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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커피를 마시다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스티븐 킹이 일 년에 책을 몇 권 읽는다고 했더라?’ 나와 비교하고 싶었던 거다.

 


  이미 읽은 그의 책 <유혹하는 글쓰기>를 찾아보기로 했다. 책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책장이 있는 거실과 책이 쌓여 있는 안방을 오가면서 찾으니 안방 침대 옆에 수십 권의 책이 쌓여 있는 곳의 맨 아래에 있었다. 

 


  <유혹하는 글쓰기>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나는 독서 속도가 느린 편인데도 대개 일 년에 책을 70~80권쯤 읽는다. 주로 소설이다. 그러나 공부를 위해 읽는 게 아니라 독서가 좋아서 읽는 것이다. 나는 밤마다 내 파란 의자에 기대앉아 책을 읽는다. 소설을 읽는 것도 소설을 연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은 일 년에 70~80권쯤 읽는데 주로 소설이란다. 소설가인 그가 주로 소설만 읽는다는 사실이 실망스러웠다. 그런 대작가가 겨우 소설만 읽다니. 그 정도의 작가라면 철학, 사회학, 심리학, 윤리학, 종교,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두루 섭렵해야 되는 것 아닌가.

 


  ‘주로 소설만 읽는다.’ 이 말은 소설만 읽으면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소설엔 심오한 통찰이 들어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자신은 심오한 통찰력이 있어서 다른 책을 읽을 필요가 없이 소설만 읽어도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알기론 소설을 읽는다고 해서 인간에 대해서 그리고 삶과 세상에 대해서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선 그것들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만.

 


  어쨌든 이야기가 좋아서 소설을 읽는다는 그의 글을 읽으니,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우선 책을 읽는 걸 무지 좋아해야 할 듯싶다. 

 


  난 책을 읽을 때 연필로 인상적인 문장에 밑줄을 긋고 여백에 내 느낌이나 생각을 적어 놓는 습관이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무릇 사랑이란 이별의 순간이 올 때까지 그 깊이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 칼릴 지브란, <예언자>에서. 

 


  내 느낌이나 생각 :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고 나서 알았다. 내가 아버지를 무척 좋아했다는 것을. 이상한 일이다. 살아 계셨을 땐 보고 싶은 적이 없었는데 만날 수 없는 지금은 아버지가 보고 싶다. 그리운 아버지가 되어 버렸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이별의 순간이 올 때까지 그 깊이를 알지 못하는가 보다. 

 


  「죄책감이란 초대하지 않아도 밤중에 찾아와 사람들을 깨우고 스스로를 들여다보게끔 하기 때문입니다.」 - 칼릴 지브란, <예언자>에서.

 


  내 느낌이나 생각 : 죄책감을 갖고 산다면 행복은 가질 수 없다. 죄책감과 행복은 양립하기 어려운 법이니까. 그러니 죄를 짓고 살지 말 것. ‘맞은 놈은 발 뻗고 자도, 때린 놈은 발 뻗고 못 잔다.’라는 말이 있다. 만약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때리는 쪽이 되기보단 차라리 맞는 쪽이 될 것.

 


  누군가가 책을 빌려 달라고 하면 난 빌려 주기 싫어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완독한 책을 또 들춰 보길 좋아하는데, 누가 빌려 가서 그 책이 집에 없으면 마음이 답답해서다. 과장해서 말하면 신경질이 나기 때문이다. 책을 빌려 간 축들의 공통점은 빨리 되돌려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둘째, 내 책엔 느낌이나 생각을 써 놓은 게 많아서 책을 빌려 간 사람이 내 비밀스런 일기를 보는 것 같아 싫고 나의 유치한 생각을 들킬 것 같아 싫다.

 

 
  책을 빌려 주지 않는 게 미안하긴 하다. 그래서 아예 새 책을 사서 선물한 적이 몇 번 있다.

 

 

 

 

 


...............................................
* 이 글과 관련한 책 *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칼릴 지브란, <예언자>

 

 

 

 

 

 

 

 

 

 

 

 

 

 

 

 

 

 

 

 

 

 

 

 

 

 

 

 

 

 

 

 

 

 

5월이 가기 전에 올리고 싶었던 장미꽃 사진입니다.

