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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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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달과 6펜스>에 매료되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는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한 소설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더라도 독자는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화가로서 성공한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이 소설의 핵심은 화가로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하는 결과가 아니라 ‘어떤 삶의 과정을 거쳐 성공에 이르게 되었는지’가 될 것 같다. 그 과정의 전개가 이 소설의 줄거리인 셈이다. 서머싯 몸은 고갱의 생애를 연구하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이 책의 줄거리를 구상했다고 한다. 아마 서머싯 몸은 폴 고갱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의 화가로서의 천재성이 흥미로웠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 소설에서 내가 제일 주목한 것은 예술가로 살게 되는 스트릭랜드의 내면의 세계다. 때로는 위악적이고 때로는 냉소적이고 남녀 간 사랑의 가치를 무시하고 도덕 같은 건 아예 고려해 보지 않는 듯한 예술가의 독특한 내면을 들여다보는 건 흥미로웠다. 인간의 유형 중에서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햄릿형이 있고 세르반테스가 창조한 돈키호테형이 있듯이 서머싯 몸이 창조한 스트릭랜드형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을 정도다.

 

 

 

이 소설을 오래전에 읽었다. 이번에 두 번째로 읽으면서 서머싯 몸이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작가였구나, 하고 새삼 놀랐다. 사실 처음에 읽었을 땐 반전이 있고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반했는데, 이번에 읽으면서는 인간의 내면을 통찰하는 화자의 생각에 반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고전 소설이 이 정도면 문학성뿐만 아니라 대중성까지 확보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읽으면서 이 소설의 팬이 되었다.

 

 

 

다른 소설과  ‘재미’를 비교하자면 <달과 6펜스>는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보다 재밌고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만큼 재밌다. 내가 이렇게 재밌다고 느끼는 이유는 이번에 <달과 6펜스>를 읽으면서 그 뒷얘기가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 없던 게 여러 번이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읽는다고 해도 큰 물줄기의 내용만 생각날 뿐 작은 물줄기의 내용은 생각나지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궁금증을 가지며 읽을 수 있었다.

 

 

 

작가가 글을 쓸 때 글쓰기의 제일의 목적은 자신이 즐겁기 때문이리라. 아무리 부와 명성이 따른다고 해도 글쓰기가 즐겁지 않다면 많고 많은 일들 중에서 글쓰기를 택할 이유가 없다. 두 번째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독자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자는 한가로워서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바쁜 와중에도 책의 내용에 끌려 어쩔 수 없이 책을 놓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독자를 즐겁게 해 줄 것을 의무로 느껴야 한다. 그 의무를 소홀히 할 때 독자는 그 작가를 외면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소설이 아무리 명작이라고 해도 독자로 하여금 인내를 갖고 읽게 하는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잠을 자야 할 시간에 잠을 자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재미가 느껴지는 작품을 좋아한다. <달과 6펜스>처럼 말이다.

 

 

 

 

 

 

 

2. 줄거리 일부를 소개하다

 

 

 

스트릭랜드는 왜 가출했을까?

 

 

 

증권 중개업자인 찰리 스트릭랜드는 어느 날 갑자기 가출한다. 그에겐 아내가 있고 두 남매의 자식이 있으며 결혼한 지 17년이 되었을 때이다. 그는 가출한 이유에 대해선 한마디 없이, 내일 아침에 파리로 떠날 것이며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간략하게 쓴 편지 한 통만 아내에게 남기고 떠난다.

 

 

 

주위에선 연애 사건 때문에 그가 가출했다고 소문이 났고 그의 아내조차 남편에게 여자가 생겨서 가출했다고 생각했다. 그의 아내는 남편(스트릭랜드)이 돌아오면 지난 일로 그냥 묻어 두겠다고 하며 화자에게 파리에 가서 비싼 호텔에 묵고 있을 남편을 만나 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의 아내의 부탁을 받은 화자는 파리에 가서 직접 스트릭랜드를 만난다. 그런데 그는 비싼 호텔에 묵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여자와 함께 있지도 않았다.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겠지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께 무슨 잘못이라도 있나요? 그렇게 대하시니 말입니다.”

“없어요.”

“그럼 부인께 무슨 불만이라도 있으십니까?”

“없소.”

“그렇다면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십칠 년이나 같이 살아온 사람을,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이런 식으로 버리다니 말입니다.”

“심하지요.”(62쪽)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부인을 버렸단 말입니까?”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소.”(67쪽)

 

 

 

스트릭랜드가 가정을 버리고 떠난 이유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그는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일에만 몰두할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69쪽)

 

 

 

남의 아내를 빼앗아 함께 사는 스트릭랜드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 화자는 삼류 화가인 더크 스트로브와 함께 스트릭랜드를 찾아간다. 가서 보니 스트릭랜드의 방엔 난로가 없었고 테이블 위에는 그림 물감, 팔레트 나이프 등이 있었다. 그는 작아 보이는 침대에 불편스럽게 누워 있었는데 언뜻 보아도 몸에 열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태에 빠진 환자여서 그대로 두면 죽을 것 같았다. 더크 스트로브는 그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자기의 집으로 그를 데리고 가기로 마음먹고 집에 가서 아내를 설득한다. 하지만 아내는 스트릭랜드가 싫다며 집에 데리고 오는 것에 강력히 반대한다.

 

 

 

“그 사람은 훌륭한 화가야.”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난 그 사람 싫어요.”(129쪽)

 

 

 

이렇게 싫다고 말하는 아내를 간신히 설득하여 스트릭랜드를 자기 집으로 오게 하고 아내에게 스트릭랜드를 간호하도록 만든다.

 

 

 

이삼 주일이 지난 어느 날 아침, 화자는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가 우연히 스트로브를 만난다. 스트로브는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그 미소에는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화자는 나중에야 영문을 알 수 있었다. 스트로브가 화자를 찾아와 말해 주었다.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에게 이제 웬만큼 병이 나은 것 같으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가 당장 나가겠다고 하더란다. 그러고는 짐을 싸기 시작했는데, 스트로브의 아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더란다. 스트릭랜드가 모자를 찾는 중에 아내가 불쑥 이렇게 말하더란다. “여보, 저는 이 분을 따라가겠어요. 당신과는 이제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어요.”라고.

 

 

 

“모르시겠어요? 제가 스트릭랜드 씨를 사랑한다는 것을? 저이가 어디로 가든 전 저일 따라갈 거예요.”

“하지만 당신도 알지 않소. 저 사람은 당신을 절대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요. 당신 자신을 위해서라도 따라가선 안 돼. 당신 앞날이 어찌 되려고 그래.”

