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來而 > 기술 속 사상 #2 : 하이데거의 기술철학

 

기술 속 사상/②

[기술속사상] 현대기술아 제발 ‘닦달’하지 마/손화철
하이데거 ‘도구 이상의 그 무엇’ 첫 사유 “현대기술의 본질은 닦달(강요)” 주장
자연에게는 자원 내놓으라고 인간에게는 부품이 되라고 채근
씨를 다그치지 않는 농부처럼 겸손하게 ‘존재의 드러냄’ 기다려야
하이데거의 기술철학

돌도끼로부터 휴대전화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손에서 기술이 떠났던 적은 없다. 하지만 수천 년 철학사에서 기술이 철학적 탐구의 주제가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묻지 않아도 될 법한 당연한 일들에 대해서도 “~란 무엇인가” 혹은 “왜 ~한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퍼부어대는 철학자들이 기술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기술은 인간이 자기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라고 하면, 더 이상 물을 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용의 주체인 인간이나 사용의 목적에 대해서는 몰라도, 사용되는 기술에 대한 철학이란 무의미해 보이지 않는가.

이런 점에서 하이데거 (1889-1976)가 기술의 문제를 자기 철학의 한 축으로 삼은 것은 여러 가지로 의미심장하다. 그는 20세기 서양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자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철학사에 큰 영향을 미친 대사상가다. 1927년에 출간된 <존재와 시간> 이후의 철학자들은 하이데거의 사상을 알든 모르든 그의 그림자를 피해갈 수는 없다. 이렇게 중요한 철학자가 여태껏 외면당하던 기술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었으니 철학의 무대에서 기술도 마침내 한 번 뜬 셈이다.

물론 그가 아무 계기도 없이 기술을 주제로 삼은 것은 아니다. 하이데거는 산업혁명 이후 현대기술의 급격한 발달을 온 몸으로 체험한 사람이다. 그가 태어나기 7년 전인 1882년에 에디슨은 뉴욕시에서 최초의 전등을 켰고, 1886년에는 최초의 자동차가 제작되었으며,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와 무성영화는 그가 태어난 뒤에 각각 발명되었다. 이들 분야에서의 눈부신 발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외에도 핵폭탄, 컴퓨터, 텔레비젼 등 우리 시대를 바꾼 수많은 기술들이 그가 살았던 시절을 장식했다.

산업혁명기 체험이 ‘탐구’ 계기

기술에 대한 하이데거의 시각은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이다. 하이데거 이전에도 여러 사상가들이 현대기술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고 우려를 표명했지만, 정밀한 이론적 철학에 근거해서 현대기술이 비인간화를 초래한다고 주장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기술에 대한 논구>라는 비교적 짧은 글에서 하이데거는 현대 기술의 본질이 “닦달”(Ge-stell)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이 말의 의미는 현대기술이 존재하는 것들의 특성과 다양한 측면들을 무시하고 그들 각각의 의미를 기술적 맥락에만 한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현대기술은 자연에게 에너지와 원자재를 내 놓으라고 강요(닦달)한다. 현대 기술 앞에서 모든 존재자는 필요하면 언제라도 갖다 쓸 수 있고 대체 가능한 “부품”이 되어 버린다. 강물은 수력 댐을 통해 에너지를 공급하는 자원일 뿐이고 울창한 숲은 신문을 만들 종이의 재료일 뿐이다.

옛날의 기술은 그렇지 않았다. 농사를 지을 때 농부들은 씨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씨가 절로 나서 자라는 것을 잘 돌보는 것이다. 강 위에 다리를 놓는 것은 강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다리는 강을 건너기 위해 만들지만 그것은 강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게 하고, 전에는 익명의 존재였던 강 건너 마을을 이웃으로 드러나게도 한다. 기술은 인간이 어떤 목적을 위해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맞지만, 동시에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하이데거는 기술을 인간의 도구로 보는 인간적, 도구적 정의가 맞기는 하지만 기술의 본질을 보여주지는 못한다고 한다. 기술은 예술과 더불어 숨겨진 진리가 드러나는 통로, 혹은 존재가 자기 자신을 내 보이는 한 방식인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던 기술이 현대에 와서 닦달의 성격을 가지게 된 연유는 무엇인가? 여기서 우리는 현대기술과 하이데거 존재철학의 연결점을 보게 된다. 하이데거의 핵심 사상은 존재와 존재자의 구별이다. 그는 플라톤 이래로 서양 형이상학이 언제나 존재자, 즉 “있는 것”들에 대한 것이었지 동사적 의미에서의 존재, 즉 있음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고 비판한다. 플라톤 이래로 서양 형이상학은 신, 인간, 자연을 인간 인식의 대상이 되는 “있는 것”들로만 파악하였다. 그러면서 동사적 “있음”에 대한 관심, 즉 그 존재자가 다른 존재자들과 더불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는 점점 약해졌다. 플라톤이 모든 사물의 이데아, 곧 불변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물었던 것이나, 중세의 신학자들이 신의 본성을 물으려 했던 것은 “있음”보다는 “있는 것”에 치중한 대표적인 예이다.

파시즘·나치즘, 인간을 도구화

이러한 태도는 근대에 와서 훨씬 더 심화되었다. 근대의 사상가들은 존재자들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신비롭고 초월적인 질서나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진리가 있음을 부인하고, 이성적인 인간 주체를 절대화했다. 존재자들의 진리를 인간이 밝혀내고, 그 상호연관성과 전체적인 질서까지 인간이 부여한다고 보기 시작한 것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이렇게 존재의 드러냄을 망각한 것의 최종 결과가 바로 현대기술이다. 현대기술의 태도는 씨가 자연적으로 자라는 것을 돌보는 농부보다는 농약을 뿌리고 온도를 포함한 모든 조건을 임의로 조절해서 생산량을 억지로 높이는 식품생산 시스템에 비교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현대기술의 “닦달”이다.

문제는, 이 닦달의 대상이 자연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술사회에서는 사람들 역시 부품으로, 에너지의 출처로 전락하고 만다. 기계 부속처럼 인간도 잔뜩 쌓아놓고 필요하면 가져다 사용하고 시간이 지나면 버린다. 근대 이후의 인간은 모든 것을 지배하려 하지만, 그 지배의 대가는 자기 자신의 철저한 대상화다. 그 결과 현대의 인간은 눈부신 성취 가운데 공허하고 지배를 향한 끊임없는 노력 속에 권태롭다.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다른 존재자를 대상화했는데, 결국 주체는 없어지고 지배하려는 의지만 남았다. 존재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자인 인간은 존재를 망각함으로써 그 특별함을 잃고 말았다.

