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체호프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박현섭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편집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단편집보다는 이야기가 쭉 이어지는 장편 소설을 선호한다. 그런데 열 편의 단편이 담겨 있는 <체호프 단편선>을 읽고 나니 이런 단편집이라면 얼마든지 애독할 수 있겠다고 느꼈다. 그만큼 모든 단편을 흥미롭게 읽었다. 


 
리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이 책에 담겨 있는 열 편의 단편 중 다섯 편만 선택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다섯 편의 선택은 나의 독서 취향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겠다. 이 리뷰를 읽는 이들이 다섯 편의 소개만으로도 체호프 단편의 진가를 알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다. 

 

 

 

 

1. ‘베짱이’ : 안타까움이 여운으로 남은 작품

 

여자의 이름은 올가 이바노브나, 남편은 이름은 드이모프. 올가 이바노브나는 22살에, 드이모프는 31살에 결혼식을 마치고 살림을 꾸리기 시작한다.

그녀는 노래하고 피아노 연주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고 연극 동호회에 참여했는데, 이 모든 일들은 단순한 심심풀이가 아니라 재능의 발현이었다. (···)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명한 사람들과 재빨리 사귀고 가까운 사이가 되는 일에서만큼 그녀의 재능이 돋보이는 경우는 없었다.(40쪽)

 

 

그녀는 예술을 사랑하고 화가, 작가 등의 유명한 사람들을 숭배하고 그들을 사귀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병원에 근무하는 남편 드이모프는 예술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자연과학과 의학에 매달리며 산다. 그녀는 남편이 예술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을 매우 심각한 결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잘생긴 화가 청년의 사랑 고백을 받게 되고 불륜의 사랑을 키우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랑에 집착하게 된 그녀는 나중에 화가 청년이 변심했음을 알게 되어 괴로워한다.

 

 

한편 남편 드이모프는 아내의 불륜에 대해 알고 있는 눈치였다.

 

 

아마도 한겨울 무렵부터는 드이모프도 자신이 속고 있음을 눈치 챈 것 같았다. 그는 마치 자기 양심이 찔리기라도 한 듯 아내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으며 그녀와 마주치고도 행복한 미소를 짓지 않았다. 아내와 단둘이 남는 경우를 되도록 피하기 위해 그는 동료인 코로스텔료프를 점심 식사에 자주 데려왔다. (···) 두 사람이 의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로지 올가 이바노브나로 하여금 침묵할 수 있도록, 즉 거짓말을 안 해도 되도록 배려하는 것처럼 보였다.(61~62쪽)

 

 

남편이 화가 청년과 불륜 관계에 빠져 있는 그녀를 눈감아 주고 있는데도 그녀는 변심한 화가 청년에게 매달리며 사랑을 구걸한다.

 

 

화실에서 그를 못 보게 되는 날에는, 만약 오늘 그가 그녀에게로 오지 않으면 당장 독약을 마시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겼다. 겁이 난 그는 결국 그녀에게로 갔으며, 남아서 식사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는 남편이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불손한 말을 해댔고 그녀 또한 똑같은 방식으로 대꾸했다.(63~64쪽)

 

 

불륜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 폭군이며 원수여서 주위에 누가 있든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서로 으르렁거리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그녀는 화가 청년에게 다른 여자가 있음을 짐작하고 질투와 분노, 모멸감과 수치심 때문에 침실에서 대성통곡을 하기도 한다. 그런 그녀에게 남편 드이모프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이렇게 조그맣게 말한다.

 

 

“그렇게 울지 마, 여보······. 왜 그래? 그냥 조용히 있어야 돼. 이 일은······. 문제를 일으킬 필요가 없어. 알잖아. 이미 지나간 일은 돌이길 수 없어.”(64쪽)

 

 

어느 날 저녁 남편은 그녀에게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이 통과됐다며 일반 병리학 강의를 맡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기쁨을 아내와 함께 나눌 수만 있다면 남편은 아내의 불륜을 용서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일반 병리학이 뭔지도 몰랐고 다만 극장에 갈 채비를 할 뿐이었다.

 

 

이 소설의 결말에서는 이렇게 이야기가 펼쳐진다.

 

 

남편 드이모프는 심한 두통을 앓게 되는데 그 이유는 병원에서 디프테리아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모르던 그녀는 불륜 관계를 청산하고 남편과 함께 새 삶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남편이 위험한 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된 그녀는 남편이 불쌍해졌다.

 

 

자신에 대한 그의 끝없는 사랑, 그의 젊은 생명, 심지어 그가 이미 오랫동안 잠을 자지 않은 이 짝 잃은 침대까지도 불쌍했다. 그리고 그의 한결같은 수줍고 얌전한 미소가 떠올랐다.(71쪽)

 

 

올가 이바노브나는 침실에 앉아서 이것은 남편을 속인 죄로 신이 자신을 벌주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73쪽)

 

 

올가 이바노브나는 그와 함께 했던 자신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이 돌이켜보았다. 그리고 그가 참으로 얼마나 비범하고 드문 인간인지, 자기가 알았던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인간인지를 문득 깨달았다. 또한 그녀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모든 동료 의사들이 그를 어떻게 대했는가를 상기하고 그들 모두가 그에게서 장래의 저명인사를 보았으리라는 것을 이제야 이해했다.(78쪽.)

 

 

저명인사들을 좋아하며 그들을 쫓아다녔던 그녀였는데 그녀 가까이에 있던 남편이야말로 장래의 저명인사였다는 것. 그러나 그녀가 그 사실를 이해했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 다른 예술가들과 시간을 보내길 좋아하고 한 남자와 불륜 관계에 빠졌다가 버림받고 뒤늦게야 남편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그녀. 과거를 청산하고 남편과 함께 새 출발을 하고 싶었던 그녀. 그러나 박사 학위 논문이 통과되어 일반 병리학 강의를 맡게 될지 모를, 장래가 촉망되는 의사였던 남편은 병원에서 디프테리아 감염되어 결국 죽고 만다.

 

 

남편이 이제 다시는 깨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녀는 그의 어깨를 흔들며 이름을 불렀다.
“드이모프, 드이모프, 제발!”(79쪽)

 

 

이 이야기는 안타까움이 여운으로 남게 되는 이야기여서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베짱이처럼 놀기만 하다가 뒤늦게 깨달은 그녀의 불행에서 보듯이 깨달음은 늦을 때가 많은 법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가까이에 있는 보석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소중한 것을 놓치고 사는 것은 인간의 어리석음 중 하나일 것이다.

 

 

참고로 이 작품은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모델로 하여 쓴 소설이라는데 이 작품으로 인해 작가는 절친한 친구와 한동안 불화를 겪어야 했다고 한다.

 

 

 

 

 

 


2. ‘베로치카’ : 풀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불가사의한 남녀 관계를 그린 작품

 

아그뇨프가 베라의 단추 하나하나, 주름 하나하나에서 따뜻하고 편안하고 단순한 무언가를 읽을 수 있었던 까닭은 아마도 그녀가 마음에 들어서였을 것이다. 그것은 진실되지 않거나 아름다움에 둔감한 차가운 여자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선량하고 시적인 그 무엇이었다.(94쪽)

 

 

그러한 그녀(베라)가 막상 사랑을 고백하자 그 남자(아그뇨프)는 반기기보다 난처해한다.

 

 

무엇보다도 난처한 것은 그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는 상황이었다. 대놓고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용기는 없었고, 그렇다고 <네.>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자신의 마음속을 아무리 헤집어보아도 사랑의 불씨 비슷한 것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105쪽)

 

 

그 이유를 말하자면 이런 것이라고 작가는 쓴다.

 

 

그는 솔직하게 시인했다. 그것은 영리한 인간들이 종종 과시하는 그런 이성적인 냉담함도, 자아도취적인 바보의 냉담함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영혼의 무기력, 아름다움을 깊이 지각하지 못하는 무능력일 뿐이며 또한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한 지저분한 싸움과 독신의 하숙방 생활, 그리고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얻어진 조로증에 다름 아닌 것이다.(109쪽)

 

 

‘베로치카’을 읽고 내가 생각한 것을 정리해 봤다.

 

 

‘베로치카’라는 소설에서 여자의 사랑 고백을 들은 남자는 평소 그녀를 마음에 들어 했으면서도 사랑 고백을 반기지 않는다. 그 남자는 그녀와 연애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 이유가 늘 자신이 수동적으로 살았기 때문인지, 영혼이 무기력하기 때문인지, 아름다움을 깊이 지각하지 못할 만큼 무능력하기 때문인지 자신도 잘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원래 인간이란 자기 마음조차 잘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존재다.)

 

 

내가 보기엔 그 남자가 그녀와 연애를 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어떤 하나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절실함’이다. 다른 말로 하면 ‘열정’이고 ‘뜨거움’이다. 연애를 하려면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와 같은 맹렬한 기세가 필요하다. '잊고 있다가 당신을 만나면 좋아요.'라고 상대에 대해 생각할 정도가 아니라 '당신이 그리워서 괴로워요. 꼭 만나야겠어요.'라고 상대에 대해 생각할 정도의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 이런 맹렬한 기세가 있어야 연애를 할 수 있는 것.

 

 

만약 그립지가 않고 만나지 않아도 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고 그러나 만나면 좋은 그런 상대라면, 연애는 시작되기 어렵고 연애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언젠가는 깨지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연애란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연애란 사람을 귀찮게 만드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연애란 상대에게 이행해야 할 의무가 많은 무엇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

 

 

- 첫눈이 온 날, 첫눈이 왔다고 상대가 불러내면 반갑게 나가야 된다. 귀찮아서 안 나간다고 하면 안 된다. 두 사람 관계에 금이 간다.
- 상대가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하면 무조건 병문안을 가야 한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먼 병원일지라도 병문안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두 사람 관계에 금이 간다.
- 상대와 만나기로 약속한 휴일엔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고 싶어도 그 약속을 깨면 안 된다. 두 사람 관계에 금이 간다.

 

 

두 사람 관계에 금이 가면 그때부터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한쪽에선 사과를 하고 한쪽에선 화를 내고, 이런 일이 반복되다가 서로에게 싫증이 나고, 그러다가 냉전의 시간이 오고, 그러다가 어느 한쪽에선 연인에게 시달리는 상태에 이르고. 그다음엔 증오와 이별.

 

 

늘 상대가 좋고 늘 기분이 좋을 수만은 없는 게 인간인지라, 때로는 화를 참을 수 없고 자존심이 상하는 걸 참을 수 없는 게 인간인지라, 싫증이 나는 게 인간인지라 첫사랑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 되는 것이고 수많은 연인들이 오래 사귀고도 헤어지는 것.

