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비의 생각>03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출간을 기념하여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주관, 웅진씽크빅 산책자 후원으로 조촐한 좌담회가 지난 2009년 12월 22일 화요일 저녁에 열렸습니다. 

패널엔  

송인혁 (연세대 국문학 석사과정) / 

한윤형(『뉴라이트 사용후기』저자) / 

엄기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이  

사회엔 한보희 당대비평 기획위원이 

정리는 저(얼그레이효과), 김신식 당대비평 책임간사가 했습니다. 

1부, 2부로 구성했는데, 

오늘은 1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의 의미와 파장', 책에 대한 관련 소감'을 올렸습니다.   

2부 용산 참사의 의미와 2010년 한국 정치 전망은 2월 1일에 업데이트 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http://dangbi.tistory.com/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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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에 대학원 종합시험에서 시험비용을 내지 않을 생각이다. 이 문제를 갖고 몇 친구들이 학교측에 항의를 했지만, 결국 무성의한 답변만 듣고 말았다. 

종합시험을 내기 위해 드는 비용은 총 6만원이라고 한다. 각 항목 당 출제비용 및 조교 감독비 등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데, 나는 종합시험이라는 것이 엄연히 정식 학기 내 커리큘럼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왜 이 시험을 보는데 비용이 지불되는 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며, 지금도 그렇다. 

내가 다니는 대학원은 원래 두 대학원이 통합되어, 이전의 일반대학원이었던 A대학원이 특수대학원으로  바뀌었다. 일반대학원이었던 A대학원은 종합시험 비용을 그동안 내지 않았는데, 특수대학원으로 변화, 통합되면서, 기존의 A대학원생들은 종합시험 비용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작년에 뜻있는 A대학원생 한 분이 용기를 내어, 교학과측에 정당한 항의를 했지만, 교학과측은 나몰라라 하는 투로, 대충 알겠다는 어조로 얼버무렸으며, 다음 학기 때부터는, 종합시험비용을 내지 않을 수 있다는 답변도 들은 것으로 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결국 그 답변은 묵과되었고, 이번에도 종합시험비용을 내게 된 상황이 발생했다. 

이번에도 친구들이 종합시험비용을 왜 내야 하는지, 교학과 측에 따졌으나, 교학과 측은 웃기게도,학교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의 선물을 사기 위해 비용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정말 이 상황에서 분노를 안 느낄 사람이 있을까. 학교 측은 지난 번에  등록금 항목에 학생들이 모르는 내역이 붙었을 때도, 그것을 공개하라는 나의 항의에 대해 성의없는 자세를 보였다. 학교 홈페이지에 가서 항목을 확인해 보라는데, 그것은 대학정보공개제도를 통해 나타나는 개략 정보였던 것이다.  

대학원사회는 다들 알다시피, 정치가 없다. 진보니, 좌파니, 민주주의니, 신자유주의니, 논문에는 수업시간에는 신랄하게 그리고 열정적인 태도로, 자신의 에너지를 쏟는 사람들이 결국 현실에서는 그게 뭐야라고 조용히 있다. 이건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라는 건 입이 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나는 대학원 사회의 이 한심한 상태에 대해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바닥까지 가는 각성과 성찰을 해야 함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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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10-01-16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학원 다니던 시절에, 내야 했던 각종 비용들 아주 아깝습니다. 종합시험본다고, 논문심사한다고, 지도한다고 별도로 돈이 들어가는데, 화나더군요. 마지막에는 졸업 까운까지 돈 내라고 해서 까운 안 입고 사진도 안 찍었습니다. 졸업장만 낼름 받아가지고 왔죠. 대학원 비용도 장난이 아닌데, 여러 항목으로 돈을 뜯어먹으려 드네요.

얼그레이효과 2010-01-17 18:55   좋아요 0 | URL
아프락사스님, 저도 졸업 때 그럴려고 합니다.^^;

qualia 2010-01-16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강도가 따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준)불법적인 작태가 대학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그것도 대학생/대학원생들을 상대로, 벌어지고 있다는 게 정말 분노스럽습니다. 불의에 끝까지 항거하시고, 절대로 시험비용 내지 마시길 바랍니다. 제발 저린 놈들은, 뒤가 구린 놈들은, 분명 따로 있고, 적법하고 준열하게 항의하고 파고들어가면, 저놈들 분명 깨갱거리고 꼬리를 내릴 것입니다. (준)사기고, (준)불법이고, 엉큼한 편법입니다. 대체 대학본부 측은 뭐한답니까? 대학이라는 곳도 이제는 지성이고 양심이고 정의고 진리고 나발이고 간에 별별 부정부패와 협잡질이 판치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 시대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너무나 부조리한 세상입니다. 부디 진리와 정의를 위해 싸워주시길(소극적으로든 적극적으로든)...