기술사회의 끊임없는 닦달과 팽창은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 의해 조종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닦달이, 존재가 기술시대에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현대에 모든 존재자들이 존재하는 방식은, 부품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스탈린주의나 파시즘, 그리고 그가 잠시 몸담았던 나치즘과 현대 시장 자본주의에서 현대기술의 닦달을 본다. 이들은 끊임없는 발전과 지배의 추구 속에 인간이 인간을 비인격적 도구로 취급하게 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하라는 도덕률은 하이데거의 눈에는 별로 유용하지 않다. 존재의 드러냄을 망각하고 인간의 주체성만을 강조한 결과가 현대기술이라면, 도덕의 주체로서의 인간에 다시 의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현대인에게 필요한 태도는 존재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조용히 바라보고, 씨가 자라 열매를 맺는 과정을 돌보는 농부처럼 겸손하게 그 드러냄에 참여하는 것이다. 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처럼 존재자들이 스스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는 태도, 존재자들을 드러나게 하는 빛과도 같은 존재를 사유하려는 노력을 통해 인간은 그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예술에 대한 하이데거의 깊은 애착은 이러한 생각에 기반한다. 예술을 통해 예술가를 초월하는 진리의 장이 열린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상반된 평가에도 ‘기술철학’ 핵심

» 손화철/성균관대학교 강사·기술철학
하이데거의 기술철학에 대한 평가와 반응은 극과 극을 달린다. 현대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정통으로 지적한 사상이라고 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기술에 대한 아무 실증적 근거도 없이 비관주의, 회의주의에다 신비주의까지 엮었다는 혹독한 평가도 있다. 존재의 드러냄을 기다리고 가꾸라는 말의 의미가 명확하지도 않거니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로 들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의 사상을 환경윤리적으로 해석하여 모든 존재자의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해야 한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여러 상반된 해석들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이데거를 통하여 철학에서 기술의 문제가 문제라는 사실을, 그리고 기술이 단순히 인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 이상의 그 무엇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그와 동시대를 살았지만, 하이데거처럼 현대기술의 중요성을 즉각 인지하고 정면으로 씨름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그의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그를 기술철학의 핵심 사상가로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來而 > 기술 속 사상 #1

기술속사상] 기술이 언제나 사람에게 지고 만다고?/홍성욱
기술, 인간 돕는 ‘도구’에서 종속시키는 ‘기계’로
세상을 변형시킬 ‘인간 의지’ 각인되지만
때론 예측불가능한 방향으로 발전
꼼짝없이 예속 당한다
때문에 ‘기술에 대한 철학’이 필요하다

» 산업혁명 당시에 공장 시스템을 분석한 앤드류 유어는 공장이 노동자들의 생활수준과 교육수준을 향상시키며, 기계가 비싼 숙련노동을 값싼 비숙련노동으로 대체함으로써 이익을 가져다 준다고 주장했다. 그의 기술철학에서 기술발전의 궁극적 목표는 인간이 완전히 배제된 채로 가동되는 공장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었다.

기술 속 사상/① 기술이란 무엇인가

그 동안 연재해온 ‘의학속 사상’이 지난 3월31일치 24회로 끝나고, 이번 호부터는 새 연재 ‘기술속 사상’을 시작합니다. 30여회 나갈 ‘기술속 사상’은 이 분야 전문가 10분의 글을 매주 한차례씩 싣게 됩니다. 앞서 의학속 사상에 참여해주신 강신익, 신동원, 여인석, 황상익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문자기능을 없애주세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시 긴 연애편지를 쓰도록.”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무선통신회사의 광고 카피다. 광고는 “기술은 언제나 사람에게 지고 맙니다.”라는 가슴 찡한 메시지를 남기며 끝난다.

이 광고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것의 진실성에 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편지지에 꾹꾹 눌러 쓰는 연애편지를 쓰지 않게 되었다. 우리들 대부분이 중독이라고 할 만큼 핸드폰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기술이 사람에게 진다는 광고 카피가 감동을 준다. 통신 서비스로 이익을 남기는 회사가 스스로의 서비스를 구매하지 말아 달라는 역설은 기술에 휴머니즘의 외피를 입힘으로써 이에 대한 작은 거부마저도 무력하게 만든다.

기술이란 대체 무엇인가? 핸드폰과 같은 형체가 있는 대상이나 통신 회사가 제공하는 무형의 서비스도 기술이다. 이러한 대상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이 기초가 되는 공학 지식도 기술의 일부이다. 핸드폰이 상징하는 우리가 사는 세상도 넓은 의미의 기술로 포함되며, 핸드폰을 통해서 사람들의 관계를 바꾸려는 의지도 기술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기술에 세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변형시키는 의지가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술은 대상, 과정, 지식, 상징, 의지라는 다섯 가지 층위가 다른 차원에서 존재한다.

이 중 ‘의지로서의 기술’은 조금 낯선 개념이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기술을 “인간이 자연세계와 관계를 맺는 특정한 방식” 혹은 “세상을 드러내는 양식”으로 정의했다. 기술의 본질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보게 하는 데에 있다는 것인데, 하이데거는 기술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계산가능성, 유용성, 효율성의 잣대로 평가해서 결국은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자원(리소스)으로 만드는 ‘의지’라고 간주한다. 존재들을 인간에게 유용한 자산으로 변형시키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데, 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과학이다. 하이데거의 입장에서 보면 기술이 과학을 낳았으며, 따라서 기술은 과학보다 선행한다.

기술, 사회적 권력관계 바꿔

과학과 기술의 관계에 대해서 꼭 하이데거의 입장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20세기 기술은 연관 과학의 발전을 기반으로 해서만 발전하는 것이 많다. 그렇지만 지금의 기술이 상당 정도 과학화되었다고 해도 기술에는 아직도 과학과 다른 점이 있다. 기술은 물질적 생산에 관련되어 있으며, 인위적으로 무엇을 만들고, 이를 통해서 인간의 가능성과 목적하는 바를 확장한다. 기술은 자원에 기초해서 자원을 확장하고, 과학의 응용만이 아닌 시행착오에서 복잡한 실험에 이르는 나름대로의 지식을 활용한다. 기술 디자인과 선택에는 경제, 정치, 문화적 고려가 개입하고, 이러한 경제, 정치, 문화적 요소는 기술에 의해 다시 형성되면서 변화한다.

