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초엔 담임선생님이 무섭다며 울상이던 연우가  두어달이 지나니 평온해졌다.

담임선생님의 악명은 여전히 위세도 당당히 학부모들 사이를 떠돌고 있으니 슬그머니 연우의 학교생활이 궁금해졌다.

 

나: 연우야, 이제 선생님 안무서워?

연우: 그냥 그래요.

나: 선생님이 이제 아이들 안혼내셔?

연우: 아이, 선생님도 사람인데 어떻게 날마다 아이들을 혼내시겠어요?

나: 그렇긴하다....

 

엄마를 쳐다보는 연우의 눈빛이 갑자기 반짝반짝했다.

 

연우: 엄마, 제가 우리선생님의 좋은점을 찾아냈어요.

나: 어머, 대단하다. 다른사람의 좋은점을 잘 찾아내는건 굉장한 장점인데, 그래, 선생님의 장점은 뭐야?

연우; 제가 세가지를 찾아냈는데요, 첫째는 선생님이 이야기를 개그맨처럼 재미있게 해주는걸로 봐서 개그맨의 피가 흐르는게 아닐까요?

나: 그래? 선생님이 이야기솜씨가 좋으신 모양이구나. 두번째는?

연우: 우리선생님이 화를 잘내시지만요, 아픈 사람은 잘 돌봐주시더라구요.  아픈 사람에게는 친절하세요. 엄마가 사람이 아플때 서운한건 오래가니까 잘해줘야한다고 하셨잖아요.

나: 그렇지. 아픈사람을 잘돌봐주어야 하는데 너네 선생님은 많은 아이들을 지도하느라 힘드신데도 아픈애들에게는 더 친절하시구나. 그래, 세번째는?

연우: 그리고 우리 선생님은요 과거지사를 묻지 않으세요.

나: 과거지사?

연우: 네. 엄마가 그러셨잖아요. 이미 한번 지나간일을 자꾸 되풀이하며 짜증내지말라구요. 선생님은 떠들거나 말썽을 피우면 옐로카드를 한장씩 주시는데요, 옐로카드가 세장이면 레드카드가 돼요. 그리고 레드카드를 받으면 교실에서 퇴장을 당해 집으로 쫓겨나겠지요. 근데요, 중요한건 그전날, 즉, 지난간 과거의 옐로카드는 상관이 없구요, 오늘걸린 옐로카드만 적용하시는 거지요. 그러니 과거를 묻지 않는거 아니겠어요.

나: 그렇구나, 근데 연우야, 너네반에 레드카드받은 아이도 있니?

연우: 아직 없어요. 옐로카드 두장이면 이미 겁을 먹고 조심을 하지요.

나: 우리딸 대단하다. 그새 선생님의 좋은점을 세가지나 찾아내고...

연우: 제가 눈이 밝잖아요.

나: 그래, 앞으로도 다른 사람의 좋은점이 무엇인지 잘 찾아봐. 남의 좋은점을 잘 찾는 아이는 눈만 밝은게 아니고 마음도 밝은 아이가 될거야.

연우: 조금더 노력해야 마음도 밝아질수 있겠군요. 저는 아직 좋은점을 많이 찾아내진 못했거든요.

 

연우의 눈빛이 씩씩하고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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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5-18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정말 대단한 연우예요.
제가 보기엔 눈이 아니라 마음이 맑은 연우인데요. ^ ^.

프레이야 2007-05-18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씩씩하고 밝은 눈빛의 연우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제가 다 기쁘네요.
상대의 좋은점을 발견하는 눈을 가진 연우, 너무 예뻐요.
정말 눈 밝은 사람 마음 밝은 사람!

Mephistopheles 2007-05-18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연우때문에 반성하는 메피스토입니다...^^

건우와 연우 2007-05-21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 연우는 가끔씩 황당하기도 하답니다...^^
알토란같은 홍.수가 반짝반짝하네요...^^
나침반님/ 아이들은 어른과는 다른눈을 가지고 더 가지고 있나봐요...^^ 잘 지내시지요?

건우와 연우 2007-05-21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연우가 자라면 세상을 깊게 봤으면 좋겠어요.
혜경님의 사진이나 글처럼요...
메피님/ 어른이 된다는건 합리적이고 사려깊어지지만 아이들처럼 마냥 순수할수만은 없겠지요. 그래도 메피님의 카리스마와 유머는 여전히 많은이들의 기쁨인걸요.^^
 

어제는 스승의 날이라 학교도 재량휴업을 하고, 평소같으면 알아서 아이들 챙겨주던 건우아빠도 스승의날 행사가 있다며 가 버리고 나니 별수 없이 건우와 연우만 집에 남았다.