 

 

그러니 귀찮음을 감수할 자신이 있을 만큼 뜨거운 마음을 가질 때에만 연애를 할 일이다. 괜히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심심풀이로 연애를 시작해서 상대에게 상처만 남기는 일이 되지 않도록 할 일이다. 이 소설의 남자처럼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3. ‘관리의 죽음’ : 어처구니없는 죽음에 공감하며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작품

 

회계원인 체르뱌코프는 객석 두 번째 줄에 앉아 오페레타 공연을 보면서 행복의 절정에 다다른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갑자기 재채기가 나와 버렸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훔친 다음에 주위를 둘러본 그는 당황스런 일이 생겼다는 걸 알았다. 첫 번째 줄에 앉아 있던 노인이 자신의 대머리와 목을 장갑으로 열심히 닦으며 투덜거리는 것을 보고 그 노인에게 침이 튀었다는 것을 안 것이다. 그 노인은 운수성에 근무하는 브리잘로프 장군이었다. 사과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앞으로 몸을 숙이고 장군의 귀에 “용서하세요, 각하. 제가 침을 튀겼군요. 본의가 아니었습니다만…….”라고 속삭였다. 장군은 “괜찮아요, 괜찮아…….”라고 답했다. 그는 “제발 용서하십시오. 저는 그저…… 저도 모르게!”라고 다시 사과를 했고 장군은 “아, 앉으세요 제발! 공연 좀 봅시다!”라고 말했다. 휴식 시간에 그는 또 한번 장군에게 사과를 했고, 장군은 벌써 잊어버렸다고 말하며 신경질적으로 아랫입술을 떨었다. 그는 ‘잊어버렸다고 하지만 눈에는 원한이 담겨 있는 걸.’ 하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온 그는 장군이 화가 풀리지 않았다고 여겨져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 다음날 장군에게 재채기에 대한 해명을 하러 찾아갔다. 장군은 접견실에서 청원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그는 또 사과의 말을 했고 장군은 그 바쁜 와중에 또 계속되는 그의 사과에 짜증이 났다. 그래서 장군은 “여보세요, 날 놀리자는 겁니까, 뭡니까!”하고 말하고는 문을 닫았다. 그는 그 다음날에도 장군에게 찾아가 사과를 했다. 자신은 잊어버렸다고 말했는데도 필요 이상 반복되는 사과에 화가 난 장군은 급기야 소리를 빽 질렀다. “꺼져!!”라고. 이 말을 듣자 두려움에 질린 그는 속삭이듯 “뭐라고요?” 하고 물었고, 장군은 발을 구르며 되풀이 말했다. “꺼지라니까!!” 이 말을 들은 그는 뱃속에서 무언가가 터져버렸다.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집에 돌아온 그는 관복을 벗지도 않은 채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죽었다.

 

 

A.
나는 이 소설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 속 주인공인 회계원의 속마음을 알기 위해 내가 ‘가상 인터뷰’를 해 보는 방식으로 써 봤다.

 

 

물음) 당신은 장군에게 한 번만 사과하고 말면 될 텐데 왜 여러 번 사과해서 장군을 짜증이 나게 했습니까?

 

회계원 : 저는 장군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일부러 침을 튀긴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재채기가 나와서 침을 튀기게 되었다고 정확히 말하며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그런 뜻이 사과할 때마다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서 여러 번 사과를 하게 되었던 거죠. 장군이 화가 풀리지 않은 것처럼 보여 걱정이 되었습니다.

 

 

물음) 당신은 그 사건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회계원 : 그런 작은 일로 제가 죽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장군이 “꺼져!”라고 말을 하는 순간 독화살을 맞은 것처럼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장군이 한 번 더 “꺼지라니까!”라고 말하자 제 뱃속에서 무언가가 터져 버렸고 공포를 느꼈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소파에 누워 정신을 잃었나 본데 그게 죽음이었습니다.

 

 


B.
이번엔 장군의 속마음을 알기 위해 ‘가상 인터뷰’를 해 보는 방식으로 써 봤다.

 

 

물음) 왜 당신은 회계원이 거듭 사과했음에도 불구하고 “꺼져!”라고 화를 냈습니까?

 

장군 : 사과를 한 번 했으면 됐지 자꾸 사과하니까 화가 났습니다. 누구나 불쾌한 일은 기억하고 싶지 않고 잊고 싶잖아요. 그런데 잊을 만하면 느닷없이 찾아와서 그 일을 상기시키니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업무 중 그가 나타나 사과를 할 땐 피곤하게 느껴지고 지치고 짜증이 무척 나더군요.

 

 


C.
공연장에서 재채기가 나와 버린 일로 한 남자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희극적이고도 비극적인 이 이야기에서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즉 작가는 독자가 무엇을 느끼길 바랐을까?

 

 

내가 느낀 것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인간은 자기가 손해 본 것을 상기시키는 말에 위로를 받기보다 불쾌감을 느낀다는 것.
- 공포를 느끼는 상상력이란 자신을 죽이기도 할 만큼 위력이 세다는 것.
- 마음의 병을 앓으면 죽음에 이르게 되기도 할 만큼 마음이란 신비롭다는 것.
- 사소한 실수라고 할 수 있는 작은 일로 죽을 수도 있는 게 인간이라는 것.
- 서로 상대를 이해하지 못해 서로를 배려할 수 없는 게 어리석은 인간의 심각한 문제라는 것.
- 인간관계에서 소통과 공감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
- 이토록 어이없는 일이 세상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 (공연을 보면서) 지금은 행복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다른 일로)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것. 즉 행복이란 건 (재채기라는) 작은 일로도 얼마든지 쉽게 깨질 수 있다는 것. 언제 깨질지 모르는 게 행복이라는 것. 

 

 

난 ‘마음의 기적’을 믿는다. 여러 번 그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평소 안구건조증이 있어서 컴퓨터를 사용할 땐 쉬는 시간을 갖는 편인데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을 땐 쉬지 않고 긴 시간 동안 컴퓨터로 작업해야 한다. 이상한 것은 급한 일로 컴퓨터를 계속 사용해야 할 땐 안구건조증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래전, 논문을 쓰던 시절엔 이런 적도 있었다. 마감이 임박한 논문을 아침부터 하루 종일 쓰고 또 밤 12시부터 밤새워 새벽 6시까지 썼는데 눈이 전혀 피로하지 않고 몸도 전혀 피로하지 않았다. 이것에 대한 내 해석은 이러하다. ‘논문 마감 때라서 논문을 꼭 끝내야 한다는 강한 정신력을 가졌더니 기적이 일어나더라는 것.’ 이것을 나는 ‘마음의 기적’이라고 명명하겠다. 속담에도 있지 않은가.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고. 

 

 

이렇게 강한 마음으로 극복되는 일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약한 마음으로 병을 얻기도 한다. ‘관리의 죽음’이란 소설에서 그런 예를 볼 수 있다. 마음의 병으로 인해 급기야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어느 관리자의 이야기를 쓴 체호프는 ‘인간’을 아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향한 악성 댓글로 괴로워하다가 자살을 하기도 하는 게 인간이라는 것을 그는 그 옛날에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4. ‘주교’ : 죽음 이후에 남는 것은 무엇인지 씁쓸하게 그린 작품

 

‘주교’는 실제로 매우 쇠약해진 작가가 자신에게 머지않아 죽음이 오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썼다고 해서 작가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살았던 주교가 죽은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것은 주교가 죽고 난 뒤 태평한 세상의 풍경을 스케치한 다음의 글로 알 수 있다.

 

 

예하가 돌아가신 것이다.
다음날은 부활절이었다. 이 도시에는 마흔두 개의 교회와 여섯 개의 수도원이 있었으니 기쁨의 종소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 도시 위로 쉼없이 울리면서 대기를 진동시켰다. 새들은 노래 부르고 태양은 화창하게 내리쬐었다. 장이 벌어진 광장에서는 그네를 타네 손풍금을 울리네 하며 왁자지껄했고 손풍금 소리와 술 취한 이들의 주정이 요란했다. (...)
한 달 뒤에 새 대리 주교가 임명되었으며 그때는 이미 아무도 표트르 예하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완전히 그를 잊어버렸다.(185~186쪽)

 

 

한 사람이 죽었는데, 그의 인생이 끝났는데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대로 흘러갔고 죽은 사람은 잊혀지고 만다는 것. 이 글을 읽고 내가 그랬듯이, 이 글을 읽는 이들도 이 글을 인상 깊게 읽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위의 글을 옮겼다.

 

 

우리 중 누가 죽는다고 해도 세상은 변함없이 계속 즐겁게 계속 태평하게 돌아갈 것이다. 당신이 죽는다고 해도 또는 내가 죽는다고 해도 지금과 같이 하늘은 청명하고 햇빛은 눈부실 것이다. 

 

 

 

 

 

 


5. ‘내기’ : 한 인간의 모험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작품

 

이런 어처구니없는 ‘내기’가 있다니 놀랄 일이다. “당신이 독방에 오 년 동안 들어가 있을 수 있다면 이백만 루블을 걸겠소.”라는 은행가의 제안에 젊은 변호사는 이렇게 답한다. “오 년이 아니라 십오 년을 조건으로 내기에 응하겠소.”라고. 그리하여 십오 년 동안 독방에서 지내면 이백만 루블을 받게 되는 ‘내기’가 시작된다.

 

 

변호사는 은행가의 집 정원에 지어진 바깥채 중 하나에서 엄중한 감시 속에 감금되도록 결정됐다. 또한 그에게는 십오 년 동안 바깥채의 문턱을 넘을 권리, 살아 있는 사람들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을 권리, 그리고 편지나 신문을 받아볼 권리를 박탈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악기를 지니고 있거나 책을 읽고 편지를 쓰는 일, 그리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것은 허용되었다. (···) 책이든, 악보든, 술이든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은 메모지에 쓰기만 하면 무한정 공급받을 수 있지만 반드시 창문을 통해야만 했다.(137쪽)

 

 

혼자 감금된 변호사는 사 년만에 육백여 권의 심오한 서적을 섭렵했고 복음서를 읽는 데 일 년을 허비했다.

 

 

유폐되고 나서 마지막 이 년 동안 수인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엄청나게 많은 책들을 읽었다. 자연과학을 공부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바이런과 셰익스피어를 요구했다. 종종 그로부터 화학, 의학 교과서, 장편소설, 철학이나 신학 논문 따위를 동시에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메모가 오기도 했다. 그의 독서열은, 바다 위에 널린 난파선의 잔해들 속에서 헤엄치면서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아무것에나 무턱대고 매달리는 한 인간을 연상시켰다!(139~140쪽)

 

 

이 글을 읽으며 나는 두 가지가 궁금했다. 첫째, 과연 그는 15년 동안 독방에 갇혀 지내는 생활을 끝까지 할 수 있을까? 둘째, 여러 종류의 많은 책들을 읽고 나서 최후에 그가 느낀 것은 무엇일까?

 

 

결국 그는 15년 동안의 독방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이백만 루블이라는 거금을 손에 거머쥘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15년이 되는 날의 바로 전날에 발견된, 그가 종이에 쓴 글이 있었다. 그는 자고 있었고 은행가는 그가 쓴 글을 읽게 된다. 

 

 

은행가는 책상에서 종이를 집어들고 읽어 내려갔다.

 

내일 열두시에 나는 자유를 얻고 사람들과 교류할 권리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 방을 떠나 태양을 보기에 앞서 나는 그대들에게 몇 마디 해줄 필요를 느낀다. 순수한 양심에 따라,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신 앞에 맹세코, 나는 자유와 생명과 건강을, 그리고 그대들의 책 속에서 지상의 축복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들을 경멸한다고 그대들에게 단언하는 바이다.
십오 년 동안 나는 속세의 삶을 면밀하게 연구했다. (···) 그대들의 책은 나에게 지혜를 가져다주었다. 지칠 줄 모르는 인간의 사고 능력으로 몇 세기에 걸쳐 이룩해 낸 모든 것들이 나의 두개골 속에서 작은 언덕으로 쌓였다. 내가 그대들 누구보다도 현명하다는 것을 안다.
또한 나는 그대들의 모든 책을 경멸한다. 이 세상의 모든 행복과 지혜를 경멸한다. 그 모두가 시시하고 무상하며, 신기루처럼 공허하고 기만적인 것이다. 그대들이 아무리 오만하고 현명하고 아름답다고 해도, 죽음은 그대들을 마루 밑의 쥐새끼들처럼 지상에서 쓸어버릴 것이다. (···)
그대들은 분별을 잃고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 그대들은 거짓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추악한 것을 미(美)로 받아들이고 있다. (···)
나는 그대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경멸을 표현하기 위해, 내가 한때 천국을 꿈꾸듯 갈망했으나 이제는 하찮게 보이는 이백만 루블을 거부하겠다. 그 돈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박탈하기 위해 나는 약속한 기한이 다 되기 다섯 시간 전에 여기에서 나갈 것이며 그럼으로써 스스로 계약을 위반하는 바이다······.

