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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거운 후기> ‘직업과 사랑의 공통점’을 쓰고 나서



나폴레옹은 청년 시절에 괴테 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소설을 대단히 애독하여 전쟁터에까지 가지고 다녔다고 하며, 이 소설을 무려 일곱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이것을 어느 책에서 읽고 이 소설을 다시 펼쳐보게 된 게 내 나이 삼십대 중반일 때였다. 이미 내가 대학생이었던 시절에 시시하게 읽은 것이라서 다시 읽을 생각이 없었는데, 나폴레옹이 일곱 번이나 읽었다는 그 사실이 나로 하여금 이 소설을 다시 읽게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두 번째로 읽었을 때 이 작품이 명작인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 다시 읽기를 참 잘 했다는 생각이다.


서간체 소설 형식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 작품을 쓴 괴테 자신이 젊었을 때 실제로 체험한 절망적인 사랑의 경험과, 그리고 불행한 연애 때문에 자살한 친구의 파멸을 소재로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쓴 작품인 것이다.


베르테르가 우연히 만난 로테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죽음에 이르는 마음의 병까지 앓게 되었다는 점을 눈여겨볼 때 ‘우연’은 우리의 삶을 크게 좌우한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베르테르가 로테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자살하는 인생’이 아닌, 많이 다른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우리는 이 ‘우연’이란 존재를 두려워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우연’이 베르테르에게서 보듯이 불행한 길로 우리를 인도할지도 모르니까.


‘우연’은 누구에겐 행운을 주고 누구에겐 불운을 준다. 나는 불운을 주는 ‘우연’이란 놈이 내 삶에 끼어들까 봐, 그래서 내가 가고자 했던 길이 아닌, 엉뚱한 불행한 길로 나를 데려다 놓을까 봐,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


이 소설이 당시 사회에 끼친 영향은 대단해서 베르테르와 로테의 로맨스는 부채나 도자기의 도안의 소재가 되기도 했으며, 베르테르가 입었던 푸른 저고리와 노란 조끼와 바지가 유행하기도 했단다. 또 베르테르를 예찬한 나머지 이혼이 증가하고 자살자가 속출했다고 한다.


이런 시대의 분위기의 영향으로 자살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 역시 ‘우연’의 희생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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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칠근 2010-05-03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봄인가 싶더니 어느새 여름으로 치닫네요.
늘 건필, 건강하세요

페크pek0501 2010-05-04 15:29   좋아요 0 | URL
박선생님, 고맙습니다.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싱거운 후기> 행복에 대한 글을 쓰면서 스쳤던 생각들


‘행복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란 글을 썼다. 그동안 살면서 내가 이해한 행복론인 셈이다.


그 글을 쓰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 내가 쓴 것은 고작 한 줄기의 글이었다. 말하자면 내가 가꾼 생각의 꽃밭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껴진 하나의 꽃만 선택해서 보여 준 것이 그 글이었다. 이때 아름답다고 한 것은 물론 나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것일 뿐, 객관성은 없다.


여기 페이퍼에선 그 글에 쓰지 못한, 그 글을 쓰면서 스쳤던 생각들을 열거하고자 한다.


1.

행복은 ‘느끼는 자의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무리 타인들의 눈에 행복하게 보이더라도 그 자신이 행복을 느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랴.


그런데 행복이란 것도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즉 행복해야겠다, 라고 마음먹은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행복을 자기 자신 밖에서 발견하려고 하는 사람은 잘못된 사람이다.”(소크라테스)

“행복은 어떤 일정한 것 속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고스란히 나 자신 속에 머물고 있었다.”(J. J. 루소)

“행복과 불행은 모두 마음에 달려 있다.”(데모크리토스)


내용이 형식을 좌우하기도 하지만 형식이 내용을 좌우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억지로라도 소리 내어 웃으면 몸 안에서 기분을 좋게 하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실제로 우울한 기분이 사라진다고 한다. 다행히도 우리 몸은 가짜 웃음을 판독하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므로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려면 TV 코미디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웃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겠다. 단, 이것이 초기의 우울증엔 효과가 있지만 우울증 중증엔 효과가 없다는 것.


