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하거나 기분이 상할 때가 있다. 그럴 때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이 상황을 범인(凡人)의 눈으로 보지 말고 ‘작가적인 눈’으로 보자고.

 

 

그러면 그 생각만으로도 다소 위안이 된다. 작가적인 눈은 세상을 뒤집어 볼 줄 아는 눈이 아니던가. 그래서 음지를 양지로 생각하기도 하고, 실패를 성공으로 생각하기도 하는 게 작가적인 눈이 아니던가. 무엇에 대해 새롭게 해석하여 새로운 가치를 탄생시키는 그 눈을 닮고 싶다. 그 눈으로 세상을 보면 항상 봐 왔던 세상이 다른 세상으로 보일 것 같기 때문이다.

 

 

작가적인 눈이 가지는 ‘새로운 시각’은 중요하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일도, 기분이 상한 일도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나면 달라져 보이니까. 나쁜 ‘위기’가 좋은 ‘기회’로 보일 때가 있는 것처럼.

 

 

요즘 난 ‘작가적인 눈’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내가 닮고 싶은 ‘작가적인 눈’을 살펴보기 위해, 그와 관련된 글들을 골라 보았다. 내가 인상 깊게 읽은, 좋은 글들이기도 하다.

 

 

 

 

1.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무라카미 하루키는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에서, 소설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대체로 이런 대답을 한다고 썼다.

 

 

“소설가란 많은 것을 관찰하고, 판단은 조금만 내리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인간입니다.”(19쪽)

 

 

소설가가 판단은 조금만 내리는 이유는, 판단은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는 일에 대해서는 이렇게 썼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자기만의 방을 만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방을 마련하고, 그곳으로 사람들을 불러 편안한 의자에 앉히고, 맛있는 음료를 내놓고, 상대가 그곳을 아주 마음에 들게 하는 것. 마치 자기만을 위한 장소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445쪽)

 

 

그래서 독자가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하루키가 만든 방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고, 독자가 그 방을 아주 맘에 들어 한다는 것은 작가와 독자가 마음이 통했다는 말이 된다. 그것은 “세상사를 서로 나눠 가진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독자가 그 방에 있는 동안엔 세상을 작가의 눈으로 볼 수 있다. 즉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는 하루키가 세상을 보는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

 

 

자신이 쓰고 싶은 책에 대해서는, 프란츠 카프카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이렇게 밝히고 있다.

 

 

“생각건대, 우리는 우리를 물어뜯거나 찌르는 책만 읽어야 한다.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여야만 한다.”(459쪽)

 

 

책이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는 게 카프카의 생각이며 동시에 하루키의 생각인 것이다. 그 정도로 독자에게 강한 충격을 주려면 어떤 책이 되어야 할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뻔하지 않음’을 담고 있는 내용의 책이어야 하겠다. 낯선 세계 또는 의외성이 있는 세계로 안내하는 책이면 될 것 같다. ‘세상의 비밀’이 담겨 있는 책이면 될 것 같다. 그래서 우리의 고착된 생각의 언 바다를 깰 수 있으면 된다. 우리 안에는 얼마나 많은 고정관념과 편견이 고착되어 있는가. 이렇게 고착되어 있는 것들을 깨려면 ‘작가적인 눈’이 필요하리라.

 

 

 

 

2. 알랭 드 보통, <불안>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소설이란 장르에선 ‘작가적인 눈’이 어떻게 나타날까. 이에 대해 언급한 책이 있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에서, 세상을 보는 소설가의 시각은 보통 사람들의 시각과 다르다는 것에 주목하며 이렇게 썼다.

 

 

“소설가는 사회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표준 렌즈, 즉 부와 권력을 크게 확대해 보여주는 렌즈를 인격의 특질을 확대해 보여주는 도덕적 렌즈로 바꾼다. 도덕적 렌즈로 보면 높고 강한 사람은 작아지며, 잊혀져 뒤로 물러나 있던 인물이 오히려 크게 보일 수 있다. 소설의 세계에서 덕의 움직임은 물질적 부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부자이고 품행이 단정하다고 해서 곧바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가난하고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곧바로 나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180쪽~181쪽)

 

 

때로는 “첫째가 꼴찌 비슷해지고, 꼴찌가 첫째 비슷해진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1834)에서 우리의 공감이 이끌리는 사람은 호화로운 집에 사는 마담 드 뉘싱겐이 아니라 더러운 하숙집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이빨 빠진 고리오 영감이다. 하디의 <미천한 주드>(1895)에서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은 옥스퍼드의 연구원들이 아니라 대학의 석상을 수리하는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석공이다.”(182쪽~183쪽)

 

 

이와 같이 소설은 감추어진 삶의 목격자이기 때문에 지배적인 위계 관념에 상상의 평형추 역할을 할 수 있다. 소설에서는 점심 준비로 바쁜 하녀가 보기 드문 감수성과 도덕적 위엄의 소유자인 반면, 시끄럽게 웃음을 터뜨리는 은광 소유자 남작의 마음은 시들고 역겨울 수 있다.”(183쪽)

 

 

“그러나 우리는 이런 교훈을 잊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들 내면의 가장 좋은 부분이 우리의 관심을 끌 만한 외적인 성취로 표현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기도 하다.”(183쪽)

 

 

이처럼 소설은 현실에서 우리가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인간의 감추어진 어떤 모습을 부각시켜서 그것의 가치를 드러낸다. 눈에 띄지 않아 올바르게 알 수 없는 일들이 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 이런 ‘세상의 비밀’을 포착하는 게 작가적인 눈이다.

 

 

* <불안>의 인용문 페이지는 구판의 책에 따라 표시함.

 

 

 

 

3. 박완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수필에서는 ‘작가적인 눈’이 어떻게 나타날까.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라는 수필은 저자가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보게 된 ‘마라톤’에 대한 글이다. 모두들 1등으로 달리는 마라토너만을 향해서 응원하는 데 반해 저자는 꼴찌에게 응원의 박수갈채를 보낸다.

 

 

“(꼴찌로 달리는) 푸른 마라토너는 점점 더 나와 가까워졌다. 드디어 나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런 표정을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느꼈다. 여지껏 그렇게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얼굴을, 그렇게 정직하게 고독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가슴이 뭉클하더니 심하게 두근거렸다. 그는 20등, 30등을 초월해서 위대해 보였다. 지금 모든 환호와 영광은 우승자에게 있고 그는 환호 없이 달릴 수 있기에 위대해 보였다. (…) 나는 용감하게 인도에서 차도로 뛰어내리며 그를 향해 열렬한 박수를 보내며 환성을 질렀다.

 

 

그리고 저자는 마라톤에 대해 새롭게 생각한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마라톤이란 매력 없는 우직한 스포츠라고밖에 생각 안 했었다. 그러나 앞으로 그것을 좀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것이 조금도 속임수가 용납 안 되는 정직한 운동이기 때문에. 또 끝까지 달려서 골인한 꼴찌 주자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 무서운 고통과 고독을 이긴 의지력 때문에.

 

 

이처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꼴찌로 달리는 마라토너에게도 관심을 갖고 그의 비밀을 발견해 내는 것이 작가적인 눈이다. 그에게서 무서운 고통과 고독을 이긴 의지력이 있다는 점을 알고 응원할 수 있는 게 작가적인 눈이다.

 

 

 

 

4. 유치환, <깃발>

 

 

 

 

 

 

시에서는 ‘작가적인 눈’이 어떻게 나타날까.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 유치환, <깃발>

 

 

 

이 시를 읽음으로써 우리는 지금껏 몰랐던 ‘깃발’의 비밀을 알게 된다. 깃발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기도 하고,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기도 하고, ‘순정’이기도 하고, ‘애수’이기도 하고,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이기도 하다. 이처럼 깃발을 단순히 깃발로만 보지 않고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게 작가적인 눈이다.

 

 

 

 

 

* 맺는말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에서 보듯,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우리 안의 고착된 생각들)를 깨뜨릴 줄 아는 게 ‘작가적인 눈’이다.

 

 

<불안>에서 보듯, 부와 권력을 중요시하는 게 아니라 인격의 특질을 중요시할 줄 아는 게 ‘작가적인 눈’이다.

 

 

<골찌에게 보내는 갈채>에서 보듯, 골찌에게도 응원의 박수갈채를 보낼 줄 아는 게 ‘작가적인 눈’이다.

 

 

<깃발>에서 보듯, 한 가지의 사물을 다양한 모습으로 볼 줄 아는 게 ‘작가적인 눈’이다.

 

 

이 네 가지의 공통점은 ‘다양성’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다양성을 지향한다는 것은 어떤 고정관념과 편견에 갇히지 않는 일이다. 자유롭게 사고하는 일이다. 어떤 것에 대한 비밀의 ‘진실 찾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밀란 쿤데라는 <소설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소설가들은 자신의 생각을 커다란 주제로 삼지 않는다. 그는 더듬거려 가며 실존의 알려지지 않은 측면을 밝혀 보려고 애쓰는 발견자이다.”

 

 

‘알려지지 않은 측면’이란 다른 말로 하면 ‘세상의 비밀’이겠다. 작가적인 눈을 가지고 세상의 비밀을 많이 알게 될수록 세상의 진실에 더 가까이 가고, 세상의 진실을 더 이해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또 진실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행복해지는 일이며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고 믿는다.

 

 

물론 ‘작가적인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작가적인 눈’으로 세상을 봐야겠다는 생각만으로도 위안이 될 때가 있다. 어떤 세계든 어떤 사물이든 시각에 따라서 아주 달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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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1-17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권력은 이야기를 가진 자라는 걸 최근 <부러진 화살>을 보면서 깨닫 게 됐어요.
특정 분야를 잘하는 사람은 그 분야만 잘해요. 그런데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 그들 보다 우위에 있죠. 권력 참 무서운 건데.ㅜ
작가들이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참 순수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언니도 잡문집 읽으셨군요. 이책 의외로 읽은 맛이 쏠쏠한 것 같아요.
물론 어느 부분은 건너뛰긴 했지만.ㅋ

페크pek0501 2012-01-17 16:23   좋아요 0 | URL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작년에 사 두고 이제야 읽었어요. 그의 소설은 몇 권 읽었는데, 에세이는 처음 봤어요. 하루키는 사유가 깊은 뛰어난 작가라기 보단 매력적인 작가 같아요. 그러니까 교과서에 실릴, 역사에 남을 작가가 아니라 동시대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작가라는 거죠. 그가 매력이 있든지 아니면 어떻게 글 써야 독자들을 매료시킬지를 알든지, 둘 중 하나 같아요.

하루키도 좋지만 전 알랭드보통이 더 좋아요. <불안>은 분석력이 뛰어난 책으로 흥미롭게 읽었어요. '불안'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인간을 그만큼 통찰한다는 걸 보는 게 즐거웠어요. 아마 알랭드보통의 책들 중엔, <불안> 과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을 듯해요.