“다 당신 잘못이에요. 당신이 저일 데려오자고 우기지 않았어요.”(146쪽)

 

 

 

스트로브는 아내에게 또 한 번 떠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리하여 그의 아내와 스트릭랜드는 함께 살게 되고 만다. 스트릭랜드를 싫어한다고 강하게 표명했던 그녀가 스트릭랜드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었을까. 놀라운 반전이다.

 

 

 

여자가 자살하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 스트로브는 허겁지겁 방으로 들어와서 내가 앉아 있는 책상을 향해 다가왔다.

“자살해 버렸네.” 쉰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놀라 부르짖었다.(171쪽)

 

 

 

스트로브의 아내는 자살을 시도했고 병원에 실려 갔으나 죽고 말았다. 이에 대해 보통 사람 같았으면 죄책감을 가질 법도 한데, 스트릭랜드는 죄책감 같은 것을 갖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보면.

 

 

 

“여자는 사랑을 하게 되면 상대의 정신을 소유하기 전까지는 만족할 줄 몰라. 약해서 지배욕이 강하지. 지배하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못해. 여자는 마음이 좁아요. 그래서 자기가 모르는 추상적인 것에는 화를 내는 버릇이 있어. 마음을 쓰는 건 물질적인 것뿐이야. 관념적인 것은 시기나 하고. 남자의 정신은 우주의 저 머나먼 곳에서 방황하는데 여자는 그걸 자기 가계부 안에다 가둬두려고 하는 거요. (…) 나 자신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 내가 자기 것이 되어주기만 바랐지. 하기야 나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려고 했어요. 내가 원하는 것 한 가지만 빼놓고 말이오. 난 혼자 있기를 바랐거든.”(203쪽~204쪽)

 

 

 

혼자 있기를 바라는 남자와 함께 살았던 ‘스트로브의 아내’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녀의 자살은 그것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 블란치 스트로브는 나한테 버림을 받아서 자살한 게 아냐. 어리석고 균형 잡히지 않은 인간이라 그랬지. 자, 이제 그만하면 그 여자 이야기는 충분하오. 전혀 중요할 것 없는 사람이니까. 갑시다. 내 그림을 보여줄 테니.”(205쪽)

 

 

 

스포일러가 되지 않기 위해 줄거리는 여기까지...

 

 

 

 

 

 

 

3. 이 소설의 주제와 관련하여 말하다

 

 

 

이 소설의 주제는 작품의 제목에 함축되어 있다.

 

 

 

“달이 영혼과 관능의 세계, 또는 본원적 감성의 삶에 대한 지향을 암시한다면,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 그리고 천박한 세속적 가치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사람을 문명과 인습에 묶어두는 견고한 타성적 욕망을 암시한다. 『달과 6펜스』는 한 중년의 사내가 달빛 세계의 마력에 끌려 6펜스의 세계를 탈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 작품 해설, 310쪽.

 

 

 

이 작품의 뒷부분에서 아브라함이란 사람의 일화가 소개되는데 이 일화 속에 작가의 메시지가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일화란 아브라함이 외과의로서 출세가 보장된 길을 버리고 남 보기에 초라하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길로 가서 살게 된 것을 말함이다.

 

 

 

알렉 카마이클이 아브라함에 대해서 “사람이 자기 인생을 그렇게 망쳐버린다면 어처구니없는 일 아닌가.”라고 말하자 화자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정말 아브라함이 인생을 망쳐놓고 말았을까?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그것은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다.’(259쪽~260쪽)

 

 

 

이것이 작가가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겠다. 행복한 삶이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각자 자신의 생각에 좌우된다는 것이겠다.

 

 

 

요즘 실내에서 애완견을 기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 대부분은 개의 털을 손질하고 이를 닦이고 목욕을 시키고 배설물을 치우고 살면서 행복해 한다. 반면에, 개를 키우는 행복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그들을 보면서 ‘왜 사서 고생을 할까’ 하고 의아하게 여긴다. 행복한 삶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그렇게 다르다. 그러니 사회적으로 성공해 보이는 삶 - 높은 수입에 예쁜 아내가 있는 저명한 외과의로서의 삶 - 에 대한 생각도 각자 다를 수밖에 없으며 ‘행복한 모습’도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덧붙여 말하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6펜스’의 세계가 ‘달’의 세계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4. 나는 ...

 

 

 

스트릭랜드와 아브라함. 그들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기 위해 모험적인 삶을 택하고 안락한 삶을 버렸다. 그들처럼 우리도 ‘달’의 세계로 향하기 위해 ‘6펜스’의 세계를 버릴 수 있을까. 자신의 이상을 위해 현실을 버릴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없다. 나는 현실에서 한 발자국도 뗄 수 없다. 하지만 그럴 용기가 있었던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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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12-01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과 6펜스>와 비슷한 알레고리를 가진 이야기들은 책에서만 있는 이야기는 아닌 듯해요. 스트릭랜드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실제로도 적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이 소설에 매료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어떤 인물이 <인생이라는 모험에 찬 여행>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그 여행길에 올라선 여행객들이 한 곳에 오래 머물든 끝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든 그 모든 건 여행객들 각자의 취향에 달린 문제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인간의 마음'이란 '강물처럼'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을 탈 때도 있다는 것이지요.

* * *

"인간의 마음이란 한 번 새로운 생각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면 절대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 올리버 웬델 홈스

페크pek0501 2013-12-02 13:42   좋아요 0 | URL
오렌 님... 인간의 마음이란 강물처럼 되돌릴 수 없다는 것....
그걸 제가 글로 이미 써 놨어요. 아직 미완성의 글이지만.
한 번 마음먹으면 어쩔 수 없다는 내용이에요. ㅋㅋ
언젠 완성되면 꺼내 보도록 할게요.
늘 좋은 인용을 기대하겠습니다.
반가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3-12-04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미주의자들...극한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때 방해되는 것은 사람이든 뭐든 다 버리는 사람들이죠.그래서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들은 모두 작품 파괴 특히 불지르기 아니면 자살로 끝맺습니다.저는 미시마 유키오<금각사>, 오스카 와일드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연이어 읽기를 권합니다.단, 정신이 혼미해질 수도 있습니다.

페크pek0501 2013-12-06 10:22   좋아요 0 | URL
아, 노 님!
<금각사>는 읽었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보관함에 있어요.
미시마 유키오가 할복 자살을 했다고 해서 놀랐었죠.
예술가가 별난 건 있는 것 같아요.ㅋ

다크아이즈 2013-12-05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과 육펜스를 다 원해서 삶이 혼란스러운 경우도 있지요.
일직선 위에, 경상도 말로 쌔리빼딱하게 달쪽으로 많이 기울면 예술이 되고
육펜스 쪽으로 많이 기울면 허세 쩐 일상이 될 터인데,
저 같은 범부는 둘 다 쪽으로 쌔리빼딱하게 기울어지기를 바라니 되는 게 없사옵니다.
스트릭랜드는 완전히 달쪽으로 기운거지요. 그래서 예술은 위대한 걸까요?

