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의 문장론 -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하여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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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헤르만 헤세의 작품 중에서 내가 읽은 것은 <데미안>, <싯다르타>, <수레바퀴 아래서>,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등이다. 그리고 이번에 <헤세의 문장론>을 읽었다.

 

 

“이 책은 1900년부터 1960년까지의 책과 문학, 작가와 독자, 비평가, 책 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헤세의 글을 12권으로 된 전집에서 모으고, 전집에 수록되지 않은 것은 『책의 세계』에서 보충한 것이다”(머리말에서.)

 

 

이 책은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이 책 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나는 책 읽기에 대한 책은 무조건 관심이 간다. 글쓰기에 대한 책도 무조건 관심이 간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책을 즐겨 읽는 편이다.

 

 

이 책에는 헤세가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가 참 많다. 그중 열두 가지를 뽑고 그것과 관련하여 내 생각을 말하는 방식으로 리뷰를 써 본다.

 

 

 

 

1.

“반드시 읽어야만 하고, 행복과 교양에 필수적인 도서목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45쪽) 그러므로 “최우수 도서 100선이나 최우수 작가 100선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57쪽)

 

 

동의한다. 누구나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란 없다. 그저 자신이 좋아할 만한 책을 찾아 읽으면 된다. 옷은 자기의 개성대로 입으면서 왜 책은 자기의 개성대로 읽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까. 취향에 따라 옷을 골라 입듯이, 취향에 따라 책도 골라 읽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2.

“호기심으로 안달하여 온갖 시대와 나라의 습작과 졸작을 마구 집어삼킨 이보다, 가령 우리나라의 최고 작가 서너 명을 거듭 완벽하게 읽은 사람이 훨씬 풍요로우며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몇 권 안 되는 책을 철저히 아는 것, 그래서 그것을 읽던 수많은 시간의 감흥을 되새기기 위해 그 책을 손에 집어 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 머릿속 가득 수천 권의 책 제목과 작가 이름을 막연히 떠올리는 것보다 더 고귀하고 더 만족스러우리라.”(60쪽)

 

 

동의한다. 나도 다독보다 정독이 좋다고 생각한다.

 

 

책과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 우선 책을 다양한 종류로 백 권쯤 읽어라. 그럼 좋아하는 작가가 생긴다.

- 좋아하는 작가를 정해서 그의 작품을 여러 권 읽어라.

- 그리고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라 두 번 이상 읽어서 ‘깊이 읽기’를 하라. 그러면 작품에 대한 안목이 높아진다. 안목이 높아지면 즐겁고 유익한 독서를 할 수 있다.

- 책을 두 권 읽는 것보다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게 더 좋다. 열 권을 읽는 것보다 다섯 권을 각각 두 번씩 읽는 게 더 좋다.

 

 

 

 

 

3.

(자신의 습작을 읽고 나서 자신에게 문학적 재능이 있는지를 평가해 달라는 작가 지망생에게 헤세가 말한다.)

 

 

“하지만 ‘진실’을 찾는 게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더욱이 제가 개인적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어느 초보자의 습작을 가지고 재능에 대한 이런저런 결론을 내리기란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106~107쪽)

 

 

“가장 위대한 작가들의 경우에도 초창기 습작을 보면 언제나 참으로 특징적이거나 눈에 띄게 독창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실러의 청년기 시에서도 놀랄 정도의 조잡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108쪽)

 

 

“스무 살의 나이에 놀랍도록 아름다운 시를 지은 젊은 시인이 서른이 되어서는 더 이상 그런 시를 쓰지 못하거나 아니면 더 못한 시를 쓰거나 여전히 똑같은 시를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에 서른이나 마흔이 되어서야 꽃을 피우는 재능도 있습니다.”(108~109쪽)

 

 

아무리 훌륭한 작가라고 해도 어떤 사람의 글을 보고 단번에 문학적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진실’은 겉으로 드러나기보다 숨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 또 ‘진실’이 밝혀지기까지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 

 

 

창작을 하고 싶으나 과연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지를 확신하지 못해 고민하는 작가 지망생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 창작을 하려는 당신은 자연히 독서를 많이 할 것이다. 독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알게 해 주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므로 그 자체로 유익하다.

- 그러므로 창작이 잘 되지 않아서 작가가 되지 못하고 나중에 다른 직업을 갖게 된다고 하더라도 창작하는 시절의 경험은 좋은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 창작을 하고 싶다면 일단 해 보라. 창작을 하는 동안은 행복할 수 있다.

 

 

헤세도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직접 형편없는 시라도 지어보면 안 될까? 그렇게 해 보라. 그러면 형편없는 시를 짓는 것이 심지어 최고 아름다운 시를 읽는 것보다 훨씬 행복함을 알게 될 것이다.”(158쪽)

 

 

 

 

 

4.

“우리는 자신과 우리의 일상생활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우리 자신의 삶을 보다 의식적이고 성숙하게 다시 단단히 손에 쥐기 위해 독서해야 한다.”(120쪽)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의 경우엔 책을 읽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는데, 어떤 때엔 고민이나 걱정을 잊기 위해 책을 집어 든다. 책을 읽고 나면 정신이 분산되어서 고민이나 걱정의 크기가 반쯤 줄어든 것 같아 좋다. 이것도 내겐 독서의 장점이다. 그런데 헤세는 일상생활을 잊기 위해서 하는 독서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나와 다른 시각이다.

 

 

 

 

 

5.

“우리는 냉담한 선생님에게 다가가는 소심한 학생이나 술병에 다가가는 건달처럼 할 것이 아니라, 알프스에 오르는 등산객처럼, 무기고로 들어가는 전사처럼 책에 다가가야 한다. 또한 피난민이나 삶에 불만을 품은 사람처럼 할 것이 아니라 호의를 품고 친구나 조력자에게 다가가는 사람처럼 책에 다가가야 한다.”(120~121쪽)

 

 

독서에 임하는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표현이 참 좋다. 한마디로 진지하게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의한다. 나는 연필을 옆에 두고 책에 밑줄을 그으며 집중해서 읽는다. 술병에 다가가는 건달처럼 읽지 않고 알프스에 오르는 등산객처럼, 무기고로 들어가는 전사처럼 읽는다고 할 수 있겠다.

 

 

 

 

 

6.

“사랑도 예술과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더없이 위대한 것을 아주 조금밖에 사랑할 줄 모르는 자는 아주 보잘것없는 것에 불타오를 수 있는 자보다 훨씬 불쌍하고 하찮은 존재이기 때문이다.”(131쪽)

 

 

동의한다. 시 한 줄에 감탄할 줄 아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책에 열광할 줄 아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작은 것에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7.

“알다시피 정신분석가들 자신이 정신분석 이전 시기의 문학작품을 어디서나 자신들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이자 전거로 이용했다. 그러므로 시인들은 정신분석이 깨닫고 학문적으로 표현한 내용을 항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137쪽)

 

 

정신분석학이 등장하기 전에 시인(작가)들은 이미 그것을 표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정신분석학이 출현하기 이전에 그와 관련한 내용을 자신의 작품에 썼다고 한다. 정신분석학을 알지 않고도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자신의 경험에서 알아냈을까, 아니면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여 알아냈을까. 인간을 깊이 이해했던 도스토예프스키가 감탄스럽다.

 

 

 

 

 

8.

“거창한 문제를 제기하는 입센이나 헤벨 같은 작가들, 저 이상한 거인들은 작품에서 너무나 심오한 문제들을 울려대지만, 우리에게 전체적으로 그다지 기쁨을 안겨주지는 못했다.”(185쪽)

 

 

헤세가 <인형의 집>이란 문제작을 쓴 입센을 과소평가한다는 점에 놀랐다. 이런 작가보다 새나 하늘의 구름을 노래하는 시인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으음... 이것은 생각해 볼 점.

 

 

이해를 돕기 위해 헤세가 좋아하는 시구를 소개한다.

 

 

“세계는 너무나 고요하고

어스름 속에 덮여 있다

너무나 아늑하고 사랑스럽게“(304쪽)

 

 

 

 

 

9.

“세계사의 가장 훌륭한 소재를 가지고 시시한 작품이 나올 수 있고, 잃어버린 바늘이나 눌어붙은 수프 같은 아무것도 아닌 소재를 가지고도 진정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280쪽)

 

 

“바로 이들, 이들 목가시인들, 풀잎 하나도 계시로 여기는 단순하고 눈 밝은 이들 신의 자식들, 우리가 보다 소박한 작가라고 일컫는 바로 이들은 우리에게 최상의 것을 안겨준다. 그들은 우리에게 ‘무엇’이 아닌 ‘어떻게’를 가르쳐준다.”(185쪽)

 

 

무엇에 대해 글을 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동의한다. 글감의 선택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감은 어디서나 얻을 수 있다. 소설의 한 문장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게 글감이다.

 

 

어느 교수님이 말씀하셨다고 친구에게서 전해 들은 얘기가 있다. 사람은 마흔 살이 넘으면 더 이상 경험하지 않아도 글 쓸 게 충분하고, 마흔 살까지 경험한 것들을 다 쓰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맞는 말 같다. 

 

 

나는 책을 읽으면 저절로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그것을 재료로 글을 쓰면 충분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독서와 사색을 할 것, 이것이 중요하다. 글을 잘 쓰기 위해 연애를 하라, 여행을 하라 등의 말은 불필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경험이 부족해서 글을 쓰지 못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10.

