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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건히 세워졌다고 믿었던 정신이 갈대처럼 흔들리는 것은 한 순간이다. 최근 몇 차례 있었던 풍파를 온몸으로 맞으며, 오랫동안 감춰두었던 끝없는 우울과 고독의 심연이 다시 드러나고 있음을 실감했다. 어떤 삶의 태도를 취하든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는 자신을 돌아보며, 나는 오래 전 외로움에 대해 썼던 잡스러운 에세이에서 인용했던 노래 가사를 다시금 떠올려야 했다.












너를 떠나 살 수 있을까

나의 가장 오랜 벗이여

나는 네가 없이는 내가 아닐 것 같아

차가운 너의 품 안에서 눈 감으면

어느새 꿈속을 걷는다

- 자우림, 슬픔이여 이제 안녕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음에도 열 손가락에 걸리는 존재의 쓸쓸함(사랑하는 손)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던 최승자 시인의 시집을 연달아 읽으며, 그녀의 시 세계 전반에 깔려 있는 괴로움/외로움/그리움/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내 청춘의 영원한)로 함몰하는 나를 보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과정을 감내하면서 끝까지 읽어낼 수밖에 없는 것은, 허무와 죽음만이 상존하는 세계 한복판에서 자신의 고통을 끊임없이 언어와 이미지로 잡아내려는 시인의 처절한 외침이 토해내는 정서가 나를 끊임없이 붙잡기 때문이다. 김치수 평론가는 첫 시집 이 시대의 사랑에서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잡아냈지만, 난 그녀의 시를 읽을 때마다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이때의 외로움이란 감상(感傷)으로서의 외로움(loneliness)이 아닌, 모태의 순간부터 죽음에 진입하고 있음을 체감한 시인의 외로움(solitude)에 가깝다. 나를 맴돌고 있는 트라이앵글의 한 축으로서의 외로움이 결국 고독이라는 근원에서 뿜어내는 핏물과 같은 것인지를 생각하며, 여전히 나는 처음으로 만났던 그녀의 시, 외로움의 폭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첫 만남 이후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시집을 완독하였지만, 여전히 첫 시를 가장 좋아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면서.




그녀가 인식하고 있는 세계는 죽음과 어둠이 전부인 곳으로 존재하며, 그 안에서 외로이 살아가는/죽어가는 인간의 모습은 때로는 골수와 핏물이 넘치는 모습으로, 때로는 사지가 절단되어 내버려진 모습으로 그려진다. 살아 있다는 것이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일찌기 나는)는 시인에게 청춘()이란 초록의 무서운 공황이자 귀신 같은 푸르름(무서운 초록)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비극은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음에도 서른 살은 온다(삼십세)는 것이며, 예민한 감각을 가진 이가 시인 자신뿐이기에, 너희들 문간에는 언제나/외로움의 불침번이 서 있"음에도 "고독한 시간의 아가리 안에서/너희는 다만/절망하기 위하여 밥을 먹고/절망하기 위하여 성교(과거를 가진 사람들)할 뿐이기에 더 거대하게 다가온다. 그녀의 시가 표출하는 이미지들이 섬뜩하면서 잔혹하고, 때때로 추악한 모습을 띠는 것은 정과리 평론가의 말처럼 죽어가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한 너희들을 깨우기 위함일까.

  













즐거운 일기에서도 시인의 인식은 거의 동일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에게서 세계 자체로 시선을 돌리는 시편들이 눈에 띈다. 여기에서 시인이 인식하는 세계는 유해 색소의 햇빛에 조금씩 들끓으며/발효하기 시작하는 거대한 반죽 덩어리이자, 입으로는 하루종일 먹었던 온갖 더러움을 게거품처럼 조용히 게워내는 세계이다(여의도 광시곡). 그리고 오늘도 우리는 코리아의 유구한 푸른 하늘 아래 꿈 잘 꾸고 한판 잘 놀아났읍니다.”(즐거운 일기) 시인은 홀로 대낮에 서른 세 알 수면제를 먹고도 잠들 수 없는 사악한 밤의 세계에서(수면제), 어느 한 순간 세계의 모든 음모가/한꺼번에 불타오르(내가 너를 너라고 부를 수 없는 곳에서)는 곳에서 폐광처럼 깊은 잠을잘 수 없고, 항상 깨어서 이 피곤한 컹컹거림(시인)을 멈추지 않는 것이 자신의 숙명임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울부짖음은 불발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어서, “공포이자 암흑덩어리인 세계는 쥐의 꼬리를 문 쥐의 꼬리(악순환)처럼 악순환을 반복할 따름이다.