서머싯 모옴이 얼마나 잘 쓰는 작가인가는 저도 이 책을 통해 일찍이 깨쳤지 뭡니까!
페크 언니, 12월에도 맹활약을^^*

페크pek0501 2013-12-06 10:25   좋아요 0 | URL
팜 님이 방문하신 건 오랜만인 것 같군요. 반가워요.^^
한동안 활동이 뜸하셨죠?
저야 뭐 맹활약을 하는 수준은 못 되고요... 그냥 꾸준히요...
저 같은 사람을 지구력이 있다고 하나요? ㅋ

앞으로 님의 맹활약을 지켜볼꼬예요. ㅋㅋ

루쉰P 2013-12-19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읽어 봐야 겠어요 ㅎㅎㅎ 가뜩이나 사놓고 읽다만 책이 많지만...아,,,페크님 리뷰 읽으니 사고 싶어졌어요...아...아...

내용은 참 흥미롭네요. 하지만 주인공이 자살한 여인에게 두고 생각하는 마음이나, 가정을 내팽게치고 자신의 그림만을 그리기 위해 산다는 태도는 좀 이기주의적이랄까...그런 생각이 드네요. ㅎ

하지만 흥미를 끄는 내용이에요 ㅋ

페크pek0501 2013-12-19 23:00   좋아요 0 | URL
아, 루쉰 님 오랜만이어요. 다시 활동 시작하셨나요? 반갑습니다.

이기주의자 맞습니다. 바람직한 인간형은 아니죠. 하지만 천재 화가인 건 틀림없답니다.
이 책 추천합니다. 재밌는 고전인데다 배울 점도 많아요.
작가가 인간에 대한 안목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이런 종류의 소설을 참 좋아합니다.
자주 뵙길 바랍니다.
 
“새로운”무의식 - 정신분석에서 뇌과학으로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김명남 옮김 / 까치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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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어떤 판단이나 결정을 할 때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감정이 생기기까지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우리는 알고 있을까? 그 해답을 이 책에서 기대할 수 있다.

 

 

 

어떤 일에 대한 판단과 인식에 관여하는 우리의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두 층위에서 작동한다. 의식이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의식은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의식 아래의 숨겨진 마음이다.

 

 

 

이 책의 제목 ‘새로운 무의식’은 프로이트가 연구했던 무의식과 구별된다. 프로이트는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환자들의 행동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정신적 과정에 지배될 때가 많다는 옳은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그것을 과학적으로 연구할 기술적 도구가 없었다. 오늘날에는 fMRI 등이 등장함으로써 과학자들은 뇌에서 벌어지는 일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무의식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오게 되었는데, 이런 연구 결과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새로운 무의식>이다. 그러니까 ‘새로운 무의식’은 프로이트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무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에는 여러 실험이 소개되는데, 각 실험을 통해 나타나는 결과뿐만 아니라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도 흥미롭게 읽힌다. 이 책의 특징이라면 각 장마다 그 주제에 맞는 금언을 넣어 읽는 재미를 더하게 만든 점이다.

 

 

 

 

밑줄긋기

 

....................

 

우리는 없던 일을 지어내서 기억한다 : 거짓 기억과 거짓 정보를 심는 것은 워낙 쉬운 일이라, 생후 3개월 된 영아, 고릴라, 심지어 비둘기와 쥐에게도 성공적으로 시도되었다. 특히 인간은 거짓 기억에 취약하다. 실제로 벌어지지 않았던 사건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짐짓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거짓 기억을 유도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 그는 그 사건은 “기억하되” 기억의 원천은 잊는다. 그래서 상상의 사건을 실제 과거로 혼동한다.(105쪽)

 

무의식은 감각이 제공하는 불완전한 데이터를 받아서 빈틈을 메우고, 그 인식을 의식으로 전달한다. 우리는 어떤 장면을 볼 때 사진처럼 선명하고 윤곽이 뚜렷한 그림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림의 작은 일부만 또렷할 뿐이고 나머지는 의식 아래의 뇌가 마음대로 그려낸 것이다. 뇌는 기억에도 그런 기교를 쓴다.(108쪽)

 

 

 

 

평가엔 무의식이 영향을 미친다 : 우리는 타인에 대한 자신의 평가가 합리적이고 의식적이라고 느끼지만, 사실은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인 과정들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212쪽)

 

이 발견 - 우리가 어떤 사람들과 어떤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더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 - 에서 자연스럽게 따라나오는 결론이 있다. 사람들은 사회적, 사업적 거래에서 내집단 구성원을 더 선호하고, 그의 작업과 결과물을 외집단 구성원의 것에 비해서 더 우호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비록 자신은 모두를 동등하게 대한다고 생각하더라도 말이다.(228쪽)

 

 

 

 

자신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 진화는 인간이 자신을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뇌를 설계하지 않았다. 인간의 생존을 돕도록 설계했을 뿐이다. 우리는 자신과 세상을 관찰한 뒤,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만 그것을 이해한다.(264쪽~265쪽)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 고등학교 최고학년 약 100만 명을 대상으로 했던 조사를 보자.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능력을 스스로 평가해보라고 했을 때, 100퍼센트(모두)가 자신을 평균 이상이라고 평가했고, 60퍼센트가 상위 10퍼센트로 평가했고, 25퍼센트가 상위 1퍼센트로 여겼다. 지도력에 대해서 묻자, 2퍼센트만이 자신을 평균 아래로 평가했다. 교사들이라고 더 현실적인 것은 아니었다. 대학교수의 94퍼센트가 자신은 평균 이상으로 일을 한다고 말했다. 심리학자들은 이처럼 자기 평가가 부풀려지는 경향성을 가리켜 “평균 이상 효과(above-average effect)"라고 부르며, 운전 실력에서 관리 능력까지 다양한 맥락에서 그 영향을 확인했다.(269쪽~270쪽)

 

이런 과대망상은 기업계에서도 법칙이나 만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사업가들은 자신의 회사가 동종업계의 다른 전형적인 회사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회사이니까.(270쪽)

 

 

 

 

우리는 과학자가 되기도 하고 변호사가 되기도 한다 :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진실에 이르는 길이 두 가지라고 말했다. 과학자의 길과 변호사의 길이다. 과학자는 증거를 모으고, 규칙성을 찾고, 관찰을 설명하는 이론을 구축하고, 그것을 시험한다. 변호사는 거꾸로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시키고 싶은 결론에서 시작하여 그것을 지지하는 증거를 찾아보고, 지지하지 않는 증거는 깎아내리려고 한다. 가끔은 객관적 진실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이 되고, 가끔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무의식적으로 열렬히 변호하는 사람이 된다. 두 접근법은 늘 겨루면서 우리의 세계관을 만든다.(273쪽)

....................

