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라주미힌 > ‘동물을 사랑한다’는 오해…‘

김희경 동아일보 기자ㆍ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교수인 템플 그래딘은 동물들의 눈으로 그들의 세계를 보여주면서 사람과 동물의 공존 가능성을 모색한다. 사진 제공 샘터
◇동물과의 대화/템플 그래딘 외 지음·권도승 옮김/520쪽·2만2000원·샘터

한 사육장에서 소들이 좁은 통로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티자 사육사는 전기봉을 들이대며 억지로 소를 몰아넣었다. 이 책의 저자 템플 그래딘은 소처럼 손과 무릎으로 그 통로를 기어가고 동물의 시각에서 흑백사진을 찍어 본다.

저자가 발견한 것은 ‘겨우’ 그림자와 천장에 늘어진 체인. 사람에겐 정말 별것도 아니지만 300kg이 넘는 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동물은 사람보다 더 사소한 것을 본다. 저자가 미세 지향적인 동물의 성향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사물의 전체보다 세세한 면에 집중하는 자폐증을 앓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부교수(동물학)로 사회생활을 하지만 저자는 ‘사람보다 동물이 생각하고 느끼는 감각에 더 가까운’ 자폐인이다. 동물과 자폐인에겐 사고를 통합하는 두뇌 전두엽의 발달이 약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동물처럼 무의식이 없으며 이중적 감정을 느끼지 않고 사물의 차이에 주목하는’ 저자는 사람보다 동물을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한다.

저자가 남다른 감각으로 동물의 속성을 설명한 이 책을 읽다 보면,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의 행위조차 얼마나 커다란 오해에 입각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사람이 가장 자주 저지르는 실수는 동물의 의인화다. 애완용 사자를 비행기에 태운 사람이 사자를 편안하게 해 주려고 여러 개의 깃털베개를 넣어 줬는데 사자는 베개를 먹어치우다 목이 막혀 죽어 버렸다.

동물은 고통에 둔감할 것이라고들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동물은 고통을 숨긴다. 저자는 거세를 당한 수소가 사육장에 혼자 있을 땐 땅바닥에 드러누워 신음하다 사람이 들어오자 벌떡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 있는 것을 목격했다. 야생에서는 어떤 동물이든 부상을 하면 포식자에게 당하게 되므로 동물은 아파도 전혀 아프지 않은 듯 행동하는 태도로 진화한 것이다. 특히 덩치가 작고 힘이 약한 양이나 염소 영양 같은 동물은 극도의 고통을 참아 낸다.

저자는 동물에게 고통보다 더 나쁜 것은 공포라고 지적한다. 자폐아들처럼 동물도 고통보다 공포에 더 민감하다. 검은 모자처럼 아주 사소한 것도 동물에게 엄청난 공포를 야기할 수 있다. 게다가 가장 겁이 많은 동물이 동시에 가장 호기심이 많아서 곧잘 위험에 빠진다.

야생 동물이 아닌 가축이 겪는 또 하나의 수난은 사람이 동물에게 원하는 한두 가지 속성만을 얻어 내기 위해 선택적으로 사육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단 하나의 육체적 특성만 바꾸려는 시도는 동물에게 만만치 않은 정서적 행동장애를 초래한다. 가슴살이 더 많은 닭을 얻으려고 품종을 개량한 결과 암탉을 마구 겁탈하고 죽이는 수탉이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누구보다 동물을 사랑하지만 저자는 동물을 덜 고통스럽게 죽이는 도축 시스템을 개발했고, 어지러움을 견디기 어려워 채식을 포기했다. 저자는 “육식동물의 습성을 버릴 수 없는 인류가 동물을 이용하려고 사육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가축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인간이 동물을 여기까지 데려왔으니 자비로운 죽음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에는 동물의 생각, 느낌, 능력, 고통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알아 두면 좋을 동물의 행동과 문제 해결 가이드도 실려 있다.

저자는 동물이 우리 생활에서 그저 목적물이나 애완용이 아니라 우리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람은 늑대를 길들여 개로 만들었지만 개도 사람을 진화시켰다. 개를 통해 사람은 무리를 지어 사냥하는 법을 익혔다. 사람이 동물에게 빚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시 한때는 동물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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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來而 > * “설득력 있는 글쓰기 모둠학습이 비법”

* 한겨레(2006. 12. 29) / “설득력 있는 글쓰기 모둠학습이 비법”
대화·토론·협상과정서 논리 확장
일대일 첨삭지도 어려운 한계 절충
교수자보다 학생이 중심되는 교육
“글쓰기 요체는 독자 염두에 두기”
» ‘글쓰기 교육과 협력학습’
책·인터뷰 / ‘글쓰기 교육과 협력학습’ 쓴 정희모 교수

“글쓰기는 모둠학습이 무척 중요해요. 대화, 토론, 협상 과정에서 지식이 확장되고 논리가 세워지거든요. 그런 과정을 거친 글은 무척 설득적이죠.”

