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탄생 (양장) - 젊음의 업그레이드를 약속하는 창조지성
이어령 지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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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탄생’을 읽고 - 오리로도 보이고 토끼로도 보이는 건 생각의 힘


이 책은 77세의 저자가 ‘젊은이들에게 주는 메시지’로 읽혀지는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은 <젊음의 탄생>이지만 이것을 <생각의 탄생>으로 읽어도 무방하리라. ‘중요한 것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우리는 흑백논리와 OX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라는 본문의 글들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젊은이들에게 생각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며 기존의 생각을 바꿀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은 어찌 젊은이들에게만 중요하랴. 오늘을 사는 현대인 모두에게 중요하리라.


누군가에 대해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제일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바로 그가 갖고 있는 ‘생각’일 것이다. 외모나 직업, 학력도 그 사람을 파악하는 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생각’은 그 사람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생각이 훌륭한 사람은 훌륭한 행동을 할 수 있다. 생각은 행동의 씨앗이므로.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하는 문제도 따지고 보면 어떤 생각으로 살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생각에 따라서 아주 다른 인생을 살게 되기에.


저자가 독자들에게 힘주어 말하고자 하는 것 중, 핵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열정을 가져라 - “꿈을 향해 목숨을 건 그런 바보들이 역사를 만들어갑니다. 열정에 몸을 불사르는 그런 미치광이들이 사회를 바꾸어갑니다.”


둘째, 다양성을 중요시해라. - “하늘처럼 열린 공간에서는 모두가 각자 원하는 방향으로 날 수 있습니다. 360명이 360도의 다른 방향으로 달리면 360명 모두가 일등이 될 수 있지요.”


셋째, 질문을 해라. - “유대인들이 노벨상을 많이 타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질문하는 버릇을 어린아이 때부터 길러 준 가정교육 때문이라고 합니다.”


넷째, 창조성을 가져라. - “여름밤 아버지는 덥다고 창문을 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들어와서는 모기 들어온다고 창문을 닫으라고 합니다.(중략) (어떻게 할까요.) 망으로 된 창을 만들어 다는 것이지요. 바람은 들어오고 모기는 막아주는 이 방충망을 창조하는 것. 그것만이 분쟁 없는 공존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이 책에는 색다른 구성이 눈에 띄는데, 그것은 ‘매직카드’라는 것을 만들어 나눈 점이다. 카니자 삼각형, 개미의 동선, 매시 업, 지의 피라미드 등 아홉 개 제목의 매직카드는 각각 내용을 구분짓는 장(章)의 역할을 한다.


그 중에서 내 마음을 가장 끄는 것은 ‘개미의 동선’이란 매직카드에서 우리의 삶이 ‘우유성으로 가득 찬 숲’과 같다고 말한 부분이다. 여기서 우유성이란, ‘반은 규칙적이고 반은 우연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현상’을 일컫는다. 예상할 수 있는 것과 예상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살아가는 게 우리들의 삶이요, 그 현장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날쌘 사슴을 쫓아 경주를 하는 사냥꾼의 새벽 숲이야 말로 가장 우유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 또 축구가 사람들을 매혹하고 열광케 하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삶 그 자체처럼 우유성에 가득 차 있는 경기이기 때문이라는 것.


이것과 연결시킬 수 있는 게 ‘빈칸 메우기’라는 매직카드에서 인생을 ‘빈칸 메우기의 퍼즐’이라고 말한 부분이다. 삶의 반은 운명처럼 주어진 문자가 있고 그 옆에는 마음대로 자신이 써넣을 수 있는 자유로운 공백이 있다는 것.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운명처럼 정해진 부모와 관계를 맺는다. 또 성장하는 동안의 가정환경도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운명적인 것이다. 하지만 공부를 잘 하기 위해 노력한다든지 어떤 재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따라 삶의 좌표는 바뀌게 된다. 이것이 바로 ‘빈칸 메우기’이다. 빈칸 메우기는 삶을 변화시킨다. 축구경기처럼 결과를 알 수 없는 게 인생이기에 인간은 의욕적으로 살 수 있다. 만약 우리가 평생 정해져 있는 어떤 운명에 따라 살아간다면, 즉 빈칸 없는 삶을 산다면 얼마나 맥 빠지는 일인가.