루쉰P 2012-01-17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은 글이라 이렇게 정체를 드러내고 댓글을 쓸 수 밖에 없군요. 페크님이 써 준 글은 왜 내가 소설을 읽는가에 대한 답도 되는 거 같아요. 예전에는 소설에서 답을 찾으려고 독서를 했던 것 같아요. ㅋㅋ 마치 시험 보듯이 말이에요. 근데 그게 아니라 내 시각은 편안히 내려놓고 작가의 시선을 부드럽게 즐길 수 있는 것이 독서이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요. 그와 나의 사상의 접점을 찾아보기도 하구요. ㅋㅋㅋ 제가 고전이라 위대한 작가라 할 지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저보다 몇 십배 높은 시각에서 바라보기 때문은 아닐지 그런 생각을 합니다. 하하 페크님 글 너무 좋아 좋아 ㅋ

페크pek0501 2012-01-18 13:09   좋아요 0 | URL

늘 호의적으로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런 글은 저 같은 사람들이 좋아하죠. 문학의 '문'자만 들어가도 좋은 사람들... 문학에 대해 논하는 글은 무조건 좋아하는 사람들...
그래서 한때 문학이론서를 수십 권 읽었어요. 재밌었어요.

문학의 '문' 자만 들어가도 좋은 사람들 중엔 우리 루쉰님도 포함될 듯해요.ㅋㅋ

프레이야 2012-01-17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페이퍼가 너무 좋아 한참 머물게 되어요.
작가적인 눈으로 세상 보기,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네요. 세상의 비밀을 볼 수 있는 눈, 저도 갇혀있지 않은 눈이어야겠어요.
전 김영갑 사진 작가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보고도 이와 비슷한 걸 느꼈어요.
제주 사람은 여기 뭐 찍을 게 있다고..라고 눈만 뜨면 카메라를 들고 들판을 다니는
그에게 핀잔과 염려를 줬지만 그 풍광 속 비경을 엿보고 영원히 담은 그는 그 대가로
루게릭을 얻었을까요?
위에 쓰신 박완서님이 수필도 참 좋습니다.^^

페크pek0501 2012-01-18 13:07   좋아요 0 | URL
반가운 프레이야님.
닉네임이 참 좋습니다. 프레이야, 라고 발음하는 순간, 상큼한 향기가 풍겨져 나오는 느낌이에요. (여신인가요?)

지난번 님의 좋은 글을 저도 잘 읽었답니다.

다음엔, 프레이야님의 서재에서 뵙겠습니다. ㅋㅋ

프레이야 2012-01-18 22:56   좋아요 0 | URL
호호~ 좋은 느낌을 주는 이름이라 저도 기분 좋아요.^^
그 닉은 사실 예전 것에서 바꾼 것인데 여기 알라디너 한 분이 주신
이름이에요. 북구의 여신 이름이랍니다. ^^

페크pek0501 2012-01-19 13:25   좋아요 0 | URL
여신의 이름이 맞군요. ㅋ

또 뵈요, 프레이야님... 상큼한 향기가 나는...ㅋ

oren 2012-01-18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ek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는 마치 최근에 나온 '어느 신간의 일부분'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ㅎㅎ

다소 엉뚱한 얘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한편으로는 '작가적인 눈'은 곧 '어린아이의 눈'을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결국 (다른 숱한 책에서도 지적했듯이) 시인이나 작가 혹은 예술가들은 '어린아이의 눈'을 그대로 간직하고 살아가는 반면, 작가가 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아이의 눈'을 잃어버리고 난 뒤에 (쇼펜하우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척 사나운' 세상과 마주치며, 결국 '삶의 난동'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 * *

"사람의 두뇌는 일곱 살쯤 되면 상당히 커지며, 지능도 그 무렵부터 발달하기 시작하여 외부 세계를 인식하려고 한다. 인식의 대상인 외부 세계는 매우 신선한 느낌을 준다. 모든 것이 생기발랄해 보이기 때문에 유년시절은 그대로 하나의 아름다운 서사시가 된다. 사실 모든 시와 예술의 본질은 플라톤이 말한 바와 같이 이데아(사물의 실체)를 붙잡는 일, 다시 말해서 개체를 통하여 보편적인 것을 직관하는 일이다"

"또한 유년시절의 환경과 체험이 언제나 우리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은 그 무렵에는 외부 세계가 선명하게 드러나 하나하나의 사물이 대표적으로 보이며, 직관적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유년시절에는 환경에 전적으로 몰입하여 눈앞에 나타나는 사물을 그 종류 가운데서 유익한 실재로 인식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차츰 나이를 먹으면서 인식보다는 의지의 힘에 의해 움직이므로 외부의 사물은 대부분 고뇌를 안겨 준다. 요컨대 모든 사물은 인식의 눈으로 보면 매우 선량하고 아름답지만, 의지의 눈으로 보면 무척 사나운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후자보다는 전자의 편에 속하는 것이 유년시절의 특징이다.

이 무렵의 인간은 사물의 아름다운 일면만을 알고 두려운 점을 모르며, 우리 자각에 나타나는 모든 사물에 순수한 그 사물 자체 또는 예술에 묘사된 것과 흡사하여 매우 선량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므로 온 세계가 에덴동산처럼 생각되기 때문에 누구나 한 번쯤은 으레 행운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절을 벗어나면 차츰 인식보다 의지가 생활의 중심이 되어 생활의 대상으로서 선과 미를 의욕의 대상으로 삼는다. 즉, 사물과 의지의 여러 가지 반작용이 일어나 괴로운 운명에 시달리면서 '삶의 난동' 속에 빠져 들어간다."


페크pek0501 2012-01-18 13:06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그래서 "시심은 동심"이란 말이 있나봐요. 사물을 처음 보는 눈으로 낯설게 볼 때 예술작품이 탄생한대요.

우리 아이가 어릴 때 하늘에 떠 있는 반달을 보고, 엄마 누가 저렇게 높이 올라가서 반달을 접었지?, 하더라고요. 그때 한참 종이접기 하고 놀 때인데 달마저도 누가 반으로 종이접기한 걸로 알더라고요. 그게 시심이고 동심인 것 같아요. ㅋㅋ 그런 시각은 이미 어른들은 힘들죠. 예술가들에겐 가능하겠지만...

좋은 글, 천천히 읽으며 감상했어요.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2-01-18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 언니, 항상 감탄하며 읽는 글들입니다.

적절하게 사회성에 적응하면서도,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 같아요. 지나치게 새로운 눈만 추구한다는 것 역시 위험하니까요.
그렇다고 지나치게 안주하는 것 역시... 균형이 역시 문제구나 싶어집니다.

최근 들어, 자신 내면으로만 파고들어
사회나 타인에 대한 배려나 공감, 이해를 못 하여 자신 또한 고생하는 사람들을
여럿 보고 있기에 더욱 생각이 많습니다...

페크pek0501 2012-01-18 20:3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새로운 눈만 추구해도 역시 인간은 기존의 눈으로 봐 왔던 것을 완전히 버리지 못할 것이므로, 그냥 새로운 시각의 추구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해요. 저 역시 말은 이렇게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에요.

마녀고양이님은 이 방면으로 생각을(공부를)많이 해 보신 듯해요. 균형, 공감, 이해 등 사용하시는 낱말만 봐도 알 수 있지요. ㅋㅋ


아이리시스 2012-01-18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는 것도 말하기 힘든 게 보통 사람인데 소설가나 예술가들은 창조하고 비틀기까지 하니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어요. 여러 텍스트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페크님의 페이퍼도요.

1월 시작이 어제인데 벌써 절반이 지나갔잖아요. 저도 독서에 좀 열올려야 이런 글 쓸 수 있을까요? 책 읽는 시간은 사치 같으면서 TV는 잘도 보고 앉아있어요. 이런ㅠㅠㅠㅠㅠㅠㅠㅠ

페크pek0501 2012-01-18 20:5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창조와 비틀기, 어려운 일이지요.
소설의 경우 에둘러 쓰는 일이라 저처럼 직설화법을 좋아하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직설화법을 좋아하는 사람은 칼럼을 써야 하죠.

독서? 늘 하고 계시잖아요. 영화도 꽤 챙겨 보시는 것 보고 놀랐어요. 충분히 잘하고 계십니다요... ㅋㅋㅠㅠㅠㅠㅠ

마태우스 2012-01-18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은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아서 돋보일 수밖에 없다는 걸 님의 글과 댓글들을 보면서 재확인합니다. 책으로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추천합니다. 21번째예요. ^^

페크pek0501 2012-01-19 13:24   좋아요 0 | URL
책으로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셨다고요? 호호~~~ 일단 감사합니다.

음~~ 책, 내고 싶죠. 그런데 글이 아직 멀었으니 이러고 있어요. 글을 119편을 올렸는데, 글을 그 정도로 써 본 사람이면 자신의 역량을 자신이 가장 잘 알게 되죠. 아무리 주위에서 호평을 해도 흔들리지 않아요. 저는 앞으로 더 많이 깨지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써야 해요. 갈 길 멀어요.

그래도 생각은 죽기 전에 한 권은 내겠지, 하고 있어요. 이렇게 미래에 책을 낸다고 생각하고 살면 마음이 풍성해지고 삶도 풍성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제게 힘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히히~~

신지 2012-01-21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은 절제되고 정돈된 글을 쓰시면서 좋은 생각을 정확하고 쉽게 전달하시는 것 같아요. 큰 장점인 듯 해요.

그러고보니 지난번에 인사했을 때가 명절 때(추석 때인가..)였던 것 같네요. 이번에도 집에 다녀오기 전에 들렀습니다. 명절 잘 보내시고, 새해 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랍니다. ^^^

페크pek0501 2012-01-24 00:58   좋아요 0 | URL
어머낫, 이게 누구신가요? 오랜만에 보는 닉네임, 오래만에 보는 이미지 사진이네요. 무척 반갑습니다.

답글이 늦어 미안합니다. 3일 전에 대구에 갔다가 오늘밤 늦게 돌아왔어요.

추석 때라면 으음~~ 넉달 동안 잠적하신 셈이네요. 서재활동을 중단하셨나, 했어요.ㅋ 어쨌든 컴백?하신 것 같아 반가워요.

신지님도 새해 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랍니다. ^^^ 또 뵙기를...

순오기 2012-01-27 0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읽으면 생각쓰기라는 게 어떤 건지 실감이 됩니다.
'책은 도끼다'를 제목으로 삼은 박웅현이 인용한 카프카의 글을 여기서 또 만나는군요.^^
꼴찌에게 갈채를 보낼 줄 아는 마음결을 나도 갖고 싶어요.

페크pek0501 2012-01-28 12:54   좋아요 0 | URL
아, 언제나 반가운 순오기님.

카프카의 글, 유명하죠. 저도 언젠가 다른 글에서도 인용한 적이 있는 글이에요. 책은 도끼다, 를 읽어셨군요. 저는 못 읽었어요. 평은 좋던데...

참, 출연은 어떻게 되셨나요? 꼭 글로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가서 볼게요.ㅋㅋ

순오기님에 비하면 난 너무 게이름뱅이... 이 게으름뱅이가 오늘은 새 글을 올릴 거예요. 후~후~
 

 

신문에 신간이 소개된 것을 볼 때마다 이번엔 어떤 새 책이 나왔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아마도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간에 대한 관심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책을 몇 권 살 때마다 신간을 한 권쯤은 끼어서 구입하고 싶을 것이다. 신간은 마치 새 보물 상자를 열어보는 듯 설레게 한다.

 

 

이번에 내가 눈여겨본 신간은 데얀 수딕 저, <거대건축이라는 욕망>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인간의 욕망이 만든 거대한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거대한 건축물은 거대한 권력을 나타낸다.