 

이것을 다 읽은 은행가는 책상 위에 종이를 내려놓았다.(143~145쪽)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책을 많이 읽어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되면 그 모두가 시시하고 무상하고 부질없게 느껴지는 것임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난 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우리가 성공이라고 부르는 성공은 사실 성공이 아니고 하나의 실패를 숨기고 있는 건지 모른다.’라고. 예를 들면 기혼자인 한 중년 여성이 어느 분야에서 명성을 떨칠 만큼 사회적 성공을 거두었다면 거기에는 최소한 하나의 실패가 숨어 있는 것이라고. 그 성공을 거두기 위해 혼자서 노력하고 애쓴 시간들 속에는 가족이 없었을 테니까. 남편과 함께할 시간도, 자식들과 함께할 시간도 모두 성공을 위한 노력의 시간에 바쳤을 테니까. 그래서 그녀는 한 분야에서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그녀가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그녀의 남편과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다시 말해 그녀의 가정은 실패한 가정이라고.

 

 

짐작하건대 세상의 이치를 꿰뚫을 만큼 높은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성공과 실패가 헷갈리고 행복과 불행이 헷갈릴 것 같다. 성공은 다른 실패를 의미하고 행복은 다른 불행을 의미할 것 같다. 커 보였던 성공과 실패의 격차가, 커 보였던 행복과 불행의 격차가 좁혀져서 나중엔 성공과 실패의 경계선이, 행복과 불행의 경계선이 희미해져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될 것 같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성공한 삶과 행복한 삶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성공과 행복은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성공할수록 고독해질지 모르는 일임을, 그리고 중요한 건 성공한 삶이 아니라 행복한 삶이라는 것임을 새삼 생각한다.  
 

 

 

 

 


* 맺는말

 

나의 경우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인간의 새로운 점을 발견하는 일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친척 집이나 친구 집에서 더부살이로 지내던 사람은 신세를 진 사람들에게 나중에 은혜를 갚지 않고 오히려 미워하는 경우가 있다는데 그 이유는 뭘까? 어떤 소설에 따르면 더부살이로 지내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자기를 위해 주는 사람에게 동정 받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하여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오히려 분노가 끓어오른다는 것. 인간에 대한 이런 발견이 소설의 가치가 아닐까 싶다. 만약 소설을 읽지 않는다면 우리는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게 되리라.

 

 

아모스 오즈는 “소설을 읽는 건 누군가의 집 거실, 아이들의 방처럼 친밀한 공간에 초대받는 것 같은 일이다. 문학은 적이 아니라 이웃으로서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소설에서 주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본다.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주제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다. 주제란 그저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다 보면 드러나기 마련인 어떤 것에 불과하다. 내가 소설을 읽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 인간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하는가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저렇구나.’ 하면서 인간을 알아가는 것이다. 내가 소설을 읽는 것은 그런 마음으로 사니까 또는 그런 행동을 하니까 ‘인생이 저렇게 흘러가는구나.’ 하면서 인생을 알아가는 것이다. 

 

 

이 책으로 많은 것을 느꼈고 많은 것을 배웠다. 앞으로 체호프의 다른 단편도 찾아 읽게 될 것 같다. 그만큼 체호프는 나를 매료시킨 작가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7-09-13 2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 ‘관리의 죽음‘ 관련해
세사르 바예호 시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가 있죠. 이건 우리가 가장 숨길 수 없는 부분이죠. 이 시 전편을 읽어 보시면 그럼에도 사람을 보듬는 바예호의 의지가 무척 감동적이랍니다.

4. ‘주교‘ 관련
카프카 ‘변신‘ 끝이 그레고르가 죽자 가족들이 소풍가잖아요ㅎ;
역시나 위에서 제가 언급한 세사르 바예호 시에서 나오는 대목 ˝내가 사랑함을 알고, 사랑하기에 미워하는데도, 인간은 내게 무관심하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할 때....˝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이 세상의 무정함을 깊이 아는 본능인 것도 같고요. 그걸 이해하고 삶을 긍정의 대상으로 볼 지 부정의 대상으로 볼 지도 각자의 몫이겠죠. 부정으로 작동한 게 5. ‘내가‘의 결말인 듯.

페크pek0501 2017-09-13 22:21   좋아요 0 | URL
댓글의 3번. 멋지군요. 제 글과 관련된 글을 쓸 줄 아시는 님의 센스...

댓글의 4번도 멋지군요. 저도 카프카의 <변신>에서 소풍 가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성장한 딸의 모습에 시집 갈 때가 되었다며 흐뭇하게 보는 부모의 시선에 대한 문장도 있었던 것 같아요. 아들은 죽었는데 말이죠.
제가 리뷰로 올린 적 있는 소설이라 기억하는 것 같아요.

무플 면하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굿 밤 되세요.

아침에혹은저녁에☔ 2017-10-21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 드립니다

페크pek0501 2017-10-21 23:04   좋아요 0 | URL
아, 감사합니다. 살다 보니 그런 일도 있네요... ㅋ

2017-11-05 0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05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06-09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장 사야겠는데, 당장 읽을수 있을지는 의문이네여 읽을게 넘쳐서 ㅎ

페크pek0501 2018-06-09 22:32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읽을 게 넘쳐도 아마 이 책은 금방 읽으실겁니다. 지루하지가 않고
재밌거든요.
강추합니다. 체호프를 좋아하시게 될 것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06-09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근데 리뷰쓰는데 엄청 시간 들이신 것 같아요 역쉬 페크님!

페크pek0501 2018-06-09 22:34   좋아요 1 | URL
10편의 단편 중 5편을 골라 썼는데도 글이 길어졌어요.
글이 긴 건 기술 부족 때문입니다. ㅋ
저로 하여금 할 말이 많게 하는 책은 대체로 저에게 좋은 책입니다.
좋은 토요일 밤 보내십시오.
고맙습니다.

카알벨루치 2018-06-09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장 주문했는데 그 놈만 안 오고 딴 놈들만 왔네요 기대하고 기다리게 만드네요 ㅎ

페크pek0501 2018-06-10 13:06   좋아요 1 | URL
기대하고 기다릴 때가 행복한 시간입니다. ㅋ
 
- 우리 시대의 악과 악한 존재들 이매진 컨텍스트 53
테리 이글턴 지음, 오수원 옮김 / 이매진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이 ‘악’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는 것은 그에게 ‘악’이 내재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일까? 범죄자가 단순히 ‘악’으로 인해 범죄를 저질렀다고 보는 것은 일차원적인 생각이 아닐까?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어떤 상황(또는 환경)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분노 조절 장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자기 자신을 보호 또는 방어하기 위한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인터넷의 어떤 글을 읽고 악성 댓글을 쓴 사람은 남에게 고통을 주고 싶은 ‘악’ 때문에 그랬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일까? 악성 댓글을 쓴 것은 문제의 그 글이 자신의 아픔을 건드렸거나 자신을 분노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그런 것은 아닐까? 남의 행복에 시기심이 생겨서 그 행복을 방해하고 싶다는 순진한 생각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악’ 때문이 아니라 ‘미성숙’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이런 것들을 나는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이에 대해 글을 써 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2주일 전에 일간지를 통해 신간을 소개하는 글을 읽다가 테리 이글턴 저, <악>이란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악’에 대해 탐구하는 책이라니 얼마나 반갑던지 단번에 사기로 했다.

 

 

직장에서 이런 사람들이 눈이 띌 때가 있다. 남의 흉을 잘 봐서 인심을 잃거나, 남에게 기분 상할 말을 해서 인심을 잃거나, 잘난 척을 많이 해서 인심을 잃거나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악해서 이런 걸까? 내가 보기에 이런 사람들은 악해서라기보다 단지 ‘삶의 요령’이 없어서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렇다면 누가 봐도 악인이라고 보여지는 사람도 혹시 ‘삶의 요령’이 부족해서 악인으로 보여지는 경우가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결국 악한은 삶의 기술이 결여된 자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삶이란 색소폰 연주하고 같아서 끝없는 연습을 거쳐 능숙해져야만 한다. 악한 자들에게 삶이란 요령부득의 문제다. 뭐, 우리 중 아무도 삶이란 문제에 관해 자신할 수 없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저 살인마 잭Jack the Ripper보다야 사는 요령을 좀더 터득한 정도랄까. (...) 그렇지만 악한 자들이 삶의 기술에 엄청나게 무지하다면 나머지 우리들의 수준은 그것보다 조금 나은 정도다.
이런 의미에서 악은 매일 마주치지는 않더라도 우리의 일상생활에 관련이 깊다. (158~159쪽)

 

 

또는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며 느끼는 심술궂은 쾌락을 보라. 독일인들은 이런 감정에 ‘샤덴프로이데’라는 이름까지 붙여놓았다. <인성론>에서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우리가 타인의 즐거움뿐 아니라 고통에서도 쾌락을 끌어내며 타인의 고통에 괴로워하면서도 거기에서 얼마간은 쾌락을 느낀다고 주장한다. 흄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상황은 삶의 진실일 뿐 악마의 괴팍함은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고 딱히 분개할 이유는 전혀 없지 않을까.(159쪽)

 

 

콜린 맥긴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닌, 악하고 가장 닮아 있는 모습이 흔해 빠진 시기심이라고 본다. 최소한 우리가 세상을 정의해온 의미에서 말이다. 시기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보며 고통을 느낀다. 타인의 즐거움은 자기 존재의 결핍을 부각시키기 때문이다.(159~160쪽)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악’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 중 많은 것이 사실은 ‘악’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중요한 건 ‘악’과 ‘악이 아닌 것’을 구별하는 일, ‘악(惡)’과 ‘부정(不正)’을 구별하는 일이 된다.

 

 

9 · 11 참사에는 서구가 아랍에 휘두른 기나긴 정치적 폭력의 역사를 향한 아랍 세계의 분노와 굴욕감도 한몫했다. (...) 테러리스트들을 몰지각한 괴물로 취급하는 관점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이 폭력을 벗어날 유일한 해결책은 더 많은 폭력이다. 그리고 더 많은 폭력은 더 많은 테러를 낳고, 테러는 또 더 많은 죄 없는 생명을 위험 속으로 몰아넣는다. 테러를 악으로 규정하는 행동은 문제를 악화시킨다.(196쪽)

 

 

우리가 ‘악’에 대해 제대로 고찰하지 않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아주 위험한 사회로 만들 소지가 있음을 놓치게 된다는 것. 이것은 우리가 ‘악’에 대해 고찰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해 준다. ‘악’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버리고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영국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문학 평론가로, 마르크스주의 시각에서 사회, 정치, 문화에 관한 많은 책을 펴냈다. <악>은 신학, 정신분석학, 역사, 문학 작품 등을 통해 다양한 악의 실체를 분석함으로써 윤리 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글 하나.

 

 

권력이 나약함을 질색하는 이유는 나약함이 권력의 실체가 허약함이라는 은밀한 진실을 굳이 들추어내기 때문이다. 나치에게 유대인은 끈적거리는 무나 꼴사나운 혹 따위 가장 치욕스럽고 약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는 역겨운 표식이었다. 유대인이야말로 나치라는 존재의 완전무결함을 보존하기 위해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127쪽)

 

 

폭력을 휘두르는 학생이 반에서 약해 보이는 학생만 골라서 괴롭히는 이유를 이해하게 만드는 글이다. 청소년을 보호해야 하는 어른으로서, ‘학교 폭력’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어른으로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을 짚어 준 글 같아 밑줄을 그어 놓았다.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여전히 ‘인간’에 대해서다. 인간의 본질, 인간의 특성 이런 건 앞으로 공부를 해도 해도 끝이 나질 않을 것 같다. 인간이란 존재는 끝없이 탐구해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을 나는 또 해 본다.

 

 

인간의 본질 또는 특성에 대해 성찰하는 책은 언제나 반갑다. 내가 궁금해 했던 것을 풀어 줄 열쇠를 줄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책도 내가 가져야 할 열쇠 중 하나를 내게 던져 준 것 같다. 멋진 책이다.