“빈칸은 결핍이다. 그러나 결핍은 필요를 낳고 필요는 목표를 낳고 목표는 노력을 낳고 노력은 창조를 낳고, 창조는 당신의 젊음을 더욱 새롭고 찬란하게 만들어줄 것이다.”<177쪽>


“가르칠 것이 있다는 것은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이고, 부족함이 있다는 것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합니다.”<183쪽>


“산업사회의 열등생(우리나라)이 정보사회의 우등생이 된 것은, 양이 없고 땅이 없고 전력이 없고 부존자원이 없었던 빈칸이 만들어 낸 창조력 덕분입니다.”<187쪽>


저자는 자원의 ‘결핍’이 낳은 ‘발전’의 예로 우리나라를 들었는데, 이런 예를 개인의 삶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남보다 부족한 면이 있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경우는 실제로 아주 많다. 어떤 게임에서든 이긴 사람보단 진 사람이 그 다음의 게임에서 이기고 싶은 열망이 더 강한 법이다. 패배감을 맛본 자는 갈망으로 인해 더 많이 노력함으로써 전화위복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열등감이 오히려 성공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열등감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열등감의 또 하나의 좋은 점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만에 빠지지 않게 만드는 점이다. 자신도 약점이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약점이 있는 타인에 대해 무시하기보다 포용하는 아량을 베풀 수 있다.



이 책 속에 ‘오리토끼 그림’이 나오는데, 이것은 ‘오리’로도 볼 수 있고 ‘토끼’로도 볼 수 있는 그림이다. 오리로 보일 때엔 토끼 모습이 사라지고 토끼로 보일 때엔 오리가 지워지는 것이다. 이와 연관해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부자와 빈자 중 누가 더 행복할까. 만약 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부자가 찬이 많은 식탁에도 흥미가 없고, 빈자는 찬이 없는 밥상에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누가 더 행복할까. 언제나 할 수 있는 쇼핑에 권태를 느끼는 부자와 월급날에만 즐겁게 쇼핑할 수 있는 빈자 중 누가 더 행복할까. 어느 쪽이 더 행복할 거라고 확신하는 게 가능하긴 할까. ‘오리토끼 그림’처럼 생각의 각도에 따라서 사물은 얼마든지 다르게 보이는데….



각자의 생각에 따라서 희극의 무대에서 살 수도 있고 비극의 무대에서 살 수도 있는 게 인생인 것 같다. 비극적인 일로 느껴지는 것도 생각의 각도를 바꾸어 다시 바라보면 희극적인 일로 생각되는 경우가 우리 삶에 많으니까. 이렇게 비극도 희극으로 변화시키는 건 발상의 전환, 곧 생각의 힘이다. 그래서 ‘생각’에 대한 글이 많은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저자를 처음 만난 것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이 책 서장에 씌어진 ‘풍경 뒤에 있는 것’이란 글을 아직도 수작으로 기억하고 있다. 한국인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확하게 표현한 저자의 글들에 감탄하곤 했는데, 그때의 글들에 대한 기억으로 <젊음의 탄생>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마음이 젊어지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연령에 상관없이, 보다 높은 곳을 향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유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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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남는 글


- (그 그림은) 오리로 보일 때에는 토끼 모습이 사라지고 토끼로 보일 때에는 오리가 지워집니다. 언제나 둘 중에서 어느 하나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지요. 관점이라는 것은 내 마음 안에 품고 있는 자유이면서도 때로는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편으로 쏠리는 편향성을 갖게 됩니다. 쏠린다는 것은 선택한다는 것이고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한쪽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98쪽>


- 우리가 익혀야 할 진정한 지식과 진리는 오리-토끼 그림처럼 항상 양면성을 띠고 있는 모호한 도형 같은 것이기 때문에 고정 시점처럼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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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24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보리스 디오도로프 그림, 박형규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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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 사람은 타인의 도움으로 사는 것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동화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작품이다. 혼자가 아닌,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인생의 의미를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은 천사가 인간으로 변신되어 가난한 구두장이 집에서 8년째 머물면서 겪는 이야기다.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은 천사는 하나님이 말한 세 가지 문제의 답을 알게 되는 날에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세 가지 문제란, 인간 안에 무엇이 있는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이다.