우리가 기술을 만들지만, 기술은 우리 경험과 인간관계 및 사회적 권력관계를 바꿈으로써 우리를 새롭게 만든다. 어떤 기술은 인간 사회를 더 민주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지만, 다른 기술은 독재자의 권능을 강화한다. 라디오와 같은 동일한 기술이 어떻게, 누구에 의해, 어떤 환경에서 사용하는 가에 따라서 이렇게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민주적으로 사용하고 싶어도 그렇게 사용할 수 없는 기술도 있다. 핵무기를 평화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낙타를 바늘구멍에 넣는 것 보다 힘들다. 내가 시계태엽을 감아야 시계가 작동하듯이 인간은 어떤 기술에 대해서는 이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시계로 상징되는 시간의 노예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 듯이, 어떤 기술에게는 꼼짝달싹 못하게 예속되어 버린다. 모든 기술이 예측불능인 것은 아니지만, 일부 기술의 궤적은 그것을 발명한 사람도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발전한다.

19세기 독일의 기술철학자 에른스트 캅은 모든 기술이 인간 몸의 연장(延長)이라고 주장했다. 갈고리, 그릇, 칼, 창, 노, 삽, 괭이와 같은 기술이 인간의 손, 이빨, 팔이 연장된 것이며, 철도는 인간 순환계의 연장이고, 전신과 같은 통신기술은 인간의 신경계의 연장이라는 것이다. 유명한 미디어학자 마샬 맥루헌도 텔레비전과 같은 미디어나 컴퓨터가 인간의 대뇌와 신경계의 연장이라고 보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의 저서 <미디어의 이해>(1964)에는 ‘인간의 연장’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 19세기 독일의 사상가 에른스트 캅은 전신 케이블과 같은 기술이 인간 신경계의 연장이라고 보았다. 그는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기술과 인체 사이의 유사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모든 기술을 인간 몸의 연장으로 볼 수는 없다. 기술 중에는 해시계나 철조망처럼 자연을 모방하거나 자연을 체화한 기술도 있다. 그러나 캅이나 맥루헌의 기술관은 전근대적인 기술과 근대 기술의 차이를 무시한다는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전근대적 기술은 화살처럼 인간의 육체를 대체하고, 망치처럼 인간을 강화시키거나, 바퀴처럼 인간을 편하게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근대기술은 자연적인 물질을 인공적인 물질로 대체하거나(제련기술), 자연적인 힘을 기술의 힘으로 대체하는 것(증기기관)이다. 간단히 말해서 근대 기술은 인간 몸의 연장이라기보다는 자연을 대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근대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도와주는 ‘도구’였다면, 근대 기술은 인간의 노동을 종속시키는 ‘기계’의 외양을 지닌다.

기술은 개별 기술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네트워크로 서로 연결되어 ‘기술 시스템’(technological system)을 이루기도 한다. 19세기 이후 철도와 전신, 전력의 보급 이래 기술은 점차 통합된 시스템을 이루면서 확산되었다. 여기서 보듯이 기술 시스템 속에서는 기술적 요소와 사회적 요소의 경계가 희석된다. 기술과 사회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면서 기술의 진보가 사회의 진보로 자동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또 거대한 기술 시스템은 이미 그것에 투여된 수많은 사회적 이해관계 때문에 그 발전 방향을 바꾸지 않으려는 관성을 가지게 된다.

기술의 진보-사회의 진보 혼동

개별 기술처럼 보이는 것이 시스템의 일부인 경우도 많다. 우리가 매일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개별 기술이 아니라 자동차 시스템의 한 구성물이다. 자동차 시스템은 자동차의 디자인 및 연구, 핵심 부품 및 기타 사양 생산, 조립, 도로 건설, 도시·토목 공학, 국토개발에 관한 장단기 계획, 도시구조, 주택구조, 주유·정유체계, 신호체계, 주차 등 수많은 제도와 인적 자본이 얽혀있는 시스템이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현대 산업사회의 직장 중 20%가 자동차 시스템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자동차가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지금까지 대체 교통수단이 발달되지 않았던 이유도 자동차 시스템이 가진 엄청난 관성 때문이다.

기술 시스템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인간에게 거역하고 인간을 지배하는 듯 보인다. 자크 엘룰이나 루이스 멈포드와 같은 초기 기술철학자들은 이러한 거대 기술 시스템의 특성을 인지하고 이를 각각 ‘테크닉’(technique)이란 개념과 ‘독재적 기술’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다. 미국의 기술철학자 랭던 위너는 이를 ‘자율적 기술’(autonomous technology)이라고 불렀다. 최근에는 기술 시스템의 불확실성과 위험이 강조되고 있다. 기술 시스템이 복잡해지면서 그것이 세분화되고 쪼개져서 그 각각이 전문가들에 의해 다루어지는데, 이러한 전문화와 파편화는 종종 전체를 볼 수 없는데서 기인한 큰 사고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 경우 책임이 실종되는 결과가 종종 생긴다.

» 홍성욱/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과학기술학
기술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기존의 가능성 중 일부를 소멸시킨다. 따라서 이렇게 도입된 기술은 우리를 둘러싼 ‘기술 환경’을 바꾸고, 결과적으로 사회 세력들과 조직들 사이의 역학관계가 바뀐다. 새로운 기술 때문에 더 힘을 가지게 된 그룹과 힘을 잃게 된 그룹이 생기며, 이를 바탕으로 사회구조의 변화가 수반된다. 이렇게 변화된 사회구조는 다시 새로운 기술이 발전할 수 있는 하는 조건을 만든다. 기술 중에는 우리가 잘 이해하고 통제하는 기술도 있지만, 대규모 기술 시스템은 한 두 사람의 의지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에 기술은 그 내적 논리에 따라 발전하고, 자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술이 언제나 사람에게 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믿다가는 기술의 지배와 통제를 벗어나기 힘들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기술에 대한 철학과 사상이, 그것도 비판적이면서 균형 잡힌 철학과 사상이 필요한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BOOK/115659.htm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來而 > 기술 속 사상 #5: 기술(비인간)도 인간과 같이 행동한다

[기술속사상] 기술(비인간)도 인간과 같이 행동한다/홍성욱
총(비인간)과 사람이 만났을 때
» 요르단강 서안 헤브론에서 총을 겨누고 있는 이스라엘군 병사 앞으로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지나가고 있다. 사람들은 총이 사람을 죽이는가 아니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가를 놓고 논쟁하곤 했다. 라투르는 총과 사람을 따로따로 생각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총을 쥔 사람’이라는 잡종적 존재가 사람과 총 모두의 목적을 바꾸면서 새로운 행위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갈파했다. 헤브론/ 로이터 연합
[관련기사]

쏘는 행위는 총도 사람도 아닌
총과 사람의 합체인 새 ‘행위자’가 하는 것
사회결정론·기술결정론 모두 비판
인간과 기술, 주체-객체 아닌 대칭관계로

기술 속 사상/⑤ 급진주의자-브뤼노 라투르

기술은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인간은 의지를 가진 살아 있는 주체이고 기술은 자체 생명력이 없는 기계덩어리다. 인간은 자신의 뜻에 따라서 기술을 바꾸고 목적을 위해 기술을 사용한다. 그렇지만 하이데거가 간파했듯이 어떤 기술은 인간을 옭죄고 지배한다. 미국의 기술철학자 랭던 위너는 이렇게 자체 생명력을 가진 기술을 ‘자율적 기술’이라고 명명했다.

