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약국에서 나오면서 후회했다. 병원에서 ‘테니스 엘보’를 치료하기 위한 주사를 오른팔에 맞고 약국에 약을 사러 들어갔는데, 흰 가운 입은 여자 약사가 거스름돈을 내게 주고 나서 비타민 영양제를 먹어 보라고 준 것을 먹는 게 아니었다고 후회했다. 먹기 싫은 것을 참고 받아먹은 것을 후회했다는 얘기다.

 

 

“이거, 먹어 보세요. 비타민 영양제인데 아주 좋은 약이에요.”
…….”
“이 영양제를 사라는 게 아니고 그냥 먹어 보라는 거예요. 씹어 먹으면 돼요.”

 

 

웃으면서 상냥하게 말하는 약사의 이 말이, 내가 비싼 약을 공짜로 받아먹음을 감지덕지해야 한다는 말로 들렸다. 그래서 감지덕지하지도 않으면서 약사가 바라는 대로 감지덕지해 하며 받아먹었다. 순간적으로 까칠한 사람으로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약을 팔기 위해 홍보하는 것까진 좋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상대방이 무조건 공짜를 좋아할 거라고 착각하는 걸까? 왜 상대방이 먹기 싫어할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을까? 왜 거스름돈을 만진 손으로 약을 주면 청결하지 못함에 상대방이 불쾌할 수도 있음을 생각하지 못할까?

 

 

난 돈을 만진 그 더러운 손으로 준 영양제를 받아먹기가 괴로웠다. 그리고 또 하나, 그때 뭘 먹기가 싫었다. 먹고 나면 입가심을 하고 싶잖아. 그런데 물이 없잖아. 설사 물이 있더라도 겨우 그 콩알만한 영양제를 먹고 배부르게 물 한 컵을 마시고 싶지 않잖아. 

 

 

다음부턴 먹지 않을 테다. 까칠한 사람으로 보여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테다.

 

 

앞으로 또 똑같은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연구해 봤다.

 

 

“이거, 먹어 보세요. 비타민 영양제인데 아주 좋은 약이에요.”

 

 

1) 지금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요.
2) 저는 뭘 먹으면 꼭 입가심을 해야 돼서 귀찮아 안 먹을래요.

3) (웃으면서) 하루 종일 돈을 만진 그 더러운 손으로 영양제를 주시면 어떡해요?

 

 

셋 중 어느 게 제일 나을까 생각 중이다. 까칠한 사람으로 보여도 할 수 없다.

 

 

<미움받을 용기>에서 철학자도 말하지 않았던가.

 

 

..........
철학자    단적으로 말해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일세.
청년       네? 무슨 말씀이신지?
철학자    자네가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 것. 그것은 자네가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증거이자 스스로의 방침에 따라 살고 있다는 증표일세.(186쪽)

 

- 기시미 이치로 · 고가 후미타케 저, <미움받을 용기>에서.
..........

 

 

앞으로 스스로의 방침에 따라 살겠다.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걸 감수하며 살겠다. 자유롭게 살겠다.

 

 

나, 깔끔 떠는 까칠한 사람 맞다. 이렇게 인정하고 말 테다.

 

 

 

 

 

 

 

 

 

 

 

 

 

 

 

 

 

 

 

 

 

 

................................
<후기>

 

여러분은 이럴 경우에,

 

 

까칠한 사람으로 보여서 받는 스트레스의 크기와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먹어서 받는 스트레스의 크기 중 어느 것이 더 클까를 생각해 보면 되겠죠?

 

 

상대방이 무안할까 봐 억지로 먹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중요한 건 먹을 것을 권할 땐 상대방이 싫어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15-03-13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전 먹는거라면 다 받아 먹어요^^ 먹을거 잘 받아 먹는것= 복이 온다고 하잖아요.
적고보니 그래서 살이 찌나봐요. ㅜㅜ
저도 낼부턴 무조건 안받을테얏~~~~ ㅎㅎ

페크pek0501 2015-03-14 11:07   좋아요 0 | URL
하하하~~~
그냥 세실 님은 받아 드시는 게 좋겠어요. 정말 복이 오나요? 그럼 먹어야겠는걸요...
여기서 님과 저의 성격 나옵니다. 저보단 님이 더 성격이 좋다는...
이미 저는 님의 글에서 눈치챘사옵니다. 글은 정직해서 그 사람을 드러내거든요.
저는 까칠한 편에 속하면서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형이에요.
남이 보면 무난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는...
제 친한 친구들은 잘 알죠.