“그런데 나는 특히 나 자신의 책들에서 ‘흥미진진한’ 줄거리를 가장 혐오한다.”(214쪽)

 

 

“나는 세 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 ‘흥미진진한’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나는 그것을 너무나 객관적으로, 너무나 짧게,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덜 흥미진진하게 표현하려고 했다.”(215쪽)

 

 

덜 흥미진진하게 표현하려고 했다니, 의외다. 나는 어떻게 하면 재밌는 글을 쓸 수 있을까, 하고 연구하는 편이라 동의할 수 없겠다. 하지만 문학이란 게 ‘흥미진진하게 쓰기’보다 ‘심오하게 쓰기’가 더 좋다고 한다면 이건 생각해 볼 만하다. 헤세의 <데미안>이란 작품을 떠올려 보면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심오하면서도 흥미진진한 것.

 

 

 

 

 

11.

“어떠한 사상가의 어떤 책, 어떠한 시인의 어떤 시도 거듭 읽을 때마다 새로운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다르게 파악될 것이며, 다른 울림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나는 젊은 시절 괴테의 『친화력』을 읽고 단지 부분적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그것은 내가 이제 다섯 번째로 읽게 될 『친화력』과는 완전히 다른 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268~269쪽)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작품이든 긴 시간을 두고 읽을 적마다 다르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읽을 적마다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셈이다.

 

 

 

 

 

12.

마지막으로 헤세의 메시지 중 가장 무게가 느껴지는 글을 뽑았다.

 

 

“하지만 인류 전체를 정신적으로 획일화하기 위해 민족의 특성을 없애는 것이 결코 저의 이상은 아닙니다. 오, 아닙니다, 우리의 사랑스런 지구에 다양성과 차이, 구별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인종과 민족, 수많은 언어, 많은 종류의 성향과 세계관이 있다는 것은 근사한 일입니다. 저는 전쟁과 정복, 합병을 증오하고 철저히 반대합니다. (…) 저는 ‘위대한 단순화’에 반대하며, 질과 완벽성, 모방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합니다.”(295쪽)

 

 

동의한다.

 

 

 

 

 

 

..........................................

<후기>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 눈에 띄어 번역이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하며 읽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1) “나는 그 원칙을 근사하다고 여기며,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원칙을 단 한 달도 지킬 수 없을 것이다.”(221쪽)

 

내가 고치면 : “나는 그 원칙을 근사하다고 여기지만,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원칙을 단 한 달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또는) “나는 그 원칙을 근사하다고 여기며,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원칙을 단 한 달도 지킬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긴다.

 

 

 

2) “타고난 정원사, 타고난 의사, 타고난 교육자처럼 자신의 직업에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언제나 복 받은 희귀한 현상이다.”(227쪽)

 

내가 고치면 : “타고난 정원사, 타고난 의사, 타고난 교육자처럼 자신의 직업에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언제나 복 받은 희귀한 사람이다.

 

 

 

3) “그를 움직이고 이끄는 것은 거만함이나 겸손해지려는 힘든 노력이 아니라 오로지 빛에 대한 사랑, 현실에 대해 열려 있는 자세, 참된 것을 통과시키는 능력입니다.”(300쪽)

 

내가 고치면 : “그를 움직이고 이끄는 것은 거만하거나 겸손해지려는 힘든 노력이 아니라 오로지 빛에 대한 사랑, 현실에 대해 열려 있는 자세, 참된 것을 통과시키는 능력입니다.” (또는) “그를 움직이고 이끄는 것은 거만함이나 겸손함을 위한 힘든 노력이 아니라 오로지 빛에 대한 사랑, 현실에 대해 열려 있는 자세, 참된 것을 통과시키는 능력입니다.”

 

 

 

 

 

..........................................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 문장이 있긴 하지만 작가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엔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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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4-04-30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 책 정말 읽어보고 싶네요.
전 헤세 오래 전에 졸업했는데...
한동안 헤세가 좋아서 <데미안>을 비로해 몇 권 읽은 기억이 나네요.
지금 읽으라고 그러면 다시 읽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한데 말입니다.

쓰신 3번 글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건, 엊그제 전에 써 놨던 대본을 연출가한테 보여줬더니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고 그러고, 설명조라는 둥 그러는 거예요.
어찌나 기분이 잡치던지. 그럴 필요가 없는데 나도 어지간히 소심하다 싶었어요.
오늘은 어떠냐구요? 날씨만큼이나 맑음이어요.
쫌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조짐이 보여서요. 웃기죠?ㅋㅋ

페크pek0501 2014-04-30 17:45   좋아요 0 | URL
예, 읽을 만한 책이에요. 저는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해요. 이런 책은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아요.
기분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기도 하죠. 요즘 좋아하는 건 봄 공기와 걷기와 에세이예요.

아무리 문학적 재능이 있다고 해도 즐기면서 노력하는 자를 따를 수 없겠죠.
그러고 보면 재능이란 별것 아니에요.
"천재는 l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노력이다."(에디슨) ^^

노이에자이트 2014-05-02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명 작가들이 동시대 작가를 평가하는 것을 보면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 때가 있죠.헤세가 입센을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은 것과 비슷한 태도로, 서머싯 모옴은 토마스 하디와 헨리 제임스의 명성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하지만...

페크pek0501 2014-05-02 15:29   좋아요 0 | URL
서머싯 몸이 쓴 <과자와 맥주>는 토마스 하디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라고 해서 구설수에 올랐던 것인데 좋게 쓰지 않아서였죠.
시각의 차이라는 게 있겠죠. 누구에게나 좋은 작품이란 없는 건가 봐요...^^

노이에자이트 2014-05-02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길 가다가 이쁜 여자를 보면 저절로 시를 읊게 됩니다.오~ 여인이여! 아름다운 여인이여! 내 곁에 있어주오~하면서요.

페크pek0501 2014-05-03 13:35   좋아요 0 | URL
ㅋㅋ 젊다는 증거입니다. 좋은 일이에요. ^^
 
인간의 굴레에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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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소설을 읽는다고 해도 독자의 가치관이나 취향 등에 따라서 그 소설의 가치를 다르게 매길 것이다. 그 소설에서 얻는 것도 각자 다르리라. 어떤 대목에서 감동적이라고 느끼고, 어떤 대목에서 교훈적이라고 느끼고, 어떤 대목에서 유머가 있다고 느끼고, 어떤 대목에서 작가의 독창성을 느끼는지도 각자 다르리라. 이렇게 소설에 대한 독자의 해석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하고 이 글을 쓴다.

 

 

나는 이 소설의 메시지를 세 가지로 보았다. 그 세 가지란 주인공인 필립이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깨달아 가는 것들로, 간단히 말하면 ‘어쩔 수 없는 마음’, ‘시행착오의 인생’, ‘무의미한 인생’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마음’이란 인간은 아무리 이성으로 올바른 판단을 할지라도 이성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되는 것을 말함이다.

‘시행착오의 인생’이란 인간이 현명하게 살아가는 게 아니라 어리석게 시행착오를 겪으며 사는 것을 말함이다.

‘무의미한 인생’이란 인생에는 어떤 심오한 뜻이 있을 것 같지만 그런 건 없다는 것을 말함이다.

 

 

이것들을 이야기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1. 어쩔 수 없는 마음

 

 

세상을 살다 보면 자기 마음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런 경우에 ‘이성’이란 건 무용지물이다.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의 역할이 있긴 하지만 인간은 이성을 따르기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필립은 간파하게 된다.

 

 

예전에 필립은 ‘밀드레드’라는 여자와 헤어진 적이 있다. 그녀가 딴 남자가 결혼하겠다고 떠난 것이다. 이 일에 그는 자존심이 상했고 비참해졌다. 그녀도 경멸스러웠지만 자신도 경멸스러웠다.

 

 

그 다음에 필립은 ‘노라’라는 여자를 사귀게 된다. ‘노라’는 그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에게 편안한 행복을 준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즐겁다. 그런데 밀드레드가 다시 나타난다. 그녀는 딴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몸이었고 오갈 데가 없는 신세가 되어 있었다. 필립은 그녀를 물심양면으로 보살펴 준다. 그녀는 그의 보살핌에 고마운 마음은 가지고 있으나 그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그는 노라를 신뢰하지만 밀드레드를 신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노라보다 밀드레드에게 끌리고 만다. 그래서 노라와 헤어지기로 한다.

 

 

분별이 있는 남자라면 마땅히 노라를 택하리라. 밀드레드와 함께 있는 것보다 노라가 그를 훨씬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노라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음에 비해, 밀드레드에게는 그의 도움에 대한 감사의 마음밖에 없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사랑을 하는 것. 문제는 그가 지금 온 영혼을 바쳐 밀드레드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라와 함께 한나절을 보내기보다 단 십 분이라도 밀드레드와 같이 있고 싶은 것이며, 노라의 어떤 키스보다도 밀드레드의 그 차가운 키스 한번이 더 좋은 것이다.

'어쩔 수 없어.' 그는 생각했다. '밀드레드는 이제 내 골수에 사무쳐 있는 거야.'

---------- <인간의 굴레에서 2>, 53~54쪽. ----------

 

 

필립은 밀드레드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정리한다.

 

 

그녀가 설령 박정한다 한들, 그녀가 사악하고 저속하다 한들, 설령 미련하고 욕심이 많다 한들 어찌하랴. 이 사랑의 마음을 어찌하랴. 노라와 행복해지고 싶기보다 밀드레드와 불행해지고 싶은 것이다.

---------- <인간의 굴레에서 2>, 54쪽. ---------- 

 

 

밀드레드는 딸을 낳는다. 필립은 그 아이가 비록 다른 남자의 아이이지만 그 아이도 예뻐한다. 밀드레드와 그 딸을 보살펴 주며 행복해 한다. 

