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문과에서는 무얼 하는가

가끔 연구실 울타리를 벗어나, 직장인이 된 학부시절 친구들을 만나거나, 혹은 술에 취해 택시 아저씨와 예상하지 않았던 친밀한 사담을 나눌 때, 나오는 초반부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oo야, 너 지금 전공이 뭐라고?", "학교는? 그럼 전공은?" 그럼 나는 머릿속에 조금 계산을 해야 한다. 내 전공명을 미리 밝히자면, "영상커뮤니케이션"이다. 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 그럼 뭐 영화 이런거 공부하나?"이렇게 묻는다. 하지만, 대부분 "그게 뭐 공부하는 곳이오?"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나는 이런 경우를 여러번 학습했으니, 다음에 그런 상황이 또 생기면, 나름의 대처를 해야겠다고 머리를 굴린다. (친척들이나 부모님 친구분들에게는 혹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그냥, 신방과라고 할까?", 아니면 (공부에 관심있는 친구들에게는) "문화연구한다고 해?" 뭐 이정도로 대답을 준비해놓는 것이다.   

"예, 신문방송학 전공입니다.."이정도로 포장해서 얼버무리면, 이내 돌아오는 대답은 "언론고시 준비해야지?" 라든지, 좀 세세하게 뭘 안다고 표시하시는 분은, "조선일보 들어가. 거기 페이 두둑해"정도 같은 친근한(?) 멘트를 쳐 주신다. 내가 세세하게 알려주는 경우, 조금 피곤하거나, 아니면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나도 모르게 세세하게 설명해주다가 목에 힘이 들어가고, 남은 전혀 관심없는 전문용어로 나도 모르게 브리핑을 하니 말이다.  (친구들은 벌써 고개 숙인 채 안주 먹거나, 지들끼리 딴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나만의 것은 아니다. 나와 같이 공부하는 동료 연구자들도 똑같이 겪고,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웃거나 진부한 농담들을 늘어 놓는다. (하지만, 가끔은 진지한 것 같은 농담) "에이..그러고보면 결국 기술 배우는 게 최고야,최고"(대부분 인문사회과학 한다는 친구들의 진부한 넋두리) "그냥 학교 앞에서 포장마차 하나 차릴까"(이럴 땐, 구질구질하게 '석사박사' 같은 꼭 먹물 티를 내는 간판을 구상하는 친구가 있다) 그러나 웃든, 농담을 늘어놓든 그것이 끝나고 난 후의 분위기는 우울한 어색함이다. 결국 한 숨으로 귀결되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원망하던 논문을 손에 부여 잡고 기계적으로 연두색 형광펜으로 줄을 좍좍 긋는다.  

그러나, 몇 주 전부터 드문드문 듣고 있는 중앙대 사태를 생각해보면서, 나는 밥상에 반찬은 별로 없지만, 너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이 있단 걸 명심하라는 기도를 하는 엄마와 그 기도를 듣는 아들의 식사 장면 같은 기분을 요즘 늘 느끼고 산다.(하지만, 동정을 넘어서, 우리는 진정한 연대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그리고 오늘 알라디너 로쟈님의 블로그에 들어가 업데이트된 기사를 보며 착잡함을 감출 수 없었다. 

어찌 보면, '전공을 밝히다/전공을 갖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그 전공의 '쓸모 /기능'보다 더 중요한 걸 우리가 이미 선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그 전공과 연계된 내 삶의 방식 그리고 의미이다. 지금 정리대상에 포함된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공부하는 어문학부 학생들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놓은 '쓸모-경계선'에서는 하나의 '명함-기능'으로 치부될 지 모르지만, 그것보다 우리가 더 깊게 바라봐야 할 것은, 그 안에서 그 나름대로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이들에 대한 생존의 권리다.  

