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허영심의 좋은 점

 

 

P부인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서울 거리 거리, 골목 골목을 헤매었다. 불쌍한 거지들을 찾아다니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하면 불쌍한 사람들에게도 탄일에 기쁨을 알릴 수가 있을까?” 이런 생각으로 P부인은 단 하루저녁만이라도 불쌍한 이들을 위해 따스하고 맛있는 음식이 있는 자기 집을 열어 놓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난로에 불을 피우고, 뜨끈한 국과 밥을 장만하고, 포근포근한 융으로 만든 속옷 한 벌씩을 주려고 준비해 놓고는, 거리에 나와 불쌍한 사람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문둥이를 만날 때엔 아무리 불쌍하긴 해도 우리 집으로 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불쌍한 사람 중에도 비교적 몸이 깨끗한 사람을 붙들고 크리스마스에 자기 집에 오라고 친절히 말해 주었다.

 

 

크리스마스날 저녁, P부인의 집엔 절름발이, 곰배팔이, 소경, 늙은 것, 어린 것 할 것 없이 모두 모였다. P부인은 밤이 깊도록 손님 대접에 최선을 다했다. 거지들은 속옷 한 벌씩을 얻어 입고 맛있는 음식이 잘 차려진, 눈이 부신 식탁에 둘러앉아 후한 대접을 받았다. P부인은 나중에는 사진사를 불러다가 쾅 하고 사진까지 찍고 손님들을 보냈다.

 

 

P부인은 자기 방으로 올라와서 바로 침대에 엎드려 감사하였다. 이렇게 기쁘고 의의 있게 크리스마스를 지내보기는 처음이라고 스스로 감격해 눈물까지 흘렸다. 그리고 사진을 많이 만들어 여러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보낼 것을 기뻐하며, 천사 같이 평화스럽게 잠들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 천사 같은 P부인의 가슴속엔 뜻하지 않은 분노의 불길이 폭발하였다. 그것은 다른 게 아니라 그가 자기 몸뚱이처럼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새 자동차 안에서 엊저녁에 왔던 거지 중에도 제일 보기 흉한 늙은 것 하나가 얼어 죽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태준 작가의 소설 ‘천사의 분노’는 이렇게 끝난다.

 

 

이 소설은 속 다르고 겉 다른 인간의 이중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소설을 인간에게 내재된 허영심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그래서 내가 주목한 것은 P부인의 허영심이다.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기던 P부인은 급기야 자신이 아끼던 자동차가 시체로 인해 더럽혀진 것을 보고 가식적이었던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고 만다. P부인은 '진실처럼 보이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가면을 쓴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 스스로 훌륭한 일을 했다고 여기는 허영심, 그리고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허영심 때문이다. 사진을 많이 만들어 여러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보낼 것을 기뻐했다는 게 자신이 훌륭한 일을 한 것에 대해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임을 증명한다.

 

 

데일 카네기의 <카네기 인간관계론>에 따르면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데일 카네기는 “중요한 존재가 되려는 소망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뿌리 깊은 욕구.”라고 말한 존 듀이와 “인간 본성의 가장 끈질긴 욕망은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한 윌리엄 제임스의 말을 인용하여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욕구이며, 인간이 문명 자체를 진전시켜 온 것도 바로 이러한 욕구 때문이라고 하였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안락(安樂)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허영(虛榮)이다. 그러나 허영이란 항상 자신이 주위로부터 주목을 받고 시인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신념(信念)에 기초한다.”라고 하였다.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허영심에 대해 우선 부정적으로 볼 수 있겠다. 이 욕구로 인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살게 된다. 직업을 선택할 때조차 자신이 원하는 직업보다 남들이 인정해 주는 직업을 선호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무시하고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에 집착하며 살기 때문이다. 만약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허영심이 지나치게 커지면 그 욕구를 위해 못할 일이 없게 되어 남의 삶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까지 파괴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에게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허영심이 없다면 현재 자선을 베푸는 사람 수가 감소하지 않을까 싶다. 자선기금을 내놓는 사람의 명단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기로 한다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예상하는 것이다. P부인처럼 자기 스스로 훌륭한 일을 했다고 여기는 허영심, 그리고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허영심 때문에 선행을 베푸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말이다. P부인 역시 그런 허영심 때문에 불쌍한 사람들을 집에 초대해서 후하게 대접하는 선행을 베풀지 않았던가. 이런 게 허영심의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에게서 좋은 평판을 듣고 싶은 허영심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다.

 

 

 

 

* 어느 플랫폼에 연재하고 있는 칼럼 23번째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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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넣은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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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5-17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P부인은 그래도 좋은 사람이네요. 요즘엔 다들 바쁘고 살기에 바쁘다고 해서 누군가를 돕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아서요.
페크님, 오늘 서울은 30도 가까이 되는 날씨라고 하는데, 많이 덥지는 않으신가요.
5월은 이제 여름이 되어버린 것처럼 더워지는 하루입니다.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9-05-18 21:45   좋아요 1 | URL
그렇죠? 그런 허영심은 있어도 될 것 같지요?

정말 요즘 서울이 많이 덥습니다. 반팔을 입고 다녀도 될 정도예요.
벌써부터 올 여름의 폭염을 어떻게 견뎌낼지 겁이 납니다. 내일은 전국 비 소식이 있는 것 같은데 비가 기다려지네요.
서니데이 님도 남은 푸른 5월을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아직 여름이 시작된 건 아니니 즐기자고요. 댓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 방문자 수가 왜 469명일까요? 토요일에 방문자가 많이 들어오는 이유는 뭘까요? 궁금합니다. ㅋ)

서니데이 2019-05-18 21:55   좋아요 1 | URL
좋은 글을 쓰셔서 더 많이 오셨나 봐요.
페크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9-05-18 22:00   좋아요 1 | URL
설마요... ㅋ 우리 딸에게 말했더니 전산 오류라고 합니다.
새 글이 있어서 방문자 수가 많을 수 있으나 새 글도 없는데 그런 건
아무래도 오류 같습니다.

굿 밤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