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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백의 작은 역사  

  2-1. 고백의 역사가로서 푸코를 소환하기

누구나 고백한다. 아니 어쩔 수 없이 고백해야 한다. 고백이 자발적이지 않거나 내면의 어떤 요청에 의해 행해지지 않을 때에는 위협이나 술책에 의해 고백이 억지로 강요된다(Foucault,1976/2004,p.80)

  

 

 

고백이 선의 영역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견, 더 나아가 그것을 '우리 / 그들'의 구분이라는 안이한 영역 속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깨기 위해서는, 고백을 불온하게 인식했던 푸코를 소환해야 한다. 이야기되는 광기, 이야기되는 섹스, 이야기되는 살인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광기와 섹스, 살인에 방점을 찍기 보다는 '이야기'와 '되는'의 조합이 가져오는 실천으로서의 언어 양상을 두껍게 사유할 필요가 있다.1) "광기는 오직 실천 속에서 그리고 실천에 의해서만 대상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이 실천 자체는 광기가 아니다"(Veyne,1971/2004,p.485-486)라는 문장으로 푸코의 심중을 명확하게 이해했던 역사가 폴 벤느의 말처럼, 정작 우리 사회에서 구분과 이해 가능성의 기준 설정,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차별의 정당화를 주도하는 실천은 도리어 더 정상적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오래전부터 정치, 사회, 경제, 문화를 주도하던 종교 권력의 종합적 실천에는 "무엇이 선인가에 대해서보다는 무엇이 악인지에 대해서 합의를 보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을 이미 체험"(Badiou,1993/2001,p.17)한  '규범의 정치'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이런 '규범의 정치'가 당시 민중들에게 공포와 안정을 동시에 가져다줄 수 있었던 것에는 죄의 존재를 '추상화'단계에서 '구체화'단계로 하강시키고, 죄의 물화를 통해 그것의 현존을 끊임없이 고백하게 만드는 -당시에는 정당화된, 하지만 역사적 분석을 통해 정당화의 탈을 썼다고 바라볼 수 있는- 종교적 통치 방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2-2. 고백, 종교에서 종교적인 것으로의 산포

 

 고백에 관하여 푸코와 푸코의 생각에 직ㆍ간접적인 표현으로 동의․상관하는 이들의 견해를 정리해보면, 고백은 역사가 진행될수록 종교의 영역에서 종교적인 것으로 산포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뒬멘(Dülmen,1997/2004,p.70)은 개인성의 확립이 일어나는 가운데, 개인의 자기관찰과 자기인식의 과정이 오히려 사회 규제 및 사회 규율화 과정과 대단히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개인의 형성을 추적하는 가운데, "사회 전반에 걸쳐 규율화 과정이 진행되면서 자기 발견과 자기 개성이 급격히 발전하는 데 유리한 전제 조건으로 교회, 국가, 학교라는 근대적 단체들이 자기 발견과 자기 통제를 활성화시켰다는 점을 강조한다(cf.Dülmen,1997/2004,p.70). 그는 이러한 근대적 단체들을 "인간의 영혼까지도 통제하는 새로운 기관"(Dülmen,1997/2004,p.70)이라고 명명하면서, 근대의 규율기술에 주목했던 푸코의 견해와 공명한다. 고백을 종교 권력의 테크놀로지로 인식할 때, "교회는 교리와 구원에 대한 독점을 더 강화하고, 교인들이 더욱 확고한 교리와 도덕을 따르게 되면서 처음으로 개개 기독교인들은 모두 신앙을 의식적으로 고백하게 되고 본인의 양심을 연구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라는 요구를 받게 되었다"(Dülmen,1997/2004,p.70)는 뒬멘의 의견은, 종교와 고백의 관계를 통해 '고백'의 주체들- 더 나아가 고백을 통해 삶을 성찰하는 주체-이 형성되는 계기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이러한 단서를 부여잡을 때, 사목권력 아래 점정 강화된 고해성사라는 종교적 제도는 '이야기되는 죄'를 고백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낳았다는 푸코의 지적을 강화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고해성사는 두 가지 원천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는 화해로서의 고해이다. 2~3세기의 대박해의 기간에 교회공동체에서 멀어진 죄인들, 즉 신앙을 버린 사람들이 다수 생겨났다. 고해성사는 이렇게 공동체에서 멀어진 신자에게 다시 공동체와 하나 될 수 있도록 한 속죄예식에서 시작되었다. 다른 하나는 초기 수도자들이 행했던 영성 지도로서의 고해이다. 특히 과거 영성지도로서의 고해에서 다루어졌던 주제들이 성사화된 고해에서는 죄악이라는 이름으로 다루어지면서, 사소한 불완전함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죄악이 되었다(최재호,2007,122-123쪽 참고). 종교에서 호몰로기아 homologia, 즉 고백의 체계란 “고백의 내용과 고백의 행위 양자를 함께 아우르는 대표적인 자기 포함적 화행 언어”(최승락,2007,49쪽)라는 정의를 참조한다면, 개인은 신과 신의 대리자를 통해 자신이 지은 죄를 입으로 드러내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육체를 성과 속의 기준 속에 순응시킬 상태로 지속시키는 의례에 참여함으로써 '고백적 개인'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고백적 개인은 푸코가 고안한 핵심 테제 중 하나인 '진리 게임'에 동참하게 되면서, 종교 권력이 만들어 놓은 '진리의 성소'에 기거하는 수행자로 살 것을 맹세하게 된다. 그러나 '진리의 성소'는 결국 진리들의 충돌과 합의로 구성된 '진리의 시장'인 것이며, 권력자들은 효과적인 담론의 정치, 즉 담론이 규정하는 선택과 배제의 기술로 진리의 정당화를 추구하면서, 진리들의 쟁투를 감춘다. 진리들의 쟁투를 감추기 위해서 종교 권력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공포와 불안의 담론을 유포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유포의 과정 속에서 해결의 주체를 개인으로 설정함으로써, 개인에 대한 책임을 더욱 강조한다. 개인에 대한 책임이 강조되는 것은 고해성사라는 제도가 공동체적인 것에서 점점 개인적인 것으로 바뀌어가는 것과 결부된다.2)