세계 각처로 뿔뿔이 흩어져 간 아이들은

남아연방의 피터마릿츠버그나 오덴달루스트에서

질긴 거미집을 치고, 비율빈의 정글에서

땅 속에다 알을 까놓고 독일의 베를린이나

파리의 오르샹가나 오스망가에서

야밤을 틈타 매독을 퍼뜨리고 사생아를 낳으면서,

간혹 너무도 길고 지루한 밤에는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언제나 불발의 혁명을.(겨울엔 바다에 갔었다, 강조는 인용자)


그해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우리의 노쇠한 혈관을 타고 그리움의 피는 흘렀다. 그리움의 어머니는 마른 강줄기, 술과 불이 우리를 불렀다. 향유 고래 울음 소리 같은 밤 기적이 울려 퍼지고 개처럼 우리는 제기동 빈 거리를 헤맸다. 눈알을 한없이 굴리면서 꿈속에서도 행진해 나갔다. 때로 골목마다에서 진짜 개들이 기총소사하듯 짖어대곤 했다. 그러나 197×, 우리들 꿈의 오합지졸들이 제아무리 집중 사격을 가해도 현실은 요지부동이었다. 우리의 총알은 언제나 절망만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으므로……(197×년의 우리들의 사랑아무도 그 시간의 화상(火傷)을 지우지 못했다, 강조는 인용자)


그 와중에 조용히 죽음은 우유 배달부의 길을 타고 온다.”(무제 2) 여전히 더럽고 오물로 가득 찬, 절망과 고통과 공포와 죽음이 난무하는 세계에서 시인의 외침은 단순히 울부짖음으로 끝나는 것인가. 때로는 죽음 충동의 지배를 받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나는 멈추지 않겠다는 아픈 다짐을 본다. 근원적으로 피비린내나는/이 세상의 고요 속으로/나는 처음으로 내려서겠읍니다.”(하산)와 같은 구절에 보이는 마음가짐에서, 나는 끝내 잠들지 못하고 고통을 이야기하겠다는 다짐을 읽으며 아파하는 것이다.




그녀의 시에서 나타나는 처절한 비극의 언어는 때로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때로는 극언의 형태로 충격을 안기며 온다. 그것은 이미 죽음이 전체를 덮은 세계 때문이기도, 모태를 벗어난 순간부터 세계에 홀로 내던져진 인간의 존재론적 고독 때문이기도 하다. 언제나 시인은 컹컹대며 현실의 맨얼굴을 말하겠지만, 어떤 언어로도 외로움, 괴로움, 그리움의 트라이앵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알기에 그녀의 시가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트라이앵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시인뿐만 아니라는 것을, 뒤로 벌렁 누운/거대한 다족류의 벌레와 같은 세계에서 살아가고/죽어가고 있는 피골이 상접한 내 정신(여의도 광시곡)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매번 읽을 때마다 실감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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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7-03 0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님 넘 오랜만입니다! 최승자 시인 시 읽으면 말씀처럼 절절한 외로움 때문에 읽는 게 괴로울 지경... 님 글도 참 힘든 게 느껴져서 ;_;).... 바다 구경이 필요할 듯!

아무 2018-07-03 20:35   좋아요 1 | URL
따뜻한 환대 감사합니다^^ 말씀처럼 그냥 읽어도 괴로운 시를 휑한 마음으로 읽는 건 참 고통스러울 정도였지만, 그런 마음 상태가 아니었으면 두 권을 연달아 읽을 일도 없지 않았을까 싶어요. 최승자 시인도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이렇게 몸부림치는 듯한 시를 쓴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문득 어깨에 손을 올려 사람을 놀라게 하는 벗 같은 존재라고 여기며 보내려고 합니다. 바다를 보며 뻥 뚫리는 기분도 느끼면서.. ^^;;