프랑스의 과학기술학(STS)자인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는 기술이 사회적 필요에 따라서 마음대로 바뀔 수 있다고 보는 시각과 기술이 자율성을 가지고 인간을 지배한다는 시각을 모두 비판한다. 전자는 기술이 사회적 필요에 따라서 전적으로 구성된다는 사회구성주의적 시각이고 후자는 기술이 거꾸로 인간의 필요와 행동을 결정한다는 기술결정론적인 시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라투르의 비판은 이 두 입장의 중간을 취하는 식이 아니다. 그는 기술을 이해하는 훨씬 더 급진적 시각을 제공하는데, 그것은 기술과 같은 비인간(nonhuman)을 인간과 같은 행위자(actor)로 보는 것이다.

과속방지턱 고통경찰 대체

라투르가 좋아하는 예는 우리가 아파트 단지나 학교 앞에서 자주 보는 과속방지용 둔턱이다. 마음이 급한 운전자들은 “이웃이나 학생들을 위해서 과속을 하지 맙시다”라는 도덕적인 문구가 씌어진 표지판을 무시하고 속도를 내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골목골목마다 교통경찰을 배치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발명된 것이 과속방지용 둔턱인데, 운전자들은 둔턱 앞에서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인다. 그런데 운전자가 이렇게 속도를 줄이는 이유는 그가 이웃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속도를 내서 둔턱을 넘었다가는 자기 차의 서스펜션에 무리가 가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즉 둔턱은 “이웃이나 학생들을 위해서 과속을 하면 안된다”라는 (사람들이 잘 지키지 않는) 도덕적 심성을 “과속을 하면 내 차의 서스펜션이 고장날 수도 있다”라는 (사람들이 잘 지키는) 이기적 태도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둔턱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라투어는 둔턱을 “잠자는 경찰”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볼 수 있듯이 둔턱은 교통경찰이 했던 역할을 대신한다. 그 결과 교통경찰은 다른 일을 하거나 다른 곳에 투입될 수 있다. 또 둔턱은 훌륭한 도덕선생님의 역할도 수행한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과속을 하는 운전자들과 주민 사이의 갈등과 싸움을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이렇게 기술은 인간이 했던 역할을 대신 수행하고 이를 통해 인간의 역할을 바꿈으로써 우리 사회의 훌륭한 행위자가 되는 것이다.

라투르는 총기의 예도 즐겨 사용한다. 미국에서 총기의 사용을 엄격하게 규제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총이 사람을 죽인다”라고 외친다. 총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을 살인 사건이 총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총기 사용의 규제에 반대하는 그룹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총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강조하는데, 이들의 얘기는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총은 중립적인 도구이고 용도에 따라서 좋은 목적으로도 혹은 나쁜 목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는 총이 아니라 사람에 있다는 것이다.

라투르는 전자를 기술결정론, 후자를 사회결정론으로 분류하면서 이 두 가지 입장을 모두 비판한다. 그의 해법은 사람이 총을 가짐으로써 사람도 바뀌고 총도 바뀐다는 것이다. 총을 가진 사람은 총을 가지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지고, 마찬가지로 총도 사람의 손에 쥐어짐으로써 옷장 속에 있는 총과는 다른 존재가 된다. 즉 총과 사람의 합체라는 잡종이 새로운 행위자로 등장하며, 이 잡종 행위자는 이전에 사람이 가졌던 목표와는 다른 목표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원래는 다른 사람에게 겁만 주려 했는데, 총이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식이다.

‘비인간’의 번식 깨닫는 게 근대

라투르는 서양의 학문이 자연, 사회, 인간만을 다루어왔다는 것을 강하게 비판한다. 자연과학은 자연을 대상으로 하고, 사회과학은 (자연의 일부로서의) 사회를 다루고, 철학과 같은 인문학은 인간을 탐구했는데, 라투르에 따르면 여기에는 모두 기술과 같은 ‘비인간’이 빠져 있다. 과학은 자연을 탐구하기 위해서 인간이 만든 기기와 실험실에 의존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기술인데, 사회과학자들은 기술에는 관심이 거의 없다. 철학자들은 주체/객체의 이분법에 빠져서, 기술을 저급하고 수동적인 대상으로만 취급한다.

기술과 같은 비인간이 빠져버린 자연과 사회는 ‘근대성’의 골자이다. 결국 라투르에게 기술의 목소리를 복원하고 행위자로서의 이들의 능동적인 역할을 드러내는 것은 서구의 ‘근대적’ 과학과 철학이 범했던 자연/사회, 주체/객체, 인간/비인간의 양분법을 극복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라투르에게 근대를 극복하는 방법은, 탈근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근대가 시작되던 시점부터 자연과 사회 모두에 기술과 같은 비인간이 엄청난 속도로 번식했음을 인식하는 것, 즉 “우리가 근대인 적이 없었다”(We have never been modern!)는 것을 깨닫는 것부터 시작한다.

과학/기술의 이분법도 라투르의 비판의 화살이 꽂히는 과녁이다. 라투르는 과학과 기술을 대체하는 용어로 ‘테크노사이언스’(technoscience)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기술이 과학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과학과 엔지니어링의 접점이 확산되는 것을 생각하면 과학/기술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라투르는 주체/객체의 구별도 비판한다. 사람은 대상과 관계를 맺고 대상은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에만 진정한 의미의 행위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을 주체, 대상을 객체라고 부르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액터’(actor, 행위자)라는 말 대신에 ‘액탄트’(actant)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이분법 외려 강화했다 비판도

프랑스 과학기술학자 라투르는 미국 소크 연구소에서의 인류학적인 관찰 경험을 바탕으로 1979년에 <실험실 생활>이라는 책을 출판함으로써 화려하게 학계에 데뷔했고, 이후 <행동하는 과학> <우리는 근대인 적이 없었다> <아라미스> <판도라의 희망> <자연의 정치학> 등 주목받는 연구업적을 끊임없이 출판했다. 최근에 그는 인간과 사물이 관계를 맺는 방식에 집중한 예술전시 기획을 총괄하기도 했고, 그 결과를 <아이코노클래시>라는 책으로 출판했다. 안타깝게도 라투르의 책은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된 것이 없다.