숙제며 간식을 챙겨주긴 했지만 요기가 될것 같진 않아 건우에게 돈을 주며 점심에는 분식집에라도 가서 연우랑 먹을 김밥이라도 사먹으라고 일러두었다.

일하는 내내 두녀석은 번갈아 전화를 하며 숙제마친 보고며, 간식을 먹는다는 보고에 둘이 싸운 내용을 일러바치기까지 자신들의 일상을 자세히도 보고를 했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이제 슬슬 배고플 시간인데 녀석들이 점심을 잘 해결하고는 있는지 궁금하던차에 휴대전화로 여지없이 보고전화가 왔다.

 

연우: 엄마,  오빠랑 점심으로 김밥을 먹었는데요...

나: 오빠가 김밥을 사왔구나...

연우: 그게 아니구요, 저랑 오빠가 같이 가서 먹었거든요. 김밥 두줄 달라고 하니까요 아줌마가 된장국물도 주시구요 단무지도 주셨어요. 엄마는 김밥만 사오시곤 했는데 가서 먹으니까 아주 맛있고 좋더라구요.

나: 집으로 사온게 아니고 식당에서 먹었어?

연우: 네. 그리구요 아줌마가 김치도 줄까?하셨는데 그건 제가 거절했어요. 그런데 오빠랑 둘이서 먹는데 다른 사람들이 우릴 몰래몰래 쳐다보더라구요.

나: 왜?

연우: 제생각엔 그사람들이 우릴 가출남매로 보는것 같았어요...

 

순간 나는 명치끝이 아린데 연우는 연신 끼드득대며 설명을 했다. 오빠랑 둘이서만 식당에 가서 음식을 시켜먹은게 엄청난 모험처럼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연우: 점심도 먹구요, 오빤 용돈챙겨서 소아과에도 다녀왔어요. 목도 좀 아프구요, 어지럽다고 하더라구요. 의사선생님이 폐렴이 될수도 있으니 푹 쉬라고 했대요. 근데요, 오빠가 포카리스웨트를 자기꺼만 사왔어요. 엄마 저도 감기기가있으니 먹어도 돼지 않을까요?

나: 오빠혼자 병원에 다녀왔어?

연우: 네. 동네소아과니까 다녀와서 엄마한테 얘기한다구요.

나: 응 알았어. 이온음료는 둘다감기기가 있으니 엄마가 너도 하나 사다줄께. 오빠한테 속이 거북하면 더이상 음식먹지말고 이온음료 마시고 있으라 그래. 너무 차갑지 않게 냉장고에 넣지말고...

 

네하고 대답하는 연우의 목소리가 신이 났다.

재량휴업일 내내 두녀석은 엄마에겐 전화로 보고하며 하루가 가출남매처럼 모험이었나보다.

제엄마야 속이 뜨끔하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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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5-16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는 짠하기도 하고 대견스러운 느낌이 들게하는 페이퍼입니다..^^

물만두 2007-05-16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연우님 너무 짠해하지마세요. 아이들도 엄마 마음 다 알겁니다. 밝고 이쁘게 생각하세요.^^

무스탕 2007-05-16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조금 더 컸구나... 하고 생각하세요.
건우랑 연우도 엄마맘 다 알고 서운해 하지 않을거에요 ^^

홍수맘 2007-05-16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음이 아프네요. 그래도 둘이서 나름 잘 해나가는 모습에 대견해 보이기도 하구요. ^ ^.

sooninara 2007-05-16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대견스럽네요. 엄마 마음은 짠하지만..
아이들이 저렇게 맑고 착하게 자라주면 무슨 걱정이겠어요^^

푸하 2007-05-16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출 남매라고 볼 수도 있지만, 다른사람이 몰래 쳐다 본 이유는 넘 귀여워서 그런 듯해요. ㅎㅎ

치유 2007-05-16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쁜 아이들..참 대견스럽네요..건우는 정말 의젓한 오빠에요..

