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눈을 뜨니 폭염이 언제였냐는듯 서늘한 바람이 열어놓은 베란다 로 들어온다.

천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비릿한 물냄새가 섞여 있다.

그리 깨끗하지 않은 물속에 제법 큰 잉어들이 펄떡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한겨울에 잉어를 잡던 효자가 나오는 옛날 이야기가 떠오르곤 한다.

그 시절 물이야 유리같이 깨끗했을까?

그래서 드물긴 해도 말갛게 언 얼음장 밑으로 헤엄치는 잉어가 보였던 것일까?

그래서 효자는 낚시꾼들이 드문드문 뚫어 놓은 얼음구멍 아래 강 기슭쪽으로 숨었던 잉어를 잡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름이 아직 창창한데 새벽에 들어오는 바람에 문득 머잖아 가을이 오리라 짐작한다.

물이야 조금 더러울지라도 물풀사이 숨어 있는 잉어들이 여전한 것처럼, 건물이 좀 더 커지고 차들이 늘어난 정도의 변화밖엔 느끼지 못한채 세월이 간다.

충청도의 세월은 유난히 더디고 느긋하다.

이렇게 살아도 좋은 것일까하는 강박증이 일어나는 새벽을 제외하면 나쁘지 않은 일이다.

 

나서기 좋아해 전학온지 육개월만에 전교부회장이 된 건우덕에 팔자에 없는 학부모임원노릇까지 겹쳐 정신없었던 1학기도 지나고 여름방학이 코앞에 다가오니, 한해가 벌써 다 지난듯 하다.

내년에는 제발 아무것도 하지말라는 제엄마의 당부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건우녀석을 어르고 달래다보면, 시간조차 제게 내어주지 않는 엄마를 서운해하는 눈초리가 느껴진다.

녀석의 눈빛을 무질르며 밖을 내다보면 어스름한 불빛사이로 뒤척이며 흐르는 물줄기가 보인다.

저 물처럼 세월도 흘러 늙어버리리라.

그리하여 건우에게 내어줄 시간이 조금 늘어날 때면 녀석은 엄마가 필요치 않으리라.

대부분의 엄마가 그리하며 후회했던 방식을 나도 똑같이 되풀이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찌 할 것이냐.

선택의 폭은 넓지 않고 보통사람들이 사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별다르지 않게 팍팍한 것을...

 

밖의 어스름은 5시를 전후해 빠르게 걷힌다.

그시간대에 이르면 새벽에 불던 바람도 온도가 달라진다.

아직 남아있는 찬바람을 들이 마시다보면 저만큼 다가와 있는 가을이 조금 걸음을 빨리해줄까, 자꾸만 마음이 조급해지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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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꽃 2008-07-16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건우가 당당하게 잘 해내고 있군요.멋진 아이로 남자답게 잘 해내고 있는것을~!

님의 글에 고개끄덕이며 공감하네요..
전 요즘에서야 조바심 내며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되짚고 있답니다..
그러면서 여전히 헛다리 짚어가고 있구요..;;

건우와 연우 2008-07-17 02:50   좋아요 0 | URL
배꽃님, 건강히 잘지내시지요?
새벽에 눈을 뜨니 비가 엄청 옵니다.
마른장마라더니, 장마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는 듯 퍼붓네요...
제가 요즙 헛다리의 진수를 보여주며 살고 있답니다.ㅜ.ㅜ
배꽃님, 늘 평화로운 나날들이 되시길 빌께요.
 

지난 주말에 자동차로 네시간 반을 꼬박 달려 곰배령에 다녀왔다.

원주 횡성을 거쳐 홍천을 지나 인제에 들어서는 길,

가을볕에 딸 내보내고 봄볕에 며느리 내보낸다더니 흐드러진 봄 햇살 낭자한 고속도로를 네시간을 줄창 뚫고 나가기란 만만찮은 일이었다.

그래도 만연한 봄햇살에 눈을 씀벅이며 운전대와 씨름을 하는 사람이야 어떻든, 중부를 거쳐 영동고속도로로 들어서니 구부러진 길이나 길쭉길쭉한 나무들이 제법 울울해 오랫만에 집밖에 나선  감회를 새롭게 한다.

 

이른 아침 서둘러 길을 나서느라 새벽부터 일어나 잠을 설친 건우와 연우는 뒷좌석에서 널브러져 잠이 곤하다.

어렵게 나선 나들이길에 내쳐 잠들어 있을지라도 어린 녀석들 눈에야 푸르러가는 녹음이 무어 대수랴.

녀석들이야 살아가며 볼 날이 부지기수니 아직 만연한 봄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엔 턱없이 어린것을.

하루하루 풍경이 새로운 마음이, 오히려 나이를 가늠케해주는 쓸쓸한 표시일 뿐이다.

 

이미 봄이 한참 늦었건만 홍천근처에 들어서니  물오른지 얼마 안된 나무들이 연두빛 이파리를 가지끝에 달고 있어 새삼스럽다.

우리동네 나무들은 이미 파랗게 초록이 기세를 올리는데 강원도와 충청도의 거리가 이파리 색깔만큼 눈앞에 성큼 다가선다.

