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밥 먹으러 어느 한식 음식점에 갔을 때의 일이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나서 밥을 먹으려고 하니 김치를 담은 보시기의 가장자리에 머리카락이 하나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우리는 그 김치를 먹지 않기로 하고 다른 반찬으로 밥을 먹었다. 먹으면서 머리카락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 나는 다 먹고 나서 음식값을 낼 때 음식점 주인에게 머리카락이 발견된 사실을 알려 줘야 한다고 남편에게 말한다. 그래야 종업원들이 그런 실수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서 우리처럼 똑같은 일을 겪는 손님이 없어야 한다고. 남편의 생각은 다르다. 남편은 음식점 주인의 기분을 상하게 할 말을 해선 안 된다고 내게 말한다. 어차피 사람은 실수를 하는 거라면서.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의견이 옳다고 내세우며 밥을 먹었다. 이와 비슷한 경험이 몇 번 있는데 어떤 때는 음식점 주인에게 알려 주고 어떤 때는 알려 주지 않는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게 옳은 일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영업을 하는 사람에게 개선할 점을 알려 주려고 할 때 내가 마지막에 꼭 하는 말이 있다. “제가 드린 말씀이 영업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말이다. 언제나 끝마무리를 잘해야 좋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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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중학생이었던 딸아이의 목에 혹이 생겨 점점 커져서 무슨 병인가 싶어 큰 병원을 몇 번 찾았는데 어느 날 의사가 진찰하더니 조직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암센터에 가서 다음에 병원에 올 날을 예약하란다. 딸아이와 나는 암센터에 가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그것은 암이 의심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녀는 그 병원 암센터로 향하면서 걱정과 두려움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예약한 날에 딸아이가 조직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검사 결과를 이 주일 뒤에나 알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우리는 아연실색했다. 그건 우리한테 이 주일 동안이나 두려움에 떨며 지내라는 말에 다름 아니었으니.

 

 

그 이 주일 동안 딸아이와 난 입맛을 잃었으며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을 것이다. 단 하루도 ‘암일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쳐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걸 마음이 지옥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 주일 뒤에 검사 결과를 보러 병원에 갔다. 다행히 암이 아니었다. 대수롭지 않은 병이라는 걸 확인하고 우리는 안도했다. 이때 난 지옥에서 빠져 나온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제 딸아이는 성인이 되었다. 며칠 전 사랑니 때문에 아파하더니 사랑니를 뽑기 위해 치과 예약을 해 놓았다고 말한다. 사랑니를 뽑기 전에 맞는 마취 주사가 되게 아프다고 친구한테 들었다는 말도 늘어놓았다. 아플 게 걱정되냐고 내가 묻자 딸아이가 답했다. “아니, 옛날에 암센터도 갔다 왔는데 뭐.”

 

 

암센터 일로 딸아이의 마음이 단단해졌구나 싶었다. ‘마음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서 남은 게 그때의 고통스런 느낌밖에 없다면 참 아쉬운 일이다. ‘마음이 힘든 시간’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서 앞으로 걸을 인생길에서 무슨 일을 겪든 잘 버티게 해 준다면 ‘마음이 힘든 시간’은 헛된 시간이 아니다.

 

 

나에게도 그런 경우가 있다. 감기로 인해 병원에서 주사를 맞을 때가 있는데 아픈 주사라고 할지라도 나는 겁이 나지 않는다. 애를 낳아 본 경험도 있는데 주사 따위는 출산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나 또한 살아오면서 ‘마음이 힘든 시간’을 여러 번 가졌다. 앞으로도 그런 시간을 가질 때가 있으리라.

 

 

나는 바란다. ‘마음이 힘든 시간’을 가질 때마다 그 시간이 그저 마음이 힘든 시간인 것만 아니고 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 
‘그런 일도 있었는데’와 ‘마음이 단단해지는 시간’ 중에서
어떤 제목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마음이 단단해지는 시간’으로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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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7-19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음이 단단해지는 시간이 더 좋은데요.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많이 힘들지요. 많이 상상하게 되니까요.
큰일 없으셔서 다행이네요.^^
잘읽었습니다.
오늘은 태풍 때문에 많이 덥고, 습도가 높습니다.
페크님,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9-07-20 17:43   좋아요 1 | URL
긴장되는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건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검사를 하면 결과가 바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날씨가 덥지만 하루하루 여름이 흘러 가고 있다, 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8월 8일이 입추던데요, 그날만 와도 폭염이 없지 않을까 예상하며 기다립니다.
늦여름을 좋아합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서니데이 2019-07-21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태풍은 소멸했다고 하지만, 남쪽은 피해가 크다고 하고,
주말 내내 습도 높고 흐리고 날씨가 좋지 않았어요.
다음주는 많이 더울 것 같아요.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9-07-24 22:46   좋아요 1 | URL
서울은 그동안 비가 얼마 오지 않았는데 오늘밤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비가 많이 온다고 합니다. 이번 장맛비가 끝나면 폭염이 오겠지요. 그래도 다른 여름에 비해 이번 여름은 덜 더운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요.
가뭄이 있는 곳도 있다고 들었는데 한곳에 폭우가 쏟아져서 비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골고루 비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라도 시원한 여름을 보내시길...