여기서 생존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와 가까이 하는 시한부적 학문 연구의 삶이 아니라, 얼마든지 스스로의 학문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보람을 느끼며, 그 선택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누려왔던 지적 양분을 우리 사회와 공유할 수 있는 사유와 행동의 공간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삭발을 감행하고, 고가다리에 올라가 울부짖으며, 극단적인 몸부림도 마다하지 않는 친구들의 삶을 단순히 '명함-기능'으로 치부할 수 없다. 그들이 추구하는 기능이라면, 자신의 삶을 사람답게 살고 싶은 기능. 내가 와서 우연이든,필연이든 나도 모르게 젖어버린 학문의 내음을 마음껏 맡을 기능인 것이다. 

외부의 시선에서는,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지 모르겠다. (지금의 대학 문화, 그리고 취업이라는 현실의 장벽 등등)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결국 쓸모와 기능을 물어보고, 대충 듣고선 "아. 그런 곳이구만.."한다. (결국 이런 인식이 이 사태를 불러 일으켰다. 어쩌면 오랫동안 누적된 사회적 '문제')  

하지만,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당신이 정리하려고 마음 먹은 그 물건은 그렇게(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질문한 당신이 누구인가를 묻는 더 중요한 쓸모를 가졌다고.  

그 신념을 안다면, 그들은 '쓸모의 경계'를 함부로 재단할 권리가 없다. 지난 김예슬 양의 이야기부터, 쭉 흘러오는 어떤 맥락들. 대학을 '버스정류장'으로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일침.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라는 수사 안에서 우리가 대학 안에 계속 남아 있다는 자괴감 대신, 대학이 우리를 계속 밖으로 몰아내려 한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남아있으면 죄인이 되는 곳. 그건 "논문 잘 되가요"라며 은근히 제 때에 졸업 못하고 있다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견주는 상투적 인사가 횡행하는 대학원도 마찬가지다. 이게 우리의 현실. 묵과할 수 없고,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그 현실이 주는 잡음들이 공부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을 권리는 또한 없다. 중앙대 사태는 공부를 여전히 '여가'로 여기며, 공부를 삶 그 자체로 여기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주는 묵직한 시선이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난, 여전히 "대학원 다녀? 편하겠다.."라는 투로 "나도 대학원이나 가볼까.."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아마 이런 시선에 대한 분노가 이번 중앙대 사태에도 겹쳐져 있다면, 나는 그 학생들의 무의식속에 쌓여진 분노를 충분히 지지하고 싶다. 그들은 여가를 즐기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삶을 살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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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iked-83 2010-05-02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친구 결혼식에 가서 전공이 "미디어 정치경제학"이라고 했다가 분위기를 망쳐놓고 왔는데, 오늘 이런 글을 보게 되네요. 처음 와보는 서재인데, 공감과 지지를..

얼그레이효과 2010-05-02 14:55   좋아요 0 | URL
'미디어 정치경제학'? 제가 학부 시절, 가장 약한 분야였는데ㅜ.ㅜ , 반갑습니다.^^ 건승하십시오!
 

응원과 기도 고맙습니다. 저는 5월 17일을 시작으로 제가 다니고 있는 대학원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싸우다는 표현은 제게 과분한 것입니다. 저는 역사가 보여준 투사가 될 여력도 능력도 없습니다. 대화와 소통을 통해 지성인들이 깨어있길 원합니다. 

제가 요구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논문자격시험이라고 불리는, 종합시험. 이 시험의 비용이 6만원입니다. 한 분야당 2만원씩인데요. 제가 며칠 동안 서울의 주요 사립대학원을 조사한 결과, 학과마다 사정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거의 이 비용을 안 내고 시험을 보고 있었습니다.  

또, 논문을 쓰기 위해 부득이하게 정식 학기를 초과한 경우, 원생들이 등록을 해야 하는데요. 이 비용도 상대적으로 엄청난 고비용을 학생들에게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물어본 타 대학원 원우들이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해줄 정도였으니까요. 