라투르의 관심은 실험실의 민속지학에서 파리의 실패한 지하철 프로젝트를 거쳐 아마존의 열대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그렇지만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비판하는 그의 입장은 초기 연구에서 가장 최근의 연구까지를 관통하고 있다. 물론 그의 주장에 대한 비판도 많이 제기되었다. 라투르는 기술이 마치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자신을 대변하는 주체처럼 서술하지만, 사실 그런 서술은 라투르라는 인간이 기술에게 부여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라투르가 기술에게 부여한 특성은 ‘인간다운’ 특성, 즉 마치 인간처럼 행동하고, 반응하고, 실행하는 특성이라는 것이다. 비판가들은 라투르의 이러한 시도가 인간의 역할을 더 강조함으로써 라투르가 부숴버리려고 했던 주체/객체의 구분을 더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라투르의 기술철학은 아직 미완이다. 그의 업적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인간/비인간의 구별을 없애고 이 둘을 대칭적으로 생각하자는 라투르의 주장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의 주장이 인간/기계의 경계가 허물어져서 사이보그들이 급속도로 번식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가 잘 보여주는 것은 인간사회가 기술 없이는 구성될 수도 없고 유지될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사람들과의 관계(인간관계, 권력관계) 속에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물건과, 기술과, 무생물과, 비인간과도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우리가 더 민주적이고 더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의 기능과 역할에, 즉 “물건의 정치학”(politics of things)에 훨씬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데, 이점이 라투르의 기술철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핵심 메시지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124611.htm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來而 > * [기술속사상] #8 다윈이 얼마나 흐뭇해할까

* 한겨레(2006. 6. 8) / [기술속사상] #8 다윈이 얼마나 흐뭇해할까

별도 자동차도 휴대폰도 심지어 머리 모양까지
기술 변화를 생물 진화론 개념으로 은유
돌연변이처럼 기술도 다양한 변수로 선택돼
자연·인공물 본질 달라도 작동원리 같지 않은가

» 화려하지만 버거워보이는 깃털을 가진 수컷 공작의 모습은 쓸데없는 화소 경쟁과 두께 경쟁에 집착하는 휴대폰 제조업체들의 모습과 유사하다. 수컷 공작과 휴대폰 업체는 각각 암컷의 선택과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그런 값비싼 신호들을 보내고 있다.

기술 속 사상 /⑧ 기술 진화론

휴대폰 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카메라 화소를 OO로 늘였다. OO 기능을 추가로 탑재했다. 두께를 몇 mm로 줄였다”라는 소식이 거의 한 달 단위로 들려온다. 바로 얼마 전에는 국내의 모 회사가 출시한 1천만 화소 휴대폰, 7mm 초박형 휴대폰이 세계 최초를 자랑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기사들의 제목은 약속이나 한 듯 거의 똑같다. “휴대폰 진화의 끝은 과연 어디인가?”

사실, ‘진화’라는 단어가 생물학의 울타리를 넘은 지는 꽤 오래됐다. 우리는 ‘별의 진화, ‘자동차의 진화’, 심지어 ‘머리 모양의 진화’를 말하기도 한다. 이때 ‘진화’는 진화생물학자들이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좁은 의미의 용어가 아니다. 그저 어떤 대상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현상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그래서 알고 보면 휴대폰의 ‘진화’는 휴대폰의 ‘변화’와 다를 바 없는 싱거운 제목이다. 하지만 여기에 기자들이 굳이 ‘진화’라는 단어를 쓴 것은 휴대폰이 ‘진보’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아닐까? 그러면 진화는 진보인가?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통념일뿐

기술을 진화론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기술 진화론’)은 기술의 본성과 역사, 그리고 트렌드를 이해하기 위한 매우 의미있는 시도이다. 이때 ‘진화’란 생물학 영역에서 주로 사용되는 좁은 의미의 개념이다. 약 150년 전 다윈은 ‘종의 기원’(1859)에서 자연선택에 의해 생물이 진화한다는 이론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자연선택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변이들(다양성)이 존재해야하고, 그 변이들이 환경과의 적응 측면에서 정도차를 보여야 하며,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유전 메커니즘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자연선택의 원리가 생물계에서만 작동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기술 진화론’이라고 하면 대체로 진화생물학에 등장하는 주요 용어와 개념들을 은유적으로 사용하여 기술 영역에 적용하려는 시도를 지칭한다. 즉, 기술 변화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인 셈이다. 하지만 언뜻 보면 생물 진화론이 기술 현상에 곧바로 적용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가령, 생물 영역에서는 변이가 무작위적으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기술 영역에서는 의도적으로 설계되지 않는가? 또한 생물계에서는 자연선택이 일어지만 인공계에서는 인위선택이 일어나지 않는가? 또한 생명의 역사를 꼭 진보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반면, 기술은 점점 더 진보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기술 진화론에 시큰둥한 사람들은 기술의 출현과 생명의 변이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동 중에도 통화를 할 필요성이 생겨서 휴대폰이 의도적으로 발명되었다는 식이다. 하지만 라마르크 진화론이 아닌 다윈 진화론에 따르면, 짧은 목, 긴 목, 좀 더 긴 목은 환경에 더 잘 적응할 필요성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에 의해 생겨났고, 목이 긴 기린이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에 선택되었다. 그렇다면 “필요는 (생물) 변이의 어머니”는 아니지 않는가?

기술사학자인 바살라는 ‘기술의 진화’(1988)라는 책에서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가 통념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가령, 19세기 중엽에 영국의 한 도시에서는 500종의 망치가 있었고 미국에서는 굴뚝 불꽃 장치가 무려 1000종이나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발명에 집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까운 예들도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 휴대폰의 카메라를 천만 화소까지 늘려야 할 필요가 있는가? 용도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략 오륙백만 화소면 충분하다. 또한 두께가 7mm인 초박형 휴대폰이 과연 사용자에게 필요한가? 너무 얇으면 오히려 만족도가 떨어질 수 있다. 그런데도 휴대폰 회사들은 서로 군비경쟁을 한다. 바살라의 말대로 인간의 기술은 필요의 산물이 아니라 “잉여의 산물”이다. 따라서 통념과는 달리 변이가 발생하는 방식은 생물체나 기술이나 비슷하다.