cyrus 2019-07-22 0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심각한 병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입니다. ‘마음이 단단해지는 시간‘이 엄청 느리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꼈겠어요. 오히려 느리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들이 더 오래 기억됩니다. 저는 군인으로 살아왔던 기간이 살면서 가장 느리게 느낀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가끔 악몽이 되어 나타날 정도로 과거를 못 잊고 있어요... ㅎㅎㅎ

페크pek0501 2019-07-24 22:4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는 잘 모르지만 얼마나 고생이 될지 짐작은 합니다. 들은 얘기가 많아서요. 시간은 상대적으로 느껴지죠. 지루하거나 힘든 시간은 느리게 가는 것 같고 컴퓨터를 하면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말이죠. ㅋ
주위를 살펴보면 힘든 일 없이 사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저마다 자기 몫의 힘듦을 견디며 사는 거죠.
어디에 집중하느냐의 문제라면 좋은 쪽에 집중하는 게 좋겠습니다.
좋은 밤 되시길... 댓글, 감사합니다.

희선 2019-07-23 0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검사 결과가 나오는 건 오래도 걸리는군요 아니 그냥 보내는 두 주와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두 주는 다르겠습니다 큰 병은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어떤 일을 겪고 나중에 그런 일도 있었는데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떤 일은 또 일어날까봐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그건 마음이 단단해지는 일과 다를지도 모르겠네요 힘든 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일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다 생각하겠습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19-07-24 22:53   좋아요 1 | URL
그렇죠 트라우마로 작용해서 역효과가 날 수 있지요.
저도 힘든 일을 끝내고 나면(예를 들면 친정어머니가 입원해 계시다가 퇴원하는 경우.) 하나 해 냈다는 생각에 안도하게 되더군요. 대체로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할 불행의 총량이 모두 비슷할 것이라는 저의 편견 때문이죠. 늘 행복하지도 않고 늘 불행하지도 않다고 보는 거죠.
맨끝에 쓰신 닉네임 두 자가 멋지게 보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비 오고 있는 땅을 찍었다.

 

 

 


1.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키스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횟수가 적을 때에 한해서 그렇다. 만약 당신이 하루에 100번의 키스를 요구하는 배우자와 산다고 상상해 보라. 당신은 일 년에 36,500번을 키스해야 한다. 당신은 행복한 사람일까? 아닐 것이다. 고통스런 삶을 사는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2.
목이 마를 때 마시는 첫 잔의 물은 맛있다. 하지만 두 잔까지 마시고 나면 그다음부터 마시는 게 고역이더라.

 

 

 

3.
오늘 오랜만에 오는 비를 보니 참 좋다. 미세먼지에 시달린 날이 많은 터여서 비가 더 좋은 것 같다. 하지만 일 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비가 온다면 비가 지긋지긋할 것이다. 꼭 습기와 곰팡이로 인한 불편이 없더라도 비가 계속 내리면 눈부신 햇빛이 있는 맑은 날이 그리울 것이다. 비가 언제나 좋을 수는 없다.

 

 

 

4.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 짜릿함이 길어지면 고통이 될 수 있다.

 

 

 

5.
편한 날이 많으면 편한 것의 좋음을 모른다.
명절이 오면 최선을 다해 고단하게 일해야 한다.
그래야 보통날의 좋음을 안다.

 

 

 

 

 

 


........................
어쩌다 있는 명절입니다.

