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
레슬리 스티븐슨.데이비드 L. 헤이버먼 지음, 박중서 옮김 / 갈라파고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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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다닐 때 도덕, 윤리라는 과목이 있었다. 거기서는 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 무엇을 추구해야 되는지가 나와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였다. 직업을 통해 한 사회에서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고 가는 이들은 그 직업에 상관없이 귀중한 이들이며, 어떤 직업이든지 사회에 이바지 하는 바는 크다는 것일 진데.... 왜 지금 우리는 아이들에게 좋은 대학가서 의사, 판사 등과 같은 직업을 가지길 원하며 귀천이 없는 직업이라고 가르치면서 왜 직업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바뀌는 걸까?

 

 

무리생활을 하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에서, 그 사회를 이끌고 가기 위해 필요해진 직업들에 분명히 높낮이는 없어야 함에도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카스트를 만들어 사람을 분류하고 있다. 신에 의해 평등하게 만들어진 인간이 왜 직업이라는 것에 의해 불평등하게 범주화되어야만 하는가? 직업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부분에서 똑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타자화 시킨다. 도대체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만들어졌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가? 그것이 이 책 인간의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에 끌린 이유이다. 우리의 진짜 본성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면 지금의 우리의 모습도 교정하고 바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은 아니더라도 내 아이에게는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줄 수 있을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유교 : 인간은 천명 (하늘의 뜻을 말함)과 운명 (한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것을 말함)을 가진다. 천명인 하늘의 뜻을 따를지 말지를 인간 스스로가 선택이 가능하지만, 운명은 이미 인간이 타고 났기 때문에 변화시킬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천명, 즉 하늘의 뜻인 덕을 쌓아야 한다. 그 덕을 쌓기 위해서는 인 (너그러움)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은 고전의 공부를 통해 예의를 배우고 나서야 인에 이르게 된다. 이 때 우리는 도덕적 완성 (즉 덕)을 이루게 된다.

    

 

힌두교 : 하나의 종교인 힌두교는 여러 종파와 주장하는 사람들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이 책에서는 상카라와 라마누자의 힌두교를 설명하는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처럼 상카라는 현실에서의 다양성과 거기에 연관된 모든 것은 환영이라고 말한다. ‘브라흐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영적생활의 장애물인 현실세계와의 단절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반해 라마누자는 궁극적 실재는 따로 존재하기 보다는 지금 현실 자체가 실재이다. 실재가 곧 궁극적 실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신앙심을 갖고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플라톤 : 인간의 본성(영혼)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이성, 격정(기개, 감정등), 욕구 가 그것인데 이성은 수호자(철학자), 격정은 보조자(군인, 경찰 등), 욕구는 일꾼(농부, 장인, 상인)을 나타낸다. 각 개인은 자신의 본성에 맞는 직업을 택한 이들이 조화롭게 살아갈 때 그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 영혼은 살아있는 육체가 지닌 능력의 조합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성과 감성이 있다. 감성은 이성에게 순종적인데 그러기에 인간은 사회적 동물(정치적 동물)이 될 수 있다. 정치적 동물인 인간이 궁극적 목표인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실천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칸트 : 인간의 인식은 감성+오성(이성) 으로 이루어진다. 감성을 거쳐 이성을 통해 판단하고 행동하는 행위자인 인간은 다시 가언적 명법 (자신의 욕망대로 하려는 것), 정언적 명법(욕망을 자제하고 해야 되는 것, 즉 도덕적 책임)으로 나뉜다. 우리의 행동은 실천적 자유가 있기 때문에 감성에 의해 좌지우지 되기보다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을 하도록 되어있다고 한다.

    

 

마르크스 : 지금까지는 인간 객체를 중심으로 본성을 봐 왔다면 마르크스는 개체로서의 인간보다는 인간이 이루고 있는 사회에서의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결국 인간의 본성은 사회적 관계들의 총합이며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노동에 참여한다. 하지만 인간은 기계의 부속품처럼 경영자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의 사회적 소외, 노동의 소외를 겪게 되고 이로 인해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은 불가능하다.