 

 

 

 

 

...............


* 이 책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 연쇄 살인마의 순수한 악은 핵무기를 쓰자는 평범한 악보다 특별할까?
- 부도덕하고 무지한 이슬람 이데올로기 때문에 쌍둥이 빌딩은 무너졌을까?
- 테러리스트는 비뚤어진 판단을 하는 사람일까 머리 없는 괴물일까?
- 《실낙원》부터 《만들어진 신》까지, 토마스 아퀴나스부터 이슬람 테러까지 어느 뛰어난 마르크스주의자가 흥미롭게 파헤친 우리 시대의 악과 악한 사람들

 

(이 책의 뒤표지에 있는 것을 옮김.)

 

...............

 

 

 

 


스포일러가 되지 않기 위해 이 글은 여기까지...

 

 

아직 이 책의 리뷰를 올린 사람이 없네. 이 글이 이 책의 첫 리뷰로 기록될 듯...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07-18 1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9 0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5-07-18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의 리뷰로군요.
악한은 삶의 기술이 결여된 자들이다란 말에 동의해요.
저는 전에 저의 작품을 올려 준 제작자를 보면서 악의 실체가 뭔지
생각해 보게 되더군요.
영혼이 느껴지지 않고 순간은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일삼고
험담을 하는 것도 부족해 사탄이 씌웠다는 둥 유언비어를 하지 않나
이루 말할 수가 없었죠.
근데 막상 대하고 보면 얼마나 애 같고 미숙한지 자기만 아는 미운 일곱 살
그대로였어요. 게다가 종교 망상 같은 것도 있어서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사람을 조심하고 피해야 하는 건, 그런 사람은 상대로 하여금
화를 조장하고 미움과 증오의 마음을 일으켜서 악에게 굴복하도록 만든다는 거죠.
그러니까 뒤에서 뭐라고 할 지언정 함부로 건드리지도 못하겠더라구요.ㅠ

그런데 이 책은 웬지 악의 실체를 다뤘지 어떻게 하라는 대처까지는
다루지는 않은 것 같네요.

페크pek0501 2015-07-19 00:24   좋아요 0 | URL
예 오랜만에 써 본 리뷰입니다. 흥미로운 주제라서 쓰게 되었어요.
이미 스텔라 님은 많은 것을 알고 계시네요. 악처럼 보이는 얼굴 뒤의 모습이라고 할까요. 알고 나면 시시해지죠. 인간은 그것밖에 안 되는구나, 싶기도 하고요.

명쾌한 대처 방법이라든지 확실한 결말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독자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경우가 많지요. 이러는 게 저자로선 안전하기도 하고요. 괜히 잘못 썼다간 저자보다 더 똑똑한 독자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거든요.ㅋ

이 책의 경우, 악의 실체를 알고 나면 악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그러면 자연히 모든 사고가 달라지니까 어떤 것의 해결 방법도 달라지니까 따로 제시할 무엇이 있어 보이진 않아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제대로 알기` 이것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에요.

아, 내일은 늦잠 자는 날. 많이 잡시다.

마립간 2015-07-18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저 읽으셨군요. 저는 아직 보관함에 있습니다.

여성의 군입대로 시작된 남녀불평등과 양성평등, 지금 <가짜감정>을 읽고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를 읽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의 여성주의자(들)이 (대부분의) 남성을 악으로 몰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악`이 제게 불분명하다는 것이죠.

페크pek0501 2015-07-19 00:15   좋아요 0 | URL
예 그리 분량이 많은 책이 아니라서 - 200쪽 가량의 책이에요 -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님이 언급하신 책 두 권도 흥미로울 것 같군요. 정리해 글 올리시면 보러 가겠습니다.

이 책 역시 사람들이 악에 대해 불분명한 인식을 할 수 있다는 지점에서 출발한 책 같아요. 페미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들이 악 쪽이라기보다 무지 쪽에 가까운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남자가,
˝저는 그렇게 자랐다고요. 그렇게 세뇌당해서 남녀평등의 생각을 도저히 가질 수 없다고요.˝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어질 것 같아요. 그리고 남은 문제는, 그렇다면 무엇이 진짜 악인가? 하는 거예요.

악과 무지의 차이, 죄가 있으나 악은 아닌 경우, 악이기는 하되 죄는 아닌 경우 등등을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더 공부가 필요해서 몇 권 더 읽어 봐야 할 것 같아요.

좋은 휴일 되세요. ^^

yamoo 2015-07-19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 디자인이 심플하고 강렬하네요~
요즘 이글턴 번역본들이 도처에서 보이고 있습니다.
이 책도 이글턴 책...관심이 가긴 합니다. 안에 어떤 내용이 있을 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15-07-19 00:38   좋아요 0 | URL
아, 오랜만입니다. 흥미로운 책이었어요.
인간에 대한 탐구는 언제나 구미가 당깁니다. 소설뿐만이 아니라 이런 책도요...
인간의 정신을 해부하는 책은 마치 인간에 대해 공부하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알아도 알아도 끝이 있을 것 같진 않지만 가 보는 데까지 가 볼 생각입니다.
많은 문학 작품을 끌어들여 읽는 즐거움을 더 주는 것 같아요.

표지 디자인, 끝내 주죠?
좋은 휴일이 되시길... ^^

라로 2015-07-19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이라는 글자 폰트가 맘에 드네요!!!ㅎㅎ 저는 스포일러 아주 좋아하는 사람인데,,,^^;;;;;

페크pek0501 2015-07-19 14:04   좋아요 0 | URL
하하하~~~ 그러시군요. 저도 그래요. 그걸 싫어하는 분이 있는 걸 알 뿐이에요.

뭔가 더 써야 할 것 같은데, 부족한 게 느껴지는데 더 이상 쓰기가 귀찮을 때,
스포일러 핑계를 대 보는 거예요.(진짜 싫어하는 분이 있기도 하고...)
그리고 더 보충해야 할 건 다른 글에서 쓰게 되어요. 어떤 글이든 길면 지치잖아요. 그래서 자르는 거죠.

반가웠습니당~~ 거기는 지금 밤이겠네요. ^^

2015-07-24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4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5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5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수철 2015-07-30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새 읽고 있는 책입니다! 잠시만요.

˝악은 평범한 속물이며, 표피적인 키치로 들끓는데다, 진부하다. 악은 황제인 양 행세하려는 광대처럼 말도 안 되는 거드름을 피운다.˝

이 부분에서 멈췄었네요. ㅎㅎ

덕분에 맥주 마시며 이 다음 줄부터 읽어볼까 합니다.

뭐, 그렇다구요.... 헤헤

페크pek0501 2015-07-31 14:4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이 책을 읽고 계시는군요. 꽤 괜찮은 은유의 문장이네요.

식사는 잘하고 계시나요?

엄청 더운데 이럴 땐 차가운 물냉면이 최고인 것 같아요.
빨리 시간이 흘러 가을이 오길 기다립니다. 그땐 참 더웠어, 하면서 옛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다행인 것은 그런 날은 반드시 오고, 그런 날이 반드시 오기 위해
지금도 시간은 조금도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


돈케빈 2015-10-23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위의식에 저항하는 것이 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항이 악인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요청에 불응하는것 사회의 요청에 말하지 않는것 모두 포함되는데. 악을 저지르지 않게 하기위한 법이나 각각자의 신념이 부족하고 법이나 처벌도 미비하다고 생각해요. 고대에는 함무라비 법전도 있었다고 하는데 말이지요.

페크pek0501 2015-10-24 14:3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말씀하신 것에 대해 제가 아는 바가 없어서 좋은 답변을 드리지 못함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배울 게 많다고 느낍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헤세의 문장론 -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하여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헤르만 헤세의 작품 중에서 내가 읽은 것은 <데미안>, <싯다르타>, <수레바퀴 아래서>,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등이다. 그리고 이번에 <헤세의 문장론>을 읽었다.

 

 

“이 책은 1900년부터 1960년까지의 책과 문학, 작가와 독자, 비평가, 책 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헤세의 글을 12권으로 된 전집에서 모으고, 전집에 수록되지 않은 것은 『책의 세계』에서 보충한 것이다”(머리말에서.)

 

 

이 책은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이 책 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나는 책 읽기에 대한 책은 무조건 관심이 간다. 글쓰기에 대한 책도 무조건 관심이 간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책을 즐겨 읽는 편이다.

 

 

이 책에는 헤세가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가 참 많다. 그중 열두 가지를 뽑고 그것과 관련하여 내 생각을 말하는 방식으로 리뷰를 써 본다.

 

 

 

 

1.

“반드시 읽어야만 하고, 행복과 교양에 필수적인 도서목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45쪽) 그러므로 “최우수 도서 100선이나 최우수 작가 100선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57쪽)

 

 

동의한다. 누구나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란 없다. 그저 자신이 좋아할 만한 책을 찾아 읽으면 된다. 옷은 자기의 개성대로 입으면서 왜 책은 자기의 개성대로 읽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까. 취향에 따라 옷을 골라 입듯이, 취향에 따라 책도 골라 읽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2.

“호기심으로 안달하여 온갖 시대와 나라의 습작과 졸작을 마구 집어삼킨 이보다, 가령 우리나라의 최고 작가 서너 명을 거듭 완벽하게 읽은 사람이 훨씬 풍요로우며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몇 권 안 되는 책을 철저히 아는 것, 그래서 그것을 읽던 수많은 시간의 감흥을 되새기기 위해 그 책을 손에 집어 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 머릿속 가득 수천 권의 책 제목과 작가 이름을 막연히 떠올리는 것보다 더 고귀하고 더 만족스러우리라.”(60쪽)

 

 

동의한다. 나도 다독보다 정독이 좋다고 생각한다.

 

 

책과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 우선 책을 다양한 종류로 백 권쯤 읽어라. 그럼 좋아하는 작가가 생긴다.

- 좋아하는 작가를 정해서 그의 작품을 여러 권 읽어라.

- 그리고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라 두 번 이상 읽어서 ‘깊이 읽기’를 하라. 그러면 작품에 대한 안목이 높아진다. 안목이 높아지면 즐겁고 유익한 독서를 할 수 있다.

- 책을 두 권 읽는 것보다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게 더 좋다. 열 권을 읽는 것보다 다섯 권을 각각 두 번씩 읽는 게 더 좋다.

 

 

 

 

 

3.

(자신의 습작을 읽고 나서 자신에게 문학적 재능이 있는지를 평가해 달라는 작가 지망생에게 헤세가 말한다.)

 

 

“하지만 ‘진실’을 찾는 게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더욱이 제가 개인적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어느 초보자의 습작을 가지고 재능에 대한 이런저런 결론을 내리기란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106~107쪽)

 

 

“가장 위대한 작가들의 경우에도 초창기 습작을 보면 언제나 참으로 특징적이거나 눈에 띄게 독창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실러의 청년기 시에서도 놀랄 정도의 조잡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108쪽)

 

 

“스무 살의 나이에 놀랍도록 아름다운 시를 지은 젊은 시인이 서른이 되어서는 더 이상 그런 시를 쓰지 못하거나 아니면 더 못한 시를 쓰거나 여전히 똑같은 시를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에 서른이나 마흔이 되어서야 꽃을 피우는 재능도 있습니다.”(108~109쪽)

 

 

아무리 훌륭한 작가라고 해도 어떤 사람의 글을 보고 단번에 문학적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진실’은 겉으로 드러나기보다 숨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 또 ‘진실’이 밝혀지기까지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 

 

 

창작을 하고 싶으나 과연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지를 확신하지 못해 고민하는 작가 지망생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 창작을 하려는 당신은 자연히 독서를 많이 할 것이다. 독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알게 해 주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므로 그 자체로 유익하다.

- 그러므로 창작이 잘 되지 않아서 작가가 되지 못하고 나중에 다른 직업을 갖게 된다고 하더라도 창작하는 시절의 경험은 좋은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 창작을 하고 싶다면 일단 해 보라. 창작을 하는 동안은 행복할 수 있다.