 

 

어느 날 필립은 밀드레드에게 그리피스를 소개해 주기로 한다. 그리피스는 바람둥이이긴 하지만 필립이 아팠을 때 병간호를 정성껏 해 주던 사람으로서 그것을 계기로 가까워진 친구이다.

 

 

필립은 그녀가 하루종일 자기하고만 보내면 따분해할까봐 걱정이 되던 참이었다. 그리피스는 재미있는 친구이니 저녁 시간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필립은 두 사람이 다 좋았기 때문에 서로 알고 지내면서 맘에 드는 사이가 되었으면 했다.

---------- <인간의 굴레에서 2>, 87쪽. ---------- 

 

 

셋이 만난 자리에서 그리피스는 즐거운 얘기들을 쏟아낸다.

 

 

그는 즐거운 우스갯소리들을 하기 시작했다. 필립으로서는 도저히 흉내내지 못할 재담이었다.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었다. 내용은 없었으나 발랄함이 넘쳤다. 그에게서는 생명력이 흘러넘쳤고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이 그 생명력에 감응을 받았다. 그것은 마치 체온처럼 감지할 수 있었다. 밀드레드가 이처럼 생기를 띠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이 작은 자리가 성공을 거두자 필립은 퍽 기뻤다. 그녀는 재미있어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버릇처럼 몸에 배어 있던 얌전 떨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 <인간의 굴레에서 2>, 88~89쪽. ---------- 

 

 

그리피스의 재담에 밀드레드가 반해 버린다. 바람둥이인 그리피스 역시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이튿날 그들 셋은 다시 모여 이탈리아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연예관에 간다. 필립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밀드레드와 그리피스가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립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말도 하고 웃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을 고문하고 싶은 야릇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는 일어나서 뭘 좀 마시고 오겠다고 했다. 밀드레드와 그리피스는 지금까지 한번도 단둘이만 있어본 적이 없다. 이들을 단둘이만 있게 해보고 싶었다. (…) 그는 바로 가지 않고 발코니로 올라갔다. 거기에서 그는 두 사람을 볼 수 있지만 그들은 자기를 보지 못한다. 이제 두 사람은 무대는 아예 보지도 않고 서로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 그는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지금 돌아가면 방해만 될 뿐이다. 그가 없으니 두 사람은 마냥 즐거운 것이다. 그는 괴롭고 괴로웠다.

---------- <인간의 굴레에서 2>, 93쪽. ---------- 

 

 

그는 그리피스와 밀드레드가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해 있는 그 자리에 별수 없이 돌아갔다. 밀드레드의 눈에 자기를 귀찮아하는 표정이 스치는 듯해서 가슴이 내려앉았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필립은 그녀의 손을 잡지 않았고 그녀도 손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그리피스의 손을 잡고 있음을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 <인간의 굴레에서 2>, 94쪽. ----------

 

 

필립은 두 사람이 자기 몰래 만날 계획을 세웠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꾸 둘이서 서로 좋아하는 것 같다고 의심했다. 그리고 그 의심은 적중했다. 결국 필립은 자기 친구인 그리피스에게 밀드레드를 빼앗기고 만다.

 

 

제일 속이 상했던 점은 그리피스의 배반이었다.

---------- <인간의 굴레에서 2>, 111쪽. ----------

 

 

필립은 고통스러워한다. 이렇게 그가 고통스럽게 된 이유는 신뢰하는 노라를 버리고 신뢰하지 않는 밀드레드를 택했기 때문이다. 안전한 행복을 버리고 불안전한 행복을 택했기 때문이다. “노라와 행복해지고 싶기보다 밀드레드와 불행해지고 싶은 것이다.”라고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지 않았던가. 필립은 다시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하게 되리라. 왜냐하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이성이 아니라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만드는 마음인 것이다. 그 ‘어쩔 수 없는 마음'의 힘은 강력한 것이다.

 

 

 

 

 

 

2. 시행착오의 인생

 

 

선천적으로 다리가 불구인 필립은 어릴 때 부모를 잃어 백부의 집에서 자란다. 자식이 없는 백모는 필립을 친자식처럼 여기고 사랑한다. 하지만 사제였던 백부는 필립에게 정을 주지 않고 엄격하게 대하기만 한다.

 

 

필립은 학교를 우등으로 마친 다음 옥스퍼드에 진학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학교를 그만두기로 한다. 학교를 다니는 게 싫었다. 필립은 런던에 가서 ‘공인회계사’라는 직업을 갖기 위한 일을 배운다. 하지만 필립은 자기가 사무실에서 장부 계산이나 하는 이런 일보다는 더 훌륭한 일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고, 장부 계산과 같은 일을 자기가 썩 잘해 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창피스러워 한다.

 

 

그런 필립에게 헤이워드가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냈다.

 

 

(…) 인생을 살 만하게 해주는 것은 세상에 두 가지뿐일세. 예술과 사랑이지. 난 자네가 사무실에 앉아 장부 따위나 들여다보고 있는 걸 상상할 수 없네. (…) 왜 파리에 가서 미술공부를 하지 않나? 난 늘 자네가 그쪽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네.

---------- <인간의 굴레에서 1>, 279~280쪽. ----------

 

 

이 편지를 받고 필립은 생각에 잠겼다.

 

 

이 권고는 묘하게도 필립이 한동안 마음속으로 막연히 타진해 보았던 가능성과 완전히 맞아떨어지고 말았다. (…) 다들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재능이 있다고 했다.

---------- <인간의 굴레에서 1>, 280쪽. ----------

 

 

게다가 필립에겐 그림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필립은 일을 그만두고 파리로 가서 화가가 되기로 한다.

 

 

케어리 씨 내외(백부 내외)는 화가가 되겠다는 필립의 생각에 충격을 감추지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신사 집안이셨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그림 그리는 일이 어찌 버젓한 직업이겠느냐, 세상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이나 택하는, 남 부끄럽고, 부도덕한 직업이다,고 그들은 말했다. 게다가 파리라니!

“내가 이 문제에 관여할 수 있는 한, 널 파리에 보내지는 않겠다.” 사제는 단호하게 말했다.

---------- <인간의 굴레에서 1>, 286쪽. ----------

 

 

백부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필립은 그림을 배우기 위해 파리로 간다. 그곳에서 2년 동안 그림을 공부한다. 하지만 자신에겐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화가의 길을 포기하고 만다. 그리고 의사가 되기로 한다.

 

 

그런 필립에게 백부가 말했다.

 

 

“이제 너는 어린애가 아냐. 자리를 잡고 안정할 생각을 해야지. 처음에는 공인회계사가 되겠다고 우겼다가 곧 싫증을 내고 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 또 멋대로 생각을 바꾸다니. 그건 말이다, 네가 ……”

그는 필립의 성격적 결함을 정확히 지적하는 말을 찾으려고 잠시 머뭇거렸다. 필립이 대신 말끝을 맺어주었다.

“우유부단하고, 무능하며,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의지가 약하다는 거겠죠.”

---------- <인간의 굴레에서 1>, 424쪽. ----------

 

 

백부는 필립이 유산으로 상속받은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이젠 필립이 쓸 돈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했다.

 

 

“어쨌든 너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네가 그림 공부를 하겠다고 했을 때 내가 반대를 했는데 역시 내 말이 옳았다는 것 말이다.”

“그 점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군요. 남의 충고에 따라 옳은 일을 하여 얻는 것보다 스스로 애쓰다 잘못한 실수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요. 저는 제 하고 싶은 것을 해본 거예요. 그리고 이제 생활을 정돈해도 나쁠 것 없구요.”

---------- <인간의 굴레에서 1>, 425쪽. ----------

 

 

필립은 남의 말에 따라 현명한 삶을 살기보다 스스로 선택한 삶에서 교훈을 얻으면서 깨달아 가는 게 나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인생이란 시행착오의 인생인 것이다.

 

 

 

 

 

 

3. 무의미한 인생

 

 

필립은 동방의 어떤 임금 얘기가 생각났다. 인간의 역사를 알고 싶었던 이 임금은 한 현자를 시켜 오백 권의 책을 가져오게 했다. 나라 일로 바빴던 왕은 책들을 간단히 요약해 오라고 했다. 이십 년 뒤, 현자가 돌아와 오십 권으로 줄인 역사책을 내어놓았다. 하지만 임금은 이제 너무 늙어 그 수많은 묵직한 책을 도저히 읽을 수 없어 그것을 다시 줄여오도록 명령했다. 또 이십 년이 흘렀다. 늙어 백발이 된 현자가 임금이 원한 지식을 한 권의 책으로 줄여 가지고 왔다. 하지만 임금은 병상에 누워 죽어가고 있었다. 한 권의 책마저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현자는 임금에게 사람의 역사를 단 한 줄로 줄여 말해 주었다. 그것은 이러했다. 람은 태어나서, 고생하다, 죽는다. 인생에는 아무런 뜻이 없었다.

---------- <인간의 굴레에서 2>, 364~365쪽. ----------

 

 

필립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까지 자기를 박해한다고만 생각했던 잔혹한 운명과 갑자기 대등해진 느낌이 들었다. 인생이 무의미하다면, 세상도 잔혹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무엇을 하고 안하고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실패라는 것도 중요하지 않고 성공 역시 의미가 없다.

---------- <인간의 굴레에서 2>, 365쪽. -------

 

 

필립은 크론쇼에게 인생의 의미가 무어냐고 묻자 자신에게 페르시아 양탄자를 선물했던 것을 기억해 냈다. 그게 답이었던 것. 즉 인생이란 페르시아 양탄자처럼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함이었다.