<글쓰기 교육과 협력학습>(삼인)을 쓴 연세대 정희모(46) 교수(학부대학 글쓰기전공)는 일대일 첨삭지도가 가장 좋기는 하지만 한반 정원이 30~120명인 우리나라 대학 현실에서 불가능하므로 모둠학습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한국의 대학교에서 글쓰기에 주목한 것은 2000년대 초부터. 그동안 대학작문이란 모호한 형식으로 넘어가다가 글쓰기 전공자를 두고 정식과목으로 채택하게 된 것. 미국에서는 이미 40년전부터 읽기와 쓰기의 중요성을 인식해 엠아이티의 경우 한해 수백만 달러를 들여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네 과목을 반드시 이수토록 하고 있다.

글쓰기는 일종의 지적인 표현으로서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일치한다. 하버드대에서 졸업생 가운데 사회의 리더로 활동하는 인사들을 조사한 결과 글쓰기 능력을 성공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대학에도 라이팅센터를 두고 학생들의 상담, 전문연구자 양성, 프로그램 개발 등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센터를 도서관 내부에 두어 논문이나 보고서를 쓰다가 막히는 학생들의 상담에 즉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단다. 한국도 뒤늦게나마 글쓰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의욕적으로 전문과정을 개설하고는 있지만 교수진이나, 프로그램 등에서 미흡한 점이 많다고 정 교수는 전했다.

대부분의 교재들이 학문적인 배경과 철저한 이론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실질적인 학습 지침서 노릇을 못하고 있다는 게 그의 평가다. 그동안 <글쓰기>, <글쓰기의 전략> <과학글쓰기> 등을 써내 글쓰기 이론과 방법론이 일천한 교계에 교재를 공급해온 정 교수가 이번 책에서는 모둠학습에 대한 이론과 원리, 철학적 배경 그리고 모둠학습에 필요한 원리와 방법 등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 ‘글쓰기 교육과 협력학습’의 저자 정희모 교수
모둠학습은 교수자 중심에서 학생 중심으로 교육방식을 전환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학생의 관점에서 첨삭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목표와 과제에 맞게 적정수로 모둠을 만들되 구성원을 능력에 따라 안배한다. 과제를 할당해 개별초고를 모은 다음 토론을 거쳐 초고본을 완성한다. 스타일의 일관성, 논리성, 조직성을 따져 수정을 하여 수정본을 만드는 과정을 한두 차례 반복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완성본으로써 평가를 받는데 그동안의 과정 역시 평가에 포함한다.” 이와 같은 모둠학습을 거치면서 글쓰기의 능력뿐 아니라 글쓰기의 궁극목표인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함께 향상된다는 것이다.

“교양과목으로 학부생들을 가르쳐보니 재밌고 보람이 크다”는 정 교수는 학생들이 머릿속 논리와 표현의 논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애초에 짠 얼개는 좋은데 막상 글로 옮기면 아주 미숙하다는 것이다.

머릿속 논리는 큰 얼개인 만큼 ‘생각뭉치’들 사이의 거리가 멀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구체화한 텍스트는 연관된 짧은 글들의 연쇄인 만큼 이음새가 촘촘해야 한다는 것이다. 촘촘함이 모자라면 논리비약으로 이어져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글쓰기의 요체는 독자를 염두에 두라는 것입니다. 글쓴이는 구상단계를 거친 만큼 독자들도 자신의 애초 구상과 동일하게 이해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죠. 하지만 독자의 눈에는 구상과는 무관한 글의 전개를 볼 뿐입니다.”

