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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엄마와 딸의 10일간
이가라시 다카히사 지음, 이영미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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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가족이 사고로 서로간의 영혼이 뒤 바뀌는 내용의 소설이다. 사실 이런 소재를 사용한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영화, 드라마, 만화 등등. 일일이 새본다면 아마 수백 개는 될 법하다. 그 중에는 이야기를 잘 만들어서 대중적으로 성공한 이야기도 있다. 작년에 화제가 된 길라임이 등장하는 현빈, 하지원 주연의 시크릿 가든이 그 예다. 서로 다른 생활을 하던 사람이 서로가 뒤 바뀌게 된다는 것은 매력적인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이 책의 전작인 아빠와 딸의 7일 간은 소재를 잘 사용한 덕분에 매력적인 소설로 느껴졌다. 그 소설에서는 아버지와 딸이 기차 사고로 서로의 영혼이 뒤바뀌게 된다는 내용인데, 아빠와 딸의 관계를 잘 조명하고 남자와 여자간의 성 차이를 부각해 나름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서로가 뒤바뀌다 보니 당연히 애로사항이 발생하고, 각자의 인생이 있을 태니 갈등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소설 안에서도 여러 애피소드가 균형 있게 어우러져 걸작은 아니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수작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몇 년 만에 출간된 후속작인 아빠와 엄마와 딸의 10일간’. 중고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했고 전작을 괜찮게 봤기에 구매했다. 저렴한 가격과 손에 딱 맞는 사이즈 그리고 한 페이지를 꽉 채우는 활자는 마음에 들었지만, 마음에 든 건 그것 까지였고 전작과 비교하고 소설 자체로만 보더라도 실망스러웠다.


소설의 스토리는 전작에서 이 년이 흐른 뒤다. 여고생이었던 딸 고우메는 대학생이 되고 새로 시작 될 캠퍼스 라이프를 준비한다. 아버지는 전작의 사건 덕분에 한 부서의 부장까지 되지만, 출세와는 거리가 먼 부서였고 덕분에 예전보다 더 한가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던 가족이 도시 한복판에서 벼락을 맞고 또다시 몸이 바뀌게 된다. 거기다 이번에는 엄마까지 포함되었다. 가뜩이나 꼬인 일에 새로운 캠퍼스 라이프와 회사 안에서의 음모와 같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소설은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다. 이유는 여러 개가 있지만, 우선 이 책에 전작이 있는 것이 가장 문제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전작이 있고 당연하게 전작과 유사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당연히 전작을 읽은 사람들이다. 반복이 소설의 재앙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책은 유사한 사건을 반복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서 엄마를 포함했지만, 새로 갈등할 만한 요소가 딱히 없다. 남녀 간의 신체구조 차이로 일어나는 갈등은 전작에서 이미 써먹어 버렸다. 엄마는 가정주부이고 가정주부는 나름의 애로사항이 있겠지만, 소설로서의 재미를 주기에는 어렵게 느껴진다.


소설의 사건들도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전작에서 회사 안에서의 사건 사고는 소설의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였지만, 이 소설의 경우에는 이미 그런 사건을 겪은 딸이 다시 아버지의 몸으로 들어가 딱히. 긴장감을 느껴지지 않는다. 정신은 이십대 초반의 아가씨인데 행동은 평범한 직장인보다 낫다. 여대생이 된 엄마의 시점은 너무 시시콜콜하고 평범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가정주부가 된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다.


소설의 화자가 연달아서 바뀌는데, 한 장면을 여러 시점에서 보여주는 것은 각 등장인물의 심리를 폭넓게 이해하기 이전에 지루하게 느껴졌다. 각자의 상황을 묘사하는 것만으로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정작 필요한 묘사나 사건의 진행은 빈약하고 급 전개가 되었다. 결말도 얼렁뚱땅 끝나버려서 이렇게 끝나나 싶을 정도였다. 형보다 못한 아우라는 말을 딱히 신뢰하지는 않지만 이 소설은 그 말을 증명하는 작품이 돼버렸다.