 

 

직조공이 양탄자의 정교한 무늬를 짜면서 자신의 심미감을 충족시키려는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을 갖지 않았듯이, 사람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다. (…) 어떤 행위는 쓸모가 없는 만큼 꼭 해야 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하는 것뿐이다. (…) 사람은 다양한 실가닥을 선택하여 무늬를 짬으로써 자기만의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장 뚜렷하고, 가장 완벽하고, 가장 아름다운 무늬가 하나 있다. 태어나, 성장하여 결혼하고, 자식을 생산하고, 먹고 살기 위해 일하다 죽는다는 무늬가 그것이다. 하지만 복잡하고 훌륭한 다른 무늬들도 있다. 행복이 없는 무늬, 성공을 추구하지 않는 무늬가 그것이다. 그것들에서도 한결 착잡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 <인간의 굴레에서2>, 366쪽.--------

 

 

필립이 이해한 바로는 어떤 인생이든 무의미한 인생인 것이다.

 

 

 

 

 

 

***** 맺는말 ***** 

 

 

1.

서머싯 몸의 작품을 다 찾아 읽고 싶을 만큼 이 소설을 재밌게 읽었다. 주인공 필립의 삶도 흥미로웠지만 작가의 사유를 담은 문장이 곳곳에 많아서 더 흥미로웠다. 만약 내가 앞으로 소설만 줄곧 읽는다면 이런 소설만 읽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다. 글을 읽다가 보물을 발견한 듯한 문장을 만나면 밑줄을 긋고 여러 번 읽게 되는 즐거움! 이 즐거움은 소설의 참맛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다 보면 쓰레기 더미가 있는 길을 만났다가 꽃밭이 있는 길을 만났다가 하는 것을 반복하며 사는 게 우리의 ‘인생’ 같다. 쓰레기 더미의 악취로 괴로워하다가 꽃밭이 나타나면 꽃향기로 기뻐한다. 꽃향기로 기뻐하다가 쓰레기 더미가 나타나면 악취로 괴로워한다. 누구나 쓰레기 더미의 길에만 머물지 않으며 누구나 꽃밭의 길에만 머물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얼마나 길게 꽃밭의 길에 머무느냐가 아니라 쓰레기 더미의 길이 나타났을 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그곳을 지나느냐가 아닐까 한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악취가 더 날 수도 덜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 더미의 길에서도 현재의 시간은 흐르고 있고 미래의 시간도 흐르게 된다는 것은 큰 위안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쓰레기 더미의 길을 지나쳐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행운처럼 꽃밭의 길에 들어서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2.

마지막으로 이 소설에서 인상 깊었던 문단을 하나 소개한다. ‘헤이워드’라는 사람에 대한 글이다.

 

 

그러나 헤이워드는 책에 대해서는 여전히 즐겁게 이야기할 줄 알았다. 안목이 뛰어났고 감식력도 섬세했다. 그는 사상에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즐거운 말동무가 될 수 있었다. 사상 자체는 실상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상을 마치 경매장에 나온 도자기들처럼 다루었다. 손에 들고 형태와 빛깔을 즐기면서 마음속으로 값을 매겼다. 그런 다음 다시 상자 속에 넣어두고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 <인간의 굴레에서 2>, 25쪽. ----------

 

 

이 글은 ‘인간’과 ‘사상’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글이다. 헤이워드에게 ‘사상’이란 도자기와 같다. ‘사상’을 즐겁게 감상하지만 상자 속에 넣어 둔 다음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사상’이 그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이 글에서 ‘사상’ 대신에 ‘이성’이란 낱말을 넣어 읽었다. 인간에게 ‘이성’이란 도자기와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성’이 도자기처럼 우리의 행동에 전혀 영향을 미치는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성’은 현명한 판단을 해 줄 뿐 우리를 행동으로 몰고 가지는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성’은 그저 관찰자이며 방관자일 때가 얼마나 많은가. 다시 말해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마음’이 지배하는 행동을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예를 들면 술을 끊기로 하고 끊지 못하고,

다이어트를 하기로 하고 하지 못하고,

책을 사지 않기로 하고 사는 경우가 우리에겐 얼마나 많은가. 

 

 

밀드레드가 책임감 있는 필립을 버리고 무책임한 남자를 따라가서 결국 남자로부터 버림을 받는 일이 두 번 반복되는 것도 그 ‘어쩔 수 없는 마음’ 때문이다. 필립도 연애를 할 때나 진로를 결정할 때 ‘이성’보다 ‘어쩔 수 없는 마음’에 지배를 받는다. 나는 그것이 ‘인간의 모습’일 거라고 생각하며 이것에 무게를 두고 읽었다. 그래서 <인간의 굴레에서>라는 소설 제목에서 ‘인간의 굴레’를 ‘마음의 굴레’로 읽었다.

 

 

필립은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아, 어쩔 수 없는 마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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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9 1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09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4-04-09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을 읽게된다면 순전히 페크님 덕입니다!

페크pek0501 2014-04-09 12:43   좋아요 0 | URL
아, 그렇습니까?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소설이라고 말씀드릴 순 없지만, 적어도 다락방 님은 재밌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저의 경우, 소설의 맛을 즐기는 건 줄거리에 있지 않고 사유의 문장에 있는데
님도 그 맛을 아시리라 생각? 아니 확신합니다. ^^


추신 : 지금, 맺는말에서 2번을 추가했어요. 제 답글을 확인하러 오실 때 읽어주시길... ^^

비로그인 2014-04-09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거 아닌데 괜시리 번거롭게 해드리는게 아닐지.. ~~ㅠㅠ

언제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좀 흐리지만 날이 그래도 포근하네요.. 페크님.. ^^ 기가막히게 아름다운 봄날들이 이렇게 흐르네요.. ~~^^

페크pek0501 2014-04-09 12:47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봄날에, 저는 자다가 깼어요.
글을 올리고 나니 잠이 쏟아져서요. 그리고 지금 글을 추가해 넣었답니다.
잠에서 깨면서 이 글이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작성해 놓았던 글이 생각났어요. 따로 쓸까 하다가 그냥 여기에 넣었어요.

추신 : 지금, 맺는말에서 2번을 추가했어요. 제 답글을 확인하러 오실 때 읽어주시길... ^^

야클 2014-04-09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고 근사한 리뷰네요. 잘 읽었습니다. ^^

페크pek0501 2014-04-10 09:04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그렇게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2014-04-09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10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개 2014-04-09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던 책인데
페크님 때문에 오늘 구매했어요. ^^::::

페크pek0501 2014-04-10 09:13   좋아요 0 | URL
아, 급부담되네요...
하지만 님이 이미 읽으셨다니 안심이에요.
이런 책은 소장하는 게 좋다는 게 제 생각이긴 해요.
좋은 봄날 되세요...

착한시경 2014-04-09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구나니,,, 당장 책을 읽어보고 싶어져요~다행히 책이 있어서 훓어볼수 있었네요~ 정말 책을 꼭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리뷰예요^^

페크pek0501 2014-04-10 09:15   좋아요 0 | URL
책이 있으시다니 좋겠습니다.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리뷰가 아니라
영양가 없이 길게만 쓴 리뷰 같습니다.
길어서 자르고 싶었는데 자를 데가 없더라고요. 제 능력 부족으로...ㅋ
좋은 봄날 되세요.

2014-04-10 0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10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4-04-12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레기 더미의 악취로 괴로워하다가 꽃밭이 나타나면 꽃향기로 기뻐한다. 꽃향기로 기뻐하다가 쓰레기 더미가 나타나면 악취로 괴로워한다. 누구나 쓰레기 더미의 길에만 머물지 않으며 누구나 꽃밭의 길에만 머물지 않는다. - 언제나 밑줄긋기 할 게 많은 페크님 글^^*
서머싯 몸 글은 '서밍업'으로 먼저 만났었는데 그때도 참 좋았어요. 작가관 인생관에 관한 글이었던 걸로... 영어 원서 옆에 번역되어 있어서 영어 공부하기 좋으라고 편집되어 있었던 걸 기억해요. 인간의 굴레, 읽게 된다면 저도 페크님 덕~~

페크pek0501 2014-04-13 11:50   좋아요 0 | URL
저에겐 본능적으로 교육자의 특성 같은 게 있는 모양이에요.
좋은 책을 만나면 다른 이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욕구가 마구마구 샘솟는 거예요.

요즘 봄날이라고 매일 많이 걸었더니, 자고 일어나니 다리가 아프네요.
오늘은 다리를 쉬어 줘야겠어요.
좋은 휴일 보내시길...

2014-04-12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13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4-04-12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의 소설에는 남자에게 상처 주는 여자가 꼭 등장하죠.그래서 몸이 동성연애에서 위안을 찾았는지도 모릅니다.

페크pek0501 2014-04-13 12:10   좋아요 0 | URL
저도 읽은 적이 있네요. 몸이 동성연애자가 아닐까 의심 받은 적이 있다고요.
진실은 본인만이 알겠지요. 어쩌면 본인도 모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옛 시대에서 예술가들에게 그런 성향이 있는 건 드문 일이 아니지요.

좋은 봄날이에요. 만끽하시길...


노이에자이트 2014-04-13 17:26   좋아요 0 | URL
제가 가진 책의 역자해설엔 몸의 동성연애 경력은 분명하다고 나와있네요.

몸이 살던 시대는 옛날이라고 하기엔 좀...20세기 중반 이후까지 살았는 걸요.워낙 장수했죠.

