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책읽다말고 (플러스펜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771612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16 Jun 2026 01:32:43 +0900</lastBuildDate><image><title>플러스펜</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0.gif</url><link>https://blog.aladin.co.kr/71771612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플러스펜</description></image><item><author>플러스펜</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F***king Fantastic - [위대한 개츠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7716124/17331527</link><pubDate>Fri, 12 Jun 2026 22: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7716124/1733152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750&TPaperId=1733152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1/79/coveroff/s58293478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750&TPaperId=1733152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위대한 개츠비</a><br/>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br/></td></tr></table><br/><br>
서른 세살의 나는 아직도 닉과 개츠비의 편이고, 그가 밀주업자인지, 과연 자기 손으로 사람을 죽였는지, 독일 황제의 조카인지를 따지는 것은 내게 의미가 없다. ”어처구니 없는 학살“이 개츠비의 운명의 몫으로 합당한가? 닉은 애도와 숭배를 선택한다. 개츠비를 적대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 소설은 로맨스 소설의 구성을 지녔으나 아쉽게도 사랑의 이야기라 보긴 어렵다. &lt;적과 흑&gt;과 닮은 소설이다. 이것은 한 인간의 삶과 그 시대의 끝남을 애도하는 찬란한 추도사다. 개츠비와 같은 자식들은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보다도 지신의 시대를 더 닮았다. 닉은 자신은 개츠비와 다른 인생을 살았다. 그는 아버지를 더 닮았다. 그러나 닉은 개츠비를 위해 그리고 과거와 미래의 친구들을 위해 이 글을 남긴다. 다음 시대에도 거듭 살해 당할 개츠비를 위해. 그러나 어느 시대에선는 자신의 일생만큼을 살아고 죽을, 자신의 탁월함만큼 자신의 희망만큼 위대해질 개츠비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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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은 말한다. ”아니, 결국 개츠비는 옳았다.“ 삶에서 이미 이룩한 것들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과거가 반복되지 않는 것은 단지 권태요, 우울함이나 실망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룩한 것이 없지만 이룩하고 하는 자에게는 역사는 반복되어야만 한다. 그 끝이 결국 이것 밖에 안 된다고 실망하는 것은 수 있는 것은 이미 가진 사람의 시각일 뿐이다. 심지어 단지 지나간 과거 속에서도 자신에게 편안한 삶만을 살아가고 싶어하다면 그는 분명 차고를 헐고 머굿간을 짓는 톰과 같은 행동을 할 것이다. 개츠비의 세계는 다르다. 그는 욕망하기 때문에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과 실패 모두를 겪게 되더라도 살아봐야 한다고 믿는다. 닉의 아버지의 충고 속에는 이미 이 가르침이 담겨있었다. 닉은 말한다. ”과거는 반복될 수 없습니다.“ 이 점에서 닉은 틀렸다. 개츠비는 누구와도 전혀 다른 세상을 산다. ”과거가 반복될 수 없다고요? 아뇨, 그럴 수 있고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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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은 말한다. 오직 개츠비만이 “희망에 대한 탁월한 재능“을 ”다시 발견할 수 없는 것 같은 낭만적인 민감성“을 지녔다고. 동부를 떠나온 닉은 “더러운 먼지들”을 뒤로하고 고향에 정착한다.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짧은 슬픔이나 숨 가쁜 환희“를 다시금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nbsp;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진한 미래를 믿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갔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 내 일은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 더 멀리 팔을 뻗칠 것이다 … 그리고 어떤 맑게 갠 아침에는 …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왜 기회를 찾아 다시 서부에서 동부로 떠나가야 했었는지 깨닫는다. 개츠비는 오명을 쓰고 죽었고 그의 장례에는 친부와 단 한 명의 친구 밖에 자리하지 않았다. 그렇다해도 개츠비와 삶을 살아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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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의견은 이렇다. 그렇기에 나는 개츠비가 결국 밀주업자나 갱스터일 뿐이지 않느냐, 그가 데이지를 사랑한다는 것도 어처구니 없는 변명에 지나지 않느냐는 의견에는 동조하지 않는다. 만약 데이지가 머틀을 뺑소니쳐서 살해하지 않았다면 나는 데이지와 개츠비가 행복해질 수 있었다고 믿는다. &lt;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t;의 스카렛 오하라와 레트 버틀러에 못 미치지만 말이다. 결혼에 대한 개츠비의 도전은 용납될 수 없는가? 정말로 데이지가 ”너무 행복해서 몸이 마비될 지경“이라면은 법과 도덕을 명분삼아 가로막는다고 해도 찬성할 수 있겠다. 돈을 쓰는 것과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는 것 외에는 톰과 데이지 모두 끔찍한 결혼생활을 지속할 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개츠비를 가로 막은 것이 사랑도 정당한 결혼제도도 아닌 범죄라는 사실에 절망감을 느낀다. 또 다른 지옥 같은 결혼생활을 누리는 윌슨-머틀 커플의 삶이, 머틀-톰의 간음의 죄의 대가가 의해 개츠비에게 뒤집어씌워진다. 