이번에 새로 개봉하는 영화인 아빠는 딸은 이 소설의 전작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무한도전의 멤버 중 하나인 박명수가 까메오 출연하는 것으로 잠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일본에서는 드라마로 만들어지기 까지 했기에 국내에서의 인지도에 비하면 꽤나 유명한 작품이라는 이야기다. 듣기로는 원작자가 영화를 보고 극찬했다는데, 극장가에 개봉해서 흥행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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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풀꽃도 꽃이다 - 전2권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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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으로 한국 문학에 한 획을 그은 조정래 작가의 신작이다. 대표작인 태백산맥은 내가 고등학생일 때 읽은 바 있고 비교적 최근작이었던 정글만리도 군인시절에 재미있게 읽었다. 평소에도 사회적인 흐름이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작가인덕에 이번에도 그는 한국의 교육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소설을 가지고 나왔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공부에 미친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소설이어서 읽는 내내 학창시절에 좋지 않았던 기억이 떠오를 정도였다.


조정래 작가의 특징은 사회적인 문제를 소설적 형태로 풀어내기 위해서 다양한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그들이 겪는 다양한 사건을 통해서 작가가 말하는 바를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흔히 소설에서 말하는 주인공이나 중심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나마 소설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고등학교 교사인 강교민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가 겪는 일단의 사건이 끝나면 다른 인물인 B의 시점으로 넘어가서 새로운 사건이 시작되고 또다시 사건이 끝나면,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 새로운 사건이 등장한다.


한국 교육의 문제를 고발하려는 작가의 의도 덕분에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많은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정상적인 상황인 사람이 없다. 부모들은 애들 교육에 미쳐있고 애들은 부모의 등살에 밀려서 힘겨워한다. 그것도 아니면, 학교에서 왕따나 은따 같은 치명적인 사건에 직면에 있다. 이 소설만 보면 한국의 10대가 이런 지옥 속에서 살아가는 건가 싶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작가는 한국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서 문학적인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이러한 묘사는 작가가 고발하는 수많은 문제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와 닿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읽으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조정래 작가가 요즘 10대의 말이나 생각 등을 묘사하는 것을 힘들어 했을 것 같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예전에 정글만리를 읽을 때에도 느꼈던 것이다. 거기에서는 20대간의 연애 장면이 너무 어색해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이번에도 역시 어색했다. 그러나 일흔 살이 넘은 문학계의 원로가 어린 학생들의 말투를 묘사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존경받는 원로로서 여전히 젊은 세대와 호흡하려고 하는 것은 존경받을 만한 일이다.


수십 년 동안 글을 써온 작가의 작품이기에 흡입력 있는 문체란 어떤 것인지 예시를 보여주는 듯하다. 두 권 분량의 책을 금방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문체의 힘이 있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메시지 또한 명백해서 따로 생각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내가 조정래 작가의 책을 처음 읽어보는 것이었다면, 최소한 태백산맥을 읽어보지 않았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태백산맥을 읽었고, 조정래라는 작가가 이정도 소설을 쓸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어쩌면 나는 더 이상은 예전과 같은 작품을 쓸 수 없다는 한 작가의 체념을 읽은 것일 지도 모르겠다. 정글만리를 읽을 때는 이러한 생각은 흐릿해서 형태조차 없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에 느꼈던 생각이 어떤 것이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베스트셀러가 될 목적으로 쓰여 진 책들이 있다. 이런 책들은 주로 팔리는 작가들이 쓰는 책들이다. 그들은 어떻게 쓰면 책이 잘 팔리는지 알고 있다. 자신의 유명세+적당한 문체+적당한 소재를 더하면 유명작가라는 것 때문에 책이 어느 정도 팔리고는 한다. 나는 평소에 이러한 작가들을 싫어해 왔다. 그들 덕분에 다른 독자들에게 읽혀야 될 책들이 팔리지 않는 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 책이 그런 목적으로 쓰여 진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취재와 노력을 통해서 탄생한 것이 이 책일 것이다. 그렇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실망감. 그건 내가 태백산맥을 읽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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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 1
구범진 지음 / 민음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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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는 흥미롭다일찍이 문명이 발달하고 수많은 민족이 뒤엉켜서 수많은 전쟁이 일어났기에 이야기는 풍부하고공부할 만한 것도 많다중국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드라마소설이 한가득 한 것은 그들의 역사가 그만큼 풍부하고 많은 이야기로 채워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의 수많은 왕조 중에서 나는 청나라에 관심이 많은데그 이유는 예전에 읽었던 김용 선생의 무협소설인 녹정기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이다중국에서는 국보급 작품으로 몇 년에 한 번씩 드라마로 새로 제작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는 소설이다그 소설은 청나라 그중에서 중국 최대의 성군이라고 불리는 강희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소설의 사건이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이번에 읽은 청나라키메라의 제국을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우선 말할 것은 이 책은 시중에서 유통되는 역사책과는 다르게 논문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다어떠한 주장을 했을 때단순히 그것을 서술하는 것을 넘어서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서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는 식이다이런 논문은 거의 처음 읽어 보는 것이었지만이 책의 저자는 논문 형식에 부담감을 느낄 독자들을 배려해서 딱딱한 문체를 지양하고 쉽게 설명하려 노력한다역사책 치고는 짧은 분량이기에 역사를 묘사하는 부분은 흥미로웠지만아쉬울 정도로 간략하고 짧았다대신에 저자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해서 기존의 역사인식과는 다른 새로운 주장을 설명한다내가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편이어서 그의 주장이 파격적인 것인지는 파악할 수 없지만기존 세간의 인식과는 다른 면을 보여주는 것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어느 정도 분량을 할애해서 청나라의 성립즉 만주 벌판의 여진족의 족장 중 하나였던 누르하치가 세력을 규합해 나라를 건국하고 뒤이어 등장한 뛰어난 지도자들을 거쳐서현재의 중국의 영토보다 더 큰 세계제국 청나라가 탄생하는 과정을 묘사한다비록 많은 생략을 하지만저자가 묘사한 청나라의 성립 과정은 거대 제국의 탄생을 묘사하는 데는 충분하다그러나 이런 묘사는 저자가 뒤이어 제시할 주장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이 책은 청나라가 어째서 키메라인지를 설명하기 위한 책이니까.