 

 

 

 

이 글의 마지막은 이 책의 표지에 있는 말로 마무리한다.

 

 

“자신이 하는 선택의 이유와 방식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가? 믈로디노프를 따라서 이 근사한 여행을 마치고 나면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 <인코그니토>의 저자 데이비드 이글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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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3-05-07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능력을 잘 모를 경우엔 과대평가하는 게 자신에겐 나은 것 같아요.
과소 평가해서 우울해하는 것 보단 과대평가해서 자신만만하다 보면 뭔가 진척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언제나 주춤하다 보면 길은 저만치 멀어져 있더라구요.
괜한 넋두리 페크 언냐께 하고 휘리릭~~

페크pek0501 2013-05-08 12:02   좋아요 0 | URL
최근 기죽었다가 괜찮아졌어요. 기죽지 않으려면 마음을 비우기, 가 답이더라고요. 마음을 비우면 비교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요. 마음 비우기 연습 중...
또 한 가지 필요한 것은 자신감인 듯해요.
과대평가할 수 있다면 본인에겐 좋은 것, 맞아요. 남들이 볼 땐 속터지려나요? ㅋㅋ
그래도 저도 저를 과대평가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우리에겐 착각이 필요한 듯...

저는 팜 님, 할 일이 쌓여 있는데, 진도가 느려서 늘 몇 박자 뒤처져 살고 있는 느낌이에요. 게획을 세우지만 실천은 반밖에 못해요.
영차, 영차!!! 팜 님이 좀 끌어 주시길...^^

수이 2013-05-08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는 음 역시 보통 사람들이 대개 갖고 있는 거였군요.
하지만 저는 살림에 있어서만은 역시 작아질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해도 늘지를 않네요. 후훗.
시엄마는 역시 이런 말씀을 하셨지만요.
"책 읽는 거 즐기는 것 절반이라도 보태서 살림을 즐긴다면
그런 소리는 못할텐데 -_-;;;;;"

애교에 있어서만은 역시 자신 있는지라 번번이 애교로 넘어가지만
역시 살림을 잘하시는 분들 보면 부러워져요 한없이 ^^;;

페크pek0501 2013-05-08 13:2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사람들은 자신을 과대평가해요... 저는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저만은 살아남을 것 같단 생각을 하는데, 이것도 일종의 과대평가예요. 나만은 운이 좋을 거야, 하는...

살림... 앤 님도 저와 같은 과의 분이시군요.ㅋ 저도 주부 경력이 몇 년인데 아직도 부엌에서 유능한 주부생활을 못해요. 반찬 만큼은 친정 엄마를 닮아서 곧잘 맛을 내지만 유능하게 척척 하는 게 아니라 끙끙 대며 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짧은 시간에 몇 가지의 반찬을 척척 해 내는 우리 시누이 형님 같은 분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감탄을 하지요.

애교... 저는 애교도 없어요. 후후~~

노이에자이트 2013-05-08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을 읽으면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됩니다.인간의 기억은 일종의 가공을 거쳐 형성되니까요.이것이 집단적인 기억이 될 때 무의식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 하는 것도 학자들 간에 큰 쟁점이고요.

페크pek0501 2013-05-08 13:29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입니다.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으면 이해가 되지요.

저도 제 기억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기장을 보고 알았어요.
일기장에 써 있는 것과 제 기억이 정반대여서요.ㅋ


프레이야 2013-05-09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끌리네요.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을 아는데
결국 마음에 품은 건 다 해내더라구요. 하지만 자기중심적인 성향이나 폭력성이
나타나는 경우를 봤어요. 놀랍더라구요. 모든 면에는 중도가 필요한 것도 같고요^^

페크pek0501 2013-05-11 14:07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었네요, 프레이야 님!
왜 이리 바쁜지 모르겠어요. 이번 달엔 행사가 많은데다 오늘은 친척 칠순잔치에
가야 하고 다음 주엔 절에 가야 하고...

중도, 중용의 자세가 제일 좋겠죠.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이 성공한 삶을 살 수 있겠고,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남들에겐
거부감을 갖게 할 수 있겠죠.
우리 둘째 애의 말에 따르면, 공부 잘하는 애들이 싸가지가 없대요. ㅋ
아마 성공한 사람들이 싸가지가 없을 걸요?ㅋ

자신을 과대평가하되, 남들 앞에선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할 듯해요. 그러니까 남들에겐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 하는 객관적 시각이 필요한 것 같아요.

좋은 봄날 보내시고 있겠죠?
 
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몇 개의 낱말을 중심으로 리뷰를 써 보았다.

 

 

 

1. 오해 : 말은 오해를 낳는다. 행동도 오해를 낳는다. 그래서 세상은 수많은 오해로 만들어진 각각의 세계를 구성한다.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자신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미 머릿속에서 각본을 미리 짜 놓고 그것을 상대에게 꿰맞추기 일쑤다. 그래서 진실은 굴절된다. 종종 억울한 일이 생기곤 하는 이유다.

 

 

소년은 일주일에 한 번씩, 수요일마다 자전거를 타고 피아노를 배우러 다닌다. 피아노를 가르치는 미스 풍켈 선생님은 매우 엄격하고 신경질적으로 화를 잘 내는 사람이다. 어느 날 소년은 10분 지각을 하여 피아노 선생님을 화나게 만든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하르트라웁 박사님 댁 오소리개가 소년을 한참 동안이나 울타리 곁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도중에 자동차를 두 대 만났으며, 네 명의 행인을 앞질러야만 했기 때문에 지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소년에게 늦은 이유에 대해 변명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제멋대로 이렇게 말한다.

 

 

“그럼 그렇지, 개하고 놀았겠지! 얼음과자도 하나 사 먹었을 테고! 너 같은 애들은 내가 잘 알고 있어. 히르트 아줌마네 구멍가게를 끊임없이 들락날락하면서 얼음과자나 사 먹을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

 

 

소년은 이런 오해를 받는 게 분했다. 너무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혀 버렸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가방이나 열고 악보나 꺼내서 뭘 배웠는지나 해 봐! 보나마나 연습도 안 했겠지!”라고 피아노 선생님은 소리를 꽥 질렀다.

 

 

소년은 피아노 선생님이 숙제로 내 주었던 연습곡이 굉장히 어려운 것이라서 거의 연습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오소리개의 공격을 비롯하여 흥분되는 일들을 겪었고 지각했다는 이유로 선생님의 혹독한 꾸지람을 들어서 소년의 마음은 흙탕물이 튄 옷처럼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으므로 그 곡을 잘 칠 수가 없었다.