 

 

헤세도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직접 형편없는 시라도 지어보면 안 될까? 그렇게 해 보라. 그러면 형편없는 시를 짓는 것이 심지어 최고 아름다운 시를 읽는 것보다 훨씬 행복함을 알게 될 것이다.”(158쪽)

 

 

 

 

 

4.

“우리는 자신과 우리의 일상생활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우리 자신의 삶을 보다 의식적이고 성숙하게 다시 단단히 손에 쥐기 위해 독서해야 한다.”(120쪽)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의 경우엔 책을 읽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는데, 어떤 때엔 고민이나 걱정을 잊기 위해 책을 집어 든다. 책을 읽고 나면 정신이 분산되어서 고민이나 걱정의 크기가 반쯤 줄어든 것 같아 좋다. 이것도 내겐 독서의 장점이다. 그런데 헤세는 일상생활을 잊기 위해서 하는 독서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나와 다른 시각이다.

 

 

 

 

 

5.

“우리는 냉담한 선생님에게 다가가는 소심한 학생이나 술병에 다가가는 건달처럼 할 것이 아니라, 알프스에 오르는 등산객처럼, 무기고로 들어가는 전사처럼 책에 다가가야 한다. 또한 피난민이나 삶에 불만을 품은 사람처럼 할 것이 아니라 호의를 품고 친구나 조력자에게 다가가는 사람처럼 책에 다가가야 한다.”(120~121쪽)

 

 

독서에 임하는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표현이 참 좋다. 한마디로 진지하게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의한다. 나는 연필을 옆에 두고 책에 밑줄을 그으며 집중해서 읽는다. 술병에 다가가는 건달처럼 읽지 않고 알프스에 오르는 등산객처럼, 무기고로 들어가는 전사처럼 읽는다고 할 수 있겠다.

 

 

 

 

 

6.

“사랑도 예술과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더없이 위대한 것을 아주 조금밖에 사랑할 줄 모르는 자는 아주 보잘것없는 것에 불타오를 수 있는 자보다 훨씬 불쌍하고 하찮은 존재이기 때문이다.”(131쪽)

 

 

동의한다. 시 한 줄에 감탄할 줄 아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책에 열광할 줄 아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작은 것에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7.

“알다시피 정신분석가들 자신이 정신분석 이전 시기의 문학작품을 어디서나 자신들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이자 전거로 이용했다. 그러므로 시인들은 정신분석이 깨닫고 학문적으로 표현한 내용을 항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137쪽)

 

 

정신분석학이 등장하기 전에 시인(작가)들은 이미 그것을 표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정신분석학이 출현하기 이전에 그와 관련한 내용을 자신의 작품에 썼다고 한다. 정신분석학을 알지 않고도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자신의 경험에서 알아냈을까, 아니면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여 알아냈을까. 인간을 깊이 이해했던 도스토예프스키가 감탄스럽다.

 

 

 

 

 

8.

“거창한 문제를 제기하는 입센이나 헤벨 같은 작가들, 저 이상한 거인들은 작품에서 너무나 심오한 문제들을 울려대지만, 우리에게 전체적으로 그다지 기쁨을 안겨주지는 못했다.”(185쪽)

 

 

헤세가 <인형의 집>이란 문제작을 쓴 입센을 과소평가한다는 점에 놀랐다. 이런 작가보다 새나 하늘의 구름을 노래하는 시인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으음... 이것은 생각해 볼 점.

 

 

이해를 돕기 위해 헤세가 좋아하는 시구를 소개한다.

 

 

“세계는 너무나 고요하고

어스름 속에 덮여 있다

너무나 아늑하고 사랑스럽게“(304쪽)

 

 

 

 

 

9.

“세계사의 가장 훌륭한 소재를 가지고 시시한 작품이 나올 수 있고, 잃어버린 바늘이나 눌어붙은 수프 같은 아무것도 아닌 소재를 가지고도 진정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280쪽)

 

 

“바로 이들, 이들 목가시인들, 풀잎 하나도 계시로 여기는 단순하고 눈 밝은 이들 신의 자식들, 우리가 보다 소박한 작가라고 일컫는 바로 이들은 우리에게 최상의 것을 안겨준다. 그들은 우리에게 ‘무엇’이 아닌 ‘어떻게’를 가르쳐준다.”(185쪽)

 

 

무엇에 대해 글을 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동의한다. 글감의 선택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감은 어디서나 얻을 수 있다. 소설의 한 문장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게 글감이다.

 

 

어느 교수님이 말씀하셨다고 친구에게서 전해 들은 얘기가 있다. 사람은 마흔 살이 넘으면 더 이상 경험하지 않아도 글 쓸 게 충분하고, 마흔 살까지 경험한 것들을 다 쓰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맞는 말 같다. 

 

 

나는 책을 읽으면 저절로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그것을 재료로 글을 쓰면 충분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독서와 사색을 할 것, 이것이 중요하다. 글을 잘 쓰기 위해 연애를 하라, 여행을 하라 등의 말은 불필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경험이 부족해서 글을 쓰지 못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10.

“그런데 나는 특히 나 자신의 책들에서 ‘흥미진진한’ 줄거리를 가장 혐오한다.”(214쪽)

 

 

“나는 세 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 ‘흥미진진한’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나는 그것을 너무나 객관적으로, 너무나 짧게,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덜 흥미진진하게 표현하려고 했다.”(215쪽)

 

 

덜 흥미진진하게 표현하려고 했다니, 의외다. 나는 어떻게 하면 재밌는 글을 쓸 수 있을까, 하고 연구하는 편이라 동의할 수 없겠다. 하지만 문학이란 게 ‘흥미진진하게 쓰기’보다 ‘심오하게 쓰기’가 더 좋다고 한다면 이건 생각해 볼 만하다. 헤세의 <데미안>이란 작품을 떠올려 보면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심오하면서도 흥미진진한 것.

 

 

 

 

 

11.

“어떠한 사상가의 어떤 책, 어떠한 시인의 어떤 시도 거듭 읽을 때마다 새로운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다르게 파악될 것이며, 다른 울림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나는 젊은 시절 괴테의 『친화력』을 읽고 단지 부분적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그것은 내가 이제 다섯 번째로 읽게 될 『친화력』과는 완전히 다른 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268~269쪽)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작품이든 긴 시간을 두고 읽을 적마다 다르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읽을 적마다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셈이다.

 

 

 

 

 

12.

마지막으로 헤세의 메시지 중 가장 무게가 느껴지는 글을 뽑았다.

 

 

“하지만 인류 전체를 정신적으로 획일화하기 위해 민족의 특성을 없애는 것이 결코 저의 이상은 아닙니다. 오, 아닙니다, 우리의 사랑스런 지구에 다양성과 차이, 구별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인종과 민족, 수많은 언어, 많은 종류의 성향과 세계관이 있다는 것은 근사한 일입니다. 저는 전쟁과 정복, 합병을 증오하고 철저히 반대합니다. (…) 저는 ‘위대한 단순화’에 반대하며, 질과 완벽성, 모방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합니다.”(295쪽)

 

 

동의한다.

 

 

 

 

 

 

..........................................

<후기>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 눈에 띄어 번역이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하며 읽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1) “나는 그 원칙을 근사하다고 여기며,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원칙을 단 한 달도 지킬 수 없을 것이다.”(221쪽)

 

내가 고치면 : “나는 그 원칙을 근사하다고 여기지만,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원칙을 단 한 달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또는) “나는 그 원칙을 근사하다고 여기며,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원칙을 단 한 달도 지킬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긴다.

 

 

 

2) “타고난 정원사, 타고난 의사, 타고난 교육자처럼 자신의 직업에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언제나 복 받은 희귀한 현상이다.”(227쪽)

 

내가 고치면 : “타고난 정원사, 타고난 의사, 타고난 교육자처럼 자신의 직업에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언제나 복 받은 희귀한 사람이다.

 

 

 

3) “그를 움직이고 이끄는 것은 거만함이나 겸손해지려는 힘든 노력이 아니라 오로지 빛에 대한 사랑, 현실에 대해 열려 있는 자세, 참된 것을 통과시키는 능력입니다.”(300쪽)

 

내가 고치면 : “그를 움직이고 이끄는 것은 거만하거나 겸손해지려는 힘든 노력이 아니라 오로지 빛에 대한 사랑, 현실에 대해 열려 있는 자세, 참된 것을 통과시키는 능력입니다.” (또는) “그를 움직이고 이끄는 것은 거만함이나 겸손함을 위한 힘든 노력이 아니라 오로지 빛에 대한 사랑, 현실에 대해 열려 있는 자세, 참된 것을 통과시키는 능력입니다.”

 

 

 

 

 

..........................................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 문장이 있긴 하지만 작가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엔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4-04-30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 책 정말 읽어보고 싶네요.
전 헤세 오래 전에 졸업했는데...
한동안 헤세가 좋아서 <데미안>을 비로해 몇 권 읽은 기억이 나네요.
지금 읽으라고 그러면 다시 읽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한데 말입니다.

쓰신 3번 글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건, 엊그제 전에 써 놨던 대본을 연출가한테 보여줬더니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고 그러고, 설명조라는 둥 그러는 거예요.
어찌나 기분이 잡치던지. 그럴 필요가 없는데 나도 어지간히 소심하다 싶었어요.
오늘은 어떠냐구요? 날씨만큼이나 맑음이어요.
쫌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조짐이 보여서요. 웃기죠?ㅋㅋ

페크pek0501 2014-04-30 17:45   좋아요 0 | URL
예, 읽을 만한 책이에요. 저는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해요. 이런 책은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아요.
기분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기도 하죠. 요즘 좋아하는 건 봄 공기와 걷기와 에세이예요.

아무리 문학적 재능이 있다고 해도 즐기면서 노력하는 자를 따를 수 없겠죠.
그러고 보면 재능이란 별것 아니에요.
"천재는 l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노력이다."(에디슨) ^^

노이에자이트 2014-05-02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명 작가들이 동시대 작가를 평가하는 것을 보면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 때가 있죠.헤세가 입센을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은 것과 비슷한 태도로, 서머싯 모옴은 토마스 하디와 헨리 제임스의 명성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하지만...

페크pek0501 2014-05-02 15:29   좋아요 0 | URL
서머싯 몸이 쓴 <과자와 맥주>는 토마스 하디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라고 해서 구설수에 올랐던 것인데 좋게 쓰지 않아서였죠.
시각의 차이라는 게 있겠죠. 누구에게나 좋은 작품이란 없는 건가 봐요...^^

노이에자이트 2014-05-02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길 가다가 이쁜 여자를 보면 저절로 시를 읊게 됩니다.오~ 여인이여! 아름다운 여인이여! 내 곁에 있어주오~하면서요.

페크pek0501 2014-05-03 13:35   좋아요 0 | URL
ㅋㅋ 젊다는 증거입니다. 좋은 일이에요. ^^
 
인간의 굴레에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같은 소설을 읽는다고 해도 독자의 가치관이나 취향 등에 따라서 그 소설의 가치를 다르게 매길 것이다. 그 소설에서 얻는 것도 각자 다르리라. 어떤 대목에서 감동적이라고 느끼고, 어떤 대목에서 교훈적이라고 느끼고, 어떤 대목에서 유머가 있다고 느끼고, 어떤 대목에서 작가의 독창성을 느끼는지도 각자 다르리라. 이렇게 소설에 대한 독자의 해석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하고 이 글을 쓴다.

 

 

나는 이 소설의 메시지를 세 가지로 보았다. 그 세 가지란 주인공인 필립이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깨달아 가는 것들로, 간단히 말하면 ‘어쩔 수 없는 마음’, ‘시행착오의 인생’, ‘무의미한 인생’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마음’이란 인간은 아무리 이성으로 올바른 판단을 할지라도 이성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되는 것을 말함이다.