첫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된다. 추운 겨울날, 가난뱅이 구두장이가 벌거벗은 젊은이(천사)를 불쌍한 사람으로 여기고 집에 데려온다. 그의 아내는 낯선 거지(천사)와 함께 귀가한 남편이 못마땅하여 화를 내다가 어느 새 이 남자(천사)가 가엾게 느껴져 계속 돌봐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다. 그것을 알게 된 천사는 인간 안에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세 가지 물음 중 첫 번째 답을 구한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구두장이 가게의 직공으로 일하게 된 천사가 한 신사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가게를 방문한 신사는, ‘1년을 신어도 찢어지지 않고 모양이 변하지 않는 구두’를 주문한다. 천사는 그가 그날 해가 지기 전에 죽는다는 것을 예견할 수 있었다. 이때 두 번째의 답을 구하게 된다. 즉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자기 육체에 무엇이 필요한가를 아는 것’이었다. 그 신사에게 필요한 것은 구두가 아니라 죽은 사람이 신을 슬리퍼였는데, 그 신사는 자신이 잠시 후에 죽으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한 여인이 쌍둥이 아이들의 구두를 맞추러 가게에 왔을 때 이어진다. 천사는 그 애들이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녀는 두 아이의 생모가 아니었다. 생모는 6년 전 쌍둥이 딸을 낳은 후 죽었다. 그때 천사는 아이들의 아버지도 죽고 없는데 홀어머니마저 죽었으므로 고아가 된 두 쌍둥이가 살아가지 못할 거라고 추측했었는데, 6년 뒤에, 한 여인이 두 아이를 맡아 정성을 다해 키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여인은 이웃집 사람이었는데 생모가 죽자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키우며 살았던 것. 천사는 이때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깨우친다. 이것이 세 번째 물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이다.


6년 전, 천사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벌을 받아 인간 세상에 내려온 것이었는데, 바로 쌍둥이 아이들을 낳은 여인(생모)의 영혼을 데려오라는 게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즉 생모를 죽게 하는 게 천사의 임무였다. 그 명령에 따르기 위해 그 여인에게 가 보니, 방금 쌍둥이 아이들을 낳았던 것이다. 그 여인은 천사가 자신의 영혼을 데리러 온 죽음의 천사인 줄 짐작하고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 천사님! 제 남편은 숲 속에서 혼자 일하다가 나무에 깔려 죽어 며칠 전에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나는 형제도 없고 큰어머니도 또 할머니도 없기 때문에 갓난아기를 돌볼 사람조차 없습니다. 제발 내 영혼을 불러 가지 마시고 이 아이들을 제 힘으로 키우게 해주세요. 부모 없는 아이들은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천사는 차마 그 가엾은 여인의 영혼을 빼앗아 가지 못했으나, 하나님이 다시 분부하여 할 수 없이 여인의 영혼을 빼앗아 갔던 것이다. 결국 여인을 죽게 하긴 했지만 하나님의 처음의 명령을 거역한 죄로 천사는 벌을 받아 인간 세상에서 살게 되었던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천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나는 깨달았다. 모든 사람 각자가 자신의 일을 걱정하고 애씀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 실은 사랑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사람은 사랑(타자의 사랑)에 의해 살아가는 것’임을 우리에게 강조한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인간은 타인의 도움에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나는 특히, 하나님이 말한 문제 중 두 번째 문제인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자기 육체에 무엇이 필요한가를 아는 것’이라는 점에 생각이 길게 머문다.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어 그날의 죽음을 앞두고도 1년간 신을 구두를 주문한 신사의 모습은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는 미래를 보는 눈이 없는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혼자의 힘으로 살 수 없다. 죽고 난 뒤 장례식조차 타인의 손을 빌려야 한다. 이것은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단 하루라도 혼자의 힘으로 사는 게 가능한 일이던가. 누군가가 땀 흘려 일해 지은 집에서 살고, 누군가의 노고로 수확한 쌀로 밥을 먹고, 누군가의 수고로 만든 옷을 입고 사는 나.


