㅋㅋ
저는 명절 연휴가 되면 빈 시간이 많이 생겨 벽돌책을 읽고 싶단 생각을 합니다. 사진에 담지 못한 벽돌책이 많습니다. 언급하지 못한 책들로 탑을 쌓는다면 꽤 높은 탑을 쌓을 수 있을 듯해요. 안 읽은 책이 많다는 뜻이죠.^^

stella.K 2024-09-20 12: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왕~ 천국에서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는 게 큰 죄라니 찔리는데요? 정말 그런 거 같습니다. 글치않아도 죽어서 천국 가면 하나님이 꼭 물어보신다잖아요. 너 세상에서 뭐하다 왔냐고. 그때 드릴 말씀이 있어야할 것 같은데 저는 참 드릴 말씀이...😥

페크pek0501 2024-09-20 13:31   좋아요 3 | URL
노력하지 않는 자, 는 벌을 받나 봐요.ㅋㅋ 또 하나 이 책에선 자기 재능을 썩히는 것도 죄라고 합니다. 재밌죠? 재능을 갖고 태어나게 만들었는데 그것을 발휘하지 않은 죄, 인 거죠. 신선한 관점을 제공해 주는 희곡입니다.
왜요? 스텔라 님도 열심히 사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저는.^^

stella.K 2024-09-20 18:26   좋아요 2 | URL
언니, 저 이책 언제고 꼭 사 봐야겠어요. 저를 위한 책 같아요. 저는 열심히 할 여건이되면 하지만 안 그러면 마냥 세월아, 네월이하거든요. 전 노는 게 왤케 좋은지 모르겠어요. ㅋㅋ

페크pek0501 2024-09-21 12:30   좋아요 2 | URL
노는 건 저도 좋아합니다. 우리 식구들은 놀러갈 때 가장 단합이 잘 되어요.
오늘로 김훈 작가의 <하얼빈>이란 소설을 완독했어요. 리뷰 쓰려고 백자평을 안 쓴 게 꽤 있는데 이것 리뷰도 시작하기 힘들듯 하네요. <심판>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대목이 몇 군데나 있어서 추천합니다. 자기의 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기회를 갖게 하는 책이에요. 즐거운 하루!!!

세실 2024-09-21 08: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도조차 하지 않은 죄가 천국에서는 큰죄라니... 음.
오늘 제 화두입니다.
<심판> 장바구니에 쏙!

페크pek0501 2024-09-21 12:27   좋아요 2 | URL
소설에 비해 희곡 읽기가 쉽지 않은데 이 작품은 등장인물이 네 명뿐이어서 잘 읽혀요.
베르베르는 미래 소설을 많이 썼는데 그런 그가 61년생으로 동시대의 작가라는 점에서 매력 있죠.
7세때부터 단편소설을 썼다니 그가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것은 운명인 거죠. 세실 님도 재밌게 읽으실 거예요.

2024-09-22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9-24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24-09-22 23: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가 저번에 이 글을 읽고 댓글을 달아야지 생각만하고 실제로는 안 달았군요.

책탑 사진 너무너무 부럽습니다.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책은 부러워요. 제 책장에 안 읽은 책들이 가득해도 늘 남의 책들을 부러워하게 되네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고 정말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후로 나오는 작품들은 개미 만큼의 재미와 감동을 주지는 못 하는 것 같다는 저만의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심판]은 그의 소설 중에서도 의외로 꽤 얇은 책이군요. 저도 일단 보관함에 담아둡니다.

페크pek0501 2024-09-24 14:47   좋아요 1 | URL
하하~~ 댓글, 저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책탑 사진을 보면 저도 부럽단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책인지 살펴보게 되지요. 특히 알라딘 서재 님들은 책에 대해 큰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 다 동감할 듯합니다.
개미, 를 읽으려고 했는데 전 5권이라 망설여지더군요.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을까 싶네요. 한 제목으로 다섯 권이나 집필하다니...
심판은 서너 시간이면 충분히 읽을 책입니다. 얇기도 하지만 여백도 많답니다.^^

모나리자 2024-09-23 2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놓고 읽지 못한 책이 저도 많아요. 그래도 언젠가 읽을 책이라는 위안과 볼 때마다 뿌듯한 마음이지요.
추석 명절 바쁘게 지내셨지요? 명절 지나자마자 너무 시원해져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네요.
큰 일교차에 감기조심하시고 책과 함께 풍성한 가을 보내세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4-09-24 14:50   좋아요 2 | URL
오! 모나리자 님, 오랜만의 나들이이십니다. 저 역시 읽지 않은, 책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꼭 읽고 말거야, 다짐을 한답니다. 요즘 날씨가 책 읽기에 참 좋은 것 같아요. 저 역시 추석 명절이 지나가서 얼마나 기쁜지...ㅋㅋ
모나리자 님도 책과 함께 풍성한 가을을 보내십시오.^^

희선 2024-09-25 05: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앞으로도 읽으실 책이 많아서 좋으시겠습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하지만, 알라딘에는 그런 사람은 거의 없네요 페크 님은 책뿐 아니라 영화도 보시고 다른 분들과 이야기 나누기도 하시는군요 모두 즐겁게 하시기 바랍니다 페크 님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페크pek0501 2024-09-27 13:15   좋아요 2 | URL
희선 님, 잘 지내시죠? 어제는 편두통이 있어 책을 보지 않고 누워 지냈고 일찍 잤어요. 처음 있는 일이라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요즘 피곤했나 봅니다. 잠을 많이 자서인지 오늘은 통증이 없어 편안합니다. 희선 님도 피로를 피하시고 쉬엄쉬엄 책 읽고 글 쓰세요. 책에 흥미를 갖는 사람은 일단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2024-10-01 2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02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24-10-02 15: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라딘에서 월평균 서너 권 사는 거 같아요ㅎㅎ 책 사도 안 읽은 책이 너무 많아서 되도록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편입니다.