조직 생활을 할 땐 제 주장을 하지 않고 다수의 의견에 맞추어 주는 스탈이에요.
쫄병 기질이 있어서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해요.
전, 쫄병이 좋아요. 헤헤~~

2015-03-13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4 1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3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4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5-03-13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는 먹기 싫으면 `됐습니다!`합니다. 별로 생각하지 않고 제 느낌을 바로 말해버리는 스탈이라서뤼~ㅎㅎ

근데, 페크님은 세심하게 생각하시는 듯~^^
거절한다해서 까칠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어요~ 상대편을 생각지 않고 무작정 권한 사람이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페크pek0501 2015-03-14 11:26   좋아요 0 | URL
딩 동 댕...
야무 님이 정답을 말씀하셨습니다. ˝됐습니다.˝라고... ㅋ

거절하려면 까칠을 생각하게 되어요. 아마 제겐 까칠하게 보여선 안 된다는 어떤 강박관념이 있는 모양이에요. 이것도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고 사는 증거일까요?

어쨌든 이런 글까지 올렸으니 앞으로 제가 달라지겠죠.
저에게 용기를(남에게 미움받을 용기) 주고자 썼습니다.
다짐의 글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마녀고양이 2015-03-14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언니, 고민하시는 모습이 완전 이뽀여.... 까칠해보이는 것이 두려운 맘과 먹기 싫은 것을 먹어야 했던 불쾌감과 더불어... 나는 거절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부분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불편감...이 저는 가끔 드는데 언니는 어떠셔요? ♡♡

페크pek0501 2015-03-17 09:09   좋아요 0 | URL
오우!!!!! 마고 님 안뇽? 반가워요.

요즘 뭔가 판단하려 할 때 두뇌 작동이 잘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상대방이 싫어할 것 같은 상황에선 거절을 못하고 나중에 후회한답니다.

말이란 한 번 내뱉고 나서 후회가 되어도 주워 담을 수 없어서 어려워요.
말하기보단 글쓰기가 쉽지요. 수정할 수 있으니까요.

점점 바보가 되어가고 있구나, 요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총명함, 명석함... 뭐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그래도 랄라~~
자주 봐요 마고 님...
 

 

 

기혼 여성이든 미혼 여성이든 명품 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는 시선으로 보기보단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게 된다.

 

 

‘꼭 저렇게 비싼 걸 들고 다녀야 하나?’ 이러면서.

 

 

그런데 만약 남편이 내 생일 선물로 명품 백을 사 준다면 내 반응은?

 

 

기분 좋아 기절하겠지.

 

 

하하~~

 

 

명품 백을 든 여성은 비가 올 경우, 고급 가죽으로 된 명품 백이 젖으면 망가지므로 자신은 비를 맞더라도 명품 백이 비 맞게 하지 않는 것에만 신경을 쓴다고 한다.

 

 

고백하자면, 명품 백을 들고 다니는 여성을 향해 이렇게 말해 주고 싶은 적이 있다.

 

 

“당신은 ‘나는 머리가 비었어요.’ 하고 광고하며 다니고 있군요.” 


 
지성인은 절대로 명품 백을 구입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고로 나는 지성인이 되기 위해서라도 명품 백을 구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거 이솝 우화의 ‘여우와 신 포도’라는 이야기가 생각나네.

 

 

배가 고픈 여우는 포도밭에 들어가서 포도송이가 높은 곳에 달려 있는 걸 본다. 여우는 그 포도송이를 따먹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껑충껑충 뛰어 보았지만 따먹을 수 없었다. 결국 포도 한 알도 따먹지 못해 화가 난 여우는 포도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쳇, 저 포도는 덜 익은 것 같은데? 맞아. 아마 너무 시어서 아무도 먹지 못할 거야. 나는 신 포도는 싫어. 그래. 안 먹는 게 낫겠다.”