로드무비 2007-05-17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건우처럼 혼자 병원에 가면 참 좋겠는데.
(마이도러는 주로 이비인후과에 가요.)
사랑스러운 남매 소식 오랜만에 듣습니다.^^

건우와 연우 2007-05-17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 이젠 제법 둘이서 많은 일들을 해치우곤 하는데, 익숙한 모습들이 좀 안쓰럽지요... 안녕하시지요?
만두님/ 오랫만에 들어오다보니 건강하셨지요? 안쓰러운건 엄마마음 뿐이고 애들은 멀쩡한가봐요.^^
무스탕님/ 저렇게 어느날 훌쩍 다 커버려서 가버리면 또 그게 미안할것 같아요. 그래도 님의 말씀이 고맙습니다.^^
16일 14:45분 속삭이신님/ 잘지내시지요? 자주 못와도 님의 서재는 훔쳐보곤 하는데, 님도 요즘 좀 뜸하셨나봐요. 보고싶었어요.^^
홍수맘님/ 홍수맘님 서재에 몇번을 들락거렸어도 인사도 못했는데, 아이들이 참 예뻐요.^^
수니님/ 이사오셨군요. 은영이랑 재진이는 여전히 재기발랄남매로 잘 지내지요?
저흰 다음달에 몽땅 보따리챙겨 남하할일로 제정신이 아닌데...ㅜ.ㅜ
푸하님/ 정말 오랫만이지요? 하시는일은 잘 돼시구요? 아이들은 둘만 놔두면 꼭 덜큰 들고양이같이 좀 측은해보이기도해요...
반가운 배꽃님/ 건강은 어떠신가요? 오랫만이다보니 정말 안부가 궁금했어요....
건우는 너무 애어른이라 담임선생님은 좀 안쓰럽다 하시더라구요...
로드무비님/ 씩씩한 주하는 학교에서 기발한 일들을 벌이고 있지는 않은가요?
주하소식도 궁금해요...^^

이렇게 게으른 서재에도 들러주시고... 감사드려요. 꾸벅.
유월이면 보따리싸들고 집이며 직장이며 모조리 이전을 해야해서 좀 제정신이 아니랍니다.
그래도 정신날때마다 찾아뵐께요.^^

 

건우가 새학기들어 영어학원을 옮겼다.

등록전에 몇번이고 괜찮겠느냐고 다짐을 받았는데, 녀석은 시큰둥하게 까짓...하며 대수롭지 않게 받았었다.

그동안 좀 어렵지 않을까 싶을때마다 잘 버텨주기에 그것만 믿고 아이의 대답을 핑계삼아 덜컥 등록을 해놓은게 지난 삼월부터다.

일주일에 두번 한번갈때마다 200분씩 수업을 하는 그 학원에서 단어와 통문장, 문법을 갈때마다 테스트를 하고 두개이상 틀리면 나머지공부를 시킨다며 3개월간의 숙제목록과 진도표를 가지고  온 첫수업날, 아차 싶었다.

아무리 잘 버티곤하는 아이지만 무리가 아닐까 ...

아니나다를까 건우는 첫수업을 하고 온날 반죽음이 되어 흐느적흐느적거렸다.

건우: 엄마 숙제가 너무 많아....

아이가 내놓는 교재가 무려 네권...

나: 뭔 교재가 그렇게 많냐? 그놈의 학원은 자퇴생만 다닌대니? 애들이 학교는 안다니구 전부 그 영어학원 하나만 달랑 다니는거야?

내가 입에 거품을 물고 흥분을 하니 투덜거릴 준비를 잔뜩하고 있던 건우가 오히려 엄마를 달랜다.

건우: 그쵸, 그쵸...  근데 그 학원에 내가 아는 애가 몇 있더라. 근데 걔들이 나보다 레벨이 좀 낮았어요.

그와중에도 녀석은 슬쩍 잘난척이다.

나: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너 그학원 다닐수 있겠어? 야야, 사람잡을 학원이다.

건우: 그래도 일단 해봐야지요?

나: 글쎄다. 안될것같으면 지금 얘기해. 나중엔 빼도박도 못해. 여기 만만치 않을것 같다.

건우: 해보구요...

나: 글쎄올시다.

건우: 계획표짜는거나 도와주세요.

경기를 내며 펄펄뛰는 엄마를 말리고 다니기 시작한 학원이라 요즘 건우는 정말로 빼도박도 못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지난밤에는 잠꼬대까지 해가며 잠을 자는 모습을 보니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이제겨우 4학년인데, 저걸 그냥두어도 괜찮은건지...

대한민국은 지금 애나 어른이나 스트레스 만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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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4-24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드시겠어요,

건우와 연우 2007-04-24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보다 애가요.
저러다 죽지 싶어요...