얼그레이효과 2010-01-17 18:56   좋아요 0 | URL
제가 그리 거창한 사람은 못되지만..의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선, 마음 먹고 실천해보겠습니다.

2010-01-17 1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7 1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10-01-18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놀랍고 놀라운 행태네요!
등록금은 건물 짓는데다 쓰나보죳!!

얼그레이효과 2010-01-19 06:32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보헤미안 2015-10-01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이번에 종합시험을 보는 대학원생으로 의문이 들어서 검색을 했더니 좋은 글을 보고 투지가 불타오르네요
4학기중 외국어시험 2번만 3만원씩 내고 봤는데..토익도 아니고 그냥 해석정도의 일반 영어고요...이번에 종합시험인데
그것도 돈내라고 하는데...정말 부조리한 생각이 드네요

얼그레이효과 2015-10-12 22:27   좋아요 0 | URL
답장이 늦어 죄송합니다. 오래전 일이지만 등록금 투쟁은 실패했지만, 당시 종합시험비용은 결국 안 받는 것으로 결과를 받아냈어요. 그 이후 후배들도 종합시험비용 안 내고 계속 그대로 시험 본다는군요. 보헤미안 님에게 좋은 기운 전달되기를요.
 

온라인 <당비의 생각>에 두번째 글을 올렸다. 

 http://dangbi.tistory.com/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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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경향에 당대비평 신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에 대한 서평이 올라왔네요. 최재천 변호사의 글입니다. 혹시 민주당 전 의원? 최재천?  

원문 :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200912171045541&pt=nv 

 

공동체의 문제를 정치 문제로 이해하지 못하고 정치로 풀어나가지 못하는 정치가 주범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바로 정치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무덤은 그 자체가 핑계이다. 죽은 자를 상징적 질서 속에 기억으로 묻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합당한 핑계, 그것을 망각하거나 기억하기 위한 핑계이다(김성태).” 이 문장만으로도 충분히 불편할 것 같다. 며칠 전 용산참사 미사 현장에서였다. 신부님의 강론을 듣다 말고 나치 시절을 담은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떠올렸다. 당대비평 기획위원회의 사유 구조도 비슷했다. ‘당비의생각’ 3권이 ‘누구에게나 기억되는 죽음’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을 제재로 불길하고도 불편한 질문을 던져 왔다. 애도도 아니고, 회고도 아니고, 생뚱맞게 무슨 ‘기억’이냐고? “기억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진작시키는 역할을 수행(정진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대의 젊은 논객들이 2009년 한국 사회 일상의 죽음 가운데 ‘정치적 공간을 배회하던 죽음’을 비판적 반성의 무대로 불러올렸다. 초혼제다. “죽음의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삶의 정체성을 헤아리고 그것을 통해 민주주의적 정치를 지속적으로 활성화할 수 있는 계기를 찾아보려는 의지(서동진)”에서다.