2018-07-04 0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6 1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2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01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출장을 달고 아이들과 김수영문학관을 방문했다. 아이들은 김수영에 대해 1도 관심이 없었고 나 역시 쌓여있던 피로감에 처음 시청하는 영상을 보면서 꾸벅꾸벅 졸기도 하였으나, 문학관을 천천히 돌다 보니 1년도 안 되어 피폐해진 새로운 일상에 꺼져 있던 필심(筆心)에 불씨 하나가 피는 듯했다. 그런 와중에도 여전히 그의 시보다 산문에 눈이 가는 나를 보며, 역시 나는 산문형 인간이구나, 라는 생각도 했다(그래서 나의 생활이 한없이 풀어져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3월부터 지금까지 예전의 열의를 가지고 책에 손을 댄 것이 몇 번이나 되었는지를 헤아리며, 하루 일을 마치고 퇴근할 때면 몸과 마음이 완전히 지쳐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 다음 날의 일을 또다시 준비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지만, 그것은 결국 핑계일 뿐인 걸 잘 안다. 독서 모임이 아니었다면 나는 한 달에 한 권도 못 읽는 일이 잦았을 것이다. 독서가에서 수집가로 전락하는 순간들. 결국 독서라는 것은 체력과 의지의 문제임을 뼈저리게 느끼지만, 일터에서 나의 정신을 피로에 쩔게 만드는 사건/사고/사람들이 좀 줄었으면 하는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은 지지 않았다.


김수영의 글을 보며 무언가를 느끼고 이렇게 간만에 글을 쓰게 된 것은, 아마 그의 글에 담긴 치열함 때문일 것이다. 옳고 그름, 좋은 시와 나쁜 시의 구분을 떠나서, 그의 글에는 지금이 아니면 끝이라는 치열함이, 그가 말했던 '온몸의 시학'이 구현되어 있다. 내가 그를 기억하는 이유도 결국 '온몸'이라는 말의 어감과 의미가 주는 울림 탓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불온한 시'와 '시인의 헛소리'가 오늘에 더더욱 요구되는 때라고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고.


넋 놓고 시간만 때우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마음에 드는 시를 필사하게 했더니, 아이들은 그나마 짧은 <눈>과 <풀>을 적기 바빴다. 언제쯤 이 아이들은 김수영이 가졌던 치열함의 태도를 이해하게 될까. 앎에 대한 의지가 없다면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이제 수집가에서 다시 독서가로 돌아갈 힘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한다. 이 경험이 '낙숫물' 한 방울의 힘이 되길 바랄 따름이다. 내일 모임에서 이야기할 책은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우라』다. 슬슬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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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5 1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15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15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 자주는 아니더라도 아무님의 글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 2017-09-16 13:53   좋아요 0 | URL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ㅎㅎ 저도 좀더 짬과 의지를 내야 할 텐데요ㅠㅠ 저도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노력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cyrus님이 그동안 쓰신 리뷰들도 쭉 보고..^^
 

변화의 순간은 언제나 도둑처럼 온다. 이번 달 역시 그러했고, 나는 2주만에 당장 이사할 수 있는 방을 찾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높디높은 서울 부동산 가격을 실감하며 겨우 계약을 하고, 오늘부로 이사를 마쳤다. 그리고 새로운 3월을 준비하면서 이사 준비까지 마쳐야 하는 탓에 정신없는 2주를 보냈다. 사실 생각해보면 2월 초부터 내 정신은 이미 없었던 것도 같다. 아니 더 오래되었나..?


이사를 할 때 내가 세웠던 원칙은 단 하나였다. 미니멀리즘. 군더더기 같은 짐은 과감히 버리자는 것이었으나, 이것 때문에 이삿짐을 꾸리면서 많은 충돌이 있었다(주로 부모님과). 그러나 가장 큰 싸움은 어떤 책을 가져가고 어떤 책을 집에 둘 것인가 하는 나와의 싸움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원칙은 1. 읽지 않은 책을 우선 챙긴다. 2. 읽다 만 책을 챙긴다. 3. 자주 참고해야 할 책을 챙긴다. 였지만, 자꾸 눈에 밟히는 책들이 띄고, 조만간 보아야 할 것 같은 책들도 자꾸 눈에 들어왔다. 정작 당분간 책을 읽을 시간마저 없을 것 같은 나날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이를 악물며 서가에 꽂힌 책들을 추려 작은 박스 하나에 담고, 오늘 이사하면서 진열식을 마쳤다.



옆에 책장이 한 칸 더 있으나, 서랍장이 따로 없는 관계로 잡동사니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꽂힌 걸 보면서도 '그 책도 가져왔어야 하는 건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 책장이 새로운 책으로 꽉 찰 날이 머지 않았음을 짐작하건만..