폰카 경쟁은 수컷공작 꼬리 자랑

» 오징어 눈(왼쪽)은 시신경이 망막 뒤에, 인간의 눈은 시신경이 망막 위에 놓이도록 진화해 기능 차이가 난다.
오히려 진화론적 관점은 쓸데없어 보이는 이런 화소 경쟁과 두께 경쟁을 이해하는데 새로운 통찰을 준다. 화려한 색조의 깃털을 자랑하는 수컷 공작을 본 적이 있는가? 그 버겁고 거추장스럽기까지 한 깃털을 겨우 퍼덕이며 어딘가로 날아가는 수컷의 뒷모습은 정말로 측은하기까지 하다. 생존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필요치 않은, 아니 있으면 오히려 불리할 것 같은 이런 형질들이 왜 자연계에는 만연해 있을까? 마치 최근의 휴대폰 경쟁처럼 말이다.

이스라엘의 진화생물학자 자하비는 자연계에 만연해 있는 잉여의 산물들을 ‘핸디캡 이론’으로 설명했다. 그 이론에 따르면 생산비용이 많이 드는 신호일수록 정직한 신호다. 왜냐하면 그것을 생산해낼 자원과 능력이 없는 사람은 결코 그 신호를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신자는 송신자의 신호가 얼마나 많은 비용을 들여 표현된 것인지를 가늠하여 그 신호의 진실성을 파악한다. 수컷 공작이 거추장스럽고 사치스럽게만 느껴지는 길고 아름다운 꼬리를 달고 다니는 이유는 암컷에게 ‘나는 이런 값비싼 깃털을 만들어낼 만큼 건강하고 능력있다’라는 사실을 광고하기 위한 것이다. 즉 핸디캡(거추장스러운 꼬리)을 극복하고 잘 생존할 만큼, 값비싼 신호를 만들어내도 까딱없을 만큼 대단한 존재라는 사실을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만 화소와 7mm 휴대폰은 공작의 버거운 꼬리와도 같다. 그 화소와 두께는 사용 면에서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수 있으나 선택을 하는 소비자에게 계속해서 ‘우리는 다른 경쟁 업체와는 달리 이 정도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라는 신호를 전달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경합하는 기술들이 실제로 어떻게 선택되거나 멸절했는지는 이런 기술력의 차이만으로는 모두 다 설명될 수 없다. 선택압이 하나가 아니라는 뜻이다.

바살라에 따르면 기술은 크게 경제?군사적 요인과 사회?문화적 요인에 의해 선택된다. 예컨대 수차와 증기기관, 자동수확기 등은 경제적 요인에 의해 선택된 경우이고, 트럭과 원자력 기술은 군사적 요인에 의해 선택받은 사례이다. 반면 1960년대의 초음속 여객기 개발 사업과 같은 사례는 정부와 대기업의 전폭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비판 여론으로 무산된 경우이다. 바살라는 일본역사에서 ‘검→총→검’으로 기술 선택이 옮겨갔던 현상을 기술 선택에 있어서 문화가치가 실용가치를 앞지른 사례로 들고 있다. 또한 목판 인쇄가 심미적 이유에서 서양보다는 동양에서 더 널리 전파되었다고 말한다. 기술 선택이 기술 내적인 요인과 외적인 요인들의 복합 작용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더 실용적인 기술을 택하라”등과 같은 전반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기술 선택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런 '트레이드 오프(trade off)'는 생물 진화에서도 보편 현상이다. 인간의 눈과 오징어의 눈을 비교해보자. 인간의 눈은 놀라운 적응이긴 하지만, 시신경이 망막의 앞쪽에 나오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신경 다발이 묶인 지점에 맹점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 다발이 흘러내렸을 때 실명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최적’이라 말할 수는 없다. 반면 시신경이 망막 뒤에 위치한 오징어의 눈은 이 점에서 훨씬 더 잘 설계된 경우이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것은, 척추동물의 진화 과정에서 ‘어쩌다가’ 시신경이 망막 앞에 놓이게 되었고 그것이 모든 후세 척추동물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기 때문에 최적이 아닌 적절한 선에서 트레이드 오프가 일어난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술의 진보 문제에 진화론적 관점을 적용해보자. 화소수나 두께 경쟁에서 볼 수 있듯이 적어도 특정 목표에 한해서는 기술의 진보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전반적인 기준에 대해 진보를 말할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다. 생물학자들도 국소적인 진보와 전반적인 진보를 나눠서 진화와 진보의 문제를 보고 있지만, 아직도 합의된 견해가 없다. 진보의 기준에서부터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의미에서 아인슈타인이 박테리아보다 더 진보한 존재라고 할 수 있는가? 똑같이, 어떤 기준에 의해 컴퓨터가 손도끼보다 더 진보한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 장대익/ 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부 대우교수
컴퓨터가 손도끼보다 진보인가

언뜻 보면 인공물인 기술과 자연물인 생명은 본질적으로 달라 보인다. 하지만 그것들이 각각 어떻게 생겨나고 선택되며 전달되는지를 살펴보면 둘 간의 차이가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대상만 다를 뿐 작동 원리는 똑같은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기술 진화론은 바로 그 원리에 주목하여 기존의 기술학 분야에 새로운 통찰을 준다. 기술 영역으로까지 자신의 진화론이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다윈은 얼마나 흐뭇해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來而 > * 바디우의 인터뷰: 워싱턴 대학 컨퍼런스 '문화 혁명의 역사는 가능한가?"

Carceraglio

Monday, October 16, 2006

Diana George & Nic Veroli sent Carceraglio their previously unpublished interview with Alain Badiou.

Interview with Alain Badiou

Alain Badiou gave this interview when he attended the "Is a History of the Cultural Revolution Possible?" conference at University of Washington, in February, 2006.

*Note: The interview was commissioned by a Seattle newspaper; the first few answers address readers who might not know Badiou's work. Most of the following questions were prepared by Nicolas Veroli, who could not be present. Diana George conducted the interview.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Q: I'd like to ask you about your political and intellectual trajectory from the mid 60s until today. How have your views about revolutionary politics, Marxism, and Maoism changed since then?

Badiou: During the first years of my political activity, there were two fundamental events. The first was the fight against the colonial war in Algeria at the end of the 50s and the beginning of the 60s. I learned during this fight that political conviction is not a question of numbers, of majority. Because at the beginning of the Algerian war, we were really very few against the war. It was a lesson for me; you have to do something when you think it's a necessity, when it's right, without caring about the numbers.

The second event was May 68. During May 68, I learned that we have to organize direct relations between intellectuals and workers. We cannot do that only by the mediation of parties, associations, and so on. We have to directly experience the relation with the political. My interest in Maoism and the Cultural Revolution during the end of 60s and the beginning of the 70s, was this: a political conviction that organizes something like direct relations between intellectuals and workers.

I'll recapitulate, if you like. There were two great lessons: It's my conviction today that political action has to be a process which is a process of principles, convictions, and not of a majority. So there is a practical dimension. And secondly, there is the necessity of direct relations between intellectuals and workers.

