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곽 -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상실 혹은 단절 윤곽 3부작
레이첼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한길사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화라는 것은 어느 일방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대화라는 것은 나만의 이야기를 홀로 전개하는 것이 아닌 타자의 말을 잘 듣고 나의 이야기를 정말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교과서에 적혀 있다. 

하지만 이 <윤곽>은 그런 교과서적 정언 명법을 아주 거부한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그냥 독백에 가까울 정도로 한 개인의 이야기를 들어나간다. 그러면서도 간간히 화자가 이 대화에 개입을 하기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판소리의 추임새정도에 그칠 뿐 그다지 깊이 관여하지도 않으며 그다지 자신의 생각을 기술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이 대화의 맥락을 편집하지도 않는다. 때문에 글은 다소 산만한 면도 있으며 이야기가 온갖 군데에 튀는 듯한 느낌을 주어서 어떤 맥락을 잡아야할지 역시도 어렵게 만든다. 심지어 내용조차도 인과관계가 전연 없어서 엉뚱한 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엉성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를 듣는 사람은 어떠한가. 듣는 사람은 크게 두명으로 나눌 수 있다. 한명은 작중의 화자가 곧 청자이고 다른 한명은 독자인 우리이다. 이 책은 분명히 말하건대, 결코 소설 외부를 굳이 배제하려고 하지 않았다. 마치 소설 내 세계와 소설 외 세계를 이분해왔던 그동안의 자폐적 소설에서 벗어나 우리의 일상의 시공간 안으로 소설의 맥락을 끌고와서 우리에게 선보이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독자 역시도 얼마든지 청자로 배치되면서도 동시에 작중의 화자와는 또 다른 자아로서 이곳에 개입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이 발화의 맥락 역시도 모호함을 띄게 된다. 발화자의 대상은 1차적으로는 청자이기 때문에 청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의해서 무의식적 편집을 거친 (혹은 청자의 언어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달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독자에게 다이렉트로 꽂히는 것인지 불분명해진다. 그렇게 모든 이야기는 그냥 윤곽만을 남은 채 흔들려버리고 그렇게 모든 윤곽은 불분명한 윤곽만을 남긴 채 책이 마무리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