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에 대하여 (라틴어 원전 완역본) -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한 세네카의 가르침 현대지성 클래식 67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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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자식들에게는 죽음을, 자신에게는 빈곤을, 가문에는 몰락을 가져옵니다. 미친 사람이 자신의 광기를 인정하지 않듯, 분노한 사람도 자신의 분노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분노한 사람은 가장 가까운 이들의 적이 되고, 가장 소중한 이들에게는 기피 대상이 됩니다. 그들은 법도 무시한 채 오직 해칠 궁리만 하며, 사소한 일에도 동요하고, 그 어떤 말이나 호의도 다가갈 수 없게 됩니다. 모든 것을 힘으로 해결하려 들며 기꺼이 칼을 들고 남을 해치거나 자신을 상하게 합니다. (...) 분노가 지배하지 못하는 정념은 없습니다. (P.113)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과거에는 분명 세네카의 철학이 그리 마음에 닿지 않았는데, 아니, 오히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살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마흔이 넘어 만나는 세네카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특히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는 한마디 한마디가 맞는 말 같아서 끄덕거리느라 목이 다 아플 정도였다. 우리가 흔히 세네카 전집이라 부르는 『화에 대하여』와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를 한꺼번에 만났는데, 정말 살며 마음에 담아두면 좋겠다 싶은 내용이 가득했다. 특히 이번에 현대지성에서 출간된 『화에 대하여』와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는 라틴어 완전 완역본이라 보다 정확하고 명료하게 세네카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니, 꼭 한번 만나보시길 추천해 드린다. 

 

사실 처음 『화에 대하여』를 만나면서는 내가 여전히 세네카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자신의 손에 상처를 입히면서까지, 그런 다음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적을 심하게 공격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분노라는 무기는 바로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 시작하면 멈추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p.109)”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분노는 결국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상태라서, 스스로를 좀먹는 일임을 깨달았다. 사실 요즘 분노를 잘 조절하지 못하는 한 사람을 바라보며 딱하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었는데, 문득 그러한 모습들이 떠오르며 세네카의 가르침을 부지런히 익혀 나는 그런 모습이 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게 되더라. 타인의 모습에서 불편함을 느꼈을 때 그저 싫다고 피해버리던 나인데, 세네카 전집을 읽으며 나는 내 안의 화를 잘 다스려봐야겠다, 내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야겠다를 수십 번 다짐하게 된다. 아마 이조차 조금은 나이를 먹고, 조금은 커가고 있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화에 대하여』에서 세네카는 화라는 존재는 모든 것을 능가하는 최고의 악이며, 무지와 오만 등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가장 마음에 와닿은 표현은 애정조차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표현이었다. 또 반대로, 모든 미덕은 처음에는 약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강해지고 견고해진다는 말이 무척이나 힘을 주었다. 

 

화를 미리 살펴 폭발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며, 인간이기에 그것을 다스리고 억제해야 한다는 그의 이론을 읽으며, 이제야 겨우 이성의 적이 “화”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결국, 사람이 비이성적인 영역에 들어서는 것은 감정을 다스리지 못함이라는 이 단순한 이야기를 이제야 마음에 제대로 담아본다. 그러며 생각한다. 화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악마인지를 알면서도, 화의 반대편을 생각하지 못하고 살아온 나는 얼마나 무지한지를. 하지만 이제라도 세상이 나를 화나게 한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기 전에, 나 스스로 그런 화에 휩쓸리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아야겠다고 스스로를 토닥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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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단 댓글도 죄가 되나요? - 집단 따돌림부터 인터넷 댓글까지, 어린이가 알아야 할 법 노란돼지 교양학교
정관성 지음, 홍수진 그림 / 노란돼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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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린이들도 SNS를 하고, 부모보다 훨씬 '잘' 전자기기들을 사용한다. 그뿐이 아니라 우리 때보다 훨씬 다양한 사회관계를 이루며 살아간다. 하긴, 강산도 10년이면 변한다던데 30년 전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와 같기만 할까. 그래서 아이의 성장에 맞추어 엄마도 자라야 하고, 세상이 변하는 것을 부지런히 따라 공부해야 한다. 이제 아기 티를 벗고, 조금 더 큰 어린이로 탈바꿈하는 지금,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꼭 필요한 책이란 생각이 드는 『무심코 단 댓글도 죄가 되나요?』를 만나보았다. 