 

 

소년이 피아노를 잘 치지 못하자, “내가 그럴 줄 알았지!”하면서 피아노 선생님은 어금니 사이로 뱉어 내는 듯한 말로 화를 냈다.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네 녀석이 암만 그래도 네까짓 녀석이 나를 갖고 놀게는 안 해, 알았어? 내가 이렇게 화만 내고 말리라고는 꿈도 꾸지 말아라! 네 엄마한테 전화할 거야. 네 아빠한테도 전화할 거야. 네 녀석이 일주일은 제대로 앉지도 못할 정도로 흠씬 두들겨 패 주라고 할 거야! 앞으로 3주일 동안은 집 밖으로도 내보내지 말고, 하루에 세 시간씩 앉아서 사 장조를 연습시키라고 하고, (…) 내 맛 좀 보라구, 이 말썽꾸러기 같은 녀석 같으니라구! (…) ”

 

 

소년이 피아노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마지막 말은 이렇다.

 

 

“네 물건 싸 가지고 꺼져 버려!”

 

 

 

 

 

2. 자각 : 우리에게는 각자의 삶이 있고 그 삶 속의 저마다의 경험에서 각자 특유의 자각을 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어떤 것에 대해 처음 갖는 깨달음일 수 있다. 소년은 무엇을 자각했을까.

 

 

“나는 온몸으로 떨었다. 무릎이 너무나 떨려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고사하고 거의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 나를 그렇게 혼란스럽게 만들고, 오한이 날 정도로 몹시 흥분하게 만들었던 것은 미스 풍켈 선생님의 난리법석이 아니었다. 매 맞을 것과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감금이 무서워서 그랬던 것도 아니었다. 뭔가를 두려워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 것들보다는 이 세상 전체가 불공정하고 포악스럽고 비열한 덩어리일 뿐 다른 아무것도 아니라는 분노에 찬 자각 때문이었다.”

 

 

 

 

 

3. 결심 : 누구나 참담한 감정이란 수렁에 빠져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 수렁에 빠지면 혼자서는 빠져 나오기 힘들다. 정신이 극단적인 생각으로 향하게 만들며 비이성적인 최악의 상태에 이르게 만들기도 한다. 소년이 그랬다. 피아노 선생님의 꾸지람으로 인해 참담한 감정에 사로잡힌 소년은 자살을 결심한다.

 

 

“나는 앞으로는 결코 그 사람들이랑 같이 어울리지 않으리라!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하리라!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고 말겠다! 그것도 지금 당장!”

 

 

죽는 방법으로 소년이 택한 것은 덩치가 커다란 가문비나무에 올라가서 나무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것이었다. 떨어지는 것이 무섭지 않았다. 그것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소년은 자신이 죽은 다음에 일어날 아주 멋진 장례식을 상상했다.

 

 

 

 

 

4. 상상 : “아주 멋진 장례식이 되겠지! 교회 종이 울릴 테고,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지고, 윗마을에 있는 공동묘지는 수많은 조객들로 미어터지겠지. 나는 유리 관 속에 누워서 수많은 꽃 속에 파묻혀 있을 테고, 까만색 조랑말이 날 끌고 가면 사방에서 사람들의 통곡 소리가 요란하겠지. 부모님이 우실 테고, 누나와 형들도 울 테고, 우리 반 아이들도 울 테고, 하르트라웁 박사 부인과 미스 풍켈 선생님도 울 테고, 멀리서 찾아 온 친척들과 친구들도 엉엉 울면서 그들 모두 손으로 가슴을 치며 소리지르겠지. ‘엉 엉! 그토록 사랑스럽고 소중한 아이가 우리 곁을 떠난 것은 우리 잘못이야! 만약에 우리가 좀 더 잘해 줬더라면, 너무 못되게 굴지도 않고, 잘못을 저지르지만 않았더라면, 그 착하고 사랑스럽고 소중하고 상냥했던 아이가 아직도 우리 곁에 살아 있으련만!’”

 

 

이것은 매우 황홀한 상상이었다. 이 상상이 소년을 아주 행복하게 하였다.

 

 

 

 

 

5. 사소함 : 사소한 일로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가 많은 게 우리의 삶이다. 사소한 일로 국가 간의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사소한 일로 부부 싸움을 하다가 이혼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소함은 사소하다고만 볼 수 없는 그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소년은 죽기 위해 가문비나무에 올라갔다. 가문비나무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높이가 30미터쯤 된다는 것을 알았다. 소년은 잠시 생각하다가 눈을 감은 채 숫자를 세다가 ‘셋’하는 순간에 눈을 그대로 감은 채 허공으로 몸을 날린 다음 떨어지는 순간에는 다시 눈을 뜨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소년이 떨어지기 직전에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탁-탁-탁-탁’하는 소리였다.

 

 

“그러고는 갑자기 좀머 아저씨의 모습이 30미터 밑에, 그것도 내가 뛰어내린다면 나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저씨도 넘어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수직적인 위치에 나타났다. 난 나뭇가지를 손으로 꽉 부여잡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소년은 좀머 아저씨의 모습을 지켜본다. 그리고 소년은 좀머 아저씨가 자신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죽기로 한 것을 그만두고 나무에서 내려와 집으로 간다. 소년은 피아노 선생님의 꾸지람이라는 사소한 일로 자살을 결심했듯이 역시 사소한 일로 자살을 포기하고 만 것이다.

 

 

 

 

 

6. 좀머 씨 :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고 외치는 좀머 씨. 소년의 어머니는 그를 밀폐 공포증 환자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밀폐 공포증이 아주 심하단다. 그 병은 사람을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게 만들지.”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좀머 씨가 누구인지, 무얼 하는 사람인지 어디를 향해 걸어가는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멀리 사라지는 기차의 뒷모습과도 같은 유년기의 흐릿한 추억이 되돌아오는 기차처럼 또렷이 보이는 듯했다. 소년을 통해서 유년기의 나와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이 주는 멋진 선물이었다.

 

 

좀머 씨는 베일에 싸인 존재로,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동네에서 떠도는 소문뿐이다. 소년이 고통(또는 참담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좀머 씨에게서 자신보다 더 큰 고통(또는 참담함)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자신만이 느낀다고 생각한 어떤 감정을 남도 똑같이 느낀다는 것을 알고 공감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어릴 때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누구나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런 때에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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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5-08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을 보면 사랑을 느끼며 배우고
슬픔을 보면 슬픔을 느끼며 배우지요.

아름다움을 볼 수 있으면
우리를 둘러싼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갈
좋은 꿈 꾸리라 생각해요.

페크pek0501 2013-05-08 12:04   좋아요 0 | URL
그런데 우리 인간은 빛만 보는 게 아니라 그림자도 함께 봐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존재들이라서 말이죠. 빛과 그림자를 함께 끌어안아야 하려나요.