페크pek0501 2014-04-13 18:09   좋아요 0 | URL
길쿤요(그렇군요).ㅋ

1874년생이어서 오래된 사람인 줄 알았는데 향년 91세로 영면, 1965년까지 살았다네요. 놀랍습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4-04-14 17:38   좋아요 0 | URL
몸은 마지막 생애 10년 동안 온갖 추한 모습은 다 보여줬죠.차라리 70세 좀 넘어서 타계했으면 좋았을텐데...하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페크pek0501 2014-04-15 21:36   좋아요 0 | URL
아, 그랬나요? 10년 동안 온갖 추한 모습을 다 보였군요. 저는 그래도 광팬 하겠습니다.
설령 도박에 빠지거나 유부녀와 바람이 나거나 알콜 중독이거나... 어떤 일이든 이해할 것 같습니다. 이미 좋아하고 있으니까요. 좋아하는 사람에겐 관대한 법이니까요. 그리고 인간을 이해하려 들면 이해하지 못할 게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의 자서전이 있다면 읽어 보고 싶군요. ^^
 
시적 정의 - 문학적 상상력과 공적인 삶
마사 누스바움 지음, 박용준 옮김 / 궁리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1.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때가 있다. 여기서 문제란 직접 경험하기 전엔 알 수 없는 ‘인간의 마음’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말한다. 서로 똑같은 처지가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상대의 마음 상태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건 인간관계에서 큰 장애 요인이다. 이 장애 요인으로 인해 상대를 오해하기도 하고 상대로부터 이해를 받지 못하기도 한다.

 

 

 

우리 대부분은 ‘인간’에 대해 무지하다. 단지 자신의 무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인간이 어리석다는 것은 알지만 자신의 어리석음을 모르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우리 모두 자신만은 올바르게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사별한 사람의 심경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난 8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로부터 며칠 뒤에 어머니의 심경을 전해 들은 게 있다. 남편이 죽었다는 게 창피하기도 하고 자신이 죄를 지은 것도 같아서 밖으로 돌아다닐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과일을 사러 슈퍼마켓에 가는 것도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고 한다. ‘남편은 죽었는데 자신은 과일을 먹고 싶어 사러 왔다.’고 사람들이 자신을 흉볼 것 같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자신에게 말을 붙이며 위로해 주는 사람보다 못 본 척해 주는 사람이 더 고맙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많이 놀랐다. 남편과 사별한 경험이 없으면 이런 마음을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갖춰야 할 덕목 중의 하나가 상대를 배려하는 것인데, 이것은 상대의 마음을 알아야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면, 과부가 아닌 사람은 과부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배려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상대와 똑같은 처지에 있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우리가 상대의 마음을 공유하며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공부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

 

 

 

 

 

2.

내가 이십 대 초반에 있었던 일이다. 한 친구가 자신의 부모에 대한 얘기를 들려 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비밀스러운 얘기를 하듯 머뭇거리다가 입을 떼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해서 따로 살고 있으며 자기는 어머니와 살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늘 슬픔을 품고 산다고 한다.

 

 

 

나는 이 얘기를 듣고 놀랐지만 위로를 해 주고 싶어서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이혼이 별것 아닌 일이라는 듯이 말했다. 이혼한 부모를 둔 게 그에게 큰 약점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거였다. 상처를 받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였다.

 

 

 

그런데 나중에 그가 얘기해 줘서 알았는데 이런 나의 말이 그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그는 내게 그런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고 한다. 그가 바랐던 건 내가 자신의 심경과 똑같이 느껴 주는 것, 그것이었다. 즉 내가 ‘공감’하길 바랐던 것. 만약 내가 그의 슬픔에 공감해 주었다면 그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그런 그의 마음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3.

내가 어머니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은, 슬픈 일을 당한 사람을 대할 땐 본인이 그 일에 대해 말하기 전엔 알은 척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은, 본인이 슬픈 일을 말할 땐 그의 마음에 공감해 주는 게 좋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경우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내가 어머니와 친구로부터 듣지 않았다면 내가 그들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소설 읽기’가 답이 되지 않을까 한다. 만약 내가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을 읽었다면 그의 마음을 잘 알았을 것이다. 꼭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을 읽지 않더라도, 평소에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보다 평소에 소설을 읽는 사람이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 더 발달하리라고 확신한다.

 

 

 

만약 소설을 주의 깊게 읽었다면, 우리의 자연스러운 반응은 내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다. 이는 가난한 자들을 마치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는 듯 대하고, 극히 평범하고 비루한 환경을 공상을 통해 우리 스스로가 거주하는 장소인 듯 바라보는 태도와 같다. - 88쪽.

 

 

 

(소설은) 우리 스스로를 친구로서의 공감과 감정을 이입하는 동일시를 통해 등장인물들과 관계 맺음으로써 그들의 운명을 나의 운명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 88쪽.

 

 

 

문학 작품은 일반적으로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의 입장에 서게 하고, 또 그들의 경험과 마주하게 한다. - 33쪽.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예술 등 모든 영역에서 ‘생활의 지혜’라는 건 ‘인간에 대한 이해’라는 바탕 없이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어떤 영역에서든 인간의 활동이 없는 영역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해 연구하는 ’인간학’이라고 말하는 소설을 읽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리라.

 

 

 

 

 

4.

우리는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상상력이 과학이나 의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은 그것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상상력은 소설에서도 필수다.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창조된 세계이고, 소설을 읽는 독자 또한 상상력으로 그 내용을 수용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독자는 소설을 보면서 상상력의 힘을 빌려 등장인물들의 느낌과 생각을 공유한다.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상상력을 강조했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지식은 제한적이지만 상상력은 계속해서 발달을 자극하고 진보를 낳으면서 온 세계를 포용하기 때문이다.”

 

 

 

상상력이 가치가 있다면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설도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특히 상상력을 발전시키고 싶은 청소년들에겐 소설을 읽는 게 더욱 필요하리라.

 

 

 

 

 

5.

혹시 이런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저는 소설 나부랭이나 읽는 사람들과는 달라요.”라고 말하는 사람.

“제가 소설을 읽고 있다고 하면 왠지 창피해져요.”라고 말하는 사람.

 

 

 

이렇게 소설을 폄하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유익한 독서가 되리라. 이 책은 우리가 소설을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하는 책이므로. 우리에게 문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문학의 가치에 대해서 말하는 책이므로.

 

 

 

 

 

6.

이 책은 문학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 찰스 디킨즈의 『어려운 시절』, 리처드 라이트의 『미국의 아들』, E. M. 포스터의 『모리스』 등의 소설을 등장시켜 설명한다.

 

 

 

이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도록 다음의 글들을 뽑았다.

 

 

 

1) 우리는 단순화된 모델이 주로 쉽게 장악하고, 이것이 현실의 전체인 양 보게 만드는 편리함을 늘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경향에 맞서야 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더욱더 소설 읽기를 강조해야 한다. 소설 읽기는 인간적 가치에 대한 감각을 생생하게 일깨워주며, 우리를 온전한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가치 판단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 110쪽~111쪽.

 

 

 

2) 『어려운 시절』과 같은 소설을 해석의 이론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문학이론가로서가 아니라 감동하고 기뻐하는 인간 존재로서 읽을 때, 우리는 개인적 편견과 선호로부터 자유로운 분별 있는 관찰자가 된다. - 180쪽.

 

 

 

3) 사실상 우리는 소설에 의해 특정 형태의 재판관이 되는 것이다. 재판관으로서 우리는 무엇이 옳고 적합한지에 대해 서로 논쟁을 하게 될 것이다. - 181쪽.

 

 

 

4)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그리고 다른 많은 형태의 유해한 편견은 흔히 집단 전체에 부정적인 특징을 귀속시키는 것에서 비롯한다. (…) 문학적 이해란 사회 평등으로 이끄는 마음의 습관을 고취시켜 집단 증오를 지탱하던 고정관념을 해체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 196쪽~197쪽.

 

 

 

5) 라이트의 소설은 내가 언급한 두 가지 방식 모두에서 “형평을 맞춘다”. 즉, 절망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 개별자들에게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 비거의 자아 개념과 감정적 삶을 지배하는 힘은 인종적 불평등과 증오다. 그는 백인 사회가 그에게 가한 명예 훼손으로부터 도출된 이미지에서 자기 자신을 인식한다. 즉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정의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를 그러한 식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무력함과 수치로부터 벗어나고자 폭력을 사용하며 생쥐와 같이 사납게 달려들 가능성이 다분한 존재다. - 198쪽~199쪽.

 

 

 

6) 소설은 처한 환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본래 같은 형제들이라고 말하는 손쉬운 공감을 불러일으키려 하지 않는다. 백인 독자들은 비거와의 동일시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의 외부적 환경뿐 아니라, 그의 감정과 욕망은 사회적 ‧ 역사적 요소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 199쪽.

 

 

 

7) 하지만 손쉬운 종류의 공감 이면에는 깊은 공감의 가능성이 놓여 있다. 즉,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인간 존재다. 생산적인 삶을 이끌 기본적인 장비를 가진 존재. 행위의 외부적 환경뿐 아니라 분노, 공포 그리고 욕망이 인종적 증오와 그것의 제도적 발현으로 인해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보라.” 동일시를 거부하게 만드는 이질감이 이제 우리의 주요 관심 대상이 된 것이다. - 199쪽~200쪽.

 

 

 

8) 소설은 모리스의 번영하는 삶과 클라이브의 위축된 삶의 묘사 속에서 자유의 깊은 가치를 보여줌으로써 성적 평등과 자유의 문제를 다룬다. 그리고 소설은 우리 자신 혹은 친구나 연인 중 누군가도 모리스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간파할 수 있도록 만듦으로써 그러한 평등의 지지자로서 독자의 참여를 요청하는 것이다. - 208쪽.