 학교 측에서는 제가 소속된 대학원 분류 체계가 전문대학원이라 그렇다고 하지만, 제가 학칙을 보니, 이 종합시험의 비용 납부에 관한 내규 조차도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니는 이 전문대학원은 사람들의 외부 인식과 달리, 풀 타임으로 다니는 원생들이 많습니다. 직장을 다니며 수업을 듣는 곳이 전문대학원이라는 그 이미지가 주로 있지만, 예외적 상황이 제가 다니는 곳에 발생하고 있지요.) 그동안 원생들은 이 사실조차 공부한다고 제대로 찾지도 않고, 그냥 내고 다녔는데, 분노하신 분도 계시고, 물론 그냥 학교에서 내라고 하면 내는거지 라고 반응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종합시험비용을 거두는 과정에서, 교직원들의 갈팡질팡하는 모습들이 드러나(이 상황에 대한 익명의 제보자들의 고마운 증언으로 인하여), 지금은 제가 보기에 속된 말로 '빼도 박도'못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더 많은 부조리들이 있으나 그 내용량을 보면, 이 페이퍼 스크롤 바가 너무나 길 정도로, 대학원 사회는 전반적으로 썩어 있었습니다. 힘을 빌리기 위해 연락한 총학생회는, "아니, 학교가 내라고 하는데, 학생이 어쩔 수 없지요"라며 제 행동을 이상하게 인식하는 발언을 하더군요. 학생이 학생의 처지를 모르는 현실입니다. (그것도 총학생회가 그러니 더 암울하지요)

저는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리하여 서울대학교 대학원 등 국립대학원 및 주요 사립대학원의 총학생회 간부 및 지인, 원우들과 접촉하여,  제가 다니는 이 곳이 얼마나 부당하게 학생들에게 납부 비용을 청구하고 있는지 글을 올리는 과정입니다.  

교수들은 정작 힘들게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원우들의 사정에 관심이 없습니다. 다른 대학원을 포함해 제가 조사를 하러 연락을 취했을 때, 일부 교직원들은 학생이 왜 이런 걸 물어보냐고 오히려 저에게 화를 냈습니다. 

저는, 이럴수록 신이 나고 힘이 나더군요.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끝까지 가자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고맙습니다. 

관심가져주시는 것만으로도 제겐 큰 힘이 됩니다. 

- 얼그레이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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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0-05-22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정은 잘 모르지만... 등록금을 내고 있는데, 시험비를 따로 걷는 게 저도 이해가 안 가네요. 건투하시길 바랍니다. 결과가 무엇이든 문제제기만으로도 이긴 싸움인 거 아시죠?

얼그레이효과 2010-05-22 13:27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 공감 고맙습니다. 저도 이해가 안 가더군요..몇 년전부터, 의문을 품고 있었는데, 잘 되길 희망합니다. 그리고 결과가 무엇이든 문제제기만으로도 이긴 싸움인 거 아시죠? 라는 말..감동적입니다.(진심) (나중에 써먹어도 되지요^^?)

saint236 2010-05-22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 공부하는 이들의 무관심이 제일 힘든 부분이긴 하지만 힘내세요. 화이팅입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5-22 13:2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그래도 조금씩 확산되는 분위기인 것 같아. 힘내려고 합니다. 주말 잘 보내세욧

비로그인 2010-05-22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싸우는 방법이 홀로 단식을 하거나 그런 거라면 경험자의 조언을 듣고 참고하시는 게 좋겠네요.
다행히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면 함께 싸워나갈 동료들을 규합해야지요, 혼자는 너무 외롭잖아요?
아무튼 몸은 해치지 마시고 꼭 승리하시길...

얼그레이효과 2010-05-22 13:29   좋아요 0 | URL
후와님, 제가 워낙 미약한 존재라, 아직 극단적 방법까진 생각을 못해봤습니다. 저는 투사가 될 자격도 없는 걸요. 최대한 예의있고, 논리적으로 일단 글을 통해 접촉하는 중입니다. 그것이 안 될 경우엔. 제가 숨겨놓은 비장의 무기들을 꺼내야지요..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외롭고 힘든 싸움이지만, 후회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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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논문 주제를 정하기까지, 총 4번의 '협상'과정이 있었다.(누구와? 지도교수 그리고 내 자신과) 석사 논문을 쓰기 시작할 때, 정말 멋진 학위논문을 쓰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욕심은 내 글로 흐리멍텅하고 비판의식 없는 동료들에게 자극을 주는 글을 쓰고 싶은 것. 나름대로 나는 그 자극에 '섹시한'이라는 수사를 넣어, 꼭 그렇게 써야지하고, 머리를 이리저리 굴렸지만, 현실이 녹록치 않았다. 2009년 1학기 때부터 지금 쓰는 주제를 밀어붙이다가, 다음 학기, 방황의 나날을 보냈고, 지금 다시 돌아와 마음을 가다듬었다. 혹자는, 그냥 수그렸으면, 빨리 졸업하고, 얼른 다음 공부할 수 있었을텐데, 고마운 걱정을 해줬지만, 작년 가을,겨울의 방황을 나는 후회하진 않는다. 