 

 

 

 

 

 

루이 14세, 나폴레옹, 카타리나 대제, 카이저 빌헬름 2세부터 스탈린, 무솔리니, 히틀러를 거쳐 마오쩌둥과 차우셰스쿠, 후세인을 하나로 엮는 단어는 '거대 건축물'이었다. 거대 건축물은 자신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며, 의지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징표다. 유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히틀러는 약 7만평(23만㎡)에 달하는 제2관저와 40만석 규모 경기장을 꿈꿨다. 스탈린은 왕조를 무너뜨렸지만 그 상징인 '겨울 궁전'은 그대로 뒀다. 혁명가에겐 제국의 위엄이 장식으로 필요했다. 독재자 시대가 갔어도, 비슷한 건축은 계속 나온다. 1995년 영국 베어링 증권 파산 후 경기는 바닥을 쳤고, 정권도 바뀌었다. 그러나 집권 노동당 블레어 총리는 보수당 프로젝트를 승계했다. 세계 표준시 기준점 그리니치 반도에 대형건물을 세워 '영국 죽지 않았음'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조선일보, 2011. 12. 3.)

 

 

이 글에서 핵심이 되는 낱말을 열거하면 거대 건축물, 권력, 과시 등이다. 이 세 가지의 낱말들로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겠다.

 

 

‘인간은 자신의 권력과시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 그래서 거대 건축물이 탄생한다.’

 

 

<거대건축이라는 욕망>을 읽으면 히틀러, 스탈린, 블레어 등 그들이 자신의 권력을 나타내기 위해 건축물을 이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건축물은 그 자체로 권력자의 권력을 나타냄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건축물이 크고 훌륭할수록 자신의 권력도 커 보인다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건축은 순수한 예술행위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적’ 예술행위의 영역에 있게 된다.

 

 

권력자들이 그처럼 자신의 권력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 때문이리라.

 

 

이 욕망,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주목하여 관련된 책들을 살펴보았다.

 

 

 

 

1.

이 욕망에 대해서 데일 카네기도 인정한 바 있다.

 

 

데일 카네기는 <카네기 인간관계론>에서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중요한 존재가 되려는 소망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뿌리 깊은 욕구”라고 말한 존 듀이와 “인간 본성의 가장 끈질긴 욕망은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한 윌리엄 제임스의 말을 인용하여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욕구이며, 인간이 문명 자체를 진전시켜 온 것도 바로 이러한 욕구 때문이라고 하였다.

 

 

 

 

 

 

 

2.

이에 대해 애덤 스미스도 통찰했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우리가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은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허영 때문이라고 밝혀 놓았다.

 

 

“인류 사회의 각계각층의 사람들 모두에게서 나타나는 경쟁심(競爭心)은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가? 그리고 소위 자신의 지위의 개선이라고 하는 인생의 거대한 목적을 추구하는 것은 어떤 이익이 있어서인가? 남들로부터 관찰되고 주의와 주목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그들로부터 동감(同感)과 호의(好意)와 시인(是認)을 받는다는 것이 바로 그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안락(安樂)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허영(虛榮)이다. 그러나 허영이란 항상 자신이 주위로부터 주목을 받고 시인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신념(信念)에 기초한다.” - <도덕감정론>, 92쪽.

 

 

 

 

3.

이처럼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으로 인해 남들의 이목을 중요시하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들의 생활에선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버트런드 러셀은 <런던통신 1931-1935>에서 ‘우리가 가구를 사면서 생각하는 것들’이란 제목으로 쓴 글에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 보였다. 다수의 사람들이 가구를 구입할 때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고르기보다 이웃들의 수준에 뒤처지지 않는 것으로 고름으로써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인정받으려 애쓴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주부는 커튼과 양탄자, 식탁과 의자, 만찬용 식기와 커피잔 따위에서 자기표현을 추구한다. 어떤 사람들은 가구를 갖추는 과정을 은밀하고 개인적인 작업으로 생각한다. 개성적인 아름다움, 특히 창조자 특유의 기질에 어울리는 아름다움을 지닌 예술 작품을 수집하는 행위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보다 수줍고 소심한 자아를 가진 이들-현대 세계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한다-도 있다. 그들의 가장 큰 염원은 남들이 자신을 이웃들과 정확히 똑같게 봐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가구에서도 자기만의 취향을 표현하기보다는 정확성을 추구한다.” - <런던통신 1931-1935>, 147쪽.

 

 

남들이 자신을 이웃들과 정확히 똑같게 봐주는 것만이 중요하므로, 자신의 취향대로 가구를 구입하지 않고 그저 이웃을 의식해서 가구를 고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을 그는 이렇게 비판한다.

 

 

“이웃을 두려하는 것은 우리의 가장 고질적인 감정 가운데 하나로 모든 성취의 적이기도 하다. 거실을 가구로 꾸미는 일처럼 비교적 단순한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퉁명스러운 검열관 같은 태도로 이 감정을 서로에게 강요한다. 이러한 태도 탓에 우리는 서로를 우둔하게 만들 뿐 아니라, 활기 넘치는 개성이 자유롭게 표현되는 광경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스스로 박탈한다. 따라서 꼴사나운 가구의 근원은 전쟁이나 종교 박해 등 인간 삶에서 주요한 모든 해악의 근원과 동일하다.” - <런던통신 1931-1935>, 148쪽~149쪽.

 

 

그는 톨스토이의 작품을 예로 들어, 파티를 치르는 일에서도 남들의 눈을 의식하는 모습을 포착하여 비판한다. 파티를 즐기지를 못하고 그저 파티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하는 것에 주목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피로연을 여는 신혼부부 한 쌍에 대해 어디에선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파티가 끝나자 두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정확하게 똑같은 파티를 치렀다는 사실을 서로 축하한다.” - <런던통신 1931-1935>, 148쪽.

 

 

신혼부부인 그들은 파티를 즐기려는 마음을 갖기보다 남들과 똑같은 파티를 치러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파티에 임했을 뿐이다.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즉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은 남들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자신의 만족감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남들에게서 찾으려 한다.

 

 

 

 

4.

그렇다면 인간은 남들의 눈만을 의식한 인생에 대해 끝까지 만족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알랭 드 보통은 <불안>에서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예로 들어 ‘만족할 수 없는 경우’를 소개하고 있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은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 이전에 가졌던 생각들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를 의심하게 된다.

 

 

“이반 일리치는 지위에 목을 매단 사람이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커다란 아파트에 살며, 이 아파트는 이 시대 유행에 따라 장식이 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맥이 빠진 저녁 잔치가 자주 벌어지지만, 따뜻하거나 진지한 말이 오가는 법은 없다. 이반 일리치는 고등법원 판사라는 직위를 즐기지만, 그것은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존중을 받기 때문이다. (…) 그러다가 이반은 마흔다섯 살에 옆구리에 통증을 느끼는데, 이것이 점차 몸 전체로 퍼져나간다. 의사들도 이유를 알지 못한다. (…) 그는 너무 피곤해 일을 하지 못한다. 장에는 불이 붙은 느낌이다. 식욕도 떨어지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휘스트 놀이를 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판사 자신이나 주위의 모든 사람도 그가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 그의 부인은 그의 죽음 자체가 안타까운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받을 연금 규모가 줄어들까 봐 걱정을 한다. 사교계의 명사인 딸은 아버지의 장례식 때문에 자신의 결혼 계획이 엉망이 될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이반은 이제 살날이 몇 주 안 남은 상태에서 자신이 지상에서 얻은 시간을 낭비했고, 겉으로는 품위가 있지만 속으로는 황폐한 삶을 살았음을 인식한다. 그는 자신의 성장, 교육, 일을 돌이켜 보며, 다른 사람들 눈에 중요해 보이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그 모든 일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불안>, 291쪽~293쪽.

 

 

주인공은 병에 걸려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함으로써 “세속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을”, “휘스트와 저녁 파티보다 진실과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는 깨달음을 얻는다.

 

 

 

* 맺는말

 

 

1. 욕망에 지배당하지 않고 욕망을 지배하기

 

 

여러 책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하였다.

 

 

인간은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 때문에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살게 되고, 그래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남들로부터 보이기 위한 삶을 살게 된다. 가구를 구입할 때조차 자신의 취향에 따라 맘에 드는 가구를 고르지 못하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고른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무시하고 사회(또는 이웃)가 추구하는 가치에만 집착하며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과연 옳은 삶인지 자기 자신을 성찰할 필요가 있겠다. 이것이 첫 번째 생각이다.

 

 

하지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산다면 삶의 재미도 없고 삶의 발전도 없다. 만약 남들로부터 인정받는 즐거움이 없다면, 우리가 머리를 파마하고 새 옷을 구입하고 다이어트를 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장님이라면 이런 노력을 하지 않을 테니까.) 또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오른 사람이 되기 위해 또는 유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을 우러러보지 않고 오히려 비난한다면 이런 노력을 하지 않을 테니까.) 이것이 두 번째 생각이다.

 

 

어떤 욕망이든 중요한 건 ‘욕망에 지배당하느냐, 아니면 욕망을 지배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욕망이 지나치게 크면 욕망에 지배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 욕망을 위해 못할 일이 없게 되어 삶의 균형이 깨진다. 예뻐지고 싶은 욕망에 지배당해서 성형수술에 중독된 사람들이 생겨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욕망에 지배당해서 비리나 범죄를 마구 저지르는 사람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2. 욕망이 가린 일상적인 아름다운 풍경들을 놓치지 않기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한 남자가 있었다. 그에겐 아내와 어린 딸이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오로지 회사 일에만 집중하며 살았다. 이미 그는 그 회사에서 높은 자리에 있었으나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 회사의 대표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으로만 살았다. 그 욕망을 위해 비리를 저지르기도 하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자신이 암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인생의 새로운 행복에 눈뜨게 된다. 딸아이와 함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시간도 소중하고, 가족이 함께 떠난 낚시여행을 하는 시간도 소중했다. 그러면서 왜 진작 이런 행복들을 알지 못했을까, 하고 후회를 한다. 자신의 욕망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며 살다가, 뒤늦게 인생의 행복은 이런 평범한 작은 일들에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드라마를 보고 생각했다. 혹시 우리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기차를 타고 빨리 달리느라 기차가 지나친 일상적인 아름다운 풍경들을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닐까, 하고.

 

 

(2011년을 보내며 자신의 욕망을,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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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12-30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이 2011년에 마지막으로 올리는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과 내일만 지나면 2012년이 됩니다.

그동안 제 서재에 댓글을 남겨 주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댓글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방문해 주신 분들에게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분들 덕분에 힘이 나서 글을 써 왔던 것 같습니다.