 

 

하하~~ 여우의 생각이 나랑 똑같잖아.

 

 

포도가 시어서 먹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여우.

 

 

지성인이 되려면 명품 백을 들고 다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나.

 

 

그런데 여우가 만약 포도를 따먹을 수 있었다면 이렇게 생각했으리라.

 

 

‘포도는 신맛이 좀 나야 제맛이지.’라고.

 

 

나 역시 명품 백이 생기면 이렇게 생각했으리라.

 

 

‘명품 백을 들고 다니는 것도 능력이야.’라고.

 

 

하하~~

 

 

결론은 이것.

 

 

우리에겐 신 포도를 단념하고 자기 마음을 편하게 만든 여우의 태도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 그래야 스트레스를 물리치며 살 수 있다는 것.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세실 2014-12-15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스웨덴 출장길에 저렴하게 산 루이비* 백이 하나 있어요. 오분백이라 좀 부끄럽기도 하지만 `난 찐이야` 하는 당당함? 3년되니 고물이 되었어요ㅜ
저 머리 빈 여자는 아닌거죠?ㅎㅎ

페크pek0501 2014-12-16 08:36   좋아요 0 | URL
하하~~ 세실 님이 머리가 빈 여자면 말이 됩니까?

그런데 가끔 머리 빈 여자로 사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용...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연애할 때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의 장점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랑하면 단점은 보이지 않고 장점만 보일 것이다. 따라서 결혼을 하고 나서 언젠가 상대의 단점을 알게 되어 싫어질 수도 있겠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상대의 장점만을 보고 결혼을 했다가 함께 살게 되어 나중에 알게 되는 상대의 단점 때문에 이혼을 한다.’

 

 

그러니까 연애할 땐 상대의 단점을 찾아보는 일이 중요하겠다. 상대의 단점을 잘 알고 결혼했는데 막상 함께 살아 보니 의외로 장점도 있다고 느낀다면 좋은 결혼 생활이 될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단점이 없는 게 아니듯이,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장점이 없는 게 아닌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 결혼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말하고 싶네.

 

 

‘결혼을 할 땐 상대의 장점보단 단점에 집중하라.’

 

 

상대의 단점을 견디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 보는 자세를 가지라는 뜻이다.

 

 

신혼 생활이 지나고 나면 ‘결혼 생활’이란 상대의 장점에 즐겁게 취해 사는 게 아니라 상대의 단점을 잘 견디어 주며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 노년엔.)

 

 

늦잠 자는 게으름을 견디어 주고,
청소하지 않는 게으름을 견디어 주고,
담배 냄새를 견디어 주고,
돈을 헤프게 쓰는 것을 견디어 주고,
자신과 맞지 않는 사고방식을 견디어 주고...

 

 

이런 것들을 잘 견디지 못하면 ‘황혼 이혼’이 되는 것.

 

 

나, 잘 견디며 살고 있나?

 

 

하하~~. 사실, 나는 아침에 늦잠 자는 것을 좋아하고 남편은 늦잠 같은 것은 절대로 자지 않는 부지런한 사람이니 남편이 나를 잘 견디며 살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성격도 나보다 남편이 조금 더 좋은 것 같다.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니까 인정~~.)

 

 

이 글의 요지는 이것.

 

 

‘결혼 생활’이란 상대의 단점을 잘 견디며 사는 것.‘

 

 

‘그러므로 결혼을 생각할 땐 상대의 장점보단 단점에 집중하라.’


 
인터넷으로 ‘황혼 이혼’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고 써 봤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세실 2014-12-15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딩동댕! 와 진리네요^^
오늘 점심준비도 안하고 뒹글거리는 내게 `나가자.` 하는 고마운 남편!
알라딘 서점가서 제 책도 세권 사주니 이만하면 괜찮은거죠? 제가 집에서는 좀 게으르거든요^^

페크pek0501 2014-12-16 08:34   좋아요 0 | URL
괜찮고 말고요. 좋은 분과 사시는군요.