<건투를 빈다>, <역사의 쓸모> 재밌게 읽은 책들이라 반갑네요^^ 즐독하시기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4-10-06 10:09   좋아요 2 | URL
도서관 좋지요. 저도 도서관을 이용해야 하는데 귀찮아서 안 가게 됩니다.ㅋ
건투를 빈다, 는 김어준 저자의 닥치고 정치, 를 흥미롭게 읽었던 터라 사게 되었어요.
다시 역사의 쓸모, 라는 책이 나왔는데 2탄인 거죠. 이 책도 괜찮은 것 같더라고요. 오디오북으로 조금 들었어요.^^

오후즈음 2024-10-02 15: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 놓고 안 읽은 책으로 탑 쌓인도 될만큼 많은 1인이지만 늘 반성하며 요즘 열독중입니다. 페크님도 홧팅 ㅎㅎ

페크pek0501 2024-10-06 10:10   좋아요 1 | URL
오후즈음 님도 그러시군요. 저 같은 분들이 많아 위로가 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님도 파이팅!!!

2024-10-05 0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06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별마당 도서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몽」



이 책의 표제작인 단편 소설 ‘라쇼몽’을 소개하고자 한다. 

 

최근 이삼 년 동안 교토에는 지진과 회오리바람, 그리고 화재와 기근 같은 재해가 연달아 일어났다. 극도로 황폐해진 환경 속에서 이윽고 거두어 줄 사람이 없는 시체를 라쇼몽에 버리고 가는 풍습까지 생겼다. 그런 연유로 해가 지면 모두가 으스스한 기분에 라쇼몽 근처에는 발걸음을 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의 교토 중심부에 위치한 라쇼몽은 기와지붕의 이층 구조로 되어 있는 문이었는데, 당시 여우나 너구리가 드나들고 도적이 소굴로 삼기도 하였다.)


비는 내리고 있었고 하인은 갈 곳이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형편이 궁해진 주인이 사오 일 전에 하인을 내보내서다. 밤이면 추워지는 교토는 쌀쌀했다. 하인은 라쇼몽에 와 있다. 비바람을 맞을 걱정이 없고 사람 눈에 띌 염려 없어 그곳에서 대충 밤을 보낼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문 위 2층 누각으로 올라가는, 폭이 넓은 사다리가 하인의 눈에 들어왔다. 문 위에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어차피 죽은 시체들뿐이다. 하인은 발소리를 죽이고 경사가 급한 사다리 맨 윗단까지 기어서 올라가서 살며시 누각 안을 들여다보았다. 누각 안에는 소문으로 듣던 대로 시체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으나 몇 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는 것은 벌거벗은 시체와 옷을 입은 시체가 있다는 것이었다. 시체들이 썩는 냄새에 하인은 자기도 모르게 코를 감싸쥐었다.

 

하인은 시체들 사이에 웅크리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진갈색 옷에 키가 작고 야위었으며 원숭이같이 생긴 백발 노파였다. 하인은 공포와 호기심에 휩싸여 잠시 호흡하는 것도 잊었다. 노파는 관솔불을 마루 틈 사이에 꽂고 마치 원숭이 어미가 새끼의 이를 잡아주듯 시체의 긴 머리털을 하나 둘 뽑기 시작했다. 머리털은 손으로 쉽사리 뽑히는 것 같았다. 머리털이 하나 둘 뽑힘에 따라 하인의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것과 동시에 노파에 대한 격심한 증오가 조금씩 솟아났다. 하인은 악을 증오하는 마음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인은 왜 노파가 시체의 머리털을 뽑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하인의 생각으로는, 이렇게 비가 내리는 밤에 라쇼몽 위에서 시체의 머리털을 뽑는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용서할 수 없는 악이었다. 하인은 아까 자신이 도둑이 될 마음을 품었다는 사실 따위는 까맣게 잊었다. 


하인은 사다리를 힘차게 딛고 불쑥 위로 튀어 올랐다. 그리고 허리에 찬 칼에 손을 댄 채 큰 걸음으로 성큼 노파 앞으로 다가갔다. 노파가 놀란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노파는 하인을 보자마자 펄쩍 튀어 올랐다. 

“어이, 어딜 가?”

하인은 노파가 시체에 걸려 비틀거리면서도 황급히 도망가려는 길 앞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노파는 그래도 하인을 밀쳐내고 가려 했다. 하인은 다시 그걸 막으려고 노파를 밀쳤다. 둘은 시체들 사이에서 잠시 말없이 밀치락달치락하였다. 하인은 마침내 노파의 팔을 붙잡아 힘껏 바닥에 팽개쳤다. 