봄날이에요 함께살기 님. 좋은 봄날 보내세요. ^^

 
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결혼했던 1988년 그해, 남편이 내 이름을 부를 순 있어도 내가 남편의 이름을 부르는 건 허용되지 않았다. 감히 아내가 남편의 이름을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는 게 시집 식구들의 의견이었다. 우리 부부는 동갑이니 남편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남편의 이름에 ‘씨’자를 붙여 불렀고 남편은 나의 이름에 ‘씨’자를 붙이지 않고 이름만 불렀는데도, 내가 부른 남편의 호칭만 문제가 되었다.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여성의 낮은 위치를 뼈저리게 자각한 사건이었다.

 

 

이렇게 호칭 문제를 경험한 터라 책을 통해 페미니즘을 처음 만났을 때 무척 반가웠다.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보부아르 저, <제2의 성>,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자기만의 방과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울프 저, <자기만의 방>, 그리고 우리는 남성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쁜 원칙과 싸운다고 말하는 프리단 저, <여성의 신비> 등을 읽으며 세상의 불합리와 불공정을 배웠다.

 

 

그로부터 십 년의 세월이 흐르자, 아내가 남편의 이름을 불러도 괜찮은 시대가 되었다. 시동생이 결혼하여 새로 생긴 동서가 그걸 증명했다. 세월은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그렇게 높여 놨다. 이제 페미니즘이란 말은 진부하다. 그래서 누구나 페미니즘에 대한 모든 책들이 새롭지 않은 뻔한 주장을 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나도 그랬다.

 

 

그러다가 정희진 저,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었다. 그러나 이 책은 진부하지 않고 새롭다 못해 충격적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기존의 인식의 틀을 뿌리 뽑고 새로운 인식의 틀을 만들어서 세상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유지해 온 가부장제 사회의 통념을 전부 지워 버리고 새로운 내용으로 사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어떤 독자에겐 마음 불편한 책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남자에게 대항하여 싸우자고 소리치지 않으며, 여자의 힘을 기르자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남자든 여자든 우리가 인간으로서 올바르게 알아야 할 것들을 알려 주기 위해 세상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설명할 뿐이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가졌던 생각들이 맞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갖게끔 해 줘서 좋다.

 

 

 

 

질문은 질문하는 사람의 권력을 드러낸다

 

 

우선 저자는 머리말에서 ‘물음’에 대해 말한다. 모든 물음은 질문하는 사람의 사회적 위치와 사고방식을 반영한다는 것. 질문은 질문하는 사람의 교양과 예의뿐 아니라 권력을 드러낸다는 것.

 

 

 

 

“왜 여자들이 취업하려고 하지?”, “장애인도 애를 낳을 수 있나?”, “왜 노인이 사랑을 해요?”, “동성애자도 실연당해요?”, “흑인도 철학자가 될 수 있나?”, “(이주 노동자에게) 왜 한국에 왔나?” 이 같은 질문은 남성, 비장애인, 젊은 사람, 이성애자, 백인, 한국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권리가 어떤 사람에게는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할, 혹은 용서받지 못할 욕망으로 간주된다. 이처럼 질문은 묻는 자와 답하는 자 사이의 사회적 권력 관계를 반영한다. 여성은 남성에게 “왜 그렇게 취업하려고 노력하니?”와 같은 질문은 하지 않는다.(16쪽)

 

 

 

 

내가 무심코 한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니. 그렇다면 평상시 하는 말에도 주의가 필요하겠다. 나의 말에 어떤 편견과 선입감이 작용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검토해야겠다. 인간이 인간답게 인간을 존중하는 세상을 만들려면 우리의 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새삼 깨닫는다.

 

 

 

 

여성은 남성의 시각을 이어받는다

 

 

저자는 우에노 치즈코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여성주의 사유 방법의 출발은 “그들이 말하게 하라.”였다. 우에노 치즈코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문서화된 역사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여성의 역사가 출발하다 보니, 그동안 역사는 남성에 ‘의해’ 여성에 ‘대해’ 쓰여진 문서나 재현에 의존했다. 그러나 이제까지 남성들이 쓴 것은 여성에 대한 ‘사실’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여성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환상을 갖고 있는가와 관련된 남성들의 관념을 웅변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남성이 생산한 여성에 대한 지식은 남성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지, 여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다.(214쪽)

 

 

 

 

남성에 의해 쓰인 여성의 역사에서 여성의 모습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결국 여성 모두가 갖고 있는 시각은 남성이 만들어 놓은 잘못된 시각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에 불과함을 말하고 있다. 보부아르의 표현을 빌리면,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진다는 것이겠다. 이것이 세월이 흘러도 남성 중심의 사회가 그대로 유지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소수자이다

 

 

저자는 ‘동성애 혐오 문화’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한다. 자신이 동성애를 허용하자고 주장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누가 동성애를 ‘허용’하거나 ‘금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한다. 여성이나 흑인, 장애인 모두 누군가 ‘찬성’하지 않아도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동성애자 역시 누군가의 ‘동의’와 ‘허락’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동성애자임을 알리겠다는 위협이 한 사람의 인권을 몰수하는 ‘권력’일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에 깊숙이 퍼져 있는 동성애 혐오 문화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문제의 가해자는 사회 구성원 모두라고 볼 수 있다.(111쪽)

 

 

 

 

‘소수자’에 대해선 이렇게 언급한다. 인간은 누구나 어떤 면에선 소수자이며, 어느 누구도 모든 면에서 완벽한 ‘진골’일 수는 없다는 것,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성별과 계급뿐만 아니라 지역, 학벌, 학력, 외모, 장애, 성적 지향, 나이 등에 따라 누구나 한 가지 이상 차별과 타자성을 경험한다는 것, 그러므로 자기 내부의 타자성을 찾아내고 소통해야 한다고.

 

 

이 밖에도 성판매 여성, 군사주의와 남성성에 대해 새롭게 해석하며, 성비 불균형으로 인한 여아 낙태의 문제, 정신대 문제, 가정폭력 문제 등이 ‘인권’의 문제임을 지적한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많은 이들의 일상을 규율하고 있는 외모 ‧ 학벌 ‧ 나이 ‧ 서울 중심주의 등으로 인한 차별 사안도 인권 침해의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제도나 원칙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알랭 드 보통이 <불안>이란 저서에서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을 인용해 쓴 것, “어릴 때 우리 모두 가졌던 환상, 즉 우리가 살아가는 제도가 날씨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환상을 머리에서 씻어내야 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라는 글이 생각났다. 여기서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환상’이란 일시적으로 임시변통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제도를, 얼마든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제도를 마치 늘 존재해 왔고 또 늘 존재해야 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함을 말하는데, 이것은 명백히 위험하고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대부분이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게 어디 ‘제도’뿐이겠는가.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원칙들을 일말의 의심 없이 꼭 지켜야 마땅한 옳은 것들로 수용하여 고정관념의 노예로 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우리의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비해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요즘도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여자가 뭐 하러 밤늦게 싸돌아 다니냐?”라는 말로써 여성이 여성을 비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세상이다. 또 신문을 통해 한국인이 이주 노동자를 무시하는 모습도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사람을 존중하는 세상’에 살기 위해서 개선되어야 할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한, 이 책은 아직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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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2-16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 언니,
누구나 어떤 면에서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문구에 열렬히 공감해요.
제가 생각했으나 정리되지 않은 말들을 그대로 페이퍼화시킨 듯한 글이예요.