이 소설에 결혼생활에서의 구원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기에 데이지와 개츠비에게 서로가 구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다른 문제의 시작일 뿐이라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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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골짜기로부터 노란 쿠페를 찾아나선 윌슨은 개츠비를 총격해 살해했다. 윌슨은 T.J. 에클버그 의사의 두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하느님은 못 보는 것이 없으시지.” 그러나 윌슨은 아주 오래전에나 교회에 나갔고, 그는 결혼할 때를 빼곤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다. 그는 다른 신을 찾았고 그 신은 올바른 계시를 내려주지 않았다. 윌슨은 톰을 믿었고 결국 살인하고 자살한다. 복수를 전혀 이루지 못했다. 톰은 윌슨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윌슨은 왜 살아가는지 모를 사람이라고. 재의 골짜기에서 너무 오랫동안 살아가서 눈이 멀어버렸다고. 센트럴파크 호텔의 스위트룸에서의 사건이 있던 그날, 윌슨의 아내 머틀이 뺑소니 사고로 사망한 그날은 ”날씨가 푹푹 쪘다. 그해 여름이 끝날 무렵, 가장 더운 날임이 틀림없었다.“ 일행은 모두 땀에 젖고 자제력을 잃어버린다. 알콜과 더위에 절어버렸다. 그날 데이지는 정정하지만 톰에게 ”당신을 한 번도 사랑한적 없다“ 말하고, 개츠비에게는 ”아, 당신은 너무 바라는 것이 많”다 말한다. 곧 데이지는 노란 쿠페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뺑소니를 저지른다. 구조하지도 자수하지도 않는다.톰에게 의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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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간들은 썩어빠진 족속이오. 당신 한 사람이 그들을 모두 합쳐놓은 것만큼이나 훌륭“하다고 닉이 개츠비에게 말했다. 의미가 미묘하다. 썩어빠진 놈들을 합쳐봤자 썩어빠질 뿐인데, 어찌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닉은 이것이 자신이 항상 개츠비의 행동을 반대헀다는 것을 변명하면서도 개츠비를 칭찬할 수 있었던 말이라고 생각했던걸로 보인다. 그러나 이 말이 닉과 개츠비 사이의 마지막 인사가 된다. 이 때문에 닉은 더 깊은 자책감에 시달렸으리라. 개츠비의 죽음의 장면이 따라나온다.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주목하는 점이다. 앞서 개츠비는 이렇게 닉에게 말했다. “그럼 풀장에 뛰어드는 건 어때요? 여름 내내 한 번도 쓰질 않았거든요.”, “take plunge in.” 개츠비는 여름 내내 사용하지 않던 풀장에서 죽는다. 곧 가을이 올 것이기 때문에 이제 풀장의 물을 빼야한다. 개츠비는 오전 내내 데이지의 전화를 기다렸으나 연락이 오지 않았다. 개츠비는 일어나고 풀장에 에어 매트리스를 물에 들어간다. 이 직후의 장면에 대한 작가의 서술이 없다. 독자가 상상을 통해 채우도록 빈 공간을 남겨뒀다. 나는 개츠기가 구원받으리라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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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땀 뿐만이 아니라 집착과 정념, 잔뜩 묻은 더러운 먼지들까지 씻겨나가는 상상을 한다. 그리스도를 제외한 모든 사제들은 물로서 세례를 준다. 물은 생명이다. 그러나 개츠비는 다시 떠오르지 못한다. 자신의 삶이 소생한 순간 가라앉는다. 에어 매트리스와 그의 몸을 관통한 총탄을 맞고 피를 흘리며 다시는 죽었다. 정화된 영혼으로 인생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총탄이 그를 짓눌렀다. 흔히 총탄에는 눈이 없다라고 말한다. 총탄에만 없을까? 다수의사람에게도 멀쩡한 눈이 없다. 차라리 눈을 감고 살아가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희망의 초록빛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면, 판단하지 않고 유보하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이 죽음이 개츠비의 몫으로 합다하다고 믿을 수 없다. 닉이 아무리 수소문하여도 장례에는 닉과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닉은 개츠비에게 타이틀을 붙여준다. The Great Gatsby. 나는 이 제목이 도치되어 있다고 느낀다. 위대한 개츠비라고 말할 때는 공식적인 느낌이 부족하다. Gatsby the great, Frederick the Great처럼 적어야 옳다. 작가는 자신의 다른 소설, Tender is the night에서처럼 도치법을 사용했다고 본다. The Great Gatbsy, 이 편이 도시의 어둠 속의 제왕이었을 개츠비에게 더 어울린다. 다른 대왕도 개츠비와 같을 수 없었으므로 적절하다.
사랑을 이루기 위한 파티를 열고 홀로 죽었다. 그러나 인생의 짧은 환희와 절정을 맛보고 죽었다. 일찍이 어떤 인물이 개츠비와 같이 살았던가? 떠올려지지 않는다. 그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크고 성대한 파티는 없었다. 이로 인해 미국문학에서 개츠비는 신화 속 인물의 자리까지 올라간다. 개츠비는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미국의 위대한 신화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1/79/cover150/s58293478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17997</link></image></item><item><author>플러스펜</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짧은 독후감 - [자기 앞의 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7716124/17331510</link><pubDate>Fri, 12 Jun 2026 22: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7716124/1733151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816631&TPaperId=173315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751/78/coveroff/8982816631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816631&TPaperId=1733151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자기 앞의 생</a><br/>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05월<br/></td></tr></table><br/>그들은 베트남 전쟁과 유대인 학살에 대해 긴 글을 쓴다. 그러나 정해진 곳에서 차례를 맞춰 죽는 죽음에 대하여는 침묵한다. 