 

 

 

 

 

.............................................................

이 책의 리뷰를 쓴 사람이 없어서 내가 첫 리뷰 등록자가 되었다.

그래서 뭐?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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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3-12-23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아! 제가 워낙 님의 글을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오늘 이 글 진짜 진짜 좋아요!!!
공감 꾸우우욱-! 이 책도 읽고, 소설도 한 권 읽고싶어져요. 올해가 가기 전에요. ^___^

페크pek0501 2013-12-24 08:05   좋아요 0 | URL
반가운 메리포핀스 님... 감사합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라고 하시니까 마음이 바빠지네요.
며칠 남지 않은 올해의 마무리를 잘 하시길 바랍니다.


stella.K 2013-12-23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쓰셨네요.
예전에 저는 소설의 일회성이 아쉬웠어요.
잘 읽지도 않지만 읽어도 한 번 밖에 안 읽잖아요.
그런데 요즘엔 소설의 위상이 예전에 비해 높아졌지요.
좋은 컨텐츠가 되고 있으니.
정말 재밌고, 속 든든한 소설 한 번 써 봤으면 좋겠어요.
뜨거운 곰탕국 같은 소설. 하하.
서재의 달인 되셨네요. 축하해요!^^

페크pek0501 2013-12-24 08:09   좋아요 0 | URL
예, 드디어 썼습니다. 미완성인 채로 있었는데, 올해가 가기 전에 완성해 올려야겠다고 맘먹었죠.
뜨거운 곰탕국 같은 소설 쓰기! 저는 리뷰 쓰는 것도 벅차네요. ㅋ
서재의 달인... 웃겨 죽는 줄 알았어요. 의외였어요.

메리포핀스 님과 애티커스 님 때문에 살았네요. ^^
좋은 하루 보내시길...

아!!!!!!!!!!!!! 님에게 밑줄긋기 하라고 지적질을 해 놓고 정작 저는 깜빡 했어요.
그래서 뒤늦게 올렸답니다. 6번이요.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3-12-24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라도 사람에 따라 여러가지 반응을 보이니까 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렵죠.확률로 봐서 이런 처지에 있는 사람은 이런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다...하고 접근했는데 상대는 예상 외의 반응을 보이면서 오히려 관계가 어색해져 버리는 경우도 있고요.그냥 너무 신경쓰지 않고 대충 신경 꺼야 좋은 경우도 많더라고요.

페크pek0501 2013-12-26 14:48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맞아요. 어려운 문제죠.
제 결론은 슬픔을 당한 사람에겐 침묵하고, 본인이 말을 꺼낼 때만 위로할 생각을 하자는 것이죠. ㅋ 침묵으로 욕 먹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그러니까 도움을 주고 싶을 땐 상대방이 요청할 때만(바란다고 느낄 때만) 해라, 가 되겠습니다.

마태우스 2013-12-25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정말 잘 정리해주셨네요. 감사드리구요, 전 외부강의를 할 때 독서와 과학의 관계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한답니다 독서야말로 상상력을 길러주는 요체고, 책을 많이 읽으면 논문도 잘쓸 수 있다구요. 그 중에서도 소설을 읽어야 상상력이 길러진다고 강의하죠. 진짜 그런 것이, 저도 소설 읽고나서부터 논문을잘쓰기 시작했답니다.

페크pek0501 2013-12-26 14:5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
소설을 무시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소설엔 굉장한 것들이 들어 있는 것 같아요.
사람에 따라서 10프로만 흡수하는 독자가 있고 90프로 흡수하는 독자가 있다고나 할까요. 저도 책에 따라 흡수하는 정도가 다 다르더라고요.

논문 쓰기... 저는 참 재미없던데... 존경스럽군요. ^^

화이트북 2017-04-09 0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았어요 🎀

페크pek0501 2017-04-11 13:03   좋아요 0 | URL
옛 글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17-11-08 2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08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침에혹은저녁에☔ 2017-11-08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고 하겠습니다

2017-11-08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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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달과 6펜스>에 매료되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는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한 소설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더라도 독자는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화가로서 성공한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이 소설의 핵심은 화가로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하는 결과가 아니라 ‘어떤 삶의 과정을 거쳐 성공에 이르게 되었는지’가 될 것 같다. 그 과정의 전개가 이 소설의 줄거리인 셈이다. 서머싯 몸은 고갱의 생애를 연구하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이 책의 줄거리를 구상했다고 한다. 아마 서머싯 몸은 폴 고갱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의 화가로서의 천재성이 흥미로웠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 소설에서 내가 제일 주목한 것은 예술가로 살게 되는 스트릭랜드의 내면의 세계다. 때로는 위악적이고 때로는 냉소적이고 남녀 간 사랑의 가치를 무시하고 도덕 같은 건 아예 고려해 보지 않는 듯한 예술가의 독특한 내면을 들여다보는 건 흥미로웠다. 인간의 유형 중에서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햄릿형이 있고 세르반테스가 창조한 돈키호테형이 있듯이 서머싯 몸이 창조한 스트릭랜드형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을 정도다.

 

 

 

이 소설을 오래전에 읽었다. 이번에 두 번째로 읽으면서 서머싯 몸이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작가였구나, 하고 새삼 놀랐다. 사실 처음에 읽었을 땐 반전이 있고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반했는데, 이번에 읽으면서는 인간의 내면을 통찰하는 화자의 생각에 반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고전 소설이 이 정도면 문학성뿐만 아니라 대중성까지 확보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읽으면서 이 소설의 팬이 되었다.

 

 

 

다른 소설과  ‘재미’를 비교하자면 <달과 6펜스>는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보다 재밌고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만큼 재밌다. 내가 이렇게 재밌다고 느끼는 이유는 이번에 <달과 6펜스>를 읽으면서 그 뒷얘기가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 없던 게 여러 번이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읽는다고 해도 큰 물줄기의 내용만 생각날 뿐 작은 물줄기의 내용은 생각나지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궁금증을 가지며 읽을 수 있었다.

 

 

 

작가가 글을 쓸 때 글쓰기의 제일의 목적은 자신이 즐겁기 때문이리라. 아무리 부와 명성이 따른다고 해도 글쓰기가 즐겁지 않다면 많고 많은 일들 중에서 글쓰기를 택할 이유가 없다. 두 번째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독자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자는 한가로워서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바쁜 와중에도 책의 내용에 끌려 어쩔 수 없이 책을 놓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독자를 즐겁게 해 줄 것을 의무로 느껴야 한다. 그 의무를 소홀히 할 때 독자는 그 작가를 외면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소설이 아무리 명작이라고 해도 독자로 하여금 인내를 갖고 읽게 하는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잠을 자야 할 시간에 잠을 자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재미가 느껴지는 작품을 좋아한다. <달과 6펜스>처럼 말이다.

 

 

 

 

 

 

 

2. 줄거리 일부를 소개하다

 

 

 

스트릭랜드는 왜 가출했을까?

 

 

 

증권 중개업자인 찰리 스트릭랜드는 어느 날 갑자기 가출한다. 그에겐 아내가 있고 두 남매의 자식이 있으며 결혼한 지 17년이 되었을 때이다. 그는 가출한 이유에 대해선 한마디 없이, 내일 아침에 파리로 떠날 것이며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간략하게 쓴 편지 한 통만 아내에게 남기고 떠난다.

 

 

 

주위에선 연애 사건 때문에 그가 가출했다고 소문이 났고 그의 아내조차 남편에게 여자가 생겨서 가출했다고 생각했다. 그의 아내는 남편(스트릭랜드)이 돌아오면 지난 일로 그냥 묻어 두겠다고 하며 화자에게 파리에 가서 비싼 호텔에 묵고 있을 남편을 만나 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의 아내의 부탁을 받은 화자는 파리에 가서 직접 스트릭랜드를 만난다. 그런데 그는 비싼 호텔에 묵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여자와 함께 있지도 않았다.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겠지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께 무슨 잘못이라도 있나요? 그렇게 대하시니 말입니다.”

“없어요.”

“그럼 부인께 무슨 불만이라도 있으십니까?”

“없소.”

“그렇다면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십칠 년이나 같이 살아온 사람을,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이런 식으로 버리다니 말입니다.”

“심하지요.”(62쪽)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부인을 버렸단 말입니까?”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소.”(67쪽)

 

 

 

스트릭랜드가 가정을 버리고 떠난 이유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그는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일에만 몰두할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69쪽)

 

 

 

남의 아내를 빼앗아 함께 사는 스트릭랜드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 화자는 삼류 화가인 더크 스트로브와 함께 스트릭랜드를 찾아간다. 가서 보니 스트릭랜드의 방엔 난로가 없었고 테이블 위에는 그림 물감, 팔레트 나이프 등이 있었다. 그는 작아 보이는 침대에 불편스럽게 누워 있었는데 언뜻 보아도 몸에 열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태에 빠진 환자여서 그대로 두면 죽을 것 같았다. 더크 스트로브는 그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자기의 집으로 그를 데리고 가기로 마음먹고 집에 가서 아내를 설득한다. 하지만 아내는 스트릭랜드가 싫다며 집에 데리고 오는 것에 강력히 반대한다.

 

 

 

“그 사람은 훌륭한 화가야.”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난 그 사람 싫어요.”(129쪽)

 

 

 

이렇게 싫다고 말하는 아내를 간신히 설득하여 스트릭랜드를 자기 집으로 오게 하고 아내에게 스트릭랜드를 간호하도록 만든다.