저 혼자 보기 아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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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05-27 23: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장미가 예쁘게 피었네요. 사진 찍어오셔서 같이 볼 수 있어서 좋아요.
이런 예쁜 꽃들이 피는 계절이 조금 길었으면 좋겠어요.
페크님,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페크pek0501 2020-05-27 23:19   좋아요 2 | URL
제가 서니데이 님에게 댓글로 장미꽃을 찍었다고 했잖아요. 그 사진들이에요.
더 많은데 다 올리면 어수선할 것 같아 몇 개 골라 올렸답니다.
곧 6월이 오고 그러면 장미도 시들겠지요. 하루하루가 가는 게 아쉽습니다.
코로나19 사태는 진정될 기미가 없어 걱정이고... 그러나 꽃은 여전히 예쁘더군요.

편히 주무세요. 감사합니다.

희선 2020-05-28 0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가뿐 아니라 글 쓰는 사람은 자기 글 쓰기 바빠서 책 많이 못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일을 하기 전에는 책을 좋아해서 읽었을 텐데, 어떤 소설가도 다른 사람 소설은 안 본다고 하더군요 그런 사람 많지 않겠지만... 그래도 스티븐 킹은 다른 사람 소설 즐겁게 보는군요 그저 즐기려고 보는 책은 저 정도여도 소설 쓰려고 보는 건 책읽기로 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다른 작가도 다르지 않겠습니다 자료는 책에서 찾을 때가 많겠지요

글을 전문으로 쓰기 전에 많은 책을 봐서 자료 찾기도 훨씬 잘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아는 게 없어서, 뭘 보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냥 이런저런 책 봅니다 그렇다 해도 소설이 가장 많군요 다른 데도 관심을 가지고 봐야 할 텐데...

페크 님은 책에 생각을 적으시는군요 그런 책은 빌려주기 싫겠습니다 페크 님이 책을 많이 보시고 책이 많다는 걸 아는 분이 읽을 만한 책을 묻거나 빌려달라고 하겠군요 이제는 도서관도 많으니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좋을 텐데 싶네요

오월 며칠 남지 않았네요 페크 님 남은 오월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페크pek0501 2020-05-28 10:21   좋아요 1 | URL
작가들은 독서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둘 다 좋지만 굳이 구분한다면 전체를 100으로 잡았을 때 독서 51프로, 글쓰기가 49프로 좋은 것 같아요. 독서를 조금 더 좋아한다는 거죠.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글쓰기는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고심하게 되는 반면,
독서는 그런 게 없거든요. 여러 책을 병행해서 읽기 때문에 그날 기분에 따라 책을 골라 읽을 수도 있고요.
글쓰기는 갈수록 어렵기만 합니다. 남은 5월을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stella.K 2020-05-28 19: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설가는 소설 보단 다른 쪽의 책 이를테면 언니가 제시하셨던
책들을 더 많이 읽으라고 하는데 소설을 안 읽을 수는 없겠죠?
7,80권이면 잘 읽는 거라고 생각합니다.ㅋ

역시 5월은 장미의 계절이죠.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밝아집니다.^^

페크pek0501 2020-05-28 21:46   좋아요 2 | URL
맞아요. 1년에 칠팔십 권 읽으면 많이 읽는 거예요. 독서만 하는 게 아니라 작가이니 글쓰기에 또 얼마나 시간을 많이 들이겠어요. 그래도 출퇴근을 안 해도 되는 건 작가라는 직업의 장점이죠. 잘 나가는 작가의 경우에 한해서지만.

5월 하면, 장미죠. 탐스럽게 화려하게 피었더라고요. 사진을 찍는 재미가 있었어요.
스텔라 님!! 굿~~ 밤~~.

후애(厚愛) 2020-06-01 1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울 동네에도 장미꽃이 활짝 피어 있어서 한참을 서서 구경하곤 했었어요.^^
올려주신 장미 사진들이 정말 예쁘네요.^^
5월은 가고 6월이 왔습니다.
시간은 잘 가는데 여전히 코로나는 남아 있네요.
항상 조심하시고, 6월에도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0-06-03 21:37   좋아요 0 | URL
아, 후애 님. 장미꽃이 정말 예쁘지요? 향도 좋겠지요?
벌써 6월이고요... 정말 시간에 바뀌가 달린 것 같아요.