내 주위를 둘러보니 텔레비전, 컴퓨터, 휴대전화 등, 빈손으로 태어나 가진 게 아주 많다. 모두 그것들을 만든 타인의 덕분이다. 그들이 돈을 벌기 위해 그런 것들을 만들었다고 할지라도 그로 인해 누군가가 유용하게 사용한다면 그것으로 사회에 공헌한 것이 되겠다.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은, 그런데 나는 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그저 내 인생을 위해 살고 내 가족을 챙기는 일에만 급급해 하며 사는 것은 아닐까, 만약 끝까지 그렇게 산다면 결국 개인이기주의와 가족이기주의로 생을 마감하는 게 아닐까, 세상에 태어나 타인의 도움으로 이 만큼 누리며 살고 있는 나도 뭔가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데에 기여하고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것 같은데….


사회 공헌이라는 것을 그리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내가 한 작은 일로 누군가가 도움을 받았다면 그것도 역시 사회에 기여한 것이 될 터. 자원봉사를 하거나, 불우이웃돕기의 성금을 내거나,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면 모두 좋은 세상 만들기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한 것이리라.


앞으로의 삶의 모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이 작품은 독자에게 유익한 시간을 주리라 믿는다. 영국 속담이 떠오른다. ‘한 사람이 못을 박으면 다른 사람은 그 못에 모자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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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2009-10-26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우리는 혼자 살아가는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데 그걸 잊고 이기적으로 살 때가 너무 많아요.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어요.

페크(pek0501) 2009-10-26 12:33   좋아요 0 | URL
옹달샘님은 착하셔서 아름다운 작품 쓰실 수 있을 거예요. 큰 성과 있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 - 마광수 문화비평집
마광수 지음 / 에이원북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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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

마광수 지음 / 에이원북스


“고정관념의 사슬을 슬쩍 풀게 하는 기회를 제공”


나와 다른 생각의 글을 읽는다는 건 하나의 기쁨이다. 뻔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충격적이어서 새롭고 새로워서 충격적인 저자의 글을 따라가노라면 어느새 낯선 여행지에 가 있는 느낌이다. 난 이 느낌이 좋았다.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 이 제목부터 평범치 않다. 모든 사랑은 그저 사랑일 뿐, 거기에 불륜이란 말이 끼어들 수 없다는 것. 그러므로 모든 사랑은, 설사 기혼자의 외도라 할지라도 도덕적 잣대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결혼제도는 마땅히 없어져야만 할 악이다. 굳이 둘이 살려면 계약동거가 차라리 낫다. 그러나 프리섹스의 실천만이 인류를 권태와 가학의 질곡에서 구해줄 수 있다.<p22>


나는 결혼제도 자체를 혐오하지만, 결혼제도를 유지하면서 성적 쾌감을 권태감 없이 ‘불륜’을 통해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스와핑 섹스도 썩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p35>


저자가 말한 핵심은 기혼자 남녀 모두 각자 연인을 두어도 무방하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마음의 돌을 던질 독자가 많을 듯하다. 하지만 생각하기 나름일 것 같다. 나는 프리섹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첫째, 인간은 이성이 아닌, 감정대로 움직일 때가 많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결혼이란 제도는 불합리하며, 인생은 부조리하다. 그러니 이혼이나 불륜과 같은 문제가 생기는 건 당연하고, 인간의 어떠한 잘못도 무죄인지 모른다. 단 타인에게 큰 피해가 없는 한, 이란 단서가 붙어야 하겠지만.


둘째, 한 연구에 따르면, 결혼하는 순간을 사랑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로 가정한다면, 2년 후 그 사랑의 강도는 반으로 줄고, 그로부터 다시 2년이 지나면 남은 사랑의 열기는 또 반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그래서 세계 공통으로 결혼 4년째가 가장 이혼율이 높다고 한다. 이 점을 생각할 때 한 사람과 평생을 살아야 하는 오늘날의 결혼제도는 다른 형태로 바꾸는 일에 대한 검토의 필요성이 충분히 있다.