형식이 내용을 바꿔 주는 또 한 가지 예로, 밝은 옷을 입으면 기분이 산뜻해지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므로 행복하기 위한 노력은 꼭 필요할 듯하다.


2.

역사학자 윌 듀란트는 그의 연구생활과 학식에서 행복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지식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여행을 해 보았으나 권태만을 느꼈다. 재산을 모아 보았으나 근심과 불화만 발견하였다. 저술에 몰두하여 보았으나 피곤하기만 했다. 어느 날, 그는 뜻밖에 참으로 아름다운 한 장면을 목격하였다. 한 여인이 작은 차 안에서, 잠자고 있는 아기를 팔에 안고 앉아 있었다. 조금 있으니 한 남자가 기차에서 내려 그 여인에게 다가가더니 아기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여인과 아기에게 입을 맞추는 것이었다. 잠시 후 그들이 승용차를 몰고 가는 것을 지켜보던 듀란트는 깨달은 것이 있었다. “아, 행복이란 저런 것이로구나.” - <세계예화집>에서.


3.

전쟁이 난다면, 그래서 컴퓨터가 작동되지 않고 텔레비전도 시청할 수 없으며 음악도 들을 수 없다면, 우리는 깨달을 것이다. ‘아, 평범한 일상 생활 속에 행복이 있었구나’라고.


큰 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그때도 깨달을 것이다. ‘아, 건강하던 모습으로 돌아가 일상 생활을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그렇다면 미리 깨달아서 행복해 하면 안 될까, 다음과 같이.



하루를 열어 주는 새 아침이 날마다 있음에 행복하리라. 창문을 열면 기분 좋게 들어오는 신선한 새벽공기에 행복하리라. 책장을 넘기며 마시는 한 잔의 커피에 행복하리라. 가족이 정겹게 둘러앉는 저녁식탁에 행복하리라. 피곤한 몸 누이며 포근한 밤잠을 청하는 시간에도 행복하리라.



4.

삶의 본질을 압축하면 희극과 비극이다. 이것 이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


“인생은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희극이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비극이다.”(H. S. 월폴)


누구나 왜 내게는 큰 행운이 오지 않느냐고 불평을 하고, 소망이 이뤄지지 않느냐고 한 숨을 쉬며 사는 동안, 인생을 조금씩 알게 된다. 그리하여 삶이란, 희망을 갖고 살다가 그것에 속으며 늙어 가는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환자는 건강을, 실직자는 안정된 직업인을 꿈꾸지만 실현되지 않는 꿈으로 남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희망이 있는 삶과 희망이 없는 삶의 차이는 엄청나서 삶의 모습을 정반대로 바꾸어 버리기도 한다. 희망이 있는 삶에 희극이 있다면, 희망이 없는 삶엔 비극이 있다.


노신은 ‘희망’에 대해 다음의 글을 썼다.


나는 생각한다. 희망이라는 것은 원래 있는 것이라 할 수도 없거니와 없는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실상 땅 위에 본래부터 길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노신 저, <고향>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속을 수 있는 희망’조차 품을 수 없는 사람들이 아닐까. 반대로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그 자체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5.

사랑을 제대로 하려면 공부해야 한다고 한다.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행복도 제대로 느끼려면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 유홍준 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에서.


삶을 사랑하면(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면) 행복을 알게 되고, 행복을 알면 느끼나니 그때에 느끼는 행복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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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


노신 저, <고향>  

 

 
 

         

 

  

 

 


 

 

 

 

 

 

   

  

  

 

 

 

 

 

 

 

 

 

 

         

        

 

 

 

유홍준 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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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6.25전쟁으로 빼앗긴 들에도 어김없이 봄은 왔듯이, 비명횡사한 사람들이 있는 슬픈 세상에도 어김없이 봄은 왔습니다.


천안함 침몰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비탄에 잠겨 있습니다. 아버지를 잃거나 아들을 잃거나 남편을 잃은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이렇게 태평하게 사는 우리들과, 이렇게 태평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 됩니다.


지금 그들에겐 무엇보다도 사고의 확실한 원인 규명과 국가적 차원의 배려와 국민들의 따뜻한 위로가 필요할 것입니다.