‘시행착오의 인생’이란 인간이 현명하게 살아가는 게 아니라 어리석게 시행착오를 겪으며 사는 것을 말함이다.

‘무의미한 인생’이란 인생에는 어떤 심오한 뜻이 있을 것 같지만 그런 건 없다는 것을 말함이다.

 

 

이것들을 이야기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1. 어쩔 수 없는 마음

 

 

세상을 살다 보면 자기 마음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런 경우에 ‘이성’이란 건 무용지물이다.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의 역할이 있긴 하지만 인간은 이성을 따르기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필립은 간파하게 된다.

 

 

예전에 필립은 ‘밀드레드’라는 여자와 헤어진 적이 있다. 그녀가 딴 남자가 결혼하겠다고 떠난 것이다. 이 일에 그는 자존심이 상했고 비참해졌다. 그녀도 경멸스러웠지만 자신도 경멸스러웠다.

 

 

그 다음에 필립은 ‘노라’라는 여자를 사귀게 된다. ‘노라’는 그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에게 편안한 행복을 준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즐겁다. 그런데 밀드레드가 다시 나타난다. 그녀는 딴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몸이었고 오갈 데가 없는 신세가 되어 있었다. 필립은 그녀를 물심양면으로 보살펴 준다. 그녀는 그의 보살핌에 고마운 마음은 가지고 있으나 그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그는 노라를 신뢰하지만 밀드레드를 신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노라보다 밀드레드에게 끌리고 만다. 그래서 노라와 헤어지기로 한다.

 

 

분별이 있는 남자라면 마땅히 노라를 택하리라. 밀드레드와 함께 있는 것보다 노라가 그를 훨씬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노라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음에 비해, 밀드레드에게는 그의 도움에 대한 감사의 마음밖에 없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사랑을 하는 것. 문제는 그가 지금 온 영혼을 바쳐 밀드레드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라와 함께 한나절을 보내기보다 단 십 분이라도 밀드레드와 같이 있고 싶은 것이며, 노라의 어떤 키스보다도 밀드레드의 그 차가운 키스 한번이 더 좋은 것이다.

'어쩔 수 없어.' 그는 생각했다. '밀드레드는 이제 내 골수에 사무쳐 있는 거야.'

---------- <인간의 굴레에서 2>, 53~54쪽. ----------

 

 

필립은 밀드레드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정리한다.

 

 

그녀가 설령 박정한다 한들, 그녀가 사악하고 저속하다 한들, 설령 미련하고 욕심이 많다 한들 어찌하랴. 이 사랑의 마음을 어찌하랴. 노라와 행복해지고 싶기보다 밀드레드와 불행해지고 싶은 것이다.

---------- <인간의 굴레에서 2>, 54쪽. ---------- 

 

 

밀드레드는 딸을 낳는다. 필립은 그 아이가 비록 다른 남자의 아이이지만 그 아이도 예뻐한다. 밀드레드와 그 딸을 보살펴 주며 행복해 한다. 

 

 

어느 날 필립은 밀드레드에게 그리피스를 소개해 주기로 한다. 그리피스는 바람둥이이긴 하지만 필립이 아팠을 때 병간호를 정성껏 해 주던 사람으로서 그것을 계기로 가까워진 친구이다.

 

 

필립은 그녀가 하루종일 자기하고만 보내면 따분해할까봐 걱정이 되던 참이었다. 그리피스는 재미있는 친구이니 저녁 시간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필립은 두 사람이 다 좋았기 때문에 서로 알고 지내면서 맘에 드는 사이가 되었으면 했다.

---------- <인간의 굴레에서 2>, 87쪽. ---------- 

 

 

셋이 만난 자리에서 그리피스는 즐거운 얘기들을 쏟아낸다.

 

 

그는 즐거운 우스갯소리들을 하기 시작했다. 필립으로서는 도저히 흉내내지 못할 재담이었다.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었다. 내용은 없었으나 발랄함이 넘쳤다. 그에게서는 생명력이 흘러넘쳤고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이 그 생명력에 감응을 받았다. 그것은 마치 체온처럼 감지할 수 있었다. 밀드레드가 이처럼 생기를 띠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이 작은 자리가 성공을 거두자 필립은 퍽 기뻤다. 그녀는 재미있어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버릇처럼 몸에 배어 있던 얌전 떨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 <인간의 굴레에서 2>, 88~89쪽. ---------- 

 

 

그리피스의 재담에 밀드레드가 반해 버린다. 바람둥이인 그리피스 역시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이튿날 그들 셋은 다시 모여 이탈리아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연예관에 간다. 필립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밀드레드와 그리피스가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립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말도 하고 웃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을 고문하고 싶은 야릇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는 일어나서 뭘 좀 마시고 오겠다고 했다. 밀드레드와 그리피스는 지금까지 한번도 단둘이만 있어본 적이 없다. 이들을 단둘이만 있게 해보고 싶었다. (…) 그는 바로 가지 않고 발코니로 올라갔다. 거기에서 그는 두 사람을 볼 수 있지만 그들은 자기를 보지 못한다. 이제 두 사람은 무대는 아예 보지도 않고 서로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 그는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지금 돌아가면 방해만 될 뿐이다. 그가 없으니 두 사람은 마냥 즐거운 것이다. 그는 괴롭고 괴로웠다.

---------- <인간의 굴레에서 2>, 93쪽. ---------- 

 

 

그는 그리피스와 밀드레드가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해 있는 그 자리에 별수 없이 돌아갔다. 밀드레드의 눈에 자기를 귀찮아하는 표정이 스치는 듯해서 가슴이 내려앉았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필립은 그녀의 손을 잡지 않았고 그녀도 손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그리피스의 손을 잡고 있음을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 <인간의 굴레에서 2>, 94쪽. ----------

 

 

필립은 두 사람이 자기 몰래 만날 계획을 세웠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꾸 둘이서 서로 좋아하는 것 같다고 의심했다. 그리고 그 의심은 적중했다. 결국 필립은 자기 친구인 그리피스에게 밀드레드를 빼앗기고 만다.

 

 

제일 속이 상했던 점은 그리피스의 배반이었다.

---------- <인간의 굴레에서 2>, 111쪽. ----------

 

 

필립은 고통스러워한다. 이렇게 그가 고통스럽게 된 이유는 신뢰하는 노라를 버리고 신뢰하지 않는 밀드레드를 택했기 때문이다. 안전한 행복을 버리고 불안전한 행복을 택했기 때문이다. “노라와 행복해지고 싶기보다 밀드레드와 불행해지고 싶은 것이다.”라고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지 않았던가. 필립은 다시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하게 되리라. 왜냐하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이성이 아니라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만드는 마음인 것이다. 그 ‘어쩔 수 없는 마음'의 힘은 강력한 것이다.

 

 

 

 

 

 

2. 시행착오의 인생

 

 

선천적으로 다리가 불구인 필립은 어릴 때 부모를 잃어 백부의 집에서 자란다. 자식이 없는 백모는 필립을 친자식처럼 여기고 사랑한다. 하지만 사제였던 백부는 필립에게 정을 주지 않고 엄격하게 대하기만 한다.

 

 

필립은 학교를 우등으로 마친 다음 옥스퍼드에 진학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학교를 그만두기로 한다. 학교를 다니는 게 싫었다. 필립은 런던에 가서 ‘공인회계사’라는 직업을 갖기 위한 일을 배운다. 하지만 필립은 자기가 사무실에서 장부 계산이나 하는 이런 일보다는 더 훌륭한 일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고, 장부 계산과 같은 일을 자기가 썩 잘해 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창피스러워 한다.

 

 

그런 필립에게 헤이워드가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냈다.

 

 

(…) 인생을 살 만하게 해주는 것은 세상에 두 가지뿐일세. 예술과 사랑이지. 난 자네가 사무실에 앉아 장부 따위나 들여다보고 있는 걸 상상할 수 없네. (…) 왜 파리에 가서 미술공부를 하지 않나? 난 늘 자네가 그쪽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네.

---------- <인간의 굴레에서 1>, 279~280쪽. ----------

 

 

이 편지를 받고 필립은 생각에 잠겼다.

 

 

이 권고는 묘하게도 필립이 한동안 마음속으로 막연히 타진해 보았던 가능성과 완전히 맞아떨어지고 말았다. (…) 다들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재능이 있다고 했다.

---------- <인간의 굴레에서 1>, 280쪽. ----------

 

 

게다가 필립에겐 그림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필립은 일을 그만두고 파리로 가서 화가가 되기로 한다.

 

 

케어리 씨 내외(백부 내외)는 화가가 되겠다는 필립의 생각에 충격을 감추지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신사 집안이셨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그림 그리는 일이 어찌 버젓한 직업이겠느냐, 세상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이나 택하는, 남 부끄럽고, 부도덕한 직업이다,고 그들은 말했다. 게다가 파리라니!

“내가 이 문제에 관여할 수 있는 한, 널 파리에 보내지는 않겠다.” 사제는 단호하게 말했다.

---------- <인간의 굴레에서 1>, 286쪽. ----------

 

 

백부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필립은 그림을 배우기 위해 파리로 간다. 그곳에서 2년 동안 그림을 공부한다. 하지만 자신에겐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화가의 길을 포기하고 만다. 그리고 의사가 되기로 한다.

 

 

그런 필립에게 백부가 말했다.

 

 

“이제 너는 어린애가 아냐. 자리를 잡고 안정할 생각을 해야지. 처음에는 공인회계사가 되겠다고 우겼다가 곧 싫증을 내고 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 또 멋대로 생각을 바꾸다니. 그건 말이다, 네가 ……”

그는 필립의 성격적 결함을 정확히 지적하는 말을 찾으려고 잠시 머뭇거렸다. 필립이 대신 말끝을 맺어주었다.

“우유부단하고, 무능하며,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의지가 약하다는 거겠죠.”

---------- <인간의 굴레에서 1>, 424쪽. ----------

 

 

백부는 필립이 유산으로 상속받은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이젠 필립이 쓸 돈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했다.

 

 

“어쨌든 너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네가 그림 공부를 하겠다고 했을 때 내가 반대를 했는데 역시 내 말이 옳았다는 것 말이다.”

“그 점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군요. 남의 충고에 따라 옳은 일을 하여 얻는 것보다 스스로 애쓰다 잘못한 실수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요. 저는 제 하고 싶은 것을 해본 거예요. 그리고 이제 생활을 정돈해도 나쁠 것 없구요.”

---------- <인간의 굴레에서 1>, 425쪽. ----------

 

 

필립은 남의 말에 따라 현명한 삶을 살기보다 스스로 선택한 삶에서 교훈을 얻으면서 깨달아 가는 게 나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인생이란 시행착오의 인생인 것이다.

 

 

 

 

 

 

3. 무의미한 인생

 

 

필립은 동방의 어떤 임금 얘기가 생각났다. 인간의 역사를 알고 싶었던 이 임금은 한 현자를 시켜 오백 권의 책을 가져오게 했다. 나라 일로 바빴던 왕은 책들을 간단히 요약해 오라고 했다. 이십 년 뒤, 현자가 돌아와 오십 권으로 줄인 역사책을 내어놓았다. 하지만 임금은 이제 너무 늙어 그 수많은 묵직한 책을 도저히 읽을 수 없어 그것을 다시 줄여오도록 명령했다. 또 이십 년이 흘렀다. 늙어 백발이 된 현자가 임금이 원한 지식을 한 권의 책으로 줄여 가지고 왔다. 하지만 임금은 병상에 누워 죽어가고 있었다. 한 권의 책마저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현자는 임금에게 사람의 역사를 단 한 줄로 줄여 말해 주었다. 그것은 이러했다. 람은 태어나서, 고생하다, 죽는다. 인생에는 아무런 뜻이 없었다.