키메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로 여러 동물들의 신체가 혼재된 괴물이다그 뜻 말고도 가진 뜻은 한 대상에 서로 다른 타인의 유전자 혹은 요소가 포함된 존재라는 뜻이다예를 들자면쌍둥이들이 어머니의 체내에서 한쪽이 다른 한 쪽을 흡수하는 경우가 있다그렇게 태어난 태아의 몸 어딘가에는 흡수한 형제의 DNA를 가지고 있다이 DNA는 그 몸의 주인과는 전혀 다른 DNA로 주인의 DNA와는 전혀 섞이지 않고 같은 몸에서 공존한다.


저자는 이러한 키메라의 특징이 청나라를 설명하는데 탁월한 말이라고 말한다청나라를 건국한 만주족그리고 뒤이어 그들의 제국에 편입된 유목민족인 몽고인마지막으로 청나라에게 정복된 한족과 다양한 민족이 서로 섞이지 않고 공존한 나라인 청나라는 키메라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나라인 것이다.


그에 대한 근거로 저자가 제시하는 근거는 바로 만한일가(滿漢一家)라는 청나라의 정책을 부정하는 것이다만한일가란 청나라가 국가내의 대다수를 이루는 한인을 회유하기 위한 정책으로 조정내의 관료의 대다수를 한인에게서 기용하는 정책이다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만한일가가 사실상 허울 좋은 말에 지나지 않았음을 주장한다그에 대한 근거는 바로 청나라의 고위관료의 숫자 중에서 만주족의 비율과 한족의 비율을 비교하는 것그리고 그 비율은 만주족의 관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청나라의 지배자들은 대놓고 한인을 차별한 것은 아니지만중요한 위치에는 만주족에만 맡겼고이것은 만주족은 철저하게 한족을 지배의 대상 그리고 타자로서 인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저자는 새로운 주장을 펼치는데청나라가 조선을 상당히 우대했다는 것이다앞에서 말했듯이 청나라에서 고위관료는 거의가 만주족 출신으로 이루어진다그것은 외교관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청나라가 중요하게 여긴 이웃나라(몽고티베트)같은 경우에는 만주족 출신의 외교관을 보냈고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국가(베트남류쿠)같은 나라에는 한인 출신의 외교관을 보냈다그리고 조선에 파견되는 외교관은 거의가 만주족 출신이었다물론 단순히 파견 온 외교관이 어디 출신인 것만으로는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그럼에도 저자의 말이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청나라가 중요한 외교 현장에서는 철저하게 한인을 배제하는 것을 일관되게 유지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러한 청나라의 태도를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조선에서는 폐쇄적인 성리학이 극도로 발전해 사회의 분위기를 둔화시켰고훗날에는 구한말의 위기를 초래하고 만다.