  

 

프로이드 : 우리의 의식은 세가지, 즉 이드(본능), 자아(의식적인 정신상태), 초자아(도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드와 초자아는 서로 지속적으로 충돌하며 그 과정에서 억압이 발생한다. 이것을 해소하고 조화롭고 균형잡힌 생활을 하게 해 주는 것이 자아이다. 이것이 무너지게 되었을 때 인간은 정신질환을 겪게 된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읽는 이의 그릇이 충분하지 못하면 그것을 담아 낼 수 없다. 30년 넘게 스테디셀러 로서 인정받아 왔다고 하지만 그릇이 작은 나에게는 어려운 내용이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책자임에도 한 철학자의 많은 사상적 내용을 다루려고 하다보니 혼란이 자주 발생했다. 글의 흐름을 자주 잃고 헤매면서 글의 맥을 잡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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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인문학 - 클레멘트 코스 기적을 만들다
얼 쇼리스 지음, 이병곤.고병헌.임정아 옮김 / 이매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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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도 다른 동물처럼 상대를 겁주기 위해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며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행동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는 당연히 자신의 안위를 위해 과감히(?) 도망을 가던지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표시를 보낸다. 그런데 만약 그 강자들이 자신을 포위하고 있다면? 전쟁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처럼 아마 스스로 자신을 해하게 될 것이다. 이 책 희망의 인문학은 이런 현실을 이야기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지금의 구렁텅이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삼포를 넘어 오포세대까지 치닫고 있는 지금의 세대들. 우리 모두가 강자에 둘러싸여 있는 약자이다. 강자의 무력에 포위되어 그들에게 대항할 수 없으니 우리 스스로에게 칼을 들이대고 있다. 나의 무능. 나의 노력부족. 나의 열정부족만을 탓한다. 결국 가난의 악순환만이 반복되고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된다.

이런 배경에서 시작된 클레멘트 코스 창립자인 지은이는 자율적 인간, 즉 스스로 생각하는 인간이 그 답이라고 한다. 여기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성찰적 사고이다. 이것은 인문학을 통해 누구나 충분히 습득 가능하다. 결국 지은이는 약자라고 일컫는 사람들에게 인문학을 교육시키고 성찰적 사고능력을 함양하여 자율적 인간이 되도록 돕는다. 그리고 궁극적인 목표인 그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이끈다. 사적세계중심의 삶에서 공적세계로의 참여, 즉 정치적 삶만이 사회적 약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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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4
J.M.G. 르 클레지오 지음, 김윤진 옮김 / 민음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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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글은 사건과 사건들 간에 연계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 읽고 있는 부분은 앞 내용의 연장선이며 다음 내용을 예측할 수 있는 일종의 복선으로 작용한다. 각 단락들의 글들이 서로 연결되어 반죽처럼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었을 때에야 전체적인 글의 내용과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눈앞에 그려진다.

그러나 조서라는 책은 기존에 내가 읽은 책들과는 전혀 다른 글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머릿속에 그려질 듯이 세세하게 주인공의 일상적인 것들을 묘사하는 동시에 그의 내면의 모습을 혼란과 어지러움의 현란한 형용사들을 이용해 나타낸다. 그런데 이상하다. 글을 읽다가도 잠깐씩 멈칫하게 되고 다시 앞을 보게 된다. 도대체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이 부분이 무엇인가? 지금까지 읽었던 앞부분과 관련된 연결고리를 찾을 수가 없다. 개를 따라 다니며 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가도 그와의 유일한 대화상대인 미셸과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식이다. 이 책은 주인공의 눈으로 그려진 하나하나의 사건들과 생각들의 모음이지만 서로 다른 것을 보는 것들이라 도저히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무엇을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정말 어려운 책이었으며, 당장이라도 책장을 덮고 싶었다.

 

그나마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은 마지막 정신병원에서 주인공과 의사 견습생들 간의 대화이다. 코기토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사물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은 눈으로 보이는 현상과 사건들이 아닌, 물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아서 눈으로 보이지 않고 만져볼 수 없는 이성에 의해 이해 될 수 있다. , 우리의 감각으로 느끼는 현실은 진짜를 본떠서 만들어진 복사본 일 뿐이다. 진실과 진리는 눈을 감고 입을 닫고 귀를 막았을 때만 보인다. 결국 주인공 아담은 실어증에 걸려 현실과의 단절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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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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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나와 닮은 아이를 손에 조심스레 안고 가슴으로 부비기도 하고 입술을 갖다 대어보기도 한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나의 아이. 가지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등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게 해 주고 싶다. 아이가 자라나면서 부모의 눈은 나의 아이와 남의 아이를 비교하기 시작한다. 남들이 하는 만큼의 성장과 성과를 해 주기를 바라며 나의 자녀로서 뿌듯함을 얻을 수 있기를 원한다. 사람들이 만나는 명절이나 친구, 지인들과 작은 모임에서는 언제나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가 입에 오르내리지만 관심사는 그의 전교 등수, 다니는 학교의 레벨 그리고 다니는 직장의 인지도 등이다. 현대의 우리는 타인과의 경쟁과 거기서 얻어지는 성과가 나를 평가하게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그런 숫자로 평가되는 결과물들이 나의 존재를 형성해 간다.