썩은 몸과 똥 냄새가 차오른 다음에서야 청소하듯 장례를 치르도록 만드는 것은 죄이다. 위생적이지 못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진실은 분명 몇몇 사람들과 달리 대부분의 이들은 그토록 소란스럽게 죽을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모모는 로자가 병원이 아닌 그녀의 유대인 둥지에서 죽을 수 있도록 도왔다. 자신이 굶어죽기 직전까지 로자를 떠나지 못 했다. 생은 버림받음이 아닌 만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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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는 묻는다:&nbsp;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도 살 수 있나요?" 나 또한 어느새 하밀처럼 세월 앞에 늙어버렸다. 가끔씩 이 질문을 잊곤 했다. 그래서 난 다른 질문들과 다른 대답들을 찾아다녔었다. 천국이 있다고 믿고 다시 한번 만나게 해달라고 빌어보는 것이 그 하나였고, 내가 되고자 하는 '나'를 달성하며 살아보는 것이 또 다른 하나였다. 나는 다른 질문의 답을 찾아 다니던 중 모모의 질문을 어디선가 포기했었다. 가끔씩 잊는다니, 그건 노인에게만 허락된 평화다. 하물며 모모는 하밀에게도 다시 한번 묻는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도 살 수 있나요?" 모모의 질문에 대답한다. 없어.&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9751/78/cover150/8982816631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7517868</link></image></item><item><author>플러스펜</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엘마의 에필로그 - [사랑의 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7716124/17331494</link><pubDate>Fri, 12 Jun 2026 22: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7716124/1733149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71829&TPaperId=173314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153/91/coveroff/s29263052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71829&TPaperId=1733149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랑의 역사</a><br/>니콜 크라우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06월<br/></td></tr></table><br/>앨마의 미래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나는 믿는다. 부르클린 소녀 앨마에게는 첫 앨마에게 있었던 지혜와 결단력이 있다고. 이 소녀는 고생물학자쯤이야 얼마든 될 수 있다고,. 그녀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앨마는 막 첫사랑을 시작할 나이에 알게 되었다. 사랑이 역사를 이룬다. 사랑은 게속되었다. 엄마와 아빠를 넘어, 즈비와 로사를 넘어, 거스키와 앨마의 사랑이 있음었음을. 자신이 이 모든 역사의 증거임을. 아주 우연히 발견하였다. 이 발견이 그녀의 인생을 바꾸리라 믿는다.&nbsp;엄마는 그녀의 이름을 딴 생물종이 하나 마땅히 있어야 마땅할 만큼 주변 사람들과 다르다. 물과 공기만으로 며칠을 버티니까. 동생은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려서 버드bird가 되었다. 그래도 동생은 현생 조류, 엄마는 새롭게 진화한 종이다. 거스키 할아버지는? 이제 곧 멸종할지도 모를 고생물이다. 마지막 개체다. 후손이 없다. 공룡이 멸종한 것과 같다고 할까. 그치만 조류가 남아 있듯이 말이다. 거스키가 공룡이라고 한다면 나도 분명히 새bird다. 이렇게 나와 동생은 같아진다. 나와 아버지가 다른줄 알았다니. 그 덕분에 버드와 내가 조상이 같단걸 확인했다. 라메드보보닉이라고 신난 모습에는 어이가 없지만, 거스키 할아버지를 만나고나서부터 나도 버드가 좋아졌으니까 괜찮다. 엄마보다 더 심한 사람도 있단걸 알았다. 그래도 엄마보다 나은 점은 있다. 할아버지는 내게 자신은 언제나 시선과 관심을 원해왔다고 고백했다. 엄마는 여전히 데이트를 하지 않지만 이번엔 자기 글을 쓴다고 한다. 드이어 본인이 사후 노벨상을 받을 작정인가 보다.허먼이랑 사귀고 있다. 허먼은 내가 그냥 안다고 말할 때 따지고 들지 않는다. 내가 고생물학자가 되도 상관없다고 한다. 정말하고 싶냐고는 물어본다. ”난 이미 고생물 1종을 찾았어.“ 사랑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해줬다. 모든 앨마에 대해서도, 거스키 할아버지와 만난 이야기도. 차라리 나에게 작가가 되라고 한다. 이야기가 끊겼다. 미샤처럼 행동하진 않는다. 그리고 허먼은 비틀즈 노래도 잘 모른다. 구닥다리라고. 허먼이 추천해준 다른 노래들도 비틀즈와 별반 다르진 않지만, 아무튼 다른 노래를 듣는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153/91/cover150/s29263052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1539111</link></image></item><item><author>플러스펜</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재능이란 범죄를 쫓는 탐정소설 - [달과 6펜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7716124/17331488</link><pubDate>Fri, 12 Jun 2026 22: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7716124/1733148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386&TPaperId=173314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3/77/coveroff/s692639624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386&TPaperId=1733148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달과 6펜스</a><br/>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06월<br/></td></tr></table><br/>“예술가의 비밀을 캐다 보면 우리는 탐정 소설에 빠지듯 그 일에 빠지고 만다.”&lt;달과 6펜스&gt;를 읽고 스트릭랜드에 대해서 당장 드는 질문은 세 가지다. 왜?&nbsp;[1] 왜 마흔의 나이에 가족과 직장, 그리고 재산을 모두 버리고 떠났는가?[2] 어째서 타히티라는 섬에 도달했는가? [3] 그의 질병과 죽음, 마지막 작품은 어떤 의미인가?이 소설에서 작가는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의 동기에 대한 서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는 &lt;젊은 예술가의 초상&gt;과 같이 주인공의 복잡한 내면의 동기와 예술가로서의 성장의 이야기는 전혀 다뤄지지 않는다. 