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1>
자베르의 입에서 새어 나온 몇 마디 말로 짐작해 보면, 그는 의지와 아울러 본능에서 우러나는 그들과 같은 부류에 특유한 호기심을 가지고 마들렌 아저씨가 다른 데 남겨 놓았을지도 모를 모든 발자취를 비밀리에 탐색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중략) 그런데 어떤 말들의 뜻이 너무 절대적인 것을 타나낼 수도 있어 완화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이 말을 덧붙이는데, 인간에게는 정말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있을 수 없고, 본능의 특성은 바로 흔들리고 흐려지고 혼미해질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본능은 지성을 능가할 것이고, 동물은 인간보다 우월한 빛을 가지게 될 것이다.(311쪽)
⇨ “인간에게는 정말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있을 수 없고, 본능의 특성은 바로 흔들리고 흐려지고 혼미해질 수 있다.” 이 문장은 인간의 특성을 말해 주기에 기억해 두고 싶다. 인간은 이성적이기도 하지만 감성적이기도 하다. 인간에게는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아 정작 본인도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인간은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알게 된다. 결혼한 사람이 결혼하지 않은 사람보다 자신에 대해 알 기회를 많이 갖게 되고, 한 번도 남과 싸우지 않은 사람보다 열 번 싸워 본 사람이 자신에 대해 알 기회를 많이 갖게 된다.
2.
세이노, <세이노의 가르침>
어느 신문에서 본 내용인데, 1년에 3백 개 이상의 기업을 방문하고 그 전망을 판단하여 투자한다는 일본 최고의 펀드 매니저 후지노는 2000년 2월 주간문춘週刊文春에서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높이 1미터 이상의 관상식물, 니스 칠한 나무 그루터기, 동물 박제, 고급 술, 유명 화가의 그림, 골프채, 우승 트로피, 저명인과 찍은 스냅 사진 같은 것들 중 4가지 이상이 사장실에 있으면 볼 장 다 본 회사이므로 투자를 삼가라. 또 사장이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금빛 찬란한 호화시계를 차고 있어도 주의가 필요하다. 사장이 저명인과 친하다고 은근히 내비치거나 자랑하는 회사, 업적 부진을 경기나 정부 탓으로 돌리는 회사, 화장실이 더러운 회사, 지나치게 예쁜 안내원이 있는 회사, 요정에서 손님 접대하려는 회사 등은 투자해 봐야 별 볼 일 없거나 망하기 십상이다.”(218쪽)
⇨ 재밌고 일리가 있는 글이다. 개인 병원에서 키 큰 관상식물, 유명 화가의 그림, 우승 트로피 등을 본 적이 있는데 그런 곳도 신뢰할 수 없는 병원일까?
3.
알퐁스 도데, <마지막 수업>
그러자 늙은 농부가 발끈 화를 내며 말했다.
“멍청이 같은 놈이지! 프러시아군을 상대로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는데도 그걸 마다하다니. 프러시아 군인들이 들어온 날부터 술집 문을 닫고 간판을 아예 내려 버렸지 뭔가. 다른 카페 주인들은 전쟁 통에 많은 돈을 벌었는데도 유독 그놈만 땡전 한 푼 못 벌었어……. 거기에 프러시아 군인들에게 건강지게 구는 바람에 감옥까지 갔다 왔다니까? 그러니 바보 멍청이랄밖에. 제 놈이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자기가 무슨 군인이라도 된대? 손님들한테 포도주, 브랜디나 잘 따라 주었으면 돈을 갚고도 남았을 거 아니야. 불한당 같은 놈! 저 혼자 애국자 노릇하다가 무슨 꼴을 당하나 어디 한번 보자고!”(나룻배, 74~75쪽)
⇨ 지조 있는 애국자를 욕하는 장면이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에서 읽은 “세계 속의 악은 거의 항상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글이 떠오른다. 무지는 악덕을 낳기도 한다.
4.
김남일, <서울 이야기>
당시 신문에는 만일 전당포가 없다면 아침저녁을 굶을 사람이 경성의 조선 사람 18만 중 적어도 6만은 될 거라고 하면서, “이와 같이 전당포라 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에게는 없지 못할 큰 기관일 뿐 아니라 오히려 가난한 사람에게는 전당포 한 집이 조선은행이나 한성은행 100개보다도 필요하고 전당놀이 하는 사람은 어느 방면으로 보면 소위 겉으로 꾸미고 떠벌이는 자선가나 공익 사업을 한다는 사람보다는 훨씬 정직한 자선가라 할 수도 있고 정직한 공익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동아일보』, 1920.7.7.)고까지 전할 정도였다.(192~193쪽)
⇨ 그 시대의 전당포 역할을 이 시대에는 ‘신용카드 회사’가 대신하는 것 같다.
5.
존 윌리엄스, <스토너>
“여보.” 이디스가 아직도 날카로움이 남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아침에는 좀 늦은 것 아니에요?”
윌리엄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에 아직 멍한 표정이 남아 있었다.
이디스가 말했다. “당신의 귀여운 여학생이 기다리다가 화를 내지 않겠어요?”
그의 입술에서 감각이 사라졌다. “뭐?” 그가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이런, 윌리.” 이디스가 이렇게 말하고는 너그러운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당신의 그…… 가벼운 연애놀음에 대해 모르는 줄 알았어요? 세상에, 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 아가씨 이름이 뭐죠? 들었는데 잊어버렸네요.”
충격과 혼란 속에서 그의 마음이 알아들은 단어는 하나뿐이었다. 그 말을 입에 담는 그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성마르게 짜증을 내는 것처럼 들렸다. “당신이 말하는…… 연애놀음 같은 건 없소. 그건…….”
“이런, 윌리.” 그녀가 이렇게 말하고 나서 다시 웃었다. “완전히 당황한 표정이네요. 세상에, 나도 다 알아요. 당신 나이의 남자가 어떤지. 그런 것이 아마 자연스러운 일이겠죠. 적어도 세상 사람들 말로는 그렇다는 것 같아요.”(282쪽)
⇨ 이디스는 남편 스토너(윌리)에 대해 무관심한 아내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한 것 아닌가?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면 아내들 대부분이 충격을 받고 분노할 텐데 이렇게 태연자약하게 말하다니. 그런 유치한 놀이쯤은 얼마든지 봐 줄 수 있다는 듯한 말투다. 남편이 사랑에 빠졌다고 보지 않고 즐거운 놀이를 하는 걸로 보기 때문일까.
만약 이디스가 남편이 만나고 있는 여자를 직접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 두 사람이 만나는 것에 관심 없으니 둘이서 알아서 하라고 태연하게 말하고, 그 관계가 길게 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것 같다. 중년의 남자가 으레 하는 연애놀음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