“먼 짓을 하던 거야? 말해. 말하지 않으면 이거야.”

노파를 밀쳐낸 하인은 돌연 칼을 뽑아 그 허연 날을 노파의 눈앞에 들이댔다. 노파는 양손을 덜덜 떨고 어깨로 거칠게 숨을 쉬면서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크게 뜨고 벙어리처럼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포졸이 아니오. 그저 이 문 아래로 지나가던 사람이오. 그러니 할멈을 포승줄에 묶어 놓고 어찌 해보겠다는 것은 아니오. 단지 지금 이 문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것만 말해주시오.” 

노파의 목에서 까마귀가 우는 듯 헐떡이는 소리가 하인의 귀로 들려왔다.

“이 머리털을 뽑아, 털을 뽑아서……. 가발을 만들려고 했지.”

하인은 노파의 대답이 뜻밖에 평범하다는 것에 실망하였다. 그리고 실망과 동시에 아까의 증오가 차디찬 모멸과 함께 마음속으로 파고들었다. 노파는 이렇게 말했다.

 

“하긴 그려. 죽은 사람의 털을 뽑는다는 건 나쁜 짓이겄지. 그치만 말여, 여기 있는 시체들은 몽땅 그리 당해도 싼 인간들뿐인걸. 지금 내가 머리털을 뽑은 년도 말이여, 뱀을 토막 내서 말린 것을 건어라고 동궁호위대 사람들에게 팔러다녔을 것이여. 그래도 이년이 판 건어는 맛이 좋다고 무사들이 찬거리로 많이들 샀다고 혀. 나는 이년이 한 짓이 나쁘다고 생각지 않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굶어 죽었을 테니 어쩔 수 없이 한 것이겄지. 그러니 지금 내가 하던 짓도 나쁘다고 생각지 않어. 이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하는 짓이야. 어쩔 수 없다는 걸 이년도 잘 알 터이니 내가 하는 짓도 눈감아줄 것이여.”(15쪽)


노파는 대충 이런 의미의 말을 했다. 이 말을 듣던 중 하인의 마음에는 어떤 용기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하인은 이제 굶어 죽을 것인가 도둑이 될 것인가에 대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하인은 노파의 목덜미를 잡고서 바싹 얼굴을 들이밀고 이렇게 말했다.


“그럼, 내가 다 벗겨가도 원망하지 말어. 나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몸이니까.”(16쪽)


하인은 서둘러 노파의 옷을 벗겼다. 그리고 붙잡고 늘어지는 노파를 발로 차 시체들 위로 쓰러뜨렸다. 사다리까지는 불과 다섯 걸음이었다. 하인은 노파의 옷을 옆구리에 끼고, 순식간에 경사가 급한 사다리를 뛰어 내려가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16쪽)


하인의 행방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16쪽) 


....................여기까지가 ‘라쇼몽’의 내용이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작가는 독자가 무엇을 느끼기를 바랐을까? (여러분은 하인의 마지막 행동을 보고 무엇을 느꼈나요?)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해석이 반드시 일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듯 소설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노파는 시체의 머리털을 뽑는다. 그 머리털로 가발을 만들어 팔아야 돈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인은 노파의 옷을 벗겨 그것을 가지고 도망간다. 그 옷이라도 팔아야 돈이 생기기 때문이다. 둘 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한 행동이었다.  


하인은 처음엔 악을 증오했고, 노파가 시체의 머리털을 뽑는 것을 용서할 수 없는 악으로 여겼다. 그런데 노파가 시체의 머리털을 뽑지 않고서는 굶어 죽는다는 말을 듣고서 하인은 달라진다. 그래서 노파의 옷을 벗겨 그것을 가지고 도망간다. 하인도 노파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 소설은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가?


페크 1님 : 굶어 죽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면 인간은 똑같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페크 2님 : 남의 흉을 보다가 자신도 똑같아진다. 그 상황에 처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페크 3님 : 극한 상황에서는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페크 4님 :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다는 마음을 자기만 갖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갖는다. 그래서 그 마음이 오히려 자기를 희생자로 만들 수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페크 5님 : 약자를 돕고 사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여기서 칼을 갖고 있는 하인이 강자이고, 노파가 약자다.)


페크 6님 : 생각은 전염된다. 그러므로 각자의 생각이 올발라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위의 내 해석과 달리 이 책의 뒤에 실려 있는 ‘해설’에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사람을 속여 뱀 고기를 판 여자, 그 여자 시체의 머리칼을 뽑아 가발용으로 팔려는 노파, 그 노파를 위협하여 옷을 벗기고 도망가는 하인, 세상은 악의 고리로 연결된 듯하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하인은 노파 덕분으로, 노파는 여자 시체 덕분으로, 여자는 속아준 사람 덕분으로 먹고산다는 것이 가능하니, 그것은 선의 고리이기도 하다. 증오나 죄악보다 더 무서운 것은 고리의 단절, 무관심이나 소외인 것이다. 