새로운 일은 3월부터 시작된다. 아마 한동안 적응하느라 책에는 손도 대지 못할 것이고, 지금도 3월을 준비하느라 마음만 계속 바쁘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상태랄까. 다만 이런 과도기가 얼른 지나가 책을 여유롭게 손에 집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당장 눈에 밟히는 것은 1장만 읽고 덮어둔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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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2-26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님 3월부터 시작하시는 일 행복하게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즐거운 독서 이어가시길 기원합니다^^:

아무 2017-02-26 00:2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오늘 광화문으로 가고 싶었지만 하필 오늘이 이사일이라ㅠㅠ 3월엔 꼭 좋은 소식이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잠시 알라딘 방문이 뜸할 것 같지만, 틈틈이 방문해 좋아요라도 남겨보도록 애써볼게요;; 겨울호랑이님도 2월 잘 마무리하시고 따뜻한 3월 보내시길..^^

AgalmA 2017-02-26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 창고에 놔뒀던 책들 망가지고, 제 유년시절 일기장, 내가 그린 만화책 모아둔 박스가 허무하게 버려진 경험 이후로 제 모든 기록물, 책은 무조건 제 수중에 둡니다. 치여도 같이 치이고 버려도 내가 버린다!
아무님 부모님은 아무님 책 사랑 잘 아시니까 저와 같은 사태는 안 겪으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책장 심플하니 아무님 닮았군요ㅎ/

아무 2017-02-26 23:53   좋아요 1 | URL
지난 달에 책을 서른 권 정도 알라딘 중고서점에 처분했다가 저 된통 혼났습니다;; 그걸 왜 파냐고... 지금도 제가 버릴 책 있는데..(주로 전공서적/학원교재지만)라고 말만 꺼내면 왜 버리냐는 말씀이 먼저 나와요ㅎㅎ 읽을 시간이 없으신 게 안타까울 따름..
저 심플을 위해 얼마나 많이 손가락을 깨물었는지ㅠㅠ 지금도 보면서 더 가져왔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불쑥 듭니다. 방이 좁아 감당할 수 없을 텐데 말이죠..ㅠ

五車書 2017-02-28 0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장이 헐거워지니까 책들이 눈에 잘 띄는 군요. 책을 읽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책을 욕심내고 있는 저한테 아무 님의 책 이사를 타산지석으로 삼겠습니다. 그리고 3월에 시작되는 새로운 일에 빨리 적응해내시기! ^^

아무 2017-02-28 19:0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결국 저는 오늘 참지 못하고 책 주문을 또 했지만.. 미니멀리즘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사하면서 필요한 물건도 빼먹은 게 많고.. 五車書님도 즐겁고 따뜻한 3월 보내세요^^
 


어제 헌책방 사이트를 이리저리 뒤지며 열심히 웹서핑을 하던 중 헌책 두 권을 찾아 구입했는데, 그 중 한 권이 루이 알튀세르의 『아미엥에서의 주장』이었다. 알라딘 중고에도 몇 권 올라와 있지만 가격이 2만원대를 넘는 수준이라 망설이던 차에 옥션에서 4,500원에 판다고 올라와 있길래 얼른 주문했다. 그러다가 오늘 낮에 알 수 없는 번호로부터 '책에 볼펜 밑줄과 낙서가 많아 판매를 취소하려 한다'는 문자를 받고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나는 읽을 수 없을 정도만 아니면 괜찮다고, 그런 파손만 없으면 '무조건' 구입할 의사가 있다고 답장을 보냈다.



이후 보내준 사진을 보니 밑줄이 있긴 했으나 엄청 심한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받은 『읽기이론/이론읽기』도 밑줄이 만만치 않아 어떤 페이지는 한 쪽 전체에 밑줄이 그어진 경우도 있었으나, 페이지 손상은 없는 듯하여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받았다(그래서인지 택배 상자에는 맥심 커피가 두 개 들어 있었다). 그것에 비하면 『아미엥에서의 주장』은 양호한 수준인 듯하다. 부산에서 오는 것이라 다음 주는 돼야 도착하겠지만. 이 책을 구매한 건 『마르크스를 위하여』를 읽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내가 알고 있는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ISS)를 이야기한 사람이라는 것 정도다..



내가 찾는 헌책들은 그밖에도 몇 권이 있지만, 바흐친의 『예술과 책임』, 레비나스의 『윤리와 무한』은 정말 찾기 힘든 책이다. 바흐친의 경우 『프로이트주의』는 알라딘에도 몇 권이 고가에 거래되고 있지만, 『예술과 책임』은 주요 인터넷서점과 여러 헌책방 사이트를 매일 검색해도 도통 나오지 않는다. 『윤리와 무한』도 마찬가지여서 검색하면 '무한도전 윤리' 같은 문제집만 계속 나온다. 몇 달 동안 이틀에 한 번꼴로 검색중인데..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다시 검색하러 가야겠다. 혹시 어디서 파는지 아시는 분은 제가 '무조건' 살 의향이 있으니 꼭 연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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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2017-01-21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올리고 나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두 책 모두 인터파크, 예스24, 교보문고 중고에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가격이 다 짜고 올린 듯이 전부 9만 5천원... 나로서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가격이다.. 눈물을 머금고 이번엔 그냥 보내야겠다.