---------- <인간의 굴레에서 2>, 364~365쪽. ----------

 

 

필립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까지 자기를 박해한다고만 생각했던 잔혹한 운명과 갑자기 대등해진 느낌이 들었다. 인생이 무의미하다면, 세상도 잔혹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무엇을 하고 안하고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실패라는 것도 중요하지 않고 성공 역시 의미가 없다.

---------- <인간의 굴레에서 2>, 365쪽. -------

 

 

필립은 크론쇼에게 인생의 의미가 무어냐고 묻자 자신에게 페르시아 양탄자를 선물했던 것을 기억해 냈다. 그게 답이었던 것. 즉 인생이란 페르시아 양탄자처럼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함이었다.

 

 

직조공이 양탄자의 정교한 무늬를 짜면서 자신의 심미감을 충족시키려는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을 갖지 않았듯이, 사람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다. (…) 어떤 행위는 쓸모가 없는 만큼 꼭 해야 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하는 것뿐이다. (…) 사람은 다양한 실가닥을 선택하여 무늬를 짬으로써 자기만의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장 뚜렷하고, 가장 완벽하고, 가장 아름다운 무늬가 하나 있다. 태어나, 성장하여 결혼하고, 자식을 생산하고, 먹고 살기 위해 일하다 죽는다는 무늬가 그것이다. 하지만 복잡하고 훌륭한 다른 무늬들도 있다. 행복이 없는 무늬, 성공을 추구하지 않는 무늬가 그것이다. 그것들에서도 한결 착잡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 <인간의 굴레에서2>, 366쪽.--------

 

 

필립이 이해한 바로는 어떤 인생이든 무의미한 인생인 것이다.

 

 

 

 

 

 

***** 맺는말 ***** 

 

 

1.

서머싯 몸의 작품을 다 찾아 읽고 싶을 만큼 이 소설을 재밌게 읽었다. 주인공 필립의 삶도 흥미로웠지만 작가의 사유를 담은 문장이 곳곳에 많아서 더 흥미로웠다. 만약 내가 앞으로 소설만 줄곧 읽는다면 이런 소설만 읽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다. 글을 읽다가 보물을 발견한 듯한 문장을 만나면 밑줄을 긋고 여러 번 읽게 되는 즐거움! 이 즐거움은 소설의 참맛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다 보면 쓰레기 더미가 있는 길을 만났다가 꽃밭이 있는 길을 만났다가 하는 것을 반복하며 사는 게 우리의 ‘인생’ 같다. 쓰레기 더미의 악취로 괴로워하다가 꽃밭이 나타나면 꽃향기로 기뻐한다. 꽃향기로 기뻐하다가 쓰레기 더미가 나타나면 악취로 괴로워한다. 누구나 쓰레기 더미의 길에만 머물지 않으며 누구나 꽃밭의 길에만 머물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얼마나 길게 꽃밭의 길에 머무느냐가 아니라 쓰레기 더미의 길이 나타났을 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그곳을 지나느냐가 아닐까 한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악취가 더 날 수도 덜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 더미의 길에서도 현재의 시간은 흐르고 있고 미래의 시간도 흐르게 된다는 것은 큰 위안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쓰레기 더미의 길을 지나쳐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행운처럼 꽃밭의 길에 들어서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2.

마지막으로 이 소설에서 인상 깊었던 문단을 하나 소개한다. ‘헤이워드’라는 사람에 대한 글이다.

 

 

그러나 헤이워드는 책에 대해서는 여전히 즐겁게 이야기할 줄 알았다. 안목이 뛰어났고 감식력도 섬세했다. 그는 사상에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즐거운 말동무가 될 수 있었다. 사상 자체는 실상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상을 마치 경매장에 나온 도자기들처럼 다루었다. 손에 들고 형태와 빛깔을 즐기면서 마음속으로 값을 매겼다. 그런 다음 다시 상자 속에 넣어두고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 <인간의 굴레에서 2>, 25쪽. ----------

 

 

이 글은 ‘인간’과 ‘사상’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글이다. 헤이워드에게 ‘사상’이란 도자기와 같다. ‘사상’을 즐겁게 감상하지만 상자 속에 넣어 둔 다음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사상’이 그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이 글에서 ‘사상’ 대신에 ‘이성’이란 낱말을 넣어 읽었다. 인간에게 ‘이성’이란 도자기와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성’이 도자기처럼 우리의 행동에 전혀 영향을 미치는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성’은 현명한 판단을 해 줄 뿐 우리를 행동으로 몰고 가지는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성’은 그저 관찰자이며 방관자일 때가 얼마나 많은가. 다시 말해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마음’이 지배하는 행동을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예를 들면 술을 끊기로 하고 끊지 못하고,

다이어트를 하기로 하고 하지 못하고,

책을 사지 않기로 하고 사는 경우가 우리에겐 얼마나 많은가. 

 

 

밀드레드가 책임감 있는 필립을 버리고 무책임한 남자를 따라가서 결국 남자로부터 버림을 받는 일이 두 번 반복되는 것도 그 ‘어쩔 수 없는 마음’ 때문이다. 필립도 연애를 할 때나 진로를 결정할 때 ‘이성’보다 ‘어쩔 수 없는 마음’에 지배를 받는다. 나는 그것이 ‘인간의 모습’일 거라고 생각하며 이것에 무게를 두고 읽었다. 그래서 <인간의 굴레에서>라는 소설 제목에서 ‘인간의 굴레’를 ‘마음의 굴레’로 읽었다.

 

 

필립은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아, 어쩔 수 없는 마음이여!”

 

 

 

 

 


댓글(26)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04-09 1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09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4-04-09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을 읽게된다면 순전히 페크님 덕입니다!

페크pek0501 2014-04-09 12:43   좋아요 0 | URL
아, 그렇습니까?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소설이라고 말씀드릴 순 없지만, 적어도 다락방 님은 재밌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저의 경우, 소설의 맛을 즐기는 건 줄거리에 있지 않고 사유의 문장에 있는데
님도 그 맛을 아시리라 생각? 아니 확신합니다. ^^


추신 : 지금, 맺는말에서 2번을 추가했어요. 제 답글을 확인하러 오실 때 읽어주시길... ^^

비로그인 2014-04-09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거 아닌데 괜시리 번거롭게 해드리는게 아닐지.. ~~ㅠㅠ

언제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좀 흐리지만 날이 그래도 포근하네요.. 페크님.. ^^ 기가막히게 아름다운 봄날들이 이렇게 흐르네요.. ~~^^

페크pek0501 2014-04-09 12:47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봄날에, 저는 자다가 깼어요.
글을 올리고 나니 잠이 쏟아져서요. 그리고 지금 글을 추가해 넣었답니다.
잠에서 깨면서 이 글이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작성해 놓았던 글이 생각났어요. 따로 쓸까 하다가 그냥 여기에 넣었어요.

추신 : 지금, 맺는말에서 2번을 추가했어요. 제 답글을 확인하러 오실 때 읽어주시길... ^^

야클 2014-04-09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고 근사한 리뷰네요. 잘 읽었습니다. ^^

페크pek0501 2014-04-10 09:04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그렇게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2014-04-09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10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개 2014-04-09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던 책인데
페크님 때문에 오늘 구매했어요. ^^::::

페크pek0501 2014-04-10 09:13   좋아요 0 | URL
아, 급부담되네요...
하지만 님이 이미 읽으셨다니 안심이에요.
이런 책은 소장하는 게 좋다는 게 제 생각이긴 해요.
좋은 봄날 되세요...

착한시경 2014-04-09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구나니,,, 당장 책을 읽어보고 싶어져요~다행히 책이 있어서 훓어볼수 있었네요~ 정말 책을 꼭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리뷰예요^^

페크pek0501 2014-04-10 09:15   좋아요 0 | URL
책이 있으시다니 좋겠습니다.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리뷰가 아니라
영양가 없이 길게만 쓴 리뷰 같습니다.
길어서 자르고 싶었는데 자를 데가 없더라고요. 제 능력 부족으로...ㅋ
좋은 봄날 되세요.

2014-04-10 0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10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4-04-12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레기 더미의 악취로 괴로워하다가 꽃밭이 나타나면 꽃향기로 기뻐한다. 꽃향기로 기뻐하다가 쓰레기 더미가 나타나면 악취로 괴로워한다. 누구나 쓰레기 더미의 길에만 머물지 않으며 누구나 꽃밭의 길에만 머물지 않는다. - 언제나 밑줄긋기 할 게 많은 페크님 글^^*
서머싯 몸 글은 '서밍업'으로 먼저 만났었는데 그때도 참 좋았어요. 작가관 인생관에 관한 글이었던 걸로... 영어 원서 옆에 번역되어 있어서 영어 공부하기 좋으라고 편집되어 있었던 걸 기억해요. 인간의 굴레, 읽게 된다면 저도 페크님 덕~~

페크pek0501 2014-04-13 11:50   좋아요 0 | URL
저에겐 본능적으로 교육자의 특성 같은 게 있는 모양이에요.
좋은 책을 만나면 다른 이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욕구가 마구마구 샘솟는 거예요.

요즘 봄날이라고 매일 많이 걸었더니, 자고 일어나니 다리가 아프네요.
오늘은 다리를 쉬어 줘야겠어요.
좋은 휴일 보내시길...

2014-04-12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13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4-04-12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의 소설에는 남자에게 상처 주는 여자가 꼭 등장하죠.그래서 몸이 동성연애에서 위안을 찾았는지도 모릅니다.

페크pek0501 2014-04-13 12:10   좋아요 0 | URL
저도 읽은 적이 있네요. 몸이 동성연애자가 아닐까 의심 받은 적이 있다고요.
진실은 본인만이 알겠지요. 어쩌면 본인도 모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옛 시대에서 예술가들에게 그런 성향이 있는 건 드문 일이 아니지요.

좋은 봄날이에요. 만끽하시길...


노이에자이트 2014-04-13 17:26   좋아요 0 | URL
제가 가진 책의 역자해설엔 몸의 동성연애 경력은 분명하다고 나와있네요.

몸이 살던 시대는 옛날이라고 하기엔 좀...20세기 중반 이후까지 살았는 걸요.워낙 장수했죠.

페크pek0501 2014-04-13 18:09   좋아요 0 | URL
길쿤요(그렇군요).ㅋ

1874년생이어서 오래된 사람인 줄 알았는데 향년 91세로 영면, 1965년까지 살았다네요. 놀랍습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4-04-14 17:38   좋아요 0 | URL
몸은 마지막 생애 10년 동안 온갖 추한 모습은 다 보여줬죠.차라리 70세 좀 넘어서 타계했으면 좋았을텐데...하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페크pek0501 2014-04-15 21:36   좋아요 0 | URL
아, 그랬나요? 10년 동안 온갖 추한 모습을 다 보였군요. 저는 그래도 광팬 하겠습니다.
설령 도박에 빠지거나 유부녀와 바람이 나거나 알콜 중독이거나... 어떤 일이든 이해할 것 같습니다. 이미 좋아하고 있으니까요. 좋아하는 사람에겐 관대한 법이니까요. 그리고 인간을 이해하려 들면 이해하지 못할 게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의 자서전이 있다면 읽어 보고 싶군요. ^^
 
시적 정의 - 문학적 상상력과 공적인 삶
마사 누스바움 지음, 박용준 옮김 / 궁리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1.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때가 있다. 여기서 문제란 직접 경험하기 전엔 알 수 없는 ‘인간의 마음’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말한다. 서로 똑같은 처지가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상대의 마음 상태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건 인간관계에서 큰 장애 요인이다. 이 장애 요인으로 인해 상대를 오해하기도 하고 상대로부터 이해를 받지 못하기도 한다.