 

 

 

이삼 주일이 지난 어느 날 아침, 화자는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가 우연히 스트로브를 만난다. 스트로브는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그 미소에는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화자는 나중에야 영문을 알 수 있었다. 스트로브가 화자를 찾아와 말해 주었다.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에게 이제 웬만큼 병이 나은 것 같으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가 당장 나가겠다고 하더란다. 그러고는 짐을 싸기 시작했는데, 스트로브의 아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더란다. 스트릭랜드가 모자를 찾는 중에 아내가 불쑥 이렇게 말하더란다. “여보, 저는 이 분을 따라가겠어요. 당신과는 이제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어요.”라고.

 

 

 

“모르시겠어요? 제가 스트릭랜드 씨를 사랑한다는 것을? 저이가 어디로 가든 전 저일 따라갈 거예요.”

“하지만 당신도 알지 않소. 저 사람은 당신을 절대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요. 당신 자신을 위해서라도 따라가선 안 돼. 당신 앞날이 어찌 되려고 그래.”

“다 당신 잘못이에요. 당신이 저일 데려오자고 우기지 않았어요.”(146쪽)

 

 

 

스트로브는 아내에게 또 한 번 떠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리하여 그의 아내와 스트릭랜드는 함께 살게 되고 만다. 스트릭랜드를 싫어한다고 강하게 표명했던 그녀가 스트릭랜드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었을까. 놀라운 반전이다.

 

 

 

여자가 자살하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 스트로브는 허겁지겁 방으로 들어와서 내가 앉아 있는 책상을 향해 다가왔다.

“자살해 버렸네.” 쉰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놀라 부르짖었다.(171쪽)

 

 

 

스트로브의 아내는 자살을 시도했고 병원에 실려 갔으나 죽고 말았다. 이에 대해 보통 사람 같았으면 죄책감을 가질 법도 한데, 스트릭랜드는 죄책감 같은 것을 갖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보면.

 

 

 

“여자는 사랑을 하게 되면 상대의 정신을 소유하기 전까지는 만족할 줄 몰라. 약해서 지배욕이 강하지. 지배하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못해. 여자는 마음이 좁아요. 그래서 자기가 모르는 추상적인 것에는 화를 내는 버릇이 있어. 마음을 쓰는 건 물질적인 것뿐이야. 관념적인 것은 시기나 하고. 남자의 정신은 우주의 저 머나먼 곳에서 방황하는데 여자는 그걸 자기 가계부 안에다 가둬두려고 하는 거요. (…) 나 자신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 내가 자기 것이 되어주기만 바랐지. 하기야 나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려고 했어요. 내가 원하는 것 한 가지만 빼놓고 말이오. 난 혼자 있기를 바랐거든.”(203쪽~204쪽)

 

 

 

혼자 있기를 바라는 남자와 함께 살았던 ‘스트로브의 아내’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녀의 자살은 그것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 블란치 스트로브는 나한테 버림을 받아서 자살한 게 아냐. 어리석고 균형 잡히지 않은 인간이라 그랬지. 자, 이제 그만하면 그 여자 이야기는 충분하오. 전혀 중요할 것 없는 사람이니까. 갑시다. 내 그림을 보여줄 테니.”(205쪽)

 

 

 

스포일러가 되지 않기 위해 줄거리는 여기까지...

 

 

 

 

 

 

 

3. 이 소설의 주제와 관련하여 말하다

 

 

 

이 소설의 주제는 작품의 제목에 함축되어 있다.

 

 

 

“달이 영혼과 관능의 세계, 또는 본원적 감성의 삶에 대한 지향을 암시한다면,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 그리고 천박한 세속적 가치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사람을 문명과 인습에 묶어두는 견고한 타성적 욕망을 암시한다. 『달과 6펜스』는 한 중년의 사내가 달빛 세계의 마력에 끌려 6펜스의 세계를 탈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 작품 해설, 310쪽.

 

 

 

이 작품의 뒷부분에서 아브라함이란 사람의 일화가 소개되는데 이 일화 속에 작가의 메시지가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일화란 아브라함이 외과의로서 출세가 보장된 길을 버리고 남 보기에 초라하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길로 가서 살게 된 것을 말함이다.

 

 

 

알렉 카마이클이 아브라함에 대해서 “사람이 자기 인생을 그렇게 망쳐버린다면 어처구니없는 일 아닌가.”라고 말하자 화자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정말 아브라함이 인생을 망쳐놓고 말았을까?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그것은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다.’(259쪽~260쪽)

 

 

 

이것이 작가가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겠다. 행복한 삶이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각자 자신의 생각에 좌우된다는 것이겠다.

 

 

 

요즘 실내에서 애완견을 기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 대부분은 개의 털을 손질하고 이를 닦이고 목욕을 시키고 배설물을 치우고 살면서 행복해 한다. 반면에, 개를 키우는 행복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그들을 보면서 ‘왜 사서 고생을 할까’ 하고 의아하게 여긴다. 행복한 삶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그렇게 다르다. 그러니 사회적으로 성공해 보이는 삶 - 높은 수입에 예쁜 아내가 있는 저명한 외과의로서의 삶 - 에 대한 생각도 각자 다를 수밖에 없으며 ‘행복한 모습’도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덧붙여 말하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6펜스’의 세계가 ‘달’의 세계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4. 나는 ...

 

 

 

스트릭랜드와 아브라함. 그들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기 위해 모험적인 삶을 택하고 안락한 삶을 버렸다. 그들처럼 우리도 ‘달’의 세계로 향하기 위해 ‘6펜스’의 세계를 버릴 수 있을까. 자신의 이상을 위해 현실을 버릴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없다. 나는 현실에서 한 발자국도 뗄 수 없다. 하지만 그럴 용기가 있었던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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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12-01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과 6펜스>와 비슷한 알레고리를 가진 이야기들은 책에서만 있는 이야기는 아닌 듯해요. 스트릭랜드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실제로도 적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이 소설에 매료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어떤 인물이 <인생이라는 모험에 찬 여행>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그 여행길에 올라선 여행객들이 한 곳에 오래 머물든 끝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든 그 모든 건 여행객들 각자의 취향에 달린 문제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인간의 마음'이란 '강물처럼'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을 탈 때도 있다는 것이지요.

* * *

"인간의 마음이란 한 번 새로운 생각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면 절대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 올리버 웬델 홈스

페크pek0501 2013-12-02 13:42   좋아요 0 | URL
오렌 님... 인간의 마음이란 강물처럼 되돌릴 수 없다는 것....
그걸 제가 글로 이미 써 놨어요. 아직 미완성의 글이지만.
한 번 마음먹으면 어쩔 수 없다는 내용이에요. ㅋㅋ
언젠 완성되면 꺼내 보도록 할게요.
늘 좋은 인용을 기대하겠습니다.
반가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3-12-04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미주의자들...극한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때 방해되는 것은 사람이든 뭐든 다 버리는 사람들이죠.그래서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들은 모두 작품 파괴 특히 불지르기 아니면 자살로 끝맺습니다.저는 미시마 유키오<금각사>, 오스카 와일드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연이어 읽기를 권합니다.단, 정신이 혼미해질 수도 있습니다.

페크pek0501 2013-12-06 10:22   좋아요 0 | URL
아, 노 님!
<금각사>는 읽었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보관함에 있어요.
미시마 유키오가 할복 자살을 했다고 해서 놀랐었죠.
예술가가 별난 건 있는 것 같아요.ㅋ

다크아이즈 2013-12-05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과 육펜스를 다 원해서 삶이 혼란스러운 경우도 있지요.
일직선 위에, 경상도 말로 쌔리빼딱하게 달쪽으로 많이 기울면 예술이 되고
육펜스 쪽으로 많이 기울면 허세 쩐 일상이 될 터인데,
저 같은 범부는 둘 다 쪽으로 쌔리빼딱하게 기울어지기를 바라니 되는 게 없사옵니다.
스트릭랜드는 완전히 달쪽으로 기운거지요. 그래서 예술은 위대한 걸까요?

서머싯 모옴이 얼마나 잘 쓰는 작가인가는 저도 이 책을 통해 일찍이 깨쳤지 뭡니까!
페크 언니, 12월에도 맹활약을^^*

페크pek0501 2013-12-06 10:25   좋아요 0 | URL
팜 님이 방문하신 건 오랜만인 것 같군요. 반가워요.^^
한동안 활동이 뜸하셨죠?
저야 뭐 맹활약을 하는 수준은 못 되고요... 그냥 꾸준히요...
저 같은 사람을 지구력이 있다고 하나요? ㅋ

앞으로 님의 맹활약을 지켜볼꼬예요. ㅋㅋ

루쉰P 2013-12-19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읽어 봐야 겠어요 ㅎㅎㅎ 가뜩이나 사놓고 읽다만 책이 많지만...아,,,페크님 리뷰 읽으니 사고 싶어졌어요...아...아...

내용은 참 흥미롭네요. 하지만 주인공이 자살한 여인에게 두고 생각하는 마음이나, 가정을 내팽게치고 자신의 그림만을 그리기 위해 산다는 태도는 좀 이기주의적이랄까...그런 생각이 드네요. ㅎ

하지만 흥미를 끄는 내용이에요 ㅋ

페크pek0501 2013-12-19 23:00   좋아요 0 | URL
아, 루쉰 님 오랜만이어요. 다시 활동 시작하셨나요? 반갑습니다.