부족한 글이나마 지금까지 총 117편의 글을 올렸습니다. 내년에 보다 나은 글을 올리게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이곳에 들어오시는 분들 모두,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럼 2012년에 뵐~게~요~

(페크 올림.)

oren 2011-12-31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대건축물'에 관한 글을 보니 문득 '피라미드'를 비롯한 고대이집트의 건축물들이 생각납니다. 2008년 2월에 이집트 일주여행을 갔을 때 '테베'에 가 본 적이 있었는데, 거기엔 고대 이집트 18왕조의 아멘호테프 2세때부터 건설되기 시작해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이르기까지 무려 1,500년 동안 지어졌다고 하는 '카르낙 대신전'이 있더군요. 거기엔 약 200년 전 쯤 나폴레옹의 군대가 이 곳에 진주했을 때 카르낙 대신전의 정문 쪽의 거대한 석축의 신전의 '벽 높이'에 감동받아 여기에 '맞장'을 뜨기 위해 자신의 군대병력을 동원시켜 흙벽돌을 마주 쌓아 올렸던 흔적도 그대로 남아 있어서 더더욱 인상적이었답니다. 그런데 헨리 데이빗 소루우는 이 멋진 '건축물'에 대해 '천박한 장관'일 뿐이라고 일침을 놓았더군요.
* * *
여러 민족들은 그들이 다듬어서 남긴 석재의 양으로 자신들에 대한 추억을 영구화하려는 광적인 야망에 사로잡혀 있다. 차라리 그만한 노력을 자신의 품행을 가다듬는 데 바쳤다면 어땠을까? 한 조각의 양식良識은 달까지 솟아오른 기념비보다 더 기릴 만한 것이 아닐까?

제발, 돌들은 제자리에 그냥 놓아두라. 테베의 장관은 천박한 장관일 뿐이다. 인생의 참다운 목적에서 멀어져버린 100개의 대문을 가진 테베의 신전보다는 어느 정직한 사람의 밭을 둘러싸고 있는 자그마한 돌담이 더 의미가 있다. 야만스럽고 이교도적인 종교와 문명은 화려한 신전들을 짓는다. 그러나 기독교, 참다운 기독교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한 민족이 다듬는 돌은 대부분 그들의 무덤으로 간다. 그야말로 그들은 스스로를 생매장하는 것이다.

피라미드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어떤 야심한만한 멍청이의 무덤을 만드느라고 자신들의 전 인생을 허비하도록 강요되었다는 사실 말고는 별로 놀라울 것이 없다. 차라리 그 작자를 나일 강물에 처박아 죽인 후, 그 시체를 개들에게 주어 뜯어 먹게 하는 것이 더 현명하고 당당했으리라.

- 헨리 데이빗 소로우,『월든』中에서

oren 2011-12-31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저도 오래전에 읽어봤는데 pek님께서 이 글의 내용에 어울리도록 정말 절묘하게 인용해 주셨군요.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갈망은 참으로 끈질긴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허망한 것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 * *
남의 견해, 즉 다른 사람들의 생각 속에 나타나는 우리의 존재는 그저 생각해 보아도 그것이 우리의 행복에 본질적인 것이 못 됨을 곧 알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타고난 천성이 지닌 약점으로 인해서 일반적으로 그것을 너무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므로 누구나 자기가 남에게 호감을 사고 있다는 낌새를 알아차리거나, 자기의 허영심을 자극해 주면 마음속으로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 마치 고양이가 자기 등을 쓰다듬어 주면 목청을 꾸르륵거리는 것처럼, 칭찬을 들은 사람은(그의 헛된 자부심의 범위 내에 속하기만 하면, 그 칭찬이 분명히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도) 으레 달콤한 기쁨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참된 불행이나 행복, 다시 말해 지금까지 줄곧 이야기해 온 그 두 원천이 실은 보잘것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내는 갈채에 위로를 얻는다. 이와 반대로, 어떤 의미에서나 그 정도를 불문하고 조금이라도 자기 허영심이 손상되거나 모욕받거나, 또는 무시당하거나 멸시를 받으면, 영락없이 격분하거나 때로는 커다란 비애를 느끼게 되는 것을 보면 놀라울 정도이다.

- 쇼펜하우어, 『삶의 예지』中에서

페크pek0501 2012-01-01 12:42   좋아요 0 | URL
이렇게 긴 댓글을 써 주시다니, 그것도 두 개씩이나, 이러면 어떡합니까?
그럼 제가 무지 감사해서 황송해지잖아요. 호호...

소로우의 인용은 저도 처음엔 넣었다가 뺐답니다. 이 글이 길기도 하고, 또 그동안 소로우를 몇 번 인용한 적도 있고 해서요. 그런데 오렌님이 쓴 그 글은 제가 찾은 인용문보다 훨씬 좋은데요.ㅋ
늘 느끼는 거지만 책을 읽었다고 해서 그 내용이 전부 머릿속에 입력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책은 반복해서 세 번쯤은 읽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이반 일리치의 죽음>도 오래 전에 읽어 어떤 내용인지 생각나지 않았는데, <불안>을 읽고, 아, 이런 내용이었구나, 했을 정도예요. ㅋㅋ

쇼펜하우어도 제가 단골로 인용하는 인물이에요. 전 그의 책이 재밌어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도 흥미롭지만 인생론 에세이도 흥미로워요.

댓글로 좋은 글을 감상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바라시는 일 많이 성취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stella.K 2011-12-31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저도 드라마를 보고 잤는데 등장인물이 사랑하는 아들에게 그런 말을 하고 죽는데,
행복해지기 위해 살라고, 그렇다고 바쁘게 열심히 사는 것이 행복은 아니라고,
사람은 가만 있으면 불행해지니 행복하기를 결심하고 살라고. 대략 뭐 이런 말을 하고 죽더군요. 그런데 그 말이 왤케 다가오던지. 겁 많고, 게으른 저에게 정말 와닿는 말이었어요.
그래서 내년 한해는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사는 것인지 생각 좀 하고 살려구요.ㅋ
페크님도 내년 한해 행복하게 사십시오. 꼭이요.^^

페크pek0501 2012-01-01 12:44   좋아요 0 | URL
페크님도 내년 한해 행복하게 사십시오. 꼭이요.^^ - 요것 스텔라님에게 반사합니다. ㅋㅋ

요렇게 감동적인 멘트를 날리시다니... 내 가슴 속엔 감동의 물결이 넘실댑니다. 스텔라님, 행복하게 글 쓰는 시간을 많이 가지시길, 그리고 바라는대로 이루어지길 빕니다. ㅋ

마녀고양이 2011-12-31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저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보다 '왜 인정받고 싶어할까, 어떻게 해소할까'에
더 관심이 있는거 같아요. 아들러는 인간 성장의 동력은 '열등감 해소' 및 '우월감 추구'라고 했는데 일견 납득이 가는 부분이예요. 언니가 말씀하신 발전과 비슷한거죠.

페크 언니를 안지 얼마 안 되었지만, 정말 푸근한 언니 한분 모셔서 기쁘고
새해에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 가득하셔요.

페크pek0501 2012-01-01 12:47   좋아요 0 | URL
아, 푸근한 언니라, 그것 참 맘에 드는데요. 한번도 푸근하다 소릴 못 들어봤어요. 그건 좀 체격이 있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제 몸은 좀 홀쭉한 편이라서요.
그러나... 마녀고양이님이 제 콘셉트를 정해 주신 걸로 알고 새해엔 푸근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고맙습니다.

새해 바쁘실 턴데 시간관리 잘 하셔서 좋은 성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잘잘라 2011-12-31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보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면서 한편으로는 누구와도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며 청개구리처럼 살아온 저를 되돌아보게 하는 글입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누구와도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는 생각이야말로 '나는 너희와 다르다. 천상천하유아도존!'이라고 외치는 것과 같은 것이었는데 말이죠.

새해에도 페크님의 진심 담은 좋은 글, 기대합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페크pek0501 2012-01-01 12:48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 오랜만이군요. 반갑습니다. 호호~~
님도 좋은 글 많이 쓰시고요, 소원성취하는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새해엔 자주 뵈요. 고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12-31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세상에는 늘 남을 의식하고 비교하면서도 남을 배려하지는 않는 인간들이 있습니다.남에게 폐를 끼치고도 눈 하나 깜짝 않는 그런 인간들! 어떻게 혼내줄까요?

페크pek0501 2012-01-01 12:53   좋아요 0 | URL
혼내줄 필요가 없답니다. 그런 싸가지 없는 마음을 가진 자는 그것 자체가 벌이니까요. 그런 심성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답니다. 일이 잘 풀릴 리도 없고요. 그게 벌이지 않겠습니까. 남으로부터 존중 받지 못하고 욕을 먹으며 사는 것, 그것도 벌입니다.

그냥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보고,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고 나쁜 전범으로 생각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새해에도 자주 방문해 주세요. 늘 고마워한답니다. ㅋㅋ
상투적이지만,... ㅋㅋㅋ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mira 2011-12-31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1년 마지막 날 우연히 들어왔는데 너무 좋은 글이네요. 저자신의 욕망도 어떤 기차, 어떤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 자주 놀러 올께요

페크pek0501 2012-01-01 12:55   좋아요 0 | URL
아, 첫 손님, 반갑습니다. 자주 놀러 오신다니 제가 힘이 나네요. 참 좋은 말입니다.ㅋㅋ

저도 나중에 시간 내서 님의 서재에 들를게요.
또 뵙기를...

2012-01-01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1 1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2-01-02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인사가 늦었습니다~ 올해도 건강하고 책과 함께 행복하시기를...

우리 독서회원이 올해 읽고 싶은 책 중에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꼽았는데 토론도서로 선정할까요?^^

페크pek0501 2012-01-02 16:57   좋아요 0 | URL
어머머, 까르르~~ 조금 전에 순오기님의 서재에 들렀는데...
이걸 텔레파시라고 하나요?

챙기실 분들이 많으실 텐데, 저한테까지 마음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카네기 인간관계론, 저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책으로 구입했는데, 글쎄요. 님이 직접 목차를 보고 토론도서로 선정해야 할 것 같네요.
상대방을 설득하는 12가지 방법, 리더가 되는 9가지 방법, 인간관계를 잘 맺는 6가지 방법 등이 있답니다. ㅋㅋ저는 재밌던데...

복 많은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

숲노래 2012-01-02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들 눈치나 인정하고 동떨어진 채 살아간다면
나 스스로 나한테 가장 즐거운 길을 걸을 테니까
이때에는 나한테 가장 인정받을 삶을 사랑하리라 믿어요~

페크pek0501 2012-01-03 14:21   좋아요 0 | URL
반가운 된장님이 오셨군요.

자기만족이 제일 중요하죠.
자신한테 인정받는 삶을 저도 살고 싶어요.

복된 새해가 되시길...

카스피 2012-01-02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ek님, 2012년 흑룡의 해,좋은일만 계시길 바라며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그리고 신년 새해 용꿈 꾸시라고 용 한마리 선물로 보냅니다
\▲▲/
( ^^ )
<(..)>
<(▶◀)>
<( = )>
<( = )>

━┛┗━

페크pek0501 2012-01-03 14:23   좋아요 0 | URL
반가운 카스피님,

이게 용의 그림이군요. 멋집니다. 그리고 이 용이 제게 큰 복을 줄 것만 같군요. 이 선물, 고맙습니다.

복된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2012-01-04 2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5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beasis 2015-10-10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감동받고 갑니다..정말 대단하네요ㅎ
후배들을 위해 짧은 글 쓰고 있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종종와서 많이 배우겠습니다 선생님. ^^

페크pek0501 2015-10-16 17:4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답글이 늦이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글도 썼군요. 오랜만에 훑어 보았습니다.

선생님이라고 말씀하시니 웃음이 나네요. 알라딘에선 잘 쓰지 않는 말인 것 같아서요. 어쨌든 님의 댓글을 기분 좋게 접수합니다. 고맙습니다.
 