벌거벗겨진 노파에게도 아직 삶의 희망은 있다. 왜냐하면 시체 중에는 옷을 입은 시체나 다른 여자 시체도 아직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쇼몽은 삶(生)의 문(門)이 아닐까.(261쪽)



만약 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가 살아 있어서 이 해설을 읽는다면 이런 말을 할 것 같다. “고리의 단절, 무관심이나 소외가 가장 무서운 것임을 내가 말하려고 했다고? 나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꿈보다 해몽이 좋군.”





....................

다가오는 추석 연휴를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시간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4-09-12 19: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라쇼몽이 그런 뜻이었군요. 우리나라로 치면 시체가 드나들었다는 시구문 같은 곳.
언니 생각이 다 맞는 것 같은데 역시 역자라 그런지 생각하는 게 참 남다르네요.
번역하느라 얼마나 많이 읽었겠습니까?
영화도 있는데 언제고 한 번 봐야겠네요. 넘 오래된 영화라 잘 안 보게 되느데 언젠가는 꼭...! ㅋ

올해는 추석 때도 덥다고 해서 추석 분위기가 날까 싶어요.
예전엔 이맘 때면 선선하고 좋았는데 여름이 가기가 싫은가 봐요.ㅎ
언니도 추석 잘 보내세요.
또 뵈어요.^^

페크pek0501 2024-09-13 11:07   좋아요 2 | URL
책에는 라쇼몽을 수리하지 못해 황폐한 채 있게 되자 시체를 버리고 가는 풍습까지 생겼다고 해요. 위의 글에도 나오죠. 처음엔 시체를 버리기 위해 생긴 건 아니라는 거겠죠. 저도 해설을 보고 놀랐어요. 거기까지 생각해 내다니 감탄했죠. 예전 문학평론가의 책들을 읽곤 했는데 정말 잘 써요. 어느 소설가가 그러더군요. 자기도 생각해 내지 못한 자기의 무의식까지 언급해 놔서 깜짝 놀랐다고요.
올해 추석은 여름 옷을 입고 보내야 할 듯요. 가을 추, 자인데 말이죠. 스텔라 님도 추석 연휴 잘 보내세요. 또 뵈어용^^

서니데이 2024-09-12 2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별마당 도서관 사진 예뻐요. 실제로 가서 보아도 좋겠지만, 사진 보여주셔서 좋네요.
라쇼몽 책으로 읽었을 때, 이전에 들었던 영화의 내용과 달라서 이 책이 맞나 했었어요.
괴담같은 느낌이었고요.
읽은지 오래되어서 잊고 있었는데, 여름에 읽으면 서늘할 것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페크님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4-09-13 11:11   좋아요 2 | URL
저기가 수원시에 있는 곳, 이에요. 애들이 정보가 빨라서 따라다니다 보면 별 데를 다 갑니다. 제가 외출을 싫어해서 안 따라나설 때가 많긴 하지만요. 류노스케의 소설 중 라쇼몽 못지않게 덤불속,이 압권이에요. 언젠가 그것도 소개해 볼게요. 오늘은 덜 더울 것 같은데 또 낮이 되면 모르겠어요. 서니데이 님도 즐거운 추석 연휴를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4-09-13 22:16   좋아요 2 | URL
네, 영화 라쇼몽은 소설 나생문(라쇼몽)과 덤불 속 두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고 하더라구요.
오늘까지는 비가 와서 많이 더운 편은 아니었는데, 내일은 다시 더워질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페크님도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4-09-14 18:21   좋아요 2 | URL
예. 그렇다는군요.
이번 추석 연휴는 더울 것 같아 걱정입니다. 좀 선선해지면 좋겠어요. 서니데이 님도 즐겁게~~ 즐겁게~~ 보내십시오.^^

바람돌이 2024-09-12 21: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라쇼몽은 영화가 워낙 유명해서 제목만 알았는데... 그 유명한 영화도 안봐서말이죠. 내용인줄은 몰랐는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네요.
추석 잘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4-09-13 11:14   좋아요 1 | URL
저 글 올리고 또 다른 해석이 떠올랐어요. 도덕과 양심의 마비로 이기심만 남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러니까 전쟁이 길어지면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겠다 싶어 그런 세상을 경계하자는 작가의 메시지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서 더 좋은 작품인 것 같습니다. 바람돌이 님도 추석 잘 보내세요.^^

hnine 2024-09-13 04: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해석이 여러가지로 가능한 작품이지요. 저도 읽으면서, 그리고 다 읽고나서도 곰곰히 생각해야했던 책이었어요.

페크pek0501 2024-09-13 11:15   좋아요 1 | URL
예. 그런 소설이 있어요. 어떤 소설은 작가가 말하려는 게 뭔지 모르겠는데, 이 소설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어 흥미로웠답니다. 나인 님, 추석 잘 보내세요.^^

청아 2024-09-13 05: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자의 해설이 제가 요즘 읽고 있는 불완전성의 원리의 내용과 맥이 이어지네요. 삶의 문이라는 의미에서 모든 것들과 연결될지도...잘 읽었습니다^^

페크pek0501 2024-09-13 11:16   좋아요 2 | URL
청아 님의 말씀도 의미심장합니다. 독서가 즐거운 이유가 뭔가 알아가는 재미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책은 싫증이 안 생기나 봐요. 청아 님, 추석 잘 보내세요.^^

감은빛 2024-09-13 12: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유명한 영화는 이 소설의 제목과 배경을 따온 것이고, 영화의 주요 내용은 같은 작가의 [덤불 속] 소설 이야기를 중심으로 가져왔다고 하더라구요.