셋째, 어떤 사물에 대한 평가는 그 시대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겠다. 가령 일부다처제가 악덕이 아닌 시대가 우리에겐 분명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을 좋게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미래엔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지 알 수 없다. 프랑스의 미래학자 파비엔 구보디망에 의하면, 평균 수명이 120세가 되는 2070년에는 평범한 사람도 평생에 두세 번 이상 결혼하게 된다고 한다. 아마 그때의 결혼제도는 지금의 그것과 매우 달라서 평생 이혼하지 않고 한 명의 배우자와 사는 사람이 오히려 화제가 될 것 같다.


저자는 다른 저서 <이 시대는 개인주의자를 요구한다>에서 ‘사랑은 언제나 비밀스러운 것이고 개별적인 것이고 또한 동시에 본능적인 것이다. 어설픈 정신분석이론이나 사회학적 이론이 거기엔 통용되지 않는다.’라고 이미 쓴 바 있다. 사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 개인적인 성향의 연애생활에 누가 왈가왈부할 수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볼 때 ‘간통죄’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엔 긍정적인 아닌, 부정적인 시각으로 생각해 보았다. 기혼자가 프리섹스를 할 경우, 처음엔 강한 유혹에 끌려 불륜을 행하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후회와 자책으로 괴롭지 않을까, 자신에 대한 자긍심 없이도 인간은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런데 이것은 그런 연애가 비밀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데, 이 역시 우리의 생활에 익숙한 고정관념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어쩌면 그런 류의 고정관념을 깨기만 한다면 인간은 지금보다 더 많이 행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을 나누는 것이 왜 나쁜가,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행위가 왜 나쁜가,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불륜을 보는 시각도 달라질 듯싶다. 아니 ‘불륜’이란 말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말해 주듯이.


저자는 문학을 ‘금지된 것’에 대한 끝없는 도전이라고 보는데, 나 역시 문학이 그 영역에 머무를 때 강한 생명력이 있다고 본다. 결국 문학은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아야 행복할까 하는 문제 제기이며, 바람직한 세상 만들기가 궁극적 목적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연히 옳다고 생각하는 기존의 성문화를 진지하게 검토함으로써 ‘금지된 것’에 닿으려는 노력은 성과를 떠나서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리라. 현실적으로 외도하는 남편들이 많은 것은 한 사람의 배우자와 평생을 사는 게 본능적으로 불가능함을 말해 준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자유로운 성문화의 추구는 어쩌면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나는 저자의, 파격적이고 때로는 비상식적인 생각들을 무조건 틀렸다고 보는 시각이 아닌, 유연한 사고를 하는 시각으로 보고 싶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한데 너무 시대를 앞서서 보고 있군, 하는 정도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하지만 현재로선, 미래에 자유로운 성문화가 생길 것이라고 인정한다고 해도 ‘부부 각자가 서로에게 새 연인이 생겼음을 축하해 주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건 아주 불가능해 보인다. 그저 저자가 이런 문제를 우리에게 하나의 논란거리로 제공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작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우리는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 새로운 생각을 흡수해야 한다. 되도록 나와 많이 다를수록 그 새로움은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만약 그 새로운 생각에 동의할 수 없어 비판의식을 가지고 보게 된다면 그것 자체로도 유익하다. 이런 점에서 저자의 독특한 세계관을 만날 수 있는 이 책은 소중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약점일 수 있는 것에 대해 말하련다. 오래 전에 쓴 글들이 눈에 띄는데, 심지어 1987년에 쓴 글도 들어 있다. 처음엔 이런 점에 실망했는데, 곧 생각을 수정하게 되었다. 오래된 글이라고 해도 현재에도 그 내용이 유용하다면 발표할 수 있다는 것과, 또 오래된 글이라고 해서 그 가치가 떨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오래된 글이어서 더 가치를 두는 게 문학의 고전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오래된 글에도 몇 년도에 썼는지를 정직하게 밝혀 둔 점에 좋은 점수까지 주게 되었다.