 

설 연휴를 즐겁게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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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2-03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 같은 걸 많이 보면 안 될 것 같아요.
배우들의 키스는 웬지 다 육감적이고 짜릿할 것 같아도
아무 때나 그럴 수 없거든요.
만일 그게 가능하더라도 100번씩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입술이 헤져서 무감각해지지.ㅋㅋ

바쁘실 것 같은데 아직은 괜찮으신가요?
모쪼록 언니도 즐거운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19-02-03 13:34   좋아요 1 | URL
오르가슴(오르가즘은 잘못된 표기임.)을 하루종일 느끼게 되면 인간은 고통스러워 죽게 될 거라고 인터넷 어디서 봤습니다. 쾌락도 지나치면 고통이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야한 얘기를 써도 되는지...ㅋ 그래서 본문에선 키스, 로 바꿔 표현했습니당~~)

스텔라 님, 맛있는 음식 드시고 많이 웃으며 설 연휴 보내세요. 책만 보지 말고요...

서니데이 2019-02-03 14: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빗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비가 많이 오나봐요.
사진을 보니까 물이 고인 느낌이 들어요.
좋은 것은 늘 좋은 것이었으면 좋겠는데, 달라지지 않은 채로 좋지 않은 것이 될 때가 있다는 것. 처음에는 이상했는데, 요즘은 그 때보다 조금 더 많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늘 같은 것이 없고, 늘 같을 수 없다는 것도 생각하게 되고요.
잘읽었습니다.
연휴 즐겁게 보내시고, 연휴에 좋은 일들 많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9-02-07 13:20   좋아요 1 | URL
그날은 비가 와서 좋았네요. 그러고는 바빠서 미세먼지가 있었는지 비가 왔는지 모르겠네요. 시댁 - 지방에 2박 3일 갔다 오고 와서 친정에 들러 세배하고...
서울 올 때 차가 밀려서 고생도 하고...
다 끝나고 나니 속시원합니다. 그래도 많이 먹고 많이 웃고 그랬어요.

댓글,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시길...

syo 2019-02-03 14: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님 오시니까 보도블럭도 반짝반짝 이쁘네요.
감기 조심하시고,
명절 잘 보내세요 ㅎㅎㅎ

페크pek0501 2019-02-07 13:22   좋아요 1 | URL
좋아요 수가 많으신 분이 들르셨네요. 뭐 그래서 제가 심술이 났다는 건 아니고... ㅋ... 절대 아니고...ㅋ

님도 감기 조심하시고 늘 지금처럼 좋은 글 써 주시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가끔 제 서재를 들러 주시는 것도 잊지 마시고...
좋은 날 보내세요. 댓글, 감사합니다.

hnine 2019-02-03 16: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짜릿‘이란 말에 벌써 짧은 느낌이 들어있는 것 같지 않나요?
매년 겪는 명절인데 올해는 왜 이렇게 하기가 싫어지는지 모르겠네요. 방금 내일 찾아오게 떡국용떡과 차례상에 올리는 떡을 주문하고 오라고 남편에게 부탁했더니 아예 사들고 왔네요. 굳거나 쉬거나 할까봐 저는 늘 전날 사오는데 말입니다. 저도 모르게 짜증을 팍 내버렸어요 ㅠㅠ
비가 계속 와요. 도로 정체 차량 속에 있는 분들은 얼마나 답답할까요.

페크pek0501 2019-02-07 13:26   좋아요 0 | URL
남편들은 다 그렇답니다. 저희 남편도 자기일만 잘하고 뭐 시키면 생각이란 걸 안 하고 한답니다.
매년 겪는 명절인데 저도 이번엔 고단해서 입술에 뭐가 나고 소변을 보니 맥주처럼 거품이 나더군요. 피곤하면 그렇다고 합니다.(예전에 소변 검사 후 병원에서 들은 말임.)
이젠 체력이 달립니다. 먼 길 오고가고 하는 게 힘이 든데다가 가자마자 일 시작, 이라서요. 게다가 제가 어울리지 않게 맏며느리인지라...
시댁 가기 전엔 친정 차례상 장 보고 ... 바빴어요. 다 끝나니 행복한 일상임을 알겠어요. 댓글, 감사합니다. 많이 웃고 많이 몸 움직이는 한 해를 보내자고요

2019-02-03 2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7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9-02-04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도 편안한 설날 연휴 되세요~~~
양면성을 생각하며 위안을 삼아봅니다.
오늘 전 부치며 개신교에 다니는 시댁을 만났더라면...잠깐 생각했습니다.ㅎㅎ
내일만 지나면~~

페크pek0501 2019-02-07 13:29   좋아요 0 | URL
오! 세실 님.
편안한 설날 연휴는 되지 못했어요. 고단한 연휴였어요. ㅋㅋ
저도 그런 생각을 했지요. 3일만 지나거라...