여러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 있는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집도 분명 좋은 이야기들이 가득할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24-09-14 18:19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덤불속‘은 한 사건에 대해 목격자들이 각자 말을 다르게 하여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는 것으로 끝났던 것 같아요.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인간의 뇌는 편집 기능이 있다 등등 그런 것들을 느끼게 되는 소설.
사실 인간에게 편집 기능이 없다면 두뇌에 과부하가 걸리겠죠. 이 책의 몇 작품은 다른 책에서 이미 읽었는데 또 사게 됐어요. 겹치는 작품이 있지만 구매할 만한 책이어서요.
감은빛 님, 즐거운 추석 연휴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2024-09-18 1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9-19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4-09-25 04: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명절 연휴가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다른 날과 같아도 달력에 표시된 쉬는 날은 더 빨리 가기도 합니다 구월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낮엔 볕이 뜨겁지만 아침과 밤은 쌀쌀합니다 페크 님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24-09-27 13:19   좋아요 2 | URL
명절 연휴가 길게 느껴졌는데 언제나 끝이 있다는 게 좋네요. 명절을 끝내고 나면 속이 시원해요. 요즘 날씨가 좋다고 느낍니다. 한낮엔 뜨겁긴 하지만 한여름 정도는 아니고 아침저녁으론 덥지 않으니 가을 같아요. 잠을 잘 때 얇은 이불을 덥고 잡니다. 밤엔 이불 없이 못 자겠더라고요. 가을인 거죠. 희선 님도 감기 조심하시고 편안한 가을 맞이하길 바랍니다.^^

Vanessa 2024-10-08 1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타필드인가봐요??^^
 

















미셸 드 몽테뉴, <에세 1>


그러니 누구나 수긍하는 견해로, 아이를 부모의 무릎 위에서 키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현명한 부모조차 자연적인 애정 때문에 물러지고 느슨해지니까요. 그래서 아이가 잘못을 저질러도 벌할 수가 없습니다. 또 아이는 거칠고 과감하게 키워야 하는데 그것을 두고 보질 못합니다. 부모들은 자식이 운동을 한 뒤 땀 흘리며 먼지를 뒤집어쓰고 돌아오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 몽테뉴, 「에세 1」, 284쪽. 


더운 것을 마셔도, 찬 것을 마셔도, 다루기 힘든 말을 타도, 거친 검술 선생에 맞서 검을 쥐고 있는 것도, 생전 처음 화승총을 든 것도 차마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니, 자식을 남자다운 남자로 만들려면 어렸을 때부터 봐줘서는 안 되고 의학이 명하는 규칙도 종종 어겨야 합니다.

- 같은 책, 285쪽.


⇨ 아이가 잘못을 저질러도 벌하지 않고 자녀를 과잉보호하는 부모들이 있다. 그런 부모들은 자녀가 응석받이로 자라나 성인이 되어 직장 생활을 하게 될 때 잘 적응할 수 있을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자식을 귀하게 여길수록 매를 들어야 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아이에게 해롭기 때문이다. 


그를 야외에서, 불안 속에 살게 하라.

호라티우스

- 같은 책, 285쪽. 


⇨ 몽테뉴(1533~1592년)는 자식을 키울 때 거칠고 과감하게 키우라면서 ‘불안 속에 살게 하라’는 호라티우스의 말을 인용한다. 불안 속에 살게 해야 불안을 극복할 힘이 생기기 때문이리라. 세상살이가 고달플 때를 대비해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몽테뉴의 글을 읽으니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며칠 전의 사건이 떠오른다. 그 사건은 방송을 통해 알려졌다. 「한 남성이 치과에서 충치 치료를 받고 20만 원을 결제했는데, 이 남성의 어머니가 "어떻게 보호자의 동의도 없이 그냥 치료하느냐"며 치과에 환불을 요구한 일이 있었습니다.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던 이 남성, 다 큰 23살 아들이었습니다. (중략) 이 남성의 어머니가 치과에 전화해서 "우리 아이가 뭘 안다고 보호자 허락 없이 그냥 치료하냐?"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과잉진료, 과잉청구한 거 아니냐?" "내가 환불받으러 갈테니 기다려라"라고 화를 냈다는 거죠.」(YTN, 2024.08.28.) 이후 어머니는 보건소에 신고했고, 치과에서는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아들이 23살이면 성인인데 아직도 부모가 애 취급을 한다면 도대체 아들이 몇 살이 되어야 애 취급을 하지 않을 것인지 궁금하다. 그렇게 부모의 보호 아래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난 아들이 군대에 가면 군대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또 앞으로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대학생인 자녀의 수강 신청을 대신해 준 학부모의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부모의 지나친 과애가 자식의 인생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지 않던가. 자녀들이 인생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부모는 옆에서 돕는 정도에 그쳐야 바람직할 것이다.  


이런 까닭에 신체가 아직 유연할 때 모든 방식과 관습에 적응시켜야 하는 것이지요. 인간이 욕망과 의지를 통제할 수 있는 이상, 젊은이를 과감하게 단련시켜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나 잘 적응하고, 필요할 땐 무절제와 과도함까지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젊은이가 시속(時俗)에 걸맞게 처신하게 하십시오.