저도 제 일은 확실하게 하는 편이지만 게으름을 즐깁니다.
부지런 떨기가 싫을 때가 있어요. 호호~~ (나도 극비인데...)

님 아니면 무플일 뻔했잖아요. 고맙습니당... ㅋㅋ
 

 

 

정이현 저,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을 뽑으라면 이 글을 뽑겠다.

 

 

....................
“넌 그럼 평생 그냥 이렇게 살 거야?”
“모르지. 남들 사는 대로 확 전향해버릴까 싶을 때가 가끔 있기도 한데. 그보다는 명랑사회 건설의 암세포 취급을 당할 때가 수천 배는 많거든. 틀린 말은 아니지. 내가 바로 그 악명 높은 30대 백수 독신남이잖냐. 그렇지만 천하에 한심한 놈인 양 꼬나보는 시선 앞에서는 목 놓아 외치고 싶지. ‘흥, 삐뚤어질 테다!’
정이현 저, <달콤한 나의 도시>, 112쪽.
....................

 

 

 

‘흥, 삐뚤어질 테다!’

 

 

하하하~~~. 이렇게 나랑 똑같은 심리가 작동하는 사람이 있다니 놀랍다. 신기하다.

 

 

내가 그렇다. 서재에 글을 올리고 나서 나중에 공감 수를 봤더니 0이다.

 

 

그런 경우에,

‘아, 왜 0이지? 그렇게 후진 글인가? 다음부턴 잘 써야지.’ 하고 마음먹는 게 아니라

 

 

‘0이란 말이지? 계속 0이어라. 누가 공감을 누르기만 해 봐라. 난 앞으로도 쭉 후진 글을 올릴 테다. 더 더 후진 글을 올릴 테다’ 하고 마음먹게 된다.

 

 

왜 그럴까, 하고 지금 생각해 봤더니 일종의 ‘자기방어’인 셈이다. ‘더 후진 글을 올릴 테다.’ 하고 마음먹어야 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번 더.

 

 

‘앞으로도 쭉 후진 글을 올릴 테다.’

 

 

‘뻔뻔해질 테다.’

 

 

하하하~~~.

 

 

 

 

 

 

 

 

 

 

 

 

 

 

 

 

 

 

 

 


댓글(6)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10-16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4-10-17 12:42   좋아요 0 | URL
제 글을 보실 줄 몰랐어요. 영광입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세실 2014-10-16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페크님 귀여우세요~~~~
삐뚤어지는거 보고 싶어서 공감 안누를까 하다가 눌러요.
공감 백개 눌러주고 싶어라^^
전 공감0, 댓글0 이면 스스로 공감 눌러요. 비로그인 상태에서 가능해요. ㅎ

페크pek0501 2014-10-17 12:41   좋아요 0 | URL
호호호~~~ 나, 비뚤어질 뻔했네...
스스로 누르신다고 말씀하시다니... 아, 이 솔직함이여!!!!!!!!!!!
여러 번 느낀 건데 세실 님은 매력적인 데가 있어요. 인기맨이죠?

저는 완전범죄 스탈이라서 절대로 글 올린 PC는 안 건드려요.
공감을 누른다면 스마트폰으로 누르겠어요. 이게 완전범죄죠... ㅋ

그런데 말이죠. 저는 무슨 똥고집인지 공감 수가 낮으면 이렇게 생각 드는 거예요.
`흥, 공감 수가 낮다고 내가 누를 줄 알아?`
하하하~~~ 이 무슨 사춘기 소녀의 삐딱선일까요? 호호~~

세실 2014-10-17 16:17   좋아요 0 | URL
음 이번주 월욜부터 어제까지 매일 매일 약속이 있었어요~~~
신랑이 일찍 들어와서 아이 밥 먹여 학원 보냈어요.
더구나 화욜엔 소주 1병이랑 맥주 마시고 집에와서 확인까지 했다는..ㅎ
이 정도면 인기쟁이?
고3 엄마가 아니어요....ㅜㅜ
오늘은 인근 절로 혜민스님 만나러 갑니다^^ 기대 만땅입니다.