본인의 어떠한 설명도 핑계도 없다. 단지 이렇게 되뇐다. “I‘ve got to paint.”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해.&nbsp;교앙소설과는 다르다. 스트릭랜드의 캐릭터는 탐정소설과 더욱 어울린다. 우리는 스트릭랜드에 대한 모든 정보를 관찰자인 나레이터의 시점에서부터 이야기를 전달 받는다. 그는 재구성된 짧고 생생한 드라마로만 등장한다.이 덕분에 작가는 광인에 가까운 그의 독특한 내면 독백을 서술하지 않아도 된다. 짧은 장면들에서 겉으로 들어나는 말과 행동만으로 스트릭랜드를 그려나가고 독자들에게 예상치 못한 서프라이즈를 제공한다. 나레이터는 도덕적인 상식엔 공모하지만, 동시에 부도덕한 예술가의 삶에도 공모하는 인물로 설정된다. Ms.스트릭랜드, 더크, 블란체, 갱, 티아레, 선장, 의사, 아타, 그리고 아브라함까지. 위 인물들과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여러 겹으로 스트릭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쌓는다. 추리 소설의 서술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직접 서술해 버릴 때 사라질 미스테리를 보존한다.스트릭랜드의 캐릭터가 우리에게 호소하는 점과 매력적인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 앞서 언급했듯 나레이터의 캐릭터를 전달하는 솜씨가 훌륭했다. 재미없는 구간이 드물고, 손에 땀을 쥐고 읽게끔 한다. 나와 다른 영혼의 고귀한 독백 따윈 없다.&nbsp; 나레이터가 정교하게 취재한 사건들과 배경들을 통해 캐릭터의 상황을 추론하게 한다. 훌륭한 탐정소설의 재미다.&nbsp;캐릭터의 내용 측면에서는 어떨까? 통과의례를 거쳤음에도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불만스러운 우리를 자극하기 때문에 재미있다. 나름 잘 해냈음에도 불만족이 남아 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도덕적으로 존중 받을 수 있는 삶을 유지하는 걸로 충분한가. 그는 파리에 가서도 루브르를 관람하지 않는다. 타인을 설득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걸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까지도 대가로 지불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우리가 현실에서 따를 수 없는 선택들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실험실 약을 기준으로 분열했다면, 스트릭랜드는 마흔의 나이에 화가가 되기로 하는 순간 분열했다. 사회의 일원인 우리는 그의 부도덕 하지만 속시원한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nbsp;타히티는 매혹적인 소재다. 이 섬은 뉴질랜드에서 북동쪽으로 600km를 더 항해해야 도착할 수 있다. 뉴질랜드는 영국의 지리적 대척점이고, 그곳으로부터 다시 태평양을 향해 벗어나 있다. 이곳은 폴리네시아 인들의 땅이고 그들은 원시적인 문명의 단계에 놓여 있지만 뛰어난 항해술을 지녔다. &nbsp; 달과 6펜스, 범인과 천재, 영국과 프랑스, 문명과 원시의 삶. 거듭되는 이미지 대조가 타히티에 이르러 정점에 달한다. 언제나 소설에서 모험과 항해는 영국인들에게 가장 흥미로운 소재였다. 로빈슨 크루소 경을 보라. 그는 바다와 외딴 섬들에 맞닥드리게 된다.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에 표류하여 광야를 체험했고 극복했다. 영국인들 인생사에는 산티아고가 마주한 사막의 광야보다 난파로 빠져드는 더욱 익숙하고 끔찍한 광야가 있어왔다. 태평양의 섬이 스트릭랜드 삶의 마지막 무대다. 세계는 작아졌고, 내가 출발한 곳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졌다이곳에서 아타Ata를 얻고 집을 갖지만 병을 얻는다. 그 질병이 정신병mental dissease이었다면 그의 운명은 이토록 비극적이지 못 했을테다. 스트릭랜드는 욥의 고난을 받는다. 아타는 무슬림들의 이름으로 ‘선물’을 뜻하고 이곳에서의 몇 해는 그의 가장 행복한 시절로 여겨진다. 티아레는 백인 스트릭랜드가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젊은 여자를 권하였고 그들이 결혼을 했기 때문에 스트릭랜드가 행복했을거라고 여긴다. 브뤼노 선장은 자신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자신처럼 스트릭랜드가 행복했을거라고 여긴다. 노동의 힘과 스트릭랜드의 손의 노고로 완성되는 예술을 동등하게 신성하다고 말한다. 이곳의 사람들은 문명의 불만에서 해방된 사람들일까?어쩌면 스트릭랜드가 문명을 등지지 않았다면 고대의 질병이 그에게 찾아오지 않았을테다.&nbsp;질병은 그를 순식간에 앗아간다. 아타는 그의 유언에 따라 함께 살았던 오두막을 불태운다. 영국에서 타히티로, 아타의 오두막으로 스트릭랜드의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멀어진다. 의사는 작은 오두막에서 최후의 작품을 본다. 벽화이다. 프랑스인 의사는 이 벽화를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 빗댄다. 동굴의 벽화가 인류의 첫 예술 작품 중 하나였던걸 기억하라. 스트릭랜드는 산의 동굴에 올라가서 혼자 죽을 운명이었다. 그러나 아타가 그를 붙잡고 원시의 삶에서 여성의 품에서 그림을 그리고 눈을 감을 수 있도록 한다.오두막이 사라진다. 질병이 머물렀던 자리였고, 위대한 예술작품이 있던 자리이며, 위대한 예술가와 그 아내가 살아갔던 집이 사라진다. 나레이터는 글의 초입에 밝혔다. (자신은 그림과 그림 그리기에 관하여 무지하기 때문에) “그의 인격과 관련된 부분만 다룰 뿐 작품 자체를 다루지는 않을 작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최후의 작품에 대해 공들여서 철저하게 묘사한다. 여기에 아이러니와 미스테리가 있다. 물론 알리바이가 있다. 이것은 단지 그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세계였고 스트릭랜드의 우주였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스트릭랜드가 남긴 그림들은 어딘가에서 천재의 작품으로 귀중한 대접을 받거나 복제되어 심지어 그의 전 부인의 응접실에 걸려 있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더 구하지 못해 안달을 낸다. 나레이터는 이 작품들에 대해서 묘사할 묘사할 기회가 있음에도 한사코 서술하길 사양했다.그러나 최후의 걸작. 아타와 아들, 그리고 의사만이 목격한 작품에 대해서는 다르다. 이제는 불타버려 눈으로 볼 수 없는 소우주와 스트릭랜드의 죽음을 함께 엮어낸다. 의사로부터 들은 증언과 자신의 솜씨 중 무엇이 더 기여했을지 알 수 없다. 스트릭랜드는 인류사의 원시로 회귀한 문명인이라 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이 이 소설 서술 전략에서 제일 절묘하다. 글로 그림을 묘사하는 곡예를 부리지만 읽는 독자들은 납득할 수 있다. 이미지/그림을 다루는 예술가인 화가에 대한 소설이 자칫 빠질 수 있는 어려움을 해결해 낸다. 