 


만물은 일정한 법칙을 따른다. 물론 그 법칙을 일부러 만든 것은 아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법칙이다. 알랭 드 보통 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소설을 읽으면 두 남녀 사이에서도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은 남자(화자)가 여자(클로이)를 만나 사랑하고 이별하기까지의 연애 이야기이다. 이 소설을 통해 사랑의 법칙을 정리해 보았다.


알랭 드 보통 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통해 본 사랑의 법칙 14가지


첫 번째 법칙 :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질 땐 상대에 대한 미화가 시작된다.


나는 그녀에게서 내가 평생 서툴게 찾아다녔던 바로 그 여자, 나의 꿈에서 예고된 자질을 갖춘 존재를 확인했다. 그녀의 웃음과 눈매, 유머 감각과 책에 대한 취향, 불안과 지성은 내 이상과 완벽하게 들어맞았다.(12쪽)


두 번째 법칙 : 두 사람의 공통점인 우연적 요소도 필연적 운명으로 해석한다.


평소에 미신적인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클로이와 나는 우리가 이미 직관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 즉 우리가 서로에게로 운명지어졌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무수한 사실들 - 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 - 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둘 다 짝수 해의 같은 달 자정 무렵(그녀는 오후 11시 45분, 나는 오전 1시 15분)에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둘 다 클라리넷을 분 적이 있으며, 둘 다 학교 다닐 때 <한 여름밤의 꿈> 공연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그녀는 헬레나 역이었고, 나는 테세우스의 시종 역이었다). 우리 둘 다 왼쪽 발가락에 커다란 점이 둘 있었고, 똑같은 뒤쪽 어금니에 충치가 있었다. (…) 심지어 우리의 책꽂이에는 똑같은 <안나 카레니나>(옛 옥스퍼드 판)가 있었다.(13쪽)


세 번째 법칙 : 연인의 단점에서도 사랑을 느낀다.


그녀가 문장을 끝맺는 법이 없다는 것이, 약간 불안해하는 것이, 귀걸이의 취향이 아주 세련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너무나 어색해 보였지만, 그래도 그녀가 사랑스럽다는 결론은 피할 수가 없었다.(24쪽)


네 번째 법칙 : 연인에 대한 집중력이 강해진다.


클로이를 소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생각이 며칠 동안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녔다.(30쪽)


다섯 번째 법칙 : 연인의 전화를 기다릴 땐 고문을 당하는 기분이 된다.


전화는 전화를 하지 않는 연인의 악마 같은 손에 들어가면 고문 도구가 된다.(33쪽)


여섯 번째 법칙 : 연인이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할 때 사랑에 더 빠지게 된다.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곧바로 우리에게 입맞춤을 허락하는 사람(우리는 곧 배은망덕해진다)이나 절대 우리에게 입맞춤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우리는 곧 그 사람을 잊어버린다)이 아니라, 수줍어하며 그 양극단 사이로 우리를 이끄는 사람이므로.(40쪽)


일곱 번째 법칙 : 연인의 눈을 통하여 자신을 보게 된다.


구애하는 위치 때문에 나는 내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묻지 않고 그녀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묻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 내 타이가 어떤가? 하고 묻지 않고 그녀가 내 타이를 어떻게 볼까? 하고 묻게 되었다.(49쪽)


여덟 번째 법칙 : 사랑이 불확실하거나 안전하지 못할 때 사랑의 욕망이 더 커진다.


몽테뉴는 말했다. “사랑에는 우리를 피해서 달아나는 것을 미친 듯이 쫓아가는 욕망밖에 없다.” 아나톨 프랑스 역시 “우리가 이미 가진 것을 사랑하는 것은 관례적이지 않다”는 말로 같은 입장을 보여주었다. 스탕달은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기초로 해서만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드니 드 루주몽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가장 넘기 힘든 장애를 가장 좋아한다, 그것이 정열을 강하게 불태우는 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 는 욕망을 정의상 얻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으로 한정시켰다.(92쪽)


아홉 번째 법칙 : 연인의 시각은 다른 사람의 시각과 다르다.


나는 그녀가 남의 편의를 잘 봐주고 관대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집에서 그녀는 약간 오만하고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었다. (…) 나는 클로이가 돈과 직업에 대해서 분별력이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딸이 “남자 친구들을 못살게 굴어서 자기한테 복종시킨다”고 말했다.(104쪽~105쪽)


열 번째 법칙 : 연인의 눈에만 보이는 매력이 있다.


두 눈이나 모양이 제대로 갖추어진 입에서 매력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슈퍼마켓 계산대 위에서 움직이는 여자의 손에서 매력을 찾아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클로이의 독특한 버릇들은 더 큰 완전성을 가리키는 기호들로, 그것은 연인만이 읽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빙산의 일각처럼 그 밑에 놓인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것의 진정한 가치, 호기심이 덜한 사람이나 사랑이 덜한 사람에게는 당연히 의미 없어 보일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서 바로 연인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149쪽~150쪽)


열한 번째 법칙 : 연인이 낯선 사람으로 보일 때 강렬한 욕망이 솟는다.


어느 주말, 길을 가다가 차가 고장이 나서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15분쯤 뒤 카센터의 밴이 도착하자 클로이가 나서서 경찰관과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낯선 사람(신분증이라는 것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지켜보는데, 내가 아는 여자가 갑자기 낯설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익숙함이라는 갑갑한 담요 밖으로 나와 그녀의 얼굴을 보았고,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나를 위해서 존재하게 된 여자가 아니라 생전 처음 보는 여자처럼 그녀를 보았다. (…) 한번도 손을 대본 적이 없는 몸을 가진 사람에게 느끼는 듯한 강렬한 욕망이 솟아올랐다.(201쪽~202쪽)


열두 번째 법칙 : 사랑하면 괜스레 불안해진다.


클로이를 사랑하면서 생기는 불안은 부분적으로는 내 행복의 원인이 쉽게 사라질 수 있는 상황에서 오는 불안이었다. 클로이는 갑자기 나에게 흥미를 잃을 수도 있었고, 죽을 수도 있었고,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사랑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관계를 일찌감치 끝내고 싶은 유혹이 생겼다.(224쪽)


열세 번째 법칙 : 연인으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으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나는 (클로이와의 이별에 대한) 내 분노를 전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 자신의 죽음으로 그 분노를 상징하려고 했다. 나는 클로이에게 상처를 주느니 차라리 나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쪽을 택했다. 나 자신을 죽임으로써 그녀가 나한테 한 일이 무엇인지 내 몸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 나는 단지 클로이에게, 비유적으로 말해서, 그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었다.(284쪽)


열네 번째 법칙 :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기로 결심하고도 또 빠지게 되는 게 사랑이다.


대책이 서지 않는 사랑의 고통 때문에 비관적이 된 나는 사랑으로부터 완전히 떠나버리기로 결심했다. 낭만적 실증주의가 도움이 될 수 없다면, 유일하게 유효한 지혜는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금욕주의적 충고였다. 나는 이제 상징적인 수도원으로 물러나, 간소한 서재에 처박혀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소박하게 살아갈 생각이었다. (…) 그러다가 어느 날 디너 파티에서 레이철이라는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사무실 생활을 이야기해주었는데, 나는 그녀의 눈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순간 나는 금욕주의적 철학을 내팽개치고 클로이에게 저질렀던 실수를 모조리 되풀이하는 일이 얼마나 쉬운지를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311쪽~312쪽)



* 맺는말

우리는 연애를 모르면서 연애를 한다. 연애를 하면서 연애에 대해 하나씩 알아 간다. 우리는 사랑을 모르면서 사랑을 한다. 사랑을 하면서 사랑에 대해 하나씩 알아 간다. 이처럼 우리는 인생을 모르면서 인생을 산다. 삶엔 연습이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연습 없이 바로 실전의 현장에 들어가서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인해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낳기도 하니까. 사랑에 실패한 뒤에 시간을 되돌려 다시 연애할 수만 있다면, 다시 사랑할 수만 있다면 잘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땐 으레 후회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같은 기회는 다시 오지 않으므로. 같은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없으므로.


어떤 사람도 그처럼 미소를 띠며 자신을 바라보지 않을 것이며, 어떤 사람도 자신의 말에 그처럼 주목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사람도 뜨거운 햇빛 속에서 그처럼 인상 쓰지 않을 것이며, 어떤 사람도 멀리서 알 정도로 그처럼 활기차게 걷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은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특별한 연인이므로.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각각의 연애는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소중한 것이고,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건이다. 그런 점에서 연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유익한 책이다. 하지만 연애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이 책의 가치는 덜하지 않다. 그 이유는 인간의 심리를 통찰한 알랭 드 보통의 글을 감상한다는 것은 즐겁기 때문이다.


내게 이 책은 단순히 연애 소설로 읽히기보다 인간의 심리를 명쾌하게 해석한 심리학 서적으로 읽혔다.  

 


  

 

 

 

 

 

 

 

               절판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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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1-12-08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에 연습이 없기 때문에 사람은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어도 배울 것을 남긴 채 살아갑니다.어쩌면 배울 것이 남아있다고 느끼는 것이 성숙한 인격의 증거인지도 모르죠.

페크pek0501 2011-12-09 13:39   좋아요 0 | URL
인생에 연습이 없어서 요즘도 무엇이 옳은지 몰라 헤매며 산답니다. ㅋㅋ 예를 들면 아이의 교육문제 등... 정답을 모르겠어요.

아이리시스 2011-12-08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꽤 최근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으려고 시도했다가 처음만큼 신선하지 않아서 안 읽힌다는 것과 사랑을 아무리 부르짖어도, 사랑을 아무리 정의내리고 싶어도, 결국 사랑은 한 번에 한사람과 차근차근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관음증도 아니고 타인의 사랑은 그냥 타인의 사랑이고, 지나가는 남자가 아무리 멋져도 결국 내 남자 아니면 타인이라는 것도요.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ㅋㅋㅋ 이 페이퍼, 페크님이 정리하신 사랑의 법칙 너무 명쾌하고 재밌어요.^^

페크pek0501 2011-12-09 13:40   좋아요 0 | URL
님도 알랭 드 보통을 좋아하시죠? 그가 이 이 페이퍼를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요?

"내가 쓴 소설에 그런 법칙들이 숨어 있었나?" 할지 모르겠어요. 제 맘대로 써 본 거예요.ㅋㅋ

비로그인 2011-12-10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을 모르면서 사랑을 한다, 는 말이 와닿네요. 마치 삶이라는 것을 모르면서 계속 살아가는 것처럼... 똑같은 원리일까요? 페크님 서재는 맑은 봄날 오후 같군요. 그런데 오늘은 눈발도 날리고 추워서 공원 갔다가 얼어죽는 줄 알았어요 ㅠㅠ 그리고 몸을 녹이면서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 보내고 있네요 ㅎㅎ
종종 들를게요! :)

페크pek0501 2011-12-11 13:43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님의 닉네임이 멋지군요.ㅋㅋ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시 구절이 생각나네요. (똑같은 원리? 그렇죠 삶 속에 사랑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니까요.ㅋ)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타서 컴퓨터를 켜고 있는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입니다.

제 서재의 배경사진은 하늘과 나무들과 풍차가 아주 맘에 들어 싫증이 나질 않네요. 하늘에 써 있는 글을 읽다가 내려오면 지상이 되는 듯한 느낌이 저는 좋아요.ㅋㅋ 날씨는 춥지만 마음은 봄날인 사진인 거죠.