저는 글도 계속 수정하고, 댓글 몇개 달렸나 하루에도 몇번씩 확인한답니다.ㅎ

페크pek0501 2014-10-17 14:39   좋아요 0 | URL

어휴... 인기쟁이로 님을 임명합니다요...
그러니 님은 얼마나 바쁘시겠습니까? 매일 출근에다 인기맨으로서 모임에도 참석해야 하니...
저는 체력 부족으로 일주일에 한 번만 친구 만남을 허용합니다요. 두 번이면 한 번은 다음주로 미루는 스타일... ㅋㅋ 안 그러면 제가 할일을 다 못해요.

아, 혜민 스님의 글 좋았어요. 저도 오늘 절에 갑니다. 가까운 곳, 새로 찾은 절이 있어서요.
고3엄마 흉내 좀 내 보려고요. 으음~~ 다른 엄마들이 하는 건 다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죠.
인터넷으로 찾았는데 절의 풍경이 멋져요. 이것저것 살펴보고 맘에 들어 자주 가게 되는 곳이었으면 해요. 멋진 산책도 하고 오겠습니다. 나무가 많더라고요.
일주일에 한 번은 절에 가서 기도도 하고 산책도 하고 사색도 하고...
오는 길에 세실 님 만나서 차 한잔 하면 금상첨화인데... 언젠가는 그런 날 오리라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
 

 

 

오늘 아침, 침대에 앉아 티브이를 보다가 침대 옆에 있는 책상 위로 손을 뻗어 책을 하나 집어 들었다. 펼치니까 이런 글이 있다.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이네.

 

 

....................

“ (…) 어떤 여자가 맞은편에서 오는데 마치 세상에 저 혼자인 것처럼 왼쪽도 오른쪽도 안 보고 그대로 전진하는 거야. 둘이 부딪쳐. 자, 이제 진실의 순간이야. 상대방한테 욕을 퍼부을 사람이 누구고, 미안하다고 할 사람이 누굴까? 전형적인 상황이야. 사실 둘 다 서로에게 부딪힌 사람이면서 동시에 서로 부딪친 사람이지. 그런데 즉각, 자발적으로, 자기가 부딪쳤다고, 그러니까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런가 하면 또 즉각, 자발적으로 자기가 상대에게 부딪힌 거라고, 그러니까 자기는 잘못한 게 없다면서 대뜸 상대방을 비난하고 응징하려드는 사람들도 있지. 이런 경우 너라면 사과할 것 같아 아니면 비난할 것 같아?”


“나라면 분명 사과하겠지.”


“아이고, 이 친구야, 너도 사과쟁이 부대에 속한다는 거네. 사과로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그래, 그렇지.”


“그런데 착각이야. 사과를 하는 건 자기 잘못이라고 밝히는 거라고. 그리고 자기 잘못이라고 밝힌다는 건 상대방이 너한테 계속 욕을 퍼붓고 네가 죽을 때까지 만천하에 너를 고발하라고 부추기는 거야. 이게 바로 먼저 사과하는 것의 치명적인 결과야.”


“맞아. 사과하지 말아야 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괜히,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57~58쪽.

....................

 

 

 

사과를 하는 건 자기가 잘못한 것이라고 밝히는 것이고, 자기가 잘못한 것이라고 밝힌다는 건 상대방이 자기한테 욕을 퍼붓게 만드는 것이란다.

 

 

이 글을 읽으니 말에 담긴 속뜻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상대의 말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히 알아챌 수 있는 어떤 뜻이 담긴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예를 들어 본다. 오랜만에 만난 두 남자. 이런 대화가 오간다.

 

 

A : 오랜만이야. 언제 만나 소주나 한잔 하지.
B:너는 아직도 소주냐? (웃으며) 우리 나이가 몇인데...