그는 글을 잘 쓰려면 어려서부터 사고학습과 표현학습을 꾸준히 병행할 것을 주문했다. 일기, 감상문, 보고서 등 짧은 글을 자꾸 써봄으로써 자신의 사고를 표현으로 전환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글쓰기 평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다만 대학마다 논술성적을 평가하는 잣대가 있을 터이지만 제3자가 보아도 수긍할 만큼 객관성을 갖고 있느냐는 알 수 없다면서 교육부에서 용역을 주어서라도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해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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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來而 > * 그리스 시민은 동성애가 명예: 러브, 섹스, 그리고 비극

* 한겨레(2006. 12. 22) /  그리스 시민은 동성애가 명예

후대는 왜 그리스적인 것에 집착할까
사랑·결혼·비극·민주주의 등 오늘의 일상 곳곳에 자취
보편적이던 동성애는 사랑의 자연스러움을
준엄한 법질서는 오늘날의 정치적 혼란을 일깨워
» <러브 섹스 그리고 비극> 사이먼 골드힐 지음. 김영선 옮김. 예경 펴냄. 1만9800원
프로이트가 살아있는 동안 고전 고고학은 가장 인기있는 최신 유행 학문 분야의 하나였다. 슐레이만은 트로이와 미케네를 발굴했고 아서 에반스는 크레타섬에서 미노스왕의 궁전을 발견했다. 고대의 진실을 향해 파내려가는 발굴이라는 모델은 프로이트를 자극했음이 틀림없다. 그리스 땅에 묻혀있던 문화재의 발견에 대한 매혹은 인간의 마음속 탐사 작업으로 전이되었고 자신의 새로운 연구방식을 구현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의 모델에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그가 발견한 심리현상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이름을 얻었고 그것은 고전의 후광을 입어 곧바로 권위를 갖게 되었다.

19세기 사람들은 모든 그리스적인 것에 집착했고 이런 강박관념은 몸 문화를 변화시켰다. 특히 독일에서 몸 예찬이 무성했다. 집단 도보여행을 하고 운동과 수영을 하거나 함께 훈련을 했다. 그리스문화에 열광한 독일인들은 운동을 독일 국가사회주의의의 열렬한 이상으로 삼았다. 몸에 대한 예찬은 도를 넘어 국가주의와 더불어 아리아인들의 공격성을 조장했다. 극렬 아리아인들은 몸 예찬을 나치 이데올로기와 연관시켰는데 이러한 열성과 19세기의 그리스에 대한 낭만적 애호를 연결짓는데 가장 유력한 근거를 제공한 것이 프리드리히 니체였다.

<러브 섹스 그리고 비극>(예경 펴냄)은 우리 현대인의 자아와 정치사에 대한 사고의 역사가 밀접하게 뒤얽혀 있는 그리스의 일상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리스 시대에는 완벽한 몸의 기준이 되는 것은 남성이었다. 여성의 몸은 일종의 기형으로, 혈액과 체액에 흐르는 관이 서로 연결된 항아리와 같다고 간주되었다. 몸속 관들이 잘 뚫려 있어야 임신할 수 있다고 진단되었다. 그 방법은 여성의 질 속에 밤새 마늘조각을 넣어두었다가 이튿날 아침 입을 통해 냄새가 올라오는가를 살펴보는 희한한 것이었다.

“날 사랑해?” 이 말은 그리스 남성이 여성에게 할 말이 아니었다. 가족의 유지를 위해 결혼생활은 기본이었지만 아내에게 욕망을 느끼는 것은 비극적이거나 희극적인 착오였을 따름이다. 세네카 왈, “아내와 연인처럼 같이 자는 것은 간통만큼이나 혐오스런 짓이다.” 소크라테스는 임종의 침상에서 울고있는 아내를 내보내고 마지막 순간을 남성 친구들과 토론하며 보냈다.

여성의 몸은 기형으로 간주

아테네 시민 성인에게 동성애는 보편적이었으며 일종의 명예로움에 속했다. 대상은 사춘기가 지나 턱수염이 나기 직전의 미소년. “카르미데스의 신장이나 아름다움은 놀라웠으며 모두가 그를 마음에 둔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 소년이 체육관에 들어섰을 때 벼락을 맞은 듯 눈을 흡뜨면서 혼란스러웠다. 모든 이들이 그를 조각상처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때 나는 소년의 망또 안을 얼핏 보고 흥분해서 더 이상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나는 야수에게 사로잡힌 것 같았다.”(소크라테스) 여성끼리의 구애는 기원전 6세기 초 레스보스 섬에서 연애시를 쓴 사포가 유일하게 전한다. 그리스의 사랑은 자연스러움이 무엇인지, 그런 생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각하게 한다.