 16세기 종교개혁은 고해성사의 성격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고해성사의 변화된 지점을 종교개혁 이전과 종교개혁 이후로 나누어 볼 때, 고해성사의 형식성과 고해 신부의 권한 강화에 반기를 들었던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에 반해, 고해성사를 점점 강화시키려 했던 반종교개혁자들의 움직임은 고해성사에 대한 개인의 의례화를 촉진시켰다. 빈번해진 고해성사는 속인으로 치부된 민중들이 성사를 관습적인 의식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낳음과 동시에, 프로테스탄트에게는 개인의 고백이, 가톨릭에서는 회중과 격리된 고백자와 사제 간의 사적인 고백이 중시됨으로써 종래 고해 성사를 매개로 한 자선과 축제의 장, 그 역할과 의미는 거의 퇴색되었다. 신, 구교의 신도들은 매주 하나님과의 고백을 중시하도록 훈련받음으로써  이웃과 사회와의 화해에 대한 통로는 사실상 막혀 버리게 되었던 것이다(최재호,2007,144쪽 참고). 고백의 의례화와 사사화가 증대하면서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개인'과 '이야기 되어지는 개인'이 전시되는 경향이 강화된다. 우리는 여기서 누가 고백의 개인들을 전시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권리를 통해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종교의 전술을 파악할 수 있을 듯하다. 이는 "지배의 심급은 말하는 사람 쪽이 아니라 듣고 침묵하는 사람 쪽에, 알고 대답하는 사람 쪽이 아니라 알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질문자 쪽에 있다"(Foucault,1976/2004,p.84)는 푸코의 주장이  고해 사제, 고백신부라는 종교적 주체의 형성에 유관함을 의미한다.  