먼저 죽음의 성격을 정리했다. “노무현의 죽음이 ‘정치적’ 죽음이라면 김대중의 죽음은 ‘역사적’ 죽음이었다. 그리고 용산은 ‘정치 자체의’ 죽음이다.(엄기호)” 그렇다면 애도와 기억이라는 관점에서는 어떤 차이를 드러냈을까. “김대중과 노무현의 죽음은 기억할 만한/기억해야만 하는 죽음이었는 데 반해 용산의 죽음은 침묵되는 죽음”이었다. 용산은 애도를 거부당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 됐다. 개인과 집단의 전반적인 삶 자체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한다는 고유한 의미에서의 ‘정치’적 시민이 되고자 했던 용산 철거민들의 투쟁을 “국가가 각 사람을 계급과 계층에 맞게 자리와 기능을 분배해 위계를 유지시키는 협상과 관리의 기술인 ‘치안’의 대상으로 환원(정용택)”시킴으로써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여름 ‘6·9 작가선언’은 “용산 참사로 상징되는 ‘벌거벗은 삶’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작가들의 한 줄 서명으로 표명하면서 ‘이명박 정권 하의 한국 사회를 민주주의의 아우슈비츠, 인권의 아우슈비츠, 상상력의 아우슈비츠로 명명’했다(권명아).” 그렇게 해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 만날 수 있는 근거가 됐다. 그렇다면 용산의 불길을 회피해 온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는 어떠해야 한다는 걸까. 애도와 기억이면 되나?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는 ‘부끄러움’ 역시 실상 ‘죄의식’이기보다 우울증적 증상의 변형(정용택)”에 불과하다고 했다. “애도의 광장에는 ‘종교’만 있을 뿐 ‘정치’가 보이지 않고, 그러므로 문제는 더 이상 ‘죽음’만이 아니(김성태)”라는 것. “슬픔의 연대만으로는 아직 정치학이 아닌 것처럼 애도 역시 아직 적절한 정치학에 이른 것이 아니(김영민)”라는 것이다. 공동체의 문제를 정치 문제로 이해하지 못하고 정치로 풀어나가지 못하는 정치가 주범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바로 정치다. 애도와 기억을 뛰어넘는 정치의 복권이다. “새로운 정치를 구성하기 위한 자기조직화(김원)”다. 이렇게 되는 순간 애도와 기억의 대상은 전복된다. “오히려 추모받아야 하는 이들은 노무현이나 김대중이나 용산 철거민 열사들이 아닌 살아 있는 우리들인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궁핍과 무지와 나약함인지도 모른다(송경동)”는 논리가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우리는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노여워할 줄도 모른다. 분노를 잊은 지 오래다. 이런 슬픔과 노여움과 수치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오늘도 용산을 우회한다. 애써 망각하려 한다. 우리 모두는 공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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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한국에서 당대비평 신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언급해줬습니다.  

원문: http://weekly.hankooki.com/lpage/coverstory/200912/wk20091216140633105450.htm 

[작가, 왜 사회에 참여하나] '지금 내리실…' 등 세 권의 책 2000년대 젊은 지식인의 고민 드러내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 참사역입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 <리얼리스트>.

최근 잇따라 출간된 세 권의 책은 2000년대 젊은 지식인들의 고민을 드러낸다. 흥미로운 점은 다양한 문화적 스펙트럼을 지닌 지식인들이 모두 용산참사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 참사역입니다>는 용산 참사에 관한 작가들의 헌정집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는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등 굵직한 인물들의 죽음에 가려진 용산 참사의 의미를 되묻고 있다. 반년간 문예지 <리얼리스트>의 특집 역시 '용산, 냉동고에 갇힌 민주주의'로 용산 참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문화예술인들이 입을 모아 용산 참사를 말하는 이유는 뭘까? 이 새로운 시각이 우리 사회에 던진 변화는 무엇일까?

2009년 한국사회 키워드는 용산

젊은 지식인들이 다시 용산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편집한 김수한 편집주간은 "책의 출간 시점이 12월임을 감안해서 올 한해 정치 풍경을 조망하는 방향으로 기획했다. 올 초부터 용산참사, 김수환 추기경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 한국사회를 좌우한 사건 중 하나가 '죽음'이라는 데 편집위원 모두 동의했다. 단순한 애도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앞으로 일어날 정치 징후를 보여주는 집약적 사건들이다"라고 말했다. 용산 참사는 올 한해 한국사회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건이지만, 미디어와 대중의 뇌리에서 망각되고 있다는 진단에서 책을 기획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리얼리스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박일한 책임편집인은 기획의도에 대해 "용산을 통해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돌아보는 동시에 문학이 놓여야 할 자리에 대한 성찰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당한 삶과 언어가 파괴되는 현실 앞에 작가들이 제대로 된 복원을 위한 노력에 나서지 않는다면 직무유기에 해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 참사역입니다>를 엮은 작가들의 시선도 이와 맞닿아 있다. 이 책의 기획을 맡았던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 선언 이후 활동 방향을 논의했는데 용산 참사가 오늘날 한국사회의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상처라는 판단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젊은 작가 200여 명이 모인 '작가선언 6.9'는 현 정부에 대한 비판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관한 비평까지 다양한 정치 담론이 생성되다 7월부터 용산 참사를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용산 참사역입니다