뉴스를 통해 누군가가 코로나19 이전으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고 말했을 때 전혀 믿어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혹시 그렇게 될까 봐 걱정입니다.
오늘 미용실 가기 위해 걷는데 마스크까지 해서 벌써 덥더라고요.
마스크 없는 올 여름을 보내는 것, 이게 지금의 소원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서곡 2023-09-09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미 풍경 사진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뒤늦은 댓글을 남기게 됩니다 유혹하는 글쓰기 책 오랜만에 펼친 김에 이 포스트를 읽었습니다 9월의 주말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3-09-11 15:32   좋아요 1 | URL
서곡 님, 반갑습니다. 9월도 벌써 중순을 향해 가고 있네요.
저 사진을 어디서 찍었는지 기억납니다.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친정 부근이에요.
장미가 아름답긴 해요. 그래도 저는 장미가 피는 봄보다 가을이 좋습니다.
요즘 늦여름답게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서 가을이 곧 올 것 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독서가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궁금하다. 이 문제를 한번 숙고해 보고자 한다.

 

 

독서는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 지식뿐만 아니라 지혜도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다고 해서 반드시 지혜롭게 사는 건 아니다. 책에서 얻은 지혜가 실천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분노는 남에게 던지기 위해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는 것과 같다. 결국 상처를 입는 것은 나 자신이다.(석가모니)” 

 

 


  이 글을 우리가 읽었다고 해서 누군가로 인해 분노가 일어났을 때 곧바로 ‘분노는 남에게 던지기 위해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는 것과 같아서 결국 상처를 입는 것은 나 자신이니 참아야 해.’라고 마음먹지 않는다는 말이다. 책에서 지혜를 얻는 것과 그 지혜가 삶에까지 이어지는 것은 별개 문제라서 무엇을 안다고 해서 행동이 꼭 달라지는 건 아니다. 결국 독서가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만약 이런 생각이 틀렸다면 독서광들은 전부 똑똑하고 현명하게 처신하며 살아야 하는데 현실이 과연 그러한가. 

 

 


  독서광이란 남들보다 자기가 책을 많이 읽었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오히려 독서광들은 자기만의 렌즈를 끼고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오류를 범할 위험성이 있다. 그 렌즈란 바로 ‘오만함’이다. 오만함의 렌즈를 끼고 살게 되면 본인의 생각이 가장 옳다는 착각을 하고 착각은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또 우월감에 빠져 타인을 무시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독서는 삶에 도움이 된다

 

 

  이번엔 독서가 삶에 도움이 되는 예를 들어 본다. 친정에서 만든 만두를 지인에게 보낸 적이 있었다. 만둣국을 끓여 먹고 나서 잘 먹었다는 전화가 올 법한데 그에게서 전화가 없었다. 이상하였다. 섭섭해지려 했다. 며칠이 지나서야 고맙다고 전화가 왔다. 나는 전화를 기다렸는데 지인은 전화를 하는 게 급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또 이러한 경험도 했다. 친구에게 선물을 한 걸 나는 확실하게 기억하는 반면 그것을 받은 상대방은 그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 일이다. 

 

 


  이와 관련하여 전에 읽은 소설의 한 부분이 떠올랐다. 주인공 필립은 노선생에게 수업을 받고 있다. 필립은 노선생이 아픈 것 같아 수업을 쉬게 해 주면서 다음 주의 수업료를 선불로 지불한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노선생은 별로 고마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필립은 아직 어렸기 때문에, 은혜를 입는 사람보다 그것을 베푸는 사람 쪽이 은혜에 대한 의식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몰랐다.」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 1>에 있는 글이다.  