  

 

 

 

 

 

 

 

 

 

 

 

 르 고프는 고해자의 자성을 도모하는 고해 사제의 존재에 주목하면서, '고해 사제는 고해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질문들, 그리고 고해자가 저지른 죄를 통회나 소지로 분류하기에 적합한 질문들을 던져야'(Le goff,1989/1998,p.14)하는 노력들을 요구받았다고 언급한다. 고해 사제의 권한은 16세기 이후 점점 더 강화되어 '전담 고백 신부'라는 제도로 정착하게 된다. 당시 전담 고백 신부 제도는 특히 '국가의 주요 지도자들과 사회 엘리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바티칸이나 교회 제단의 뜻에 따라 유력인사들을 통제하려는 교회의 의도를 담으면서도 교회 규율과 조율해 양심 정치를 하고자 했던 제후나 귀족들의 원하는 바를 만족시켜 주는 제도'(Dülmen,1997/2004,p.70)로 자리 잡음과 동시에 주체를 부도덕하게 몰아가는 사목권력이 근대의 권력 양식과 다르지 않은 형태로 민중에게 행사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마련했다. 

 필자는 여기서 ‘종교적 가치 부여와 이념적 통제를 통해 지배를 유지하고자 하는 신정적 권력들’(김명숙,2001,58쪽)과 ‘복지적, 이념적 역할을 충실하게 함으로써 구성원들로부터 복종을 얻어내고자 하였던 가산 군주들’(김명숙,2001,58쪽)의 권력 실천이 제도 및 영역들의 분화와 전문화 과정으로 점철된 근대화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종교적인 것의 산포를 은밀하게 도모했음에 주목한다. 종교에서만 행해지던 실천들이 종교적인 것으로의 실천으로 산포되는 과정은 종교 권력이 내세우는 '도덕의 정치'가 국가의 정치와 연관되면서, 교회, 국가, 학교 등 근대적 단체들이 강조하고 요구하는 실천의 명명들을 민중 스스로 거부감 없이 순응하게 만든다.3) 이러한 순응을 도모한 실천은 -'도덕의 정치'가 내세우는 기준에 맞춰- 학교를 통해 '사람들이 처음으로 자신을 합리적으로 성찰하고 분석하도록 교육'(cf.Dülmen,1997/2004,p.71)받는 현상, 신문 제도를 갖춘 '근대 초기의 형벌 체계와 법정 제도 안에서 추상적인 법과 국가 권위의 이름으로 인간적인 행동의 진실함 등을 시험'(cf.Dülmen,1997/2004,p.96)했던 것 등의 형태로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이에 덧붙여 고백이 더욱 교묘한 현실 권력의 테크놀로지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에, 고백 효과의 의학화라는 요소를 빠뜨릴 수 없다. 18세기에는 몸의 표현 양식과 성격 묘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와 상응해서 인간의 마음, 즉 '내면의 인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유럽에서 18세기 후반 심리학이 독립 학문 분과로 인식되면서 관찰과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18세기 심리학은 강단철학과 독립된, 독자적인 경험 학문으로 이해되기 시작했고, 철학자 ㆍ설교자ㆍ작가ㆍ의사들을 망라하는 다양한 전통에서 그 내용이 채워졌다(cf.Dülmen,1997/2004,p.144). 심리학, 정신의학, 정신분석학, 심리요법에 기반을 둔 수양의 풍조가 싹트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부터였으며, 미국의 경우 프로이트 심리학의 미국식 리모델링은 19세기 후반 종교적 혼란기에 발전한 모든 테라피적 종교 운동과 심리학 사이의 우연한 만남에 의해 가능해졌다(Peck,2008/2009,p.55). 푸코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우리의 문명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섹스에 관해 털어놓는 속내 이야기를 담당자들이 주의 깊게 들어주고는 보수를 받는 유일한 문명이다"(Foucault,1976/2004,p.31)라며 고백효과의 의학화를 비판한다. "고백 효과의 의학화에 의해, 고백의 획득과 고백의 효과는 치료 활동의 형태로 재코드화된다"(Foucault,1976/2004,p.87)는 그의 분석은, "쾌락의 표본도감을 작성했고, 쾌락의 분류법을 정립했으며, 일상의 흔해빠진 결함을 병적인 이상이나 증상의 악화로 묘사했"(Foucault,1976/2004,p.86)던 서양사회의 정신의학에 대한 일갈로 이어진다.