That was the beginning, the subjective beginning. In the political field, the correlation with ideologies --Marxism, Cultural Revolution, Maoism and so on -- is subordinate to the subjective conviction that you have to do politics directly, to organize, to be with others, to find a way for principles to exist practically.

Q: What is your idea of fidelity?

Badiou: That's already contained in the first answer. For me, fidelity is fidelity to great events which are constitutive of my political subjectivity. And perhaps there is also something much older, because during the war my father was in the Resistance against the Nazis. Naturally, during the war, he did not say anything about it to me; it was a matter of life and death. But just after the war, I learned that he had been a resistant, that he was really in that experience of resistance against the Nazis. So my fidelity is also a fidelity to my father. At the beginning of that war, very few were in the resistance; after two or three years, there were more. It is the same lesson, if you like, this lesson from my father.

Generally speaking, my fidelity is to two great events: the engagement against the colonial war, and to May 68 and its consequences. Not only the event of May 68 as such, but also its consequences. Fidelity is a practical matter; you have to organize something, to do something. This is the reality of fidelity.

Q: You've said that there has been a rupture, that the entire question of politics is currently in great obscurity. Also, you have written that we must think a politics without party. After the saturation of the class-party experiment, what next?

Badiou: I think a fidelity does not really finish, but sometimes it is saturated; that is my term for it. There is a saturation; you cannot find anything new in the field of your first fidelity. Many people, when this is the case, just say, "It's finished." And really, a political sequence has a beginning and an end, too, an end in the form of saturation. Saturation is not a brutal rupture, but it becomes progressively more difficult to find something new in the field of the fidelity.

Since the mid-80s, more and more, there has been something like a saturation of revolutionary politics in its conventional framework: class struggle, party, 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 and so on. So we have to find something like a fidelity to the fidelity. Not a simple fidelity.

For my generation, it's a choice between saying, on the one hand, "Nothing is possible today in the political field; the reactionary tendency is too strong." That's the position of many people in France today; it's the negative interpretation of saturation.

When the fidelity is saturated, you have a choice. The first possibility is to say it's finished. The second possibility is this: With the help of certain events-- like the events in South America today-- you find what I name a fidelity to the fidelity. Fidelity to the fidelity is not a continuation, strictly speaking, and not a pure rupture, either. We have to find something new. When I was saying yesterday that "from outside, you can see something you don't see from inside," that's merely a rule by which to find something new.

Q: If I can press you further about the something new: After the saturation of party politics, what now?

Badiou: If the answer to that were clear, the discussion would be finished, too. You have to find that out; it's not so clear. Today we have an experimental sequence from the point of view of political practice. We have to accept the multiplicity of experiences. We lack a unified field -- not only in something like the Third International, but also in concepts there is no unified field. So you have to accept something like local experiments; we have to do collective work about all that. We have to find -- with help of philosophical concepts, economic concepts, historical concepts -- the new synthesis.

I think our situation is much more similar to that of the 19th century than to that of the 20th. Nearer Marx than Lenin, if you like, metaphorically speaking. Lenin was really the thinker of the new concept of revolutionary politics, with the idea that we could be victorious, that the revolution was a possibility. That's not exactly the situation today; the idea of revolution is obscure in itself today. But we can do as Marx did--it's a metaphor, an image. You have to think the multiplicity of popular experiences, philosophical directions, new studies, and so on. You must do these things as Marx himself did.

The situation today is also similar to 19th century in the brutality of capitalism today. It's not absolutely new; capitalism was of a terrible brutality in the 19th century in England, with the laws against the poor and so on. Today, there's something violent and cynical in capitalism, very much like the capitalism of the 19th century. In the 20th century, capitalism was limited by revolutionary action.

Today, the capitalists have no fear of anything. They are in the stage of primitive accumulation, and there is a real brutality to the situation. That's why I think the work today is to find a new synthesis, a new form of organization, like our predecessors of the 19th century. Our grandfathers, if you will, rather than our fathers in the political field.

Q: I'd like to ask about the current global situation and of the relationship of the US to that situation. Is the US simply a privileged node in a network of global sovereignty (as Hardt and Negri argue) or is the US playing the role of a traditional imperialist power in Lenin's sense?

Badiou: I don't completely agree with Negri. It's a very complex theoretical discussion, but, in a few words, I think Negri's perception is too systemic. Empire is a system, finally. Negri's conviction is always that within the system there are also resources for something new on the side of revolutionary politics, or politics of emancipation. There is always in Negri the conviction that the strength of capitalism is also the creativity of the multitude. Two faces of the same phenomenon: the oppressive face and, on the other side, the emancipatory, in something like a unity. Not exactly a dialectical unity in the Hegelian sense, but still a unity. So there is no necessity of an event in Negri, because there's something structural in the movement of emancipation.

I don't see the situation that way; it's not my conviction. It's not possible to discuss this precisely here and now, because it's too technical. But one consequence for Negri is that the great question in the political field is the question of the movement. Movements are certainly of great importance. But the real question today is not the relation between the movement and the state. The real question is, what is the new form of organization after the party? More generally, what is a new political discipline?

People who have nothing--no power, no money, no media--have only their discipline as a possibility of strength. Marxism and Leninism defined a first form of popular discipline, which was trade unions and party. There were many differences, but finally that was the form of popular discipline, and the possibility of real action. And today we cannot hope that this form will continue. The real situation is that we have no discipline in the popular camp, and so we have a great weakness. In fact the best situations today are ones where the state is not really in the hands of the reactionaries, for example, the situation of Chavez in Venezuela. But that's not a complete change of the situation; it's a chance, a local chance, nothing more. It's something, but it's not the solution. The solution of the problem in the long term will be the invention of a new form of immanent discipline in the popular camp. That will be the end of the long weakness of the popular camp after the success-- but also the failure-- of the form of the party.

Q: Philosophy has a long history of alternately including and then excluding mathematics. You, almost alone among your contemporaries, include it. You have also stated that your aim is a new articulation of politics and mathematics. Apart from any biographical, contingent factors that might explain your own relationship to mathematics, what's mathematics got to do with politics today? Why do you see a hope today for, as you've said, "a new articulation of politics and mathematics"?

Badiou: The political question of the new discipline is also, philosophically, the question of a new logic. The question of a new logic is always also the quest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philosophy and mathematics. Because mathematics is the paradigm of deduction, of formal rationality; not of empirical rationality, not of concrete rationality, but the paradigm of formal rationality. During the phase of party politics, the logical paradigm was the Hegelian dialectic; it was the theory of contradiction. During the entire development of Marxism, Leninism, and Maoism, the theory of contradiction was the heart of the logical framework. In my conviction, that is also finished. For the same reason as for the party, dialectical logic in the Hegelian sense is saturated today. We can no longer simply use the paradigm of contradiction. Naturally, there are contradictions; it's not a question of fact. But for the definition of a new discipline, we cannot directly use the logic of contradiction; we have to find another paradigm.