 

『무심코 단 댓글도 죄가 되나요?』는 집단 따돌림이나 인터넷 댓글 등, 우리 아이들이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 맞춘 “어린이가 알아야 할 법”을 모아놓은 책으로 아이도 부모도 꼭 한번 만나보길 추천해 드리는 책이다. 법이 우리의 울타리이려면 우리가 법안에서 살아야 하듯, 우리 아이들이 모르고 위법을 저지르는 상황을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약속의 성립, 미성년자의 법률행위, 학교폭력에 관한 법률, 명예훼손이나 재물손괴 등 우리 아이들이 모르면 노출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무척이나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기 때문에 무척 유익하다. 

 

『무심코 단 댓글도 죄가 되나요?』의 각각 챕터는 먼저 짤막한 동화로 아이들의 호기심을 이끌어준다. 뒤에 이어지는 설명과 예시 등을 통해 더욱 깊은 이해를 주어 좋았다. 엄마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읽은 부분은 “장난인 줄 알았어요”. 아이들이 장난삼아 누군가를 괴롭히고, 이에 동조 혹은 방관하는 아이들을 다룬 이야기였는데, 직접적인 가해나 협박 등뿐 아니라 그림자처럼 대하는 것, 소문 등에 동조하는 것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잘 다루고 있어 무척 유익했다. 더욱이 단순히 '법'에 저촉되는 것 이상, 타인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음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어 더욱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읽은 부분은 학생들의 권리와 선생님의 권리에 대한 부분이었다. 엄마와 이야기 나누었던 부분들을 기억해내기도 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배우며 메모를 하는 등 열심히 책을 읽더라. 언제인가 우리 아이가 “엄마, 어떤 애가 선생님께 '우리 아빠가 돈도 더 잘 벌고, 선생님 신고도 할 수 있데요.' 했는데 이거 나쁜 말이죠.”라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10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저런 말을 사용하고, 비속어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나쁜 말'이라 느낄 어감을 사용했다는 것이 무척이나 충격적이었기에, 이런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던 것이 꽤 기억에 남았었나 보다. 그 외에도 모르고 한 행동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등, 아이들이 직접 느끼고 배우는 내용이 무척 많았다. 

 

'어린이가 알아야 할 법'이라는 부제를 달았지만, 『무심코 단 댓글도 죄가 되나요?』는 아이들이 배워야 할 사회적 규범까지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에게 억지로 법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이 생활 속에서 만나는 여러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내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을 모두 배울 수 있어 참 좋았다. 또 모른다고 하여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음을 명확히 배우기도 했고.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는 법을 다양한 사례, 재미있는 일러스트 등으로 상세히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 『무심코 단 댓글도 죄가 되나요?』. 우리 아이들이 법을 더 잘 알고, 법안에서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꼭 한번 읽어보길 추천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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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스쿨 1~10권 세트/아동도서+스크레치북 증정
학산문화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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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름방학의 끝물이다. 평소 같았으면 여기저기 놀러 다니느라 바빴던 시간이었겠지만, 올해는 아이의 첫영성체를 준비하느라 가까운 곳으로만 여행을 다닌 것 같다. 그 대신 집에서 평소 보고 싶었던 애니메이션도 많이 보고, 책도 엄청 많이 읽었다. 특히 아이가 하고 싶어 했던 “재미있는 책”을 탑처럼 쌓아놓고 읽기를 꽤 자주 했다. 어떤 분들은 왜 도움 안 되게 재미 위주의 책을 읽게 하냐 하겠지만, 어린시절 만화책을 쌓아놓고 책을 읽던 시절이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알기에 아이에게도 그 책 읽는 즐거움을 빼앗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그 책 탑 중에 아이가 가장 격정적(!)으로 읽었던 책! 『공포스쿨』을 소개한다. 특히 『공포스쿨』은 내가 어린시절 책 탑을 쌓게 했던 학산문화사의 책이라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공포스쿨』은 현재 10권까지 출시되어 있으며, 우리는 5권까지 읽은 상태.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형태기 때문에 앞의 책을 읽지 않아도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어 형제가 많은 집에서 다 같이 읽기에도 좋고,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 소재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어서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똥, 오줌, 방귀를 좋아하던 애들이 조금 더 크면 귀신 이야기를 좋아하더라. 아무도 안 가르쳐도 그렇게 되나 보다. 우리도 '분신사바'하느라 연습장에 구멍을 그렇게 냈지.) 