저야말로 님의 서재에 종종 들를게요! :) :)

마녀고양이 2011-12-12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의 3요소라는 것이 있는데,
친밀감, 열정, 헌신(결정)이라고 하더라구요. 우리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보통 열정에 얽힌 정열적 사랑을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10단계를 넘어서면 다시 한번 고비를 넘기면서 친밀감있는 사랑으로 가는게 아닐까 그렇게 가야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요즘 하게 되었어요, 언니가 더 잘 아시겠지만 결혼 10년이 넘어서니 그렇다구요. 그리고... 비단 사랑 뿐 아니라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져요. 적어도 10년은 한분야에서 일해야, 적어도 맛은 보았다고 적응을 조금 했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닐까 하구요.

그래서 점점 짧아지는 사랑의 기간이 아쉬워요,
그 고비를 넘으면 또다른 세계도 있는데 싶어서요. 열정은 적지만 편안하고 친밀한 세계가.

페크pek0501 2011-12-12 15:17   좋아요 0 | URL
님과 저의 텔레파시인가요. 우리가 동시에 각각의 서재에 댓글을 달았던 것 같네요. 크하하... 그래서 더 반갑다는...

남녀간의 열정은 기간이 짧아요. 그런데 그건 다행이라 여겨져요. 연인을 만날 때 가슴이 두근두근거리죠. 그런데 그게 결혼생활에도 이어져 남편이 초인종을 누를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면 어떻겠습니까. 삶이 고단하죠. 그건 대단한 에너지 소모거든요. 그리고 매일 둘 만의 시간만을 갖고 싶어서 직장일에도 집중력이 떨어지고, 육아문제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그러면 큰일이잖아요. 그래서 이땐 열정보단 친밀감이 좋은 것 같아요.

흔히 결혼생활을 의리로 산다는 말을 많이 하던데, 그 말이 이젠 좋아져요. 그건 한쪽이 아프더라도 결코 버리지 않고 돌봐주겠다는 그런 의미로 해석할 수 있거든요. 친밀감 그리고 우정에 가까운 애정이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 `은퇴 남편 증후군`이라는 게 생겼잖아요. 나이 들면 남편들은 아내 곁에 있고 싶고, 아내들은 남편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싶고 그렇대요. 그래서 황혼이혼도 많대요. 아직 거기까진 안 가 봐서 모르겠지만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아내가 남편이 귀찮아서 문제가 된다면, 서로 대화로 타협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중요한 건 남편들이 아내가 귀찮게 느끼지 않도록 자신을 개선해 나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2011-12-13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4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굿바이 2011-12-14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번째 법칙, 매우 공감합니다^^
사랑할 때 보이는 집중력을 다른 일에 활용하면 정말 훌륭한(?)사람이 되었을 것을 싶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페크pek0501 2011-12-14 15:37   좋아요 0 | URL
굿바이님, 반갑습니다. 님의 닉네임을 보니 저는 굿모닝이라는 닉네임 하고 싶어요.ㅋㅋ

집중력, 멋지죠. 집중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갖게 되는, 상대에 대한 집중력 멋지잖아요.

저도 지금 님처럼 글을 쭉 보고 하나 선택했어요. 저는 열 번째 법칙 : 연인의 눈에만 보이는 매력이 있다 - 가 맘에 들어요. 그래야 짚신도 짝이 있을 거라는 즐거운 추측으로...

댓글에 감사 드립니다.
 


무더웠던 지난 여름날,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침대에 깔아 놓은 전기장판을 켜고 그 따스함에 앉아 책을 읽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고. 그 옆엔 한 잔의 커피가 뜨거운 김을 모락모락 내뿜으며 커피 향을 풍길 것이고, 또 그 옆엔 과일 담은 접시가 있을 것이다. 그날이 왔다. 내가 기다리던 겨울이다.


드디어 전기장판의 따스함이 좋아지는 계절 속에 있다. 커피를 갖다 놓고 과일을 갖다 놓고 침대에 앉아 넷북으로 이 글을 쓴다. 역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에 좋은 계절은 여름보단 겨울이다.



1. 최효찬

바쁘게 살다 보면 책 볼 시간이 없이 지나가는 하루가 많다. 특히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직장인들이라면 더욱, 독서를 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내서 매일 책을 읽는다면 그 합한 시간은 결코 적지 않다. 예를 들면 매일 30분씩 1년 동안 꾸준히 독서한다면 총 182.5시간의 독서를 하는 것이 되고, 2년 동안 꾸준히 독서한다면 총 365시간의 독서를 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하루 30분의 독서를 권하는 책이 있다.

 


최효찬 저, <잠자기 전 30분 독서>는 “직장인을 위한 독서안내서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서도 효율적으로 독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잠자기 전 30분'을 권한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일 뿐 아니라 내일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독서를 좋은 습관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 아시아 최고 갑부인 홍콩 청쿵그룹의 리카싱 회장도 무려 70년 동안 잠자기 전 30분 독서를 실천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저자인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은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천방법까지 제시한다. 하루 30분, 1주일에 6권씩 한 달간 읽을 책 24권을 뽑아 제공한다. 1장에서는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등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기경영' 관련 책을 소개한다. 2장에서는 가족경영, 3장에서는 조직경영과 관련된 책을 모았다. 4장에서는 인생의 지혜를 알려주는 인간경영 관련 책을 알려준다. 리딩 포인트를 제시해 따분하고 어려운 책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한국경제, 2011. 10. 27.)


잠자기 전 30분의 독서도 좋겠지만 다른 방법도 있다. 내가 한동안 해 본 것으로,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하는 독서도 괜찮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수를 하고 바로 책을 펴고 30분간 책을 읽고 나서 그 다음에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매일 30분씩 일찍 잔다면 수면시간은 줄어들지 않는다. 요즘은 다른 방법으로 독서를 한다.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비교적 한가롭게 지낼 만큼 시간이 많은데, 그런 날에 책에 집중해서 왕창 읽는 것이다.


이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1장 자기경영 …… 내면 들여다보기

1day 인생은 ‘산’이 아니라 ‘사막’이다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스티브 도나휴

2day 인생의 성공은 마시멜로 먹기에 달려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 스캇 펙

3day 한 번뿐인 삶, 진짜 삶을 추구하라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존 그리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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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day 말재주가 없다고 낙담하지 마라 -『논어』, 공자


이처럼 하루하루 읽어야 할 책들을 제시하고, 이것들을 읽는 효과적인 독서방법도 알려 준다.


저자는 소설을 읽는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소설은 때로 현실에서 보여주는 것보다 더 교훈적인 지침들을 제공하기도 한다. 소설을 읽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리샴의 소설을 읽으면서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최효찬 저, <잠자기 전 30분 독서>에서.




나의 경우엔 그냥 소설이 좋아서 읽으며, ‘교훈적인 지침들’을 얻는 것은 그냥 덤으로 얻어지는 보너스와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김무곤

나는 종이책을 좋아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손에서 느껴지는 빳빳한 종이의 질감을 사랑한다. 요즘 전자책을 읽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나처럼 여전히 종이책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무곤 저, <종이책 읽기를 권함>은 종이책을 예찬하는 책이다. 저자는 책 읽는 것보다 즐거운 일을 찾지 못했다고 말할 정도로 독서광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책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강아지와 산보하는 일, 가족과 바닷가에 가서 연을 날리는 일, 이런 일이 있으면 책 읽기를 그만두고 그 일을 하자. 우리는 책 읽기 위해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인생을 살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다.


- 김무곤 저, <종이책 읽기를 권함>에서.




우리는 책을 읽기 위해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고 인생을 살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 이것은 마치 밥을 먹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서 밥을 먹는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와 같이 인생이냐, 책이냐, 무엇이 먼저인가를 따져 보는 저자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확실히 독서광이 맞을 것이다. 이런 건 독서광만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니까.



3. 쇼펜하우어

내가 책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건 20대 초반 때였다. 작가 이외수, 이문열, 이청준, 오정희, 양귀자 등의 소설을 즐겨 읽었다. 그들이 신작을 발표하면 꼭 사 봤다. 어느 신문 인터뷰에선가 이외수 작가가 자신의 고정 팬이 30만 명이어서 신작을 내면 기본적으로 30만 부는 팔린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30만 명 안에 내가 포함될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책에 완전히 빠져 열광하기 시작한 건 30대 초반 때이다. 외국문학에 빠졌고, 사회과학에 빠졌다. 어떤 날은 새벽 4시까지 읽기도 했고, 하루에 한 권을 읽은 적도 있었다. 내가 정신적으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고 느꼈다. 책에 감탄하고 감동하면서 책을 숭배했다. 내게 책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어 보였다.


요즘도 여전히 책을 좋아해서 책을 끼고 산다. 하지만 그때처럼 많이 읽지는 못한다. 그때보단 체력이 많이 약해지기도 했고 시간이 많이 나지도 않는다. 그래도 주위 친구들에 비하면 여전히 책을 많이 보는 편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가끔 책을 읽어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더 똑똑해지지 않는 것 같아서다. 오히려 나보다 책을 읽지 않는 친구가 더 똑똑하고 더 지혜로운 것 같아, 그 친구에게 조언을 구할 때가 많아서다. 그동안 읽은 책에서 내가 얻은 지식과 정보와 지혜는 다 어디에 가고, 어리석다고 할 만치 바보짓을 계속하며 살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겸손의 미덕을 잊었고, 때로는 타인에게 상처를 줬다. 현명함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 현명하지 못해 속상한 적도 많았다.



그래서 독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쇼펜하우어의 말에 조금은 공감할 수 있었다.




어떤 논제에 대하여 스스로 사색하기 전에 남의 것을 읽는다는 것은 위험하다. 독서한다는 것은 남이 자기를 대신하여 생각하는 것으로서 우리는 단순히 남의 정신적 과정을 반복하는 데 불과하다. ……그런 이유로 하루의 대부분을 독서로 소비하는 사람은 ……서서히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쇼펜하우어)


- 윌 듀랜트 저, <철학이야기>에서.




이처럼 독서를 하면 오히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리게 되어 점점 어리석어질 수 있는 걸까. 사색이 없는 독서가 무용지물이라면, 그렇다면 나의 독서는 어떠한가.


그런데 지금 확신할 수 있는 게 있다. 아무리 독서가 무용지물이라고 할지라도 아마 난 독서를 계속할 것이라는 것. 새 책의 빳빳한 종이의 질감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한 그렇고, 책의 생김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한 그렇고, 책이 쌓여 있는 풍경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한 그렇다. 지금껏 책을 대체할 만한 다른 매력적인 걸 보지 못했다.



4. 임어당

임어당에 의하면, 이성을 보고 첫눈에 반한 사람이 그 상대의 키도, 얼굴도, 머리칼 색도, 목소리도 다 좋게만 보이는 것처럼, 독서의 경우도 그렇게 반할 만한 작가를 발견해 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한다. 문체도, 취미도, 견해도 모두 마음에 드는 작가를 만나면 그 책에서 자기 혼에 알맞은 자양물을 골고루 흡수하게 된다는 것. 수년이 지난 뒤 그 작가에게 싫증이 나면 또다시 새 연인이 될 책을 찾으면 된다. 그러므로 ‘만인의 필독서’라는 것은 없고 다만 개인적으로 각각 좋아하는 책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자기 마음에 드는 작자의 발견은 자기의 지적 발전을 꾀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때에는 혼의 친화(親和)라는 것이 생겨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금의 작가 가운데서 그 혼이 자기 혼과 가까운 사람을 발견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해서 비로소 참으로 가치로운 것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임어당 저, <생활의 발견>에서.