저는 현 제도가 이점이 있어서 지켜지는 것이기에 가능하면 지켜야 하지만
경직된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현재 제도나 나의 의견이나 틀릴 수 있다는 융통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너무나 경직된 저의 태도, 이미 욱한 감정 상태를 보면서 한숨을 쉬곤 해요. 흔히 타인의 경직된 태도를 비판하지만, 그에 앞서 내가 균형을 잡고 있는가를 살펴야 하는데,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균형이 아닌가 싶어지더라구요. ^^

페크pek0501 2011-12-16 21:40   좋아요 0 | URL
아, 첫손님! 마녀고양이님 고맙습니다.^^

마음의 균형 잡기, 참 어려운 일입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다가도 막상 어떤 화나는 일에 처하면 이성을 잃어 마음의 균형을 잃을 수 있죠. 그런데 균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이 지난 뒤에 자신을 돌아보고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이었는지를 올바르게 판단하는 일이 아닐까 해요. 실수는 누구나 하는데, 그것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사람과 성찰할 수 없는 사람의 차이는 크다는 것이죠. 마고님은 성찰하실 줄 아셔서, 제가 보기엔 괜찮은 것 같습니다. - 그런데 이런 말도 위의 리뷰글에서처럼 저의 권력을 드러내는 것인지 걱정?이 되는군요. (지가 뭔데 괜찮다고 그래, 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있을까 봐서요.) 농담임.ㅋㅋ 정말 말조심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오늘 날씨 무척 추워요. 하필 오늘 선배님집에 놀러갔다가 오는 길에 진짜 `겨울`을 만났어요. 겨울의 동반자, 감기 조심해요, 우리.

노이에자이트 2011-12-17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지금은 부부 간에 어떻게 호칭을 정했는지 궁금합니다.이곳 호남지방에선 중장년 이상의 남자는 아내에게 누구누구 엄마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죠.물론 누구누구는 아들이나 딸이름이죠.

페크pek0501 2011-12-18 01:18   좋아요 0 | URL
님의 질문에 생각해 보니, 지금도 그대로 부르고 있군요. 저는 씨자를 붙여서 남편을 부르고 남편은 그냥 제 이름을 불러요. ㅋㅋ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지는 것",이 말처럼 저도 이 사회에서 길들여져서 남편 이름을 감히? 못 부른 것이죠. 이렇게 어떤 문화를 수용해 버려서 고정관념의 노예가 되는 것이죠. ㅋㅋ 어른들 앞에서만 서로 아무개 엄마, 아무개 아빠라고 불러요.

마태우스 2011-12-17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 책, 제 인생에서 두번째로 많은 영향을 끼친 책입니다. 한줄 한줄이 다 예술이죠. 근데 이 책의 후반부를 차지하는 성매매 문제를 읽다가 "이게 참 쉬운 문제가 아니구나" 했었어요. 정희진님이 책을 좀 많이 썼으면 좋겠는데 너무 뜨문뜨문 쓰시더군요. 그나저나 님 <제2의 성> 읽으셨군요. 그거 읽은 분 찾기가 참 어려운데...사실 전 정말 의지, 끈기, 인내 이런 걸 다 동원해서 읽었어요. 빨간펜으로 줄만 빡빡 쳤다는... 그 시절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놀랍긴 한데요, 읽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여자였다면 좀 더 쉽게 읽었을까요? 암튼 님이 그 책을 읽으신 걸 안 게 반갑네요. 앞으로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릴게요

페크pek0501 2011-12-18 01:13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그런데 지도편달 부탁이라니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요? 큭. 마태우스님의 겸손? 배울 사람은 저인 것 같은데염.ㅋㅋ

성매매 문제, 저도 혼란스러웠어요. 그래서 이 리뷰에선 성판매 여성(밑에서 네 번째 문단에)이라고만 썼어요. 성매매 자체가 인권 침해인지, 아니면 그것의 금지가 생존권 침해인지..., 또 우리가 바라는 것과 성매매 여성들이 바라는 것이 다를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등 어려운 문제예요.

<제2의 성>, 다 읽으셨다니 저도 반갑네요. 초보 시절에 500쪽이 넘는 상하 권 두 권을 꼭 읽어야 페미니즘을 알게 되는 줄 알고 읽었어요.ㅋㅋ 저도 줄 치며 읽는 버릇 있어요. 읽었더니 이렇게 써 먹을 일이 있을 줄이야...
아, 그런데 님에게 첫 번째로 영향을 끼친 책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

2011-12-26 2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7 1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7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7 1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15-04-27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안해는 저에게 존댓말을 하고 저는 안해에게 존댓말을 합니다. 제 딸에게도 존댓말을 할 예정인데, 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습니다.

왜 pek0501 님은 배우자에게 상호 존댓말을 써 줄 것을 요구하지 않으셨나요? 그리고 저는 선생님이라는 직종만으로도 연하인 사람 모두에게 존댓말을 사용합니다.

2015-04-28 2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장류 인간과科 동물도감 - 나오키상 수상작가 무코다 구니코의 유쾌한 인간관찰기
무코다 구니코 지음, 곽미경 옮김 / 강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독서는 ‘자기 내면으로의 여행’이며 ‘자신과의 대화’라고 한다. 그 이유를 이 책 <영장류 인간과(科) 동물도감>이 알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 독서가 작가의 글을 읽으며 동시에 독자인 ‘나’를 읽는 행위임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일본 드라마 작가로 알려져 있는 무코다 구니코의 에세이 38편이 담겨 있는 책이다. ‘유쾌한 인간관찰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인간이 가진 불편한 진실에 주목했다.


불편한 진실 첫 번째.




길을 걷다보면 맞은편에서 부모형제가 걸어오고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때 나는 어쩐 일인지 너무 당황스러워 갈팡질팡하며 어디다 시선을 둘지 모르고 만다.


아, 하고 무심코 손을 들어 알은체하는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알아봤다는 걸 상대가 눈치 채지 않도록 모른 체한다. 서로 스쳐 지나가기 직전에 그제야 알아본 듯이 좀 무뚝뚝하게 말을 건다.


- ‘아는 얼굴’, 22쪽.