  결국 "담론의 부양책, 청취와 기록의 장치, 관찰과 질문과 표명의 절차가 마련"(Foucault,1976/2004,p.53)되어진 공간으로 현실 권력을 간파했던 푸코는, 경제학, 교육학, 의학, 사법 영역의 다양한 메커니즘이라는 근대성의 체계들이 산출한 효과가 "우리의 문명이 요구하고 조직화한 것은 바로 엄청나게 많은 말"(Foucault,1976/2004,p.54)이라고 표명함으로써, 고백이라는 실천을 통해 증대된 언술에 내재된 체계 - '이야기되는 언어'와 '이야기되어서는 안 될 언어'로 구성된 '금지의 분류표'들이 작동되는 체계 속에서-의 정당성을 해체시키고자 했다. 푸코의 관점에서 고백이라는 권력 테크놀로지는 종교적인 것으로의 은밀한 산포를 통해, 근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일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영향력이 여전히 유효함을 경험하고 있다. 

 그 진리의 정당성을 타파하기 위한 예비적 고찰로, 첫째, 일상에서 '당위적 지향의 명제'로 쉽게 / 강하게 치부되는 법을 '법사회학'적 관점4)에서, 둘째, 푸코가 의혹을 품고 있는 정신의학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적용해봄으로써,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이해관련자들의 물질적, 이념적 이해관계의 얽힘과 다양한 권력 지향’(김명숙,2001,34쪽)의 관계들을 보려고 한다.     특히 이 관계들 속에서 필자는 "법정의 조사 과정은 고해 과정과 상당히 유사"(Dülmen,1997/2004,p.96)하다는 뒬멘의 견해, 정신의학이 은밀히 주도하는 권력관계 안에서 전개되는 관례로서의 고백이 주는 부정성을 인식한, 푸코의 견해가 뒷받침되는 역사적 풍경을 조망할 것이다. 이는 종교가 고해라는 행위를 통해 고백적 주체로 형성된 개인에게 선택된 삶의 수행성을 강요한 것처럼, 법이 적용되는 과정에서 개인에게 부과되는 법 전문가들의 법 담론, 법 집행에 동원되는 정신의학자의 담론은, 죄와 함께 자신의 서사를 고백해야만 하는 개인을 낙인과 추방의 테두리 안에서 맴돌게 했음을 살피는 것이다. 이것을 푸코의 시각으로 접근했을 때, 낙인과 추방의 테두리 안에서 법적 효력을 행사하는 법 집행자들과 정신 의학자들의 담론은 문제화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법 앞에서 선 개인은 고백이라는 실천을 통해 '정당화로 여겨지는 법의 담론, 진리로 간주된 의학적 담론을 거부하는 본보기'로 명명된다는 결론을 두드리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측면은 법 담론과 의학 담론의 관계 속에서 생성된 결과인 죄의 유, 무를 확인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푸코적인 것은 죄의 유, 무를 판별하는 권력자의 실천이 긋는 경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파악 속에 쉽게 개인의 삶을 규정하는 법 담론과 정신 의학 담론의 분류 체계를 문제 삼는 것이다. 이제 진리로 정당화된 법적 분류 체계, 의학 담론의 분류 체계 안에서 광인으로 규정되었던 두 청년, 리비에르와 조승희의 고백을 통해 현실 권력의 테크놀로지로서 나타나는 고백의 의미에 더 가까이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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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문화연구캠프>에 발표했던 글을 옮겨본다.

 진열만 되는 근심거리, 구경하는 고백, 안전한 성찰에 저항하며 
   

  이 글은 고백을 현실 권력의 테크놀로지로써 바라본 푸코의 ‘원 사유’에 입각하여, 고백의 계보학적   시선을 점화하고자 한다. 푸코와 그의 생각에 직, 간접적으로 동의 / 상관했던 이들의 생각을 재구성   해보면, 고백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종교에서 종교적인 것으로 산포되고 있었다. 종교 권력, 기   업 권력, 언론 권력, 교육 권력, 사법 권력 등 현실 권력에서 작동하는 고백이라는 권력의 테크놀로   지들은 개인을 사회 속에서 ‘이야기되어지는 입’으로 만들고, 우리는 그것을 사건 속에서 맞닥뜨린    다.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과연 사건을 어떻게 사유할 수 있을까. 사건은 우리에게 대체로 성찰      을 요구한다. 호몰로기아, 즉 고백이 가졌던 종교적 언어의 체계는 고백을 통해 잘못을 시인하고, 그   시인 속에서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성찰성의 개입을 촉구해왔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성찰마저 우   리의 것이 아닌, 그리고 선의 영역이 아닌 것이 된다면? 성찰이 현실 권력의 테크놀로지로써 오늘날   우리에게 소비되는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렸다면? 우리 시대는 정녕 성찰을 하지 않는 이에 대한 무   한한 분노를 용인하기보다는, 이제 의례화된 성찰의 언어들에 대한 문제제기를 촉구해야 하지 않을   까. 이러한 메타적 성찰 과정 속에서 필자는 쥬디스 버틀러가 제시한 ‘취약성’이라는 개념이 촉발시   키는 공동체적 사유를 제안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너와 나의 취약성을 인식하고 그 취약성을    빌미로 자유를 조건짓고자하는 권력자들의 편견에 맞서는 ‘취약성들의 시간’임을. 
  