서머싯 몸의 탁월함이 빛나는 장면이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그림과 이야기 속 비극적 죽음의 캐릭터 스트릭랜드 중 우리는 무엇에 대한 문장을 읽는지 더는 구별짓지 못한다. 그림을 글로 묘사한다면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nbsp; 예술가와 그 영혼이 숨쉬는 하나의 사라져버린 작은 세계라면 글로 전달 할 수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3/77/cover150/s692639624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37763</link></image></item><item><author>플러스펜</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친절에 의존한 블랑시의 파멸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7716124/17331468</link><pubDate>Fri, 12 Jun 2026 22: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7716124/173314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617&TPaperId=173314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2/coveroff/8937461617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617&TPaperId=173314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br/>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07년 11월<br/></td></tr></table><br/>Alice		”Hello, Stranger.”마이크 니콜스의 &lt;클로저&gt;(2004)의 첫 라인이다. 앨리스는 미국인이고 스트리퍼로 일을 하다 질려 런던으로 넘어왔다. 인생이 알 수 없으나 즐거운 몇 안 되는 짧은 순간에 있다. 출근길 인파 사이를 걷는 앨리스는 맞은 편 저 멀리에서 걸어오는 한 남자와 눈을 마주치며 걷는다. 음악은 Damian Rice의 The Blower’s Daughter가 깔린다. 영화의 첫 오프닝이다. 그 남자는 댄이다.&nbsp;앨리스는 자신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고 주시하는 댄에게 웃어 보이고, 댄이 받아 미소 짓는다. 대로의 한 복판에서 마치 두 사람만이 걷는 것처럼 주변을 잊는다. 시선을 주고받는다. 그 순간 앨리스는 횡단보도를 걷다 차에 치인다. 앨리스는 정신을 잃기 전 자신의 곁으로 달려든 댄을 바라보며, 첫 대사를 말한다. “Hello, Stranger.” 댄은 앨리스를 병원으로 옮기고, 깨어난 앨리스는 댄과 함께 지내게 된다.여기까지가 클로저의 이야기의 시작이다. 이 장면은 그 자체로 뻔하지만 재밌는 말장난이다. “bump: 부딪다, 충돌하다“, “bump into: 예상치 못하게 누군가와 만나다”. 이제 막 입국해서 공항을 나서 런던의 대로를 걷던 앨리스는 예상치 못한 거리에서, 예상치 못한 어느 남자의 시선에 한&nbsp; 눈이 팔려 차에 치인다. 댄은 자신을 병원으로 옮기고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느라 출근하지 않았다.그의 친절에 만나기 시작한다. 낯선 사람에게 느낀 친절로부터 사랑이 시작되는 이야기다. 앨리스는 나탈리 포트만이, 댄은 주드 로가 맡아 연기했다.<br>Blanche 	“Whoever you are —&nbsp;			I have always depended on the kindness of strangers.&nbsp;&lt;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gt;에서 최고의 라인을 꼽으라면 나는 이 라인을 꼽는다. 블랑시가 결코 선택하지 않았어야 할 삶의 태도였다. 힐독에서 읽은 소설 중에서는 &lt;스토너&gt;의 그레이스가 떠오른다. 타인의 친절에 의존하는 것은 결코 도피처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많은 사람들이 ”책이 최고의 친구다“라고 말한다고 본다. 친절은 값비싸다. 의존하게 만든다. 독립성을 빼앗은 이후에는 무엇이든 내놓게 할 수 있다. 공짜로 주어지는 친절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난 지금껏 운이 좋았을 뿐 내가 그 친절이 선한지 악한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br><br><br>&nbsp;Blanche	The opposition is desire. So do you wonder?&nbsp;			How could you possibly wonder!<br>블랑시는 의심스러운 화자다. 마지막 결말을 알기 전까지 블랑시를 동정하기 보다는 비난하기 쉽도록 플롯이 짜여있다. 블랑시는 단지 정신나간 사람이나, 이상한 캐릭터가 아닌 비극적 인물이다. 9장의 블랑시의 라인이다. 블랑시의 과거 고백의 피크다. 스텔라가 벨 리브를 떠난 10년 동안 벨 리브에서는 죽음이 끊이지 않았고 Dubois 가는 몰락했다. “반대는 욕망이죠. 이상한가요? 어떻게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어요!” 모든 사람을 잃고 혼자 남은 블랑시는 낯선 사람과의 관계를 도피처로 삼는다. 죽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수단으로 욕망을 선택했다. 이러한 욕망과 죽음의 관계는 1장에서도 언급된다.<br>Blanche	They told me to take a street-car named Desire, and then transfer to one called Cemeteries and ride six block and get off at — Elysian Fields!<br>“사람들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블록이 지난 다음, 극락이라는 곳에서 내리라고 하더군요.“ 블랑시가 이곳으로 오는 것은 운명과 같다. 스텔라가 스탠리와 가정을 꾸리고 있는 이곳에서 블랑시는 자신이 의존할 수 있는 친절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그 결말은 파멸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종착지는 파멸이다. 어째서일까. 테네시 윌리암스는 죽음이 아닌 파멸을 제시한다. 고전 비극의 주인공과 닮아 있으나 차이가 있다. 그들은 스스로 파멸을 직시했고 심지어 선택했다. 블랑시는 다르다. 블랑시는 남자들에 의해 망가져 왔고, 스탠리에 의해 파괴된다. 스탠리는 분명 블랑시가 원하는 일이었다고 생각할 거다. 그럴까? 정신의학적 상식이 널리 퍼진 요즘 같은 시절에는 스탠리와 같은 궤변이 많이 줄었다. 그러나 ’40년대에는 스탠리를 옹호하는 주장이 얼마나 많았을지 짐작된다. 블랑시는 파멸을 선택하지 않았다. 친절에 의존하고자 했을 뿐이다. 스텔라와의 관계를 볼 때 블랑시는 문제 많고 이기적인 인물이 맞다. 그러나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날카롭게) 그래요! 그래, 잊은게 있어요!” “Yes! Yes, I forgot something!” 블랑시는 어느 순간부턴가 자신을 조금씩 잃어버렸고 스탠리에 의해 완전히 자신을 잃어버린다. 