 

『공포스쿨』의 각 권은 다 여섯 가지의 에피소드들이 이어진다. 그래서 하루에 한 이야기 정도를 읽기에 적당한데, 어떤 에피소드는 어른이 읽기에도 살짝 무서운 느낌이 있으니 너무 어린아이들보다는 초고학년부터가 가장 적당하리라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글밥이 대단히 많은 편은 아니고, 군데군데 코난이 떠오르는 일러스트들이 그려져 있어, 초등학교 3학년 정도면 읽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먼저 『공포스쿨』의 첫 권은 “얼굴 없는 아이”. 이 책에서는 물가에서 주로 목격되는 유령 이야기, 벽을 가득 메운 “엄마 꺼내주세요”라는 글씨를 발견하는 빨간 크레용의 전설, 몸이 이상할 만큼 길어지는 이상한 고양이, 사랑이 이루어지게 도와주는 이메일인 사랑의 주문, 아무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는 스기사와마을, 미국에서는 슬렌더 맨이라 불리는 나노카짱의 이야기 등을 만나볼 수 있다. 『공포스쿨』의 2권에서는 악마를 불러내는 찰리 게임, 원한으로 아이들을 잡는다는 히키코 씨, 데스노트 같은 죽음의 블로그, 병균으로 뒤덮인 저주의 구름, 무서울 정도로 빠른 도망치는 남자 등을 만날 수 있다. 어떤 이야기는 엄마도 어린 시절 어디선가 읽었던 이야기 같아서 아이와 수다 떨 거리도 많았고, 편집이나 문장이 몰입력 넘쳐서 아이와 같이 읽으며 소리를 지르는 순간도 있었다. 아이와 같이 이런 이야기를 읽는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고 추억이 되기도 했다. 

 

4권과 5권은 조금 더 세련되진(?) 공포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기에 엄마도 새로운 재미에 빠져들 수 있었다. 앞의 이야기들은 약간 엄마도 읽었던, 예상이 가능한 스토리였다면 4권과 5권은 조금 더 요즘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행운의 편지와 정반대인 불행의 편지, 바다에 사는 닌겐, 목 없는 폭주족의 헬멧, 숲속 깊은 곳을 다니는 정체불명의 노선인 환상의 지하선로, 후드를 뒤집어쓰고 다니는 얼굴 없는 아이 등의 이야기를 보며 요즘 아이들이 무서워한 이야기들, 요즘 아이들의 관심사 등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유달리 무서웠던 여름, 엄마는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시리즈를, 아이는 『공포스쿨』 시리즈를 읽으며 여름을 났다. 꽤 무서운 이야기들에 움츠러들기도 했었지만,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를 또 한 번 느끼게 했던 책이 아닐까 싶다. 점점 발전하는 공포 이야기에 6권을 기다리게 해준 『공포스쿨』! 초등학생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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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디바이디드 : 온전한 존재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4
닐 셔스터먼 지음, 강동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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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세상의 이치야. 