이 책은 읽을 만한, 꽤 괜찮은 책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로 하여금 고정관념의 사슬을 슬쩍 풀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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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선민 2009-06-04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선민이 입니다.
역시!!! 선생님이시네요.♡ 좋은글이 많은 것 같아요.
앞으로도 좋은글 자주 써주세요~!많이, 많이 들릴게요.
댓글...달아주시는 쎈쑤~♥선생님께는 충분히 있을 것이라고 믿겠습니다.
가르쳐 주셔서 감사하구요 사랑합니다.

페크(pek0501) 2009-06-05 14:24   좋아요 0 | URL
오, 선민이가 드디어 들어왔군. 찾느라 수고많았어. 어떻게 하면 수업을 재밌게 진행할까 생각하곤 하는데, 우리 학생들이 오히려 재밌게 수업에 임해 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글쓰기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우리 학생들이 알았으면 해. 그럼 다음 수업시간에 보자, 반가웠어.
 
광고 속의 성차별
박은하 지음 / 소통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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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속의 성차별

박은하 지음 / 소통


“남자가 차도 쪽으로 걸어야지. 사랑하는 여잘 지켜주잖아, 라고 말하는 것도 성차별?”


광고는 오늘날 대중의 행동과 유행의 문화를 만들기도 할 만큼 그 영향력이 크다. 여러 광고 중에서도 특히 텔레비전 광고는 매일 접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우리 가까이에 있다. 우리가 텔레비전 광고를 별 생각 없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정신세계는 분명, 광고의 어떤 면을 닮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광고를 만드는 사람이나 광고를 보는 사람이나 모두 올바른 광고 문화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제목에 끌려 구입한 책인데, 사고 보니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부분적으로 고쳐서 낸 책이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책이다. 텔레비전 광고를 1980년대, 1990년대, 2006년 등 세 시기로 나누어 성차이어와 성차별어를 각각 찾아 구분하였고, 그것들에 대한 설문지를 만들어 수용자들의 인식 정도를 파악하였다. 수용자들이 얼마나 성차이어와 성차별어를 인식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성인 등 총 240명에게 설문지를 주고 질문에 응답하도록 하여 그 결과를 분석하였다.


‘성차이어는 남성과 여성이 다르듯 성에 따른 언어 사용이 다를 수 있다는 맥락에서 그 존재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차별어는 성차이어와 달리 일상에서 별다른 의식 없이 언어를 사용하다가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누군가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문제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p235>’고 저자는 말한다.


여 : 윤선생은 자기 힘으로 할 수 있게 해 주니까. 영어가 습관이 되더라고요.<윤선생영어교실 광고, 2006>


위의 밑줄 친 말처럼 여자의 말인지 남자의 말인지 알 수 있는 것이 성차이어다.


이와 다르게 성차별어란 한 성의 어떤 행위들을 다른 성의 같은 행위들과 관련하여 특징짓고 제한하기 위해 사용되는 언어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여 : 애들 건 엄마가 직접 골라줘야 안심이잖아요.<음료 카프리썬 광고, 2006>


위와 같이 일과 관련하여 성 역할을 차별적으로 묘사한 경우, 성차별어가 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선 성차별어의 분석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해 놓았다.

