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유채꽃 둘레책방 4
정도상 지음, 휘리 그림 / 노란상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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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구멍이라도 나타나면 그곳에다 불을 피워 연기를 넣었다. 연기가 제대로 빨려 들어가면 동굴이 있는 것이고 아니면 그저 단순한 구멍에 불과했다. (p.118)

 

옴팡밭에 도착한 봉달이는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막았다. 옴팡밭에는 기관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유채꽃 위로 아무렇게나 쓰러진 사람들의 모습은 정말 처참했다. (p.175)

 

 

아이가 이 책을 잘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이 사건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부터 걱정이 되었던 것.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 오롯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아이에게 제주4·3사건에 대해 설명을 먼저 해주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많이 고민하다가 “총이랑 칼을 든 사람들이 무기가 없는 시민을 때리고, 죽인 슬픈 사건”이라고 설명해주었더니 “너무 공평하지 않은 싸움이다”라고 말해 나를 놀라게 했다. 맞다. 너무 공평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이가 이해하지 못해도 꾸준히 노출하는 게 맞는다고. 그래야 공평하지 않은 일이, 부당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고.

 

그러나 나의 우려와 달리 아이는 이 책을 온전히 받아들인 것 같다. 작가님께서 책의 서두에 제주 4.3사건에 대해 워낙 잘 설명해주시기도 했고, 문제 자체가 다정하기도 했기에 아이가 사건에 대한 지식이 없이도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혹시 나처럼 주제가 너무 무거운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 부모님이 계신다면,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게 잘 써주신 책이니 걱정 말고 주셔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잔잔하게 흐르는 동화 속에, 잘 스며든 역사가 아이들에게도 교훈을 전달하는 좋은 책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미군 지프에서 초콜릿을 얻어먹다가 당산나무의 가지가 부러진 것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왔샤부대'의 내용을 읽으면서는 어른들의 모습을 모방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슬픈 현실이라 암담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제주4·3사건이 한층 더 서글픈 느낌이 들었다. 사실 제주4·3사건과 관련한 책을 몇 권 읽었는데, 아이들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니 그 어떤 책보다 묵직하게 다가왔다. 일반 동화책처럼 접근하기 쉬운 내용인데도, 꽤 깊은 내용을 담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무겁지 않은 전개로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제주4·3사건에 대해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를 그저 '아름다운 여행지'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기에,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더욱 크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역사를, 우리나라가 지나온 시간들을 보고, 나아갈 방향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준 책이라고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전쟁이나 이념싸움 등이 아이들 눈에는 얼마나 생경하고 버거울까를 여러 번 생각했다. 그야말로 어른들의 싸움에 아이들을 방패 삼는 것은 아닌지, 무기 삼는 것은 아닌지 하고. 어쩌면 그래서 아이도 어른도 이렇게 좋은 책들을 계속 읽으며, 생각을 키우고 견문을 넓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유채꽃 피는 계절, 다시는 그 누구의 마음에도 현실에도 '붉은 유채꽃'이 피는 일은 없기를 간절히 바라보며, 꼭 필요한 읽기였다는 생각을 해본다. 더 많은 곳에서 이 책이 읽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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