친절에게, 종국엔 폭력에게 자신을 잃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2/cover150/893746161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13247</link></image></item><item><author>플러스펜</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대체할 수 없는 엄마와 딸의 관계 - [클라라와 태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7716124/17331453</link><pubDate>Fri, 12 Jun 2026 22: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7716124/1733145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17561&TPaperId=173314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722/1/coveroff/8937417561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17561&TPaperId=1733145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클라라와 태양</a><br/>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03월<br/></td></tr></table><br/>저는 &lt;클라라와 태양&gt;은 "엄마"에 대해서,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기원한 소설이라고 생각해요.&nbsp;AF 클라라를 도입한 부분은 아빠, 아들, 다른 딸처럼 친족이 아닌 중립적인 관찰자를 두려고 그랬다고요.이야기에서 파고드는 관계의 중점이 항상 "엄마-딸"을 벗어나지 않고요. 다각도로 보게끔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지만, 클라라의 시선과 엄마의 시선은 서로 대체할 수 없지만 양립하면서 조시를 향해요.&nbsp;클라라도 엄마처럼 조시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니까요.&nbsp;이 이야기에서 아빠는 "엄마-딸"의 관계에서 철저히 외부자로 머물러요(이런 점은 릭과 그 엄마에서도 반복되고요). 아빠는 엄마와 달리 반체제적 정치집단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더욱 먼 인물이 되고요.&nbsp;AF를 도입한 이유는 과학 기술이 "대체 가능한 것"과 "대체 불가능한 것"이 한 몸에 공존하는 아이러니한 지점을 파고들고자 한거 같아요.&nbsp;클라라는 조시에게 여러 서비스, 돌봄의 일부 기능 제공할 수 있고 항상 조시를 위하지만, 조시는 정말 아플 때면 언제나 제일 먼저 엄마를 찾죠.엄마는 샐처럼 조시가 '향상'을&nbsp; 견디지 못하고 죽는다면 클라라에게 '조시 역'을 맡겨 위안을 삼으려고 생각했지만 이내 포기하고요.'관계'는 대체 불가능하다는 지점을 파고 들어요.&nbsp;엄마는 딸에 대한 사랑과 과학적, 제도적 욕망에 따라 '향상'을 선택하고, 클라라는 조시기 '향상'의 부작용으로부터 생존할 수 있길 바래서 기도하죠.&nbsp;이 교차점에서 모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조시가 위독한 때, 릭 앞에서 자신의 깊은 속마음을 토로하는 엄마의 말들이 기억나요.&nbsp;가장 강렬한 지점이었어요. 여기서는 클라라로부터 엄마의 내면으로 더 포커스가 이동해요. 엄마로서의 욕망과 죄책감이 교차하고, '향상'하지 않은 아이 릭에 대한 멸시와 향상을 선택한 자신의 실패한 것에 대한 분노가 그대로 드러나요.&nbsp;그러나 조시는 기적적으로 생존하고 '향상'을 누리고 살게 되었죠. 클라라의 기도 덕분에 태양이 도와준 걸까요? '향상'은 위험했지만 딸이 견딜 수 있을거라고 믿었던 엄마의 선택이 옳았던 걸까?&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722/1/cover150/8937417561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7220169</link></image></item><item><author>플러스펜</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서른 다섯에 읽은 ˝노르웨이의 숲˝ - [노르웨이의 숲]</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7716124/17317070</link><pubDate>Thu, 04 Jun 2026 19: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7716124/173170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3105&TPaperId=173170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97/41/coveroff/8937463105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3105&TPaperId=173170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노르웨이의 숲</a><br/>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09월<br/></td></tr></table><br/>나오코는 갑자기 폭 빠져 돌아올 수 없는 우물을 말한다. 어느새 찾아오는 덫 같은 죽음. 숲 너머 들판 어딘가에 우물이 있다. 방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빠지지 않을 수 있을텐데.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걷다가 빠져 죽는 일은 없테지만 그럴 수는 없다. 나오코는 거짓말을 했다. 죽음은 숲 너머에 있다고 말했다. 나오코가 마주한 첫 죽음은 자신의 집에, 언니의 방에 있었다. 나의 방 바로 옆 방, 언니의 방에서 언니는 목을 매달아 죽었다. 나오코에게 어두운 숲이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세계가 아니었다. 자신의 ‘기억의 숲’이었다. 기즈키가 자살했다. 나오코에게 찾아온 두 번째 죽음이다. 언니와 소꿉친구의 자살이 연이었다. 가까운 죽음은 나오코를 흔들었다. 와타나베의 회상은 나오코자 자신에게 전해준 우물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오카는 말한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를 우물이 있다. 언제 빠질지 모르고, 어디 있을지 모를 깊은 우물로 사라져 버릴 수 있다. 이는 나오코가 위태로운 자살 충동을 겪음을 전하는 우화이다. 언제일지 모른다는 점에서 우연하고, 왜인지 그런 우물이 있는지를 모른다는 점에서 불합리하다. 잊힌 덫에 숲을 거닐던 사슴이 죽듯. 모두에게 잊힌 우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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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코는 성인이 되어 우연히 와타나베를 다시 만났다. 기즈키의 죽음을 함께 겪은 친구다. 와타나베는 나오코와 섹스를 했다. 나오코는 침범하도록 뒀다. 나오코는 와타나베를 사랑한 적이 없다. 와타나베는 뒤늦게 깨닫는다: 나오코가 자신과 섹스를 했던 까닭: 사랑해서도 섹스 하고 싶어서도 아니었다는 점을. 우물의 우화는 와타나베가 그려낸 우화다. 나오코는 말없이 떠났다. 와타나베에게 나오코가 속마음을 드러낸 적도 말할 수 있었던 적도 없었다. 