   1. ‘고백의 제왕’을 맞이하며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그의 고백에 이끌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에게 탐닉할 때 느껴지는 집중력으로 매번 곽의 이야기를 경청했던 것은, 바로 우리였으니까 말이다. 이제 와서 고백하거니와, 나 역시 곽을 멀리하면서도 곽에게 이끌렸던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동아리 밖에서 곽을 만나 곽과 술을 마시고 곽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 어쩌면 즐겼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곽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이야기를 지껄였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이야기이기도 했고, 누군가에 대한 흠모나 적의이기도 했으며, 타인이 가진 허점에 대한 비루한 관심이기도 했다. 곽의 이야기는 건조하면서도 감상적이었고 잔인하면서도 달콤했는데, 그럴수록 나의 고백 역시 더욱 노골적이 되어갔다. 곽의 침묵이 나의 고백을 부추길 때, 나는 쾌감에 몸을 떨며 내밀한 모든 것을 곽에게 고백했던 것이다.”

- 이장욱, 『고백의 제왕』



소설 속에서 주인공 ‘곽’은 친구들로부터 ‘고백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별다른 사연이 없을 것 같은 얼굴을 가졌지만, 막상 진실 게임을 하게 되면 예상치 못한 고백으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그였기 때문이다. 곽의 고백 속에 드러나는 사연의 강도는 갈수록 세어지고, 친구들은 곽을 욕하면서도 그에게 남모를 매력을 느끼게 된다. ‘고백의 제왕’이 비단 소설 속 인물로만 존재하지는 않는 것 같다. 우리는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텔레비전에서 수많은 고백의 제왕들을 만난다. 우리는 곽을 욕하면서도 그의 고백을 계속 듣고 싶어 하는 친구들처럼, 토크쇼와 리얼리티 TV에 출연한 인물들이 오늘은 또 어떤 내밀한 이야기들을 들고 올 것인지를 기대한다.