 

 

 

우리 대부분은 ‘인간’에 대해 무지하다. 단지 자신의 무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인간이 어리석다는 것은 알지만 자신의 어리석음을 모르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우리 모두 자신만은 올바르게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사별한 사람의 심경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난 8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로부터 며칠 뒤에 어머니의 심경을 전해 들은 게 있다. 남편이 죽었다는 게 창피하기도 하고 자신이 죄를 지은 것도 같아서 밖으로 돌아다닐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과일을 사러 슈퍼마켓에 가는 것도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고 한다. ‘남편은 죽었는데 자신은 과일을 먹고 싶어 사러 왔다.’고 사람들이 자신을 흉볼 것 같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자신에게 말을 붙이며 위로해 주는 사람보다 못 본 척해 주는 사람이 더 고맙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많이 놀랐다. 남편과 사별한 경험이 없으면 이런 마음을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갖춰야 할 덕목 중의 하나가 상대를 배려하는 것인데, 이것은 상대의 마음을 알아야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면, 과부가 아닌 사람은 과부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배려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상대와 똑같은 처지에 있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우리가 상대의 마음을 공유하며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공부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

 

 

 

 

 

2.

내가 이십 대 초반에 있었던 일이다. 한 친구가 자신의 부모에 대한 얘기를 들려 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비밀스러운 얘기를 하듯 머뭇거리다가 입을 떼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해서 따로 살고 있으며 자기는 어머니와 살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늘 슬픔을 품고 산다고 한다.

 

 

 

나는 이 얘기를 듣고 놀랐지만 위로를 해 주고 싶어서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이혼이 별것 아닌 일이라는 듯이 말했다. 이혼한 부모를 둔 게 그에게 큰 약점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거였다. 상처를 받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였다.

 

 

 

그런데 나중에 그가 얘기해 줘서 알았는데 이런 나의 말이 그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그는 내게 그런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고 한다. 그가 바랐던 건 내가 자신의 심경과 똑같이 느껴 주는 것, 그것이었다. 즉 내가 ‘공감’하길 바랐던 것. 만약 내가 그의 슬픔에 공감해 주었다면 그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그런 그의 마음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3.

내가 어머니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은, 슬픈 일을 당한 사람을 대할 땐 본인이 그 일에 대해 말하기 전엔 알은 척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은, 본인이 슬픈 일을 말할 땐 그의 마음에 공감해 주는 게 좋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경우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내가 어머니와 친구로부터 듣지 않았다면 내가 그들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소설 읽기’가 답이 되지 않을까 한다. 만약 내가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을 읽었다면 그의 마음을 잘 알았을 것이다. 꼭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을 읽지 않더라도, 평소에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보다 평소에 소설을 읽는 사람이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 더 발달하리라고 확신한다.

 

 

 

만약 소설을 주의 깊게 읽었다면, 우리의 자연스러운 반응은 내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다. 이는 가난한 자들을 마치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는 듯 대하고, 극히 평범하고 비루한 환경을 공상을 통해 우리 스스로가 거주하는 장소인 듯 바라보는 태도와 같다. - 88쪽.

 

 

 

(소설은) 우리 스스로를 친구로서의 공감과 감정을 이입하는 동일시를 통해 등장인물들과 관계 맺음으로써 그들의 운명을 나의 운명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 88쪽.

 

 

 

문학 작품은 일반적으로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의 입장에 서게 하고, 또 그들의 경험과 마주하게 한다. - 33쪽.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예술 등 모든 영역에서 ‘생활의 지혜’라는 건 ‘인간에 대한 이해’라는 바탕 없이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어떤 영역에서든 인간의 활동이 없는 영역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해 연구하는 ’인간학’이라고 말하는 소설을 읽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리라.

 

 

 

 

 

4.

우리는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상상력이 과학이나 의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은 그것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상상력은 소설에서도 필수다.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창조된 세계이고, 소설을 읽는 독자 또한 상상력으로 그 내용을 수용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독자는 소설을 보면서 상상력의 힘을 빌려 등장인물들의 느낌과 생각을 공유한다.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상상력을 강조했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지식은 제한적이지만 상상력은 계속해서 발달을 자극하고 진보를 낳으면서 온 세계를 포용하기 때문이다.”

 

 

 

상상력이 가치가 있다면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설도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특히 상상력을 발전시키고 싶은 청소년들에겐 소설을 읽는 게 더욱 필요하리라.

 

 

 

 

 

5.

혹시 이런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저는 소설 나부랭이나 읽는 사람들과는 달라요.”라고 말하는 사람.

“제가 소설을 읽고 있다고 하면 왠지 창피해져요.”라고 말하는 사람.

 

 

 

이렇게 소설을 폄하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유익한 독서가 되리라. 이 책은 우리가 소설을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하는 책이므로. 우리에게 문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문학의 가치에 대해서 말하는 책이므로.

 

 

 

 

 

6.

이 책은 문학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 찰스 디킨즈의 『어려운 시절』, 리처드 라이트의 『미국의 아들』, E. M. 포스터의 『모리스』 등의 소설을 등장시켜 설명한다.

 

 

 

이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도록 다음의 글들을 뽑았다.

 

 

 

1) 우리는 단순화된 모델이 주로 쉽게 장악하고, 이것이 현실의 전체인 양 보게 만드는 편리함을 늘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경향에 맞서야 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더욱더 소설 읽기를 강조해야 한다. 소설 읽기는 인간적 가치에 대한 감각을 생생하게 일깨워주며, 우리를 온전한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가치 판단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 110쪽~111쪽.

 

 

 

2) 『어려운 시절』과 같은 소설을 해석의 이론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문학이론가로서가 아니라 감동하고 기뻐하는 인간 존재로서 읽을 때, 우리는 개인적 편견과 선호로부터 자유로운 분별 있는 관찰자가 된다. - 180쪽.

 

 

 

3) 사실상 우리는 소설에 의해 특정 형태의 재판관이 되는 것이다. 재판관으로서 우리는 무엇이 옳고 적합한지에 대해 서로 논쟁을 하게 될 것이다. - 181쪽.

 

 

 

4)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그리고 다른 많은 형태의 유해한 편견은 흔히 집단 전체에 부정적인 특징을 귀속시키는 것에서 비롯한다. (…) 문학적 이해란 사회 평등으로 이끄는 마음의 습관을 고취시켜 집단 증오를 지탱하던 고정관념을 해체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 196쪽~197쪽.

 

 

 

5) 라이트의 소설은 내가 언급한 두 가지 방식 모두에서 “형평을 맞춘다”. 즉, 절망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 개별자들에게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 비거의 자아 개념과 감정적 삶을 지배하는 힘은 인종적 불평등과 증오다. 그는 백인 사회가 그에게 가한 명예 훼손으로부터 도출된 이미지에서 자기 자신을 인식한다. 즉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정의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를 그러한 식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무력함과 수치로부터 벗어나고자 폭력을 사용하며 생쥐와 같이 사납게 달려들 가능성이 다분한 존재다. - 198쪽~199쪽.

 

 

 

6) 소설은 처한 환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본래 같은 형제들이라고 말하는 손쉬운 공감을 불러일으키려 하지 않는다. 백인 독자들은 비거와의 동일시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의 외부적 환경뿐 아니라, 그의 감정과 욕망은 사회적 ‧ 역사적 요소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 199쪽.

 

 

 

7) 하지만 손쉬운 종류의 공감 이면에는 깊은 공감의 가능성이 놓여 있다. 즉,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인간 존재다. 생산적인 삶을 이끌 기본적인 장비를 가진 존재. 행위의 외부적 환경뿐 아니라 분노, 공포 그리고 욕망이 인종적 증오와 그것의 제도적 발현으로 인해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보라.” 동일시를 거부하게 만드는 이질감이 이제 우리의 주요 관심 대상이 된 것이다. - 199쪽~200쪽.

 

 

 

8) 소설은 모리스의 번영하는 삶과 클라이브의 위축된 삶의 묘사 속에서 자유의 깊은 가치를 보여줌으로써 성적 평등과 자유의 문제를 다룬다. 그리고 소설은 우리 자신 혹은 친구나 연인 중 누군가도 모리스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간파할 수 있도록 만듦으로써 그러한 평등의 지지자로서 독자의 참여를 요청하는 것이다. - 208쪽.

 

 

 

 

 

.............................................................

이 책의 리뷰를 쓴 사람이 없어서 내가 첫 리뷰 등록자가 되었다.

그래서 뭐?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잘잘라 2013-12-23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아! 제가 워낙 님의 글을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오늘 이 글 진짜 진짜 좋아요!!!
공감 꾸우우욱-! 이 책도 읽고, 소설도 한 권 읽고싶어져요. 올해가 가기 전에요. ^___^

페크pek0501 2013-12-24 08:05   좋아요 0 | URL
반가운 메리포핀스 님... 감사합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라고 하시니까 마음이 바빠지네요.
며칠 남지 않은 올해의 마무리를 잘 하시길 바랍니다.


stella.K 2013-12-23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쓰셨네요.
예전에 저는 소설의 일회성이 아쉬웠어요.
잘 읽지도 않지만 읽어도 한 번 밖에 안 읽잖아요.
그런데 요즘엔 소설의 위상이 예전에 비해 높아졌지요.
좋은 컨텐츠가 되고 있으니.
정말 재밌고, 속 든든한 소설 한 번 써 봤으면 좋겠어요.
뜨거운 곰탕국 같은 소설. 하하.
서재의 달인 되셨네요. 축하해요!^^

페크pek0501 2013-12-24 08:09   좋아요 0 | URL
예, 드디어 썼습니다. 미완성인 채로 있었는데, 올해가 가기 전에 완성해 올려야겠다고 맘먹었죠.
뜨거운 곰탕국 같은 소설 쓰기! 저는 리뷰 쓰는 것도 벅차네요. ㅋ
서재의 달인... 웃겨 죽는 줄 알았어요. 의외였어요.

메리포핀스 님과 애티커스 님 때문에 살았네요. ^^
좋은 하루 보내시길...

아!!!!!!!!!!!!! 님에게 밑줄긋기 하라고 지적질을 해 놓고 정작 저는 깜빡 했어요.
그래서 뒤늦게 올렸답니다. 6번이요.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3-12-24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라도 사람에 따라 여러가지 반응을 보이니까 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렵죠.확률로 봐서 이런 처지에 있는 사람은 이런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다...하고 접근했는데 상대는 예상 외의 반응을 보이면서 오히려 관계가 어색해져 버리는 경우도 있고요.그냥 너무 신경쓰지 않고 대충 신경 꺼야 좋은 경우도 많더라고요.

페크pek0501 2013-12-26 14:48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맞아요. 어려운 문제죠.
제 결론은 슬픔을 당한 사람에겐 침묵하고, 본인이 말을 꺼낼 때만 위로할 생각을 하자는 것이죠. ㅋ 침묵으로 욕 먹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그러니까 도움을 주고 싶을 땐 상대방이 요청할 때만(바란다고 느낄 때만) 해라, 가 되겠습니다.

마태우스 2013-12-25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정말 잘 정리해주셨네요. 감사드리구요, 전 외부강의를 할 때 독서와 과학의 관계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한답니다 독서야말로 상상력을 길러주는 요체고, 책을 많이 읽으면 논문도 잘쓸 수 있다구요. 그 중에서도 소설을 읽어야 상상력이 길러진다고 강의하죠. 진짜 그런 것이, 저도 소설 읽고나서부터 논문을잘쓰기 시작했답니다.

페크pek0501 2013-12-26 14:5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
소설을 무시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소설엔 굉장한 것들이 들어 있는 것 같아요.
사람에 따라서 10프로만 흡수하는 독자가 있고 90프로 흡수하는 독자가 있다고나 할까요. 저도 책에 따라 흡수하는 정도가 다 다르더라고요.

논문 쓰기... 저는 참 재미없던데... 존경스럽군요. ^^

화이트북 2017-04-09 0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았어요 🎀

페크pek0501 2017-04-11 13:03   좋아요 0 | URL
옛 글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17-11-08 2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08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침에혹은저녁에☔ 2017-11-08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고 하겠습니다

2017-11-08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