와타나베는 나오코와 기즈키의 상실을 공유한다고 느낀다. 우연히 다시 만난 나오코와 자신을 운명적인 인연으로 묶는다. 와타나베 있어서 나오코는 대화의 상대가 아니다. 나오코가 타자임 부인한다. 보살펴주겠다는 이유로 소유하고자 한다. 미래를 약속하고 자신은 나오코를 위해 헌신할 준비를 해간다고 믿는다. 결정적인 사건을 같이 겪었으므로 하나의 운명이 되어야 한다고 정했다. 와타나베의 이러한 욕망을 기즈키가 아닌 자신이 나오코가 처음 섹스한 남성이란 사실이 뒷받침해줬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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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오코는 와타나베를 사랑한 적이 없다. 이것이 와타나베의 침범에 대한 징벌이다. 와타나베는 살아가기를 고민한다. 미도리와 사랑하고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단순하고 강한 이유다. 와타나베는 두 상실을 겪고 미도리를 사랑하고 행복할 수 있을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왜 자신은 기즈키와 나오코처럼 자살하지 않아야 할지에 대한 자기이유가 필요했다. 이 세상에 남을 자신의 존재이유가 필요했다. 미도리가 함께 살자고 말하지만 와타나베는 미도리에게 시간을 달라고 한다. 끊없이 걷는다. 빵과 토마토, 초콜렛만 먹으며 배낭을 짊어지고 노숙하며 걷는다. 살아 남아야 할 까닭을 세상 어디에선가 우연히 찾아지길 바라며 방랑한다. 와타나바게 알아낸 것은 자신이다. 자신을 알게 된다. 자신은 거짓말쟁이란 걸. 껍질을 두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란 것, 결코 속을 터놓고 솔직해질 수 없는 사람이란 걸.&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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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는 픽션을 쓰기를 선택한다. 자신이 만들어낸 상상 속에 살아가기로 한다. 더이상 자신에게 진짜 세상은 너무 과분하다고 결정 내렸다. 환상속으로 물러난다. 하나의 목적을 남기고 자신의 삶을 폐기한다. 가감없는 삶의 진실된 기억으로부터 내가 꾸며낸 ‘쓰여진 세계’의 기억으로의 전환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와타나베 자신이 자신에게 허락하기로 결정한 자기기만의 삶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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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흔이 되어갈 때쯤, 와타나베는 깨닫는다. 루프트 한자 비행기에서 흘러나온 Norwegian Wood를 듣고 기억의 홍수를 겪는다. 공황 발작에 빠진다. 레이코는 나오코의 장례식을 위해 쉰 곡을 연주했다. Dear Hearts를 시작으로 Norwegian Wood를 두 번째로 연주하고, 같은 곡을 다시 마지막 곡에 연주했다. 노래가 불러일으킨 기억은 공황을 일으켰다. 나오코는 자신을 결코 사랑한 적이 없으며, 자신에게 기억하라고 말한 적도 없으며, 자신이 청춘에 완성한 원고는 모두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쓰여진 글일 뿐, 누군가를 사랑하고 돌봐주기 위해온 사람의 노력한 결과물이 아니란 걸 깨닫았다. 이 이야기는 작가 와타나베가 남긴 반성문이다. 지극히 수치스러운 나의 이야기다. 당신에게 건냅니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나에 대해 당신이 읽어내고 싶은대로 읽으십시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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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문학은 남성이 여성에 대해 품는 에로스의 욕망을 무척이나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남성독자들에게는 의외로&nbsp; 시큰둥한 인기를 끌곤 한다. 그 까닭엔 하루키가 다루는 에로티시즘은 겉보기에는 항상 남성을 위하여 정렬된 것처럼 보이지만, 남성의 발기에 대한 배반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발기하는 남자들에게 말한다. 지어내지 말고 기억하라. '수치심'은 갖으라. 서브플롯으로 다뤄지는 나가사와와 하쓰미의 에피소드에선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나가사와의 목소리로 말한다. "이런 나마저도 하쓰미의 죽음엔 견디기 어렵다, 부끄럽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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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레이코 관계를 소설의 말미에 넣어둔 까닭도 여기 있다. 이 관계는 죽음 앞의 인간의 성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장면이다. 자신들이 사정하는 까닭이 상대방을 깊이 사랑해서가 아닌 죽음에 쫓겨서인 점을 알라고, 받아들이라고. 생의 유한함을 알기에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고 거짓말 하거나, 근사한 거짓말을 만들어내 봤자, 자신을 위한 것일 뿐이란 걸 알 것을 요구한다. 생의 유한함을 알기에 더 마음껏 사정할 뿐이다. 와타나베-레이코의 장례식은 제의祭儀로서 기능하며, 도취적인 합일을 이루도록 한다. 생의 보호막을 한 겹 더 잃어버린 순간 타인의 몸과 만나다. 자신에게 잔존하는 생명의 힘을 과시하며 주이상스를 향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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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는 나오코의 죽음, 레이코와의 제의를 마친 다음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어 말한다: “너와 꼭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 꼭 해야 할 말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이 세상에서 너 말고 내가 바라는 건 아무 것도 없어. 너를 만나 이야기하고 싶어. 모든 것을 너와 둘이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어.”
미도리는 말한다. “너, 지금 어디야?”