지난 8일 저녁 용산 참사 현장에는 30여명의 문인을 포함해 100여 명의 시민이 한 자리에 모였다. '작가선언 6.9'가 엮은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의 헌정식에 모인 이들이다. 소설가 박상의 사회로 염무웅 평론가가 대표 인사를 전했고, 윤예영 시인, 최창근 극작가, 김용민 시사만화가, 노순택 사진작가, 김종도 화가가 유가족들에게 책을 헌정했다.

'작가선언 6.9'는 지난 해 촛불시위부터 올해 용산 참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 일련의 사회변화를 겪으며 올해 5월 27일 젊은 문인 30여명이 첫 모임을 가지면서 결성됐다. 총 192명의 문인이 작성한 한 줄 선언을 모아 6월 9일 선언문 '6.9 작가선언'을 발표했고 이를 모아 <이것은 사람의 말>을 출간한 바 있다.

다양한 정치담론을 생성하던 '작가선언 6.9'는 7월부터 용산 참사를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용산과 관련한 인터넷 신문 기고,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고, 젊은 작가들이 올해 발표했던 칼럼, 시, 소설, 비평 중 용산 참사와 관련된 글을 모아 헌정집을 묶었다.

424쪽의 문집에는 '작가선언 6.9' 회원들이 쓴 시와 에세이가 담겨 있다. 1,2부에는 용산 참사와 관련된 시 31편과 시인들의 에세이를 실었다. 3,4부에는 인터넷 신문 등 매체를 통해 발표한 문인들의 칼럼을 엮었고, 5부에는 이윤엽 화가, 김종도 화가, 이동수 만화가, 노순택 사진가의 작품과 가수 조약골의 에세이를 담았다.

'작가선언 6.9'가 활동하는 방식은 이전의 지식인 단체와 다르다. 가장 큰 특징은 구심점 없이 200명에 가까운 문인들이 자발적으로 활동한다는 것인데, 모든 활동은 자율적인 논의를 거쳐 결정한다. 예를 들어 6월 9일 발표한 공동 선언문의 경우 대표자가 작성하면 온라인 공간에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리고 이를 보완해 다시 한 줄씩 고쳐가며 최종본을 완성했다.

70년대 문인들의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염무웅 문학평론가는 "세상이 달라진 것만큼 문인들의 사회적 활동도 달라진 것 같다. 요즘은 산발적이고 각자 자유롭게 활동한다. 시대 변화에 따라 작가들의 운동 방식이 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리얼리스트 100

<리얼리스트>는 문학단체 '리얼리스트 100'에서 펴내는 반년간 문학 전문지다. '리얼리스트 100'은 2007년 9월 리얼리즘 문학을 고민하는 작가들을 주축으로 탄생한 문인단체. 100여명 안팎의 문인들은 온라인(www.realist.kr)을 통한 작품 발표와 함께 '대운하 저지를 위한 작가행동',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한 연대활동', '용산 참사 해결을 위한 작가행동' 등 대외활동을 병행해 왔다.

'민중문학'의 맥을 잇고 있는 작가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데, 작가 면면을 살펴보면 시인 백무산, 김해화, 정우영, 김해자, 박일환, 송경동, 문동만, 황규관, 임성용, 이민호와 소설가 김성동, 이시백, 안재성, 홍명진, 이인휘, 이재웅, 평론가 박수연, 고명철 등이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박일환 시인(<리얼리스트> 책임편집인)은 "현실문제에 고투하고 현장을 뛰어다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작품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시도는 일시적 흐름, 현상이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고 창간 배경을 설명했다.

이민호 시인(<리얼리스트> 편집위원)은 "특별한 작가를 지향하지 않고, 작품 선정에 있어서 객관성을 기했다. 지난 시기 노동문학과 민중 문학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리얼리즘의 정신을 더 펼쳐보자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 참사역입니다>가 젊은 문인들의 사회참여를 담아낸 책이라면, 문예지 <리얼리스트>는 사회참여와 창작을 병행했던 기존 작가들의 문학적 결실을 선보이는 장인 셈이다. 작가들이 회비를 걷어 잡지의 제작비와 원고료를 충당했다는 점도 기존 문예지와 차별화된 점이다.