이런 임어당의 말에 내가 동의하는 이유는, 독서를 좋아하게 되는 시점이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발견하는 시점이란 것을 내 경험을 통해서 알기 때문이다. 독서를 좋아한다는 것은 결국 좋아하는 작가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5. 알퐁스 도데

독서를 좋아하게 된 계기를 준 게 나에겐 소설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가 알퐁스 도데가 쓴 단편소설 <별>이다. 이 작품이 좋아서 여러 번 읽었다.  





알퐁스 도데 저, <별>은 프로방스 지방에 사는 어느 목동의 이야기이다. 목동인 ‘나’는 주인집 딸 스떼파네트 아가씨에 대해 그리워하다가, 어느 날 그녀와 얘기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된다. 맑고 순수한 사랑을 보여 주는 다음의 글은 내가 매우 좋아하는 글이다.




“뭐라구요! 별들도 결혼을 하나요?”

“그럼요.”

그리고 별들의 결혼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했을 때, 나는 무엇인가 신선하고 보드라운 것이 어깨 위에 가볍게 얹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게 살포시 기댄 것은, 잠이 들어 묵직해진 아가씨의 머리였으며, 리본과 레이스, 그리고 물결치는 머리카락이 함께 부드럽게 스쳤습니다.

아가씨는 날이 밝아 하늘의 별들이 희미하게 사라질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그렇게 있었습니다. 마음속이 약간 두근거렸지만, 아름다운 생각만을 보내준 청명한 밤의 신성한 보호를 받으며 나는 잠들어 있는 아가씨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들 주위에는 별들이 양떼처럼 말없이 조용한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몇 번이나 별들 가운데서 가장 곱고 가장 빛나는 별이 길을 잃고 내려와 내 어깨 위에서 잠들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 알퐁스 도데 저, <별>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쓰는 작가를 발견하고도 독서가 좋아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닐까. 이런 발견! 이것이 독서가 좋아지는 출발점일 것이다.


그러므로 내 경험에 의하면, 독서를 좋아하려면 여러 책을 읽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찾아내야 한다. 나의 경우엔 소설이 좋아져서 독서가 좋아졌지만, 요즘은 에세이와 심리학 서적을 즐겨 본다. 한 분야의 책이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의 책도 좋아지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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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11-28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는 독서군요 ^^ 세상에 정말 책을 많이 읽으시네요.ㅋㅋㅋ 하나의 주제를 위해 모이는 수 많은 자료들이 치열한 독서를 통해 얻어 졌군요. 저 역시 독서를 왜하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 그래도 저 역시 첵 읽는 걸 고집합니다. 어쩔 수 없어용 ㅋㅋㅋ

페크pek0501 2011-11-29 12:59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예전에 많이 읽었지, 요즘은 그렇지 못해요. 그래도 여전히 책이 주는 위안은 크지요.

노이에자이트 2011-11-28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을 읽고 나서 프로방스를 가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죠.하지만 스테파니 닮은 아가씨는 별로 없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페크pek0501 2011-11-29 12:59   좋아요 0 | URL
멋진 재치에 감사드려요. 재밌는 이야기네요.

고슴도치 2011-11-28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은 밤에 별의 한 구절을 읽었기 때문일까요? 분명 중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글인데, 원래 이렇게 촉촉하고 감성적 글이였나 싶어서 깜짝 놀랐어요. 저 구절의 어느부분이 시험에 나왔었나까지 다 기억이 날 정도로 그 당시에 읽고 시험공부까지 했었는데..그때는 분명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었거든요. 사춘기 시절에도 받지 못한 감동을 10년도 더 지난 지금 받게 되니 기분이 참 묘합니다. 아무래도 조만간 다시 한번 별을 읽어봐야겠어요! 페이퍼 잘 읽고 갑니다! :-)

페크pek0501 2011-11-29 13:01   좋아요 0 | URL
새 손님이 오셨군요.

"촉촉하고 감성적 글이였나 싶어서"하는 말씀이 기분좋네요. 오늘처럼 비오는 날에 그런 소설 읽으면 딱 좋죠. 방문에 감사 드립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11-29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저기 '별'의 인용한 대목 있죠...묵직해진 머리...이쁜 소녀 머리를 묵직하다고 하니 머리가 큰 것 같은 느낌을 주는군요.적당한 다른 표현이 없을까요...Pek0501님은 다른 좋은 표현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페크pek0501 2011-11-29 16:44   좋아요 0 | URL
"내게 살포시 기댄 것은, 잠이 들어 묵직해진 아가씨의 머리였으며," - 이 부분을 말씀하시는군요. 예리한 지적이네요.ㅋ

나비 한 마리가 살포시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것은 잠이 들어 내 어깨에 기댄 아가씨의 머리였으며... - 이렇게 되나요? 그런데 이건 흔한 표현이고 더 신선한 표현은 님이 더 잘 하실 듯해요.^^

그런데 지금 보니 "어깨 위에 가볍게 얹히는 것을 느꼈습니다."라고 해 놓고 "묵직해진"이라고 표현한 게 말이 좀 안 되네요. 번역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어요.

노이에자이트 2011-11-29 17:15   좋아요 0 | URL
음...서로 연구해 볼까요...미녀가 졸면서 어깨를 기대면 남자 입장에선 행복하죠.물론 머리를 깨끗이 감아야 하죠.

아이리시스 2011-12-02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은 저도 가끔 볼까말까 했었어요. 이미 추천했다는데 어째서 댓글을 안남긴걸까요. 알퐁스 도데도 오랜만이고, 독서시간을 규칙적으로 확보하는 게 참 어려워요. 일어나서 30분은 힘들어서 저는 자기 전 잠들 때까지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침대에 일단 기어 올라가기만 하면 무조건 잠이 드는 편이어서요, 히히.

여전히 다양한 책들 보고 계시네요.^-^

페크pek0501 2011-12-03 15:38   좋아요 0 | URL

새글에 매번 댓글을 남기시지 않아도 되시어요. 저도 히히~~
저도 님의 서재에 댓글 쓰지 못하고 있는 걸요.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니까 더 반가운데요. 푸하하...

아, 내가 십 년만 젊었다면 아이리시스님처럼 서재활동을 열심히 하는 건데 하는 생각~ 그런데 체력의 한계로 인해 그냥 님을 보고 대리만족을 하겠다는 생각~ 몸에 무리가 가서 단명하면 안 되니까요. 푸하하~~

오늘도 어깨통증으로 물리치료 받고 와서 누워 있다가 이제 컴퓨터 켰어요.
내일은 친정에서 김장을 한다니까 아침 일찍 출동해야 하고요, 그래서 오늘은 몸을 좀 아껴야 해요. 안 아픈 척하고 좋은 컨디션으로 내일 일하려면요.

그러니 님의 서재엔 다음에 놀러 가겠슴다. 아, 읽어 볼 글이 밀렸어요.ㅋㅋ
아예 날을 잡아 하루종일 댓글 쓰는 날을 보내야 할 듯해요. 여러 서재가 밀렸어요. 내가 아는 서재인들이 이번엔 어떤 글을 올렸나, 궁금하고 그러나 컴퓨터 사용이 많으면 어깨가 아프고... 이것이 저의 현실이랍니다.

의사의 조언 : 저보고 컴퓨터와 책을 끊으면 어깨가 다 낫는데요. 이런 현실 속에 제가 있다는...
그래도 아이리시스님이 방문해 줘서 기분이 좋아요. 또한번 푸하하~~

숲노래 2011-12-03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은 아름다운 책을 만나기 힘든,
너무 지치는 돈벌이에 얽매여 살잖아요..

페크pek0501 2011-12-03 15:40   좋아요 0 | URL
예 맞아요, 된장님. 한가롭게 책 읽는다는 게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에요.
특히 어렵게 사시는 분들에겐 독서가 사치일 수 있고요.
그러니까 다같이 독서를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하겠죠.

그런데 된장님, 오랜만이네요. 그래서 무척 반가웠다는 ... ^^
다음엔 제가 방문할게요. 그럼 또 뵈요. 호호~~

seung0215 2011-12-12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원`이라는 책도 서재에 담겨있길 바래요. ㅎ 요새 읽는 책인데 감동도 있고 재미도 있고, 볼만하더라구요. 안락사라는 주제에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좋은 기회인듯. 님들도 한번 도전해 보세요. 출판사에 영화랑 책에 대해 자세히 소개 되어 있더라구요. 참고들 하세요. http://blog.naver.com/editoremail

페크pek0501 2011-12-12 14:4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청원>이라... 이렇게 적극 추천해 주시니 관심 가져 보겠습니다. 이번 달엔 책을 이미 구입해서 - 5권 구입했는데 내일쯤 책이 배달될 듯 - 다음 달의 구입으로 미뤄야 되겠는데요. 일단 검색해 보겠습니다.

안락사는 결론 내기가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제가 환장 입장이라면 안락사를 바라지만 만약 가족 중 환자가 생기면 선뜻 안락사를 택할 수 없을 듯해요. 저도 안락사에 관한 책을 봤습니다만, 결론을 못 내겠더라고요. 이것은 사형제 폐지가 좋으냐, 나쁘냐 하는 문제만큼 어려워요.

책 추천에 감사 드립니다. :) 방문도 감사해요. 큭큭...
 


누구나 아프거나 불행한 일을 겪게 되면 그동안 지내온 평범한 일상이 그리워지고, 행복한 생활이란 대단한 게 아니라 그저 ‘별일 없음’의 상태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인생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한 가지 사물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같은 사물일지라도 달라 보이는 경험을 하며 산다. 최근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해석의 중요성이다.


여러분은 무엇에 대하여 ‘사실과 다른 해석’을 한 적이 없는가.


다음에 열거한 책들은 각각 다른 성격의 책들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사실과 다른 해석’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보았다.



1.

요즘 내 관심을 끈 책은 카스 R. 선스타인 저,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라는 책이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함께 토론하고 나서 평소에 자기들이 생각해 온 것보다 더 극단적인 생각을 갖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하는 책이다.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심각한 인종적 편견을 가진 백인들은 자기들끼리 의견을 교환한 다음 편견이 더 심해졌고, 반대로 인종적 편견이 약한 백인들은 자기들끼리 의견을 교환한 다음 편견이 더 줄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빠져드는 집단사고의 위험성을 경고한다”는 책이다.
 



이 책에 의하면, 사람은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래서 서로 생각이 같은 집단 속에 들어가면 극단으로 흐를 가능성이 커진다고 한다. 극단화가 되는 원인 중 하나가 인터넷이다.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와 주장만 선택하는 자기 선택(self - selection) 과정을 거쳐 ‘집단 극단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 예로 테러리스트의 극단주의 성향을 들 수 있다. “사람들이 자기 입장과 가장 잘 들어맞는 토론방을 검색하고 선택하며,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방은 떠나면서 여러 가지 음모론이 빠르게 전파되고, 분노를 부채질한다.” 그리하여 ‘집단 극단화’ 현상이 일어난다.