 

책은 자주 읽지만정통적인 학문과는 거리가 먼 문학 쪽을 주로 읽기에 이런 식으로 주장에 대한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는 방식의 논리적인 글은 읽어 본 적이 거의 없다이 책은 나에게 논리적인 글이 어떤 재미를 주는지 그리고 논리가 독자를 설득하는데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역사에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그러나 거기에 더해져야 할 것은 바로 논리이다논리를 배제한 체 상상력만으로 쓰여 진 역사는 위험하다그러한 역사는 대중의 입맛에 맞는 말만을 제시 할 것이고 대중의 입맛에 맞는 역사는 위험한 사상을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주장을 늘어놓는 자(예를 들면 김진명 같은)를 외면하고 그들의 달콤한 말을 무시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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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감시원 코니 윌리스 걸작선 1
코니 윌리스 지음, 김세경 외 옮김 / 아작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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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에 외국의 판타지, SF소설을 번역해서 시리즈로 출판하고 있는 아작이라는 출판사가 있다. 몇 년 전의 베스트셀러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노인풍의 표지 디자인이 특징인데, 디자인에 맞춰서 무거운 소설보다는 밝고 가벼운 소설들을 출판한다. 그 시리즈 중에 한 권인 정신병원을 탈출한 프레야 여신을 읽어 본적이 있는데, 그 소설의 경우에는 소재는 특이하고 좋았지만, 소설 자체는 재미없는 편이었다.


SF와 판타지를 좋아하는 편인데도 코니 윌리스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었다. 이번에 읽게 된 책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은 이 작가가 미국 SF소설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가 읽은 화재 감시원은 작가가 상을 수상한 수많은 소설 중에서 고른 선집이고 이 책뿐만 아니라, 수상선집이 한권도 있다. 좋은 글을 쓰는 실력뿐만 아니라 꾸준히 글을 쓰는 성실함도 겸비한 작가라는 뜻이었다.


화재감시원은 다섯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고 각기 분위기가 다르다. 과학이론을 소설로 풀어놓은 복잡한 이야기에서, 핵전쟁이후의 일상을 묘사한 우울한 소설, 할리우드에 있는 사기꾼을 폭로하는 잡지기자의 활약상을 담은 경쾌한 활극도 존재한다. 수십 년이라고는 하지만 한 작가가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소설을 쓰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 책을 읽고 코니 윌리스라는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의 다른 책도 읽어볼 생각이다.


5편의 단편은 각각의 분위기가 다르다. 첫 번째 단편인 리알토에서는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과학이론을 소설적 상상력으로 완성시킨 작품으로 무슨 이론을 바탕으로 완성 된지 모르기에 어떤 이야기를 다루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이 등장해서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바로 다음부터는 내가 좋아할 만한 소설들이 등장했다.


나일강의 죽음은 추리소설의 거장인 애거서 크리스트의 동명의 소설을 오마주한 작품이다. 그렇다고 추리소설인 것은 아니고 죽음이후의 풍경을 은유화한 소설이다. 사후세계에 대한 사상이 발달한 이집트에서 이집트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태마로 소설이 이어진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저 길을 따라가는 평면적인 구성의 소설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다는 것이었다.


화재감시원은 코니 윌리스의 가장 유명한 단편 소설이고 이 소설의 세계관은 그의 다른 소설인 둠스데이나 개는 말할 것도 없는 같은 소설로 이어진다. 타임머신을 다룰 수 있는 미래에 역사학자들이 역사의 한 순간에 들어가서 역사의 실제 모습을 체험한다는 줄거리다. 주인공은 역사학자 지망생이고 시험을 압두고 2차 대전 시절의 영국의 한 성당으로 가서 당시 독일의 공습으로부터 성당을 지키기 위해서 모인 자원봉사자의 일원이 되어 성당을 지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흔히 타임머신을 다룬 소설들은 당시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게 되고 그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플롯이 대부분인데, 화재감시원에서는 주인공이 가진 한계가 명확하게 제시된다. 히틀러를 죽이지 않는 다면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주인공이 할 수 있는 일은 화재감시원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하면서 성당을 지키는 것뿐이다. 이런 명확한 한계가 이 소설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고 생각된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마지막에 실린 소설인 내부 소행은 이 소설집의 소설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이 경쾌한 활극의 설정은 꽤나 흥미롭다. 우리나라에도 있는 사이비 목사들처럼 미국에도 자신이 고대의 영혼혹은 신과 접촉했다고 주장하는 사이비 사기꾼들이 많다고 한다. 대부분은 당연히 사기꾼이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기꾼은 놀랍게도 실제 영혼과 접신하는 인물이다. 문제는 그 영혼이 그런 사기꾼을 가장 경멸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신도들을 모은 자리에서 신도들이 멍청한 얼간이에 지나지 않다고 소리치는 장면은 재미있다. 그런 설정뿐 아니라 이 소설에서 재미있게 느껴졌던 건, 캐릭터들이다. 어떤 사건을 파헤치는 소설의 구조답게 탐정 역할을 하는 주인공과 조수 역할을 하는 등장인물이 등장하는데. 스스로를 과학적 회의주의자라고 자부하는 주인공과 전직 미녀 여배우였던 조수의 캐릭터는 매력적이었다.