 

 


  이 글과 나의 두 가지 경험을 놓고 보니 인간에게 그런 면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즉 은혜를 입는 쪽보다 그것을 베푸는 쪽이 은혜에 대한 의식이 강하다는 것. 선물을 받는 이보다 그것을 주는 이가 선물에 대한 의식이 강하다는 것. 이를 다르게 말하면 ‘인간은 자기가 은혜 입음을 중요히 여기지 않는다.’라는 얘기다. ‘은혜는 물결 위에 새기고 원한은 바위에 새긴다.’라는 말이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간의 이 특성을 염두에 둔다면 앞으로는 내가 뭔가를 베풀었을 경우에 상대가 고마움의 표시를 소홀히 한다고 해서 섭섭해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같이 생각한 것은 이 소설 덕분이다. 그러므로 독서가 삶에 도움이 된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독서는 다른 장점이 있다

 

 

  내 경우엔 독서에서 얻은 교훈이 설령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독서는 다른 유익한 점이 있다. 나는 독서나 글쓰기를 하는 동안에 그것에 몰입함으로써 걱정이나 불안이 사라지고 심리적 안정감과 즐거움을 얻을 때가 많아서다. 나와 같은 이들이 적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만일 내가 누구에게 "당신이 책을 읽어서 돈이 생기나요 쌀이 생기나요?"라고 말한다면 난 인간에 대해서 모르는 바보다. 만일 내가 누구에게 "당신은 재능이 없으니 글쓰기로 시간을 낭비하지 마시오."라고 말한다면 난 인간에 대해서 모르는 바보다.

 

 


  책을 읽든 글을 쓰든 또는 다른 걸 즐기든 취미는 반복적인 일상의 지루함을 잘 견디게 해 주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그런 취미 생활로 마음이 튼튼해지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최종 결론은 이렇게 되겠다. ‘독서는 삶에 도움이 된다.’

 

 

 

 

 

 

 

.................................................이 글과 관련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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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6 1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06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0-04-06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용해주신 분노에 대한 석가모니의 말씀을 한번 더 읽어보게 됩니다.
페크님,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0-04-08 11:47   좋아요 1 | URL
분노 폭발은 상대만 괴롭게 하는 게 아니라 자신도 마음 편할 수 없을 거예요.
자신도, 기분 잡쳤다, 가 되거든요. 분노가 일어나기 전에 자신에게 유리하게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자기가 자신을 속이는 거죠. 마음 편하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싸늘합니다. 서니데이 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희선 2020-04-09 0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읽기가 사는 데 크게 도움은 안 된다 해도 아주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겠지요 책을 읽고 그걸 실천하면 좋겠지만 그것만큼 어려운 게 없습니다 그때는 그래야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시 안 좋게 생각하니, 그렇다 해도 자꾸 보다보면 아주아주 조금은 달라지기도 하겠지요 그러기를 바라는데...

책을 읽고 글을 쓰면 그때 마음은 가라앉고 좋지요 그것만으로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거 좋은 거 아닌가 싶어요


희선

페크pek0501 2020-04-12 11:27   좋아요 1 | URL
책이 주는 위안은 저의 경우 제 마음과 관련이 깊어요. 책의 내용대로 실천하며 살지 못해도 다른 장점이 있는 거죠. 책이 없는 세상을 어떻게 살 수 있을지 상상조차 되질 않네요.
좋은 취미가 있다는 건 자기가 가진 자산 중 큰 자산을 가진 거라고 봅니다. 특히 독서는.

희선 님, 반가워요. 오늘 환기하기 위해 창문을 여니 바람이 세차게 부네요.
감기 조심하며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머리를 자르고 싶은데 단골 미용실이 쉬는 날이라서 다른 미용실에 들어갔다. 그곳 원장은 머리를 자르기 전에 거울로 내 단발머리를 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 머리 어디서 자르셨어요? 오른쪽과 왼쪽의 머리 길이가 다르잖아요. 잘못 자른 거예요.”라고.