언와인드를, 사회가 추는 멋진 부정의 가보트를 보게나. 언젠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보며 “세상에, 우리가 무슨 짓을 한거지?”라고 말하는 날도 오겠지. 그건 확실해. 하지만 나는 그 날이 금방 오리라고는 믿지 않아. 그때까지 춤에는 음악이 필요하고, 합창단에는 목소리가 필요해. 그 목소리를 내게. (p.426)

 

 

어느새 “언와인드 디스톨로지”의 마지막 책, 『언디바이디드』를 읽었다. 여름이 무르익었을 때 이 시리즈의 첫 권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밤이면 서늘한 감이 드는 8월의 중순. 그런데 감히 말하자면, 유독 더위가 기승을 부린 이번 여름이었다지만 나는 “언와인드 디스톨로지”와 함께 보내며 심리적으로 시원을 넘어, 서늘함까지 느꼈던 것 같다. 인간의 끝없는 이기심, 인간 생명의 가치, 생명의 존엄성 등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던 시리즈의 마지막 여정, 『언디바이디드』를 소개한다. 

 

앞의 책들도 그러했지만, 『언디바이디드』를 읽는 내내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졌고, 과연 나조차 선한 사람의 영역에 들 수 있는지 고민했다. 그러나 내 스스로 나에게 의심을 품을 무렵, 『언디바이디드』에서는 모두의 작은 노력들을 모아 결과를 만들어낸다. 평소 좋아하는 말인 “우공이산”처럼, 작은 사람들이 모여, 작은 힘을 내어 세상을 변화해간다. 어쩌면 이 시리즈를 통해 작가가 진짜 하고 싶던 말은 이것이 아니었을까. 큰 권력을 쥔 사람들이 헛된 욕심으로 세상을 나쁘게 이끌어가도, 우리는 제자리에서 인간다움을 지키자는 것. 

 

『언디바이디드』에서는 여러 사건들이 유기적으로 일어난다. 아이들의 집합체들은 해체되어 재조립되는 '레고'가 아닌 사람으로서 목소리를 내며 견고해보이던 세상에 조금씩 균열을 만든다. 결국 그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찰랑거리게 되는데, 그 바다를 이루는 물방울들은 모두 전문가가 아니다. 그저 미성숙한 아이들이고, 평범한 사람들이다. 잔혹했던 사건들을 이토록 점잖게(?) 마무리 지어도 되나 싶지만, 어른보다 더 성숙하게 용서하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언디바이디드』의 아이들은 스스로가 온전한 존재임을 증명하려고 애썼다. 사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두고 울음조차 제대로 나지 않았던 까닭은, 과연 우리인들 아이들에게 그러한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가, 때문이었다. 스스로를 헤치려하던 부모를 용서하는 아이들을 보며, 또 다른 희생을 강요하며 소리치는 군중을 보며, 과연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아이인지 고민하기도 했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만한 자격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 모두가 살아남는다면 언젠가는 그런 시간이 올 수도 있다.(p.555)”는 문장을 읽으며 우리도 아직은 기회가 있는 세상을 붙잡아두려면 얼마나 절실한 노력이 필요한지를 생각해보기도 했다. 

 

사실은 잊고 살았다. 인간의 존엄성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또 둔감해졌다. 인간의 탈을 쓴 괴물들의 뉴스에서. 그러나 “언와인드 디스톨로지”를 읽으며 인간답게 사는 것에 대해, 익숙하고도 낯선 이 세계에 대해 두려울만큼 생생히 떠올리게 되었다. 이 시리즈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에 대해, 인간으로서의 의미에 대해 큰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만약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여전히 둔감한 채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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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는 날 - 존엄사의 최전선에서, 문화인류학자의 기록
애니타 해닉 지음, 신소희 옮김 / 수오서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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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영혼을 위해 우리가 입을 모아 낭송하는 동안, 엘리스는 어머니의 몸 위에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의 영혼을 풀어주려나느 듯 손가락을 펼쳐 머리에서부터 온몸을 쓸어 내렸다. 낭소잉 끝나날수록 손놀림도 점점 더 길고 묵직해졌다. 일종의 정화과정이었다. 죽음이 종말이 아니라 하나의 여정이라면 엘리스는 어머니가 무사히 여행하기를 바랐다. (p.276)