어린것들은 언제 봐도 곱다. 사람이든 이파리든...

 

인제에 들어서니 이제부턴 가파른 산길이 아찔하다.

어이쿠 소리를 몇번이나 해가며 급경사에 급커브를 돌아가며 오르는 산굽이가 애써 오르는 사람을 내켜하지 않는듯도 하다.

강원도에서 군생활을 한적이 있는  남자동료들이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가겠네 하며 갔다온 강원도 군대라며 너스레를 떨때마다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하는 남자들>로 한묶음에 도매금으로 취급했던 그 인제가 문득 어질어질한 이명이 되어 고막을 막았다.

낮잠에 혼곤하던 건우녀석도 일어나 연신 <아싸, 엄마 무지 아찔해요>하며 멍멍한 귀를 풀어준다며 입을 크게 벌린다.

상남을 지나 현리 표지판을 보고도 한시간쯤 더 골짜기로 돌아,  비포장도로를 조금 더 들어가 도착한 점봉산 곰배령의 숙소근처엔 풀꽃도 지천이요, 바닥까지 보이는 물도 지천이요, 그속에 송사리도 지천이었다.

 

어항에 된장 한수저 넣어 물속에 담가두고 산속이라 서늘한 주인집 마당에서 장작불속에 있던 작대기를 끄집어내어 시꺼먼 숯으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나물도 뜯다가 물가에 내려가보니 그새 어항 가득 송사리들이 바글바글이었다.

기름에 튀겨 안주해달라던 건우아빠는 손가락만한 송사리 두어마리를 다듬어보더니 전부 알이 차 있다며 산란기물고기를 잡은것 같다고 찜찜해하더니 그예 잡은 물고기를 죄 계곡에 도로 풀어놓았다.

별미 안주야 날아갔지만 미리 재워간 등갈비를 계곡이 보이는 마당에서 구워먹으니 오랜만에 눈도 입도 호사다.

바람에 저희들끼리 부딪치는 나뭇잎 그늘아래 집주인까지 불러 앉혀 술을 마시자니 산그늘이 마음속 깊숙이에 들어와 앉는다.

 

밤새 귓전에 가득한 바람소리가 자꾸만 등에 진 무언가를 내려놓으라 속삭이며 돌아나오는 순간까지 등을 만져보게 한다.

무엇이 딸려와 등에 얹혀 있었던지, 바람이 하는 말이 자꾸만 귓등에 얹혀 귓가에 쟁쟁한 봄 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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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5-14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로 따지면 봄인지 여름인지 약간 햇갈리는 이상기온이에요..^^
봄나들이를 나가도 예전과 같은 봄 특유의 그 산듯함은 많이 사라졌어요.

전호인 2008-05-14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갑자기 더워지는 느낌입니다.
봄인가 싶더니 여름이에요. 오늘은 그래도 바람이 쌀쌀하게 느껴지네요.

건우와 연우 2008-05-15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 오랫만이지요? 잘지내고 계셨지요...서재이미지가 변한건 요즘 심경의 다른 표현이신가요? 세상 돌아가는게 웃을일이 점점 드물어지긴 합니다만....^^;
전호인님, 올 봄은 유난히 기온차가 크네요. 더웠다 쌀쌀했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건강하세요.^^
 

  일요일 아침을 서둘러 먹고 회사에 나오니 이런,,,,

 평소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햇살이 곱다.

당직을 하기엔 아까운 봄날이다.

 

건우아빠가 세미나 참석차 인도에 간지 5일째, 그사이 건우생일이며 내 생일이 훌러덩 지나가 버렸다.

인도에서 수시로 날아오는 생일축하문자를 보니 이렇게 떨어져 보내는 날들이 듬성듬성 끼어 있는 것도 썩 나쁘지만은 않은것 같다.

챙겨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마음과 그에 대한 이해의 폭도 훨씬 여유롭다.

그와 나의 공간적 거리에서 발생하는 뜻밖의 배려랄까, 의외의 편안함이다.

건우는 저녁에 와인을 사서 엄마에게 선물해주겠노라 벼르고, 연우는 케익을 준비해 아빠의 귀가를 축하해 주자고 하니 오늘 저녁은 아이들덕에 어른들이 호강하게 생겼다.

연우가 생일축하 선물이라며 꺽어온 꽃이 식탁 한쪽에 풀죽은채로 아직 아름답다.

우리가 살아갈 날들이 눈부시지 않아도 저렇게 조용히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봄날,

특별하지 않은 봄이 아이들과 함께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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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숲 14 - 신장판
이시키 마코토 지음, 유은영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애도 어른도 둘러 앉아 열심히 읽었다.

이 나이에 만화라니, 속으로 혀를 끌끌차며 심란한 봄밤 14권의 만화책을 쌓아두고 시간을 죽였다.

죽어라 철 안드는 어른이다.

활자책이 눈에 안들어 올 때 이렇게 만화라도 읽으니 마음이 진정된다.

이게 무슨 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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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해결의 길잡이 원리 2학년 - 초등수학
대한교과서주식회사 엮음 / 미래엔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연우 혼자서도 잘 풉니다. 가끔은 꼼꼼한 설명이 요구되어 좀 힘들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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