 


  나는 “아, 그래요.”라고만 답했다. 그 원장은 내 머리를 잘랐던 미용사의 기술을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미용 실력을 돋보이게 하려고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나를 그 미용실에 다니게 만들려고 그렇게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정약용의 <정선 목민심서>에 이런 글이 있다. 「‘전임자와 후임자의 교대’에는 동료로서의 우의가 있어야 하니, 내가 내 후임자에게 당하기 싫은 일은 나도 나의 전임자에게 하지 않아야 원망이 적을 것이다. 전임자의 흠이 있으면 덮어주어 나타나지 않도록 하고, 또 죄가 있으면 도와주어 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선 매달 ‘반상회’라는 게 있었다. 반상회가 열린 그 집에 들어서니 거실에 운동 기구가 있었다. 러닝머신과 비슷한 것이었는데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새것으로 보였다. 모여든 이웃들은 그걸 보며 집주인에게 한마디씩 했다. 가격이 얼마인지, 매일 운동하는지, 이걸로 운동하면 과연 살이 빠지는지 등등. 한데 갑자기 누군가 그 운동 기구의 단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무릎 관절에 무리를 줄 수 있다면서 바꿀 수 있으면 다른 상품으로 바꾸라고 말한 것이다. 그 얘기를 들은 집주인은 기분이 나빴는지 표정이 좋질 않았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내가 안구 건조증이 있어서 컴퓨터 화면을 많이 보면 눈의 피로를 느끼는데 안구 건조증 예방에 블루베리가 좋다는 걸 알고 블루베리 과즙 한 박스를 구입한 날이었다. 그것을 들고 오다가 집 부근에서 이웃을 만났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이렇게 말했다. “블루베리를 사셨군요. 요즘 가짜가 많다는데.”

 

 

  나는 미소만 짓고는 그냥 돌아섰지만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요, 이미 샀는데 나더러 어쩌라고요. 가짜일까 하고 의심하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블루베리를 먹으란 말인가요? 설마 그게 당신이 바라는 건 아니겠지요?’

 

 

  <탈무드>에 따르면 다음 두 가지 경우에는 거짓말을 해도 된다. 첫째, 어떤 사람이 이미 사 놓은 물건이 어떻냐고 물을 때다. 설령 물건이 나쁘더라도 좋다고 말해도 된다고 한다. 둘째, 갓 결혼한 부부를 만났을 때다. 이때도 “부인이 아주 미인이십니다. 두 분이 아주 잘 어울리는군요.”라고 거짓말을 해도 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선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오히려 거짓말을 해서라도 상대의 기분을 좋게 해 주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겠다. 
 

 

  ‘배워서 남 주나.’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무엇이든 배우고 나면 바로 자신에게 유리하니 열심히 배워 두라는 말이다.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배우면 남도 이롭게 하고, 배우지 않으면 남을 해롭게 한다고. 예컨대 배려를 배우면 타인을 이롭게 하고, 배려를 배우지 않으면 타인에게 해를 끼친다.  
 

 

  나도 ‘해서는 안 될 말’을 할 때가 있었으리라. 배움에는 끝이 없는 법, ‘해서는 안 될 말’이 있음을 꼭 기억해 놓고 말할 때 신중하기로 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숱한 잘못과 실수를 범하며 산다. 오늘 나만 해도 그렇다. 샤워하면서 물을 많이 썼으니 지구의 소중한 자원을 소비했다. 쓰레기를 많이 버렸으니 지구를 더럽혔다. 산책하면서 땅바닥의 개미를 밟았으니 귀한 생명을 죽였다.

 

 

  누구나 살면서 물을 쓰지 않을 수 없고,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 수 없고, 개미를 밟지 않을 수도 없으니 이것들은 피치 못할 일들이다. 그러나 타인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삼가는 것은 노력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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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0-02-27 16: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 자신도 돌아보게 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

페크pek0501 2020-02-27 16:51   좋아요 0 | URL
저도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겠지만
노력은 해 봐야겠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2020-02-27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7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0-02-27 18: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의 글로 저를 돌아보게 하네요~~
매번 저지르는 말실수를 어떡하면 좋을까요, ㅠㅠ
말을 하고 나면 주워 담을 수 없으니 조심해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또 실수를 해서 얼굴을 붉히는 상황이 반복되네요^^
항상 조심할것을 또 다짐해봅니다**

페크pek0501 2020-02-27 18:48   좋아요 1 | URL
저도 그렇습니다. 말 실수를 안 하면 페크가 아니랍니다. ㅋㅋ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실수였단 걸 안다는 게 저를 미치게 만듭니다.
차라리 실수했음을 모르고 살면 좋겠어요. 마음이나 편하게... 하하~~
댓글, 감사합니다.