 “서양에서 인간은 고백의 짐승이 되었다”(Foucault,1976/2004,p.81)는 푸코의 주장은 비단 서양에 국한된 것은 아닌 게 되어버린 듯하다. 이야기에 굶주린 현대인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 슬픈 이야기, 감동적인 이야기, 잔인한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거짓말 같은 진짜 이야기, 진짜 같은 거짓 이야기들은 ‘이야기 - 상품’ 이 되어 우리의 눈과 귀를 기다린다. 그 중에서 속된 말로 ‘먹히는’ 상품은 고백이다. 고백은 섹스나 자위행위를 정말 이런 식으로 해봤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자신의 성생활을 노출하는 패션잡지 기자들의 끼니를 보장해주거나, 시시껄렁하고 진부한 설교를 일삼던 목사들을 스타로 만들어주는 데 일조한다. 심리학자나 정신분석학자들은 연구실의 먼지 대신 스튜디오의 먼지를 마신 채, "당신의 인생에 낀 먼지를 이런 식으로 털어보세요!"라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소파에 누워 있는 주부들에게 ‘요법의 정치’를 설파한다. “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잠자리를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는 록펠러의 신앙 지침과 함께, 부자가 되라는 상징으로 1달러짜리 지폐를 필자의 컴퓨터 모니터 앞에 두고 간 어머니의 취미가, ‘20대 여성이 자신의 실패를 딛고 노력한 끝에 맛있는 닭꼬치를 만들어 사장이 되었다’는 류의 성공담을 서점에서 정독하거나, <아침마당>에 출연한 기독교 출신 의사의 신앙 고백에 "아멘!"하고 ‘은혜를 받는 것’임을 상기해보면, 고백은 단지 수다스러운 광경 속 신변잡담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고백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우리 시대의 ‘치료 윤리’와 결부되어 있다.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여전히 말에 상처를 받으면서도, 또 그 말로 상처가 치유되길 원한다. ‘언어의 시장’이 매일 마다 열린 채, 각자가 갖고 온 이야기의 상품은 보다 권위를 가진 사람들에게 펼쳐진다. 전문가라는 꼬리표로 치장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진단 분류표를 가지고 와서, 상처 받은 이들이 전화나 술자리에서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 그 이야기를 들어준 지인들보다 더 낫지 않은 제언으로 더 나은 효과가 발휘된 것 같은 환영을 선사한다. 사실 언론학, 사회학, 문화연구 등에서 이러한 현상에 대한 연구들은 종종 있어 왔다. 연구자들은 친밀성과 내밀성, 사적 영역의 공적 영역 침범 증대라는 표제를 내걸거나 그것을 결론으로 선취한 채, 이를 ‘중세 고해실로의 퇴보’(Hartley,1992,p.3;Couldry,2003/2007,p.179에서 재인용), ‘공개고백성사의 시대’(천선영,2008), ‘텔레비전의 사사화와 치료 윤리’(김응숙,2004), ‘자기계발의 사회학’(전상진,2008) 등으로 진단했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시선이 고백에 관한 푸코의 견해를, 미디어의 사사화와 치료 윤리라는 틀에 국한시켜 분석한 나머지, 정작 우리의 일상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종교 권력, 사법 권력, 교육 권력, 기업 권력, 언론 권력 등 푸코가 강조한 현실 권력의 테크놀로지로써 작동하는 고백의 동학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모색하는 데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고로 이 글은 고백을 해방의 기제가 아닌 현실 권력의 통치 방식으로 바라보았던 푸코의 '원-사유'를 복권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고백에 관한 푸코의 '원-사유'를 강조함으로써 필자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첫째, 과연 우리가 고백과 치유의 기제가 반영된 미디어 속 의례를, 생활세계를 살아가는 행위자 개인이 더 나은 삶의 조건들을 위해 성찰하는 것으로 간주했을 때, 우리는 그러한 개인들의 고백에 지나친 긍정성을 기대한 나머지, 고백의 과정을 부조리한 생활세계의 해방으로 환원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둘째, '요법의 정치'와 '본보기의 정치'라는 도식을 통해 개인의 고백을 도모하는 치유의 의례 그 자체에만 집중한다면, 오히려 우리는 그러한 고백과 치유의 의례가 규정하는 '도덕의 정치'를 바탕으로 생활세계를 통치하려는, 현실 권력의 은밀한 규율 기술을 삶의 안전망 안에 포섭시켜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로써, 삶의 안전망이라는 틀 안에서 고백을 통해 추동되는 성찰의 기운은, 삶의 안전망 안에 배제되는 것에 두려운 개인들이 사회로부터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을 받기 위해 쓰는 자기 검열적 반성문으로 퇴색되고 있지는 않는가.  

셋째, 결국 지금 우리 시대는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될 정치적 권리와 의무를 촉구하는 사건들을 타자의 것으로 치부한 채, 그러한 사건들에 소외/희생된 타자의 고백에 필요한 지속적 성찰을, 일시적 분노로 맞바꾸며 살고 있지 않은가. 또, 그러한 분노를 성찰로 쉽게 간주하고, 정작 개입은 망설이면서 "그 사건의 의미를 알았다"라는 수준에만 그치는 구경하는 성찰자의 위치에만 만족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지금 성찰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무분별한 분노를 무조건 용인하기보다는, 오히려 관습화된 성찰로 생활세계의 안위를 도모할 수 있다고 믿는 이 기운에 제동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이런 맥락 아래 고백과 그러한 고백이 강조하는 수행성을 기반으로 한 성찰의 위치를 진리의 영역에 가두는 것을 경계하는, 고백의 계보학적 시선을 점화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러한 경계를 통해 작금의 성찰 문화에 내재된 문제점을 점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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