가족을 또는 동료를 잃은 큰 슬픔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하는 그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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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0-04-09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루쉰의 저 말을 참 좋아합니다. 희망이란 것이 원래 있던 것도 아니고, 없던 것도 아니란 희미한 말을요... 책이 한 권 분실돼서 좀 아쉽지만, 제가 시간 되면 다시 좋은 책 보내드릴게요. ^^

페크pek0501 2010-04-10 12:33   좋아요 0 | URL
^^^한 권을 받으나 두 권을 받으나 그 고마운 마음은 똑 같 아 요.
젓가락 두 짝의 모양이 똑같듯이 말이에요.ㅋ
그러니 또 보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정말 감사하게 받았답니다.

글샘 2010-04-10 16:24   좋아요 0 | URL
ㅎㅎ 똑 같 아 요... 리듬이 잘 느껴지네요. ^^

페크pek0501 2010-04-19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일만에 들어오네요. 주인은 없는데, 방문자 통계를 보니 방문자는 매일 백 명이 넘었군요. 새 글도 없는데 말이죠. 방문자 수가 만 명이 넘었다는 것을 오늘 알았어요.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글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울 친정에 있어요. 친정부모님을 제가 돌봐드려야 할 사정이 있어서요. 전 형제가 오빠뿐인데, 부모님이 아무래도 며느리보단 딸을 편하게 생각하셔서 발이 묶여 있습니다.ㅋ

친정엔 컴퓨터가 없어서 산책하러 나왔다가 길가 PC방에 들렀어요.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여유로운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 페크.




순오기 2010-04-20 01:05   좋아요 0 | URL
아~ 친정에 와 계시군요.
음, 우리사회도 모계사회로 가는 조짐이 많이 보여요.
앞으론 부모를 모시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친정부모를 모시는 게 편하지요.

페크pek0501 2010-04-24 23:17   좋아요 0 | URL
반가워요, 순오기님.
모계사회가 될 가능성이 많지요. 제 주위에도 결혼한 뒤 자매들끼리 모여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형제들간이나 남매간보다 자매간이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래서 전 언니나 동생이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요.

어제 서울에서 돌아왔어요. ㅋ 일상을 떠나보면 알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순오기 2010-04-27 23:19   좋아요 0 | URL
댓글은 달리는데 새글은 안 올라오네요.^^

페크pek0501 2010-04-29 08:24   좋아요 0 | URL
관심 주셔서 고맙습니다. 새 글을 쓸 여유가 없네요. 오늘도 서울에 가서 3일간 있어야 한답니다. 당분간 그렇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싱거운 후기> ‘희생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를 쓰고 나서




1. ‘희생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라는 칼럼에 대하여


내가 이 칼럼을 쓰게 된 동기는 큰애가 수시모집에서 불합격한 소식을 들었을 때 엄마로서 갖게 된 내 마음가짐이 묘했기 때문이다. 어떠한 어머니도 어떤 대가를 바라고 뒷바라지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자식이 잘 되면 좋겠다는 일념으로 어머니로서 해야 할 일에 충실했을 터이다. 그런데 막상 자신이 수고한 것에 대해 나쁜 결과가 나오게 되면 그것에 초연하기 힘들 것 같다. 내가 그랬으니까. 그래서 이 칼럼을 쓰게 되었다.


아이의 뒷바라지를 위해 일터에서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어머니들이 많이 있다. 백화점에서 또는 식당에서 그들과 마주칠 때마다 경의를 표하게 된다. 백화점 판매직에서 일하는 어느 사십대 주부로부터, 하루 종일 서서 근무를 하여 다리가 아프고 발이 퉁퉁 붓기도 한다는 말을 듣고, 그 앞에서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도 삶의 불평이 없진 않지만 그 어떤 불평도 그 앞에선 한낱 투정일 것 같아서.