2020-02-29 0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9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20-03-01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본인은 ‘사실‘을 알린다는 사명감을 가질지 모르지만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무례나 오만이 되기 십상이죠. 요즘처럼 정보가 넘쳐나고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는 세태에서 정도를 넘어서는 일이 너무 많은 거 같습니다.
가짜뉴스가 떳떳이 활개치고 기레기 소리 들으면서도 언론도 그러고 있고 공인마저 그러고 있으니 참...

페크pek0501 2020-03-01 14:12   좋아요 1 | URL
저도 갈등할 때가 있어요. 이거 말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대부분 말을 하지 않는 걸로 정하죠. 왜냐하면 유익한 조언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상대측이니까요. 이 부분이 판단하기 어렵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말조심. 강조할 만하다고 봅니다. 말로 상처를 받는 일이 흔한 지라...

댓글, 감사합니다.
 

 

 

 


 

 

1. 참았네

 

  동창생 넷이서 만났다. 그중 한 친구가 만둣국을 잘 하는 음식점을 안다고 해서 점심을 먹으러 거기로 갔다. 소문난 곳이라 그런지 손님들이 많았고 깔끔해 보였다. 우리는 만둣국을 주문했다. 우선 종업원이 물을 가져왔는데 그의 손가락이 컵 안의 물에 닿아 있었다. ‘자기 손가락을 적신 물을 먹으라는군.’

 

 

  못마땅했지만 참았다. 그녀는 바빴고 청결문제 같은 건 관심도 없어 보였다. 이윽고 만둣국이 나왔다. 맛있었다. 반쯤 먹었을 때 내가 먹고 있는 만둣국에 긴 머리카락이 하나 빠져 있는 게 보였다. 비위가 상해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친구들까지 비위가 상할까 봐 그들에겐 말하지 않았다. 종업원에게 따질 수도 있었으나 또 참았다.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날에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2. 이번엔 못 참았네

 

  그로부터 한 달 뒤쯤 대구에 사는 친구 둘이 서울로 놀러 왔다. 나처럼 서울에 사는 친구 한 명이 있어 넷이 모였다. 대구의 두 명과 서울의 두 명이 만난 것이다. 원래 대구와 서울의 중간 지점인 대전역에서 넷이 만나곤 했는데 이번엔 대구에 사는 두 사람이 서울로 오겠다고 했다. 그 덕분에 내가 대전까지 가는 수고를 덜었고 차비도 굳었다.

 

 

  일단 우리 집에서 모였다. 대구의 두 친구가 얼마나 부지런을 떨며 일찍 출발했는지 오전 11시쯤 되니 네 명이 다 모였다. 우리 집에서 빵과 과일과 커피와 함께 신나게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점심은 나가서 먹기로 해서 12시가 넘자 우린 외출 준비를 했다. 집에서 가까운 곳인, 음식점과 카페가 모여 있기로 유명한 카페촌에 가기로 했다.

 

 

  우리 넷은 의견을 모아 한정식 음식점을 찾아 들어갔다. 분위기가 고급스러웠다. 음식 가격이 비싼 편이었지만 반찬 종류가 다양하고 다 맛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질 낮은 서비스였다. 우리가 음식을 다 먹고 숟가락을 놓자마자 바로 종업원이 쟁반을 가지고 와서는 그릇을 치우는 게 아닌가. 그것도 양해도 없이 달그락, 쾅쾅 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마치 우리에게 빨리 나가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푸대접을 받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고급 음식점으로 보이던 곳이 싸구려로 보였다. 손님이 많아 자리가 없어서 그런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저기 비어 있었다. 자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고급스런 음식점에서 이런 불친절이라니.

 

 

  대구 친구 한 명이, 서울은 다 이러냐고 물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친구들 모두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우리의 기분이 구겨진 종이처럼 되어 버렸다. 참을 수 없었다. 음식값을 내면서 한마디 해야겠다고 별렀다.