화재감시원이 출판된 이후 이 작가의 책들이 연달아 출판되고 있다. 화재감시원을 재미있게 읽은 나에게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도서관에 가게 되면 다른 책을 찾아서 읽어 볼 생각이다. 코니 윌리스라는 작가의 이름을 확실히 알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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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허벅지 다나베 세이코 에세이 선집 1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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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 후, 오랜 시간 서점에서 일한 덕분에 읽지는 않아도 알게 된 작가는 여럿 있다. 다나베 세이코도 그 중 한명인다. 그의 작품과 동명의 영화가 개봉했지만, 일본 영화에는 관심 있지도 않았고 영화 원작의 소설이어도 작품성이 더 좋을 것은 없다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기에 먼저 찾아서 읽어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고 서점을 거닐다. 한 에세이집의 제목을 보게 되었다. 제목은 여자는 허벅지’. 제목에서 나를 끌어들이는 불가사의 한 기운을 느꼈고, 충동구매의 충동을 느꼈으나 요즘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참았다. 다행히 동네 도서관에 이 책이 비치되어 있어서 충동에 넘어가지 않는 자신에게 기특함을 느꼈다.


도발적인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이 에세이집은 남녀관계의 미묘함과 여성의 성 인식을 소재로 한 에세이집이다. 1970년대부터 20년 동안 일본의 한 주간지에 연재된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인데, 나는 이 작가가 이렇게 연배가 많은 작가인지 처음 알았다. 박완서 선생님보다 나이가 세 살이나 많았다니, 많아봐야 에쿠니 가오리 정도의 나이인줄 알았는데 원로작가였다. 그것이 의외라고 느껴진 것은 한국 문단에서 연애 소설로 그 정도 경력을 가진 작가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과는 다르게 정치적으로 큰 사건이 없었던 일본이기에 연애라는 소재로 이렇게 오랜 시간 활동할 수 있는 것인가는 생각도 든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책은 1970년대에 발표된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당시에 작가는 40대 정도의 나이였기에 에세이의 문체는 40대 여인이 수다를 떠는 것 같은 문체다. 당시에 남녀관계로 인한 치정극이나 사건 사고를 소재로 삼는 경우도 있고(이 경우는 주석이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옛 시나 문학에서 나오는 애정관계에 대해서도 논하기도 한다. 대놓고 여성의 몸이나 성관계를 소재로 삼기도 하는데, 그것이 찔리기도 했는지. 작가의 어머니가 이런남사스러운 글이나 쓰냐고 따지는 글도 나온다. 정말 웃기는 누나다.


이 에세이집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가 있는데, 바로 가모카 아저씨다 작가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오세이 상의 절친한 친구로 나오는데, 입담이 장난이 아니다. 현대 여성에 대해서 남자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여자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떠들어 데는데, 워낙 그럴듯하게 짓 걸여서 성희롱처럼 들리는데, 막상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은 그럴듯한 말로 들린다. 오세이 상과 가모카 아저씨 둘이서 떠들어 데는 건 거의 만담 콤비가 쇼를 하는 걸 보는 것 같다. 에세이집에서 이런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나다니 반가웠다.


소재가 소재이다 보니, 자칫하면 비루한 외설로 빠질 수도 있지만, 남녀관계에 대한 통찰과 유려한 문체, 거기에 더해진 지적인 명량함은 그런 식의 흐름을 완벽하게 차단한다. 작가의 내공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내가 가장 놀랐던 부분은 남녀사이라는 소재로 이토록 많은 글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 사랑은 세상의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하다는 피츠제럴드의 말처럼 남녀관계라는 것은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존속할 소재인 것 같다.


최근에 에세이집을 여럿 읽고 있는데, 이 에세이집은 그중에서 최고수준이라고 할 정도다. 자기 생각을 세련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물론, 독자를 즐겁게 해주기 위한 기술도 충실하게 갖추어져 있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지적인 충만감과 독서의 즐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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