해리포터7 2007-04-24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건우 잘 해낼것 같아요. 저런 반응이면요. 이쁘네요^^

치유 2007-04-26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ㄱㅡ러게요..기특하리 만큼 아이들이 감당해 내는걸 보면 안스러워요..소라도 영어에 질려하려고 해요..하루 백단어씩 외우라고 하면 질리게도 생겼죠??
전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는 대책 없는 母랍니다.
 

멀고먼 미국이라는 땅...

나라이름은 하루도 빠짐없이 시골구석구석까지 영향을 안끼치는데가 없어 어지간한 친구보다 익숙하지만 공간상으로 나랑은 아무 상관이 없던 나라다.

그 나라 버지니아에서 벌어졌다는 참극에 혀를 차며 인터넷뉴스를 처음 읽을때만해도, 짱깨어쩌구 하며 중국과 미국의 외교마찰을 상상하는 댓글을 보며 인간에 대한 예의의 수준이라는게 이렇게 천박할수도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하루만의 반전속에 죽여주십사 엎드려 비는 모습은 내가 이땅의 국민이라는 사실을 더 절망스럽게 했다.

 

이틀이고 사흘이고 내리 신문과 방송에 오르내리는 조승희의 모습은 시트콤에나 나올법한 표정으로 과장되고 공허해보였다.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총기로 무장하고 있는 그는 오랜시간  끔찍하게 외로웠노라고, 이렇게라도 자신을 좀 봐달라고 울고 있는 것 같았다면 나의 오버일까...

그가  보냈을 십년도 넘는 시간이 보이지 않는 가시가 되어 가슴속 어딘가를 돌아다니며 자꾸만 따끔거리던 주말,  자식키우는 엄마의 입장이 되고보니 죽은 이들이야 말할나위없이 가슴아프지만 불한당이 되어버린 오랜세월 외로웠을 젊은 청춘이 자꾸만 눈물이 났다.

 

오늘아침, 차마 안됐단 말조차 쉬 해줄수 없는 그 청년의 무덤앞에 몇몇 살아남은 학생들이 꽃과 편지를 가져다 놓았다는 기사를 보며, 그의 영혼이 조금은 위로받았기를 몰래 빌었다.

차마 눈돌리기 어려운 자식키우는 부모의 입장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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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4-23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제 가족 역시 한국사람이지만..전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한국인의 피가 나쁜가보다 하구요...

건우와 연우 2007-04-23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뉴스를 접했을때 언론의 태도나 댓글들이 참 해도 너무 한단 생각이 들더군요....

Mephistopheles 2007-04-23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도 언론매체에 몸담고 있으신 분이 계시지만...
우리나라 언론과 신문..방송은...쓰레기 수준이에요..

건우와 연우 2007-04-24 0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씩은 나아지는 기미를 보여줘야 그 사회가 발전한다고 믿어질텐데요, 우리사회는 어찌 이리도 천박해져갈까요...
 

연우의 담임선생님은 정년을 앞둔 분으로 학교에서 호가 나게 무서운 분이시다.

몸도 안좋으시고 얼마전에 남편상까지 당하신 이후론 더욱 상황이 안좋아 사실 담임으론 피하고 싶었던 분이었다.

입학식날 담임선생님자리에 그선생님이 계신걸보고 아이의 등을 밀어 앞으로 보내기가 천길 낭떠러지 앞으로 보내는것 같았다.

큰아이가 있어 학교사정에 밝은 몇몇엄마도 사색이 된게 보였다.

연우의 담임선생님 성함을 듣곤 건우가 기겁을 하고 제 동생에게 겁을 주었던 모양이다.

퇴근후 집에가니 입학식을 마치고 온 아이가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다.

나는 한눈으로 건우를 나무라고 연우를 다독였다

 

나: 연우야 그선생님이 조금 무서우신건 사실인것 같아. 하지만 이유없이 혼내시지는 않으니까 네가 조심하면 돼. 연우가 신경쓸것 몇가지만 가르쳐줄께. 첫째 친구들과 수업시간에 떠들지 않는다. 둘째 준비물은 전날 꼭 챙긴다. 셋째 궁금한것은 되도록이면 집에와서 엄마나 아빠에게 묻는다. 넷째 지각하지 않는다....

연우: 그러니까 선생님이 무섭긴 하단거지요?

나: 남자애들이 해마다 주로 혼났고 여자애들은 좀 덜했던 것 같아. 선생님이 몸이 안좋으시니까 피곤해서 그러셔. 그러니까 엄마가 아플때 네가 도와주었던 것처럼 너도 선생님을 좀 도와주면 어떨까?