 

» 레즈비언 하면 떠올리는 레스보스 섬의 연애시인 사포는 그 명성에 비해 알려진 사실은 매우 적다. 그런 탓에 현대인의 섹슈얼리티를 투영하는 캔버스로 적절한 기능을 하게 되었다. 1881년에 그려진 앨머 태디머의 ‘사포’는 여성의 여성에 대한 사랑과 남성에 대한 사랑 사이의 긴장을 암시함으로써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보수적인 시선을 비켜갔다. 예경 제공
소크라테스도 미소년에 반해

그리스 예술과 철학은 그리스도교에서 철저하게 재활용되었다. 키가 크고 품위있게 차려입고 날개를 가진 천사의 이미지는 승리의 여신 니케의 상에서 영향을 받았다. 로마 미술에서 소년으로 표현되는 욕망의 신인 푸티(큐피드) 역시 그리스도교의 표현양식 안으로 들어왔다. 영혼이 몸의 족쇄에서 풀려 불멸하는 삶을 위해 더좋은 곳으로 가므로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소크라테스는 그리스도교인이 보기에 순교자의 선구였다. 그리스도교의 은둔자와 순교자에 관한 많은 이야기는 견유학파의 그것과 아주 흡사하다. 단 섹스는 빼놓고. 장터에서 자위행위를 하다가 들킨 디오게네스는 “배고픔이 이렇게 간단히 해소될 수 있었으면 싶네”라고 눙치며 곤경을 빠져나갔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은 플라톤의 <공화국>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응답이었다.

그리스-로마 문화가 격렬하게 부활한 르네상스. 그 소용돌이 한가운데 에라스무스가 있다. 그가 매혹된 사람은 성서 번역자인 성 히에로니무스. 그의 서간집을 편집하면서 에라스무스는 그리스어판 복음서로 눈길을 주었다.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분은 하나이시라.” 삼위일체의 근거가 되는 <요한1서>의 이 구절을 고대사본에서 찾지 못한 그는 다른 누군가 덧붙인 것이라고 판단해 자신의 판본에서는 그 구절을 빼버렸다.

민주주의 하면 두말할 것 없이 그리스.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대군이 소수의 스파르타군과 대치했을 때. “저들을 복종케하는 왕이 있다면 모르지만 자유민이라는 사람들이 어째서 필사적으로 덤비는가?” 스파르타인 부관의 답. “그들은 자유롭다. 하지만 그들에게 법이라는 지배자가 있다. 그들은 왕보다 법을 두려워한다. 그 지배자가 명령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한다. 그리고 그의 명령은 변덕스럽게 바뀌지 않는다.” 발언의 자유, 법 앞에서의 평등, 책임이 민주주의의 세 뼈대.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에서 정치참여는 곧 의사결정 행위였고 실행은 자신에게 부과되었다. 아테네에서 공직을 갖지않은 시민(Idiotes)은 멍청이(Idiot)였다.

니케, 기독교 천사 이미지에 영향

배심원 일과 해군에서 노 젓는 일에 비용을 지불했듯이 연극관람료도 주어졌다. 육체노동 하루 품삯인 은화 두 닢. 그해 시민봉사자 표창, 동맹국에서 보낸 순은막대기 회람, 전쟁고아들의 행진이 끝나면 연극의 막이 오른다. 바람직한 도시국가상을 설파하고 개인의 자아성찰로까지 이어지는 내용이다. 상하 일체였던 연극행위는 시간과 함께 변질되어 19세기 나치 국가주의의 대중조작을 거쳐 할리우드에 이르면 고도의 상업주의 성격을 띤다.

개인과 대기업은 이익만 챙기려들 뿐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고 정부는 권위를 잃고 법 질서가 흐트러진 요즈음, 원형의 고향 그리스를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하다. 몸짱열풍, 찜질방 문화를 그리스시대와 견줘보는 것도 재미있다. 얼핏 추리소설 같은 표지를 들추기가 망서려지지 일단 책을 펴들면 줄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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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來而 > 논술문 요약하기 #3: {반 세계화 지지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 이 문제의 정답은 아래와 같이 제시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저자는 세계화를 반대하는 반(反) 세계화 세력들의 일련의 주장을 체계적으로 비판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세계화와 관련하여 직면하고 있는 도전은 세계화를 지지하는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세계화의 윤리적 기초를 세우는 것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세계화의 윤리적 기초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저자는 민주주의, 인권존중, 개발원조, 자유무역, 세계화의 선도기구 등을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민주주의와 인권존중은 폭력과 전쟁의 방지, 무역과 번영을 성취할 수 있는 지속적 방법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개발원조와 자유화를 통해 세계 인구의 다수가 적절한 의료해택이나 교육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들의 연간 소득총액이 현저히 향상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보다 중요하게 저자는 '윤리적 세계화'를 실행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는데 이를 위해 새로운 G8의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울러 저자는 유럽연합이 윤리적 세계화에서 담당해야 할 역할과 비유럽 기구와의 협력관계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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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來而 > * 논술교육 99% 잘못 됐다.