1) 일과 관련하여 성 역할을 차별적으로 묘사하기

2) 여성의 외모를 강조하고 성적 대상으로 묘사하기

3) 남녀의 행동이나 성품을 차별적으로 묘사하기

4) 여성을 비하하여 부정적으로 묘사하기


우리는 성차별어를 얼마나 판가름할 수 있을까. 예를 들면 ‘동네 슈퍼 박 사장님, 편의점 김 양아!’라는 광고 사례를 보고 성차별이라고 떠올릴 수 있을까. 우선 여기서 남자에겐 ‘사장님’이라고 하고 여자에겐 ‘양’자를 붙여 남녀의 신분 차이를 드러낸 점에서 이것은 명백한 성차별어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박 사장님’이란 호칭에서 우린 왜 박 사장이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했을까 하는 점이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있는 정보가 없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바로 ‘남자를 부를 때는 공적인 호칭을 잘 사용하나 여자를 부를 때는 이름이나 사회적인 신분을 나타내는 직위로 호칭하지 않는 경향<p205>’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또 ‘사람(남자, 여자)을 나타낼 때 주로 남자를 대표로 해서 표현<p221>’되기 때문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여자가 하는 일에 대해선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남자가 차도 쪽으로 걸어야지. 사랑하는 여잘 지켜주잖아.” 라고 남자가 여자에게 말한다면 성차별일까? 여기서 여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안전하게 하기 위해 인도 쪽으로 걷게 하고 남자인 자신이 차도 쪽으로 걷는 것, 그 자체는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 그런데 여자를 보호해야 할 약한 대상으로 생각하고 그런다면 문제가 된다. 여성을 남성보다 약한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남성이 보호자의 위치에 놓이게 되는데, 이는 곧 남성이 여성보다 우위에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차별이 되는 것. 자신이 누구보다 우위에 있는 존재로 여기게 된다면 그 인간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평등관계가 아닌 상하관계가 될 터, 이것은 가부장제와 다를 바가 없다.


여기서 나온 결과를 보면, 우리가 예상할 수 있듯이 성차별어에 대한 인식은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남성들의 성차별 인식 부족으로 인해 그 피해자는 여성일 수밖에 없음을 말해 준다.


여자가 살림만 잘 하면 됐지.

너는 여자인데 제사에는 뭐 하러 끼냐?

여자가 뭐 하러 (밤늦게) 싸돌아 다니냐?


이런 말들을 하는 남성들로 인해 여성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일은 앞으로 없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성차별이 없는 사회, 즉 남녀평등이 실현되는 사회가 되면 남자에게 불이익이 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남자들을 위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남녀평등은 여자만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남자도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 그러므로 여성 해방이 아닌, 양성 모두의 해방이라는 것. 한 가지의 예를 들면, 한 가정의 경제상태의 모든 책임을 남성에게만 부담하게 하는 세상이 아닌, 남성과 여성이 함께 공평하게 책임을 지는 세상이 된다면 남성들의 무거운 어깨가 지금보다 가벼워지지 않겠는가. 또 하나, 여성이 불평 없이 행복해야 그 옆에 있는 남성도 행복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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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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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지음 / 청미래


“한 번 만난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건 사랑일까 착각일까”


열정과 사랑을 구분할 수 있을까. 나의 사랑이 변하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대방이 변하기 때문일까. 사람에 따라 사랑의 개념도 각기 다른가.


우리는 사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어쩌면 사랑을 모르는 채 잘 안다고 착각하고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사랑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조금 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도(道)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라는 노자의 말의 형식을 빌려 말하면 ‘안다고 말하는 것은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반대로 ‘무엇에 대해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잘 모르겠다’라고 말한다면, 이제 제대로 알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어떤 것에 대해 알기 시작하면 헷갈리는 법이니까.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젊은 시절에 연애 경험이 있고 그동안 연애소설도 많이 읽었는데도, 이 책 속엔 내가 새로 알아야 할 ‘사랑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가득 차 있었다.


토머스 프리드먼(퓰리처상 수상 작가)에 의하면 ‘좋은 글이란 좋은 글과 좋은 분석이 결합된 것’이라고 한다. 나 역시 좋은 글은 좋은 분석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소설은 저자가 특유의 통찰력을 가지고 사랑에 대하여 분석하는 기법으로 썼는데, 그 분석은 탁월하다. 여기에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칸트, 몽테뉴, 스탕달 등의 이론까지 끌어들인 점은 매우 흥미롭다. 그래서 장르는 연애소설이지만 사랑 이론서 같이 읽혀진다. 두 남녀의 연애과정을 보여 주며 그 사이 사이에 사랑과 연애에 관한 이론적인 글들을 끼워 넣고 있다.