- 같은 책, 308~309쪽.




그것을 알기만 하는 자보다 행하는 자가 이 가르침을 더 잘 이용하는 것입니다.

- 같은 책, 310쪽.


우리의 아이는 배운 것을 읊조리기보다는 몸으로 행해야 합니다. 배운 것을 행동으로 복습해야 합니다.

- 같은 책, 311쪽.


⇨ 알기만 하고 아는 대로 행하지 않으면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 예로 양보와 배려를 미덕으로 알고 있으면서 폭력을 행사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학교를 중퇴하는 경우도 있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음주 운전을 하면 안 된다고 알고 있으면서 음주 운전을 한다면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기가 받은 교육을 자랑거리가 아니라 자기 삶의 규율로 삼는 사람, 자기 자신에게 복종할 줄 알고, 자신의 원칙에 충실한 사람”(키케로)인지 봐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대로 보여 주는 진정한 거울은 우리 삶의 모습입니다.

- 같은 책, 311쪽.





....................

‘화요 발췌와 단상’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4-09-03 19: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별마당 도서관이군요. 사진으로는 여러번 봤는데, 한번도 가보지는 못했어요.
코엑스 공간이 크니까 책도 많을 것 같고, 좋을 것 같습니다.
더운 날씨 많이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오후는 여전히 덥네요.
잘 읽었습니다. 페크님,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4-09-04 22:04   좋아요 2 | URL
별마당 도서관, 굉장해 보였어요.규모가 크더라고요. 다음에 또 사진 올릴게요. 그게 더 멋진데 별마당 도서관, 이란 글자가 없는 사진이라 위의 사진을 먼저 올렸어요. 저는 코엑스 안 가고 수원에 있는 스타필드에 갔고 그 안에 별마당 도서관이 있더라고요. 스타필드가 곳곳에 많이 생겼는데 쇼핑하다 보면 탁 트인 공간이 매우 넓어서 많이 걷게 되어요. 이젠 뭐든 대형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편안한 맘으로 늦여름을 즐기십시오.^^

서니데이 2024-09-04 22:55   좋아요 2 | URL
수원의 스타필드에도 별마당 도서관이 있었네요. 사진만 보아도 좋으니까 다음에 또 사진 보여주세요.
페크님,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4-09-05 11:42   좋아요 2 | URL
예, 다음에 또 사진 올릴게요. 부족한 글을 사진으로 카바해 보겠다는 마음이 깔려 있는 거죠. 우하하~~~
오늘은 날시가 흐려 햇볕이 뜨겁지 않으니 늦여름 같이 느껴집니다. 서니데이 님도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stella.K 2024-09-03 1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충격이네요. 보호자의 동의...? 우리나라 부모의 수준이 설마 그 정도는 아니겠죠?
인요한 씨 아시죠? 언더우드 3센가 하시는 분.
그분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자기를 혁대로 때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좀 놀랐습니다. 그렇게 고상한 가문의 사람도 맞을 땐 무섭게 맞앗구나.
요즘엔 학생들이 학교에서 책상에 엎드려 자도 선생님이 제제를 못한다고 하더군요.
학생 인권 때문에. 그게 무슨 학생 인권이라는 건지 원.
저 초등학교 때 같은 반 남자 아이 어머니 학교에 오셔서 담임 선생님이 자기 아들래미 때려 달라고
부탁하던 게 아직도 잊히지 않고 있어요. 울나라 사람들 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데
그런 부모가 과연 이 시대에 있을까 싶기도 하네요.

저도 몇년 전 별마당 도서관 간 적있는데 아직도 건재한가 봅니다.^^

페크pek0501 2024-09-04 22:10   좋아요 1 | URL
요즘 부모들 과잉보호가 심한 경우 많아요. 우리 아이 보내겠다고 미용실에 전화 와서 나중에 보면 그 아이가 수염이 난 성인이라잖아요. 학교 선생님이 때리면, 학부모가 찾아와 나도 안 때리고 키운 애를 당신이 뭔데 때리느냐고 한다고 하잖아요. 혁대로 때리는 건 좀 안 좋겠네요.ㅋ 옛날 학부모님들은 선생님 앞에서 예의를 갖추고 깍듯이 대했지요. 쇼핑 하실 일 있으면 스타필드, 한 번 가 보시길 추천합니다. 저도 우리 애들 따라갔어요. 인터넷으로 스타필드로 검색하면 여러 군데 나옵니다. 그렇게 넓은 쇼핑몰은 처음 봅니다. 운동장급이에요.^^

꼬마요정 2024-09-03 2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마당 도서관 여전하군요. 예전에 한 번 가봤는데 정말 멋지다 생각했어요. 이런 곳들이 계속 살아남으면 좋겠습니다.^^

몇 년 전에 제가 일하던 사무실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요. 실수가 잦은 직원이 있었는데 일과 관련해서 문책하니까 직원 아버지가 직접 와서 난리 치다 갔죠. 결국 그만뒀는데 다 아버지가 처리해줬어요. 당황스러웠답니다. 그 직원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요...