요즘 서재 활동이 뜸하셔서 댓글 남기신 세실 님이 더 반가웠다는...
굿 데이~~~
 

 

 


 

같은 시간, 다른 빛깔.

 

 

 

 

1. 기분이 나빴다 :
월요일 아침. 그녀는 출근 준비를 하다가 창밖을 내다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기분이 나빴다. 어제 휴일에 비가 올 일이지 왜 오늘 비가 온담. 우산을 갖고 나가는 게 귀찮고 비가 옷에 튀는 게 불편하게 느껴졌다. 옅은 색 바지를 입으려다가 빗물이 튀는 걸 생각하고 짙은 색 바지를 입었다. 비가 오니 지하철이 붐비겠지.

 

 

지하철을 타자 앉을 자리가 없었다. 그럴 줄 알았어. 비가 오는 날에는 사람들이 많아 빈자리가 없다니까. 아무튼 비가 오면 여러 가지로 나쁘다니깐. 지하철에서 가방을 매고 우산을 들고 서 있으려니 앉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곧 내릴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앞에 가 있으려 했다. 그런데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으나 졸고 있는 사람들과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뿐이어서 도무지 곧 내릴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도 스마트폰을 보고 싶었으나 한 손은 우산을 들고 있어야 했고 한 손은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있어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

 

 

비가 와서 아침부터 30분 동안이나 서 있는 고생을 해야 하다니 운수가 나쁜 날인 것만 같았다. 마치 어떤 뽑기에서 자기 혼자만 꽝이 나온 기분이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비가 오는 날이라 오늘 근무 시간의 내 기분도 꽝일 것이라고. 

 

 

 

 

    

 


2. 기분이 좋았다 :
월요일 아침. 그녀는 출근 준비를 하다가 창밖을 내다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비가 오는 날은 미세먼지가 없다는 걸 뜻한다. 기분이 좋은 것은 맑은 공기 때문만은 아니다. 온 세상이 비에 젖을 때 그녀는 낭만에 젖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우산을 쓰고 걸어갈 때 들려오는 빗소리, 비가 만들어 내는 공기 냄새, 비 오는 풍경. 이것들이 주는 느낌을 음미하는 즐거움을 그녀는 안다. 그리고 비가 고맙기 그지없다. 먼지로 덮인 세상을 비가 청소해 주기 때문이다. 비 덕분에 돈 들이지 않고 인력이 동원되지 않고 세상이 깨끗해지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타자 앉을 자리가 없었다. 비가 오는 날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서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 비 오는 풍경을 보고 있으니 지루하지 않았으니까.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앉아 근무할 테니 이렇게 서 있는 게 오히려 낫지 싶었다. 

 

 

비가 와서 아침부터 운수가 좋은 날인 것만 같았다. 마치 어떤 뽑기에서 뜻하지 않은 행운을 거머쥔 기분이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비가 오는 날이라 오늘 근무 시간은 낭만적인 기분일 것이라고.

 

 

 

 

 

 

 

 

 

 

 

 

 

 

 

 

 

 

 

 

...............
하찮은 일이 우리를 위로한다. 하찮은 일이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에.(56쪽)

 

- 블레즈 파스칼, <팡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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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12-01 14: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기분도 상대적인 거라 하루에 총량은 불변 아닐까 하는데요..ㅎㅎㅎ 페크님이 좋아하시는 팡세를 인용하면서 하루를 소감하셨네요. 문장과 소감이 잘 어울립니다..^^;

페크pek0501 2018-12-02 11:22   좋아요 2 | URL
잘 어울린다는 말씀, 기분 좋군요.
요즘 팡세를 읽느라 이번 해에 다 읽어야 할 책이 늦어지고 있어요. 팡세는 빨리 읽을 수 없고 마치 시를 읽듯 그 뜻을 헤아리며 읽어야 하는 책이라서, 게다가 두껍기까지 한 책이라서 이것 한 번 잡으면 시간이 팍팍 가네요. 다른 책들 빨리 읽어야 하는데 말이죠.
팡세를 오래전에 읽었으니 이번에 재독인 셈인데 낯선 문장을 읽다가 예전에 읽었던 기억이 나는 부분을 만나면 반갑고 그래요.
좋은 하루 보내시길... 댓글, 고맙습니다.

cyrus 2018-12-01 15: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믿고 우산을 챙겼는데, 비가 한 방울도 안 오는 날이 있어요. 그럴 땐 괜찮아요. 그런데 분명 그 날에 비 온다는 예보를 듣지 못했는데, 비가 오면 짜증이 나요. ^^;;

페크pek0501 2018-12-02 11:25   좋아요 1 | URL
비 맞는 것 정말 싫죠? 그래서 저는 가벼운 우산을 사서 늘 가방에 들고 다니곤 해요. 날이 화창한 날은 빼고 나머지는 넣어 다닐 때가 많아요.
일기예보가 틀릴 때가 가끔 있더라고요.
좋은 휴일 보내세요. 하찮은 일이 우리를 행복하게도 한답니다. 고맙습니다.
 