북깨비 2017-01-22 1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헌책 사냥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해요. ^^

아무 2017-01-22 14:47   좋아요 1 | URL
흥미진진하셨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ㅎㅎ 다음엔 꼭 구할 수 있기를..

cyrus 2017-01-22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판매자님이 마음이 좋으신 분이군요. 저도 정말 비싼 가격의 중고책을 주문했는데, 돌연 주문 취소 통보를 받았어요. 이유조차 알려주지 않았어요. 제가 주문한 책 금액이 5만 원이었어요. 당연히 금액을 돌려받았지만 그때 너무 아쉬워서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다행히 사지 못한 책을 구하는 데 성공했어요. 그 책이 토머스 핀천의 <브이를 찾아서>입니다. ^^

아무 2017-01-22 15:26   좋아요 0 | URL
아 그 책도 진짜 구하기 힘든 책인데, 정말 아쉬우셨겠어요ㅠㅠ 핀천의 다른 책들은 조금씩 번역되는 것 같은데, 그 책만 새로 나온다는 소식이 없어 항상 아쉽습니다.. 저도 5만원까지면 둘 중 한권이라도 주문했을텐데..ㅠㅠ

2017-02-19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19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라딘을 보다가 우연히 문학과지성사 이벤트를 하는 것을 보고 집에 있는 책들을 끌어모아 보았는데, 생각보다 문지 책이 많지 않았다. 책장 한 칸을 겨우 차지할 정도니.. (도서관 책이 한 권 있는 것 같다면 기분 탓이다) 더욱이 읽지 못한 책이 예상 외로 많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책장 한 칸을 차지하는 것에 안도하고, 동시에 분발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에게 떠오르는 문지의 첫 이미지는 최인훈의 『광장』이다. 고등학생 때 처음 친구의 책을 빌려서 보았으니 빠른 만남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는 출판사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없던 상태였으니 문지 책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읽었을 것이다(그리고 난 아직까지 「구운몽」을 읽지 못했다...). 그리고 나서 내가 구입한 책이 이청준 작가의 『당신들의 천국』이었는데, 이 때 산 책은 교실에서 돌고 돌다가 실종되었고 나는 책을 다시 사야 했다. 하기야 그때 돌면서 이미 표지도 사라진 상태라 다시 사는 게 나은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 명작선 중 가지고 있는 책은 『당신들의 천국』 하나뿐이지만, 이 책은 여전히 내가 읽은 한국소설 중 최고의 자리에 있다.



대산세계문학총서나 문학과지성 시인선, 소설 명작선 등 문지를 대표하는 시리즈들은 많지만, 요즘 나는 그 중에서도 '우리 시대의 고전' 시리즈와 '현대의 지성' 시리즈에 마음이 간다. '우리 시대의 고전' 중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블랑쇼와 낭시의 『밝힐 수 없는 공동체 / 마주한 공동체』 한 권이지만, 시리즈를 검색해서 보고 있으면 언젠가 구입하겠구나 싶은 책들이 많이 보인다. 이런 책들이 어떻게 한 출판사에서 나왔나 싶을 정도로. 물론 이 시리즈는 만만해 보이는 책이 없어서 한 권씩 볼 때마다 험난한 여정이 예상될 때가 많다...


 

'현대의 지성' 시리즈에 눈길이 가는 건 내가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타자', '환대', '기호학' 등등.. 그래서 레비나스로 눈을 돌렸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조금씩 읽고 있는 『서양철학사』(이학사)에서는 레비나스를 다루지 않았다(적어도 목차를 봤을 때는). 그래서 최근에 『시간과 타자』(문예출판사)를 구입했는데, 레비나스의 주저라고 불리는 『전체성과 무한』은 번역본이 없어 2차 텍스트로만 볼 수 있다. 그래서 혹시, 강영안 교수께서 직접 번역할 생각은 없는지.. 그렇게 해서 '우리 시대의 고전' 시리즈로 내면 될 것 같은데...