 

얼마 전, 『미 비 포유』를 다시 읽으며, 진정한 사랑 등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했었지만 가장 깊이 생각했던 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존엄사”. 내가 조금 더 어릴 때에는 『미 비 포유』를 읽으며 사랑이 먼저 눈에 보였다면, 마흔이 넘어 읽은 『미 비 포유』에서는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올바른 정신 상태의 삶” 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더라. 그래서일까. 『내가 죽는 날』을 받아들고, 읽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과연 나는 이 책을 감정없이 읽을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 

 

『내가 죽는 날』은 문화인류학자인 애니타 해닉의 글로, 의료진과 함께 삶의 마지막 순간을 동행하는 참여관찰자로서 가까이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책이다. 그렇다보니 단순히 누군가의 죽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배경, 법적 사회적 쟁점, 개인의 감정과 신념, 문화적 차원에서의 의미까지의 존엄사를 다루고 있어, 다소 묵직한 점이 있기도 하고 또 죽음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기도 하는 깊이있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읽기 어려운 책은 절대 아니다. 마치 소설을 읽듯 편안하게 읽히지만, 그 안에서 죽음에 대해, 진정한 삶의 영역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보고, 현재의 내 삶까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존엄사에 대해 내가 가졌던 가장 큰 부정적 생각은 책을 50장도 읽기 전에 한 문장 앞에 드러났다. “자기 삶을 온전히 자신만의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 죽음의 과정과 시기를 선택할 권리를 원하되 그 결정이 다른 사람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기 않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 이들에게도 공감과 관심, 그리고 그들의 관점에서 생각하려는 선의가 주어져야 마땅하다.(p.48)” 사실 나는 한 사람의 생명이 딱 그 사람만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왔기에 존엄사를 반대해온 사람이다. 가령 나의 목숨은 내것이겠지만, 나의 부모님이나 아이를 생각하면 오직 나만을 생각하여 선택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내가 죽는 날』의 이 문장을 읽으며 나의 생각이 너무 단편적인가, 아직 닿지않은 문제의 것이라 막연하게만 생각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또 내가 평소 조력사망에 대해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무척이나 상세하게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는데, 『내가 죽는 날』을 읽으며 내가 그동안 너무 막연히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점들을 깨닫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나는, 종교적 관점에서도 개인적 신념에서도 조력 사망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내가 죽는 날』을 통해 이미 조력사망은 세계 여러곳에서 합법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우려하는 부분들에 대한 어두운 측면 대신 보다 의학적인 접근, 인권적인 접근이 이뤄지고 있음에 나를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내가 『내가 죽는 날』을 읽으며 가장 오래 머물러 있던 곳은 “건너가다”라는 장이었다. 우리가 농담처럼 사용하곤 하는 “가는데 순서없다”등의 말들 뒤에 숨겨진 죽음의 불확실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 임종 전의 용서와 작별, 추모와 애도 등을 보다 계획적으로 맞이하게 하는 측면에서는 인간으로서 존엄한 상태에서 준비된 죽음을 맞을 수 있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사실 『내가 죽는 날』을 다 읽은지 며칠이나 지났다. 그런데도 선뜻 리뷰를 남길 수 없었던 것은 긴 세월 내가 가지고 있던 신념을 마구 흔든 책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나는 결론을 짓지 못했다. 그러나 점점 생명이 길어지고 여러가지 독한 질병들이 발생하는 요즈음, 존엄사를 완전히 미래의 이야기로 미뤄둘수만은 없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내가 죽는 날』은, 나에게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생각을 여는 책이 되고야 말았다. 물론 여전히 나는 그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완전히 닫힌 문이 아닌 채 존엄사에 대해 생각을 열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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