“나 역시 요즘의 서울대 논술시험을 통과할 자신이 없다. 명색이 50년 동안 글을 썼다는 나도 이런 방식의 글쓰기 시험은 어렵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서울대 논술을 예로 들며, 현행 글쓰기 시험의 문제점에 쓴 소리를 날렸다. 등단 50주년을 맞아 진행한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다.

원조 문학평론가, 소설가, 국문학자, 일본문화 연구자, 언론인, 출판인, 88올림픽 기획자, 2002 한일월드컵 기획자, 그리고 이화여대 교수. 이름 앞에 놓이는 수많은 수식어가 그의 비판에 힘을 실어준다. 각 분야에서 특출한 업적을 남겨온, 최고의 지성조차도 현행 논술 시험이 어렵다 말하는데 일반 학생들은 오죽하겠는가.

몇 년 전 서울대 논술시험에서는 무려 70%에 달하는 수험생이 김춘수 시인의 ‘꽃’을 인용해 답을 써냈다고 한다. 특정 학원에서 논술 문제에 나올만한 작품들을 예상하고, 모법답안을 가르친 결과가 빚어낸 ‘씁쓸한’ 헤프닝이었다.

이 전 장관이 제기하는 문제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출제 문항은 어렵고, 대학 입시에서 논술 비중은 날로 높아지니 ‘사교육’만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 그렇다고 일선 학원에서 가르치는 글쓰기 요령이 논술 준비에 도움이 되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논술공부 99%는 잘못됐다>(황금부엉이. 2006)의 저자 이상수는 “논술시장은 교육부가 용인한 대형 사기극”이라며 “주입식 학원 강의는 논술시험을 망칠 뿐”이라고 맹렬히 비판한다.

이상수는 스카이라이프, KBS 수능 강의 해설위원, 경향신문 논술언어 출제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교육 기업 (주)수교육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즉 <논술공부 99% 잘못됐다>는 사교육 현장의 중심에 서있는 저자가 ‘누워서 뱉은 침’인 셈. 그가 폭로하는 논술 교육의 실상은 대략 이렇다.

학원가에서 통용되는 논술 첨삭의 불문율이 있다.

'무조건 첫 주에 점수를 박하게 준다.'

1주차 50점, 학생들은 ‘내가 원래 논술 못하잖아’라고 스스로 자신의 점수를 인정한다. 2주차 55점, 3주차 60점, 4주차 70점. 점수를 조금씩 올리며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강사는 5주차 60점으로 슬쩍 점수를 내린다. 그리고 다시 6주차 70점, 7주차 80점, 마지막 주에 90점으로 마무리하면, 학생들은 8주간 논술 수업을 통해 실력이 향상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논술 첨삭도 대부분 엉터리로 이루어진다. 학원은 편당 4~5천원을 주고 아르바이트 대학생에게 첨삭을 맡긴다. 학부모로부터 받은 첨삭료는 편당 1만원에서 1만 5천원선. 이윤이 2~3배나 되는 짭짤한 장사다. 더욱이 아르바이트생들은 시험 출제 경향을 모르고, 논술문 쓰기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도 없기 때문에 논지 전개보다는 맞춤법, 띄어쓰기, 문장구조에 대해서만 지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의 논술교육에 적지 않은 비용을 쏟아 붓고 있는 부모라면 억장이 무너져 내릴 이야기요,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겠다.

저자는 <논술공부 99%는 잘못됐다>에서 이 같은 밀고(?) 후 공교육을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학교에는 논술 교육의 주된 담당자인 국어 선생님뿐 아니라 철학적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윤리 선생님, 수리 논술 문제를 풀 수 있는 수학 선생님 등 통합 논술에 나오는 모든 주제를 다룰 수 있는 전공자들이 있다는 것. 과연, 지당한 이야기다.

이와 더불어, 책은 학생들에게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논술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방법도 소개한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독서의 생활화가 핵심. 책을 통해 지식을 확장하고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것이 최고 학원의 최고 강사에게 수업을 받는 것보다 낫단다.

너무 정석적인 해법인가? 하지만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은 예부터 전해 내려온 글쓰기의 비법. 기본부터 충실히 다지는 것 만한 최선이 어디 있겠는가.

http://www.bookdaily.co.kr/site/data/html_dir/2006/10/31/200610310033.asp

* 개 같은 놈들이다. 이런 책은 극히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렇게 누워서 침 뱉기 식의 전략이 한국의 상황에서 너무도  잘 통한다는 것이다. 음. 정말 논술을 잘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정말 답이 나오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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