이기주의자 맞습니다. 바람직한 인간형은 아니죠. 하지만 천재 화가인 건 틀림없답니다.
이 책 추천합니다. 재밌는 고전인데다 배울 점도 많아요.
작가가 인간에 대한 안목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이런 종류의 소설을 참 좋아합니다.
자주 뵙길 바랍니다.
 
“새로운”무의식 - 정신분석에서 뇌과학으로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김명남 옮김 / 까치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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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어떤 판단이나 결정을 할 때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감정이 생기기까지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우리는 알고 있을까? 그 해답을 이 책에서 기대할 수 있다.

 

 

 

어떤 일에 대한 판단과 인식에 관여하는 우리의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두 층위에서 작동한다. 의식이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의식은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의식 아래의 숨겨진 마음이다.

 

 

 

이 책의 제목 ‘새로운 무의식’은 프로이트가 연구했던 무의식과 구별된다. 프로이트는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환자들의 행동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정신적 과정에 지배될 때가 많다는 옳은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그것을 과학적으로 연구할 기술적 도구가 없었다. 오늘날에는 fMRI 등이 등장함으로써 과학자들은 뇌에서 벌어지는 일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무의식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오게 되었는데, 이런 연구 결과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새로운 무의식>이다. 그러니까 ‘새로운 무의식’은 프로이트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무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에는 여러 실험이 소개되는데, 각 실험을 통해 나타나는 결과뿐만 아니라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도 흥미롭게 읽힌다. 이 책의 특징이라면 각 장마다 그 주제에 맞는 금언을 넣어 읽는 재미를 더하게 만든 점이다.

 

 

 

 

밑줄긋기

 

....................

 

우리는 없던 일을 지어내서 기억한다 : 거짓 기억과 거짓 정보를 심는 것은 워낙 쉬운 일이라, 생후 3개월 된 영아, 고릴라, 심지어 비둘기와 쥐에게도 성공적으로 시도되었다. 특히 인간은 거짓 기억에 취약하다. 실제로 벌어지지 않았던 사건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짐짓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거짓 기억을 유도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 그는 그 사건은 “기억하되” 기억의 원천은 잊는다. 그래서 상상의 사건을 실제 과거로 혼동한다.(105쪽)

 

무의식은 감각이 제공하는 불완전한 데이터를 받아서 빈틈을 메우고, 그 인식을 의식으로 전달한다. 우리는 어떤 장면을 볼 때 사진처럼 선명하고 윤곽이 뚜렷한 그림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림의 작은 일부만 또렷할 뿐이고 나머지는 의식 아래의 뇌가 마음대로 그려낸 것이다. 뇌는 기억에도 그런 기교를 쓴다.(108쪽)

 

 

 

 

평가엔 무의식이 영향을 미친다 : 우리는 타인에 대한 자신의 평가가 합리적이고 의식적이라고 느끼지만, 사실은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인 과정들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212쪽)

 

이 발견 - 우리가 어떤 사람들과 어떤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더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 - 에서 자연스럽게 따라나오는 결론이 있다. 사람들은 사회적, 사업적 거래에서 내집단 구성원을 더 선호하고, 그의 작업과 결과물을 외집단 구성원의 것에 비해서 더 우호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비록 자신은 모두를 동등하게 대한다고 생각하더라도 말이다.(228쪽)

 

 

 

 

자신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 진화는 인간이 자신을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뇌를 설계하지 않았다. 인간의 생존을 돕도록 설계했을 뿐이다. 우리는 자신과 세상을 관찰한 뒤,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만 그것을 이해한다.(264쪽~265쪽)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 고등학교 최고학년 약 100만 명을 대상으로 했던 조사를 보자.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능력을 스스로 평가해보라고 했을 때, 100퍼센트(모두)가 자신을 평균 이상이라고 평가했고, 60퍼센트가 상위 10퍼센트로 평가했고, 25퍼센트가 상위 1퍼센트로 여겼다. 지도력에 대해서 묻자, 2퍼센트만이 자신을 평균 아래로 평가했다. 교사들이라고 더 현실적인 것은 아니었다. 대학교수의 94퍼센트가 자신은 평균 이상으로 일을 한다고 말했다. 심리학자들은 이처럼 자기 평가가 부풀려지는 경향성을 가리켜 “평균 이상 효과(above-average effect)"라고 부르며, 운전 실력에서 관리 능력까지 다양한 맥락에서 그 영향을 확인했다.(269쪽~270쪽)

 

이런 과대망상은 기업계에서도 법칙이나 만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사업가들은 자신의 회사가 동종업계의 다른 전형적인 회사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회사이니까.(270쪽)

 

 

 

 

우리는 과학자가 되기도 하고 변호사가 되기도 한다 :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진실에 이르는 길이 두 가지라고 말했다. 과학자의 길과 변호사의 길이다. 과학자는 증거를 모으고, 규칙성을 찾고, 관찰을 설명하는 이론을 구축하고, 그것을 시험한다. 변호사는 거꾸로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시키고 싶은 결론에서 시작하여 그것을 지지하는 증거를 찾아보고, 지지하지 않는 증거는 깎아내리려고 한다. 가끔은 객관적 진실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이 되고, 가끔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무의식적으로 열렬히 변호하는 사람이 된다. 두 접근법은 늘 겨루면서 우리의 세계관을 만든다.(273쪽)

....................

 

 

 

 

이 글의 마지막은 이 책의 표지에 있는 말로 마무리한다.

 

 

“자신이 하는 선택의 이유와 방식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가? 믈로디노프를 따라서 이 근사한 여행을 마치고 나면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 <인코그니토>의 저자 데이비드 이글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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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3-05-07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능력을 잘 모를 경우엔 과대평가하는 게 자신에겐 나은 것 같아요.
과소 평가해서 우울해하는 것 보단 과대평가해서 자신만만하다 보면 뭔가 진척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언제나 주춤하다 보면 길은 저만치 멀어져 있더라구요.
괜한 넋두리 페크 언냐께 하고 휘리릭~~

페크pek0501 2013-05-08 12:02   좋아요 0 | URL
최근 기죽었다가 괜찮아졌어요. 기죽지 않으려면 마음을 비우기, 가 답이더라고요. 마음을 비우면 비교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요. 마음 비우기 연습 중...
또 한 가지 필요한 것은 자신감인 듯해요.
과대평가할 수 있다면 본인에겐 좋은 것, 맞아요. 남들이 볼 땐 속터지려나요? ㅋㅋ
그래도 저도 저를 과대평가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우리에겐 착각이 필요한 듯...

저는 팜 님, 할 일이 쌓여 있는데, 진도가 느려서 늘 몇 박자 뒤처져 살고 있는 느낌이에요. 게획을 세우지만 실천은 반밖에 못해요.
영차, 영차!!! 팜 님이 좀 끌어 주시길...^^

수이 2013-05-08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는 음 역시 보통 사람들이 대개 갖고 있는 거였군요.
하지만 저는 살림에 있어서만은 역시 작아질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해도 늘지를 않네요. 후훗.
시엄마는 역시 이런 말씀을 하셨지만요.
"책 읽는 거 즐기는 것 절반이라도 보태서 살림을 즐긴다면
그런 소리는 못할텐데 -_-;;;;;"

애교에 있어서만은 역시 자신 있는지라 번번이 애교로 넘어가지만
역시 살림을 잘하시는 분들 보면 부러워져요 한없이 ^^;;

페크pek0501 2013-05-08 13:2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사람들은 자신을 과대평가해요... 저는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저만은 살아남을 것 같단 생각을 하는데, 이것도 일종의 과대평가예요. 나만은 운이 좋을 거야, 하는...

살림... 앤 님도 저와 같은 과의 분이시군요.ㅋ 저도 주부 경력이 몇 년인데 아직도 부엌에서 유능한 주부생활을 못해요. 반찬 만큼은 친정 엄마를 닮아서 곧잘 맛을 내지만 유능하게 척척 하는 게 아니라 끙끙 대며 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짧은 시간에 몇 가지의 반찬을 척척 해 내는 우리 시누이 형님 같은 분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감탄을 하지요.

애교... 저는 애교도 없어요. 후후~~

노이에자이트 2013-05-08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을 읽으면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됩니다.인간의 기억은 일종의 가공을 거쳐 형성되니까요.이것이 집단적인 기억이 될 때 무의식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 하는 것도 학자들 간에 큰 쟁점이고요.

페크pek0501 2013-05-08 13:29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입니다.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으면 이해가 되지요.

저도 제 기억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기장을 보고 알았어요.
일기장에 써 있는 것과 제 기억이 정반대여서요.ㅋ


프레이야 2013-05-09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끌리네요.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을 아는데
결국 마음에 품은 건 다 해내더라구요. 하지만 자기중심적인 성향이나 폭력성이
나타나는 경우를 봤어요. 놀랍더라구요. 모든 면에는 중도가 필요한 것도 같고요^^

페크pek0501 2013-05-11 14:07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었네요, 프레이야 님!
왜 이리 바쁜지 모르겠어요. 이번 달엔 행사가 많은데다 오늘은 친척 칠순잔치에
가야 하고 다음 주엔 절에 가야 하고...

중도, 중용의 자세가 제일 좋겠죠.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이 성공한 삶을 살 수 있겠고,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남들에겐
거부감을 갖게 할 수 있겠죠.
우리 둘째 애의 말에 따르면, 공부 잘하는 애들이 싸가지가 없대요. ㅋ
아마 성공한 사람들이 싸가지가 없을 걸요?ㅋ

자신을 과대평가하되, 남들 앞에선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할 듯해요. 그러니까 남들에겐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 하는 객관적 시각이 필요한 것 같아요.

좋은 봄날 보내시고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