 

 

  계산대로 갔더니 음식점 주인이 있었다. 음식값을 지불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릇을 치우는 게 그렇게 급한 일인가요? 모처럼 지방에서 친구들이 올라와서 점심 먹으러 왔는데 우리 넷 다 불쾌해졌어요.”

 

 

  주인이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그릇을 치우고 깨끗한 테이블에서 이야기 나누시라고 그런 것 같아요.”

 

 

  이건 핑계 같았다. 그나마 죄송하다고 하니 마음이 좀 풀렸다. 

 

 

 

 

 


 
3. 며칠 뒤 애덤 스미스가 떠올랐네

 

  며칠 지나 그 일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불친절을 지적한 게 잘한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만약 나로 인해 음식점 주인한테 그 종업원이 꾸지람을 들었다면 그래서 그가 상처를 받았다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준 건 마찬가지가 아닌가.

 

 

  대체로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에 대해 단 한 가지 이유로 그랬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정확하지 못하다.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 내가 불친절을 지적한 것은 단순히 한 가지 이유 때문만이 아니고 다음과 같은 여러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첫째, 지난번 종업원의 손가락이 닿은 물도 참았고, 머리카락이 빠져 있는 음식도 참았는데, 이번에도 또 참으면 내가 아주 억울할 것 같았다.
  둘째, 이번에 참으면 내가 처신을 잘못했다고 나중에 후회가 될 것 같았다.
  셋째, 이번에 참으면 내가 친구들 앞에서 바보가 될 것만 같았다.  
  넷째, 우리들의 자존심이 상했으므로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다음 이유가 중요하다.
  다섯째, 내가 느낀 불쾌감을 얘기해 줘야 앞으로 나와 똑같이 당하는 손님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이 다섯째 이유로 인해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서 읽은 글이 떠올랐다. ‘교묘하게 꾸며낸 생각들’에 대한 다음 글이다.

 

 

  「도둑놈이 어떤 부잣집의 물건을 훔치는 경우, 그는 부자는 이 물건이 없더라도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그리고 비록 도둑을 맞더라도 눈치 채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은 어떤 악(惡)도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간부(姦夫)가 자기 친구의 처(妻)를 유혹해서 간통을 하려는 경우, 그가 자신의 음모를 감추어 그 남편의 의혹만 사지 않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가정의 평화만 깨뜨리지 않는다면, 자신은 어떤 악(惡)도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이처럼 교묘하게 꾸며낸 생각들에 굴복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행하지 못할 정도로 흉악한 범죄행위는 하나도 없게 된다.

 

 

  도둑이 어떤 부잣집의 물건을 훔칠 때 집 주인이 부자니까 괜찮다고 여기며 도둑질을 하는 경우가 있다면, 부자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사기꾼도 그런 생각으로 사기를 치는 경우도 있겠다. 또 빈자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사기꾼도 당신의 형편이 나보단 나으니까 괜찮다고 여기며 사기를 치기도 하겠다. 그래서 그들은 악(惡)을 행하면서도 자신이 악(惡)을 행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겠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은 ‘자기방어의 명수’여서 자신이 한 일을 합리화함으로써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때의 나에 대해서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다른 손님이 나처럼 불유쾌해지는 일을 막기 위해 종업원의 불친절을 지적한 것이니 나는 악(惡)을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옳은 일을 한 것일까 아니면 혹시 나도 애덤 스미스의 말처럼 ‘교묘하게 꾸며낸 생각들’에 의해서 저지른 것일까? 

 

 

  지금도 모르겠다. 음식점에서 또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참아야 할지, 참지 말아야 할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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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쓴 글을 우연히 보게 되어 올립니다.
옛 글을 오랜만에 보니 반갑더군요. 
제가 경험한 걸 그대로 쓴 글이어서
글을 읽으며 그때의 일이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답은 독자들에게 돌리고 필자는 문제 제기만 했습니다.
재밌게 읽어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그야말로 추억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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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별 2020-02-22 2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감어린 글 잘 읽었습니다. 선택의 연속이네요~~^^

페크pek0501 2020-02-23 13:2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그렇게 읽어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그렇죠. 인생이란 게 선택의 연속이죠.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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