이러한 ‘집단 극단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사람들이 한 가지 사물에 대해 각기 다양한 해석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중에는 ‘사실과 다른 해석’이 많을 것이다.


2.

한 가지 사물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표현한 글로 다음의 글을 뽑는다.


“강물 소리란,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나의 거처는 산중에 있었는데, 바로 문 앞에 큰 시내가 있었다. 해마다 여름철이 되어 큰 비가 한 번 지나가면, 시냇물이 갑자기 불어서 마냥 전차와 기마, 대포와 북소리를 듣게 되어, 그것이 이미 귀에 젖어 버렸다. 나는 옛날에, 문을 닫고 누운 채 그 소리를 구분해 본 적이 있었다. 깊은 소나무에서 나오는 바람 같은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청아한 까닭이며, 산이 찢어지고 언덕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흥분한 까닭이며, 뭇 개구리들이 다투어 우는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교만한 까닭이며, 수많은 축(筑)의 격한 가락인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노한 까닭이다. 그리고 우르릉 쾅쾅 하는 천둥과 벼락같은 소리는 듣는 사람이 놀란 까닭이고, 찻물이 보글보글 끓는 듯한 소리는 듣는 사람이 운치 있는 성격인 까닭이고, 거문고가 궁우(宮羽)에 맞는 듯한 소리는 듣는 사람이 슬픈 까닭이고, 종이창에 바람이 우는 듯한 소리는 듣는 사람이 의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모든 소리는, 올바른 소리가 아니라 다만 자기 흉중에 품고 있는 뜻대로 귀에 들리는 소리를 받아들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박지원 저, <열하일기>에서.)


3.

에릭 번 저, <심리게임>에 ‘당신만 아니었으면’ 게임이 소개된다. 부부 사이에서 가장 흔히 벌어진다는 게임이다. 이 게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남편이 자신의 사회 활동을 심하게 구속해서 춤을 배우지 못했다는 게 화이트 부인이 늘 읊어대는 불평이었다. 그런데 부인이 심리 치료를 받으며 태도가 달라지자 남편은 예전보다 누그러져서 아내에게 한결 너그러워졌다. 화이트 부인은 자신의 활동 영역을 자유롭게 넓혀 갈 수 있었다. 내친 김에 춤 강습에도 등록했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자기가 무대를 병적으로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결국 춤을 배우겠다는 계획을 포기했다.


결과적으로 화이트 부인은 여러 명의 청혼자 중에서 지배적인 성격의 남자를 남편으로 골랐던 것이다. 그러면서 ‘당신만 아니었으면’ 뭐든 할 수 있었다고 불평할 수 있는 통행권을 얻었다. 그러나 춤 강습에서 드러난 결과를 보니, 부인이 불평하던 것과는 반대로 남편은 아내가 굉장히 두려워하는 무엇인가를 못하게 막음으로써, 또 아내가 자신의 두려움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사실상 보호함으로써 실질적인 서비스를 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화이트 부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사실과 다른 해석’을 했던 것이다.


4.

‘사실과 다른 해석’은 타인의 외모를 보는 시각에서도 나타난다. 우리는 잘 생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중에서 누구를 더 신뢰할까.


로버트 치알디니 저, <설득의 심리학>에는 호감의 법칙이 소개된다. 이 책에 의하면, 얼굴이 잘 생긴 사람이 사회생활에서 유리하다는 점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지만 그 유리한 점의 영향력은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크다고 한다. 그 영향력은 이러하다.  

 




외모가 잘 생긴 사람은 긴급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더 쉽게 얻고 있으며, 청중의 의견을 변화시키는 데도 더욱 설득적이라고 한다.


구인시장에서도 비슷한 효력이 발견되었다. 모의 면접 상황을 설정하였을 때 구직자들의 깔끔한 외모가 직업적인 자질보다 더 호의적인 고용 결정을 받아냈다는 연구 결과가 나타났다.


한 연구에 의하면, 우리는 잘 생긴 사람은 으레 능력 있고 친절하고 정직하며 머리가 영리할 것으로 연상한다고 한다. 더군다나 우리는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그들의 신체적 매력에 의해 우리의 평가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한 채 그들을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1974년 캐나다의 선거 결과는 신체적으로 매력적인 후보가 그렇지 못한 후보보다 무려 2.5배나 많은 유권자의 표를 받았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잘 생긴 후보에 대한 이러한 편견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의 유권자들은 그들의 투표 행위가 후보들의 신체적 매력에 의해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데 있다.


신체적 매력에 끌려 투표를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신체적 매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 투표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이다. 전자는 타인에 대해 ‘사실과 다른 해석’을 했기 때문이고, 후자는 자신에 대해 ‘사실과 다른 해석’을 했기 때문이다.



5.

‘사실과 다른 해석’으로 인해 남녀관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일로는 어떤 게 있을까.


복도에서 여자직원과 남자직원이 마주쳤다. 남자가 먼저 인사하기에 여자가 멋쩍게 느껴져 웃으며 인사했더니 그 남자는 여자가 자기를 좋아해서 웃었다고 해석한다. 커피 자동판매기 앞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진다. 커피를 마시려던 여자직원이 그 주위에 있는 남자직원과 눈이 마주쳐서 혼자서만 마시기가 불편해 예의상 커피를 건넸더니 그 남자는 여자가 자기를 좋아해서 커피를 주는 것으로 해석한다.



* 맺는말


“사실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해석뿐이다.”(F. W. 니체)



과연 우리는 세상일에 대해서 제대로 해석하며 살고 있을까.


무엇에 대해서든 ‘사실과 다른 해석’을 하여 그 진실을 알지 못하고 사는 게 우리의 모습이란 생각이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아주 달라 보인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중요한 건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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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0-30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각자의 주관적인 세상이 있고,
주관적인 가운데서 타인과 함께 하는 타협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타인의 주관적인 세상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꼭 나와 다르다 틀렸다가 아닌
조금은 따스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봐야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만,
실천으로 가는 것은 너무 힘들어요. ㅠㅠ

페크pek0501 2011-10-31 14:45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반갑습니다.

제 글을 잘 이해하셨네요. '각자의 주관적인 세상'이 있다는 말씀, 그게 제 글의 주제가 될 수도 있겠어요. 의사소통을 하는 관계에서도 그 주관성 때문에 서로 받아들이는 게 다른 경우가 참 많아요. 위의 글 중, 같은 강물 소리를 들으면서도 제각각 다른 소리로 듣는 것처럼 말이에요. 방문과 댓글에 감사 드립니다.

프롬은 그 주관성을 '공적인 의미와는 다른 의미'라고 표현한 것 같아요.

"논리적으로 일정한 의미를 갖고 있는 관념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공적인' 의미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에리히 프롬 저, <자유로부터의 도피> 중에서.


아이리시스 2011-10-31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오셨어요. 잘 지내셨어요? 페크님 페이퍼는 두 번 읽고 세 번 읽다가 아......그랬구나, 이러게 되는 것 같아요. 일부러 심리학 책을 읽지 않는 제가 심리학 도서보다 더 재밌게 읽을 수 있게 해주시는 두 분이죠. 마고님이랑.......

아, 이상형 대답할 때 저는 정말로 얼굴은 안봐요, 이러는 사람..... 그리고 투표할 때. 실제로 그럴 수도 있지만, 인상에 대한 판단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듯 해요.

페크pek0501 2011-10-31 16:02   좋아요 0 | URL
예, 맞아요. 그 무의식이 무시할 수 없는 것이죠.

정말 오랜만이죠? ㅋㅋ 지방도 다녀오고 몸이 아파 (디스크로) 병원도 다니고 그랬어요. 이제 괜찮아요. 그런데 살이 빠져 아직 기운 없어요. 앞으로 열심히 먹어야죠. 원래 체중으로 돌아가게...

앞으로 '빈둥거리는 시간'을 많이 가지며 몸 챙기려 합니다. 책도 좀 적당히 보고요. 또 봐요!!!!!!!


노이에자이트 2011-10-31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독서할 때도 자기와 비슷한 정치성향의 책만 읽으면 안 됩니다.반대진영 논객들의 책도 읽어야 하는데, 성격상 이게 안 되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찾으니 늘 같은 부류의 논객이 쓴 글만 읽지요.당연히 폭이 좁아지고 맙니다.

페크pek0501 2011-10-31 16:09   좋아요 0 | URL
예썰...ㅋ 양면을 이해하기 위해 폭을 넓히는 독서가 필요하다는 것, 동의합니다.

2011-10-31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01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1-10-31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석'이 정말 중요하죠......
해석에 관한 엉뚱한 댓글 하나 남겨 봅니다. ㅎㅎ
* * *
이 한줄이 너의 해석을 천년 동안 기다려왔다,라는 마음가짐이 없다면 학문을 하지 말라.
- 막스 베버

페크pek0501 2011-11-01 12:55   좋아요 0 | URL
멋진 명언이네요.

저는 어떤 때는 정말 멋진 문장 한 줄을 찾기 위해 책 한 권을 읽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무슨 문학상을 탄 책을 읽는 경우에 그러는데, 아무리 반 권 정도 읽어도 왜 문학상을 탔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끝까지 읽어서 왜 상을 탔는지 알아내리라 하는 각오로 읽었는데, 어느 글 한 문단이 정말 좋았아요. 그래서 상을 탔구나 싶더라고요. (물론 그 문단을 이끌어내기 위한 그 과정의 글도 좋았겠지요.)

제 경험이 생각나서 적어 봤어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11-01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외모 덕을 많이 봐요.외모 때문에 열등감을 지닌 사람들에게 좀 미안한 마음도 들더라고요.

페크pek0501 2011-11-02 13:00   좋아요 0 | URL
푸하하... 저 정말 이렇게 웃었어요.

오늘 노이에자이트님이 10센티 더 좋아졌어요. 아, 매력적인 유머입니다. 본인은 유머가 아니라 진실이라고 할 테지만요.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1-11-02 16:00   좋아요 0 | URL
같은 처지에 놓이지 않은 사람이라면 왜 제가 미안한 마음이 드는지 실감하기 어렵죠.

페크pek0501 2011-11-03 14:15   좋아요 0 | URL
ㅋㅋ, 그렇군요. 그런데 "~~ 실감하기 어렵죠."와 같은 말투가 꼭 여자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제가 님이 (남자인 줄 알면서도) 여자로 착각을 하고 댓글을 쓸 때가 있답니다.

여성분인지, 아니면 훌륭한 위장술인지, 모르겠다는... ^^

덕분에 즐거웠어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노이에자이트 2011-11-03 16:25   좋아요 0 | URL
으흐흐흐...제 글이 가끔 가다 좀 섬세하고 말랑말랑할 때가 있어요.음...몸은...지금은 어깨를 다쳐 꽤 오래 쉬고 있지만 한때 오랫동안 푸시업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가슴이 딱 벌어진 편이라 여성적인 체격은 아니에요.

페크pek0501 2011-11-04 13:22   좋아요 0 | URL
외모는 남성적, 내면은 여성적이라, 그거 아주 이상적인 타입이네요. 또한번, 푸하하...

노이에자이트 2011-11-04 16:11   좋아요 0 | URL
목소리는 부드러운 저음입니다! 이선균 목소리에서 콧소리를 빼고 거기에 한석규 목소리를 섞으면 제 목소리가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