 

우리는 이들 주류들의 삶에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친다. 아벨처럼 신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지, 카인처럼 낙인찍힌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 결과 언제나 우리의 눈과 마음은 주위의 그 누구를 향해 있으며 그처럼 되기를 바라며 에너지를 소모한다.

거기 내 친구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두 손은 물건처럼 돌이나 열매들처럼 생명 없이 고요히, 창백하고 까딱도 없이....그렇지만 맥없이 눌어진 것은 아니고 숨겨진 강한 삶을 에워싸고 있는 단단하고 훌륭한 껍질 같았다.... 지금 그가 완전히 자신 속으로 들어가 버렸음을 나는 전율처럼 느꼈다. p. 88-90”

 

헤르만 헤서의 데미안처럼 우리는 외부의 그 누군가가 아니라 내부의 나 자신을 봐야한다. 자신과의 대면이 죽음과도 같은 고독과 얼음장과 같은 차갑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만큼 따뜻함을 가지고 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없다. 내면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 나가다 보면 원천적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이 자아가 곧 우리 자신이며 이 자아가 하고자 하는 삶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나도 또 다른 그 어떤 인간이 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건 다만 부수적으로 생성된 것이었다.... 누구나 관심 가질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내는 일이었다......나는 자연이 던진 돌이었다. 불확실함 속으로, 어쩌면 새로운 것에로, 어쩌면 에로 던져졌다. 그리고 측량할 길 없는 깊은 곳으로부터의 이 던져짐이 남김없이 이루어지게 하고, 그 뜻을 마음속에서 느끼고 그것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만이 나의 직분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p.172”

 

원초적 자아는 불완전하고 위태로울 수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단련하고 조련해 나의 것으로 만들어 낸다면 진정한 나로서 나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동시에 상류층, 하류층, 우파, 좌파 등의 상하, 좌우의 끼리끼리의 연대가 아닌 진짜 일체감을 경험하게 된다. 그 때 우리는 사랑과 행복, 그리고 편안함을 느끼며, 인류는 다시한번 성장해 나갈 수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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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제3인류 5~6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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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시작으로 동부 아프리카에서 인류는 시작되었다. 이후 인류는 아프리카를 벗어난 유럽 아시아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뻗어 나갔다. 그 와중에도 인류는 진화를 거듭해서 지금의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에 이른다. 호모 사피엔스의 성장은 동시대에 존재했던 호모 루돌펜시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등의 멸종과 동시에 지금은 존재하는 않는 거대 종 들의 파괴를 이끌었다. 호주의 디프로토돈, 아메리카의 매머드, 곰 크기의 설치류, 말과 낙타 떼, 대형 사자 등의 멸종이 여기에 속한다. 곧 인류의 성장은 다른 종의 죽음과 환경의 파괴를 이끌면서 이루어졌다.

    

 

200년 만전에 등장한 호모사피엔스 이후 현재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인류는 새로운 인류의 멸망 위기와 새로운 진화의 필요성에 직면하게 된다. 베르나르의 소설 3인류는 새로운 위기에 봉착한 인류의 몸부림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인류의 타고난 욕망과 갈등을 그려내고 있다. 판타지적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소설은 앞으로의 인류의 성장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인류의 시작이 자연의 파괴와 같은 종의 멸종을 가지고 왔지만 그것은 의도했기 보다는 종의 진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생겨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가 만들어 내고 있는 인류의 죽음과 어머니 자연의 파괴는 과연 어떤가? 그것은 지구와 함께 살아가려는 공생보다는 우리만 잘 살아가 보겠다는 이기심과 지구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다.

 

3인류에서 저자는 말한다. 인류는 기원은 지구에서 시작되었으며 지구에서 자라고 지구에서 멸망하게 될 거라고... 그럼으로 우리는 지구가 내지르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녀가 만들어내는 몸부림에 관심을 가지며 그녀가 토해내는 아픔에 동정심을 발휘해야 한다. 다시 말해, 현 인류의 생존과 진화는 지구의 소통여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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