끝으로 문지의 한국문학전집에 대해서 작은 아쉬움 하나만 이야기하고 싶다. 고등학생 시절, 그리고 학부생 시절에 한국 근현대 문학작품을 읽어야 했던 시기, 문지의 한국문학전집은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표지 디자인도 일관되고 산뜻하고, 책 크기도 적당하고, 뒤에 실린 해설들도 좋았다. 하지만 각주가 아닌 미주는 읽을 때 많은 불편을 주었다. 근대문학일수록 더 불편한 것은 그 시절 사용되던 어휘가 지금과 달라 주석이 없으면 이해가 어려운 까닭이다(『삼대』나 『고향』 같은 작품은 고역이다). 그래서 나는 문지 전집을 더 좋아했음에도 미주의 불편함 때문에 현대문학 출판사에서 나온 전집을 찾아 읽는 일이 잦았다. 지금은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으나, 아직도 그렇다면 개선을 좀...


 

많은 사람들이 문지 하면 떠올리는 것은 문학과지성 시인선이겠으나, 너무 유명해서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책들이, 특히 80년대에 나온 시집들이 내 시심(詩心)의 중핵을 이루고 있음은 분명하다. 최승자, 이성복, 황지우... 그들의 이름을 한 번씩 불러보며(별 헤는 밤이 떠오른다면 기분 탓이다) 마무리해야겠다..


p.s 1) 사진을 찍으려고 책을 모을 때 문지 책도 아니면서 꽂아보려 했던 책은 낭시의 『무위의 공동체』(인간사랑)였다. 출판사는 다르지만, 『밝힐 수 없는 공동체 / 마주한 공동체』의 짝이니까. 하지만 뒤늦게 발견한 말라르메의 『시집』에 밀려 결국 물러나고 말았다.


p.s 2) '현대의 지성' 시리즈 중 내가 갖고 있는 책은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가 전부다. 작년 초에 샀으나 여전히 다른 책에 치이고 있는, 볼 때마다 '봐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책. 그러다 작년 가을 무렵 문지 페이스북에서 이 책에 교정사항이 있다는 공지를 보고 캡처해 놓았다(아직 내 책에 표시하진 않았다). 이미 책을 읽으신 분들이 바로잡으셨으면 하는 마음에 사진을 올려둔다. 핵심적인 내용이 수정된 것은 아닌 듯하고, 내가 갖고 있는 책은 7쇄다.



p.s 3) 글을 다 쓰고 보니 이 이벤트는 리뷰에만 적용되는 모양이다. 생고생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생고생의 결과는 그냥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벤트가 언제까지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번 주에 읽어야 할 책 중에 문지 책은 없다...

 

p.s 4) 아무리 수정해도 되지 않길래 어제 밤에 쓴 글을 삭제하고 다시 응모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제 읽고 공감해주신 분과 댓글 남겨주신 분들께 죄송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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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20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님, 글 위에 ‘이벤트 참여 중’ 단어가 없어요. 마이페이퍼로 작성해서 글쓰기 창 위에 ‘이벤트 응모하기’에 체크해야 합니다. 체크 안 된 게시물은 이벤트 게시판에 보이지 않습니다. 정성들여 쓴 글을 삭제하고 다시 업로드할 때 난감합니다. ^^;;

아무 2017-01-20 11:54   좋아요 0 | URL
이번에 쓸 때는 체크하고 썼는데도 글 위에 안 뜨더라구요ㅠ 그래서 문지 이벤트창으로 들어가니 제 글이 참여중인 걸로 올라와있길래.. 아무래도 예전처럼 글에 참여중을 띄워주진 않는 것 같습니다^^;; 헷갈리지 않도록 올려주는 게 나을 것 같아요ㅠ

cyrus 2017-01-20 11:57   좋아요 1 | URL
아, 그래요! 몇 달 동안 출판사 사진 이벤트를 하지 않아서 모르고 있었어요. 저도 조만간 문지 이벤트 응모하려고 이번 주말에 책장을 확인해보려고 합니다. ^^

cyrus 2017-01-20 14:42   좋아요 1 | URL
방금 글쓰기 테스트 해봤는데, 정말 ‘응모 중’ 문구가 안 나오네요.

아무 2017-01-20 15:40   좋아요 0 | URL
오늘 다시 쓰고 나서 생각해보니 어제도 내가 착각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정할 때면 체크란도 안 나오고ㅠㅠ 사소한 거지만 ‘응모 중‘ 문구가 나오는 게 훨씬 편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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