 

 

B가 별 뜻 없이 한 말처럼 말했지만 A는 기분이 상한다. 그 말에서 속뜻이 저절로 헤아려졌기 때문이다. “너는 아직도 소주냐? 우리 나이가 몇인데... 이젠 몸을 생각해서 양주 같은 고급 술을 마셔야지.”라는 말로 A는 들었다. 그것은 B가 소주를 먹는 사람들을 자기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구분하고 자기는 그런 부류보다 경제적 수준이 높음을 나타낸 것 같았다. 그리고 소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 같았다. 그 말 한마디로 B가 평소 소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 말 한마디로 그가 사람들의 등급을 매기는 사람으로 보였다.

 

 

다른 예.

 

 

“당신이 좋아지면 어떡하죠? 그러니 그만 만나는 게 좋겠어요.”

 

 

이 말엔 상대가 좋아지고 있다는 속뜻이 담겨 있다. 상대가 좋아지지 않고 있다면 이런 말을 할 생각을 못한다. 생각이 나지도 않는다.

 

 

“앞으로 당신이 싫어지면 어떡하죠?”

 

 

이 말엔 상대가 싫어지고 있다는 속뜻이 담겨 있다. 상대가 싫어지지 않고 있다면 이런 말을 할 생각을 못한다. 생각이 나지도 않는다.

 

 

“이 글은 좋네요.”

 

 

이 말은 이 글만 좋고 그동안 써 온 글은 좋지 않다는 뜻.

 

 

“이 글도 좋네요.”

 

 

이 말은 이 글도 좋고 그동안 써 온 글도 좋다는 뜻.

 

 

내가 어느 댓글에서 “오늘 비가 와서 참 좋아요.”라고 쓴 적이 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실언을 한 것 같았다. 이 말은 내가 비 피해로 인해 생기는 수재민에 대한 걱정을 조금도 하지 않는다는 것과,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것을 나타낸 듯싶어서다. 그래서 비가 와서 좋다는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다.

 

 

아, 어려운 말말말!

 

 

이런 것 저런 것 따지면 말을 하기도 글을 쓰기도 어렵다는 걸 느낀다.

 

 

 

 

 

 

 


(후기)......................................

 

- 우연히 책을 펼쳐 밀란 쿤데라의 글을 본 오늘, 그 글로 인해 글 하나 올리네.
- 난 사과쟁이가 아닌 사람보다 사과쟁이인 사람을 좋아하고, 또 나도 사과쟁이로 살고 싶네.
- 매일 새벽 1시 넘어 자고 아침 5시 50분에 일어나야 하는 생활로 잠이 부족하네.
- 몸은 잠을 자고 싶다는데 몸이 바라는 대로 하지 않고 정신이 이끄는 대로 글을 썼네. 졸음을 깨기 위해 커피를 마셨네.
- 난 눈 오는 풍경보다 비 오는 풍경이 더 좋네. 앞의 글에서 비가 와서 좋다는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다고 해 놓고... 그래도 이 말을 해야겠네. ‘오늘 비 한번 참 품격 있게 와서 좋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립간 2014-09-03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 ; 비교적 사회문화적인 것에 의해 결정되겠지요. 영어 잘 못하는 한국인이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That's too bad.' 대신 'I am sorry.'라고 하였다가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법판결을 받은 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영어 선생님의 말씀, 사실 여부는 모르겠고.) 비슷한 경우로 의료 분쟁의 경우 의사의 사과는 100%, 의사 책임으로 인정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도의적 사과까지 하지 못했죠. (지금은 조금 바뀌었지만.)

서양보다 동양, 우리나라에서 암시적인 언어를 많이 쓰니, 공감능력이 없는 남자는 여자들에게 핀잔을 받게 마련입니다.

페크pek0501 2014-09-04 13:42   좋아요 0 | URL
좋은 예를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이런 걸 알았더라면 좀 영양가 있는 글이 되는 건데 하는 생각... 이 듭니다. ㅋ

그래서 자동차가 충돌하는 사고가 나면 서로 큰 소리부터 치고 보는 겁니다. 목소리가 작으면 자신의 잘못으로 사고가 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니까요. 그러니 매너 좋은 운전자가 되긴 틀린 거죠. 이런 문화권에선...