페크pek0501 2024-09-04 22:15   좋아요 1 | URL
멋져서 저도 사진으로 남겼어요.
그런 아버지가 계셨군요. 요즘 아이들을 하나 둘만 키우다 보니 공주님, 왕자님으로 키워 문제인 것 같아요. 과잉보호 속에서 자라서 그들이 어른답게 살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다른 한쪽에선 자녀에 대한 무관심 내지는 아동 학대가 있고... 꼬마요정 님, 오랜만의 방문이네요. 반갑습니당~~ 잘 지내십시오..^^

희선 2024-09-05 0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무살 넘었는데 부모 동의를 받고 치과 치료를 받아야 하다니... 수술이라도 하는 거면 동의 받아야겠지만... 예전에도 자식을 과잉보호하는 사람이 있었겠지만, 시간이 흐르고 더 많아진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은 아이를 밖에서 놀게 하지 않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사람도 많다고 하더군요 안전이 걱정돼서 그런 거겠지만... 어느 정도는 자식을 그냥 놔두기도 해야 할 텐데 말이에요


희선

페크pek0501 2024-09-05 11:41   좋아요 0 | URL
요즘 아이들이 똑똑하긴 해도 성숙하지 못한 게 부모들의 지나친 관심 때문인 듯해요. 자립심을 키워 주고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데 말이죠. 저렇게 어머니가 이의를 제기하고 만약 돈을 찾아온다면 그 아들은 혼자 판단해서 하는 일을 주저하게 되고 점점 자신감을 잃게 되지요. 그런 부모의 행동이 자식을 바보가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란 걸 인지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를 포함해 모든 부모들이 중심을 잘 잡아야겠어요.^^
 

1. 세월 앞에 장사 없음


이달 초 강남역 부근 한 카페에 간 적이 있다. 그 카페는 1, 2층으로 되어 있었다. ‘퍼펙트 데이즈’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 있어서 간 것인데, 지인이 참여하는 모임이었다. (내가 매달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영화 모임’은 따로 있다.) 참석자수가 적어 참석자가 각자 한 사람씩 데리고 오기로 했다며 지인이 내게 참석해 달라고 해서 가게 되었다. 참석자들은 2층에 모여 있었는데 나까지 합해 6명이었다. 약속 시간에 늦지는 않았으나 내가 가장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다들 음료 주문을 끝낸 상태여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나만 1층으로 내려가 종업원에게 커피를 주문해 놓고 기다렸다. 


내가 주문한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나오자 20대로 보이는 여성 종업원이 내게 친절하게 말했다. “어머님, 커피 나왔어요.”라고. 어머님, 이라는 말을 듣자 나는 순간 당황했다. 내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런 서글픈 느낌은 30대 후반에 처음으로 아줌마라는 칭호로 불려서 내가 이제 더 이상 미혼 여성으로 보이지 않는구나 하고 느꼈던 것과 비슷하였다. 


종업원에 대해 말하면 “손님, 커피 나왔어요.”라고 말해야 할 것을 신참이라 말실수를 한 것으로 여겼고, 나도 과년한 딸이 있으니 어머니라고 부른 것이 잘못한 일은 아니라고 여겼다. 다만 20대가 나를 보고 어머니라는 호칭을 쓸 정도로 내가 늙어 보임이 증명된 게 싫었을 뿐이다. 게다가 내가 젊은이들처럼 청바지에 남방을 입었으니 옷 때문에 늙어 보였을 거라고 합리화할 수도 없었다. 나에게 젊어 보이는 동안의 얼굴이라고 했던 딸의 말을 내가 철썩같이 믿었다는 걸 깨달았고,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날의 경험은 세월 앞에 장사 없음을 새삼 실감하게 해 주었다. 





남자 주인공이 조카딸과 함께 찍은 사진.  



2. 퍼펙트 데이즈


그날 카페에서 ‘퍼펙트 데이즈’라는 영화에 대해 두 시간 동안 6명이 얘기를 나누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다른 이들이 무엇에 대해 말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한 얘기는 기억이 난다. 나는 남자 주인공에게서 풍기는 품격에 대해 얘기했다. 영화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영화 속 주인공 ‘히라야마’는 도쿄에 있는 공공시설의 화장실을 청소하는 중년 남성이다. 그의 특징으로는 말수가 적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는 매일 출근하여 화장실 바닥은 물론이고 변기도 깨끗하게 닦는다. 그가 닦은 변기는 번들번들 광이 날 정도다. 누군가가 그를 본다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묻고 싶을 정도로 정성 들여 청소한다. 그는 출근하기 위해 트럭을 운전하면서 올드 팝송을 듣고,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잘된 사진만 추려서 모아 두는 취미가 있으며, 퇴근한 뒤엔 단골 식당에 가서 술 한 잔을 마신다. 서점에 들러 책을 사기도 하는데 밤잠을 자기 전엔 늘 문고판 책을 읽는다.