이 칼럼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기러기 아빠’의 가정이었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 다음으로 ‘기러기 아빠’의 이야기를 넣었다. 자식의 미래를 위해 가정을 해체하고 부부가 떨어져 산다는 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들이 바란 만큼 그 결과가 나온다면 그 어려운 삶에 대해 보람을 느낄 테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얼마나 마음에 타격이 클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기러기 아빠에 대해서 쓰자니 내가 알고 있는 다른 경우의 예가 필요하였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어느 부부 이야기 둘을 가져와 썼다. 하나는 알뜰한 아내의 불행한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늦둥이를 낳은 아내의 불행한 이야기이다. 이것은 내가 그들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다. 이 이야기로 ‘그 상대는 자신의 희생을 바라지 않더라’라는 메시지를 살릴 수 있었다. 그래서 다시 기러기 아빠의 이야기로 돌아와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넋두리를 경계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여기까지는 아주 짧은 시간에 쉽게 썼는데, 결말이 잘 써지지 않아 여러 번 고쳐 썼다. 주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하는 것도 고민이었다. 주제를 제목으로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제는 다음과 같이 여러 개가 나왔다.


주제 1 : 희생했다고 생각하는 건 자신의 착각이다.

주제 2 : 상대는 내게 희생하길 강요하지 않았다.

주제 3 : 희생의 선택은 자신에게 있다.

주제 4 : 희생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이 중에서 ‘희생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를 주제로 생각하기로 하고 이것을 제목으로 정하였다. 따라서 이 칼럼의 맨 끝 문장도 다음과 같이 끝을 맺었다.


도스토예프스키(소설가)는 “자기를 희생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라고 하였다. 누군가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이 행복을 불행으로 맞바꾸지 않으려면, 그 결과에 실망이 되는 일이 있더라도 그 탓을 상대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으므로. - 나의 글 ‘희생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중에서 끝부분.


이 글은 자신이 희생한 결과에 대해 불평을 갖는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해 쓴 게 아니라, 그런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썼다. 자신의 희생에 대해선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덜 불행할 수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 생각을 바꾸면 행복한 길을 향해 걸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2. 글쓰기에 대하여


글을 써 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글이란 게 얼마나 수학적인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한 문장의 길이가 너무 짧아서도 길어서도 안 되며, 한 문단의 길이가 너무 짧아서도 길어서도 안 된다. 또 같은 낱말을 많이 중복해서 써도 안 되며, 낱말은 다르되 같은 의미의 문장을 중복해서 써도 안 된다. 같은 의미의 문장이 각각 다른 문단에 있을 경우엔 한 문단 안에 몰아넣고 중복되는 것은 빼 버려야 한다.


문장과 문장의 연결, 문단과 문단의 연결도 자연스럽도록 신경 써야 한다. 서로 유기적 관계에 놓이도록 써야 좋은 글이다. 낱말 선택에 있어서도 신중해야 한다. 문장의 뜻을 살리기 위해 가장 적확한 낱말을 찾아 써야 하는 것은 글 쓰는 사람의 의무에 가깝다. 이를 위해 나는 국어사전을 옆에 두고 글을 쓰는 습관이 있다.


알면 알수록 글쓰기가 쉬워지는 게 아니라 점점 어려워진다. 그러나 이것이 글쓰기의 매력이다. 글 쓰는 일이 쉽다면, 그래서 누구나 쉽게 잘 쓸 수 있다면 아마 난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글의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기에 나로서는 글쓰기가 하나의 ‘도전’이다. 도전하며 사는 삶의 좋은 점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권태에 빠지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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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밤바 2010-03-10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부러 문장을 리듬감 있게 하려 애씁니다. 헌데 쉽지 않네요. 생각의 실타래가 지나치게 엉켜있을 땐 특히 심해지더라고요~^^;;

페크pek0501 2010-03-11 13:14   좋아요 0 | URL
대단합니다. 리듬감까지 염두에 두고 글을 쓰시다니... 전 아직 그런 경지에... ㅋ


좋은 글은 저절로 리듬감 있게 읽게 돼요. 좋은 글을 소리내어 읽어보면 그걸 느끼게 되죠. 왠지 잘 안 읽혀지는 글이 있는데, 그건 못쓴 글이죠. 최명희의 <혼불>이란 작품이 리듬감 있다는 평을 받아요. 그의 글은 곡만 붙이면 그대로 노래가 된다고 합니다.

참고로, 가장 좋은 문체는 간결체라고 합니다. 많은 유명 작가들이 동의했어요. 그래서 전 길게 써진 문장이 있으면 많이 자르는 편입니다. 그것이 읽는 독자들도 편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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