공감 능력이 없는 남자... 남자가 여자에 비해 센스가 부족한 건 사실 같아요.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4-09-03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말조심하지 않으면 큰 다툼이 일어나는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명절!

페크pek0501 2014-09-04 13:43   좋아요 0 | URL
촌철살인이에요. 하하~~
저도 조심해야 돼요. 시댁에서 3일간...

마립간 2014-09-04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피소드 한 가지가 더 생각나는군요. 미국의 한국동포 직장맘이었는데, 직장일을 끝나고 돌아와보니, 아이가 사고로 죽어있었습니다. 직장일을 하느라고 아이를 돌보지 못한 죄책감에 ; '내가 아이를 죽였어'라고 혼잣말을 하였는데, 이 혼잣말이 나중에 재판에서 살인의 유죄 증거가 되었죠. (아이를 혼자 놔두는 것은 아동학대죄이지만, 살인죄는 아닌데.) 한국 동포들이 한국인의 언어습관과 함께 탄원서를 보냈지만 인정되지 않았죠.

페크pek0501 2014-09-04 13:46   좋아요 0 | URL
안타까운 일이군요. 언어습관이 인생을 망칠 수도 있군요.
저도 얼마나 실수를 많이 하는지, 말을 하고 나서 '아, 그건 실언이었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글은 수정하면 되지만 한번 뱉은 말은 수정하기 어려우니
신중해야 하는데... 어렵습니다.
어제는 비가 오더니 오늘은 맑음이에요. 좋은 하루 되세요.^^

다크아이즈 2014-09-04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기 보니까 생각나요. 몸을 이기고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는 그 내공이 부럽습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언제나 정신이 아닌 몸으로 글을 쓴다는 걸 느꼈어요.
꼭 써야 할 글이 있어서 붙들고 있으면 정신이 몸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 필히 횡설수설하게 되더라구요. 그럴 땐 미련없이 관두고 쓰러져야 합니다. 몸이 글을 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허약하기 그지 없는 제 정신력을 탓하곤 하지요.

말도 조심, 몸 언어도 조심... (나쁜) 말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지 않는 게 아니며,(좋은) 말 한다고 다 칭찬하는 게 아님을 공기 중에 흐르는 분위기로 알 수 있지요. 그럴수록 몸과 말을 조심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추석 잘 보내시어요.^^*

페크pek0501 2014-09-04 13:52   좋아요 0 | URL
1. 몸과 마음은 하나다, 이런 말이 책에 많이 나오는데 저는 그 둘이 각각 따로 놀 때가 많다는 걸 느낍니다. 팜 님도 그러시군요...
가령 오늘 같은 날, 몸은 사우나를 하고 싶은데 마음은 귀찮아서 사우나하러 가지 않거든요. 어떤 날은 몸은 잠을 자고 싶은데 그래서 졸리운데 마음은 할일이 많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졸음을 깨거든요. 어떤 때는 몸이 이기고 어떤 때는 마음이 이깁니다.

맑은 하늘이 아름다운 날에 기분이 맑은 하루가 되시길...

마태우스 2014-09-16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간 소홀해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글구 저는 "이 글은 좋네!"라는 말이 "이 글도 좋네"보다 좋아요. 그 글만 유독 잘썼다는 말 같아서요. 막상 들으면 다를 수도 있겠지만요. 그나저나 넌 아직도 소주냐,는 사람이 있다면 저도 같이 안놀 거에요. 소주가 얼마나 좋은 술인데

페크pek0501 2014-09-17 10:28   좋아요 0 | URL
저도 님의 서재에 소홀해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저도 잘하겠습니다.
이 글은 좋네, 라는 말이 좋으시다니 님의 겸손을 발견하게 되는 대목이군요.

ㅋㅋㅋ 말씀은 그렇게 하시면서 혹시 양주만 마시는 교수님이 아니신지... 호호~~

마태우스 2014-09-17 11:37   좋아요 0 | URL
아니어용 사람은 이름 따라 간다고 저 정말 소주 좋아해요

페크pek0501 2014-09-21 21:05   좋아요 0 | URL
아, 성함이... 알고 있음...
몰라 뵈서 죄송합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