방황의 시간 속 나는 무엇을 했을까. 일단, 이론을 정치라는 단어와 무조건 묶으려는 것에서 조금 벗어난 듯 싶다. 그 무거운 굴레. 비판하지 않는 자들이 다 미워보였던 옛 시간들. 동료들이 한심해보였고, 그래서인지, 간간히 쓴 소논문은 너무나 '태도'중심적이어서, 내 스스로는 신났으나, 내 논문을 읽어주는 분들은 신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비로소 최근에 들어서야, 내가 뭔가 잘못된 고집을 피우고 있다는 걸 몇몇 학회에 참여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내가 늘 비판,비판이라는 개념을 강조했을 때, "oo야, 그래 네가 생각하는 비판적 문화연구..그거 맞는데..그래도 그 여백을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라는 말. 나는 그 동료들의 지적을 사실 별 탐탁치 않게 여겼다. 물렁물렁한 사유들, 뭔가 럭셔리해 보이는 '편안한'글들의 집합.  

하지만, 요즘 나를 반성하면서, 그들의 논문을 다시 읽어본다. 그리고 각자 좋아하는 테마에 쏟아부은 그 삶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이 열정을 인정하기가 왜 그리 어려웠을까. 

지인들은 요즘 내가 쓰는 논문 주제를 보면 다 의아해 한다. 뭔가 '나답지'않다는 것. 그러나, 그럴때마다 나, 정말 한 살 먹었나. 공부나이가 정말 한 살 더 먹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 안에 자리가 잡힌다. 이제 어떻게 비판해야 할 지, 어떻게 사유해야 할 지, 어떤 논리를 추구해야 할 지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러면서 뒤를 돌아보니, 이런 말이 떠올랐다. "나, 어디까지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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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논문 작업을 5등분으로 하면, 2/5정도까지 온 듯하다. 내 논문의 큰 줄기를 정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자신을 어떤 '주의'에 함몰시키는 것은 좋은 것은 아니라고 하나, 내 스스로의 '경향'에 대해서 자리 잡기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문화연구의 두 패러다임 중, '문화주의'가 갖는 시선과 연구의 방식이 구조주의보다 더 인간미가 있으며, 인간 해방의 기획과 문화 민주주의에 더 가까이 가고 있다는 시선에 반대한다. 내 논문은 그래서 '진화된 구조주의'라는 입장에 서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가르는 '문화적 전환'이라는 개념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전환이 주는 긍정적으로 포장된 문화적 현상들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현상들을 긍정적으로 보는 평가에 염증을 느낀다. 오히려 1990년대는 1980년대의 '연장'이다. 그리하여, 내 역사 연구의 중점은 1980년대라고 해서 1990년대보다 '더 억압적'인 부분이 많았다는 인식, 1990년대라고 해서 1980년대보다 '더 개방적'이었다는 시선에 반대한다. 오히려 각 시대는 각각의 개방과 억압의 '중층성'이 반복적으로 작용하는 시대였으며, 그런 점에서 국가- 기업(자본)- 시민 간의 관계에서 작동하는 '진화하는 구조주의'가 우리 시대의 문화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고로 이러한 맥락 속에서 국가의 '통치 전술'은 진화한다. 그리고 이런 진화적 과정 안에서, 국가와 기업 그리고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순응과 저항의 동학은 더욱 복잡해진다.  

나는 과연 여기서 미디어 테크놀로지와 그것을 사회적으로 전유하는 대중에 대한 일상을 어떻게 풀어나가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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