Mathematics is not the paradigm itself for me, but it's the possibility of finding a new logical paradigm in the political field, and finally in all fields of new human experiences.

(As you may know, Marx himself was very interested in mathematics. There are long manuscripts by Marx about the differential calculus and so on; it was something he studied for himself.)

In the search for the new logical paradigm, we have something to learn from mathematics. So my use of mathematics is not only a family obligation or a Platonist imitation; it's a real necessity.

Q: In a recent issue of the journal Positions, in an essay on your post-Maoism, Bruno Bosteels quotes you as having written, "Maoism, in the end, has been the proof for me that in the actual space of effective politics, and not just in political philosophy, a close knot could be tied between the most uncompromising formalism and the most radical subjectivism." But in your own philosophy, this knot seems to be looser. It is the uncompromising formalism that comes through in your philosophy.

Badiou: I think the discussion with Bruno Bosteels is about the distinction between philosophy and politics. Radical subjectivity is a matter of politics; when I speak of Maoism, I speak of politics. Philosophy is not politics, which may not be clear to Bosteels, or to some others. Naturally, philosophical formalism--to use that word-- can help to open some possibilities in the political field. But it is not the political solution; the political solution is never found inside the philosophical framework. So I agree, in the philosophical field, we can find a formalism adequate to radical subjectivity. But we cannot find radical subjectivity itself there, because radical subjectivity is a matter of action, of engagement; it's a matter of politics, finally.

The question of Maoism, of radicality, is a political one. In the philosophical field, we have to find the conceptual framework--the formalism, if you like--which is a disposition of thinking that is adequate to the possibility of a radical subjectivity. So philosophy is more or less in the situation of compatibility with politics, but it is never a substitute for politics. There is no unity between philosophy and politics; instead, there is something like compatibility between philosophical formalism and radical subjectivity. I think that in Bosteels' interpretation there is something like a circulation between politics and philosophy, which is not exactly my vision of the correlation of the two.

A word on the expression "post-Maoism": My interpretation of post-Maoism is that Maoism is the name of the last experience within the framework of classical Leninism. Maoism is not the same as Leninism; it's a creative development, but it's the last form of revolutionary politics, the last attempt in the field of revolutionary politics. After that, the framework itself is saturated. If we have something like post-Maoism, it's because Maoism itself is the saturation of the field. We can interpret the work of Mao, the Cultural Revolution, that's all very interesting, but we cannot forget that it's also the end of something, much more than a beginning. But an end is also something new. It's the beginning of the end, the newness of the end. After that, though, the field is saturated. And so post-Maoism is something very important. We are in something like post-Marxism, post-Leninism.

Q: Some people on the left argue for direct democracy as a response to global neoliberalism, sometimes under the heading of a Spinozist concept of 'multitude' and sometimes under the heading of anarchism. But you seem quite critical of democracy. Can you explain your critique of democracy?

Badiou: The question of democracy has two parts. The first one is the question of the form of the state. That's the classical, contemporary definition. There are governments, and you have to say which ones are democratic, which ones despotic, and so on. That is the common definition, the definition of Bush, and also of the majority today, finally. Democracy in this first sense is a form of the state, with elections and so on.

The second possible definition of democracy is what is really democracy within politics, in action. Hardt and Negri's concept on this point is that democracy is the creativity of the movement. It's a vitalist concept: democracy is the spontaneity and the creative capacity of the movement. Ultimately, Negri's concept remains inside the classical opposition of movement and state.

We have on the one side the definition of democracy as a form of the state, and on the other, democracy as an immanent determination of the collective movement. But I think the classical opposition of state and movement is saturated. We cannot simply oppose state oppression or the oppressive system, with, on the other side, the creativity of the movement. That's an old concept, not a new one. We have to find a new concept of democracy, one that is outside the opposition of formal democracy (which is democracy as form of state) and concrete democracy (which is the democracy of the popular movement). Negri remains inside this classical opposition, while using other names: Empire for state, multitude for movement. But new names are not new things.

Q: I'd like to ask about the politics of identity, which can be summed up in the thesis that for every oppression there must be a resistance by the group which is being oppressed--otherwise the oppression (racism, sexism, homophobia, etc...) will remain unaddressed--this politics of identity is something you are quite critical of.

Badiou: The question of the political process is always a question that goes beyond identities. It's the question of finding something that is, paradoxically, a generic identity, the identity of no-identity, the identity which is beyond all identities. For Marx, "proletariat" was the name of something like that. In the Manuscripts of 1844, Marx writes that the very nature of the proletariat is to be generic. It's not an identity. It's something like an identity which is non-identity; it's humanity as such. That's why for Marx the liberation of the working class is liberation of humanity as such, because the working class is something generic and not a pure identity. Probably that function of the working class is saturated. We cannot substitute a mere collection of identities for the saturated generic identity of the working class. I think we have to find the political determination that integrates the identities, the principles of which are beyond identity. The great difficulty is to do that without something like the working class. Without something that was a connection between particularity and universality, because that's what the working class was. The particularity of the working class was its location in a singular place; the working class was generic. The solution of the problem for Marxism was the human group which is not really an identity, which is beyond identity.

We have to do the same thing, but probably without that sort of solution. We cannot say that today this group is the generic group and that the emancipation of this group is also the emancipation of us all. So we have to find something more formal. Why formal? Because it's less inscribed in the singularity of a group. It's a relation between principles, between the formalism of the new discipline and all identities in the social field. It's a problem now for which we don't yet have the solution.

Marx's solution a sort of miracle: you find the group which is also the generic group. It was an extraordinary invention. The history of this Marxist invention, in its concrete political determination, was not so much the history of the generic group, of the working class as such, but rather history of the representation of this generic group in a political organization: it was the history of the party. The crisis now is the crisis of representation, and also the crisis of the idea of the generic group.

When you see that a sequence of politics of emancipation is finished, you have a choice: you can continue in the same political field, or you can find the fidelity to the fidelity. It's the same thing here: If the idea of the working class as a generic group is saturated, you have the choice of saying that there are only identities, and that the best hope is the revolt of some particular identity. Or you can say that we have to find something much more universal, much more generic. But probably without the representative generic group.

posted by Carceraglio 2:37 PM

http://scentedgardensfortheblind.blogspot.com/2006_10_15_scentedgardensfortheblind_archive.html#1161034797191566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