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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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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7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SF 소설집이다.
성인이 되기 위해 시초지로 순례를 떠나는 그들과 돌아오지 않는 순례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와 홀로 우주 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에 떨어져 자신이 받은 돌봄에 대해 돌아보는 ‘스펙트럼’, 류드밀라의 행성과 관련된 인간과 우주적 존재와의 아름다운 공생을 담은 ‘공생 가설’, 너무 낡아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우주 정거장에서 무언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노인 안나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눈과 손으로 만지고 확인받고 싶은 인간의 욕구를 반영한 ‘감정의 물성’과 어머니의 기억이 담긴 마인드가 관내에서 분실되어 실종된 어머니의 기억과 삶을 쫓아가는 딸 지민의 ‘관내분실’, 우주에서 발견된 터널을 건너 우주로 나아가기 위해 사이보그가 되어야하는 가윤의 어느 한 우주 영웅의 이야기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까지 모든 이야기들은 이미 부재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거나, 추억하거나, 상상하거나, 궤적을 쫓아가는 식으로 전개된다. 그들의 기억과 삶, 추억을 쫓아간 곳에서는 인간이이기에 느낄 수 있었던 참된 감사와 고마움, 공감과 이해, 용서 등의 감정들이 다정하게 빛났다.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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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한 ‘누군가’의 이야기와 삶을 초연하고 아름다운 빛으로 추억해내는 sf 소설집이다. 같은 처지가 되어서야, 오래 그리워하며 추억할 때가 되어서야,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려고 하는 순간이 찾아와야 우리는 희미하게 들리는 허공의 소리를 붙잡아 들을 수 있다. 돌아오지 않는 순례자들은 불확실하고 완전하지 못한 지구에서 괴롭지만 행복한 순간들을 함께 해 나가고 있고, 아름다운 색채로 가득 채웠던 루이의 동굴안에는 추억과 연대의 언어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류드밀라의 행성에서 오는 다정하고 아름다운 우주적 존재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다 다시 떠나가겠지만 우리는 그들의 가르침을 잊지 않을 것이며, 안나는 언젠간 꿈에 그리던, 그들이 있었던 슬렌포니아에 당도할 수도 있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닿아있지만 그 안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소수자의 목소리와 삶에 귀를 기울이는 다정함만 가지고 있다면, 희망이 없어 보이는 척박함 속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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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읽게 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를수 없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베스트셀러다. 첫 단편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읽는 순간 느꼈다. 또 한 편의 인생소설을 만났구나. 켄 리우와 테드 창의 sf소설을 좋아했던 터라 sf라는 장르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기에 오히려 편안한 마음으로 봤다. 나한테 sf소설을 쓰라고 했다면 나는 분명 외계인이 나타나서 지구 침공하는 이야기나 끄적였을텐데 김초엽 작가의 우주적 상상력을 만나는 순간 나의 미지의 우주와 미래는 조금은 따뜻하고 희망적으로 변화했다. 아직도 완전하지 못한 세계에서 단 한 사람에게 받았던 충분함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순례자들의 삶을 상상하며 글을 마친다.
🔖지구에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충격적으로 다른 존재들이 수없이 많겠지. 이제 나는 상상할 수 있어. 지구로 내려간 우리는 그 다른 존재들을 만나고, 많은 이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거야. 그리고 우리는 곧 알게되겠지. 바로 그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를. 그 세계가 얼마나 많은 고통와 비탄으로 차 있는지를. 사랑하는 이들이 억압받는 진실을. -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