와타나베는 미도리에게 대답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미도리-와타나베는 섹스가 없다. 미도리-와타나베 관계는 나오코-와타나베와 다를까, 둘은 사랑할까? 이야기는 열린 결말로 끝맺는다. 열린 결말은 청춘의 와타나베에 이입하는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내 대답은 와타나베와의 관계에서 미도리는 자신의 경계를 잃은 적이 없었다는 사실과 중년의 와타나베는 공황발작을 겪는다는 사실, 이 두 지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미도리-와나타베의 관계는 다음 글에서 다뤄보겠다. 미도리의 말이 지닌 힘에 대해서 그 중에서도 우소うそ가 가진 힘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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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 하루키는 피츠제럴드를 본받고자 했습니다. 개츠비의 초록빛을 미도리에게 담았습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97/41/cover150/8937463105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974103</link></image></item><item><author>플러스펜</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스포 포함) 해룡의 죽음은 이 극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 [시티 뷰 - 제1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7716124/17315896</link><pubDate>Thu, 04 Jun 2026 02: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7716124/1731589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22933926&TPaperId=1731589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764/71/coveroff/k52293392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22933926&TPaperId=1731589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시티 뷰 - 제1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a><br/>우신영 지음 / 다산책방 / 2024년 09월<br/></td></tr></table><br/>우신영 작가는 말합니다: "거침없이 투명한 시티 뷰를 위해 유리를 닦는 사람과 스릴을 안전하게 감각하기 위해 가짜 암벽을 타는 사람. 한쪽은 지상으로 하강하고 있었고 한쪽은 정상으로 상승하고 있었는데 평행의 정의에 의거하여 그들은 절대 스칠 일이 없어 보였다. 줄에 의지해 오르내린다는 행위의 닮은꼴과 달리 그들 사이에는 무참하리만큼 아찔한 심연이 놓여 있었으니까. 그 사실을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헛구역질이 났다. 그게 이 소설의 시작이었다."&nbsp;작가 개인이 밝힌 작품의 창작동기는 해룡의 죽음입니다. "더 이상 가난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은 스스로가 견디기 어려워진 것은 마흔이 넘어서였다."고 밝힙니다. 우신영은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업작가가 되었습니다. 문학을 읽는 것은 간혹 "스릴을 안전하게 감각하기 위해 가짜" 경험을 갖는 것이 아닐까 묻곤 하게 됩니다. 여러 문학이 있지만 소위 순수문학으로 불리우는 평단이 골라 둔 작품들은 제게 이런 감각을 크게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질문입니다. 홀로 자신의 시간을 들여 원하는 책을 읽는 것이 재미로만 그친다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이 틀이 확장되어도 그저 재밌어서 한다고 말하긴 어려워집니다. "현대소설교육론 강의를 10년 가까이" 해온 우신영은 "남의 불향을 가르치며 행복하다는 것에, 안락의 옷을 입고 시계를 차고 가방을 멘 채 결피블 논한다는 것에, 이따끔 헛기침이 나왔다."고 말합니다.&nbsp;작가의 말에는 자신의 그린 인물들의 모습들이 자신의 감각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걸 밝히고 있습니다. 헛기침, 삼킬 수 없는 헛구역질, 나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눈동자에 취하는 나. 유화와 해룡, 그리고 주니와 보육원 출신 채원, 가정부 옥란으로 갈수록 자신과 멀어집니다. 이는 우신영 뿐만 아니라 교양 있는 독자층, 흔히 중산층일 것으로 간주되는 독자층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작가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난쏘공'을 가르쳤다고요. 저의 부모는 모두 노동자였으나, 가족은 계층 상승을 이뤘습니다. 둘은 같은 공장에서 만나서 결혼을 했습니다. "담배를 사셔필 돈도 없어 꽁초를 주워피곤 했다면서, 엄마는 아빠랑 왜 결혼했던 거야?" 아버지는 제가 태어난 때부턴 공장을 그만두고 건설현장 막노동꾼 설비쟁이가 됐습니다. 2010년도 수능 2주 전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우마(이동식 천정작업 비계)에서 떨어져서 왼쪽 팔꿈치 아래 뼈가 박살이 났습니다. 생명에 지장은 없었으나 고통스러운 수술을 했고, 퇴원을 하기 전 철심을 박은채로 병원을 빠져나가 현장 작업장으로 돌아갔다오곤 했습니다. 제겐 건설 노동자이던 아버지가 언제 떨어져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었습니다. 막연한 어린 시절 산업재해를 다루는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보며, 저 아저씨처럼 우리 아버지가 떨어져 죽지 않을까 공포에 질렸던 것이 기억납니다. 더 크고난 청소년기엔 높은 곳에 서면 훨훨 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 뛰어내려 볼까 싶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이 공포를 다시 느꼈던 기억도 있습니다.타인의 고통을 다루는 문제, 특히나 나보다 계급이 낮은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 문제는 어렵고, 가끔은 건들기 곤란한 문제일 것입니다. 작가가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몹시 진지하고 과감합니다. 시티-뷰위 모든 이야기는 결국 석진의 어머니의 이야기가 밝혀지기 전과 다음에 다르개 읽어집니다. 어머니에 대한 혐오와 한스러움을 느껴왔던 자신을 직면하며 극이 끝납니다.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것이 삶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해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꼭 돌아온다고 생각합니다.&nbsp;그러나 내가 이쯤되니 정말로 결핍이 없는 인간이라고 느껴질 때가 온다면 어떨까요?우연하게도 저의 아버지의 이름은 상룡입니다. 저의 이모의 이름은 옥란입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764/71/cover150/k52293392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7647108</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