이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 자신의 경험을 딴 사람이 글로 옮겨 놓은 듯해서다. 나만 그런 줄 알았다. 이십대에 있었던 일이다. 혼자 가는 길에서 우연히 아버지를 만났는데 못 본 척하고 그냥 지나가고 싶었다. 그런 기분에 대해 그 누구하고도 얘기해 본 적이 없다.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어 버렸다가 이 글을 읽고 나에게도 그런 적이 있었음을 알았을 정도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작가의 능력에 감탄했다. 이런 걸 끄집어내어 글로 쓸 수 있다니.)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가장 친숙하고 가장 사랑하는 가족을 밖에서 우연히 보게 되면 반가워서 달려가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피하고 싶은 당혹감은 왜 일어날까. 어색함과 쑥스러움 때문일까.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일까. 상대가 부끄러워할 것 같아서일까.


불편한 진실 두 번째.




(태풍 오는 날에) 손전등을 비춰가며 화장실에 가고, 비바람 소리를 들으며 잠자리에 드는 것은 어린 마음에도 이상하리만치 흥분되는 일이었다. 형제간 싸움도, 부부 싸움도 태풍이 부는 밤만큼은 휴전이었다. 엄마와 할머니 사이의 약간 서먹한 기운도 수그러들었다. 그렇게 온 식구가 하나로 뭉쳤다. 나는 그런 게 너무 기뻤다.


이제나저제나 몹시도 긴장하며 기다렸던 태풍이 빗나가는 것만큼 재미없는 일이 또 있을까.


어른들의 말투나 몸짓에서도 (태풍이 빗나간 것에 대해) 분명 아쉬움 같은 게 느껴졌는데, 겉으로는 그런 걸 요만큼도 내색하지 않는 게 조금 얄미웠다.



- ‘태풍 오는 날’, 74쪽~75쪽.




인간 안에는 분명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걱정하던 태풍이 무사히 지난 간 것에 안심하기보다 어떤 아쉬움 같은 게 남아 있는 이 경우도 그렇다. 이제 더 이상 긴장감을 느낄 수 없음에 대한 아쉬움일까, 가족애가 오가는 시간이 끝났음에 대한 아쉬움일까.


불편한 진실 세 번째.




식사 시간에 온 손님은 반드시 밥을 먹고 왔다고 한다.


“뭐, 괜찮지 않은가요. 초밥 먹을 배는 따로 있다지 않아요.”

“정말 먹고 왔다니까요. 조금도 들어갈 배가 없어요.”

“아휴, 그러지 마시고 조금만 드셔보세요.”

“그럴까요? 그럼……”


아침을 어중간하게 먹어서 아직 배가 고프지 않다는 손님에게는 “그냥 맛이라도 ……”라고 권하면 대부분은 접시를 깨끗이 비운다. 하지만 먹고 왔다는 말을 해놓고 도중에 노선을 변경하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인지 끝까지 젓가락도 대지 않고 돌아가는 손님도 있다.


- ‘뻔한 인사말’, 86쪽~87쪽.




똑같은 상황이 연출되는 것을 보면 일본인이나 한국인이나 사람은 다 같은 모양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서 밥 먹고 왔다는 말을 한 것까진 괜찮다. 그런데 만약 한 젓가락쯤 먹고 싶은 상황이 되어서도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젓가락을 대지 않아야 한다면, 그런 인간의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다음과 같이 작가의 유머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주는 글도 있다.




(안경테가 망가져서) 노안경을 손보려면 (잘 보이지 않아) 또 하나의 노안경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손전등으로 손전등을 찾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나만 있어도 그걸로 충분하다.


깨끗하게 해놓지 않으면 혼이 날 것 같아 나는 비누를 씻기 위한 비누를 찾았다. 물론 비누를 깨끗이 하려면 더러워진 그 비누를 쓰면 된다는 걸 곧바로 깨닫고 혼자서 웃고 말았지만.


- ‘혼자서 웃고 말았다’, 78쪽~82쪽.





작가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해 주는 글도 있다.




시대극을 볼 때 가장 마음 아픈 건 애송이나 하급관리가 죽는 장면이다. 악당 두목을 따른 죄밖에 없건만, 버러지같이 무참히 죽는다.


나 같은 인간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는 순간은 시체가 되어 쓰러져 있는 배우들이 과격한 난투 끝에 숨이 가빠졌는지 참았던 숨을 후우 하고 내쉬거나, 거친 숨결 때문에 배가 불룩거리는 걸 보았을 때이다. 엄격한 연출가는 이런 장면을 NG로 판단해 다시 찍자고 하는데, 제발 그대로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다. 아아, 다행이다. 정말 죽은 게 아니야. 이제 저 사람들은 1만 엔이든 1만 3천 엔이든 일당을 받고 돌아간다. 이렇게 안심하는 마음 약한 관객도 있는 것이다.


- ‘베다’, 220쪽~221쪽.





이처럼 작가들의 훌륭한 점의 하나는 우리들이 무심한 채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잘 포착해서 글감으로 만드는 그 ‘찾음’의 능력일 것이다. 밀란 쿤데라가 <소설의 기술(책세상 출판)>에서 인용한 다음의 글도 그것을 말하고 있다. 
 

“시인은 시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시는 저 뒤쪽 어디에 있는 것

오래오래 전부터 그것은 거기에 있었고

시인은 다만 그걸 찾아내는 것일뿐.”(얀 스카첼)  
 

나는 <영장류 인간과(科) 동물도감>이 배달되던 날, 책을 펼치자마자 그날로 다 읽어 버렸다. 부담 없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읽은 조지 오웰의 에세이집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 출판)>와 비교한다면, 조지 오웰의 에세이가 세계의 ‘무거운’ 진실을 전하는 글이라면, 무코다 구니코의 에세이는 개인의 ‘가벼운’ 진실을 전하는 글이다. 그건 그것대로 이건 이것대로 매력이 있다.     


독자에 따라서는 정치적 목적을 중시하는 조지 오웰의 글에 더 가치의 무게를 둘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들의 삶이란 그런 무거움만으로 채워져 있지도 않고 또 무거움만으로 채워져서도 안 된다는 생각에서 이 ‘가벼운’ 내용의 책은 읽을 만하다. 코믹한 영화를 보듯 웃음 짓게 만드는 유쾌함과 봄 소풍을 가는 발걸음 같은 경쾌함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더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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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1-08-18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 오웰과 같은 이의 글만 읽을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도 일종의 허영심이겠죠.평이하고 잔잔한 글도 좋은데 말이죠.하긴 조지 오웰의 글도 늘 심각한 주제만 다룬 것만은 아닌데요.

페크pek0501 2011-08-19 11:5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나 좋을 대로'와 같은 가벼운 에세이도 있어요. ㅋ

평이하고 잔잔한 글의 매력을 아신다니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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