 

 

 

 

 

 

 



...............
만약 모든 사람이 자기들에 대해 서로 말하는 것을 안다면 이 세상에는 거의 친구가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사실이라고 믿는다.(90쪽)

 

- 블레즈 파스칼, <팡세>에서.
...............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였다. 누군가가 우스갯소리로 자기 흉을 볼까 봐 화장실에 못 가겠다고 말해서 웃은 적이 있다. 흉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누구에게나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고, 단점이 있으면 장점이 있는 법. 남들 말에 세세히 신경 쓰고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근심만 쌓일 뿐이다. 중요한 건 자기에 대한 남들의 평가가 아니라 자기에 대한 자신의 평가일 것이다. ‘나는 현재 잘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자신에게 해야 한다. ‘나는 세상에서 이로운 사람인가 해로운 사람인가?’라는 물음도 함께.

 

 

흉을 좀 보면 어떤가. ‘그래, 너희들이 내 흉을 보며 즐거울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지 뭐.’하는 태도가 좋지 않겠는가. 과연 내가 이런 태도를 가질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태도가 좋다고 여긴다. 이런 태도가 좋다고 여길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왜냐하면 이런 태도에서 '넉넉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마음의 여유'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마음의 여유' 하나 갖기가 얼마나 어려웠던가. 이것이 없어서 불행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면 타인과의 경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목표를 이룰 수 없어서 속상해 하는 일도 없으리라. '마음의 여유'가 앞으로 기회가 또 있으리라는 것에 희망을 품게 해 줄 것이므로.

 

 

우리에겐 그게 필요하다. 마음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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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8-12-01 09: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체적으로 자신은 남에게 피해를 준걸 기억 못하고, 남이 자신에게 피해 받은건 너무 억울해하는 경우에 그렇습니다....내로남불형....대체적으로 도움 많이 주고 베풀고 산 사람치고 흉보는 사람이 없죠...이기적으로 싸기지 없이 산 사람들이 흉보기의 대상이될 뿐이거든요...동기들 모임 한번도 나오지도 않고 회비도 안내고 하다가 어른 돌아가시면 연락해서 초상집 오라는 싸가지들이 얼마나 많은지요..상부상조는 서로가 서로를 도우라는 의미였는데..장사속으로 받아 먹기만 하겠다면 당연히 흉의 대상이 되는거죠...예를들자면 그렇습니다...인간관계가 어렵다지만 쉬운 길 있죠..내가 나를 내려 놓고 버리면 됩니다...좋은건 너가 다해라..그런 마음이면 ...되죠..그런데 이게 참 어렵긴하죠..수양이 덜되면 ..모릅니다.

페크pek0501 2018-12-01 10:20   좋아요 2 | URL
한 번도 나오지 않다가 초상집 오라는 분, 얄밉기도 하고 귀엽기도 합니다.ㅋ

내가 나를 내려 놓고 버리기, 이거 어려운 일이네요.

남에게 받은 건 적게 생각하거나 아예 잊어버리고, 자기가 남에게 어쩌다 베푼 것은 크게 생각하는 것, 정말 답답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일일이 설명을 해 줄 수도 없고...

제가 사돈 남 말하는 건지 모르지만... ㅋ

댓글, 고맙습니다. 좋은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cyrus 2018-12-01 16: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누구나 완벽할 수 없어요.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면 나의 단점에 지나치게 걱정하거나 자책할 필요는 없어요. 기우가 심해지면 내가 없는 단점도 만들 수 있어요.

페크pek0501 2018-12-02 11:36   좋아요 0 | URL
남들이 다 장점으로 봐 줘도 자신이 단점이라고 여긴다면 단점이 되겠지요.
저는 양면성을 생각합니다.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대상이 달라져 보이는 경험을 하죠.
일단 자신을 잘 챙겨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자신이 몸과 마음이 다 편해야 남들에게도 관대해질 수 있으니까요.
서울은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네요. 어제도 친구와 한 시간 이상 걸었는데 오늘도 많이 걸어야겠어요. 다리가 튼튼해지게.
좋은 휴일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