화자(남자 주인공)는 처음 만난 클로이라는 여자를 그날로 사랑하게 된다. 이렇듯 사랑은 상대방의 실체를 정확히 알기도 전에 분별없이 시작될 때가 많다. 이런 걸 진정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상대방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한 뒤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 상대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당신이 지금 나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내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p85>

 

화자가 클로이를 처음 만난 장소는 비행기 안이다. 둘은 서로의 옆자리에 앉게 된다. 화자는 클로이와 자신이 옆자리에 앉을 이론적 확률을 계산한다. 이 수치는 둘이 만나기 무척 힘든 확률을 말하므로 그만큼 둘의 인연이 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사랑이 시작되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사랑에 빠지는 일이 이렇게 빨리 일어나는 것은 아마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에 선행하기 때문일 것이다.<p27>


인간은 연애하고 싶어 하고 그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누군가를 사랑하길 재촉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을 사랑한다기보다 연애(또는 사랑)를 사랑하는 경우도 생기리라.


(중요한 것은)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나는 그녀에게 누구인가?였다.<p49>


이와 같이 사랑하게 되면 상대방의 눈을 통해 나 자신을 보게 된다. 그래서 옷을 입을 때조차도 내가 그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하며 거울 보며 점검을 한다.


몽테뉴는 말했다. “사랑에는 우리를 피해서 달아나는 것을 미친 듯이 쫓아가는 욕망밖에 없다.” 아나톨 프랑스 역시 “우리가 이미 가진 것을 사랑하는 것은 관례적이지 않다”는 말로 같은 입장을 보여 주었다. 스탕달은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기초로 해서만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p92>


그래서 상대방의 애매모호한 태도는 사랑에 더 빠지게 만든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이 허락할 듯하면서도 허락하지 않을 때 애가 더 타는 법이다.



소설 후반부에 이르면 뜻밖의 반전이 일어난다. 클로이에게 새 연인이 생겨서 두 사람이 이별하게 되는 것. 그런데 클로이가 새로 사랑하게 된 사람은 화자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바로, 함께 만난 적이 있는 자신의 친구였던 것. 클로이에게서처럼 사랑의 유효기간은 그리 길지 않은 게 사랑의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하지만 그래서 사랑은 더 달콤한 게 아닐까. 꽃이 아름다운 건 꽃 피운 시간이 짧기 때문이듯이.


여기서 재밌는 건 화자의 유머러스한 해석이다. 그녀가 (완벽하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녀의 취향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이 정말로 그렇게 멋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p76>’하고 의문을 갖는다. 그런데 그녀와 이별하게 된 뒤엔 이렇게 생각한다. ‘그녀가 나를 찬 것은 나에게 결함이 많다는 증거라기보다는 그녀가 근시안적이라는 표시였다.<p289>’


사랑에 대해 이만큼 파헤친 저자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소설이 저자의 처녀작이며 그때 나이가 스물다섯 살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이 책이 사랑에 관한 총체적인 것을 보여 준다고 할 수는 없다. 어차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안다고 할 때 우리는 부분을 통해서 전체를 해석할 수밖에<p181>’ 없기 때문에, 저자 역시 사랑에 관한 몇 가지의 분석으로 사랑 전체를 이해한 것일 따름이니까. 하지만 사랑 전체를 숲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적어도 그 숲의 나무 몇 그루에 대해선 확실히 파악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독자에 따라서는 이 책의 어떤 내용에 반론을 제기하며 읽을 수도 있을 텐데, 그것도 유익한 독법일 것이다. 예를 들면 ‘상대가 우리더러 마음대로 살라고 허락한다면 그것은 보통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p108>’라는 글에 독자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사랑의 반대말을 무관심이라고 생각한다면 위의 말이 맞다. 하지만 상대가 자유로워져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런 자유를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면 위의 말은 틀린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랑은 ‘상대가 행복에 겨워 웃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것을 실천하는 일은 어렵다. 만약 그렇다면 상대에게 새 연인이 생겨 행복해 하는 모습에도 축하를 해줘야 한다는 결론인데, 이건 인간으로서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난 이 책을 사랑에 대해 잘 안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안다고 말하는 것은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닐 수 있으니까. 무엇을 완전히 안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삶을 살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조차도 모를 때가 많지 않던가.


문학작품에서부터 대중가요 가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이 ‘사랑’에 관한 것이다. 그만큼 사랑은 우리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뜻이겠다. 그러므로 사랑을 아는 것은 마치 우리 삶의 비밀 중 절반 이상을 아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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