 

다음날부터 연우는 날마다 한둘씩 혼나거나 벌선 아이들의 사정을 얘기하며 입학한지 며칠 안된 아이들을 그렇게 혼내키면 아이들이 어떻게 좋은 학생이 될 수 있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부모가 되어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제말이 부모의 동의를 흔쾌히 얻지 못하니 연우는 그조차 답답한 모양이었다.

그러던 아이가 결국은 감기와 스트레스를 못견뎌 지난 목요일과 금요일엔 물도 못마시고 내리 토했다.

노랗게 뜬 아이 얼굴을 대하며 봉투라도 보내야하나 며칠을 참으로 난감한 고민에 싸여 지냈다.

엄마의 자존심과 아이의 불안감이 서로 엇갈려 싸운 토요일 새벽 연우는 간신히 구토를 멈추었다.

다행히 몸이 좀 좋아지니 연우는 밝은 모습으로 학교에 갔다.

주말엔 다행히 제 실내화도 빨아널고 일기도 쓰면서 편안하게 보냈다.

그런데 이게 왠 날벼락이랴. 오늘아침 건우와 연우를 내보내고 출근을 서두르는 내게 베란다에 널어놓은 연우의 실내화가 보였다.

아뿔싸, 연우의 실내화를 챙기는걸 깜박하고 빈주머니로 보낸것이다.

몇년전에 그선생님이 실내화를 챙겨오지 않은 아이를 나무라는 모습을 보았던 기억이 나고 눈앞이 노래졌다.

서둘러 실내화를 들고 학교로 뛰는데 아는 엄마가 연우가 교문앞에서 울고 있다고 전화가 왔다.

자꾸만 허방을 딛는 걸음을 서둘러 학교에 도착하니 소리도 제대로 못내고 꺼이꺼이 우는 연우가 보였다.

 

연우: 엄마 신주머니가 왠지 가벼워 보니 비어 있지 뭐예요...

나: 미안해 연우야, 엄마가 깜박했어. 안그래도 베란다에 네 실내화를 보곤 서둘러 온다고 왔는데 이제 괜찮지?

연우: 네... 근데 엄마.

나: 응

연우: 제 얼굴이 빨갛지요? 운거 표시 많이 나나요?

나: 쪼금.. 그래도 숨한번 크게 쉬면 운 표시가 사라질거야.

연우: 후웁... 이렇게요?

나: 응, 이제 별로 표시가 안나네.

연우: 이제 빨리 출근하세요. 엄마가 지각해서 벌이라도 서게 되면 창피하잖아요. 저는 괜찮아요.

 

올해가 지나면 연우가 어지간한 일엔 놀라지 않을 수 도 있으리라는 희망을 위안으로 삼아야 하는 것일까

저는 괜찮아요,하는 아이의 조그만 등이 안쓰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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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3-19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휴..그래도 엄마 염려하는 모습이라니..ㅉㅉ

물만두 2007-03-19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연우가 대담하게 일년을 무사히 보냈으면 합니다.

해리포터7 2007-03-19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여린 연우...저까지 목이 메여오네요. 보통 일학년담임들은 애들 적응시킨다고 잘 안혼내시더니만...속상하시겠어요..그래도 속깊은 연우는 잘 해낼꺼에요. 님 힘내셔요~

춤추는인생. 2007-03-20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우가 벌써 초등학교 1학년이군요. 섬세한 연우마음에 담임선생님이 뭣모르고 상처내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지만. 어른스러운 연우를 생각하면 또 그안에서 많을 걸 깨닫고 생각하면서 예쁘게 성장할것 같아요 님 힘내세요 ^^

Mephistopheles 2007-03-20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임선생님의 성격 때문에 바싹 긴장해야 하는 일상이 반복되면 좀 곤란하실텐데..
조금씩 익숙해지면 차차 나아지겠죠...^^ 헉..주니어의 초등학교 입학이 얼마 안남은
(2~3년)시점인지라..저 역시 걱정...^^

조선인 2007-03-20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구, 연우는 기특한데 생각할수록 안쓰럽네요. ㅠ.ㅠ

반딧불,, 2007-03-20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연우 안쓰럽고..님도 애쓰십니다..정말.

씩씩하니 2007-03-20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연우가,,씩씩하니를 울리네요...
어쩌면 대견하기도 하구,,,발 동동 구르는 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가슴이 짠해와요...
좋은 선생님들도 많은대..연우가 안쓰러워지네요..
그래도...자꾸,,힘을 주는 수 밖에 엄마가 할 수 있는게 모 있나요...
님도 연우도....힘내시길....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