관객의 입장에서 그런 그를 보면 매일 반복되는 평온한 생활에 그가 만족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화장실 청소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그가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나의 추측으로는 고통 속에서 살았던 과거의 힘든 시간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본다. 혹독한 고통에 빠져 본 사람만이 고통이 없는 일상적 삶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밤에 찾아온, 오랜만에 보는 여동생과 만나는 장면에서 반가워하기보다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던 것은 그가 가족과 관련 있는 아픈 과거를 가졌음을 짐작케 한다. 이것이 그가 가족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에게서 품격이 느껴지는 건 신기한 일이다. 이 영화는 마치 관객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화장실 청소부로 일하는 이 남자는 하루하루의 생활에 성실히 임하면서 인생을 즐길 줄 알며 품격 있는 삶을 산다. 여러분은 왜 이렇게 살지 못하는가? 그가 할 수 있는 건 여러분도 할 수 있다.라고. 이것은 그저 나의 감상임을 밝힌다. 실제로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나의 감상과 무관할 거라는 얘기다.


 

....................

참고로 이 영화는 독일의 유명한 감독이 만든 일본 영화다. 

개봉일은 2024.07.03.’이었다.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곰곰생각하는발 2024-08-29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 대한 글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페크pek0501 2024-08-29 16:13   좋아요 0 | URL
오호! 곰곰 님, 첫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너무 주관적인 영화 감상인 점을 고려해 주십시오. 저만 그렇게 느꼈을 것 같거든요.^^

2024-08-29 1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8-30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8-29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8-30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4-08-30 0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이 영화 이야기는 조금 보기도 했어요 자기 일을 하고 밤엔 자신이 좋아하는 가게에 들르고 집에서는 책을 보는 생활, 멋지기도 하네요 혼자 산다고 쓸쓸할 거다 생각하면 안 될 듯합니다 자기 나름의 생활이 좋지요 이 영화 이야기를 두 시간이나 다른 분과 함께 나누셨군요 그렇게 해서 더 오래 기억하시겠습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24-08-30 11:57   좋아요 1 | URL
독일의 유명한 감독이 만든 일본 영화라고 하네요. 지옥에 한번 빠져 보면 일상생활의 소중함을 알게 되지요.
우리가 며칠이라도 전쟁을 겪고 나면 아마 평온이 주는 행복을 절실히 느낄 듯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24-08-30 1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4-08-31 12:53   좋아요 1 | URL
어제 저녁 운동하고 집에 오는데 시원한 바람이 불었어요. 늦여름 같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계절 늦여름이죠.
폭염의 고생을 끝냈다며 숨을 돌리고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계절이죠. 낮에만 폭염, 아침과 저녁으론 덜 더우니 확실히 여름이 가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 모두 폭염을 견디느라 고생했어요. 조금만 더 고생하면 될 듯합니다. 벌써 내일은 9월입니다.^^

2024-09-03 14: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9-03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9-03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9-03 1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9-03 1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9-03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24-09-04 15: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저는 할머니 소리도 들었는걸요..
우리 아이들과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귀여운 유치원생 아이 두명이 있어, ˝둘이 친구야?˝ 했거든요. 답변도 들었고요.
화기애애했는데 갑자기 ˝할머니는 몇층 가세요?˝ 하더라구요. 당황해서 내리는데 ˝감기 조심하세요˝ 까지....
우리 아이들은 키득거리고....
생각해보니. 이 아이도 나에게 말을 걸고 싶었는데 아줌마는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 친구니 아닐듯하고...자연스럽게 나온듯 합니다. 많이 슬프기는 했지만요^^

퍼팩트 데이즈 이런 내용이었군요. 알찬 요약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24-09-04 22:21   좋아요 1 | URL
하긴 저도 손주 본 친구가 있긴 해요. 그래도 친구가 열 명이 넘는데 그중 두 명만 그래요. 요즘 결혼을 늦게 하는 추세다 보니 할머니 되는 게 오래걸릴 모양이에요. 세실 님은 젊으실 것 같은데요... 저는 그저께 대학원생으로 보인다는 립서비스를 받았는데 그게 립서비스인 줄 알면서도 기분이 괜찮더라고요. 아직 젊어 보이는 게 좋은 걸 보면 마음은 늙지 않았나 봐요.
퍼펙트 데이즈, 혹시 나중에 넷플에 뜨면 꼭 보시어요. 품격 있는 삶을 보는 재미가 있어요. 세실 님 반가웠습니당~~

댄스는 맨홀 2024-09-05 1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직원분이 저보다 나이 많으신데 어머님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속으로 이건 뭔가 했습니다. 마트에서는 보통 어머님이라는 호칭을 즐겨 사용하나 봅니다. 하지만 불편하더라구요.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훈훈한 느낌이 전해졌습니다. 그래도 할머니라고 부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답니다. ㅎㅎㅎ / 품격있는 삶이라, 나이들면서 점점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페크pek0501 2024-09-05 12:38   좋아요 1 | URL
앞으로 저는 어머님, 이라는 호칭에 익숙해져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점점 나이 들어 갈 테니까요.ㅋㅋ
퍼펙트 데이즈는 잔잔한 호수 같은 영화였어요. 평범 속에 행복이 있다는 이 낡은 문구에 저절로 공감하게 만들어요. 품격 있게 보이려면 일단 말이 별로 없어야 할 것 같고(촐랑대면 안 되니까) 화를 잘 안 내는 성격이어야 할 것 같고(따뜻함이 느껴져야 하니까) 자기 직업에 충실하고 성실한 생활인의 모습을 보여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성공한 삶만큼이나 품격 있는 삶을 사는 것도 어렵겠지요.^^

2024-09-08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9-11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