창간호 특집 주제는 용산 참사. 백무산 시인의 시 '민주공화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자행한 학살 만행을 보라!'와 홍명진 소설가의 단편 '2009, 서울 피에타', 김순천 르포작가의 작품 '용산, 격렬한 혼돈'과 송경동 시인의 시론 '용산이라는 질문', 임동근 연구원의 논단 '개인의 욕망으로 굴러가는 주택정책', 박김형준 작가의 사진, 김대중 작가의 만화 '폐허 위에'를 통해 용산 문제를 총체적으로 바라본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

사회비평지 <당대비평>이 정간되며 발행된 단행본 형식의 기획 시리즈 '당비의 생각' 3권의 제목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 제목처럼 책은 두 전직 대통령과 용산 참사를 대조해 한국사회를 분석한다.

기획주간인 서동진 교수(계원디자인예술대)는 서문을 통해 "어떤 죽음이 대대적으로 애도될 때, 그것은 단지 죽은 자의 사회적 지위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애도하는 자의 정치적 욕망이 투영되어 있음을 가리킬 것이다"고 지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정치적' 죽음이라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은 '역사적 죽음'이며 용산 참사는 '정치 자체의 죽음'이라는 것. 책은 죽음의 의미의 위계화와 차별화는 추모하려는 사람들의 의지만이 아니라 죽음을 순응시키며 갈등을 잠재우는 통치의 전략 혹은 방식이라고 말한다.

'애도에 대한 질문', '기억에 대한 성찰'로 나뉜 책은 10편의 비평을 실었다. 필진들의 면면을 보면 엄기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권명아 동아대 국문과 교수를 비롯해 김성태 문화평론가, 송경동 시인, 박동천 전북대 정치학과 교수 등 사회각계각층의 다양한 스펙트럼의 지식인들이다.

조동환, 조해준, 이경수 작가의 구술드로잉과 이상엽 다큐멘터리 사진가, 김흥구 사진작가, 조습 사진 작가의 작품도 함께 실었다. 지식인의 글과 문화예술인들의 작품이 결합된 형태의 무크지인 셈.

김수한 편집주간은 "다양한 문화예술인, 지식인이 함께 사회를 고민하는 것이 의미 있을 것 같아 이번 비평집을 묶으며 함께 작업했다. 드로잉과 사진 등 이미지들은 주제를 더 선명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말했다.

2009년 지식인, 어떻게 변하고 있나?

용산을 구심점으로 목소리를 내지만, 젊은 문화예술인들의 사회참여는 촛불시위, 잇따른 사회지도자들의 죽음, 미디어법 처리 등 한국사회 일련의 정치 지형 변화와 맥락을 함께 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작가선언 6.9', '행동하는 라디오 언론재개발'처럼 이전 세대와는 다른 방식의 소통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작가선언 6.9'에 참여한 이영광 시인은 "수평적 의사공동체로 오랜 논의를 거쳐 활동 방향을 결정했다. 작가들이 갖고 있는 생각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 차이를 딛고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면서, 때로 멀어 보이고 낯설어 보였던 사람들이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활동에 참여한 젊은 작가들은 사회를 보는 감각도 이전과 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심보선 시인은 "작가와 시민의 정체성이 어떻게 만나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다. 작가들이 현실과 정치문제에 접속하는 것이 곧 문제를 해결했다는 건 아니다. '문학과 정치'는 여전히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이지만, 우리가 변해가면서 그 문제를 직시하고 부딪치고 계속 젊은 작가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영광 시인 역시 "그 동안 작가 개인의 문학적 추구에만 매몰된 점이 많았다는 자각과 반성이 있었다. 작가가 특별히 힘 있는 일을 할 수는 없겠지만,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몸으로도 조금씩 움직이고, 작가들의 목소리가 퍼져나갈 수 있게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진은영 시인은 "(활동을 통해) 미약하지만, 뭔가 할 수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작가로서 작품을 통해서도 세상과 만날 수 있다는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겼고, 그런 작품에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고 말했다.

사회에 대한 젊은 지식인의 감성이 새로운 담론으로 발전할지, 주목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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